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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고용

Autor: ikkuyot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11-04 09:09:29

남자가 말을 삼켰다.

​

씻으시겠느냐고 물으려 했다. 손님과 함께 방에 올라오면 그다음 순서는 정해져 있었다. 그는 그 순서를 밟고 있었을 뿐이었다. 허전한 것을 쾌락으로 메우려고 호스트를 골라 올라오는 여자. 그런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

“그쪽한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

맞는 말이었다. 그 방에 앉아 있었던 것도, 함께 올라온 것도 세경이었다. 들어온 이유는 하나였다. 그 자리에 더 앉아 있기 싫어서. 호스트를 데리고 올라가는 술 취한 여자는 아무도 붙잡지 않는다. 그게 가장 빠른 길이었다.

​

작전은 성공했다. 다만 그가 자신의 학교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이상, 세경은 모른 척할 수 없었다.

​

“이게 어디서……!”

​

남자는 셔츠 단추로 손을 가져갔다. 위에서부터 하나씩. 아니라고 하는 손님이 제일 오래 머문다는 걸 아는 얼굴. 교수든 뭐든 이 여자도 그럴 거라고, 그 얼굴은 말하고 있었다.

​

셔츠가 어깨에서 내려갔다.

​

— 스륵

​

소파 옆 스탠드 하나만 켜져 있었다. 노란 불빛이 그의 몸 한쪽만 비췄고, 반대쪽은 그늘이었다. 세경은 그 그늘 쪽을 먼저 봤다. 그늘 쪽에 흉터가 더 많았다.

​

20대 대학생의 몸이 아니었다. 어깨와 가슴은 두꺼웠고, 왼쪽 갈비뼈 아래에 손바닥만 한 흉터, 오른쪽 쇄골 위에 꿰맨 자국. 보여 주려고 벗은 건 다른 거였는데, 세경의 눈에는 흉터만 보였다.

​

“입어.”

​

그가 멈췄다.

​

“입으라고.”

​

그는 셔츠를 다시 걸쳤다. 단추는 잠그지 않았다. 세경은 그것도 내버려 뒀다.

​

세경은 그를 다시 봤다. 넘긴 머리, 렌즈, 셔츠를 미는 어깨. 화요일 1교시의 그 애는 안경 너머로 눈이 안 보였고 후드가 어깨를 덮었고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였다. 세경도 자기가 어떻게 알아봤는지 알 수 없었다. 얼굴이 아니었다. 기억에 남았던 레포트의 문장도 아니었다. 둘 다 아닌 뭔가였다.

​

“학교에서는 일부러 그러고 다니는 거야?”

“……네.”

​

눈에 안 띄는 법을 아는 애였다. 그리고 그 몸의 흉터는 눈에 띄면 어떻게 되는지를 먼저 배운 사람의 것이었다. 하나, 둘. 세경은 속으로 셌다. 마음에 들었다. 둘 다.

​

“윤 교수하고는 이번이 처음이야?”

​

대답하지 않았다. 피하는 눈이 아니라 대답하지 않기로 한 눈이었다.

​

“네가 우리 학교 학생이라는 건? 아는 사람 있어?”

“아뇨. 그건.”

​

손님 얘기는 안 하고 제 얘기는 한다. 세경은 그 경계를 봤다. 자기한테도 똑같이 적용될 경계였다. 내일 누가 오늘 밤을 물으면, 이 애는 지금처럼 입을 닫을 거였다.

​

쓸모없는 건 곁에 두지 않는다. 세경은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 이 방에서 쓸모가 있는 사람은 저 애 하나였다. 머릿속으로만 짜 왔던 구조의 마지막 부재.

​

“구조역학 레포트. 마지막 두 줄. 네가 썼어?”

“뒷 줄만요.”

‘하중도 같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부재로 옮겨 갈 뿐이다.’ 머저리 같은 학점의 삼학년 레포트에서 본 그 문장이 자꾸만 기억에 남았다.

“지한결.”

​

이름이 떨어지자 꼿꼿하던 등이 안으로 말렸다. 어깨가 좁아지고 턱이 내려갔다. 그렇게 서 있으니 앞줄의 그 애였다.

​

“맞지?”

“……”

“맞지?”

“맞습니다, 교수님.”

​

귀까지 붉어지는 데 이 초가 안 걸렸다.

​

세경은 일어났다. 그가 한 걸음 물러서려는 걸, 구두 끝으로 정강이를 툭 찼다.

​

“쪼끄만 게 어디서 나쁜 것만 배워서.”

​

그는 맞은 자리를 내려다봤다. 아프지도 않았을 텐데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

세경은 시계를 봤다. 열두 시가 넘어 있었다. 그의 눈이 시계로 따라왔다.

​

“뭘봐”

​

세경은 가방 속의 지갑을 열어 오만 원짜리를 있는 대로 꺼냈다. 세지도 않고 전부를 내밀었다.

​

“받아. 한 걸로 쳐. 오늘 일은.”

​

그가 돈을 봤다. 받지 않았다. 세경은 손을 내리지 않았다.

​

“뭐해. 받아. 대신 내일 아홉 시에 내 방으로 와.”

​

명함을 꺼내 뒷면에 몇 자 적었다. 돈 위에 명함을 얹어 다시 내밀었다. 그제야 그가 받았다. 두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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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스트바에서 가르치던 학생을 만났다   11화-신경전

    윤정희의 방은 세경의 방에서 복도 반대쪽 끝이었다. 교수연구실 두 개를 합친 것만큼 넓은 방. 세경은 문 앞에서 재킷을 슥슥 쓸어내리고 단추를 다시 채웠다. 노크를 하기 전, 손목시계를 한번 쓰다듬었다.​— 똑똑 “들어와요.”​윤정희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을 손짓으로 권하고, 세경이 앉는 동안 한 번 훑었다. 위에서 아래로. 다시 위로. 그 눈이 어디서 뭘 듣고와서 자신을 보는 지 세경은 알았다.​윤정희 역시 서랍 속 보고서에 적힌 그 얼굴이었다. 세경은 다리를 꼬지 않고 무릎을 붙였다.​“그날은 잘 들어갔지?” “……네. 괜찮았습니다.” “괜찮았구나. 취한것 같아서 걱정했잖아.”​윤정희가 찻잔을 들었다. 마시지 않고 손목만 돌렸다. 팔찌가 반짝였다.​“나는 그날 박 교수가 그렇게 빨리 자리를 뜰 줄 몰랐는데. 실장이 택시는 잘 잡아줬지? 내가 나가본다는걸, 김단장이 하도 잡아서…” “네. 바로 택시 잡아주더군요.” “그래. 하… 나도 이제 그런자리 힘들어서 못하겠어. 학과장도 이제 그만할때가 됐나봐. 우리 박교수 같은 사람이 빨리 이 자리 물려받았으면 좋겠어.”​윤정희는 자기방을 둘러보며 소파 가죽을 한번 쓸어내렸다.​“과찬이십니다.”​세경은 단발을 귀 뒤로 넘겼다. 넘기는 손목에 윤정희의 시선이 걸렸다.​“그 시계 참 오래 끼고 다니네. 이제 새 걸로 하나 바꿔 끼지 그래? 옷은 좋은 거 입고 다니면서. 내가 하나 사 줘?” “끼던 게 편해서요.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래… 그래…편한 거 좋지. 사람도 그렇고.”​세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둘 다 같은 밤을 떠올리면서 전혀 다른 말을 입 밖에 내고 있었다. 교수들이 하는 대화란 원래 그랬다.​세경도 윤정희를 봤다. 보고서에 적혀 있던 젖은 눈. 소리를 내던 입. 그 애의 몸을 잡았다던 손끝. 그 손목에 걸린 세 줄짜리 금팔찌.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세경은 어금니로 눌렀다.​“팔찌… 예쁘네요. 까르띠에 맞죠?” “박 교수 이

  • 호스트바에서 가르치던 학생을 만났다   10화-별표

    — 똑똑​09:00​결재판이 두 손으로 들어왔다. 세경은 한 손으로 받았다. 어제보다 두꺼웠다.​“방에 가 있어.”​그가 멈칫했다. 어제까지는 앞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오늘은 나가라고 했다.​이유는 묻지 않았다. 한결은 고개를 한번 숙이고는 나갔다.​— 철컥​소리를 들었는데도 세경은 일어나서 손잡이를 당겨 봤다. 닫혀 있었다. 그 문에 등을 댔다. 잠깐. 그리고 자리로 돌아와 표지를 넘겼다.​결재판은 어제보다 무거웠다. 종이도 늘었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세경은 그걸 책상에 올려놓고 잠깐 보기만 했다. 표지. ‘논문 검토 보고서.’​첫 장은 어제와 같았다. 시각, 돈 묶음, 재킷, 구두. 둘째 장도 같았다. 셋째 장부터 달랐다.​처음 몇 줄은 어제 오후와 다를 것이 없었다. 시각이 있고, 동작이 있고, 그 여자가 한 말이 있었다.​그런데 어느 줄부터인가 시각이 없어졌다. 동작만 남았다. 그 여자가 어떻게 숨을 쉬었는지, 손가락이 어디를 쥐었는지, 어디서 소리가 났고 어디서 소리가 안 났는지.​세경은 그걸 읽었다. 문이 닫힌 방에서, 빨간 펜을 쥔 채로.​손목시계를 치던 펜이 멈춰 있었다. 다리를 꼬았다가 풀었다가 다시 꼬았다. 창문을 봤다.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는 걸 확인하고 다시 종이로 돌아왔다. 사 층이었다. 누가 볼 리 없었지만 그래도 확인했다.​“하?!”​넷째 장에서 세경은 한 번 종이를 덮었다. 손바닥으로. 덮고 나서 자기 손바닥이 뜨거운 걸 알았다. 귀가 뜨거웠다. 숨이 나오는 곳이 코인지 입인지도 헷갈렸다.​“후우……크흠.”​세경은 깊게 한숨을 내뱉다가 헛기침을 했다. 목에 가래가 잔뜩 걸려 있었다. 빨간 펜으로 윤정희의 말, 그리고 반응에 빨간펜으로 동그라미를 치고, 또 물음표를 그렸다. 뒤로갔다가 앞으로 돌아왔다. 몇 번을.​상상도 못했던 윤정희의 반응에는 아래에 줄을 긋고 별표를 체크해 뒀는데 그 한 줄을 몇 번이나 읽었다.​— 탁​『윤정희가 화장실에 들어가서 전

  • 호스트바에서 가르치던 학생을 만났다   9화-보고서2

    열 시가 넘어 있었다.​모니터에는 워드 창이 하나 떠 있었고,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윤 교수는 눈을 감고...』​거기까지 썼다. 기억은 분명했다. 글자로 옮기는 게 다른 일이었다.​낮에 파쇄기가 돌아가던 소리를 떠올렸다. 벗으라고 하던 윤정희보다, 몇 시간을 들여 써 간 종이를 돌아보지도 않고 갈아 버린 세경 쪽이 더 오래 남았다.​‘숨소리 하나까지.’​숨소리라면 기억했다. 들이켜기만 하고 내쉬지 못하던 숨. 그다음에 터지던 숨. 거기까지는 사실이었다.​문제는 그다음이었다.​어디까지 써야 하나.​“후우…”​그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등받이가 삐걱 소리를 냈다. 천장 형광등이 모니터 위로 희게 번져 있었다. 저 불을 끄면 조금 나을 것 같았다.​— 탁​손을 뻗어 스위치를 내렸다. 방이 꺼지고 모니터만 남았다. 깜빡이는 커서가 아까보다 크게 보였다.​그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그는 일어났다. 일어서면서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아무도 없는 걸 알면서도 둘러봤다. 아직 주인이 없는 책상들과 창문. 창문 너머로 가로등, 그 사이의 주차장에 차가 한 대 서 있었다. 그녀는 오늘도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허리를 펴고 팔을 머리 위로 올렸다. 등에서 소리가 났다.​— 뚜뚝 “으으으…”​몸이 굳어 있었다. 책상 앞에 두 시간 넘게 앉아 있었다. 수색훈련에서는 두 시간을 한자리에 엎드려 있어도 이러지 않았는데. 몸은 엎드리는 데 익숙했고 앉는 데는 익숙하지 않았다.​출입문 위 문틀에 손을 걸었다. 손가락 네 개가 걸릴 만큼의 턱. 몸을 당겨 올렸다.​한 번. 두 번.​내려올 때 소리가 나지 않게 발끝부터 내렸다. 열 번째에서 손을 놓았다.​문틀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는데 그가 손가락을 걸었던 자리만 반질반질하게 닦여 있었다.​한결은 손을 툭툭 털고는 복도로 나갔다.​복도는 불이 꺼져 있었고 센서등이 그를 따라 하나씩 켜졌다. 끝까지 가기 전에 멈췄다. 복도 끝, 412호. 문 아래

  • 호스트바에서 가르치던 학생을 만났다   8화-다시

    — 똑똑​09:00​세경은 펜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들어와.”​맹해보이는 차림. 세경이 시킨 그대로​어젯밤 윤정희의 방에 있던 사람이라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세경 자신도 그날 밤 그를 보지 않았다면 믿지 않았을 테니까.​그가 결재판을 내밀었다. 두 손으로.​맨 위는 비품 신청서였다. 세경은 품명 옆 칸에 빨간 펜으로 줄을 긋고 말했다.​“과 행정조교한테 물어본거니?”​한결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렇습니다.” “품명에는 모델명이 아니고 규격을 쓰는 거야. 그 조교한테 묻지말고 내가 결재했던 서류들만 찾아서 참고해. 다시 해 와.”​그 한장을 빼내 한결에게 건넸다.​“네. 알겠습니다. 이건…”​종이를 받아 든 한결이 주춤거리고 서 있자 세경은 턱으로 그의 뒤를 가리켰다. 서류파쇄기.​“드드드득” 소리를 내며 종이는 갈려나갔다.​비품 신청서를 걷어내고 나니 ‘논문 검토 보고서’라는 표지가 나왔다. 관자놀이를 엄지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는 세경. 앞머리 사이로 눈이 슬쩍 올라왔다가 다시 서류판으로 내려왔다.​— 스륵​넘어가는 표지​10.24. 22:40 P호텔 1602호. 윤 교수 단독. 23:50경 휴대폰 문자 다수 수신(이사장 긴급 호출). 윤 교수 통화 1건, 상대는 재단 사무처 김 실장(으로 추정). 통화내용: 압수수색 예정 확인, 서류 준비 지시, 신 사장 출국 지시. 박세경 교수 언급 1회(“입단속”). 통화 종료 후 퇴실 지시. 00:20 퇴실.​세경은 두 번 읽었다. 시간이 있었고, 이름이 있었고, 순서가 있었다. 그가 그 방에서 뭘 듣고 뭘 봤는지가 한 장에 들어 있었다. 간단했고 쓸 만했다.​압수수색. 세경은 그 네 글자를 펜 끝으로 짚었다. 늘 이런식이었다.​미리 알려주고 하는 압수수색.​재단에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이사장, 아니 그 사람의 방에. 그 방에 뭐가 있는지 세경은 몰랐다. 측근이라는 윤정희도 정확히는 모를 것이다.​‘입단속

  • 호스트바에서 가르치던 학생을 만났다   7화-보고서

    열두 시 사십 분.​세경은 412호에 있었다. 책상 위에는 리뷰할 논문이 펼쳐져 있었고, 빨간 펜은 한 시간째 같은 줄에 놓여 있었다.​창밖은 어두웠다. 공학관은 캠퍼스 가장 안쪽이라 밤에는 가로등 두 개가 전부였다. 그 두 개 사이로 주차장이 보였고, 주차장 너머로 정문까지 이어지는 길이 보였다. 세경은 그 길을 보고 있었다. 보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 블라인드를 내렸다가 다시 반쯤 올렸다.​집에 갈 이유는 충분했다. 내일 1교시 수업이 있었고, 며칠째 붙들고 있는 리뷰논문은 하루쯤 더 본다고 달라질 게 없었다. 이 건물에서 이 시간까지 불을 켜 놓은 방은 자기 방 뿐이었다. 남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표면적으론​열 시쯤 복도에서 발소리가 났었다. 건물 전체가 얼마나 조용했는지 연구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화장실 물소리, 엘리베이터 소리까지도 희미하게 올라왔다. 세경은 그때 고개를 들지 않았다.​그 뒤로 몇 시간이나 지났다.​윤정희가 어떤 사람인지 세경은 알았다. 돈을 쓰는 법도, 사람을 세워 놓고 기다리는 법도, 기다리게 해 놓고 즐기는 법도. 그 애가 그 방에서 뭘 하고 있을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정하고 나서도 떠오르는 장면이 종이 위의 글자를 자꾸 흔들었다.​세경은 쓰던 펜을 내려놓고 같은 종류의 다른 펜을 집어들었다. 논문의 같은 줄에 한 번 더 밑줄을 그었다. 이미 그어진 줄 위에. 줄이 굵어졌다. 세경은 그 굵어진 줄을 보고 펜을 내려놓았다.​“하아…”​사흘 전 이 방에서 그 애한테 한 말을 떠올렸다. ‘더한 일도 있을 거야. 더 더럽고.’ 그 말을 할 때 세경은 어떤 일을 생각하고 있었나. 사실 구체적인 건 없었다. 그렇고 그런 일이겠거니 했을 뿐, 이렇게 적나라하게 그려질 줄은 몰랐다.​어쨌든 보낸 건 자신이었다. 등록금과 하찮은 생활비 몇 푼으로. 그 아이는 누군가 책임져 주겠다는 말만 믿고 지금까지 살아 왔을 것이다. 그래서 남은 게 등록금 절반을 걱정하는 생활이었고.​‘나는 적어도

  • 호스트바에서 가르치던 학생을 만났다   6화-예고

    “아침 09:00. 공학관 412호.”​명함 뒤에 적어준 자기 글씨를 떠올려 보고 있었다. 어젯밤 저 글자를 쓰고 나온 뒤로 성급한 짓을 저질렀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여덟 시 오십 분. 세경은 학사 시스템을 열고 있었다. 창밖으로 1교시 학생들이 공학관 앞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후드를 뒤집어쓴 애, 이어폰을 낀 애, 뛰는 애. 그 틈에 그가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보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지한결. 건설환경공학과 3학년. 지도교수 란에 정 교수 이름이 있었다. 지난 학기 정년퇴임, 후임 배정은 비어 있었다. 아무도 안 데려간 학생이었다.​상담 이력 한 줄. 2학년 1학기, 휴학 상담. 사유 ‘경제적 사정’. 그다음 줄은 입대였다. 해병대. 복무 기간은 삼 년이 넘었다. 의무 복무보다 길었다. 전역일은 올해 봄. 제대하고 한 학기 만에 그 지하에 서 있었다는 얘기였다.​지난 학기 성적은 세경이 준 구조역학 C를 포함해 전부 C와 D 사이였다. 세경이 준 C 때문에 장학금을 놓친 건 아니었다. 그는 이미 그 선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똑똑​아홉 시 정각이었다.​“들어와.”​문이 다 열리지는 않았다. 몸이 들어올 만큼만 열고 들어와서, 닫히기 직전에 멈췄다. 한 뼘쯤 열린 채로.​뿔테 안경. 눈을 덮는 앞머리. 두 치수는 큰 체크 남방 위에 늘어난 후드 집업. 굽은 어깨, 한쪽 끈만 멘 낡은 백팩. 어젯밤 열한 시의 남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같은 키라는 것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그마저도 등이 굽어보여 훨씬 작아보였다.​“앉아.”​그는 방을 한번 주욱 둘러봤다. 책장, 파쇄기, 창가의 테이블. 문에서 창까지 한 번, 창에서 문까지 한 번. 그리고 맞은편이 아니라 한 칸 어긋난 곳에 앉았다. 어제처럼. 부담스럽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 백팩은 벗어서 무릎 위에 올렸다.​세경은 모니터를 돌렸다. 학사 기록이 그에게 보이게.​“지도교수가 없네.” “……네.” “상담 한 번. 휴학. 입대. 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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