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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대본이잖아요

Autor: 이스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10-01 09:05:40

“못 읽겠어요?”

한별이 대본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해경은 그 아래 적힌 문장을 다시 봤다.

'그럼 왜 자꾸 신경 쓰이게 해.'

“이 대사는 세린 씨 거죠?”

“네. 그래서 실장님한테 부탁했는데.”

“배우님이 대신 읽으세요. 저는 시안 봐야 해요.”

해경이 대본을 밀자 한별이 받아 들었다.

“아까는 몇 줄이냐고 묻더니.”

“몇 줄인지 알아봤으니까요. 길어요.”

“한 줄 남았어요.”

“제일 긴 한 줄이요.”

한별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해경은 휴대폰 화면을 켰다. 재하가 보낸 시안 위에 어젯밤 영상 댓글 알림이 떠 있었다. 꺼진 줄 알았는데 또 캡처가 올라왔다.

한별이 화면을 힐끗 봤다.

“그거 아직 돌아요?”

“네. 저기 댓글 달러 가실 거예요?”

“내가요? 말 섞었다가 또 배우님 허락 받아야 하냐고 할 텐데.”

“잘 아시네요.”

“실장님 얼굴 비교하는 댓글은 신고했어요. 제 계정으로.”

해경이 화면을 내려다봤다. 신고 버튼 하나로 그가 무슨 일을 해준 것처럼 굴까 봐 바로 받아쳤다.

“그걸 왜 배우님 계정으로 해요? 팬들이 제 계정 찾아오면 어쩌려고.”

“그래서 댓글은 안 달았어요.”

해경은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이럴 땐 또 생각이 있네.'

“다음엔 신고도 말하고 하세요.”

“네. 다음엔 묻고 신고할게요.”

한별이 순순히 대답하자 해경은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별은 대본을 접었다. 해경도 시안을 확대했지만 색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괜히 못 읽는다고 생각하겠네.'

해경은 확대하던 화면을 그대로 둔 채 덧붙였다.

“대사가 너무 뻔해서 그래요.”

“뭐가요?”

“싫다는데 왜 신경 쓰이냐고 묻는 거. 싫으면 싫은 거죠.”

한별이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쳤다.

“그러면 대답을 해야지. 자꾸 나만 이상한 사람 만들잖아.”

그 순간 해경이 그를 봤다. 한별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

“지금 연기하신 거예요?”

“대본 읽은 거예요.”

“안 읽어도 잘하시네요.”

“칭찬 맞아요?”

“오늘은요.”

한별의 얼굴에 웃음기가 스쳤다. 대본 모서리를 쓸었다. 해경은 시안을 저장하고 일어났다. 라운지를 나오는데 등 뒤에서 대본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진짜 대본 얘기였나?'

복도 끝까지 걷고 나서야 자기가 무슨 답을 기대했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세린이 해경의 의상 테이블 옆에서 같은 장면을 연습했다.

“그럼 왜 자꾸 신경 쓰이게 해.”

한별은 대본도 보지 않고 대답했다.

“네가 계속 여기 있으니까.”

해경은 옷걸이를 들고 돌아섰다.

'저 다음 대사는 처음 듣는데.'

어제 자리를 피하느라 한 페이지를 끝까지 보지 않은 탓이었다. 세린이 웃으며 물었다.

“실장님, 대사 너무 뻔하지 않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오빠가 어젯밤에 그러던데요. 그래서 감독님한테 마지막 줄 바꿔보자고 했어요.”

한별은 느슨하게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세웠다.

“왜. 대사가 뻔하다고 한 건 실장님이잖아요.”

“제가 감독님한테 바꾸라고 했어요?”

“아니요. 내 생각도 그랬어요.”

“그럼 제 이름 빼고 말씀하시죠.”

“이름 안 댔는데요.”

세린의 시선이 해경에게서 한별로 옮겨갔다. 해경은 옷걸이를 걸었다.

'말을 아주 잘 골라서 사람 약 올리네.'

“바뀐 대사도 알려주지 마세요. 저는 옷만 볼게요.”

“또 그러신다.”

“뭘요?”

“다 봐놓고 안 본 척.”

한별이 새 대본을 그녀 쪽으로 내밀었다. 해경은 받지 않았다. 세린이 대신 받아 읽더니 어깨를 들썩였다.

“이게 훨씬 나아. 실장님, 한 번 들어봐요.”

“두 분이 하세요.”

해경은 태연하게 말하고 돌아섰다. 방금 전까지 새 대사가 궁금해서 손을 뻗을 뻔한 사람은 자신이었다.

뒤에서 세린이 대사를 읽기 시작했다. 한별은 첫 줄부터 어제와 다른 속도로 받았다. 해경은 옷걸이의 색깔 순서를 바꿨다가 다시 원래대로 걸었다.

“실장님, 순서 바뀌었어요?” 보조가 물었다.

“아니. 내가 잘못 걸었어.”

“배우님 재킷은 맨 뒤에 둘까요?”

“곧 입으니까 앞에 둬. 대본 끝나면 바로 들어가잖아.”

해경은 제 목소리가 지나치게 빨랐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대사 하나 때문에 왜 이래.'

촬영 직전, 한별의 재킷 단추가 의상 보조 손에서 떨어졌다. 보조가 당황해 실을 찾자 해경이 예비 단추를 꺼냈다.

“제가 할게. 세린 씨 옷 확인해줘.”

한별이 팔을 살짝 들었다.

“보조한테 맡기라면서요.”

“지금은 보조가 다른 옷 봐야 해요. 배우님 옷도 제 업무고.”

해경은 단추를 달며 실을 세게 당겼다.

“아파요.”

“옷이 아프다고요?”

“아니. 지금은 내 자존심이.”

“그건 제가 못 꿰매요.”

한별이 소리 없이 웃었다. 해경은 매듭을 짓고 한 발 물러났다. 단추는 멀쩡했다. 자신도 멀쩡한데, 왜 하필 이 사람이 웃을 때만 다음 말이 늦게 나오는지 몰랐다.

'일 끝났어. 가.'

그때 승재가 새 촬영표를 들고 들어왔다.

“실장님, 내일 포스터 촬영 시간 확인하셨죠? 재하 작가님이 아침 일찍 오신대요.”

해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별이 끼어들었다.

“재하 작가요? 그날 내 촬영도 있어요?”

“아뇨. 배우님은 오후에만 테스트요.”

“그럼 오전엔 누가 찍는데요?”

승재가 해경을 봤다. 해경도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었다.

“해경 실장님 손이요. 의상 작업 컷 먼저 찍는다고요.”

“제가 그걸 하겠다고 했어요?”

해경의 목소리에 승재가 촬영표를 다시 펼쳤다. 한별이 자기 휴대폰을 꺼냈다. 재하에게서 온 메시지가 해경의 화면에도 막 떠 있었다.

〈내일 작업 컷은 일단 보류할게. 네 동의 없이 이름 올라간 거 방금 알았어.〉

한별이 먼저 말했다.

“또 누가 실장님 대신 정했어요?”

해경은 촬영표 맨 위에 적힌 담당자 이름을 확인했다.

어제 자신과 함께 콘티에 줄을 그었던 프로듀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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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장해서 예쁜 건데, 사귀어 줄 거야?   47화 저랑 한 팀 하세요

    모레 귀국.해경은 변경된 일정표에서 그 부분을 다시 봤다.남은 실내 촬영은 국내 세트에서 진행하고, 정확한 날짜는 귀국 후 공지한다고 했다. 당장 끝나는 일은 아니었다.그런데 옆방에서 소리가 나면 누구인지 알던 생활은 끝났다.한별이 젖은 타월을 들고 다가왔다.“실장님은 짐 많겠네.”“정리해둬서 괜찮아요.”“벌써요?”“늘 정리해놓죠.”그는 타월을 바구니에 넣었다.“돌아가면 좀 쉬겠어요.”“서진 실장님 일정 맞으면 그쪽 일도 해보려고요.”한별이 고개를 끄덕였다.해경은 그 짧은 반응이 아쉬웠다. 무슨 대답을 기대한 건지 자신도 몰랐다.“아직 확정은 아니고요.”덧붙이자 그가 그녀를 봤다.“좋은 일이라면서요.”“네. 그렇죠.”왜 그 말을 해놓고 기분이 가라앉는 걸까.'일은 좋은데.'그 다음 말은 속으로도 끝내지 않았다.해가 지기 전에 야외 촬영이 마무리됐다.호텔 식당 한쪽에는 제작팀이 마련한 저녁 자리가 있었다. 내일은 장비를 포장해야 해서 송별 식사를 하루 당겼다고 했다.해경은 보조들과 옷을 정리하고 내려왔다.재하가 입구에서 마지막 촬영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다.“끝났어?”“응. 너는?”“이거 보내면. 먼저 앉아.”해경은 빈자리를 찾았다.한별 옆 의자에는 그의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누굴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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