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스 저택.소은지와 헤어진 후 엔데스 현우는 자리를 떠났다.얼마 지나지 않아 엔데스 명우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엔데스 명우는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엔데스 현우가 그의 허락 없이는 외부인을 들이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그래서 결국 엔데스 명우는 들어올 수 없었다.“여섯째 도련님께서 만나자고 하십니다.”주용선이 소은지를 찾아왔다.“얘기했잖...”“엔데스 현우 님이 다른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고 합니다. 그게 누구라도 해도 말입니다.”“...”모든 사람?할리 가문 사람도 포함인 건가?얼마 지나지 않아 소은지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이유영의 전화였다.“유영아.”“은지야, 나 지금 가는 길이야.”“오지 마.”소은지는 주용선을 보면서 전화기 너머의 이유영에게 얘기했다,“그...”“들어오지 못할 거야.”엔데스 현우가 정한 모든 사람이라는 건 할리 가문 사람을 제외한, 그리고 이유영을 포함한 모든 사람일 것이다.그래서 소은지는 이유영이 헛걸음하지 않기를 바랐다.전화기 너머의 이유영은 그 말을 듣고 순간 화가 났다.“널 감금한 거야?”“...”이유영의 걱정 어린 말투에 소은지는 마음이 따뜻해졌다.소은지가 이유영에게 얘기했다.“내가 널 만나러 갈게.”이유영의 대답에 바로 대답하는 대신 에둘러 얘기하면서, 소은지는 이유영의 의심을 말끔히 해결해 주었다. 이유영은 그 말을 듣고 약간 걱정을 내려놓았다.엔데스 현우가 소은지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 줄 알았다.모든 사람으로부터 격리하려고 하는 것인 줄 알았다....이유영과의 전화를 끊은 뒤 주용선이 소은지에게 얘기했다.“어머니가 보고 싶으시면 여섯째 도련님을 만나러 가셔야 할 겁니다.”“...”“그분의 성격을 알잖아요.”엔데스 명우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것에 대해 얼마나 화가 났을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이번에야말로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사이가 나빠진 것이 되겠네요.”전에 영주에서의 일로는 뭐라고 얘기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달랐다.
소은지는 남기와 엔데스 현우가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았지만, 눈빛은 여전히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도우미가 약과 물을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소은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알약을 집어 물도 없이 그대로 집어넣어 삼켰다.입안 가득 퍼지는 쓴맛 따위는, 그녀가 지금 겪고 있는 마음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앞에 놓인 물을 두어 모금 마신 엔데스 현우는 소은지의 단호한 태도에 눈빛이 더욱 차갑게 변했다.“주제 파악이 잘 되어 있네요.”물컵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그는 냉정한 한마디를 던졌다.“어젯밤과 같은 일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요.”“그 남자는 몇 번이나 건드렸는데요?”엔데스 현우의 말에 소은지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자, 엔데스 현우도 차가운 눈빛도 그녀의 시선을 받아치며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소은지는 숨을 깊게 여러 번 들이마셨지만, 가슴 속의 답답함을 누를 수 없었다.“강제로 당한 거예요 아니면 원한 거예요? 그때마다 이런 약을 먹은 건가? 몇 번인지는 기억나요?”엔데스 현우의 말에 소은지는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탁자 위에 탁 내던졌다.“모욕할 말이 더 남았어요?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해보시죠.”소은지는 예리한 눈빛으로 엔데스 현우를 응시했다.아무렇지 않은 듯한 그녀의 담담한 태도에 주변 공기는 살얼음처럼 굳어져 버렸다.두 사람의 시선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이른 아침부터 엔데스 명우가 나를 만나려는 것도 분명히 어젯밤 엔데스 현우와의 일을 알고 그러는 거겠지. 그 또한 나를 모욕하고 싶었던 건가?’도우미들은 숨마저 제대로 쉬지 못했다.한참의 침묵이 흐른 뒤 엔데스 현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앞으로 그를 만나지 마세요. 경고는 한 번뿐이에요.”“좋아요. 그럼,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 주세요. 그렇다면 그를 만날 이유도 없잖아요.”소은지가 엔데스 명우를 만나는 이유는 결국 그녀의 어머니 때문이었다.맞은편에 앉은 엔데스 현우는 서늘한 소은지의 눈빛에 무거운 목소
어젯밤 연회에서 벌어진 일은 비록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기로 했지만, 다음 날 아침 소은지가 눈을 뜨자 곳곳에서 그 일에 대한 수군거림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주용선이 소은지를 바라보며 말했다.“여섯째 도련님께서 만나자고 하십니다.”“만나고 싶으시면 직접 오면 되지 통보까지 해야 해?”주용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용히 아침 식사를 마친 소은지는 앞에 놓인 우유를 한 모금 마시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녀를 바라보는 도우미들의 이상한 시선은 분명히 어젯밤 일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나가.”소은지는 냉랭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그녀는 주용선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조차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그녀는 엔데스 명우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그게 누구든 최대한 멀리하고 싶었고 특히 이곳에서는 더더욱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주용선이 다가와 말했다.“그분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직접 오라고 그래.”소은지는 그를 만날 생각이 없었다.‘협박이라도 하겠다는 거야?’평생 이런 속박 감을 겪어본 적이 없었던 소은지는 멘탈이 나가기 직전이었다.고집을 부리는 그녀를 바라보던 주용선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걸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남기가 들어오자, 소은지는 말을 건넸다.“아저씨, 저한테 약을 구해 주세요.”“약? 무슨 약 말입니까?”남기는 이곳의 큰 집사로서 어젯밤 엔데스 현우와 발생한 일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소은지의 말에 남기는 얼굴색이 어두워졌다.그 누구라도 엔데스 현우의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마치 파리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소은지도 지금 이 시기에 아이만 가진다면 그녀의 처지가 나아질 텐데, 그녀는 오히려 이 좋은 기회를 놓치려 하고 있었다.“대표님께서 약을 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남기의 말에 소은지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약을 주지 말라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그런 약은 장기간 먹으면 효과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몸에도 해로우니 드시지 않는 게 좋겠어요. 원하
깊은 침묵 끝에 엔데스 현우가 입을 열었다.“남우준을 불러와요.”“알겠습니다.”지금 남우준을 부른다는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오늘 할리 가문이 그의 최후 한계를 건드렸다는 의미였다.비록 이 기간 할리 가문이 이쪽에 아낌없는 지원을 보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의 한계를 넘어서도 된다는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어떤 일은 용인될 수 있지만 어떤 일은 절대 허용될 수 없는 법이다.남우준은 금방 도착했다.“도련님.”“할리 가문의 동쪽 광산을 내가 가져야겠어.”남우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동쪽 광산은 할리 가문의 최대 광구이자, 지금까지 그들의 경제를 지탱해 온 가장 거대한 생명줄이었다.그런데 지금 그걸 가지겠다는 건 의심할 여지 없이 할리 가문의 손에서 그들의 목숨줄을 빼앗겠다는 뜻이었다.“혹시 할리 연과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남우준은 엔데스 현우를 바라보며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는 이런 것들에 대해 항상 무관심하기로 유명한 엔데스 현우가 갑자기 할리 가문의 생명줄과도 같은 동쪽 광산을 요구한다는 건 기필코 무슨 일이 있었을 거로 생각했다.남우준은 오늘 밤 엔데스 현우가 할리 가문을 찾았을 때 동행하지 않았기에 할리 가문의 연회에서 벌어진 일을 모르고 있었고, 따라서 엔데스 현우의 이번 갑작스러운 결정이 소은지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리 없었다....할리 가문.연회는 끝났지만, 하선희의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특히 할리 연과 엔데스 현우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의 마음속에는 더욱 격한 불길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그 일로 인해 화가 나서 속이 터질 지경인데, 눈앞에 나타난 할리 연이 꼴도 보기 싫었다.화가 치밀어 오른 어머니의 모습에 두려움이 밀려온 할리 연은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올 것 같았다.“어머니.”할리 연의 유일한 잘못이라면, 오늘 밤의 계획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도우미가 그녀를 찾아 방문을 두드렸을 때, 그녀는 동생의 방에서 소은지를 조롱하며
소은지의 생각이 맞았다. 이건 엔데스 명우가 늘 보고 싶어 하던 그녀의 모습이었다.‘그런데 왜 막상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이렇게 짜증이 나지?’엔데스 명우는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앞으로는 다시는 이런 연회에 참가하지 마.”엔데스 명우의 말에, 운전석에 앉았던 진이형의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고, 소은지도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엔데스 저택에 도착했을 때 엔데스 명우는 그녀를 내려놓고는 그냥 가버렸다.소은지가 대문에 들어서자, 난기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는 한쪽에 엔데스 현우의 차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그녀를 본 남기는 급한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그녀에게 걸쳐 있는 남자의 외투를 보고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어찌 된 일이십니까?”“아무 일도 아니에요.”소은지는 말을 마치고 집 안으로 들어가며 난기에게 물었다.“그는 돌아오셨나요?”밖에서 엔데스 현우의 차를 보긴 하였으나 그래도 확인차 한번 물어본 것이었다.“돌아오신 지 5분도 안 되셨습니다.”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소은지는 공기 속에 스민 싸늘한 위압감에 소름이 돋았다.소파에 앉아 있던 엔데스 현우는 주변 공기가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소은지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평소와 다르게 붉어져 있었다.“그가 집까지 데려다준 거예요?”소은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단을 올라가려던 찰나,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해졌다.그가 말하는 사람은 당연히 엔데스 명우였다.소은지는 발걸음을 멈추고, 엔데스 현우를 한번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엔데스 현우 앞에서 그녀는 결국 엔데스 명우 곁에서처럼 마음대로 굴지는 못했다.‘윤아정'이라는 이름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그녀의 가슴에 차 있던 모든 분노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윤아정 때문에 소은지는 엔데스 현우 앞에서는 분노할 자격조차 없는 것 같았다.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계단을 올라가려던 순간, 남자의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다시금 공기를 가르며 들려왔다.“앞으로
주용선이 고개를 끄덕였다.일이 이 지경까지 되었으니 당연히 여기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기에 즉시 떠나기로 했다.옷을 주울 때까지도, 소은지와 하선희의 다툼에서 정말 어떤 난투극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소은지가 벗었던 드레스는 이제 조각조각 찢어져서, 도저히 다시 입을 수 없는 상태였다.“이건...”주용선은 손에 찢어진 옷 조각을 든 채, 소은지를 바라보았다.하선희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당장 나가!”‘지금 소은지를 여기서 나가라고?’주용선은 하선희의 속내가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가 소은지를 바라보자, 그녀는 이미 일어서 있었다.소은지는 하선희를 향해 서서 한 마디 한 마디 뚜렷이 말했다.“끝장을 보려는 쪽은 바로 나야.”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소은지의 말을 듣고 숨을 죽였다. 이건 완전히 불에 기름을 끼얹는 행동이었다.‘설마, 이대로 나가려는 건가?’주용선과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말을 마치고 하선희를 스치듯 지나는 소은지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사모님.”주용선이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뒤따라갔지만, 소은지는 이미 홀 한가운데를 걸어가고 있었다.밖에 있던 사람들은 그녀의 차림을 보고 모두가 경악하여 숨을 죽였다.안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의혹과 호기심 어린 시선이 쏟아지는 가운데, 소은지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그 사이로 걸어 나갔다.소은지는 가장 비참한 순간에도 여전히 당당함과 냉랭함을 잃지 않았고, 이 때문에 원래 그녀를 희롱 거리로 보려 했던 사람들마저 순간 자신들이 정확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잊어버리게 했다.엔데스 명우가 주용선의 전화를 받고 현장으로 달려왔을 때, 그가 목격한 것은 웅장한 할리 가문의 대문에서 걸어 나오는 소은지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 엔데스 명우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그는 소은지한테 다가가 몸에 걸치고 있던 외투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둘러주었고, 본능적으로 그녀를 자신의 품 안으로 감싸안았다.“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