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할리 민상은 말없이 거실에 앉아 있다가 한참이 지난 뒤에야 겨우 한마디했다.“일단 그곳에 한 달 정도만 있게 해.”엔데스 명우는 이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소은지를 직접 돌봐주겠다고 했다.그의 말을 알아들은 조미영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네.”이때, 할리 민상은 문득 자기 아내가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젊었을 때의 모습이 지금의 소은지와 똑같았다.하여 여자들의 진짜 속내와 내뱉는 말이 가끔 다르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한편.이유영은 소은지가 엔데스 명우한테 잡혀갔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렸다.“일단 넌 이 일에 대해 신경 쓰지 마.”엔데스 신우의 말에 이유영이 다급하게 답했다.“그래도 안건우 씨가 은지를 보호해달라고 직접 신우 씨한테 전화까지 왔는데...”“다치게 하거나 그런 건 아니잖아.”그의 말도 맞긴 하지만 문제는 소은지가 지금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엔데스 명우라는 사실이었다.그 생각만 하면 이유영은 마음이 점점 더 조급해져만 갔다.“왜 그래?”“너무 화가 나서요!”그냥 단순하게 화만 나는 정도가 아니었다.이유영한테는 엔데스 명우가 강이한 그 인간이랑 다를 게 없었고 찰거머리처럼 매달려 화만 돋우는 그런 존재였다.“화가 나도 어쩔 수 없어. 명우는 원래 그런 사람이거든. 여태껏 여자한테 단 한 번도 매달려본 적이 없어서 더 그럴 거야.”“그럼 설선비 씨는요?”이유영이 퉁명하게 되물었다.예전에 엔데스 명우가 설선비 때문에 소은지를 어떻게 대했는지 곁에서 다 봐왔던 사람이다.그녀의 뾰로퉁한 얼굴에 엔데스 신우가 피식하고 웃었다.“명우한테 중요한 사람이었으면 그렇게 쉽게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는 걸 허락했겠어?”엔데스 명우가 얼마나 고집스러운지는 이미 다 아는 사실이고 한번 찍은 여자는 절대 놔줄 성격도 아니었다.“그때 당시 상황이...”“어이없는 상황이었지!”이유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엔데스 신우가 먼저 말해버렸다.“...”“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명우 씨한테는 별로 어려운 것도
하선희에 대한 사랑은 끔찍했지만 그 사랑이 키워줬던 딸한테까지는 가지 않았다.“다른 방법이 없다고요?”할리 연희가 차갑게 웃었다.그리고 자기 모든 걸 그들이 빼앗아 갔다는 느낌에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파졌다.“내가 이대로 포기할 줄 알고?”모든 게 원래부터 그녀의 것이라 생각했다.보아하니 지금 그들은 할리 연희를 빈털터리인 상태로 파리에서 쫓아내려고 했는데 이대로 가만히 있을 할리 연희가 아니었다.“난 파리에서 한 발짝도 떠날 수 없어요.”이렇게까지 진지한 모습은 여태껏 처음이었다.“아가씨!”“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할리 연희의 눈빛은 이미 복수심으로 마구 불타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진미자는 그런 그녀가 매우 걱정되었다.“포기해요. 아가씨, 그냥 저랑 조용히 해외로 떠납시다!”할리 연희가 지금 뭘 하려는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아 진미자는 냉큼 그녀의 행동을 말리려 했다.자칫하면 목숨도 잃을 수 있기에 너무 위험해 보였다.“전 절대 떠나지 않아요. 절대!”방법은 찾으면 된다.그리고 갑자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옆에 있던 진미자에게 한마디했다.“일단 나가주세요.”어디에 전화를 거는지 눈빛은 아주 사납게 번뜩거렸다.할리 연희는 절대 이대로 쫓기듯 떠날 수 없었고 누가 어떤 조건을 들이밀어도 죽을 때까지 이곳에 딱 달라붙어 있을 예정이다.진미자가 나가고 빠르게 전화가 걸렸는데 할리 연희는 수화기에 대고 차갑게 말했다.“아마 두 사람이 다시 합칠 것 같아요!”...한편.엔데스 명우는 아예 소은지 위에 올라탔다.그리고 할리 민상에게 산후조리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 여기서 나가지 못하게 하겠다고 당당하게 알렸다.“재미있어?”“그냥 내 곁에 있어 주면 된다고 했잖아.”엔데스 명우의 말에 소은지는 이제 더 이상 화를 낼 힘조차 없는 것 같았다.그러나 명치에서부터 무언가가 자꾸 끓어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내 말만 들으면 안건우 씨의 재판도 이기는 걸로 끝날 테고 할리 가
엔데스 명우의 말대로 할리 가문이 소은지한테 그다지 중요한 존재는 아니었다.그러나 문득 소은지의 머릿속에 할리 민상의 희끗희끗한 귀밑머리와 자신을 어떻게 해서든지 보호해 주려던 모습이 떠올랐다.그리고 안건우의 재판은 끝물이라 더더욱 그 어떤 착오도 생겨서는 안 된다.고개를 들고 눈앞의 남자를 매섭게 째려봤지만 이상하게 그는 아까부터 한껏 다정한 얼굴로 계속 웃고 있었다.고작 며칠 안 본 사이에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협박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나 봐?”“난 단지 너랑 같이 있고 싶을 뿐이야!”엔데스 명우가 단도직입적으로 고백했다.이미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시간도 있었기에 굳이 예전의 일들은 미주알고주알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과거가 얼마나 지저분했든 간에 그는 소은지와 함께 하고 싶었다.말도 안 되는 소리만 지껄이는 남자 때문에 소은지는 화가 난 나머지 눈까지 빨개지기 시작했다.“난 싫어!”“그게 과연 네 마음대로 될까?”참으로 맥이 풀리는 한마디였다.여태껏 엔데스 가문에서 소통하기가 가장 어려운 사람이 엔데스 명우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그 생각이 맞았다는 걸 다시 한번 확정할 수 있었다.그저 자신에게 필요한지 아닌지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다....한편.할리 연희는 소은지가 이번에 할리 가문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진정한 할리 가족으로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분노가 하늘을 찔러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그리고 오늘 진미자가 들려준 소식까지 더해지자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래서 다들 이대로 저를 버릴 거래요?”엔데스 명우든 할리 가문이든 누구도 그녀를 보호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진미자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그래도 오늘 있었던 일들을 전부 할리 연희에게 말해줘야 했다.자기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진미자를 보고 할리 연희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그리고
소은지는 화도 나고 기가 막혀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끈질기게 매달리면 그냥 도망쳐 나왔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들었다.“꿈도 꾸지 마.”“내 말대로 할 생각이 전혀 없구나?”엔데스 명우의 말에 소은지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미친놈, 당장 날...”그러나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오더니 그녀를 거칠게 차 안에서 끌어 내렸다.그리고 그에게 안긴 채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이거 놔! 안에 연희 씨도 있을 거잖아!”“그 일은 이미 다 정리했어.”그의 말에 소은지는 순간 깜짝 놀라 정신이 멍해졌다.사실 요 며칠 수술받은 뒤로 집에서 몸조리하느라 밖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몰랐다.“이미 연희 씨랑 파혼한다고 선언했어.”‘파혼?’‘혼약을 이렇게 쉽게 취소한다고?’‘전 파리의 사람들이 아는 내용일 텐데?’순간 소은지는 더 깊이 생각하기가 두려워졌다.엔데스 명우라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원하는 결과만 있다면 그게 얼마나 복잡하든 이뤄내고야 마는 사람이란 걸 소은지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이러한 점을 할리 민상이 간과했던 것이다.온몸이 굳은 채로 가만히 서 있는 소은지를 보고 엔데스 명우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놀랐어? 다 너를 위한 일이야!”그녀를 위해서 그런 결정을 했다는 말이 소름 끼치게 들렸다.“누가 그렇게 해달래?”“은지야, 난 네가 아무 감정이 없는 여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소은지가 다른 사람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고 착한 사람이었기에 언젠간 본인도 그렇게 대해줄 것이지만 단지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이라고 여겼다.그 생각에 엔데스 명우의 얼굴이 다시 환하게 펴졌다.“당신 말대로 아무 감정이 없는 건 아니야. 그렇지만 유독 당신...”소은지는 말하다가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다시 눈을 꼭 감았다.“그냥 단념해.”엔데스 명우의 속셈이 뭔지 이제 알 것 같았다.두 사람은 애초에 출발점부터 다르고 한쪽은 이미
한편.도로 위로 소은지가 타고 있던 벤틀리는 여유로운 속도로 번화한 시내 중심을 향해 달리고 있었는데 모퉁이를 돌자마자 차가 급정거해 버렸다.소은지는 갑자기 차가 앞으로 쏠리는 바람에 몸이 그대로 붕 떴다가 세게 내려앉았는데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다면 분명 무슨 사고라도 났을 것이다.“왜 그래요?”교통사고가 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소은지는 이런 상황에 살짝 트라우마가 생겨 눈살을 찡그리고 물었다.그녀의 물음에 운전기사가 다급하게 해명했다.“아가씨, 정말 죄송합니다. 앞에... 앞에...”그는 앞쪽 차에서 내리는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말을 버벅거리기 시작했다.그제야 소은지도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역시나 엔데스 명우가 살기를 마구 뿜어내며 걸어오고 있었다.그리고 소은지가 타고 있는 차의 뒷좌석 문을 거칠게 열었는데 그 모습에 소은지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날카롭게 물었다.“뭐 하는 짓이야! 미쳤어?”“누가 너더러 지금 밖에 나와도 된다고 했어? 할리 가문에서는 널 이딴 식으로 돌봐주고 있었던 거야?”“...”엔데스 명우는 한껏 비아냥거리며 시비를 걸어왔지만 소은지는 지금 그와 말싸움할 시간이 없어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나 지금 이럴 시간 없어. 빨리 비켜!”그러나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소은지를 안고 차에서 내리게 했다.그 모습에 소은지는 열받은 나머지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아니...”정말 더는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남자는 그녀를 안고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자기 차에 태웠다.소은지가 단번에 그를 뿌리치려 했지만 남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자기 품에 꽉 끌어안았다.“이거 놔!”그리고 갑자기 그의 얼굴이 눈앞으로 다가오더니 그대로 그녀에게 입 맞췄다.“...”순간 소은지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눈앞이 아찔해지기 시작했다.그러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의 뺨을 때리려는데 남자는 아예 그녀의 양팔을 뒤로 묶었다.“뭐 하는 짓...”
“단지 해피엔딩으로 못 끝낸 한 차례 혼인일 뿐인데 혹시 방금 했던 말이 도련님의 귀에 들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누가 들으면 할리 연희가 엔데스 명우랑 살면서 고문이라도 당한 줄 알고 놀랄 것 같았다.진미자는 뭐라고 더 설득해 보려고 했지만 할리 민상의 태도만 봐도 이제는 아무 희망이 없다는 걸 점점 깨달을 수 있었다.비록 가슴이 좀 아프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소은지가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마침 이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진미자는 소은지를 발견하자마자 얼굴이 확 변했다.지금 할리 연희 곁을 지키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소은지를 보자마자 적대감이 생기고 할리 연희의 말처럼 그녀가 모든 걸 빼앗아 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괜히 괘씸해 보였다.한편.조미영과 할리 민상은 소은지가 반듯하게 차려입고 나가려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어디가?”그들의 눈빛에는 소은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그대로 담겨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진미자는 역시나 할리 연희를 대할 때와는 완전히 차이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소은지가 자기 시계를 내려다보더니 덤덤하게 답했다.“할 일이 남아서요.”“안돼. 지금은 절대 나갈 수 없어.”소은지가 대답하자마자 할리 민상이 단칼에 잘랐고 조미영도 한 발짝 다가가며 같이 말렸다.“아가씨, 지금은 너무 위험해요.”“작은 수술이었을 뿐인데 지금...”“지금은 아무런 느낌이 없겠지만 인생은 길어요. 나중에 아픈 게 느껴질 때는 이미 늦었을 수 있습니다.”조미영은 그녀를 데리고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소은지는 지금 맡고 있는 안건우의 사건을 계속 저렇게 내버려둘 수만은 없었다.“금방 올게요.”보아하니 지금 상황에서 도무지 집에만 있기 힘들었다.두 사람이 막 뭐라고 하려는데 소은지는 조금도 지체할 시간이 없는 것 같아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할리 민상은 순간 두통이 몰려왔다.“때가 되면 전화해.”그리고 조미영에게 차갑게 말했다.업무 때문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