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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eur: 잿빛은하수
정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돌아가라고 했잖아.”

채원은 태연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석진이 아직 아픈데, 제가 어떻게 그냥 가요?”

채원은 가져온 보온 도시락을 병상 머리맡에 놓고, 직접 죽을 덜어냈다.

“형부, 석진이가 죽 먹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집에 가서 특별히 정성껏 끓였어요. 석진아, 얼른 먹어봐. 따뜻할 때가 제일 맛있어.”

죽은 찹쌀에 대추를 넣어 푹 곤 것이었고, 향도 좋고,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석진은 원래 입맛이 없었지만, 채원의 다정한 말투에 못 이겨 한 숟갈 떠넣었다.

그리고 순간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엄마가 끓여준 죽이 더 맛있는데...’

“형부.”

채원이 부드럽게 말을 걸며 정후의 생각을 끊었다.

“언니도 그냥 잠깐 화난 거예요. 형부가 가서 말만 잘하면, 아마 풀릴 거예요.”

채원은 애써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저도 언니한테 사과하려고 몇 번이나 전화했는데... 아예 받지도 않고, 만나주지도 않더라고요...”

그 말에 정후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정후는 조용히, 낮게 말했다.

“굳이 신경 쓸 필요 없어. 그 사람, 스스로 생각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이번만큼은... 정후도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먼저 고개를 숙이면, 은하는 앞으로도 아이를 볼모로 마음대로 휘두를 게 분명했다.

‘감정은 이해하지만, 원칙까지 무너뜨릴 순 없어.’

...

다음 날 아침.

은하는 이른 시간에 일어나 정갈하게 옷을 차려입고 나서 손에 필요한 서류들을 챙겨 성예그룹 본사로 향했다.

성예그룹은 그녀가 출전했던 디자인 공모전의 주최사였다.

이번 공모전은 해외 연수 프로젝트와 연계되어 있어, 성예그룹이 수상자의 해외 연수에 드는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구조였다.

은하는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정말 큰 노력을 기울였다.

‘나는 경력도 짧고, 스펙도 부족해.’

‘결국, 실력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그리하여 그녀는 역대 수상자들의 포트폴리오를 밤새워 분석했고, 시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소재를 찾았으며, 디자인과 제작의 전 과정을 손으로 직접 처리했다.

그 결과, 당당한 1등을 거머쥐었다.

이는 은하가 스스로 이뤄낸, 아주 값진 성과였다.

하지만 정후의 가벼운 한마디에, 은하는 채원에게 그 자리를 넘겨줘야 했다.

정후는 이유도 그럴듯했다. 석진이 아직 어려 곁에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말부터, 성예그룹 대표와는 오랜 인연이라 은하만 입을 열면 모든 게 순조롭다는 말까지.

아쉬운 건, 은하가 절대 이번 해외 연수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다는 거다.

...

회사 건물 앞.

차가 멈추자 은하는 말없이 문을 열고 내렸다.

해외 연수 프로그램의 수상자 계약 마감일이 머지않았다.

은하는 사전 등록을 위해 1층 로비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려던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언니?”

은하가 고개를 돌리자, 정돈된 헤어스타일에 풀메이크업을 한 채원이 서 있었고, 그 옆엔 굳은 표정의 정후가 있었다.

“언니, 언니가 형부의 전화 안 받길래... 혹시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걱정했잖아요.”

채원은 빠르게 다가오며,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은하의 손을 잡으려 했다.

“언니, 병원에 있는 석진이가 계속 언니를 찾았어요. 괜찮으시면 오늘 병문안이라도 와주세요...”

은하는 반 발짝 뒤로 물러서며 손을 피했다.

“미안한데, 나 지금 바빠.”

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해외 연수 관련 계약하러 가는 길이니까 잡담할 시간 없어.”

말을 마친 은하는 그대로 돌아서서 엘리베이터로 향하려 했다.

그 순간, 여자의 손목이 거칠게 잡혔다.

정후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내가 가도 된다고 했어?”

은하의 손목을 붙잡는 남자의 힘이 강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속엔 익숙한 통제의 기운이 묻어 있었다.

‘역시... 둘이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는 하나뿐이겠지.’

‘이 연수 자격도... 포기하라는 거.’

은하는 한 점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정후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설득당해 줄 이유도, 잡혀 줄 이유도 없어.’

은하는 손목을 빼내려 했지만, 정후의 손아귀 힘은 예상보다 강했다.

몇 번 흔들어도 빠지지 않자, 은하는 더 이상 애쓰지 않고 차분히 되물었다.

“안 보내겠다는 건... 무슨 말이 하고 싶다는 거예요?”

정후는 원래대로라면 ‘왜 병원에 안 왔느냐’, ‘아픈 아들을 어떻게 두고 가느냐’ 쏟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은하의 차가운 눈빛과 아주 덤덤한 표정을 마주하자, 그 말들이 입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대신, 정후는 고개를 숙여 은하의 손에 들린 서류봉투를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그래서... 그깟 해외 연수 하나 때문에, 아이까지 포기하겠다는 거야?”

곧이어, 채원이 나지막이 흐느끼며 말을 보탰다.

그 눈엔 금세 눈물이 고였고, 입술을 떨리고 있었다.

“언니... 정말 해외에 나가고 싶었던 거라면, 말하면 됐잖아요. 굳이 석진이까지 들먹이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석진이는 아직 애예요... 아무 죄도 없는데 왜 끼어들게 해...”

고의였을까?

채원의 목소리는 다소 크게 울려 퍼졌고, 회사 로비는 곧 수군거림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은하가 이번 공모전에서 대상은 받은 인물이라는 사실은 이미 많은 직원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삽시간에 늘어났다.

“그 사람 아니야? 이번에 대상 받은 디자이너? 심사위원 열 명 중의 아홉 명이 만점을 줬다던데.”

“근데... 애가 있다고? 저 나이에? 이혼하고도 애 데리고 해외 나간다는 거야?”

“와, 진짜 민폐다. 요즘 왜 이렇게 선 넘는 사람 많아...”

“...”

사방에서 시선이 쏟아졌지만, 은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시선을 돌려 채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뭘 했는데? 애한테 손을 댄 것도 아니고, 욕한 것도 아니고, 학대한 적도 없어.”

은하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단단하고 또렷했다.

“석진이 위장이 약해서 기름지고 매운 음식 못 먹는 거, 다들 알잖아? 그런 석진이 데리고 치킨 먹으러 간 사람이 누구였더라? 그날 밤 병원에 실려 간 건... 나 때문이 아니었잖아?”

채원의 얼굴이 순간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건 나도 몰랐으니까...”

은하는 가차 없이 말을 잘랐다.

“몰랐다고? 그럼 애 엄마인 척은 왜 그렇게 열심히 했어?”

그리고 정후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게다가, 두 사람 병원에서 밤새도록 같이 있었잖아? 애도 있고, 분위기도 딱 자고 같은데, 내가 거기 끼는 게 오히려 민폐 아니야? 그러니까, 나는 굳이 그 ‘행복한 가족’ 그림에 끼지 않으려고.”

‘이제야 말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얼마나 잊혔는지...’

‘얼마나 잊히길 바랐는지... 당신들이 원한 그대로 해줄게.’

은하의 말이 끝나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순식간에 채원에게 쏠렸다.

“뭐야? 저 여자가... 상간녀야?”

“헐... 요즘에도 저렇게 뻔뻔한 사람이 있어?”

“눈물 흘리면서 피해자인 척하더니, 알고 보니 진짜 민폐녀였네...”

“...”

채원은 이를 꽉 깨물었다. 뭔가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아니라고 하면... 오히려 더 구차해질 뿐이야. 사람들은 이미 판단 끝났어.’

정후는 인상을 더욱 깊게 찌푸렸다.

‘남은하가 이런 말투를 쓰다니... 원래, 저런 눈빛으로 나를 보던 사람이었나...?’

그가 기억하는 은하는 조용하고, 무던하게 참으며 사는 여자였다.

존재감도 적고, 목소리도 낮은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은하의 눈빛은 낯설 정도로 단단했다.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던 정후는 몇몇 사람이 핸드폰을 들어 영상을 찍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순간, 이 상황을 더 키우고 싶지 않다는 본능이 작동했다.

그래서 은하의 손목을 다시 잡으며 말했다.

“여기 말고, 다른 데서 얘기하자.”

은하 역시 더 이상 이 자리에서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뻔뻔해도 되겠지만, 난 앞으로 이 업계에서 계속 일해야 하니까.’

근처의 조용한 카페.

은하는 자리에 털썩 앉더니 정후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뭘 얘기하고 싶은데요? 바쁘니까 요점만 말해요.”

그 말에 정후의 표정이 굳어졌다.

“진심으로 그 연수 기회를 원한다면, 채원이한테 양보하라고 할 수도 있어.”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채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형부...?”

하지만 정후는 무시하고, 그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대신 이번 한 번만이야. 다음부터는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거, 절대 못 참아.”

‘웃기시네.’

은하는 코웃음을 쳤다.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양보요?”

그 말투엔 명확한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그건 내가 내 실력으로 받은 거예요. 그런데 누가 누구한테 양보해요? 당신 따위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자격이나 있어요?”

‘이번 연수는 단순한 출국이 아니라, 내가 다시 내 삶을 살기 위한 시작... 이건 내가 지켜야 할 내 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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