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철용이 떠난 뒤, 그가 했던 말들이 악마의 속삭임처럼 장소월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장소월은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를 응시하며 가까이 다가갔다.“영수야, 정말 다 내 잘못으로 이렇게 된 거야? 내가 떠나지 않았다면 너도 지금처럼 누워있지 않았을까?”장소월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자신으로 인해 고초를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병실에서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그녀가 젖은 면봉으로 그의 입술을 적셔주려고 할 때, 잡고 있던 강영수의 손에서 선명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녀는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녀는 긴장감과 환희가 섞인 얼굴로 조심스레 그를 살펴보며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영수야, 내 말 다 듣고 있었던 거 맞지?”“내가 아는 강영수는 분명 다시 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어.”“어서 눈 떠봐, 응?”그때, 장소월은 강영수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그녀가 환희에 찬 얼굴로 말했다.“눈 뜨고 날 봐. 날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 알아. 이제 내가 이렇게 돌아왔잖아.”심장 파동이 대폭 증가하고, 심장 박동도 빨라지기 시작했다.장소월은 호흡을 멈추고 그가 깨어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강영수가 희미한 정신으로 눈을 떴다. 흐릿한 시선 속에서 한 사람의 모습이 몇 층으로 겹쳐 보였고 한참 뒤에야 장소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잠깐의 하얀 공백이 일더니, 이어 수많은 기억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소... 소월?”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뜨거운 눈물이 그의 손등에 뚝뚝 떨어졌다.“잠깐만 기다려. 내가 의사 선생님을 모셔올게.”장소월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녀가 떨리는 다리로 겨우 의사에게 달려갔다.“선생님... 영수가 깨어났어요.”얼마 되지 않아 담당 의사들이 신속히 달려왔다.장소월은 초조한 마음으로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환자분은 꽤 안정된 상태입니다. 일단 담백한 죽을
“난 바깥에 있을 테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엄마를 부르면 돼.”강영수는 끝까지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인경아가 나간 뒤, 장소월은 입술을 꼭 깨물고 지긋이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강영수와 인시윤 사이는 짧은 시간 안에 완화될 것 같지 않았다.장소월은 이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강영수는 갑자기 몸이 불편했는지 창백해진 얼굴로 연신 기침했다. 장소월은 곧바로 달려가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의사 선생님께서 각별히 조심하라고 하셨어. 함부로 움직이지 마.”“내가 죽 사 왔어. 먹여줄게.”그녀가 숟가락을 강영수의 입가에 가져갔다. 그는 한입 삼키고는 일분일초도 아까운 듯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소월아... 나...”“영수야, 지나간 일은 이제 말하지 말자. 지금은 치료에 전념해야 해. 우리 다른 얘기 하자 응?”“알았어. 네 뜻대로 할게.”강영수는 이제 더는 원하는 게 없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사람이 눈앞에 있으니, 이것보다 더 기쁜 일이 뭐가 있겠는가.성세 그룹.기성은이 병원으로부터 소식을 듣고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대표님, 강영수가 깨어났다고 합니다.”“그래.”전연우는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소월이는?”전연우가 물었다.기성은이 고개를 저었다.“아마 병원에 계실 겁니다. 외출했다면 경호원이 장소월 씨의 행적을 보고했을 테니까요.”전연우가 들고 있는 담배꽁초를 버리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순진한 것!”“밖에서 좀 돌아다녔다고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어. 날개가 돋아났다고 주제도 모르고 날아가려고 하다니...”“내일 강영수 옆에 두었던 경호원 모두에게 인씨 집안사람들을 감시하라고 해. 내 허락이 없다면 아무도 병원을 한 발자국이라도 나가게 하면 안 돼!”“네. 대표님.”장소월은 전연우 퇴근 한 시간 전까지 강영수와 함께 있다가 핑계를 대고 아이 병실로 돌아왔다. 문
장소월은 전연우의 시선이 그녀의 몸에 꽂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자신을 꿰뚫어 볼 듯한 날카로운 그의 눈빛을 피했다. 이토록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심장을 안고 어떻게 차분히 전연우와 마주한단 말인가.“가고 싶다고 하면 보내줄 거야?”그녀의 말에 전연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지났는데도 그놈이 보고 싶어? 4년 전에 혼난 거로도 부족해?”“보고 싶든 아니든 내 일이야. 너와는 상관없어. 아이도 있는 이곳에서 너와 싸우고 싶지 않아. 넌 네 일에나 신경 써. 내일이 결혼식인데 나랑 같이 있는 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집에 들어가. 아이는 내가 잘 돌볼게.”장소월이 아이를 안아 침대에 눕혔다.별이는 분유병을 입에 문 채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그녀가 방 청소를 시작하려 바닥에 있는 남색 작은 양말을 집어 들었을 때, 커다란 손이 그녀를 들어 올려 벽에 밀쳐버렸다.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압박했다. 그는 한 손으로 장소월의 손목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그녀의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내가 여러 차례 널 인내해줬다고 해서 내 한계에 도전하려고 하지 마. 강영수는 지금 당장 잊어버리는 게 좋을 거야!”“소월아... 착하게 오빠 곁에 있어. 아무 데도 가지 마.”“만약 너한테 다른 속셈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땐 이 오빠가 정말 화낼 거야. 알겠지?”그의 앞에서 장소월은 늘 공격성 하나 없는 나약한 토끼와도 같아 손쉽게 그의 손에 넣고 주무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그가 이럴수록 장소월의 반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녀는 전연우를 두려워하면서도 하루빨리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고 있다. 그녀는 독립적인 한 사람이지, 그의 소유물이 아니다.더욱이 그는 이미 인시윤과 약혼한 사이다. 무슨 자격으로 그녀를 계속 곁에 둔단 말인가!장소월은 전연우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날 구금하고, 강영수로 협박하는 것
장소월은 전화를 끊은 뒤 병실 안에 있는 두 사람에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계속 병실을 정리했다.인시윤이 전연우에게 다가가 팔짱을 꼈다.“연우 씨, 우리 이제 가야 해요. 호텔 쪽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요.”장소월의 태연한 모습에 전연우는 어둡게 가라앉았던 시선을 거두었다.인시윤은 전연우와 함께 떠나기 전 고개를 돌려 장소월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몰래 하얀색 쪽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장소월은 두 사람이 떠난 뒤에야 조용히 쪽지를 주웠다.내용은 이러했다. 오빠 쪽은 엄마가 설득했어. 내일 아침 너희들을 공항으로 데려다줄 헬기가 병원 옥상에 도착할 거야.강영수가... 모두 다 안다고?인경아는 그를 어떻게 설득했을까?장소월은 그가 떠나지 않겠다고 할 거라 생각했었다. 사실 그녀가 강영수와 출국하기로 마음먹은 데엔 전연우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자신의 욕심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하지만 내일... 장소월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유 모를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고 있었다.오후 3시, 도우미가 아기 물건이 든 가방을 들고 급히 들어왔다.“아가씨, 시키신 일 모두 준비해 왔습니다. 걱정 마세요. 예전 유모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 잘 돌볼 수 있을 거예요.”장소월은 측은한 얼굴로 품 안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예전보다 확실히 건강한 혈색이 돌고 있었다. 약간 저체중인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한동안 잘 보살피면 건강을 회복할 것이다.장소월이 카드 하나를 꺼냈다. 그녀가 예전 받았던 상금을 모아둔 카드였는데 그녀가 얼마 쓰지 않았기에 아이를 키우는 데엔 충분할 것이다.“내일 제가 떠나면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세요. 멀면 멀수록 좋아요. 좋은 사람을 만나면 입양시켜도 돼요.”“네. 아가씨.”도우미 역시 돈을 받고 장소월의 뜻에 따르기로 결정했다.전연우는 내일 결혼식을 치를 것이니 도우미에게까지 신경 쓰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도망칠 절호의 기회다.몇 시간 뒤, 매체에서 성세 그룹 대표와 인하 그
다음날 새벽, 장소월은 극심한 고통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목에서 진동하는 농후한 피 냄새에 그녀는 코를 막고 달려나가 슬리퍼도 신지 않은 채 화장실에 들어가 피를 토해냈다.원피스, 바닥... 군데군데 피로 물들었다.물로 씻으려 수도꼭지에 손을 댄 순간, 돌연 눈앞이 컴컴해졌다. 장소월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세면대를 잡고 물로 핏자국을 씻어냈다. 그러고는 벽을 더듬거리며 침대 밑 가장 아래층 서랍을 열어 하얀색 약 두 알을 꺼냈다.장소월은 힘없이 벽에 기댔다. 통증이 가시자 그녀의 시선 속에 다시 빛이 깃들었다. 이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어쩌다 가끔씩 숨 막힐 듯한 고통이 찾아오곤 한다.이건 그녀의 병증이 더욱 심각해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간호사가 들어와 바닥에 뿌려진 피를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소... 소월 씨... 어떻게 된 거예요?”도우미 아주머니가 소리를 듣고 들어왔다. 그녀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틀어막고 어쩔 줄을 몰랐다.“세상에.”장소월은 혈색 없이 창백해진 얼굴로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질 거예요.”“아주머니, 지금 몇 시예요?”서보영은 얼른 다가가 장소월을 부축했다.“다섯 시예요. 곧 날이 밝을 거예요.”“네. 잠시 뒤 아이를 데리고 병원 뒷문으로 도망치세요.”서보영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소월의 초췌한 얼굴을 보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강영수는 밤새 잠들지 못하고 휠체어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금빛 햇살이 구름층을 뚫고 나와 하늘을 반쯤 물들였다.이곳에선 서울시 가장 높은 건축물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성세 그룹이다.강씨 집안은 처참히 무너졌다.사고 후 깨어나 보니 모든 것을 잃은 상태였다.강영수는 후회하고 있을까?그의 가슴은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있다.그에게 있어 피라미드 가장 꼭대기 위치보다 예전 실수로 잃었던 장소월이 훨씬 더 소중했다.경호원이 다가와 말했다.“도련님, 헬기가 도착했습니다. 출발하셔야 합니다.”“그
장소월이 경계하며 그를 쳐다보았다.“내가 왜 당신 말을 믿어야 하는데요?”서철용은 고개를 숙이고 주름진 의사 가운을 툭툭 두드렸다.“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다 했어요. 믿거나 잊어버리거나, 그건 소월 씨의 몫이에요.”“전 확실히 당신의 말을 믿을 수 없어요. 알다시피 나에겐 망설일 시간도 별로 남지 않았어요. 만약 장씨 집안에 대한 원한을 저에게 풀고 싶거나, 또는 저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면 잘못된 생각이에요! 예전 일은 더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아요. 장해진도 그렇고, 엄마의 사망 원인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안들 뭘 할 수 있겠어요? 살날이 반년도 남지 않은 사람이 뭘 할 거라 기대하는 거예요? 만약 엄마가 계셨다면, 엄마도 제가 지나간 일에 연연하는 걸 원하지 않으셨을 거예요. 전 30세도 넘기지 못하고 죽게 됐어요. 장해진의 딸로 태어난 벌로 생각하고 있어요.”장소월은 휠체어에 앉아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지금 제가 원하는 건 바로 제 눈앞에 있어요.”경호원이 재촉했다.“아가씨,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가야 합니다.”장소월의 시선이 다시 서철용에게로 향했다.“아버지가 남긴 엄마 사진첩 속에서... 엄마 옆에 서 있던 그 남자아이 말이에요. 당신이에요?”서철용의 새빨간 입꼬리가 차갑게 말려 올라갔다.“장해진은 그분의 사진을 갖고 있을 자격도 없어요. 또한 그분은 그때 소월 씨를 낳지 말았어야 했어요.”장소월은 누군가 심장을 난타하기라도 한 것처럼 욱신거렸다.“서철용 씨 당신은 몰라요. 자신의 아이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말이에요. 만약 저였어도 흔쾌히 제 목숨을 버리고 아이를 낳았을 거예요.”“아가씨, 이제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장소월은 더는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서철용은 헬기에 오르고 있는 장소월을 향해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장소월, 네가 정말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호텔 초원에선 한창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현장은 수많은 귀빈들로 꽉 차 있었고, 기자들은
오늘은 분명 조용히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헬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해 개인 전용기를 타려고 준비하던 그때.장소월은 이유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왠지 오늘 이렇게 쉽게 떠나지는 못할 것 같았다.진봉은 강영수가 앉아있는 휠체어를 밀고, 장소월은 그들 옆에서 걸어가고 있었다.비행기에 발을 들이려던 순간, 돌연 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승객 여러분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모든 항공편 출발 시간은 10분 연착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갑작스럽게 불편함을 드려 죄송합니다.”동시에 활주로 안 검은색 개인 비행기 모두가 움직여 그들을 에워쌌다.장소월은 당황스러움에 얼굴이 창백해졌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익숙한 그 롤스로이스가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어 고급스러운 검은색 정장을 입은 전연우가 차에서 내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고 있었다. 온몸에서 풍기는 살기는 마치 지옥에서 목숨을 거두러 온 악마의 몸에서 발산되는 것 같았다.오늘은 분명 그와 인시윤의 결혼식 날이다. 그가 어떻게 이곳에 나타난단 말인가!순간 장소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만면에 웃음을 띤 송시아가 몸에 달라붙는 레드 드레스를 입고 전연우의 옆에서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득의양양하고 오만하기 그지없는 모양새는 똑 닮아 있었다.전연우는 차가운 얼굴로 손을 뻗어 장소월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장소월, 이쪽으로 와!”전연우의 출현에 공포에 질린 그녀는 단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송시아는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팔짱을 끼고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강영수가 장소월의 손을 잡았다.“가지 마.”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햇살에 눈이 부셔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진봉이 말했다.“소월 씨, 도련님과 함께 먼저 가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 막아볼게요.”장소월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진봉을 바라보았다.“당해내지 못할 거예요.”그녀는 주먹을 꽉 말아쥐고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내가 너랑 가면 영수는 놓아줄 수 있어?”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고 마침 전연
그 한마디 말을 남긴 뒤 전연우는 강제로 장소월을 차 안에 밀어 넣었다.빈틈없이 철저하게 준비된 계획인 줄 알았으나, 전연우는 이미 완벽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장소월은 군말 없이 차에 들어가 애원했다.“전연우, 내가 이렇게 빌게. 영수는 건드리지 마.”“내가 떠나자고 했어. 영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전연우가 돌연 팔을 뻗어 그녀를 확 밀치고는 목을 졸랐다. 얼굴엔 포악함이 가득 이글거렸고 손등엔 퍼런 힘줄이 툭툭 튀어 올랐다. 하지만 장소월은 조금도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그 순간 장소월은 전생 백윤서가 죽던 그 순간,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전연우의 눈빛이 떠올랐다. “한 번만 더 강영수를 입에 올리면 당장 죽여버릴 거야.”너무나도 싸늘한 그의 모습에 장소월은 깜짝 놀라 바로 입을 다물었다. 온몸이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려왔다.기성은은 운전석에 앉아 차를 운전하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대표님, 도우미 아주머니와 아이는 이미 찾았고, 남원 별장에 데려다주었습니다.”장소월은 가슴이 턱 막혀오는 것 같았다. 그 아이까지 다시 데려오다니.“차 돌려. 남원 별장으로 가.”“네. 대표님.”장소월은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끌어안은 채 아무 말 없이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공항에서 남원 별장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였지만 차량은 빠르게 달려 40분도 채 되지 않아 남원 별장에 도착했다.장소월은 전연우의 손에 잡혀 별장으로 끌려들어 갔다. 그가 너무 힘주어 당긴 탓에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함께 잡혀 온 강영수가 별장에 들어오자 전연우는 단번에 휠체어를 차 엎어버리고는 그의 가슴을 짓밟았다.“깨어나자마자 이런 일을 벌여? 이봐, 강 도련님, 대체 언제부터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는 걸 좋아하게 된 거야?”“하... 하지 마.”장소월은 힘겨운 몸을 이끌고 기어가 전연우의 발목을 잡고 시뻘게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전연우, 영수는 아직 채 회복되지도 않았어. 이러면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말 거야.”“
배가 고픈 데다 아기들이 발길질까지 하니 더욱 아팠다. “아가들아, 제발 차지 마. 규영 언니랑 미진 언니가 곧 맛있는 거 가져다줄 거야.” 그녀가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규영과 미진은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뱃속 두 녀석들이 워낙 시끄럽게 움직이고 있으니 더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알았어요, 아가씨. 간단히 드실 걸 가져다드릴게요. 여기 앉아서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거듭 당부했다. 소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여기 이렇게 많은 언니들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절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게요.” 규영과 미진은 사람들에게 다시 신신당부한 뒤에야 먹을 것을 가지러 자리를 떴다. 지난번 일 이후로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게 되어 소현아의 음식은 반드시 그들이 직접 준비해야 했다.소현아는 혼자 소파에 앉아서 작게 아기들과 이야기했다. “아가들아, 소월 이모가 전연우 그 나쁜 놈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전화를 왜 안 받은 거지?” “나 소월이가 너무 걱정돼. 근데 너희가 너무 무거워서 몰래 도망갈 수도 없어.” 그녀에게 돌아오는 답은 점점 잦아드는 태동뿐이었다. 소현아는 아기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 누군가 문을 열었는지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얇은 연노랑 잠옷만 입고 있던 소현아는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곧이어 도우미들의 공손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효연 아가씨.” 천효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 보고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여기 뒀던 내 꽃병은 어디 갔어?” 계단 모퉁이에 있던 꽃병이 사라진 걸 발견한 천효연이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현아 아가씨가 다치실까 봐 잠시 장식품들을 다 치웠습니다.” 소현아?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천효연의 눈동자에 냉기가 스쳤다. “그 바보는 지훈 씨가 방에 가둬놨잖아?” 도우미
엄마와 통화를 마친 뒤, 소현아는 장소월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연우 그 나쁜 놈이 소월이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혹시 소월이는 강용 소식을 알지 않을까... 소현아는 강지훈이 강용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장소월의 당부를 기억하며 감히 묻지 못했다. 통화음이 두 번 울린 뒤 전화가 연결되었다. 상대가 말하기도 전에 소현아는 흥분해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소월아! 드디어 전화 받았네! 있잖아, 강지훈 그 나쁜 놈이 나 계속 방에 가둬놓고 문밖으로 못 나오게 했어. 나 진짜 답답해 미치겠어!” “널 여기 데려와 같이 놀려고 했는데, 강지훈의 말이 전연우 그 나쁜 놈이 너 안 보낸다고 하더라고. 둘 다 진짜 짜증 나! 내가 간신히 휴대폰 구해서 전화한 거야. 소월아, 그 나쁜 놈한테 말하고 이쪽으로 놀러 와줄 수 있어?” 한참을 떠들었을 때, 저쪽에서 낮고 위험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지훈이 내가 소월이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고? 언제 나한테 물어봤는데?” 소현아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에야 머뭇거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전... 전연우 씨? 왜 당신이 전화를 받아요?” 전연우가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쁜 놈이 전화를 받아서 많이 실망했나?” 소현아는 겁을 먹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렸다. “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잘못 들었어요! 소월이는요? 이거 소월이 폰이잖아요. 빨리 소월이한테 돌려줘요!” 전연우가 말했다. “소월이는 전화 안 받아. 다시 전화하지 마.” “소월이한테 나라고 말해줘요. 소월이가 제 전화 안 받을 리 없어요.”소현아는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소월이 찾지 마. 바빠서 너랑 소꿉놀이할 시간 없으니까.” “그리고 강지훈한테 전해. 내게 터무니없는 누명 씌우지 말라고.” 전연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현아가 다시 걸어봤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현아 아가씨, 이제 일어나서 운동할 시간이에요.” 규영과 미
소현아는 얼굴에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빨 자국을 달고서 원망 어린 눈빛으로 강지훈을 바라보았다. 강지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내가 소월이한테 전화해도 돼요?” “그쪽에서 받기만 한다면야.” 소현아는 이제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 강지훈은 단칼에 거절했다. “안 돼.” 신이 나 붕방거리던 소현아는 김빠진 공처럼 순식간에 축 처져버렸다. “하지만 방에만 계속 있는 건 너무 따분하단 말이에요.” “절대 도망 안 갈게요. 여기 아기들도 있잖아요. 그냥 아래층에서 좀 돌아다니게만 해줘요, 네?” 그녀가 지금 머무는 방은 집에 있던 침실을 완벽하게 똑같이 복원한 곳이었다. 소현아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며칠 동안 줄곧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녀는 방안을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은 갑자기 창고로 변해버렸고, 아무리 깨려고 해도 도저히 깨어날 수가 없었다. 강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밥을 한입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연우 그 나쁜 놈도 소월이가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건 허락하던데... 강지훈 씨는 날 침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네. 전연우보다도 더 나빠.” “...” “아래층에서만 놀아. 방을 나서면 규영과 미진이 따라갈 거야.”결국 강지훈이 한발 물러섰다. 소현아의 눈에 다시 별빛이 들어왔다. “음, 당신은 전연우 그 나쁜 놈보다 조금 나아요. 정말 아주 조금.” 아침을 먹고 난 뒤 소현아는 바로 휴대폰을 요구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거의 즉시 연결되었다. “현아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명세진의 목소리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 조심스러웠다.오랜만에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소현아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
강지훈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옆방에서 샤워를 마친 강지훈은 잠옷을 입고 소현아의 방으로 들어갔다.소현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2.2미터나 되는 퀸사이즈 침대에서 편안하게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말이다. 무슨 꿈을 꾸는지 웅얼거리며 입가에 흘린 침을 닦고 있었다.곤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강지훈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침대 곁으로 다가간 그는 이불을 끌어다 그녀의 배를 덮어주고는 코를 꼬집었다.“윽...”잠시 후 소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듯 눈을 떴다.“강지훈 씨 너무 싫어요.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빨리 놔줘요.”침대 곁에 있는 사람을 본 소현아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강지훈이 말했다. “말해 봐.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제대로 말하면 놔줄게.”소현아는 씩씩거리며 눈을 감고 어쩔 수 없이 입으로 숨을 쉬었다. 가슴이 뻐끔뻐끔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마치 복어 같았다.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까지 막아버렸다.몇 초 지나지 않아 소현아는 다시 웅얼거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강지훈은 그저 잠시 그녀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이지만, 한번 맛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그는 손을 떼어 그녀의 허리에 얹고 반바지를 벗기려 했다.소현아는 필사적으로 바지를 붙잡고 엉덩이를 비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강지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손 놔. 살살할게.”“저 졸려요. 자고 싶으니까 강지훈 씨도 빨리 자요.”그녀는 강지훈이 또 키스하려 할까 봐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낑낑거리며 그를 밀치고는 죽은 척 눈을 감았다.강지훈이 어떻게 하든 소현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정말로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곤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는 강지훈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다음 날 아침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 꼭 안겨있었다. 그녀의 코끝에 그의 단단한 가슴이 닿아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어젯밤 일이 떠오른 소현아는 그의 가슴을 힘껏 깨물었다.곧이어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