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서화는 장부를 품에 안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폐하, 구휼소의 곡식은 오늘 안으로 다시 확인해야 하옵니다. 다른 분부가 없으시다면—”“강무현이 그리 좋으냐?”서화의 말이 끊겼다.건휘는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거칠게 나왔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입 밖으로 나온 질문을 거둘 수 없었다.서화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대군께서는 구휼소의 일을 도와주고 계시옵니다.”“짐도 너를 돕고 있다.”건휘가 한 걸음 다가왔다.“네가 필요하다는 약재도 보내고, 구휼소의 장부도 확인하게 하였다. 그런데 너는 짐에게는 한 번도 그런 얼굴로 웃지 않는구나.”서화는 품에 안은 장부를 조금 더 단단히 붙잡았다.황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그는 자신의 일을 도와주려는 것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누구에게 감사하고, 누구를 믿고, 누구와 웃는지까지 알고 싶어 했다.“폐하께서 베푸신 은혜에는 감사하고 있사옵니다.”서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러나 감사와 마음은 같은 것이 아니옵니다.”건휘의 얼굴이 굳어졌다.서화는 그가 다가오는 만큼 물러서지 않았다. 대신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거리를 지키며 말을 이었다.“폐하께서 소첩을 보호하시겠다 하실 때마다 구휼소의 길이 막히고, 사람들의 이름이 조사되었사옵니다. 이제는 대군께서 보내는 서찰까지 병부를 거치라 하시니, 소첩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알 수 없사옵니다.”건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지난 생에도 서화는 비슷한 말을 했을 것이다.그러나 그는 듣지 않았다.이번에는 들으려 했다. 적어도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겠다고 마음먹었다.그런데 서화의 다음 말은 그 결심마저 흔들었다.“소첩이 두려운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폐하께서 소첩의 뜻을 믿지 않으시는 일이옵니다.”건휘는 손을 뻗었다.서화의 손목을 붙잡으려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그녀는 손을 피하지 않았으나, 눈빛이 굳어 있었다.건휘는 그 눈빛을 보고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짐은 너를 잃고 싶지 않다.”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녀는 내관에게 자신이 도착했음을 다시 알리게 했다. 잠시 뒤 문이 열렸고, 건휘의 허락이 떨어졌다.서화가 안으로 들어서자 무현은 곧바로 몸을 돌려 예를 올렸다.“황후마마를 뵙습니다.”서화는 그를 바라보았다.먼 길을 달려온 탓인지 무현의 얼굴에는 피로가 어려 있었고, 군복 소매에는 마른 흙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들고 온 문서의 봉인은 온전했다.“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대군.”서화가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그녀의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묻어 있었지만, 궁중의 예를 벗어나지는 않았다.건휘는 그 짧은 인사를 놓치지 않았다.서화는 자신에게도 예를 갖췄다. 그러나 자신을 볼 때는 늘 조심스러웠고, 무현을 바라볼 때는 상대가 어떤 말을 할지 두려워하지 않았다.그 차이가 건휘의 가슴을 파고들었다.“황후.”그가 이름 대신 지위를 불렀다.“짐이 먼저 조사하겠다 하였거늘 어찌 직접 왔느냐?”서화는 건휘에게 예를 올린 뒤 장부를 펼쳤다.“구휼소에서 발견된 상한 곡식의 수량을 확인해야 하옵니다. 폐하께서 군량 조사를 명하셨으니 소첩도 맡은 책임을 다하고자 왔사옵니다.”건휘는 서화가 들고 온 장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자신과 무현 사이의 불편한 기류를 눈치챈 듯했으나, 그 일에 관해 묻지 않았다.대신 상한 곡식 네 수레의 수량과 북방에서 출발한 기록을 나란히 놓았다.무현은 가져온 봉인 표본을 꺼냈다.“이것이 북방 창고에서 사용한 밀랍이옵니다. 도성에 도착한 자루에서는 다른 인장이 발견되었사옵니다.”서화는 표본을 받아 자세히 살폈다.“중간 창고의 책임자가 자리를 비운 시점과 봉인이 바뀐 날짜가 겹칩니다.”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그자를 찾으면 곡식을 빼돌린 사람도 알 수 있을 것이옵니다.”두 사람은 장부 위에 손가락을 짚으며 운송 경로를 확인했다.건휘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서화는 무현에게 필요한 질문을 했고, 무현은 그에 맞는 증거를 내놓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긴 설명도, 불필요한 예의도 없었다.함께 일해 본 사람들만이
무현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황후마마께서 구휼소의 장부를 직접 확인하시어 처음 이상을 발견하셨사옵니다. 마마께서 상한 곡식을 분리하지 않으셨다면 백성들에게 그대로 배급되었을 것이옵니다.”건휘는 서안 위에 문서를 내려놓았다.“짐은 군량 조사를 물었다.”“소신도 그 조사에 관해 아뢰었사옵니다.”무현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차분히 말을 이었다.“황후마마께서 발견하신 사실과 북방에서 확보한 기록을 대조해야 곡식이 바뀐 장소를 특정할 수 있사옵니다.”건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무현은 황후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았고,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점이 건휘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이 사내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왔는지 알고 있었다.그리고 서화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강무현.”건휘가 낮게 불렀다.“네가 황후에게 보낸 서찰을 짐도 보았다.”무현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건휘는 그의 얼굴을 살폈다. 당황하거나 변명하는 기색이 나타나기를 바랐지만, 무현은 잠시 침묵하다가 차분히 대답했다.“구휼에 필요한 약재와 군량에 관한 서신이옵니다.”“그뿐이냐?”건휘는 서안에 놓인 손을 천천히 움켜쥐었다.“황후의 건강을 염려하는 말도 적었다지.”무현은 황제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먼 길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건강을 살피라 전하는 것이 불경한 일인 줄은 몰랐사옵니다.”건휘의 턱이 굳어졌다.그는 무현이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황제 앞에서 감히 자신의 황후에게 관심을 보인 일을 후회하게 만들고 싶었다.그러나 무현은 잘못한 것이 없었다.그 사실이 오히려 건휘를 더욱 거칠게 만들었다.“앞으로 황후에게 보내는 구휼 관련 문서는 병부를 거쳐라. 사사로운 서찰을 직접 전달하는 일은 삼가도록 하라.”무현은 잠시 침묵했다.“폐하, 병부를 거치면 긴급한 구휼 요청이 지체될 수 있사옵니다. 지난번에도 검인이 늦어 백성들이 곡식을 받지 못할 뻔하였사옵니다.”“그 일은 짐이 알고 있다.”“그러하시
강무현이 도성에 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승정전의 문은 평소보다 일찍 열렸다.이건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어좌에 앉아 있었다. 서안에는 북방군의 군량 운송 기록과 병부의 검인 문서가 펼쳐져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그중 어느 곳에도 오래 머물지 못했다.강무현.그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손목 안쪽의 검은 문양이 뜨겁게 달아올랐다.전날 구휼소에서 서화가 그 사내의 서찰을 읽고 웃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자신이 곁에 머물겠다고 했을 때는 조심스럽게 거절하던 여인이었다. 그러나 강무현이 보낸 짧은 안부에는 경계도 없이 입가를 풀었다.건휘는 손목을 덮은 소매를 끌어내렸다.지난 생의 서화는 자신의 황후였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과 겨울밤마다 차가워지는 손끝, 피곤할 때 장부의 모서리를 가지런히 맞추는 버릇까지 기억하고 있었다.그런데 이번 생의 서화는 자신이 그 기억을 꺼낼 때마다 낯선 사람을 대하듯 물러섰다.건휘는 그것이 견딜 수 없었다.“폐하, 강 대군께서 입경하셨사옵니다.”조덕수의 보고에 건휘가 고개를 들었다.“어디 있느냐?”“병부의 안내를 받아 외전으로 향하고 있사옵니다. 상한 곡식 네 수레에 관한 운송 기록과 중간 창고의 봉인 증거를 가져왔다 하옵니다.”건휘는 서안 위에 놓인 문서를 천천히 접었다.“황후에게는 기별하지 않았겠지?”조덕수는 잠시 머뭇거렸다.“어제 폐하의 명을 전하였사오나, 황후마마께서는 조사에 직접 참여하시겠다는 답장을 보내셨사옵니다.”건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 답장은 이미 읽었다.서화는 자신이 맡은 일이라며 물러서지 않겠다고 했다. 황제가 먼저 증거를 확인하더라도 구휼소의 책임자로서 조사에 참여하겠다는 뜻이었다.건휘는 그녀가 일을 대하는 태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지난 생에도 서화는 장부 하나를 확인하기 위해 밤을 새웠다. 억울하게 곡식을 빼앗긴 백성의 이름을 직접 적었고, 창고의 수량이 맞지 않으면 관리가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어도 다시 확인하게 했다.그때 자신은 그
그가 어떤 명분을 붙이든, 저주는 그 안에 숨겨진 욕망까지 알아보는 듯했다.그때 조덕수가 다시 어전으로 들어왔다.평소보다 발걸음이 빨랐다.“폐하, 북방에서 급한 전갈이 도착하였사옵니다.”건휘는 서안 위의 문서를 내려놓았다.“무슨 일이냐?”“강무현 대군께서 내일 정오 무렵 도성으로 들어오신다 하옵니다.”건휘의 손가락이 굳었다.“짐이 북방군의 도성 출입을 제한하라 명하지 않았느냐?”조덕수는 품에서 봉인된 문서를 꺼냈다.“대군께서는 상한 군량에 관한 증거를 확보하여 병부에 공식 조사를 청하셨사옵니다. 북방에서 출발한 곡식이 도성 인근의 중간 창고에서 바뀌었다는 정황이 확인되었다 하옵니다.”건휘는 문서를 받아 들었다.강무현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병부에서 허락한 것이냐?”“군량 손실과 관련된 조사이므로 병부에서 정식 입경 절차를 진행하고 있사옵니다. 대군께서는 북방군을 통솔하는 황실 방계 왕족이시니, 뚜렷한 죄목 없이 입경을 막으면 군부에서 문제를 제기할 것이옵니다.”건휘는 문서를 펼쳤다.상한 곡식 네 수레의 운송 기록과 중간 창고의 출입 기록이 첨부되어 있었다. 출발 당시의 봉인과 도성에 도착한 자루의 봉인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도 적혀 있었다.강무현은 단순히 서화를 만나러 오는 것이 아니었다.그녀가 발견한 문제를 해결할 증거를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그 사실이 건휘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강무현은 서화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그리고 그것을 가져오고 있었다.건휘는 문서를 내려놓았다.“입경을 허락하라.”조덕수가 놀라 황제를 바라보았다.“폐하?”“정식으로 병부의 조사를 청한 왕족을 막을 이유는 없겠지. 대신 도성에 들어오는 즉시 궁으로 들라 하라.”건휘는 잠시 말을 멈췄다.“황후를 만나기 전에 짐을 먼저 만나게 하라.”조덕수는 고개를 숙였다.“그리하겠사옵니다.”건휘는 서안 위에 놓인 강무현의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강무현.자신이 죽인 황후의 저주 속에서 처음 보았던 사내.서화가 자신에게는 보여
궁녀가 물러난 뒤 서화는 다시 장부를 펼쳤다.그때 또 다른 궁녀가 들어왔다.“마마, 강 대군께서 보내신 사람이 기다리고 있사옵니다.”서화는 고개를 들었다.“들어오라 하세요.”잠시 뒤 북방군의 복장을 한 젊은 관리가 들어와 예를 올렸다.그는 구휼소에서 발견된 상한 곡식에 관해 이미 소식을 들었다며 강무현이 보낸 새로운 서찰을 건넸다.서화는 봉인을 뜯었다.서찰에는 상한 곡식이 북방의 창고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도성 근처의 중간 창고에서 다른 자루와 뒤바뀌었을 가능성이 적혀 있었다.그리고 마지막에는 짧은 문장이 덧붙어 있었다.'마마께서 직접 곡식을 살피셨기에 백성들이 화를 면하였습니다. 부디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지려 하지 마십시오.'서화는 그 문장을 한동안 바라보았다.황제는 자신에게 몸을 상하지 말라고 했다.강무현도 비슷한 말을 했다.그러나 두 사람의 말은 어딘가 달랐다.황제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고 말했고, 자신을 지켜 주겠다며 곁에 사람을 두려 했다.반면 강무현은 그녀가 직접 해낸 일을 인정하고 있었다.서화는 서찰을 접었다.“강 대군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 주세요. 그리고 중간 창고의 기록을 함께 확인하고 싶다고 전해 주시고요.”관리가 물러난 뒤 그녀는 구휼 장부 옆에 서찰을 놓았다.그때 문밖에서 낯선 발소리가 들렸다.황제가 보낸 내관 둘이 중궁전의 출입 명부를 확인하고 있었다.서화는 열린 문틈 사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내관은 궁녀들에게 최근 중궁전에 드나든 사람의 이름과 방문 시간을 적어 내라고 요구했다. 구휼소에서 들어온 서찰과 물품도 빠짐없이 기록하라고 했다.서화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무슨 일이냐?”내관들이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황명으로 중궁전의 출입을 살피고 있사옵니다.”서화는 그들이 들고 있는 명부를 바라보았다.강무현의 이름도 있었다.“폐하께서 직접 내리신 명이냐?”내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숙였다.“폐하께서 황후마마의 안전을 염려하시어…….”서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