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이 말했다.“아버진 엄마를 보러 오셨어요?”심유가 따뜻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요즘 밤낮으로 내 옆에서 지켜줬어. 네 아버지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쉬어야 해. 그래서 내가 집에 보냈어.”“의사 선생님께서 저녁에 다시 검사하러 오셔. 별다른 문제 없으면 퇴원해도 된대.”“감히 엄마한테 잘해주지 않으면 가만 놔두지 않을 거예요.”“됐어. 얼른 가봐. 나도 아래에 내려가야겠어. 저녁엔 우리 용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줄 거야.”“간호사와 함께 가세요.”“알았어.”강용은 몇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하여 심유의 침대에 눕자마자 곧바로 잠들었다.심유는 간호사와 함께 아래층에 내려가 참았던 기침을 터뜨렸다. 손에 들고 있던 하얀색 손수건이 피로 얼룩졌다.“사모님...”심유는 평온한 얼굴로 덤덤히 말했다.“고질병일 뿐이에요.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할 수도 있으니 용이한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네. 사모님.”심유는 피가 묻은 손수건을 쓰레기통에 버렸다.장소월은 12시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영혼이 모두 빠져나간 듯한 모습이었다.어젯밤 일을 생각하니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역겨움이 밀려왔다.나쁜 자식!전연우는 새벽에 더럽혀진 침대 시트를 새것으로 갈았다. 장소월은 바닥에서 나뒹구는 시트를 주워 휴지통에 집어넣었다.하지만 만에 하나 다른 사람이 발견하고 이상한 생각을 할까 봐 다시 꺼내 더럽혀진 자국을 깨끗이 씻어낸 뒤 다시 던져넣었다.그때 은경애가 들어왔다.“아가씨, 입었던 옷을 저에게 주세요. 빨래하려고요.”“제가 할게요. 참, 아버지와 오빠는요?”이 아이는 왜 아직도 그 나쁜 놈에게 관심을 보이는 걸까?은경애는 자신의 속내를 숨기며 말했다.“어르신과 도련님은 장기를 두고 계십니다.”장소월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늦게 일어난 걸로 아버지가 화를 내진 않으셨어요?”“오늘 아침 식사를 할 때엔 별말씀 없으셨어요. 하지만...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장소월은 문을 잠그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엄격히 금지시키고 있었기에 몰래 그려야만 했다.30분 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다급히 도구를 숨기고 문을 열었다.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본 순간 그녀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무슨 일이야?”전연우가 말했다.“내려와서 밥 먹어.”“알았어. 옷 갈아입고 내려갈게”그녀가 문을 닫으려는 순간 무언가 문에 끼어 내려다보니 전연우의 발이었다.“왜 이래?”“소월아, 오빠가 잠시 들어가서 앉을까?”그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미쳤어? 곧 밥 먹는다며. 앉긴 뭘 앉아.”장소월이 그와 시선을 마주하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됐어. 마음대로 해.”그녀는 옷장에서 자주 입는 원피스를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집엔 따뜻하게 보일러를 틀었고 스타킹도 신었으니 춥지 않을 것이다. 옷을 갈아입은 뒤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고 귀 옆으로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내려놓았다.전연우는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그녀의 책을 한장 한장 펼쳐보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장소월은 어이가 없었다. 저 연기하는 것 좀 봐. 볼 게 뭐가 있다고.오늘 전연우는 연한 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성숙한 남자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또한 남성미 짙은 그의 뚜렷한 오관이 눈에 띄었는데 특히 인상 깊은 건 무수한 비밀을 담고 있는 듯한 그의 한 쌍의 눈동자였다.이런 사람은 자신의 속내와 욕망을 숨기는 데에 능하다.예전 장소월도 수많은 파티에 참석해 적지 않은 준수한 외모의 모델이나 연예인들을 만나보았다.그들과 비교했을 때, 전연우의 외모는 그리 빼어난 편이 아니다. 하지만 전연우에겐 그만의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전연우와 시선을 마주해본 사람이라면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경험을 해온 사람이라는 것을 단번에 느끼게 된다.그는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는 살기를 풍기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분위기 하나만으로 상대를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이런 사람은 그 누구를 상대하든
“먼저 가세요, 신발만 갈아신고 바로 나갈게요.”장소월은 신발장 앞으로 가서, 굽 낮은 흰색 캐시미어 신발을 신었다. 아주 따뜻했고, 슬리퍼로 신어도 가능했다.아래층에 도착하자, 장해진은 이미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찻상에 봉투가 여러 개 놓여있었다.규칙에 따르면 새해 첫날, 장소월은 순서대로 장해진에게 새해인사를 해야 했다.장해진은 전연우에게 그리 많은 규칙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장소월에게는 항상 엄격했다.하지만 백윤서는...그녀는 장해진이 집적 입양한 자식이 아니었으니, 장가에서 당연히 집안의 규칙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장소월은 장해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더 건강하세요.”“일어나거라!”장해진은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장소월이 두 손으로 봉투를 받으니, 적어도 200만 원의 두께였다.“감사합니다.”장소월은 진심에서 우러나는 미소를 지었다.전연우도 양복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세뱃돈.”“괜찮아. 아버지가 이미 주셨어. 오빠 돈 벌기 쉽지 않잖아.”“윤서한테도 이미 줬어.”장소월은 백윤서를 쳐다보았다.백윤서는 웃으며 말했다.“받아, 연우 오빠도 꽤 많이 줬어!”장소월은 그의 봉투를 받았지만, 전연우는 손을 놓지 않았다.“새해 인사는 없어?”장소월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빠가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고, 빨리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내년엔 아버지가 손자를 볼 수 있기를 바랄게.”말을 마친 그녀는 거리낌 없이 한 손으로 봉투를 빼고 홱 돌아서 자리를 떠났다.돈 봉투를 만져보니 세뱃돈이 아니라 카드 같은 딱딱한 물건인 것 같았다.식사를 마친 장소월은 방으로 돌아가 장해진이 준 봉투를 뜯어보니 자그마치 200만 원은 들어 있었다.전연우가 준 봉투를 뜯어보니 안에는 은행 카드 한 장이 있었다!무슨 뜻일까?장소월은 불쾌해서 한쪽에 버렸다.단돈 1원 한 장이라도, 전연우의 돈은 구역질이 났다.장소월은 충전된 휴대폰을 켜고 메시지를 확인했다.어젯밤 1
“일 봐. 다음에 통화하자.”강영수는 다시 장소월에게 집중했다.“내가 뭐하러 가는지 안 물어봐?”장소월은 어리둥절했다. 강영수가 무슨 일을 하든 자신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게다가 장소월은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캐묻는 습관도 없었다.장소월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얼른 일 봐. 비행기 늦겠어.”“응, 돌아오면 새해 선물 줄게.”휴대폰 속 남자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감정도 들어있지 않았다.장소월은 서둘러 말했다.“괜찮아. 이미 나한테 많은 걸 줬어. 더 이상 받을 수 없어.”“소월아, 우리 사이에 꼭 이렇게 예의를 차려야 해?”그의 목소리가 좀 가라앉았다.무엇을 하든 그녀는 항상 거절하기만 했다.어젯밤의 일로 그들 사이는 전보다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지금은 한 통의 전화 때문에, 원래 기분이 좋았던 강영수는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 같았다.장소월은 옷깃을 꽉 잡으며 말했다.“미안해. 그냥 네가 나한테 너무 많은 걸 준 것 같아서. 더 이상 받으면...”장소월의 미안하다는 말에 강영수는 기분이 좀 사그라들었다. 방금 그의 말투가 너무 사나웠다.매번 이런 식이었다. 그는 자신의 기분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강영수는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요즘 약을 잘 안 먹어서 말이 심했어. 미안해. 고의가 아니었어.”“아무리 바빠도 약은 제때 챙겨 먹어야지. 불필요한 술자리는 가지 마. 네 몸이 제일 우선이야.”사실, 강영수가 가장 듣고 싶었던 것은 그녀의 간단한 관심 인사뿐이었다.순간 정적이 흘렀다.장소월은 어색해진 분위기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강영수는 책상 위의 사진들을 보며 말했다.“곧 돌아가. 3일이면 돼.”“그래, 몸조심해.”“일이 있어서 이만 끊을게.”“응.”장소월은 전화를 끊은 후, 그제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고개를 돌려 이미 잠긴 문을 보았다. 이제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방으로 올라오기 전에 별일 없으면 방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장소월은 책을 챙겨 베란다로 향했고
백윤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며칠 전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분명 문제집을 챙겨왔어. 책상에 놓았는데 사라졌어. 학교에 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미안, 진짜 기억이 안 나.”백윤서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고, 전연우는 그녀의 긴 머리를 쓰다듬었다.“설 쇠고 나서 선생님께 하나 더 달라고 할까?”“전화해서 물어봤는데 고 선생님은 이미 싱가포르로 돌아갔어. 그리고... 꼭 완성해야 할 숙제가 있어. 아니면... 미안, 다 나 때문이야. 매번 오빠를 귀찮게 하네.”굳게 닫힌 문에 백윤서를 바라보는 전연우의 눈은 점점 깊어지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정 못 찾으면 내가 인씨네 집에 다녀올게.”백윤서는 즉시 전연우의 옷을 움켜쥐더니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나 오빠가 시윤이 만나는 거 싫어. 나 걔 싫단 말이야.”전연우는 백윤서의 손을 뿌리치고 손목을 들어 시간을 보더니 말했다.“저녁 식사 전에 돌아올게.”“오빠!”백윤서는 황급히 쫓아갔다.하지만 전연우는 멈추지 않고 큰 발걸음으로 나갔다.백윤서의 눈빛이 갑자기 싸늘해지더니,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밖의 상황을 알 리 없는 장소월은 책을 얼굴에 걸치고 깊은 잠에 빠졌다.바로 이때, 장소월은 돌멩이가 굴러떨어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또 쿵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멀쩡하던 화분이 갑자기 베란다에서 땅으로 떨어져 부서졌다.장소월은 얼른 일어나 상황을 살폈다. 베란다 가장자리에 이르니 갑자기 눈 부신 빛이 그녀의 눈을 비추었다. 장소월은 손으로 빛을 막고 눈을 가늘게 떴다.할 짓이 없어 돌로 남의 집 화분을 깨뜨리고, 또 반사경으로 그녀의 눈을 비춘 사람을 찾으려 했다.장소월은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집 뒷마당 담벼락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았다.강용 이 자식은, 검은색 바람막이를 입고, 선글라스를 귀에 건 채로 그녀를 쳐다보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손에는 여전히 거울을 들고 놀고 있었다.장소월은 황급히
“뭐해? 얼른 타!”장소월은 입을 오므렸다.“강용, 나 사실 외출하고 싶지 않아.”“집에서 바보처럼 있을래? 얼른 타! 나 얼어 죽겠어!”“어디 가는데?”“좋은데...”장소월은 결국 그의 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한 번도 이런 차를 탄 적이 없었다.강용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보더니 눈썹을 찡그렸다.그의 시선에 장소월은 이상해서 물었다.“왜?”강용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 고무줄을 잡아당겼고, 헬멧을 씌웠다. 떼어낸 고무줄을 자신의 손목에 맸다.“꽉 안아!”‘뭐라고?’장소월은 그의 말 때문인지, 날씨 때문인지 귀가 조금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장소월은 두 손으로 그의 옷 양옆을 살짝 잡았다.“꽉 잡았어. 출발해.”“말도 참 안 들어.”강용은 가죽장갑을 낀 손을 뒤로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고는 자신의 허리춤에 걸쳤다.“여기, 꽉 잡으라고.”다른 각도에서 보면, 장소월이 그와 친밀한 행동을 하고 있고, 딱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장소월은 그의 허리를 안고 있던 손을 옷자락으로 옮겼다.강용은 고개를 숙인 채 웃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액셀을 밟고 달려갔다.장소월은 바로 비명을 질렀다.“악!”그의 등에 부딪혀 놀란 나머지 장소월은 그의 허리를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다. “강용. 속도 줄여!”“뭐라고? 안 들려.”“천천히... 천천히!”“뭐? 더 빨리? 좋아!”‘아’하는 소리와 함께 장소월은 날아갈 뻔했다.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고, 코너를 돌 때 장소월은 놀라서 감히 눈을 뜨지 못했고 떨어질까 봐 강용을 죽도록 껴안았다.강용이 일부러 이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귓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와 자동차 정적소리만 들렸다.장소월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가벼운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언제까지 끌어안고 있을 거야? 계속 이러면 비용을 청구할지도 몰라.”장소월은 서둘러 자신의 손을 놓았다.“내려.”헬멧을 벗고 발을 땅에 디디는 순간, 두 다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강용은 오
두 사람은 거리에 들어섰다. 길가의 원숭이 재롱을 보고 장소월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누군가 그릇에 돈을 주면, 원숭이는 돈을 가득 채운 그릇을 사장에게 주었고, 그 돈은 모두 사장의 호주머니에 들어갔다.어떤 사람이 500원짜리 동전을 주면, 원숭이는 그 돈을 받아 사장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장소월은 순간 흥미를 느꼈다.“강용, 원숭이 설마 사람 말 알아듣는 거 아니야?”강용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장소월을 보더니, 강제로 그녀를 끌고 갔다.“강용, 뭐 하는 거야! 아직 다 못 봤단 말이야!”“그냥 사기꾼이야. 원숭이 재롱이 뭐가 재밌다고. 가자.”“조금만 더 볼래.”“재미없어.”“한 번도 본 적 없단 말이야.”강용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손을 놓았다.“진짜 보고 싶어?”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조금만!”“좋아, 5분만 시간 줄게. 아니면 오늘 여기 구경 다 못해. 오늘이 지나면 여기 노점상들 다 떠나.”“넌 역시 좋은 사람이야. 혹시 돈 좀 챙겼어?”‘원숭이에게 돈까지 주려고? 이 아가씨 참 보살이야.’강용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갑을 꺼냈다. 장갑을 입에 물고 벗은 뒤, 지갑을 열어 보지도 않고 5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뽑아 그녀에게 주었다.“가서 체험해 봐.”장소월은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체험하는 데 10만 원이나 준다고? 강용, 너희 집 돈은 하늘에서 떨어져?”5만 원 짜리 지폐가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지금, 시장에서 보기 어려운 지폐였다. 그런데 단번에 두 장이나 주다니.딱 봐도 힘든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도련님이었다. 너무 사치스러웠다.“잔돈 없어?”강용은 지갑을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면 아무거나 사서 거스름돈을 찾아올까?”“됐어. 귀찮게.”강용은 갑자기 지갑 밑에서 남은 동전 하나를 찾았다.“500원 있는데, 줄까?”“좋아.”장소월은 기뻐하며 동전을 받고, 몸을 돌려 원숭이 그릇에 넣었다.‘쯧쯧, 남에게 돈을 갖다 주는 어리석은 짓을 하다니, 장소월.
인시윤은 양손으로 턱을 받쳐 들고 말했다.“아저씨, 이게 지금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예요? 동생을 위해 문제집을 빌리러 왔잖아요? 저랑 함께 구경하지 않으면 안 빌려줄 거예요. 지금 당장 기사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하겠어요.”“좋을 대로 하세요.”전연우는 언짢은 말투로 말하고는 일어나 가려 했다.당황한 인시윤은 바로 전연우의 옆에 앉아 그의 팔짱을 끼고 가지 못하게 했다.협박이 안 통하자 인시윤은 바로 성질을 죽였다.“아저씨, 반나절만 나랑 놀아줘요. 오늘부터 설인데 나 혼자란 말이에요.”그녀는 전연우의 팔을 잡고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제발 부탁이에요! 연우 오빠!”인시윤은 보통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일반적으로 아저씨가 아니면 늙은 남자라고 호칭했다.자기보다 7~8살이나 연상이니 확실히 나이 차이가 컸다...장소월은 강용에게 끌려 한 층 전체에서 음식을 팔고 있는 푸드타운에 도착했다. 하지만 환경은 그리 좋지 않았다.테이블 위에는 버려진 플라스틱 포장 상자가 가득했고, 바닥에는 먹다가 뱉은 뼈가 있었고, 길가에는 들개 몇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공기 중에는 향기로운 음식 향신료 냄새 외에도, 온갖 냄새가 뒤섞여 불쾌한 냄새도 있었다.그러나 대부분의 불쾌한 냄새는 바베큐 냄새에 가려졌다.장소월은 뼈다귀를 밟고 고개를 숙인 후, 징그러워서 자신의 발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몰랐다.“강용, 여기 대체 뭐 하는 곳이야? 왜 여기 데리고 왔어?”“공주병!”강용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아가씨, 다른 사람과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강용은 그녀를 데리고 푸드타운을 지나 골목길을 들어갔다. 잠시 걸은 후, 점차 인파가 적어졌다. 이곳은 약간 깨끗했고, 붐비는 사람들이 적어 장소월은 다시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그들은 열려 있는 검은 나무 페인트 문 앞에 도착했다. 홀 앞은 깨끗했지만, 이 시간에 두 테이블의 손님만 식사하고 있었다.“도착했어!”“밥 먹으러 여기까지 온 거였어?”강용은 눈썹을 치
한참 고민하던 소현아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천효연의 납작한 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 그럼 아가씨도 강지훈 씨의 아기를 가져요. 그럼 자꾸 나한테 와서 자지 않을 거잖아요!” 천효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녀는 은빛 치아가 부서질 정도로 이를 꽉 깨물었다. 주변 도우미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바보가 이토록 충격적인 말을 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주인님과 효연 아가씨의 잠자리 빈도를 생각하면, 주인님이 허락만 하셨다면 그들의 아이는 이미 몇 명은 됐을 것이다. 이 바보는 입만 열면 효연 아가씨의 급소를 찌르곤 한다! 규영과 미진도 소현아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천효연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지자 규영이 황급히 나서서 분위기를 무마했다. “효연 아가씨, 저희 현아 아가씨는 어린아이와 같은 분이라 이런 걸 잘 모르십니다. 부디 마음에 두지 마세요.” 소현아는 긴장감에 옷자락을 꽉 말아 쥐며 말했다. “제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나요?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제가 좀 멍청해서 그래요. 혹시 제 말 때문에 화가 난 거라면 말해주세요. 사과할게요.” 그녀는 자신이 조금 떨어지는 지능 때문에 자주 말실수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예전 이것 때문에 자주 괴롭힘을 당했었다. 한때는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상황을 알아차린 엄마가 말해주셨다. 마음속에 말을 담아두면 병이 생기기 마련이니 그냥 용감하게 말하면 된다고 말이다. 그릇된 말을 했을 땐 제대로 사과해서 용서를 빌면 된다고도 하셨다. “맛있는 거 줄게요. 그러니까 화내지 말아요, 네?” 한참을 기다려도 천효연이 대답하지 않자, 소현아는 탁자 위의 간식을 집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천효연의 불쾌한 향수 냄새가 또다시 코를 찔렀다.소현아는 즉시 코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또다시 천효연을 화나게 할까 봐 최선을 다해 참아냈다. 천효연은 자신 앞에 내밀
잔뜩 일그러지는 소현아의 얼굴을 본 천효연의 눈빛이 차갑게 굳었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 바보가 먼저 선수를 친다고? 천효연은 더 짙은 미소를 지으며 소현아 옆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그녀의 배를 만지려 했다. “현아 씨, 아기 태어나려면 몇 달 남았어요? 나도 아이 정말 좋아해요. 전에 현아 씨가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강지훈 씨가 그랬어요. 아기가 태어나면 나더러 맡아 키우라고요.” 농담하듯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소현아를 쳐다보는 그 눈동자엔 독사 같은 살기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소현아는 불시에 벌떡 일어섰다. 자신의 말에 자극을 받았다고 생각한 천효연은 득의양양하게 아래턱을 들어 올렸다. 소현아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커다란 눈동자를 사방으로 뒤룩뒤룩 굴리고 있었다. 무척이나 불안하고 다급한 표정이었다. “현아 아가씨!” 규영과 미진이 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애처롭게 서 있는 소현아를 본 그들은 급히 달려왔다. 소현아는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규영은 곧바로 그녀의 뜻을 알아차렸다. “화장실로 모셔다드릴게요.” 그녀는 손에 든 것을 내려놓고 소현아를 1층 화장실로 데려갔다. 화장실 안에서 구역질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천효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효연 아가씨, 죄송합니다. 요즘 현아 아가씨의 입덧이 좀 심해요. 임산부라 요즘 많이 예민하십니다. 가까이 가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만약 현아 아가씨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주인님 성격 아시죠?” 미진은 느긋하게 가져온 음식을 펼쳐놓으며 경고를 담아 공손하게 말했다. 천효연은 눈썹을 치켜들었다.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고작 도우미 주제에 감히 내 머리 꼭대기에 앉으려고 해?” 미진은 겁을 먹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봐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천효연의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잠시 뒤, 화장실에서 구역질 소리가 멈췄다.
배가 고픈 데다 아기들이 발길질까지 하니 더욱 아팠다. “아가들아, 제발 차지 마. 규영 언니랑 미진 언니가 곧 맛있는 거 가져다줄 거야.” 그녀가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규영과 미진은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뱃속 두 녀석들이 워낙 시끄럽게 움직이고 있으니 더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알았어요, 아가씨. 간단히 드실 걸 가져다드릴게요. 여기 앉아서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거듭 당부했다. 소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여기 이렇게 많은 언니들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절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게요.” 규영과 미진은 사람들에게 다시 신신당부한 뒤에야 먹을 것을 가지러 자리를 떴다. 지난번 일 이후로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게 되어 소현아의 음식은 반드시 그들이 직접 준비해야 했다.소현아는 혼자 소파에 앉아서 작게 아기들과 이야기했다. “아가들아, 소월 이모가 전연우 그 나쁜 놈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전화를 왜 안 받은 거지?” “나 소월이가 너무 걱정돼. 근데 너희가 너무 무거워서 몰래 도망갈 수도 없어.” 그녀에게 돌아오는 답은 점점 잦아드는 태동뿐이었다. 소현아는 아기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 누군가 문을 열었는지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얇은 연노랑 잠옷만 입고 있던 소현아는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곧이어 도우미들의 공손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효연 아가씨.” 천효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 보고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여기 뒀던 내 꽃병은 어디 갔어?” 계단 모퉁이에 있던 꽃병이 사라진 걸 발견한 천효연이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현아 아가씨가 다치실까 봐 잠시 장식품들을 다 치웠습니다.” 소현아?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천효연의 눈동자에 냉기가 스쳤다. “그 바보는 지훈 씨가 방에 가둬놨잖아?” 도우미
엄마와 통화를 마친 뒤, 소현아는 장소월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연우 그 나쁜 놈이 소월이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혹시 소월이는 강용 소식을 알지 않을까... 소현아는 강지훈이 강용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장소월의 당부를 기억하며 감히 묻지 못했다. 통화음이 두 번 울린 뒤 전화가 연결되었다. 상대가 말하기도 전에 소현아는 흥분해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소월아! 드디어 전화 받았네! 있잖아, 강지훈 그 나쁜 놈이 나 계속 방에 가둬놓고 문밖으로 못 나오게 했어. 나 진짜 답답해 미치겠어!” “널 여기 데려와 같이 놀려고 했는데, 강지훈의 말이 전연우 그 나쁜 놈이 너 안 보낸다고 하더라고. 둘 다 진짜 짜증 나! 내가 간신히 휴대폰 구해서 전화한 거야. 소월아, 그 나쁜 놈한테 말하고 이쪽으로 놀러 와줄 수 있어?” 한참을 떠들었을 때, 저쪽에서 낮고 위험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지훈이 내가 소월이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고? 언제 나한테 물어봤는데?” 소현아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에야 머뭇거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전... 전연우 씨? 왜 당신이 전화를 받아요?” 전연우가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쁜 놈이 전화를 받아서 많이 실망했나?” 소현아는 겁을 먹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렸다. “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잘못 들었어요! 소월이는요? 이거 소월이 폰이잖아요. 빨리 소월이한테 돌려줘요!” 전연우가 말했다. “소월이는 전화 안 받아. 다시 전화하지 마.” “소월이한테 나라고 말해줘요. 소월이가 제 전화 안 받을 리 없어요.”소현아는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소월이 찾지 마. 바빠서 너랑 소꿉놀이할 시간 없으니까.” “그리고 강지훈한테 전해. 내게 터무니없는 누명 씌우지 말라고.” 전연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현아가 다시 걸어봤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현아 아가씨, 이제 일어나서 운동할 시간이에요.” 규영과 미
소현아는 얼굴에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빨 자국을 달고서 원망 어린 눈빛으로 강지훈을 바라보았다. 강지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내가 소월이한테 전화해도 돼요?” “그쪽에서 받기만 한다면야.” 소현아는 이제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 강지훈은 단칼에 거절했다. “안 돼.” 신이 나 붕방거리던 소현아는 김빠진 공처럼 순식간에 축 처져버렸다. “하지만 방에만 계속 있는 건 너무 따분하단 말이에요.” “절대 도망 안 갈게요. 여기 아기들도 있잖아요. 그냥 아래층에서 좀 돌아다니게만 해줘요, 네?” 그녀가 지금 머무는 방은 집에 있던 침실을 완벽하게 똑같이 복원한 곳이었다. 소현아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며칠 동안 줄곧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녀는 방안을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은 갑자기 창고로 변해버렸고, 아무리 깨려고 해도 도저히 깨어날 수가 없었다. 강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밥을 한입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연우 그 나쁜 놈도 소월이가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건 허락하던데... 강지훈 씨는 날 침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네. 전연우보다도 더 나빠.” “...” “아래층에서만 놀아. 방을 나서면 규영과 미진이 따라갈 거야.”결국 강지훈이 한발 물러섰다. 소현아의 눈에 다시 별빛이 들어왔다. “음, 당신은 전연우 그 나쁜 놈보다 조금 나아요. 정말 아주 조금.” 아침을 먹고 난 뒤 소현아는 바로 휴대폰을 요구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거의 즉시 연결되었다. “현아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명세진의 목소리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 조심스러웠다.오랜만에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소현아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
강지훈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옆방에서 샤워를 마친 강지훈은 잠옷을 입고 소현아의 방으로 들어갔다.소현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2.2미터나 되는 퀸사이즈 침대에서 편안하게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말이다. 무슨 꿈을 꾸는지 웅얼거리며 입가에 흘린 침을 닦고 있었다.곤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강지훈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침대 곁으로 다가간 그는 이불을 끌어다 그녀의 배를 덮어주고는 코를 꼬집었다.“윽...”잠시 후 소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듯 눈을 떴다.“강지훈 씨 너무 싫어요.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빨리 놔줘요.”침대 곁에 있는 사람을 본 소현아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강지훈이 말했다. “말해 봐.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제대로 말하면 놔줄게.”소현아는 씩씩거리며 눈을 감고 어쩔 수 없이 입으로 숨을 쉬었다. 가슴이 뻐끔뻐끔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마치 복어 같았다.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까지 막아버렸다.몇 초 지나지 않아 소현아는 다시 웅얼거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강지훈은 그저 잠시 그녀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이지만, 한번 맛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그는 손을 떼어 그녀의 허리에 얹고 반바지를 벗기려 했다.소현아는 필사적으로 바지를 붙잡고 엉덩이를 비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강지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손 놔. 살살할게.”“저 졸려요. 자고 싶으니까 강지훈 씨도 빨리 자요.”그녀는 강지훈이 또 키스하려 할까 봐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낑낑거리며 그를 밀치고는 죽은 척 눈을 감았다.강지훈이 어떻게 하든 소현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정말로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곤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는 강지훈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다음 날 아침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 꼭 안겨있었다. 그녀의 코끝에 그의 단단한 가슴이 닿아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어젯밤 일이 떠오른 소현아는 그의 가슴을 힘껏 깨물었다.곧이어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