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저녁 사이,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저녁. 이유영은 하선희의 전화를 받았다.예전과는 다른 약간 누그러진 말투였다.전화기 너머로도, 이유영은 하선희의 고통과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하선희는 전화가 통하자마자 바로 물었다.“유영 씨, 은지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하선희는 죽어도 이유영에게 전화를 걸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할리 가문과 정씨 가문은 항상 라이벌 관계였으니까 말이다.게다가 정씨 가문 사람들은 할리 가문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할리 가문 사람들이 너무 강압적인 것에 있었다.할리 가문의 사람들과 교류한다면 얻을 수 있는 이익도 많을 것이지만 리스크 또한 감당해야 했다.할리 가문 사람들은 뒤에서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고 언제든지 등 뒤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말이다.하선희가 소은지를 죽이려고 했던 때부터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사람이다.다만 하선희가 여전히 소은지를 그토록 사랑할 줄은 몰랐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소은지를 찾으러 직접 청하에 왔으니까 말이다.“전 은지가 어디 있는지 몰라요.”하선희의 말에 이유영이 차갑게 대답했다.“유영 씨, 난 유영 씨에 대해 이미 알아보고 왔어요. 청하에 있을 때 두 사람이 가장 친한 친구였다면서요? 그리고 파리에 갔을 때도 유영 씨가 은지를 많이 도와줬다면서요. 그러니 유영 씨는 은지가 어디로 간 건지 알 거예요.”“전 정말 모른다니까요.”이유영은 하선희가 여기까지 조사해 냈을 줄은 몰랐다.하선희는 이유영의 말을 듣고 고통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금 하선희가 겪고 있는 마음의 고통은 아무도 헤아려줄 수 없을 정도였다.하선희는 거친 호흡을 몰아쉬면서 겨우 입을 열었다.“유영 씨, 나는 이제 시간이 얼마 없어요.”만약 하선희가 건강했다면 소은지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하선희의 건강 상태는 그때까지 기다려줄 수 없을지도 몰랐다.지금의 하선희가 얼마나 큰 고통
엔데스 명우가 어떻게 소은지를 협박했는지도 말이다.하지만 이제는...“다 상관없어.”굳어버린 엔데스 현우를 보면서 소은지가 또박또박 얘기했다.이제는 다 상관없었다.원한이던, 미련이던. 모든 것을 알게 된 소은지는 이제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전에 소은지의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그 모든 것은 이제 소은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엔데스 명우는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아파졌다.“너...”뭐라고 얘기하려던 엔데스 명우는 눈앞의 소은지가 예전처럼 당당하고 굽히지 않는 소은지라는 것을 깨달았다.소은지는 이제 엔데스 명우가 무슨 말을 하든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소은지는 알아서 짐을 정리했다.엔데스 명우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결국 넌지시 물었다.“다 알게 된 거야?”“응.”“...”복잡했던 머릿속이 더욱 엉켜서 꼬여버렸다.엔데스 명우는 진작 예상했다. 하선희가 소은지에게 한 짓이 있으니, 소은지의 성격대로라면 진실을 알고 바로 떠나버릴 것이라고 말이다.파리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소은지는 전혀 미련을 갖지 않았다. 소은지가 짐을 들고 떠나려고 했다.엔데스 명우가 그런 소은지의 손목을 홱 잡았다.“소은지!”“74번이야.”소은지가 엔데스 명우를 보면서 겨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엔데스 명우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엔데스 명우가 정신을 차렸을 때, 소은지는 이미 짐을 들고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소은지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었다. 소은지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었으니까 말이다.그러니 이제 약점도 없는 소은지를 묶어둘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하선희는 결국 용기를 내 청하 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시각 엔데스 명우도 미친 듯이 소은지를 찾고 있었다.소은지가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어떻게 사라진 거지?”하선희는 소은지가 사라졌다는 말에 긴장해서 숨이 막혔다. 소은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으니까 말이다.할리 연은 그런 하선희
어느새 그들에게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왜... 난 왜 그 아이를 몰라본 걸까요!”하선희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소리 지르고 울었다.전에 소은지에게 했던 일을 떠올리면 하선희는 본인이 미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그동안 그 아이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력과 심혈을 기울였던가. 바로 눈앞에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난 죽어도 마땅한 여자예요. 자기 아이도 알아보지 못하다니. 내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하선희 때문에 다친 소은지를 생각하고, 또 소은지를 향해 온갖 나쁜 말과 차가운 기운을 내뿜던 본인을 떠올린 하선희는 당장이라도 본인을 죽이고 싶었다.‘은지는 이제 내가 죽을 만큼 싫겠지...?’그 생각에 하선희는 숨도 쉴 수가 없었다....엔데스 명우와 엔데스 현우는 이유영이 이 사실을 알아낼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이 사실을 하선희에게 알려줄 줄도 말이다.엔데스 명우는 소은지를 데리고 청하로 갈 것이다. 바로 소은지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기 위함이었다.더 이상 파리에서 할리 가문이 세력을 키우게 해서는 안 된다.또 한 번 파리에서 피바람이 불 것이다.하지만 소은지가 청하에 도착하자마자 이유영이 소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숨김없이 소은지에게 이 사실을 모두 알려주었다.소은지는 그 모든 것을 다 듣고도 담담해 했다.“진짜야?”“그래, 은지야. 그러니 더 이상 약점에 휘둘리지 마.”이유영은 엔데스 명우와 엔데스 현우 사이에서 약점 잡혀서 휘둘려지는 소은지가 마음 아팠다.물론 엔데스 현우와 엔데스 명우 다 소은지에 대한 태도가 약간 변했다고 하지만, 두 사람은 소은지에게 자유를 주지는 못할 것이다.이 약점에서 벗어나야 소은지는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소은지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눈앞이 뿌예지면서 시야가 흐려졌고 얼굴도 새하얗게 질려버렸다.이윽고 소은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고마워. 유영아.”소은지는 또다시 아무것도 없는 사람으로 돌아갔다.가끔 보면 진실이란 이토록 잔혹한 것이었
그리고 소은지와 있었던 다른 일까지 말이다.“앞으로 소은지를 건드리지 마.”한참 지나서야 하선희가 겨우 그 말을 내뱉었다.할리 연은 그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눈치가 빠른 할리 연은 하선희가 왜 이렇게 반응하는 것인지 바로 알아차렸다.하지만...‘왜 하필 그 사람이지? 내가 질투하던 그 사람이 하필... 소은지야?’만약 정말 소은지가 하선희의 딸이라면, 이제 할리 연은 이 가문에서 뭐가 되는 것일까.“어머니.”입이 바짝 말라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할리 연은 겨우 목소리를 짜내어 하선희를 불렀다.“내 말 알아들었지?”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할리 연을 보면서 하선희는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할리 연은 소은지가 죽도록 미웠다.하지만 하선희의 말에 반기를 들 수는 없었다.“알겠어요.”“이만 가봐. 혼자 있고 싶으니까.”“어머니...”“꺼져.”할리 연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하선희가 짜증스레 할리 연을 내쳤다.“...”원래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하선희의 하대가 더해지니 마음이 더욱 쓸쓸했다.결국 하선희의 말을 따라 방에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소은지... 또 소은지야!’할리 연은 머릿속으로 그 이름을 곱씹다가 이를 꽉 깨물고 두 주먹을 꽉 쥐었다.할리 가문에서 자라면서 할리 연은 하선희가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소은지가 아무리 밉다고 해도 소은지를 건드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아무도 소은지를 막을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하선희는 또다시 혼자 남겨졌다.한참 지난 뒤 할리 민상이 돌아왔지만 하선희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할리 민상이 다가가서 물었다.“왜 거기 있어.”주변에는 고용인이 하나도 없었다.“뭐라고 하지 마요. 내가 다 나가라고 한 거니까.”“당신... 무슨 일 있어?”할리 민상은 하선희를 보면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하선희는 젖은 눈동자로 할리 민상을 쳐다보았다.“당신 왜 그래?”“아이를 찾았어요...”“...”할리
그 말에 하선희의 표정이 확 굳었다. 옆에 있던 할리 연은 그 말을 듣고 표정이 어두워져서 놀란 눈으로 이유영을 쳐다보았다.하선희는 잠깐 흠칫하더니 이유영을 보고 물었다.“뭔가를 알고 있군요.”짧은 말을 내뱉는 숨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공기 중에 위험한 기운이 맴돌았다.할리 연은 긴장해서 이유영을 쳐다보았다.이유영은 엔데스 신우가 준 그 서류를 테이블 위에 놓고 하선희 쪽으로 밀었다.“확인해 보세요.”“이건...”“사모님이 원하시던 자료입니다.”말을 마친 이유영이 서류를 보면서 눈빛을 보냈다.이유영이 손을 놓기도 전에 하선희가 얼른 서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꺼내 확인했다.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던가. 하선희가 그 아이를 찾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과 정력을 들였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하지만 그 결과는 좋지 못했다.그런데 지금...스윽. 스윽.페이지가 넘어갔다.마지막 페이지를 본 하선희는 뒤통수를 맞은 것만 같았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할리 연은 그런 하선희의 표정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할리 연이 하선희의 손에서 서류를 빼앗아 가자 하선희가 바로 다시 빼앗아 가더니 할리 연의 뺨을 내리쳤다.“...”할리 연은 깜짝 놀란 눈으로 하선희를 쳐다보았다. 하선희가 이렇게 심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그저 서류 하나일 뿐인데 왜 이렇게 반응하는 것인지 몰랐다.하선희는 그런 할리 연을 보면서 분노 가득한 말투로 얘기했다.“버르장머리 없는 것. 얼른 꺼져!”“...”그 말을 들은 할리 연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드러났다.하선희는 한 번도 할리 연에게 손을 댄 적이 없었다.그런데 지금은...할리 연은 가슴이 아파졌다.‘직접 키운 아이보다는 오랫동안 얼굴도 보지 못한 그 아이가 더 중요하다는 뜻인가?’속으로는 미웠지만 할리 연 억울해할 수밖에 없었다.“어머니...”“꺼져.”“...”복잡한 마음이 한데 엉켜서 그
하선희.“할리 가문? 할리 연의 어머니요?”이유영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본인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엔데스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응.”“...”이유영의 머릿속에는 큰 해일이 일어난 것처럼 복잡했다. 하늘과 땅이 뒤바뀐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할리 가문의 하선희라니.할리 가문은 계속해서 소은지와 척을 지고 있는 가문이 아닌가.그런데 갑자기 이런 상황이 펼쳐지다니.이유영은 한참이 지나도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이미 그 결과를 들을 때부터 정신이 반쯤 나갔으니까 말이다.소은지가 할리 가문에게 어떤 사람인지,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왜 하선희 씨죠?”소은지와 할리 가문 사이에 일어난 일을 떠올린 이유영은 괜스레 마음이 시렸다.어떻게 세상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는 말이다.이건 운명의 장난이 틀림없었다.“엔데스 현우와 엔데스 명우, 모두 할리 가문을 쳐내기 위해 오래 기다렸어.”엔데스 신우가 얘기했다.그동안 할리 가문은 두 사람 중 누구도 지원해 주지 않았다. 게다가 두 사람을 해치우려고 수작을 부리기도 했다.아마 엔데스 현우가 그 자리에 올라갈 줄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자리에 올라간 사람은 엔데스 현우 할리 가문은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이유영은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혔다.뭐라고 얘기하려고 했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어떻게 할 생각이야?”엔데스 신우가 물었다.이 문제는 지금 아주 급한 문제였다. 엔데스 명우와 엔데스 현우 모두 소은지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이유영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알았다.하지만 소은지도, 할리 가문도 이 사실을 알 권리가 있었다.이유영은 소은지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할리 가문이 이 사실을 영원히 모른 채 소은지를 공격하는 것을 생각하면...아무리 소은지가 파리를 떠난다고 해도 할리 가문의 성격대로라면 결국 끝까지 쫓아올 것이다. 소은지 때문에 할리 가문의 명예가 실추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