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가서 일 보세요. 우리끼리 할 얘기가 있어요.”“알겠습니다.”하인들은 떠났고 큰 별장에는 그들만 남았다.“우리 다음 달 9월 20일에 결혼해.”그날은 인시윤의 생일이다.“축하해!”인시윤은 금박을 입힌 청첩장을 꺼내 장소월 앞으로 건넸다.“앞으로 우리는 한 가족이 될 건데 예전 일 때문에 날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날은 참석 하길 바라.”장소월은 붉은 청첩장을 보며 다소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벌써 잊어버렸어.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게 된 것을 축하해.”“그리고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내가 이 말을 하는 게 이기적일지도 모르지만... 꼭 해야겠어... 너와 연우 씨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매라는 거 알고 있어. 게다가... 나도 바보가 아니라 프랑스에서 널 처음 봤을 때부터 연우 씨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짐작이 갔어!”장소월은 손에 힘을 주어 주먹을 꽉 쥐고 잠옷 자락을 잡고 있었다.그때 생각을 하니... 장소월은 부끄러운 마음 외에도 자신을 증오하는 마음이 더 컸고, 결국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존재가 되었다.“소월아, 내가 연우 씨와 결혼하면 네가 서울을 떠나줄 수 있어? 내가 거의 7년 동안 온 마음을 연우 씨에게 쏟았는데 지금은 연우 씨가 없으면 안 돼. 만약 그날 연우 씨가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나는 미쳐 버릴 거야. 그때 오빠 옆에 김남주가 있어서 네가 떠난 거 알고 있어. 그리고 네가 남의 감정에 끼어드는 그런 사람도 아니라는 걸 알아. 하지만... 나는 너의 존재가 무섭고 불안해. 심지어... 하루 종일 헛된 생각만 하고 있어. 나는 너와 화목하게 가족처럼 지내고 싶어.”인시윤이 말을 하고 있을 때 장소월은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하더니 장소월 자신으로 변해 울부짖는 것 같았다.이 장면은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다.다시 한번 눈을 감고 뜨자 인시윤이 또 송시아의 모습이 되었다.머릿속
전연우가 한 번도 손대지 않았다고? 아직 잠자리를 한 적도 없다고?믿을 수 없는 인시윤의 말에 깜짝 놀란 장소월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그녀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장소월의 인식 속 전연우는 절대 한 사람에게만 마음을 두는 사람이 아니다.자신의 이익과 야망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다.그럼 송시아는?백윤서는?전생에서 전연우는 백윤서의 죽음 때문에 송시아와 관계를 맺었었다.지금 인시윤은 장소월에게 전연우의 마음속엔 오직 그녀 한 명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장소월은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전연우가 직접 죽인 그 아이가 그는 완전히 그녀에게 등을 돌렸음을 의심의 여지 없이 적나라하게 증명해준다.장소월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들어 힐끗 시간을 보고는 말했다.“네가 믿을진 모르겠지만 네 연적은 내가 아니라 지금 전연우 옆에 있는 송시아야. 나 역시 다른 사람의 가정을 파탄 내는 파렴치한 여자가 되고 싶진 않아.”“난 이만 방에 들어갈게.”“연우 씨가 정말 송시아를 좋아한다면 왜 바로 사귀지 않았겠어? 장소월... 거짓말로 날 현혹하려 하지 마.”전연우와 송시아 사이에 정말 무언가 있었다면 그녀가 왜 몰랐겠는가?성세 그룹 직원들 중 절반은 인하 그룹 사람이다. 그들은 인씨 가문의 눈이기도 하다.둘 사이에 미묘한 변화라도 있었다면 인시윤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때문에 인시윤의 눈에 장소월이야말로 가장 큰 적이다.벼랑 끝에 몰려 미쳐버린 인시윤은 곧바로 폭력적인 본모습을 드러내고 장소월을 잡아챘다.인시윤의 날카로운 매니큐어가 장소월의 손목에 붉은 생채기를 냈다.장소월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녀의 시선이 손목에 남겨진 상처에 향했다.“만약 내가 곧 죽는다면?”“너... 너 뭐라고 했어?”장소월이 그녀와 눈을 맞추며 덤덤히 말했다.“인시윤... 나 곧 죽는대.”“그러니까 아무도 너한테서 전연우를 빼앗지 못해. 이제 알겠어?”인시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지금 나랑 장난해?”장소월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
12시에 맞춰 전연우가 도착했다.도우미들은 이미 점심 식사 준비를 마쳤다.여태까지 전연우는 늘 회사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했었다.하지만 오늘은 먼 거리를 달려왔다. 장소월은 그가 온 목적을 짐작할 수 있었다.전연우는 집에 들어온 뒤 곧바로 겉옷을 벗고 도우미를 모두 내보내고는 장소월 한 명만 남겼다.오늘 점심은 아주 풍성했다.탁자 위 미처 치우지 못한 찻잔을 본 전연우의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뜩였다.“오늘 누가 왔었어?”장소월은 밥상 위 음식을 몇 술 뜨고는 부인하지 않았다.“내가 인시윤을 불렀어. 물어볼 게 좀 있어서.”전연우의 시선이 그녀의 팔에 남아있는 손톱에 긁혀 생긴 상처에 향했다.“무슨 일인데 나한테 묻지 않고?”“여기 아파?”장소월이 움찔하며 말했다.“괜찮아. 밥 먹어.”전연우가 그녀에게 반찬을 집어주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영락없는 평범한 부부 같았다.“3일이 지났어. 대답은?”장소월이 말했다.“여기 남을게. 하지만 조건이 있어. 절대 내 몸에 손대지 마.”전연우가 어이없는 말이라도 들은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너의 제일 매력적인 곳이 어디인지 알아?”“...바로 네 몸이야, 소월아! 네 몸보다 유혹적인 건 이 세상에 없어.”장소월은 순간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맛있었던 이 반찬도 돌연 너무 짜게 느껴졌다.“너한텐 엄연히 법적 아내가 있어. 이러면 인시윤한테 미안하지 않아?”그녀는 인시윤이 준 청첩장을 꺼냈다.“시윤이가 두 사람의 결혼식에 날 초대했어. 난 응했고.”“네가 아직 날 네 동생으로 생각한다면, 시윤이한테 미안한 일 다시는 하지 마. 앞으로 인시윤은 내 새언니야.”전연우가 말했다.“내가 인시윤과 결혼하길 바라?”“내가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 네가 내 말대로 하기나 해?”“안 될 게 뭐가 있어?”“전연우, 결혼은 애들 소꿉장난이 아니야. 인시윤은 몇 년 동안 줄곧 너한테 애정을 쏟았어. 어떻게 그런 사람을 버리려고 할 수가 있어? 인시윤도 사람이야. 이렇게 상처 주면 너 벌 받
전연우의 눈동자에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그는 장소월의 얼굴을 움켜쥐고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한 모든 결정을 틀리지 않았어.”전연우는 그녀를 무릎에 앉힌 채로 밥을 모두 먹게 한 뒤에야 놓아주었다.그는 이어 장소월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 자신이 좋아하는 원피스로 갈아입혔다. 그녀는 마치 아름다운 바비 인형처럼 전연우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야 했다.장소월은 원피스를 입고 그 위에 가디건을 걸친 뒤 결국 그의 차에 탔다.서울시에서 가장 큰 쇼핑몰 성세 백화점.이곳은 부잣집 사모님들이 애용하는 곳이다. 해외 유명 브랜드 가방부터 고급 액세서리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전연우는 거스를 수 없는 힘으로 장소월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들의 뒤엔 경호원이 늘 따라다녔다.그들은 한층 한층 걷고 또 걸었다.전연우가 그녀에게 말했다.“사고 싶은 것 있으면 말해.”“나 정말 필요한 거 없어. 난 집에 가고 싶단 말이야, 전연우!”장소월은 어려서부터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전연우가 차분하게 그녀를 달랬다.“물건을 다 사면 집에 데려다줄게.”실상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두 사람을 애틋한 커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 도착했다. 그곳엔 가구 전문 매장들이 들어서 있었다.매니저가 곧바로 달려와 두 사람을 가구를 진열한 홀에 안내했다.“대표님, 보세요. 모두 최고급 재료로 만든 가구들입니다. 침대도 있고 옷장도 있어요. 뭘 사시려는 거예요?”전연우의 시선이 장소월에게 닿았다.“어떤 게 마음에 들어? 골라봐.”장소월은 그를 쳐다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네가 사든 말든 나랑은 상관없어. 알아서 골라.”장소월은 말을 마치고 난 뒤 곧바로 몸을 돌렸다. 전연우의 얼굴이 못마땅한 듯 일그러졌다. 그는 한 손으로 장소월의 허리를 끌어당긴 뒤 그녀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말을 안 들으면 이 오빠가... 화낼 거야!”“소월아, 그 후과가 뭔지는 너도 알고 있겠지?”매니저는 그들
“혼자 들어가. 난 바깥에서 기다릴 테니까. 남자가 속옷 가게에 들어갔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비웃음거리가 된단 말이야. 착하지? 난 여기에서 기다릴게. 이 카드 줄 테니까 사고 싶은 거 마음껏 사. 이따가 밤에 한 벌씩 보여주는 것도 잊지 말고.”남자가 말을 마치고는 여자친구의 볼에 살짝 키스했다.그녀는 카드를 보자 요염한 자태를 취하며 환히 웃어 보였다.“진짜 미워 죽겠어. 흥.”남자는 건들거리며 여자의 엉덩이를 힘껏 움켜쥐었다.그 동시에 문 앞에 서 있는 장소월을 보자 남자의 눈빛이 순식간에 반짝였다.하지만 그가 한 걸음 떼기도 전에 경호원이 그를 막아섰다.“죽고 싶지 않으면 꺼져.”“더럽게 사납네!”남자는 장소월과 멀리 떨어진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끊임없이 장소월을 힐끗거렸다.“이봐요, 아가씨, 경호원 너무 사나운 거 아니에요?”장소월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거들먹거리는 양아치 같은 말투를 보니 또 어느 집 도련님이겠지.“엄청 차갑게 구네요. 내 말 무시하지 말고 전화번호나 알려줘요. 저녁에 같이 놀래요? 내가 남자 소개해 줄게요.”“...”그때, 조금 전 들어갔던 여자가 울며 뛰쳐나왔다. 다리는 절뚝거렸고 얼굴엔 발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다.“자기야, 얼굴 어떻게 된 거야?”“저 안에 있는 남자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날 희롱하려고 하길래 거부했더니 때렸어! 흑흑흑... 자기야, 꼭 복수해줘야 해!”“대체 어떤 미친 자식이 감히 내 여자를 건드려?”“저놈이야!”여자가 종이가방을 들고나오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남자를 가리켰다.눈을 희번덕거리며 당장이라도 뒤집어엎을 기세였던 남자의 얼굴이 순간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는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고 곧바로 여자의 얼굴에 따귀를 날렸다.“이런 멍청한 여자 같으니라고! 저분은 성세 그룹 전 대표님이야.”전연우의 신분을 들은 여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녀는 너무 놀라 얼굴을 움켜쥐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멍하니 그를 쳐다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하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장소월은 어려서부터 늘 혼자였다. 때문에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완벽한 가정이 갖고 싶었다.하여 그녀는 자신의 목마름을 전연우에게서 해결하려고 했었다.하지만 장소월에게 전연우가 지금에 와서야 하는 이 모든 행동은 너무 늦어버린 것들이었다.“마음에 들어?”장소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 밖에 나갈 때 그녀는 이런 것들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옆에 있던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대표님, 안목이 정말 훌륭하시네요. 이건 최근 유행하고 있는 립스틱인데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어요. 아가씨와 너무 잘 어울려요. 바르면 분명 예쁘실 거예요.”전연우는 여자의 물건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 너무 서툴러 뚜껑을 여는 것도 세 번이나 시도해서야 겨우 성공했다. 그는 한 손으로 장소월의 얼굴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 립스틱을 잡고 그녀의 입술에 바르려 했다.직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렇게 립스틱을 발라주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장소월의 입술이 쭉 내밀어졌다. 촉촉한 입술은 은은한 핑크색까지 띄고 있어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하지만 극강의 소유욕을 지닌 전연우는 다른 여자가 갖고 있는 것이라면 장소월에게도 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 없는 것이라도 어떻게든 구해 장소월의 품에 안겨주고 싶었다.직원이 친절하게 말했다.“대표님, 그렇게 바르는 게 아니에요. 제가 도울까요?”전연우는 그녀에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장소월의 입술에 조심조심 립스틱을 발라주었다.얼마 후, 직원이 거울을 가져와 장소월의 앞에 놓아주었다. 전연우는 그녀의 턱을 잡고 자신의 걸작을 감상하듯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장소월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이제 됐어?”전연우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네. 이 립스틱 모든 색상 하나씩 다 살게요.”그는 카드 하나를 꺼내 눈도 깜빡하지 않고 몇백만 원을 긁었다.백화점에서 나오니 바깥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금색의 빛이 텅 빈 거리
“가고 싶으면 며칠 후 내가 데려다줄게.”전연우는 비밀번호를 누른 뒤 손잡이를 아래로 당겼다. 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장소월이 예전에 쓰던 향수였는데 냄새가 청아하고 달콤했다. 당시 그녀는 조수석에도 이 향수를 놓아두었지만 그 후 전연우가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새로 산 가구들도 모두 놓여있었다. 핑크색 소파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집안일은 모두 도우미가 시간 맞춰 와서 할 거야. 넌... 매일 밥 해놓고 내가 오길 기다리면 돼.”방안 인테리어는 그녀의 취향대로 전체적으로 단란하고 따뜻했다. 반면 장소월은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다.“그림 그리고 싶으면 그려. 내가 널 위해 작업실을 하나 만들어 두었으니까.”그 작업실은 전연우의 서재 옆방이었는데 큰 창문이 들어서 있어 찬란한 햇볕이 따뜻하게 쏟아지고 있었다.그 외에도 방이 3개 더 있었는데 그들의 안방, 장소월 전용 옷방, 그리고 전연우의 운동방이었다.침실엔 자신도 모르는 상황에서 찍힌 많은 장소월의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그중 한 장은 검은색 셔츠를 입고 두 손을 모은 채 침대에서 잠든 모습이었다. 검은색 셔츠는 허벅지까지 드리워져 있었는데 그 아래로 길고 매끈한 다리가 곧게 뻗어있었다. 이 중 임의로 사진 한 장을 골라도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 될 것이다.그녀는 도원촌에 있을 때 전연우에 의해 강제로 찍힌 사진이라고 기억하고 있다.한 장 한 장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니, 장소월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이 사진들... 다 네가 사람을 보내 몰래 찍은 거야?”전연우의 뜨거운 숨결이 장소월의 목덜미에 뿌려졌다. 그가 등 뒤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어느덧 단단한 물건이 그녀의 엉덩이를 찌르고 있었는데 당장이라도 욕망을 분출할 듯한 기세였다.“별로야? 다음엔 사람을 바꿔 다시 찍으라고 해야겠어.”“이 침대에 누워봐. 내가 널 위해 선택한 거야.”3일 동안 그녀와 하지 않았으니 체취를 맡은 순간부터 전연우는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곧바로 손을 뻗어 그녀의 가디건을 벗기
손목의 피가 욕조를 빨갛게 물들였다. 그야말로 섬뜩한 광경이었다.“소월아, 스톡홀름 증후군에 대해 알아? 인질은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자신을 가둔 범죄자와 사랑에 빠진대...”16살의 전연우는 살기 위해 장해진의 밑에서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었다. 그는 한 무리의 남자가 열몇 살의 소녀를 폭력적으로 범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았다. 소녀는 돈을 갚지 못해 팔려온 아이였다.마음과 육체에 상처를 입고 정신적으로 붕괴한 뒤 여자아이는 폭력범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경우를 수도 없이 봐왔다.그 후 2주 동안 전연우는 줄곧 로즈 가든에 머물렀다. 출근할 때면 늘 장소월더러 옷을 입혀주고, 넥타이를 매주고, 아침을 만들게 했다.아내가 남편을 위해 일하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아무 감정 없이 냉담하고 기계적이었다. 그저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억지로 할 뿐이었다.그녀도 도망치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연우가 문 앞에 센서 장치를 설치해 두었기에 그녀가 나서기만 하면 그의 핸드폰에 경보음이 울린다.경호원도 곧바로 달려와 그녀를 돌려보낼 것이다.장소월이 활동할 수 있는 곳은 아파트 단지 내뿐이었고 경호원이 줄곧 먼 곳에서 그녀에게 눈을 떼지 않고 감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아래로 내려와 벤치에 앉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늘 아침부터 시작된 가슴을 꽉 메우는 답답함과 불안함이 하루종일 가시지 않았다. 장시간 집에 머무른 탓인 줄 알았으나 이곳에서 한 시간 남짓 앉아있었음에도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이런 느낌이 들 때면 반드시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장소월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돌연 그녀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혹시 그 사람이?장소월에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사실... 그녀는 강영수가 줄곧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3년 전.허 교수님과 함께 풍경화를 그리러 파리를 떠나기 일주일 전, 그녀는 생활용품을 사러 마트로 향하고 있었다.늘 지나던
한참 고민하던 소현아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천효연의 납작한 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 그럼 아가씨도 강지훈 씨의 아기를 가져요. 그럼 자꾸 나한테 와서 자지 않을 거잖아요!” 천효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녀는 은빛 치아가 부서질 정도로 이를 꽉 깨물었다. 주변 도우미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바보가 이토록 충격적인 말을 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주인님과 효연 아가씨의 잠자리 빈도를 생각하면, 주인님이 허락만 하셨다면 그들의 아이는 이미 몇 명은 됐을 것이다. 이 바보는 입만 열면 효연 아가씨의 급소를 찌르곤 한다! 규영과 미진도 소현아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천효연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지자 규영이 황급히 나서서 분위기를 무마했다. “효연 아가씨, 저희 현아 아가씨는 어린아이와 같은 분이라 이런 걸 잘 모르십니다. 부디 마음에 두지 마세요.” 소현아는 긴장감에 옷자락을 꽉 말아 쥐며 말했다. “제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나요?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제가 좀 멍청해서 그래요. 혹시 제 말 때문에 화가 난 거라면 말해주세요. 사과할게요.” 그녀는 자신이 조금 떨어지는 지능 때문에 자주 말실수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예전 이것 때문에 자주 괴롭힘을 당했었다. 한때는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상황을 알아차린 엄마가 말해주셨다. 마음속에 말을 담아두면 병이 생기기 마련이니 그냥 용감하게 말하면 된다고 말이다. 그릇된 말을 했을 땐 제대로 사과해서 용서를 빌면 된다고도 하셨다. “맛있는 거 줄게요. 그러니까 화내지 말아요, 네?” 한참을 기다려도 천효연이 대답하지 않자, 소현아는 탁자 위의 간식을 집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천효연의 불쾌한 향수 냄새가 또다시 코를 찔렀다.소현아는 즉시 코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또다시 천효연을 화나게 할까 봐 최선을 다해 참아냈다. 천효연은 자신 앞에 내밀
잔뜩 일그러지는 소현아의 얼굴을 본 천효연의 눈빛이 차갑게 굳었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 바보가 먼저 선수를 친다고? 천효연은 더 짙은 미소를 지으며 소현아 옆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그녀의 배를 만지려 했다. “현아 씨, 아기 태어나려면 몇 달 남았어요? 나도 아이 정말 좋아해요. 전에 현아 씨가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강지훈 씨가 그랬어요. 아기가 태어나면 나더러 맡아 키우라고요.” 농담하듯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소현아를 쳐다보는 그 눈동자엔 독사 같은 살기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소현아는 불시에 벌떡 일어섰다. 자신의 말에 자극을 받았다고 생각한 천효연은 득의양양하게 아래턱을 들어 올렸다. 소현아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커다란 눈동자를 사방으로 뒤룩뒤룩 굴리고 있었다. 무척이나 불안하고 다급한 표정이었다. “현아 아가씨!” 규영과 미진이 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애처롭게 서 있는 소현아를 본 그들은 급히 달려왔다. 소현아는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규영은 곧바로 그녀의 뜻을 알아차렸다. “화장실로 모셔다드릴게요.” 그녀는 손에 든 것을 내려놓고 소현아를 1층 화장실로 데려갔다. 화장실 안에서 구역질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천효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효연 아가씨, 죄송합니다. 요즘 현아 아가씨의 입덧이 좀 심해요. 임산부라 요즘 많이 예민하십니다. 가까이 가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만약 현아 아가씨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주인님 성격 아시죠?” 미진은 느긋하게 가져온 음식을 펼쳐놓으며 경고를 담아 공손하게 말했다. 천효연은 눈썹을 치켜들었다.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고작 도우미 주제에 감히 내 머리 꼭대기에 앉으려고 해?” 미진은 겁을 먹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봐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천효연의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잠시 뒤, 화장실에서 구역질 소리가 멈췄다.
배가 고픈 데다 아기들이 발길질까지 하니 더욱 아팠다. “아가들아, 제발 차지 마. 규영 언니랑 미진 언니가 곧 맛있는 거 가져다줄 거야.” 그녀가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규영과 미진은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뱃속 두 녀석들이 워낙 시끄럽게 움직이고 있으니 더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알았어요, 아가씨. 간단히 드실 걸 가져다드릴게요. 여기 앉아서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거듭 당부했다. 소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여기 이렇게 많은 언니들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절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게요.” 규영과 미진은 사람들에게 다시 신신당부한 뒤에야 먹을 것을 가지러 자리를 떴다. 지난번 일 이후로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게 되어 소현아의 음식은 반드시 그들이 직접 준비해야 했다.소현아는 혼자 소파에 앉아서 작게 아기들과 이야기했다. “아가들아, 소월 이모가 전연우 그 나쁜 놈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전화를 왜 안 받은 거지?” “나 소월이가 너무 걱정돼. 근데 너희가 너무 무거워서 몰래 도망갈 수도 없어.” 그녀에게 돌아오는 답은 점점 잦아드는 태동뿐이었다. 소현아는 아기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 누군가 문을 열었는지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얇은 연노랑 잠옷만 입고 있던 소현아는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곧이어 도우미들의 공손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효연 아가씨.” 천효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 보고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여기 뒀던 내 꽃병은 어디 갔어?” 계단 모퉁이에 있던 꽃병이 사라진 걸 발견한 천효연이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현아 아가씨가 다치실까 봐 잠시 장식품들을 다 치웠습니다.” 소현아?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천효연의 눈동자에 냉기가 스쳤다. “그 바보는 지훈 씨가 방에 가둬놨잖아?” 도우미
엄마와 통화를 마친 뒤, 소현아는 장소월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연우 그 나쁜 놈이 소월이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혹시 소월이는 강용 소식을 알지 않을까... 소현아는 강지훈이 강용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장소월의 당부를 기억하며 감히 묻지 못했다. 통화음이 두 번 울린 뒤 전화가 연결되었다. 상대가 말하기도 전에 소현아는 흥분해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소월아! 드디어 전화 받았네! 있잖아, 강지훈 그 나쁜 놈이 나 계속 방에 가둬놓고 문밖으로 못 나오게 했어. 나 진짜 답답해 미치겠어!” “널 여기 데려와 같이 놀려고 했는데, 강지훈의 말이 전연우 그 나쁜 놈이 너 안 보낸다고 하더라고. 둘 다 진짜 짜증 나! 내가 간신히 휴대폰 구해서 전화한 거야. 소월아, 그 나쁜 놈한테 말하고 이쪽으로 놀러 와줄 수 있어?” 한참을 떠들었을 때, 저쪽에서 낮고 위험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지훈이 내가 소월이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고? 언제 나한테 물어봤는데?” 소현아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에야 머뭇거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전... 전연우 씨? 왜 당신이 전화를 받아요?” 전연우가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쁜 놈이 전화를 받아서 많이 실망했나?” 소현아는 겁을 먹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렸다. “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잘못 들었어요! 소월이는요? 이거 소월이 폰이잖아요. 빨리 소월이한테 돌려줘요!” 전연우가 말했다. “소월이는 전화 안 받아. 다시 전화하지 마.” “소월이한테 나라고 말해줘요. 소월이가 제 전화 안 받을 리 없어요.”소현아는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소월이 찾지 마. 바빠서 너랑 소꿉놀이할 시간 없으니까.” “그리고 강지훈한테 전해. 내게 터무니없는 누명 씌우지 말라고.” 전연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현아가 다시 걸어봤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현아 아가씨, 이제 일어나서 운동할 시간이에요.” 규영과 미
소현아는 얼굴에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빨 자국을 달고서 원망 어린 눈빛으로 강지훈을 바라보았다. 강지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내가 소월이한테 전화해도 돼요?” “그쪽에서 받기만 한다면야.” 소현아는 이제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 강지훈은 단칼에 거절했다. “안 돼.” 신이 나 붕방거리던 소현아는 김빠진 공처럼 순식간에 축 처져버렸다. “하지만 방에만 계속 있는 건 너무 따분하단 말이에요.” “절대 도망 안 갈게요. 여기 아기들도 있잖아요. 그냥 아래층에서 좀 돌아다니게만 해줘요, 네?” 그녀가 지금 머무는 방은 집에 있던 침실을 완벽하게 똑같이 복원한 곳이었다. 소현아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며칠 동안 줄곧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녀는 방안을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은 갑자기 창고로 변해버렸고, 아무리 깨려고 해도 도저히 깨어날 수가 없었다. 강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밥을 한입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연우 그 나쁜 놈도 소월이가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건 허락하던데... 강지훈 씨는 날 침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네. 전연우보다도 더 나빠.” “...” “아래층에서만 놀아. 방을 나서면 규영과 미진이 따라갈 거야.”결국 강지훈이 한발 물러섰다. 소현아의 눈에 다시 별빛이 들어왔다. “음, 당신은 전연우 그 나쁜 놈보다 조금 나아요. 정말 아주 조금.” 아침을 먹고 난 뒤 소현아는 바로 휴대폰을 요구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거의 즉시 연결되었다. “현아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명세진의 목소리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 조심스러웠다.오랜만에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소현아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
강지훈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옆방에서 샤워를 마친 강지훈은 잠옷을 입고 소현아의 방으로 들어갔다.소현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2.2미터나 되는 퀸사이즈 침대에서 편안하게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말이다. 무슨 꿈을 꾸는지 웅얼거리며 입가에 흘린 침을 닦고 있었다.곤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강지훈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침대 곁으로 다가간 그는 이불을 끌어다 그녀의 배를 덮어주고는 코를 꼬집었다.“윽...”잠시 후 소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듯 눈을 떴다.“강지훈 씨 너무 싫어요.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빨리 놔줘요.”침대 곁에 있는 사람을 본 소현아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강지훈이 말했다. “말해 봐.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제대로 말하면 놔줄게.”소현아는 씩씩거리며 눈을 감고 어쩔 수 없이 입으로 숨을 쉬었다. 가슴이 뻐끔뻐끔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마치 복어 같았다.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까지 막아버렸다.몇 초 지나지 않아 소현아는 다시 웅얼거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강지훈은 그저 잠시 그녀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이지만, 한번 맛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그는 손을 떼어 그녀의 허리에 얹고 반바지를 벗기려 했다.소현아는 필사적으로 바지를 붙잡고 엉덩이를 비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강지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손 놔. 살살할게.”“저 졸려요. 자고 싶으니까 강지훈 씨도 빨리 자요.”그녀는 강지훈이 또 키스하려 할까 봐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낑낑거리며 그를 밀치고는 죽은 척 눈을 감았다.강지훈이 어떻게 하든 소현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정말로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곤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는 강지훈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다음 날 아침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 꼭 안겨있었다. 그녀의 코끝에 그의 단단한 가슴이 닿아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어젯밤 일이 떠오른 소현아는 그의 가슴을 힘껏 깨물었다.곧이어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