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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or: 설이안
온 소실의 손목은 낯선 어멈에게 단단히 붙들린 채 허공에 멈춰 있었다.

곧이어 어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작 후작부의 이름 없는 소실 주제에 감히 국공부 사람을 함부로 치려 드십니까? 대체 규율은 어디에다 처박아두고 배운 겁니까?”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유 어멈이 급히 앞으로 나섰다.

“국공부의 규율도 별반 대단한 것 같진 않군요. 고작 노비 하나가…”

그 순간, 그림자 속에 서 있던 서안하가 눈 밑에 깔린 음습한 기색을 감춘 채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선 어멈은 제가 어렵게 호국공부에서 모셔온 분입니다. 유 어멈이 불만이 있는 건가요, 아니면 온 소실께서 불만이 있는 건가요? 그럼 우리 함께 할머니 앞에 가서 말씀드려볼까요?”

그제야 온 소실도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았다.

고작 노비 하나와 계속 실랑이를 벌이는 건 체면만 깎아먹는 일이었다. 더구나 상대는 호국공부 사람이다. 일이 커질수록 손해를 보는 쪽은 결국 자신이었다.

온 소실은 억지로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억울한 기색을 내비쳤다.

“다 오해다. 됐으니 이쯤에서 끝내자꾸나. 괜히 고모의 휴식까지 방해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

서안하는 담담히 입꼬리를 올렸다.

“온 소실께서는 앞으로 국공부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는 게 좋겠군요. 다 어머니 체면을 내세워 어렵사리 모셔온 분들입니다. 지금 후작부에 사람이 부족하다는 건, 누구보다 온 소실께서 잘 아시지 않습니까.”

며칠 전 당 마님은 후작부에서 장례를 도울 사람을 더 보내달라고 요구했었다. 하지만 온 소실은 호국공부 쪽에서 직접 사람을 보내 서운민의 장례를 더욱 성대하게 치르길 원했다. 그래서 일부러 후작부의 인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며 당 마님더러 알아서 방법을 찾으라 떠넘겼던 것이다.

온 소실은 가슴이 턱 막힌 듯 답답했지만 마땅히 반박할 말도 없어 결국 억지로 화제를 돌렸다.

“아까 홍달 대사께서 다녀갔다고 들었는데?”

서안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단 한마디 정보도 흘릴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 온 소실이 다시 물었다.

“헌데 어찌하여 반 주향도 안 되어 떠났다는 것이냐?”

서안하는 긴 겉옷 자락을 여미며 차갑게 답했다.

“온 소실께서는 돌아가시지요. 묻지 말아야 할 건 묻지 마시고, 관여하지 말아야 할 일에는 손대지 마세요. 어떤 일은 소실의 신분으로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너…!”

온 소실은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서안하! 이 집안에서 누가 주인 노릇을 하는지 잊은 게냐…”

짝!

선 어멈이 더는 참지 못하고 온 소실의 뺨을 후려쳤다.

“규율도 없는 것 같으니! 감히 소실 주제에 아가씨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려?”

서안하는 차가운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러게요. 소실이면 소실답게 굴어야지요. 설마 후작부를 소실 하나가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겠죠?”

온 소실은 뺨을 감싼 채 부들부들 떨었다. 분에 못 이겨 입술만 달싹일 뿐 끝내 반박 한마디 하지 못했다.

결국 이를 악물고 돌아섰다.

“유 어멈, 가자!”

그녀가 수년째 안살림을 맡아온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나서는 건 늘 노부인의 몫이었다. 만약 후작부를 소실 하나가 주무르고 있다는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후작부의 체면은 땅에 떨어질 터였다.

노부인은 늘 그녀에게 몸을 낮추고 행동하라 경고해왔다. 남에게 빌미를 잡혀서는 안 된다며, 시종들 역시 입조심하라는 단속을 수없이 들었다.

온 소실 역시 순간 화가 치밀어 그저 집안 살림을 맡고 있다는 점으로 서안하를 눌러보려 했을 뿐이었다. 호국공부의 사람들은 누구 하나 그녀를 제대로 된 주인으로 대우해주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 계집애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느닷없이 자신에게 맞서 들 줄이야.

예전엔 분명 이러지 않았다.

장례를 맡게 되더니 우쭐해진 게 틀림없었다. 결국 눈앞의 권력에 쉽게 들뜨는 얄팍한 계집애였던 것이다.

온 소실은 일부러 걸음을 늦췄다.

그때 뒤쪽에서 서안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지금 오라버니의 천도를 위해 양현 선생을 직접 모셔오려 한다. 이곳은 선 어멈과 요 집사가 조금만 더 신경 써주거라.”

그러자 선 어멈이 공손히 답했다.

“아가씨께서 과분한 말씀을 하십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맡은 바를 다하겠습니다. 오기 전부터 우리 마님께서도 모든 일은 전부 아가씨 뜻에 따르라 분부하셨습니다.”

한참 멀어진 뒤에야 온 소실이 낮게 중얼거렸다.

“양현 선생이라니? 경성에서 이름난 풍수사를 말하는 게냐? 지난번 고모께서도 그를 불러 집을 보게 하려 하시지 않았더냐? 헌데 며칠이나 청첩을 넣었는데도 시간이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이런 늦은 시각에 가서 사람을 모셔올 수나 있겠느냐? 괜히 혼백 달래는 좋은 시각만 놓치는 거 아니냐.”

유 어멈도 맞장구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때를 놓쳐선 안 되는데… 헌데 안하가 호국공부 이름을 내세워 청한다면 혹시 또 모르지요.”

온 소실은 마음이 어지러워진 채 눈물을 떨구며 중얼거렸다.

“부디 잘되기만 해야 할 텐데… 내 불쌍한 아들…”

그러다 끝내 눈에 핏발까지 세운 채 이를 악물었다.

“위씨 집안 그 계집은 반드시 내 아들과 함께 묻어버릴 것이다!”

그날 밤, 눈보라는 거세게 몰아쳤고 후작부의 불빛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

그러던 끝에 온 소실은 마침내 바라던 소식을 들었다. 양현 선생이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그녀는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자시 전에 안혼 의식을 치른다면 길한 시각은 맞출 수 있을 터.

하지만 피곤에 못 이겨 잠시 눈을 붙였다 뜬 사이, 어느새 동이 틀 무렵이 되어 있었다.

*

서안하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묘시가 되자 후작부의 빈소는 완전히 철거되었고, 관 역시 뒷문을 통해 어디론가 옮겨졌다.

날이 밝은 뒤 이 소식을 들은 노부인과 온 소실은 경악했다. 회랑에 걸려 있던 흰 초롱과 상장까지 모조리 흔적도 없이 치워져 있었던 것이다.

서안하가 당 마님을 부축한 채 노부인의 처소로 들어섰을 때였다.

온 소실은 한창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고모, 대체 당씨 모녀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이 겨우 나흘째입니다. 헌데 다 치워버렸어요! 사람도 전부 물리고 장례 물품까지 모조리 거둬갔습니다!”

온 소실은 이제 아예 감출 생각도 없는 듯 흐느끼며 울부짖었다.

“겨우 나흘입니다! 장례도 아직 반도 끝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성의 없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내버리다니…”

서안하와 당 마님은 안색이 몹시 좋지 않은 노부인에게 형식적으로 예를 올린 뒤 한쪽 자리에 앉았다.

서안하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슬쩍 훔치며 일부러 지친 듯 쉰 목소리를 냈다.

“온 소실께서는 정말 운민 오라버니를 깊이도 아끼셨나 봅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꼭 돌아가신 분이 온 소실의 친아들인 줄 알겠어요.”

그 말에 온 소실은 순간 놀라 울음소리를 그대로 삼켜버렸다.

노부인 역시 괜히 뜨끔해져 서둘러 분위기를 무마했다.

“이 집안에서 운민에게 마음 쓰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게다가 온 소실은 원래 마음이 여린 아이니 슬퍼하는 것도 당연하지.”

서안하는 속으로 비웃음을 삼켰지만 겉으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 말씀대로입니다. 온 소실께서는 오라버니의 죽음에 분이 풀리지 않으셨는지 운기 오라버니를 친히 채찍질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만큼 적서를 중히 여기고 예법도 아시며, 또 정이 깊으신 분이라는 뜻이겠지요.”

온 소실은 그 이야기가 나오자 이를 갈았다. 속에 쌓인 화가 들끓었다.

“나는 그놈이 운민이 대신 죽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원망 어린 눈빛으로 서안하를 노려봤다.

“그놈이 너를 구하겠다고 나서지만 않았어도 운민이가 저리 허망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 마님은 담담히 말했다.

“우리 안하의 목숨도 귀한 목숨이네.”

온 소실은 생각할 틈도 없이 받아쳤다.

“당연히 적자의 목숨이 더 중요하지요.”

당 마님은 더는 상대하지 않았다. 대신 서안하를 바라보며 조용히 당부했다.

“그래도 결국 운기가 네 목숨을 구해준 셈이니, 앞으로는 친오라버니처럼 잘 대해주어야 한다. 알겠느냐?”

서안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어머니. 저도 운기 오라버니께 잘할게요.”

온 소실은 두 모녀가 주고받는 말을 듣고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하지만 노부인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밤 호국공부에서 사람들을 보내 장례를 도왔다는 이야기와, 홍달 대사를 불러 안혼 의식을 치렀다는 말을 듣고 그녀는 속으로 당씨 모녀를 제법 흡족하게 여기고 있었다.

다만 이해되지 않는 건 단 하룻밤 사이 빈소가 철거되고 관까지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분명 그 안에 무언가 숨겨진 사정이 있을 터였다.

노부인이 당 마님을 향해 물었다.

“어찌하여 장례 기간도 채 끝나기 전에 빈소를 치운 것이냐?”

당 마님은 아직 입도 열지 않았는데 금세 또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서안하는 어머니를 달래며 앞으로 나섰다.

“할머니, 사실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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