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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작가: 잿빛은하수
채원은 은하의 말에 얼굴이 살짝 굳었다.

‘남은하...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아나 봐.’

은하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채원의 속이 타들어 갔다.

“언니, 이번 공모전에서 언니가 좋은 결과를 낸 건 맞아요. 근데 언니도 알잖아요. 그 성적, 온전히 언니 실력만으로 얻은 건 아니었어요.”

“유씨 가문의 배경이 있었고, 형부가 도와준 부분도 분명히 있었잖아요. 형부가 이렇게 배려해 주는 것도, 결국 언니를 생각해서 그런 건데... 그 마음마저 그렇게 짓밟을 필요는 없잖아요.”

은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채원을 바라봤다.

그 시선엔 숨김없는 냉소가 담겨 있었다.

“나한테 진 사람은 내 실력을 운운할 자격이 없어. 그리고 두 사람이 말하는 그 ‘배려’? 필요 없어. 미안한테 도로 가져가.”

채원은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만,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정후는 지금 이 상황이 영 못마땅했다. 눈빛에 분명한 불쾌함이 담겼다.

“지금은 우리 둘 문제를 이야기하는 중이야. 괜히 화살을 딴 데로 돌리지 마.”

은하는 가볍게 웃었다.

그 웃음은 차갑고 비꼬는 듯했다.

“그럼 하나만 물을게요. 우리 두 사람 얘기라면, 굳이 내 동생을 끼워 넣은 이유는 뭐예요? 아, 이제는 떼놓고는 못 움직이는 사이가 된 거예요?”

은하는 고개를 갸웃하며 덧붙였다.

“그 정도로 가까워졌는데, 왜 아직도 이혼합의서에 사인 안 해요?”

채원은 말없이 정후를 바라봤다. 표정엔 억울함과 당혹스러움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정후는 그녀를 외면했다.

대신, 은하를 향한 시선에 살짝 변화가 스쳤다.

‘결국, 아직도... 내가 다른 여자와 가까워진 걸 신경 쓰고 있었던 거네.’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처제는 당신 여동생이고, 난 그 관계 이상은 넘은 적 없다고. 괜히 혼자 확대 해석하지 마. 당신만 정신 차리면, 여전히 당신은 내 아내야. 다만... 선을 지켜야지.”

이 말들...

은하가 가장 혐오하는 말이었다.

선을 지켜라.

적당히 해라.

그 정도에서 멈춰라.

‘그동안 내가 얼마나 선을 지켜왔는데!!’

은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차가운 시선으로 정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정말 넓은 마음 가졌네요. 하지만... 당신 아내라는 자리... 더 이상 가지고 싶지도, 지키고 싶지도 않아요!!”

“이혼서류는 이미 다 준비해 놨으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사인해요. 나는 당신과의 이 결혼... 이쯤에서 끝내줄게요.”

‘이제는 끝내야 할 때야. 더는 참지도, 설득당하지도 않겠어.’

늘 냉정하기만 하던 정후의 얼굴에 잠시 놀란 기색이 스쳤다.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내가 해외 연수 막았다고... 그 이유 하나로 이혼하겠다는 거야?”

은하는 짧게 대답했다.

“어떻게 생각하든 당신의 자유예요.”

은하는 돌아서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정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다시 가로막았다.

“이제 그만하면 됐잖아.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감정적으로 굴 거야?”

그리고 목소리를 낮췄지만, 여전히 고압적인 어조로 말했다.

“디자인이 그렇게 하고 싶으면, 우리 회사에 자리를 만들어 줄 수도 있어. 아니면 당신 이름으로 스튜디오 하나 차려줄게. 외국 나가서 고생하고 실패하는 것보다 그게 훨씬 나아.”

은하는 정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제안 속에 감춰진 무례함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래, 당신은 끝까지 이해 못 하겠지.’

‘내가 바라는 건 ‘안정된 자리’가 아니라...’

‘나 스스로 이뤄낸 ‘내 이름’, ‘내 자리’라는 걸.’

은하는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런 ‘배려’는 우리 ‘착한’ 동생한테 양보할게요. 나한텐 필요 없어요.”

그 말만 남긴 채, 은하는 정후를 지나쳐 조용히 걸어 나갔다.

정후는 그 자리에 굳은 채 서 있었다.

‘이 정도까지 말했는데도 안 통한다면...’

그리고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좋아, 정 안 되면 강제로라도 빼앗아야지.’

‘서류 하나쯤 없이도, 그 연수 자격 박탈시키는 건 어렵지 않아.’

“언니...”

채원은 두 사람의 대화를 전부 들으며 속으로 웃고 있었다.

‘아무리 잘난 척해도 결국 부딪히면 깨지는 쪽은 너야.’

하지만 겉으론 안절부절못하는 척,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갔다.

“언니가 지금 좀 예민해서 그래요. 형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내가 언니한테 가서 잘 설득해 볼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정후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채원이 보기에 그것은 곧 묵인이었다.

성예그룹 건물 앞.

채원은 빠르게 은하를 쫓아가 그녀를 가로막았다.

“잠깐만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은하는 고개를 살짝 돌리며 지친 눈빛으로 채원을 바라봤다.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이 코미디는.’

채원이 또다시 손을 뻗으려 하자 은하는 한 발짝 물러서며 말했다.

“아까 그 망신으론 부족했어? 필요하면 내가 좀 더 도와줄까? 사람들 있는 데서?”

그 말에 채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급히 주변을 둘러본 후, 사람들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더 이상 연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은하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넌 뭐가 그렇게 잘났어? 내가 널 붙잡은 이유는 하나야. 넌 지금도 날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도 절대 못 이길 거야. 믿을 수 없다면... 끝까지 가보자.”

은하는 채원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답했다.

“그래, 끝까지 가보자. 누가 남고, 누가 밀려나는지... 곧 알게 되겠지.”

‘역시... 사랑에 빠지면 판단력도 같이 증발하나 봐.’

‘그래도 괜찮아. 겁낼 이유도 없지.’

‘난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야.’

‘당신들이 원하던 그 ‘순한’ 남은하는 이미 없으니까.’

말을 끝낸 은하는 채원의 어깨를 살짝 밀치고, 그대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채원은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작게 신음을 냈지만, 주변 눈치를 살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지금 여기서 또 싸움 나면... 나만 이미지 깎이니까... 참자, 참아야 해.’

...

은하는 곧장 담당 부서로 올라가 확인했다.

역시나, 채원이 말한 것처럼 성예그룹의 이번 해외 연수 프로젝트는 내부 절차가 매우 엄격하게 바뀌었다고 했다.

최종 서명까지 최소 이틀은 더 걸릴 수 있다는 통보였다.

‘유정후가 뒤에서 손 쓴 거겠지.’

그건 분명했지만, 지금 당장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누구도 이 자격을 내 손에서 빼앗을 수 없어.’

그 후 며칠간, 은하는 외출도 줄이고 공방처럼 꾸민 집 안에서 디자인 작업에 집중했다.

해외 연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기존에 들어온 고객들의 주문은 계속 쌓이고 있었다.

은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이번 연수 기회도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더더욱, 만반의 준비를 해둘 수밖에 없었다.

쌓인 주문을 모두 처리하고 나서야, 은하는 굳어 있던 허리를 천천히 젖히며 기지개를 켰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고, 화면엔 정후의 이름이 떴다.

은하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몇 분 뒤, 다시 진동.

이번엔 석진이었다.

은하는 이번에도 망설이지 않고 끊었다.

‘이렇게 조용한 세상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컵에 물을 따라 마시고 난 뒤, 그녀는 책상에 놓인 핸드폰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안 읽은 메시지 하나가 있었고, 정후에서 온 것이었다.

[내일 우리 어머니 생신이야. 본가에서 저녁 식사하기로 했으니까 잊지 마. 선물도 준비해.]

은하는 화면을 가만히 보다가, 코웃음을 치고는 핸드폰을 소파 한쪽에 툭 던졌다.

‘이혼할 사람이 왜 아직도 가족인 척하는 건데?’

‘이제 당신 집안일에 내 감정이나 시간은 단 한 톨도 쓸 생각 없어.’

...

다음 날, 은하는 오랜 단골 고객인 김영미 대표에게 디자인 시안을 전달하러 갔다.

김영미는 은하가 온라인에서 처음 쇼핑몰을 시작할 때부터 거래를 이어온 사람으로, 현재는 꽤 큰 여성 의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는 디자인에 대한 요구가 다소 까다로운 편이었지만, 은하에게만큼은 꽤 두터운 신뢰를 보내는 고객이었다.

그리고 늘 직접 보고 컨펌하는 스타일이라, 오프라인 미팅은 꼭 필요하다고 고집해 왔다.

이번에 은하의 디자인이 수정 없이 원안 그대로 통과되자, 김영미는 기분 좋게 재무팀에 결제 연락을 넣으며 은하에게 말했다.

“선생님, 잠깐만 기다려요, 입금까지 5분도 안 걸릴 거예요.”

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매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언니? 언니도 여기 있었네요! 혹시 시어머님 생신 선물 고르러 오셨어요? 나도 마침 선물 보러 왔는데, 같이 보면 어때요? 도와줄게요!”

활짝 웃으며 다가오는 사람은 채원이었다.

은하는 그 모습에 숨이 막히는 듯했다.

‘이 타이밍에 또 쟤야... 진짜 귀신같이 나타나네.’

바로 정색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괜찮아. 너는 네 선물이나 잘 골라.”

여기가 자기 고객 매장만 아니었다면, 은하는 당장이라도 채원을 밖으로 밀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채원은 전혀 개의치 않았고, 여전히 다정한 말투를 이어갔다.

“우리 자매 사이에 그런 말은 서운하죠! 오늘은 형부 어머님 생신이잖아요? 그런 격식 있는 자리엔 아무 보석이나 가져갈 수 없으니까, 내가 도와줄게요. 괜히 잘못 골랐다가 시어머님이 실망하시면 어쩌려고요?”

은하는 채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엔 가볍고 조용한 조소가 어렸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이렇게 열심이야? 내가 고른 선물에 네까짓 게 품평할 자격이나 있어?”

“설마... 이 선물 하나 골라주면, 진짜로 유씨 가문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지?”

채원의 눈동자엔 찰나의 질투심이 스쳤다.

그러나 입가의 미소는 오히려 더 부드럽게 번졌다.

“언니 또 오해하고 있네요. 난 그냥 순수하게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언니는 요즘 석진이 보느라 바쁘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예전엔 능력 있었을지 몰라도, 요즘 트렌드는 잘 모를 수도 있잖아요. 이 매장도 사실 최근에 유행하기 시작한 브랜드라...”

“내가 모른다고 누가 그래?”

은하가 갑자기 차갑게 말을 끊었다.

채원의 입술이 딱 멈췄다.

은하는 한 발 앞으로 다가가며 시선을 낮췄다.

톤은 여전히 낮았지만, 단단했다.

“누가 뭐를 얼마나 아는지, 네가 판단할 위치는 아니잖아?”

‘난 예전의 남은하가 아니야. 가만히 고개 숙이던 그 사람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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