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는 거야? 내려놔.”“뺨 때린 대가야.”전연우는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뜨겁게 키스했다.장소월이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어냈다.“씻어. 오늘 씻지도 않았잖아. 몸에서 냄새나.”30초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전연우의 호흡은 이미 거칠어졌다. 그가 그녀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다 하고 씻을게.”“싫어!”전연우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입은 싫다고 하지만 몸은 반응하고 있잖아.”그가 장소월의 치마를 들어 올리고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복부에서 전해져오는 통증 때문에 장소월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새로 산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침대가 격렬한 흔들림에 삐걱거리며 소리 냈다.병원에서 집에 돌아온 건 꽤 이른 시간이었다.전연우는 그녀를 안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바디워시를 발라주던 중 그의 시선이 장소월의 복부에 멈췄다.가슴속에서 돌연 미묘한 감정이 일렁거렸다.전연우는 그녀를 물에서 꺼내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준 뒤 그녀를 안고 다시 잠이 들었다.두 시간 뒤, 장소월은 시큰거리는 몸을 뒤척이다 잠에서 깨어났다. 어젯밤 한숨도 못 잔 탓인지 전연우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장소월은 허리에 올려진 전연우의 손을 내려놓은 뒤 옷을 입고 방에서 나갔다.거실에선 기성은을 포함한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고, 주방에선 휴가를 마친 아주머니가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택배기사가 물건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장소월 씨, 주문한 물건 모두 배송했어요. 사인해 주세요.”기성은이 배송 목록을 장소월에게 건넸다.“대표님께서 장소월 씨의 이름으로 산 아기용품들입니다. 부족한 거 없나 살펴보세요.”장소월은 잠시 망설이다가 목록을 받아 살펴보았다. 정말 많은 양이었다.장소월은 단 몇 시간 안에 빠르게 꾸며놓은 아기방을 훑어보고는 말했다.“됐어요. 일단 이만하면 충분해요. 수고하셨어요.”도우미가 다가와 말했다.“아가씨, 식사하세요.”도우미가 갈비탕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장소월은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전연우는 장소월이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병원에 갔을 거라 예상했다. 경호원이 항상 따라다니고 있으니 절대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하여 그는 일을 처리하러 회사에 출근했다.대표 사무실에 들어가니 오랜만에 보는 송시아가 그의 자리에 앉아있었다.“이제 조금도 숨길 생각 없나 봐요? 책상 위에 장소월 사진을 버젓이 올려놓은 걸 보면.”송시아는 원래의 길었던 머리를 싹둑 자르고 짧은 단발인 모습이었다.여자에겐 자고로 두 가지의 어려운 결정이 있다. 첫 번째는 사랑하는 남자를 포기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랜 시간 동안 길러온 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다.전연우는 송시아가 나타날 것이라는 걸 예상이라도 한 듯 태연하게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3분 시간을 줄게. 네 결정을 말해봐.”송시아가 서랍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불을 붙였다. 그녀의 얼굴이 자욱한 연기 속에 파묻혔다.사라진 며칠 동안 송시아는 확연히 야위었다. 얼굴엔 두껍게 파운데이션을 발랐지만 그 초췌함은 전혀 가려지지 않았다.“내 손으로 당신을 그 자리까지 올렸어요. 전연우 씨, 이게 내 수고에 대한 대가예요?”“인시윤과 결혼하고, 그것도 모자라 장소월과 살림을 차리고...”송시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장소월은 정말 끔찍이도 생각하네요.”그녀를 위해서라면 전연우는 하지 못할 일이 없다.송시아는 장소월이 죽은 뒤 전연우의 모습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지금 생각해 보면 전생에서 그가 했던 행동들이 얼마나 멍청하고 우스운지 모른다.전연우가 차갑게 말했다.“1분 남았어.”송시아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다 피운 뒤 자리에서 일어서 그에게로 걸어갔다. 이어 주객 전도된 모습으로 뻔뻔하게 그의 넥타이를 움켜쥐었다. 남색은 그녀가 좋아하는 색깔이 아니다.“하나가 더 늘어도, 줄어도 상관없어요. 인시윤은 내가 신경 쓸만한 위인이 못되 거든요.”“난 당신과 비슷해요. 충분히 깊은 인내심을 갖고 있죠. 난 당신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모두 가질 거예요.”“당신은 장씨 집안에서 20년이나
“네. 선생님.”장소월은 시뻘게진 몸에 주삿바늘을 꽂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저려왔다.간호사가 침대에 내려놓기 바쁘게 아이가 잠에서 깨어 눈을 감고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너무 많이 힘을 준 탓에 머리에 꽂았던 링거 관을 따라 혈액이 역류했다.간호사가 장소월에게 말했다.“보호자분, 아이가 배고파서 우는 것 같아요. 모유 컵이 있으시다면 어서 모유를 받아 아이에게 먹이세요.”장소월은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죄송해요. 전 이 아이의 엄마가 아니에요. 하지만 우유는 있어요.”“아이가 몸이 약해 되도록 모유를 먹여야 해요. 도저히 방법이 없다면 우유라도 따뜻하게 데워오세요.”“네. 지금 바로 가져올게요.”장소월이 다급히 우유병에 우유를 담아왔다.“이렇게 하는 거 맞나요?”간호사가 우유병 온도를 체크하고는 말했다.“네. 이제 먹이시면 돼요.”장소월은 옆으로 내려온 잔머리를 정리하고 우유병을 아이의 입가에 가져갔다.아이는 곧바로 울음을 그쳤다.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처음 하시는 일 같은데 정말 잘하셨어요. 전에 어느 정도 배우셨나 봐요.”“보호자분, 앞으로... 분명 좋은 엄마가 되실 거예요.”순간 우유병을 쥔 장소월의 손이 경직되었다. 하지만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감사합니다...”간호사가 의료용품을 준비하러 병실을 나서자 장소월은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가엾은 이 아이를 보고 있으니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장소월은 그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순간 아이의 포도알 같은 큰 눈과 눈이 마주쳤다. 장소월은 아이가 또 울음을 터뜨릴까 봐 당황했지만, 아이는 우유를 마시며 그녀를 바라보다가 작은 입을 움직여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였다.그 바람에 입에 넣었던 우유를 모두 토해내 옷을 적셨다. 장소월은 곧바로 우유병을 잡고 휴지로 아이를 닦아주었다. 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가, 착하지. 밥 먹어야 쑥쑥 크는 거야.”“아.”아이가 장소월의 말을 알아
장소월은 자신이 어디로 가든, 아이의 눈동자가 그녀를 따라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장소월이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면 배시시 웃으며 그녀의 주의력을 집중시켰다.간호사가 들어와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는 지금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니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말했다.장소월은 새로 산 아이의 옷을 손세탁한 뒤 건조기에 말렸다. 아이가 다 나아 퇴원하고 나면 입을 수 있게 말이다.바쁘게 돌아치다 보니 어느덧 열한 시가 거의 되어가고 있었다.장소월은 희미한 조명만 켠 채 병실에 있는 간이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새벽 두 시.병실 문이 열리고 전연우가 들어와 벽을 더듬어 조명 스위치를 찾았다. 그 순간 곤히 잠들어 있는 여자를 본 그는 즉시 손을 멈추고 미약한 조명 불빛을 빌려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장소월은 가까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피부에 맞닿은 뜨거운 체온과 코를 찌르는 역한 술 냄새에 잠이 깨어 번쩍 눈을 떴다.“큰소리 내지 마. 애가 깨.”전연우는 욕망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몸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거친 손바닥이 치마를 헤치고 들어와 그녀의 하얀 다리에 안착했다. 그가 뭘 하려는지 짐작한 장소월은 손으로 그의 다음 행동을 제지했다.“하루 종일 애 보느라 수고했어.”장소월은 옆에 있는 주정뱅이를 밀어낸 뒤 자리에서 일어나 치마를 정리했다.“일찍 자.”“난 바깥 소파에서 잘게.”이곳은 VIP 병실이라 일반 가정집처럼 없는 것이 없다. 장소월은 목이 말라 거실에 나가 물을 한 컵 따랐다.그녀가 한 모금 마셨을 때, 어느새 여기까지 왔는지 돌연 전연우가 등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너무 놀라 하마터면 삼켰던 물을 토해낼 뻔했다.전연우는 장소월의 긴 머리를 모두 한쪽으로 넘긴 뒤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덜미에 키스했다.“너한텐 예전 같은 긴 머리가 어울려.”오늘의 그는 평소보다 기분이 좋은 듯했다.“나 물 좀 마시면 안 될까?”말이 끝나기 바쁘게 멈추는 전연우의 모습에 장소
장소월은 일에 부딪히면 늘 우유부단해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전연우와는 정반대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우리보다 이 아이를 키우는 것에 적합한 가정은 없어. 너만 원한다면 이 아이는 영원히 우리 두 사람의 아이가 될 거야.”장소월은 전연우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고작 그녀가 무심코 던진 그 한 마디 때문에?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아이는 그녀가 직접 낳았던 그 아이다.이렇듯 아무렇게나 주워온 아이가 아니라 말이다.장소월도 더는 그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네 마음대로 해! 치료 끝나면 호적에 올리고 이름도 지어줘.”전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다음 달로 정하자. 기성은에게 서류를 준비하라고 할게.”“응.”장소월은 대충 대답하고 대화를 마무리했다.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고요한 깊은 밤, 알코올 기운이 기분 좋게 달아올랐다.장소월은 점점 그윽해지는 그의 눈동자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도망치려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두 번째 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전연우가 힘껏 그녀를 끌어당겼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그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압박하고 있어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태였다.“도망치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뼈마디가 툭툭 튀어나온 손이 셔츠 단추를 하나씩 차례로 풀어헤치고 건장하고 단단한 가슴팍을 드러냈다.“너...”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그녀의 다리를 벌렸고, 그의 손은 점점 더 아래로 향했다...장소월은 이 세상 모든 공기가 사라진 듯한 숨 막힘에 괴로워하며 몸부림쳤다.음란한 기운이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그때, 돌연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처음엔 환청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환청은 아니었다.장소월은 전연우를 밀어내고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말했다.“아이한테 가봐야 해.”분위기를 깨는 달갑지 않은 아이 울음소리에 전연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끝나면 가.”“억지 부리지 마. 바늘까지 꽂고 있는 아이야.”“조금만 기다려. 일단 보고 올게.”
“내 말 듣고 있어?”전연우는 무심히 그녀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왜 필요 없다는 거야? 난 아이를 길러본 적 없어. 만에 하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전연우가 의자에 앉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난 네가 잘할 거라 믿어. 모르면 책 보고 배우면 되잖아.”장소월이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난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어.”전연우는 후한 상이라도 주는 듯 장소월의 긴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보통 사람들의 삶을 살고 싶다고 했잖아. 그냥 이 아이와 날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살면 안 돼? 내가 있는 한 아무도 너한테 뭐라고 하지 못할 거야. 넌 그냥 네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 돼. 이 아이는 앞으로 쭉 우리 옆에 있을 거야.”장소월이 그를 보는 눈빛은 마치 미쳐버린 정신병 환자를 보는 듯했다.“이게 네가 요즘 만든 새로운 게임이야?”“넌 스스로를 속일 수 있을진 몰라도 난 아니야. 너와 이런 게임을 즐길 생각은 더더욱 없고. 넌 이미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마. 우린 절대 안 돼.”“아이를 갖고 싶으면 그렇게 해. 널 위해 낳아줄 여자는 아주 많을 거야.”“네가 나한테 키우라고 한다면 난 키울 수밖에 없어. 난 거절할 방법이 없으니까.”장소월은 그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억지로 짜놓은 허상에 불과한데도 가족이라고 말하고 있다.그와 인시윤은 혼인신고도 했고, 오늘이 지나면 결혼식도 올릴 것이다. 대체 몇 개의 가족을 원한단 말인가.전연우의 낯빛이 순간 어두워졌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오싹함이 그의 몸을 타고 흘러나왔다.“싫어도 받아들여야 해.”차갑게 일갈한 그가 몸을 일으켰다.“나 씻어야겠어. 나오기 전까지 아이를 달래놔.”전연우는 거실 밖 욕실로 향했다.장소월은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너무 졸려 당장에라도 잠들 것 같았지만 큰 눈을 깜빡이며 애써 장소월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칠 때면 배시시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전생에서 전연우
이들은 모두 금융계 톱급 능력자이자 성공 인사들이다. 프로젝트 계획부터, 위험성 평가까지, 모든 일들을 철저하게 일사천리로 진행한다.전연우가 꼬았던 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다음 일정을 말해봐.”“앞으로 2주 동안의 일정은 해외 화상 회의를 제외하고 모두 뒤로 미뤘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서류 결재밖에 없습니다.”기성은은 말을 마친 뒤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전연우에게 건넸다. 전연우는 대충 훑어보고는 맨 마지막 장에 사인했다.내일이 바로 전연우의 결혼식이라는 건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2주라는 시간은 전연우가 자신에게 내어준 휴가나 다름없다.기성은은 서류를 받은 뒤 송시아를 힐끗 보고는 방에서 나갔다.송시아는 전연우에게 가까이 다가가 요염한 자세로 그의 정장 단추를 잠가주었다.“정말 질투 난단 말이에요. 내일이면 결혼을 한다니요...”“연우 씨, 모레 신혼여행에 저도 같이 갈까요?”송시아가 야릇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그의 가슴팍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내가 네 밑바닥을 저평가했나 보네.”송시아가 그에게 키스하려고 하자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멈춰 세우고는 힘껏 소파에 던져버렸다.얼음장같이 차갑게 돌아서는 그를 보고 있으니, 그녀의 얼굴에 지독한 질투의 감정이 선명히 피어올랐다.밑바닥이라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전생에서 두 사람 사이엔 사랑이 흘러넘쳤었다. 함께 손을 잡고 도모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전연우... 네 밑바닥은 대체 어딘데?방에 들어가니 이미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는 여자가 보였다. 전연우는 부드럽게 그녀를 안아 자신의 몸에 살포시 기대게 했다. 그는 시선을 내리뜨려 만족스러운 얼굴로 어젯밤 남긴 흔적을 감상하며 말했다.“깼으면서 왜 날 찾아오지 않았어?”장소월은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옆방에 있는 아이를 보려 자리에서 일어섰다.하지만 그런 그녀를 두고만 볼 전연우가 아니었다. 그는 장소월의 손목을 끌어당겨 다시 무릎 위에 앉혔다.“잠깐만 안
전연우가 병원을 떠난 뒤, 장소월은 아이가 잠들어 있는 틈을 타 그를 보러 위층으로 올라갔다.인시윤은 이미 문 앞 전연우가 고용한 경호원을 돌려보내고 자신의 사람들로 채웠다. 이제 장소월은 걱정 없이 수시로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그녀가 들어갔을 때, 담당의가 강영수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서 선생님, 환자분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심장 박동도 정상으로 돌아왔고요. 약물 양을 조금 줄일까요?”서철용은 펜 뚜껑을 닫은 뒤 의사 가운 가슴 앞 호주머니에 찔러넣었다.“아니. 며칠 더 관찰해보고 명확한 호전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른 치료를 해야 해.”“네. 서 선생님.”강영수의 주치의가 서철용이었다고?장소월의 인지 속 서철용은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다.그가 전연우와 한통속이라는 사실을 인씨 가문이 모르는 건가?서철용은 유리문밖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말했다.“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와요. 소월 씨!”장소월은 화들짝 놀랐다. 언제 그녀를 본 거지?장소월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서철용은 옆에 있던 몇 명의 간호사를 내보내고는 말했다.“문 닫아요.”“지금 뭘 하려는 거예요?”서철용이 장소월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내가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요?”그는 의자 하나를 드르륵 끌고 와 다리를 꼬고 앉았다.“긴장하지 말아요. 난 그저 소월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뿐이니까.”“난 소월 씨가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가요?”장소월은 그에 대한 경계심을 거두지 않고 가까이 다가갔다.“대체 제게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지금은 알려줄 수 없어요.”“...”어이가 없어 멍하니 서 있는 장소월의 모습에 서철용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지금 모습 정말 그 사람을 닮았네요. 장해진의 딸이라는 걸 하마터면 잊을 뻔했어요...”“지금 절 갖고 노는 거예요? 서철용, 당신도 전연우와 똑같이 미치광이에요.”서철용은 검지를 쳐들고 좌우로 흔들었다.“반드시 적당한 시기에 입 밖에 꺼내야 하는 말이 있어요. 지
배가 고픈 데다 아기들이 발길질까지 하니 더욱 아팠다. “아가들아, 제발 차지 마. 규영 언니랑 미진 언니가 곧 맛있는 거 가져다줄 거야.” 그녀가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규영과 미진은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뱃속 두 녀석들이 워낙 시끄럽게 움직이고 있으니 더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알았어요, 아가씨. 간단히 드실 걸 가져다드릴게요. 여기 앉아서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거듭 당부했다. 소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여기 이렇게 많은 언니들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절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게요.” 규영과 미진은 사람들에게 다시 신신당부한 뒤에야 먹을 것을 가지러 자리를 떴다. 지난번 일 이후로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게 되어 소현아의 음식은 반드시 그들이 직접 준비해야 했다.소현아는 혼자 소파에 앉아서 작게 아기들과 이야기했다. “아가들아, 소월 이모가 전연우 그 나쁜 놈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전화를 왜 안 받은 거지?” “나 소월이가 너무 걱정돼. 근데 너희가 너무 무거워서 몰래 도망갈 수도 없어.” 그녀에게 돌아오는 답은 점점 잦아드는 태동뿐이었다. 소현아는 아기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 누군가 문을 열었는지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얇은 연노랑 잠옷만 입고 있던 소현아는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곧이어 도우미들의 공손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효연 아가씨.” 천효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 보고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여기 뒀던 내 꽃병은 어디 갔어?” 계단 모퉁이에 있던 꽃병이 사라진 걸 발견한 천효연이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현아 아가씨가 다치실까 봐 잠시 장식품들을 다 치웠습니다.” 소현아?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천효연의 눈동자에 냉기가 스쳤다. “그 바보는 지훈 씨가 방에 가둬놨잖아?” 도우미
엄마와 통화를 마친 뒤, 소현아는 장소월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연우 그 나쁜 놈이 소월이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혹시 소월이는 강용 소식을 알지 않을까... 소현아는 강지훈이 강용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장소월의 당부를 기억하며 감히 묻지 못했다. 통화음이 두 번 울린 뒤 전화가 연결되었다. 상대가 말하기도 전에 소현아는 흥분해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소월아! 드디어 전화 받았네! 있잖아, 강지훈 그 나쁜 놈이 나 계속 방에 가둬놓고 문밖으로 못 나오게 했어. 나 진짜 답답해 미치겠어!” “널 여기 데려와 같이 놀려고 했는데, 강지훈의 말이 전연우 그 나쁜 놈이 너 안 보낸다고 하더라고. 둘 다 진짜 짜증 나! 내가 간신히 휴대폰 구해서 전화한 거야. 소월아, 그 나쁜 놈한테 말하고 이쪽으로 놀러 와줄 수 있어?” 한참을 떠들었을 때, 저쪽에서 낮고 위험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지훈이 내가 소월이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고? 언제 나한테 물어봤는데?” 소현아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에야 머뭇거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전... 전연우 씨? 왜 당신이 전화를 받아요?” 전연우가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쁜 놈이 전화를 받아서 많이 실망했나?” 소현아는 겁을 먹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렸다. “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잘못 들었어요! 소월이는요? 이거 소월이 폰이잖아요. 빨리 소월이한테 돌려줘요!” 전연우가 말했다. “소월이는 전화 안 받아. 다시 전화하지 마.” “소월이한테 나라고 말해줘요. 소월이가 제 전화 안 받을 리 없어요.”소현아는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소월이 찾지 마. 바빠서 너랑 소꿉놀이할 시간 없으니까.” “그리고 강지훈한테 전해. 내게 터무니없는 누명 씌우지 말라고.” 전연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현아가 다시 걸어봤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현아 아가씨, 이제 일어나서 운동할 시간이에요.” 규영과 미
소현아는 얼굴에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빨 자국을 달고서 원망 어린 눈빛으로 강지훈을 바라보았다. 강지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내가 소월이한테 전화해도 돼요?” “그쪽에서 받기만 한다면야.” 소현아는 이제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 강지훈은 단칼에 거절했다. “안 돼.” 신이 나 붕방거리던 소현아는 김빠진 공처럼 순식간에 축 처져버렸다. “하지만 방에만 계속 있는 건 너무 따분하단 말이에요.” “절대 도망 안 갈게요. 여기 아기들도 있잖아요. 그냥 아래층에서 좀 돌아다니게만 해줘요, 네?” 그녀가 지금 머무는 방은 집에 있던 침실을 완벽하게 똑같이 복원한 곳이었다. 소현아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며칠 동안 줄곧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녀는 방안을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은 갑자기 창고로 변해버렸고, 아무리 깨려고 해도 도저히 깨어날 수가 없었다. 강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밥을 한입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연우 그 나쁜 놈도 소월이가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건 허락하던데... 강지훈 씨는 날 침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네. 전연우보다도 더 나빠.” “...” “아래층에서만 놀아. 방을 나서면 규영과 미진이 따라갈 거야.”결국 강지훈이 한발 물러섰다. 소현아의 눈에 다시 별빛이 들어왔다. “음, 당신은 전연우 그 나쁜 놈보다 조금 나아요. 정말 아주 조금.” 아침을 먹고 난 뒤 소현아는 바로 휴대폰을 요구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거의 즉시 연결되었다. “현아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명세진의 목소리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 조심스러웠다.오랜만에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소현아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
강지훈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옆방에서 샤워를 마친 강지훈은 잠옷을 입고 소현아의 방으로 들어갔다.소현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2.2미터나 되는 퀸사이즈 침대에서 편안하게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말이다. 무슨 꿈을 꾸는지 웅얼거리며 입가에 흘린 침을 닦고 있었다.곤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강지훈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침대 곁으로 다가간 그는 이불을 끌어다 그녀의 배를 덮어주고는 코를 꼬집었다.“윽...”잠시 후 소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듯 눈을 떴다.“강지훈 씨 너무 싫어요.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빨리 놔줘요.”침대 곁에 있는 사람을 본 소현아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강지훈이 말했다. “말해 봐.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제대로 말하면 놔줄게.”소현아는 씩씩거리며 눈을 감고 어쩔 수 없이 입으로 숨을 쉬었다. 가슴이 뻐끔뻐끔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마치 복어 같았다.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까지 막아버렸다.몇 초 지나지 않아 소현아는 다시 웅얼거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강지훈은 그저 잠시 그녀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이지만, 한번 맛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그는 손을 떼어 그녀의 허리에 얹고 반바지를 벗기려 했다.소현아는 필사적으로 바지를 붙잡고 엉덩이를 비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강지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손 놔. 살살할게.”“저 졸려요. 자고 싶으니까 강지훈 씨도 빨리 자요.”그녀는 강지훈이 또 키스하려 할까 봐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낑낑거리며 그를 밀치고는 죽은 척 눈을 감았다.강지훈이 어떻게 하든 소현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정말로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곤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는 강지훈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다음 날 아침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 꼭 안겨있었다. 그녀의 코끝에 그의 단단한 가슴이 닿아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어젯밤 일이 떠오른 소현아는 그의 가슴을 힘껏 깨물었다.곧이어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