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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Author: Rose D' Arc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31 19:19:04

발레리

‘이렇게 끝나는구나.’

주변이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의식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느껴지는 것은 온몸을 꿰뚫는 듯한 극심한 통증과 손을 적시는 따뜻한 피의 감촉, 그리고 내가 총에 맞았다는 사실뿐이었다.

형형색색의 빛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가 서서히 또렷해졌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나를 감싸고 있는 손이 내 시녀 미나의 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루나 발레리!”

미나가 울부짖었다. 직전까지 있었던 일이 천천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팩에 관한 평범한 회의가 진행되던 중, 한 하녀가 갑자기 그를 향해 총을 겨눴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알파 알리스터께서 보내신 선물입니다.” 암살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의 앞을 막아선 뒤였고… 지금 나는 이 꼴이 되어 있었다.

나는 힘겹게 몸을 옆으로 돌려 그를 찾았다.

내 남편이자, 내 운명의 짝이며, 내가 평생 사랑한 단 한 사람인 트리스탄은 현장에서 내 여동생 앨린을 끌어안듯 붙잡아 그녀가 나에게 달려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단 한 번도 내게 닿지 않았다.

나는 그를 위해 목숨까지 내던졌는데도 그는 나를 한 번 바라보지도, 신경 써 주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도, 마음도, 관심도 오직 내 여동생만을 향해 있었다.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따뜻한 피가 배를 적시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 아이는... 사라졌다.

나는 이미 임신 5개월이었다. 그날 밤, 술에 취한 채 단 한 번 함께했던 일로 생긴 아이였지만, 배가 거의 나오지 않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무엇보다 잠복임신이었으니까.

적당한 때가 되면 그에게 알려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기회가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들것에 실려 옮겨졌고, 정신을 차려 보니 팩의 의사가 나를 살피고 있는 차가운 방 안이었다.

“죄송합니다, 알파. 상처가 너무 깊고 이미 출혈이 심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루나를 살릴 방법이 없습니다.”

그 말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듣고 나니 훨씬 더 절망적으로 다가왔다.

이제 확실했다. 나는 살아날 수 없었다.

그 뒤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팩의 의사는 방을 떠났고, 나도 트리스탄에게 손을 뻗고 싶었지만 그 역시 방을 나가 버렸다. 결국 내 곁에는 병상 옆에 앉은 앨린만이 남았다.

몇 초가 흘렀다. 거친 내 숨소리만이 귓가를 메웠다. 그녀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은 느껴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언니, 이렇게 된 김에 비밀 하나 알려 줄까?”

혼란이 흐릿한 의식을 뒤덮었다. 나는 힘겹게 눈을 뜨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마주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사실 난 언니가 죽어 가는 게 너무 기뻐.”

그녀의 말이 끝나자 등골을 타고 싸늘한 한기가 스며들었다.

“내가 이 팩과 이 가족에 들어온 순간부터 언니는 정말 눈엣가시였어. 언니가 받는 관심도, 언니가 누리던 특권도 전부 다 싫었지. 그래서 내가 하나씩 전부 빼앗아 버렸어.”

온몸이 공포에 휩싸였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한때 나는 베타 가문의 외동딸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부모님이 어린 여자아이였던 그녀를 데려왔다. 나는 그녀를 여동생으로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아껴 주려 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내 세상은 뒤틀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은 나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고, 팩 사람들마저도 그녀를 더 아끼는 것 같았다. 나는 몇 번이고 항의하고 맞서 보려 했지만, 결국 누구와 비교해도 늘 내가 뒤처지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내 운명의 짝에게조차도.

그녀가 웃었다. 모두가 여신의 웃음이라 칭찬하던 그 소리는 내게 악마의 웃음처럼 들렸다.

“이제 와서 언니가 뭘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전부 다 털어놓을게.”

그리고 그녀는 정말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나는 꼼짝도 할 수 없는 채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만 했다. 그녀가 꾸며 낸 모든 계략과 위선, 스스로를 피해자인 양 꾸미며 모든 책임을 내게 뒤집어씌운 일들, 순진한 척하면서 내 험담과 거짓 소문을 퍼뜨린 일들까지.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수년간 이어져 온 일이었다.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예전에도 그녀를 미워하고 싶었던 적은 많았지만, 그저 내가 운이 없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참고 또 참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의도된 일이었다니….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몇 분이었는지, 몇 시간이었는지조차. 그녀는 비웃듯 한숨을 내쉬며 말을 맺었다.

“이제 가족이나 팩 걱정은 안 해도 돼. 어차피 다들 언니한테는 별 관심도 없었잖아. 머지않아 언니도, 언니의 희생도 모두 잊어버릴 거고, 내가 언니 자리를 대신하게 될 거야. 트리스탄도 마찬가지고.” 그녀는 마치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한 것처럼 킥킥 웃었다.

“아까도 봤잖아. 언니가 이렇게 된 원인이 바로 그 사람이면서도, 그 사람 눈에는 나밖에 없어. 언니는 그의 운명의 짝이었을지 몰라도,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나야. 언니가 죽어 가는데도 곁을 지키지 않잖아. 걱정하지 마. 다음 루나인 내가 그 사람을 잘 돌봐 줄 테니까.”

“누가 알아?” 그녀가 흥얼거리듯 말했다. “언젠가 내가 그 사람의 아이를 낳게 되면, 기념 삼아 언니 이름을 붙여 줄지도 모르지. 사람들은 내가 참 착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진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내가 이겼다는 사실 말이야.”

당장이라도 몸을 일으켜 소리를 지르고 분노를 터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반격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생명은 조금씩 내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었고, 나는 점점 가늘어지는 실 한 가닥에 겨우 매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슬픔과 체념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내가 쏟아부은 사랑과 노력, 희생은 모두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나를 사랑하지 않은 남자를 위해. 언제나 나를 밀어내고 경멸했던 남자를 위해. 나를 배신하고 내 몰락을 계획한 여동생을 위해. 오래전부터 나를 돌보지 않았던 가족을 위해. 내 노력을 인정하지도, 존중하지도 않고 늘 나를 얕잡아봤던 팩을 위해.

나와 내 아이는 죽어 가고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조차 위로받지 못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내 곁에 없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는 사람은 오직 앨린과 그녀의 차갑고 악의적인 진실뿐이었다.

눈가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그 감각마저도 곧 사라져 버렸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잘 가, 발레리.”

앨린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집어삼키며 숨쉬기조차 점점 힘겨워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떨리는 숨을 한 번 내쉬었고….

….

끝없는 어둠 속을 영원처럼 헤엄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날카로운 소리가 고요한 평화를 산산이 깨뜨렸다. 무시하려 했지만 무언가가 몸을 간질이는 감각이 느껴졌다. 천천히 눈을 뜨자 눈부신 빛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여기가… 천국인 걸까?

“루나, 일어나세요.”

고개를 돌리자 미나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뭐?”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숨을 삼켰다.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졸리세요, 루나? 안타깝지만 그럴 시간이 없어요. 정신이 멀쩡하실 때라면 여신님도 절대 허락하지 않으실걸요.”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내 침실이었다. 그리고 이 방도 분명 내 방이었다.

“어떻게….”

나는 충격에 말끝을 흐렸다.

“괜찮으세요, 루나?”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미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충격을 감추며 애써 평정을 되찾았다.

“괘, 괜찮아.”

나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조금만… 진정할 시간이 필요해.”

“물론이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나는 그녀가 방을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꿈인 걸까?

나는 스스로를 꼬집었다. 살을 꼬집는 통증이 느껴지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모든 것이 너무도 현실 같았다.

분명 나는 죽었는데… 어떻게 다시 이곳에 있는 거지?

본능적으로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날짜를 확인했다.

4월 30일.

말이 되지 않았다.

이 날짜는 몇 달 전이었다. 내가 그 일을 겪기 훨씬 전….

순간 숨을 들이켰다.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현실인지 확인하려는 듯 다시 한번 내 팔을 꼬집었다.

이건 결코 가능할 리 없는 일이었다.

전설이나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기적.

‘나… 회귀한 거야!’

지금은 거의 세 달 전이었다. 우리 각인식 기념일을 일주일 앞둔 시점. 나는 이미 루나가 된 지 1년이 되어 있었고, 이번만큼은 무슨 일을 하든 비난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결국 또 실패했었다. 그날 파티를 뒤덮었던 소문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사람들의 시선에 시달리고, 모욕을 당하고,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것까지 포함해 온갖 험담의 대상이 되었던 그날이.

‘잠깐….’

나는 숨을 삼키며 배를 움켜쥐었다. 내가 정말 이 시간으로 돌아온 거라면… 내 아이도 함께 돌아온 것이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잠복임신이었기에 배는 여전히 평평했지만, 나는 분명 아이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문이 쾅 하고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내 운명의 짝이자 남편인 트리스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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