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화장해서 예쁜 건데, 사귀어 줄 거야? / 14화 안 부르면 더 신경 쓰여

Share

14화 안 부르면 더 신경 쓰여

Author: 이스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30 10:16:25

“제 외부 일정까지 배우님 허락을 받아야 해요?”

해경이 계약안을 내밀자 한별은 물병부터 내려놓았다.

“내 허락이요?”

“배우님 요청이라던데요.”

그는 문장을 읽고 미간을 좁혔다.

“클로즈업 분장을 실장님이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이건 내가 말한 게 아니고.”

“그것도 저한테 먼저 물어보셔야죠.”

“돈을 더 드리는 쪽으로 얘기했는데.”

“제가 더 받겠다고 했어요?”

한별의 입이 닫혔다. 해경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또 까다롭다느니, 일정을 맞추라느니 하면 이번엔 끝까지 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는 기범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내가 외부 일정 승인하자고 했어요? 금액이랑 일정은 본인한테 물어봐야죠. 제 이름으로 보내지 말고.”

통화는 짧았다. 한별이 계약안을 돌려줬다.

“그 조항은 빼기로 했어요.”

“배우님 요청도 생각해보세요. 저는 의상팀으로 온 거예요.”

“나 맡는 게 그렇게 싫어요?”

“지금은요.”

한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보지도 않고 요청한 건 내 잘못이네요. 개인 분장은 따로 구할게요.”

그는 물병을 들고 돌아섰다.

해경은 계약안을 가방에 넣다가 손을 멈췄다.

'저렇게 끝낸다고?'

자기가 원한 답이었다. 그런데 사람까지 거절당한 것처럼 묻고 먼저 가버리니, 꼭 자신만 모진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됐어. 물어봤으니까 대답한 거잖아.'

해경은 제작사에 수정할 조항을 보내고 촬영장으로 돌아갔다.

촬영이 한참 남았지만 한별은 해경을 부르지 않았다. 니트 소매는 보조가 접었고, 다음 옷도 보조에게 받아 입었다.

해경은 수선할 셔츠를 정리하다 그쪽을 봤다.

'뭐지. 나 없어도 잘하네.'

좋은 일이었다. 맡길 사람이 있으니 다른 배우 의상에 집중하면 됐다. 그런데 한별의 니트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접힌 자국이 있었다.

해경은 셔츠를 내려놓고 그에게 갔다.

“뭐 더 봐드릴 거 없어요? 여기 구겨졌는데.”

한별이 어깨를 내려다봤다.

“보조가 보고 있어요. 됐어요.”

해경의 손이 옷에 닿기도 전에 멈췄다.

“화면에 보일 수도 있는데.”

“그럼 저분한테 부탁할게요.”

정중했다. 평소보다 훨씬.

그래서 더 기분이 나빴다.

'뭐야. 왜 저래. 아까 일로 삐쳤어?'

해경은 한 발 물러났다. 돌아가려는데 그가 덧붙였다.

“다른 배우 봐주세요. 그럴 때마다 부르면 안 된다면서요.”

“네. 잘 기억하시네요.”

“실장님이 여러 번 말씀하셨잖아요.”

한별은 그녀의 멈춘 손을 봤다.

“왜요. 제가 뭐 또 잘못했어요?”

“아니요. 오늘 아주 모범적이시네요.”

“그런데 왜 칭찬 같지가 않지.”

그가 짧게 웃었다. 해경은 손을 내려 가위집을 고쳐 잡았다. 웃기려고 한 말도 아닌데 혼자 웃는 게 싫었다. 무엇보다 그 웃음을 보자 더 할 말이 없어졌다.

해경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었으면 됐지. 말투는 왜 저래.'

자기 자리로 돌아와 셔츠를 들었다. 단추를 잠그다가 구멍을 하나 건너뛰었다. 해경은 다시 풀었다. 한별의 어깨가 잘못된 건 아니었다. 보조가 손으로 쓸어 펴자 자국은 금방 사라졌다.

그게 더 얄미웠다.

점심 직전, 세린이 한별의 옷깃을 보며 웃었다.

“오빠, 여기 실밥.”

한별은 고개를 숙였다. 세린이 실밥을 떼는 동안 가만히 있었다.

해경은 도구함을 정리하다가 뚜껑을 조금 세게 닫았다.

'아까는 됐다더니.'

옷깃의 실밥과 구겨진 어깨는 다른 문제였다. 세린은 배우고 자신은 의상팀이었다. 그런 걸 따질 일도 아니었다.

“실장님, 이거 버려요?”

보조의 말에 해경이 돌아봤다. 수선 표시가 된 셔츠였다.

“아니. 잠깐만. 내가 다시 볼게.”

해경은 셔츠를 받아 들었다. 한별이 누구에게 실밥을 떼게 하든 자기 할 일을 하면 됐다.

그런데 그가 웃는 소리에 또 고개가 돌아갔다.

'재수 없어. 웃으면서 저러니까 더.'

밤에는 포스터 시안을 보려고 공용 라운지에 내려갔다. 방 책상이 의상 봉투로 꽉 차 있었다.

한별이 창가에 앉아 있었다.

해경은 안쪽 탁자에 가방을 놓았다. 그가 고개만 들었다가 다시 대본을 봤다.

'인사는 해도 되잖아.'

해경도 먼저 하지는 않았다. 재하가 보낸 시안에 답장을 쓰는데 한별이 대본을 내려놓았다.

“대사 몇 줄만 읽어줄래요?”

해경이 휴대폰을 내렸다.

“그건 의상팀 업무 아니에요.”

“알아요. 그래서 물어보는 건데.”

'말은 또 잘해.'

한별이 대본을 거두려 했다.

“싫으면 안 해도 돼요.”

“몇 줄인데요?”

해경은 그가 가리킨 의자에 앉았다. 잠깐 읽어주면 되는 일이었다.

“여기부터요.”

해경은 표시된 대사를 읽었다.

“오늘은 그냥 가. 나 피곤해.”

“피곤하단 말밖에 할 게 없어?”

목소리가 달라졌다. 해경은 고개를 들었다. 한별은 그녀를 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말해도 네가 안 듣잖아.”

“그럼 듣게 말해.”

그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해경은 저도 모르게 등을 의자에 붙였다. 한별의 시선이 따라왔다.

'연습이잖아. 뭘 피하고 있어.'

그녀는 다시 대본을 봤다. 다음 줄을 읽으면 됐다. 그런데 낮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 맡는 게 그렇게 싫냐던 목소리.

한별이 낮게 말했다.

“나 싫어하잖아.”

해경은 종이 모서리를 눌렀다.

“……다음 대사가 뭐죠?”

그의 시선이 그녀의 손끝에 내려갔다 돌아왔다.

“바로 거기 있는데.”

해경은 읽지 못한 문장을 내려다봤다.

'그럼 왜 자꾸 신경 쓰이게 해.'

대본에 적힌 말이었다.

이번에는 더더욱 읽고 싶지 않았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화장해서 예쁜 건데, 사귀어 줄 거야?   53화 대답하기 어려운 조건

    화면에 뜬 서진의 이름을 보고 해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잠깐 통화하고 오겠습니다.”복도로 나오자마자 전화를 받았다.“해경 씨, 지금 바빠요?”“회의 중이에요.”“그럼 짧게 물을게요. 제작팀에서 국내 촬영 의상 지원을 맡을 수 있느냐고 연락이 왔어. 혹시 해경 씨 일인가?”서진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해경은 닫힌 회의실 문을 봤다.“제가 계속 맡을 예정인 일이에요.”“그렇게 얘기하더라. 그런데 다른 사람을 찾길래.”“누가 제가 빠질 수도 있다고 했어요?”“그런 말은 못 들었어. 국내 촬영에 인력이 필요하다고만 했지.”해경은 휴대폰을 반대쪽 귀로 옮겼다.'모르면 먼저 물어볼 수도 있잖아.'서진이 먼저 연락한 지금, 그 말을 하기에는 자신도 답을 알고 있었다.“지난번에 제가 서진 실장님 일을 못 받는다고 했잖아요. 그 촬영 때문에요.”“알아. 그래서 지금 이상한 거야. 네가 이미 맡은 작품인데 왜 새 사람을 찾는지.”해경은 안도했다가 민망해졌다. 조금 전엔 서진을 의심했으니까.“서진 실장님은 하실 거예요?”“일단 어떤 일인지 들어봐야지. 해경 씨 자리를 대신하라는 거면 네 계약부터 확인해야 하고.”선뜻 안 하겠다는 말은 아니었다.“그래요. 전 지금 그 계약 얘기하러 왔어요.”“알았어. 네가 하는 일이라고는 제작팀에 말할게. 그리고 내가 들은 제안도 보내줄게.”

  • 화장해서 예쁜 건데, 사귀어 줄 거야?   52화 나 빼고 정하지 마요

    “제 일에는 문제 없었다고 발표했잖아요.”해경이 화면을 돌리자 제작팀 책임자가 그 문장을 읽었다.“소속사에서 보낸 안입니다. 아직 결정한 건 없어요.”“그럼 왜 인계까지 적혀 있어요?”“광고주가 국내 촬영에서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걸 걱정합니다. 촬영을 멈출 수는 없으니까 대안을 달라고 했어요.”해경은 의상 가방이 놓인 쪽을 봤다. 옷마다 자신이 정한 수정 위치가 표시돼 있었다.'사람만 바꾸면 끝나는 줄 아나.'“대안이 필요하면 저도 같이 얘기하죠. 내일 회의에 제가 직접 갈게요.”“그렇게 하시죠. 기록은 제가 전달하겠습니다.”“보류를 결정한 사람은 아직 없는 거죠?”“네. 검토안이에요.”그제야 해경은 파일을 닫았다. 말 한 줄을 확인하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공항으로 가는 차에서는 재하가 옆에 앉았다.“네 가방, 내가 위에 올릴까?”“내가 해. 너 카메라부터 챙겨.”재하가 두 손을 거뒀다.“이런 날에도 일은 잘 시키네.”“그럼 좀 도와줄래? 저 작은 상자만.”“말 바꾸는 속도가 빠르다.”그가 상자를 들었다. 해경은 웃다가 다시 휴대폰을 봤다. 기사 아래 새 댓글은 읽지 않았다.“내일 회의 있어.”“알아. 촬영 사진 필요하면 말해. 네가 현장에 있던 시간도 남아 있으니까.”“응. 고마워.”

  • 화장해서 예쁜 건데, 사귀어 줄 거야?   51화 제 이름은 빼주세요

    “국내 촬영 전에 소속사랑 같이 만나야겠습니다.”제작팀 책임자의 말에 해경은 의자에 앉았다.“어떤 내용을 확인하시려고요?”“현장에 영향이 없도록 대응을 맞추자는 겁니다. 광고주 쪽에서도 연락이 왔고요.”“제가 일을 하지 않았다는 글도 확인하셨어요?”“네. 촬영표와 의상팀 인계 기록부터 정리하겠습니다.”해경은 그제야 가방에서 일정표를 꺼냈다.그날 마지막 옷을 반납한 시간, 보조들과 다음 촬영 준비를 마친 시간. 모두 적혀 있었다.사람들이 본 건 퇴근한 뒤의 몇 초였다.'이렇게 길게 일했는데.'그녀는 필요한 기록을 보냈다. 입장문에 자기 이름을 다시 적어 신원을 더 퍼뜨리지는 말아달라고 덧붙였다.책임자는 귀국 다음 날 오전에 만나자고 했다.통화를 마친 해경은 침대에 누웠다.잠들려고 눈을 감았는데 꽃 머리끈이 떠올랐다.그걸 고르며 웃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는 게 싫었다.그날은 좋았다. 누가 이상하게 붙여놓은 말 때문에 그 기억까지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다음 날 아침, 한별은 입국장을 나오기 전에 메시지를 확인했다.해경이 보낸 링크를 열었다. 승재는 옆에서 소속사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국내 홍보 담당자가 전화 너머로 사실관계 확인 내용을 설명했다.“연인 관계가 아니라는 입장부터 내겠습니다. 두 분은 업무로만 접촉한 사이로…….”한별은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그건 아니죠.”“배우님, 일단 추측을 차단해야 해서요.”“같이 나간 건 맞아요

  • 화장해서 예쁜 건데, 사귀어 줄 거야?   50화 퇴근도 허락받아야 해요

    “끊기는 싫은데.”해경은 이불 끝을 만지던 손을 놓았다.“그럼 일 말고 다른 얘기 하세요.”“실장님은 뭐 하고 있었어요?”“사진 봤어요.”말해놓고 휴대폰을 귀에서 조금 뗐다. 굳이 어떤 사진인지 해명하지는 않았다.한별이 물었다.“내 얼굴 늘려놓고 보는 건 아니죠?”“배우님 얼굴보다 제 얼굴이 더 작게 나와서요.”“작은 게 아니라 뒤에 숨었잖아요.”“키가 작으면 숨어도 되거든요.”그가 웃었다. 해경은 침대에 등을 기댔다.“도착하면 주무세요. 또 일 얘기하지 마시고요.”“실장님도 자요.”“네.”그런데 둘 다 바로 끊지 않았다.한별이 먼저 낮게 웃었다.“전화 끊는 건 실장님이 더 못하네.”“배우님이 끊기 싫다면서요.”그때 승재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가야 돼요. 도착하면 연락할게요.”통화가 끝났다.혼자 있는 방이 아까보다 덜 낯설었다.세린에게 전화가 온 건 십 분쯤 뒤였다.“실장님, 지금 혼자 있어요?”“네. 왜요?”“제가 보내는 거 먼저 봐요. 단체방에는 올리지 말고.”해경은 메시지의 링크를 열었다.시장 골목에서 찍힌 짧은 영상이었다.한별이 과자 봉투를 들고 있었고, 자신은 커다란 꽃 머

  • 화장해서 예쁜 건데, 사귀어 줄 거야?   49화 기다린 연락은 그게 아닌데

    두 촬영이 같은 날이었다.해경은 단체방의 파일을 다시 열었다. 초안이었다. 다만 자신이 맡은 작품의 남은 실내 장면을 찍는 날이라, 확인 없이 다른 일을 받으면 안 됐다.한별이 휴대폰을 보다가 그녀를 봤다.“표정이 왜 그래요?”“새로 제안받은 촬영이랑 겹쳐요.”“날짜 바꿀 수 있대요?”“물어봐야죠.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니까.”차가 도착했다. 해경은 먼저 타고 제작팀에 메시지를 보냈다.국내 촬영일이 얼마나 바뀔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한별은 옆에 앉았다. 아까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이 그의 화면에 떠 있었다.해경은 자기 메시지의 오타를 고치다가 잠깐 그쪽을 봤다.'저걸 아직 보고 있네.'그녀는 날짜 확인 메시지부터 마저 썼다.호텔에 돌아오자 승재가 한별의 짐을 받으러 왔다.해경은 프런트에서 핀 통을 찾아 작업실로 올라갔다.국내 촬영일은 세트와 배우 일정을 맞춰 잡은 날짜라 바뀔 가능성이 작다는 답이 왔다. 확정 공지는 다음 날이라고 했다.해경은 서진에게 바로 전화했다.“그날 기존 프로젝트 촬영이 잡힐 것 같아요. 날짜를 조정할 수 있을까요?”“도윤 씨 쪽은 그날밖에 안 돼요. 다음 날 지방 일정이 있어서.”서진은 잠깐 확인하고 돌아왔다.“확답은 오늘 안에 받아야 하는데, 아직 기존 쪽도 확정 전이죠?”“네. 하지만 그날을 비워드린다고 하긴 어려워요.”말하면서 해경은 달력을 봤다.“그럼 이번에는 다른 사람 구할게요. 다음에 맞는 일이 생기면 다시 얘기해요

  • 화장해서 예쁜 건데, 사귀어 줄 거야?   48화 제가 데려온 거잖아요

    “그럼 내일 저랑 나가요.”해경의 말에 한별이 컵을 내려놓았다.“어디요?”“가보면 알아요.”“나한테 그런 대답 싫어한다면서.”해경은 접은 그림을 가방에 넣었다.“싫으시면 안 가셔도 돼요.”“갈 건데. 시간은 알려줘요.”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지도를 보여줬다. 화면 한쪽에 저장해둔 해안 전망대가 떴다.한별이 화면과 해경을 번갈아 봤다.“이미 골라놨네.”'그걸 꼭 말해야 돼?'해경은 휴대폰을 다시 넣었다.“아홉 시요. 늦지 마세요.”다음 날, 서진에게 귀국 후 촬영 날짜가 왔다.해경은 달력에 표시하고 여덟 시 오십 분에 로비로 내려왔다.한별이 먼저 앉아 있었다.평소보다 단정한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다가, 원래 저 사람은 늘 저렇게 입었다는 걸 떠올렸다.달라진 건 자기가 보는 방식인 것 같았다.“일찍 나오셨네요.”“늦지 말라면서요.”그가 일어나자 해경은 가방 끈을 고쳐 멨다.어제 입었던 티셔츠 대신 얇은 셔츠를 골랐다. 갈아입다 구겨진 옷은 방 침대 위에 남겨뒀다.'그냥 구경 가는 건데 옷을 몇 번을 갈아입어.'한별이 그녀를 봤다.“오늘은 핀 없어요?”“있어요.”“쉴 때도 들고 다녀요?”해경은 가방 안쪽을 확인하고 핀 통을 꺼냈다.정말 들어 있었다.한별이 웃었다.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