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세상에서 다른 여자는, 중요할까?“만약에 내가, 한지음의 눈이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하면, 니가 나랑 여기서 실랑이 할 시간이 있을까?”강이한, “......”한지음의 얘기를 꺼냈다.강이한의 눈빛에 분명 이상한 점이 보였다.이 같은 모습에 이유영을 웃음을 터뜨렸다. “대체 언제부터, 다른 여자가 니 마음속에서 그렇게 중요해진거야?””유영아, 그 사람은 한지석의 여동생이야!”“너의 여동생이라고 말하는줄 알았네!” 예전에는 그랬잖아?그의 여동생이었다!그러기에 그녀가 무슨 짓을 하든 모두 험악한 짓이었다. “이유영!” 남자의 말투가 험해졌다. 그는 한지음의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유영이 말을 꺼냈으니.그는 이어 말했다. “전에 있던 일은 말하고 싶지 않아. 너도 한지음이 이렇게까지......!”“강이한!”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영이 말을 끊었다.그녀는 그를 바라봤다, 계속 바라봤다.“그럼 지금까지, 넌 그 일들을 내가 했다고 생각한거야, 맞지?” 사실 마음속에는 이미 답이 있었다.이 남자, 줄곧 내가 한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이러면, 더 무섭잖아!그녀가 어떤 사람이든 그는 모두 받아들였다! 이건 이유영에게 굉장히 두려운 사실이었고 그녀도 이런 용납은 바라지 않는다.그녀가 원하는건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믿어주는 남자였다.하지만, 분명히 강이한은 아니다!“내가 니 마음속에는 그런 사람이었구나, 그럼 니가 지금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이유영은 일어나 그릇을 식탁에 내리쳤다.강이한은 그녀를 바라봤다, 계속 바라봤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에는 위험과 위협이 공존했다.“원본 어딨어?” 이유영은 강이한과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군말없이 그와 함께 홍문동에 갔으며 그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목적은 분명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남자의 숨결이 차가워졌다.그녀는 신경 쓰지 않은채 계속 강이한을 바라봤다. 두사람은 마주보며 대치하고 있었다!!“따라와!” 결국 강이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쪽으
이유영은 바로 홍문동을 떠나지 않았다.그녀는 다실 쪽으로 가 정국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유영아!”“외삼촌, 저 파리로 돌아가고 싶어요!” 유영이 떠보듯 말했다.전화 반대편의 남자는 어리둥절했다.“무슨 일이야?””크리스탈 가든쪽의 일은 처리하는데 며칠 걸릴것 같아요. 외삼촌이 보고싶어서 가보려고요!”“괜찮아, 요즘 본부에서 일이 좀 생겨서 돌아와도 같이 있어줄 시간이 없어.” 전화 반대편의 정국진이 말했다.이 몇년간정국진이 이렇게 바쁜적은 없었다. 그러기에 지금 유영에게 이 말을 건낼때도 그는 어이가 없었다.유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강이한이 한 그 말의 뜻을 알것 같았다.그리고 유영은 그제야 깨달았다...... 강이한과 10년을 같이 살면 뭐해? 이 남자의 겉모습도 제대로 본적이 없는데.“그래요, 그럼 그쪽 일 다 끝나면, 제가 돌아갈게요!”“이제 두달뒤면 설인데, 그떄 들어와.”“그럴게요!”유영이 전화를 끊었다.온몸에 퍼지는 오한을 멈출수 없었다!눈을 감고 심호흡을 몇번해도 그 기운이 빠지지가 않았다.......위층 서재!남자의 하얀 손가락이 핸드폰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욱에게 전화가 갔다!전화는 금방 걸렸다. “도련님.”“이유영이 누구한테 협박 받은적은 없는지 조사해봐!” 강이한은 생각할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모든 기억을 그 날 아침으로 미뤘다!이유영과 강이한이 싸운 그 날 아침.전날 밤까지만 해도 평소와 같았다. 그 날 밤에는 심지어 할거 다 했는데 이튿날 아침에 뜬금없이 이혼?하룻밤 사이에 사람이 바뀐것 같았다.그 이후로 이유영은 그와 이혼하기 위해 심지어 목숨을 걸었다.여기서 강이한은 의심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유영이 그 전에...... 분명히 어떠한 자극이나 위협을 받았을 것이다.“사모님을 협박할 사람은 없지 않을가요?” 전화 반대편의 시욱이 어리둥절했다.강씨 집안!그 집안은 크리스탈 가든에서 어떤 존재일까?대체 누가 감히 이유영을 협박할까
”외삼촌이 미 몇년간 바쁜적이 없었는데 방금 통화하니까 본부에 일이 생겼대! 무슨 일인지 알려줄수 있어?”이 일이 강이한과 관련이 있다고 이유영은 확신했다.그리고 바로 이 점이 그녀를 오한에 떨게 했다.이 남자, 능력이 대체 어디까지인거야?거기는 파리란 말이야!그의 손이 이미 파리까지 뻗어졌다고!?강이한이 말했다. “큰 문제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냥 좀 바쁘기만 할거야.”“강이한, 이런 행동이 로열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는거야 모르는거야!?”“니 외삼촌이 관리만 잘하면 바람이 새지는 않을거야. 그냥 바쁘기만 할거야. 그리고 니 쪽 일은 신경쓸 시간이 없겠지, 안그래?”너......”유영은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지금 그녀는 그의 얼굴을 잡아 뜯고싶었다.그녀가 발작하려 할때 팔에서 힘이 전해지더니 한바퀴를 빙돌아 남자의 품으로 안겨졌다.가뜩이나 화가 난 유영은 더 화가 났다.“움직이지마.” 그녀가 발버둥을 치려할때 남자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아기를 달래는듯한 목소리였다.하지만 강압이 살짝 들어간 달램이었다. “니가 말을 잘 듣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더 바빠질거야!”그 사람들!정국진, 박연준!박연준은 청하시에서 대체 어떤 사람일까?강이한이 그 쪽 사람들까지 건드릴줄은 몰랐다.“대체 그 사람들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유영은 너무 궁금했다.강이한이 무슨 짓을 한건지.무작정 정국진을 물어보지도, 그렇다고 박연준을 물어보지도 못했다.모두 똑똑한 사람들이었다!괜히 물어봤다가 그들이 이상한 낌새라고 눈치챘을가봐 걱정이 되었다.“유영, 너는 정말 똑똑해!” 강이한은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것을 안다.역시, 그녀도 참을성 하나는 대단해.“근데 넌, 박연준과 정국진이 알게된다면 어떨것 같애?”유영의 눈커풀이 떨렸다!이걸 물어보네.온몸에 퍼지는 숨결을 누를수가 없었다.그녀의 모습을 본 강이한이 웃으며 말했다. “나쁘지 않아. 크리스탈 가든에서 일을 하더니, 역시 발전이 있어!”예전의 유영이라면
유영이 객실로 들어갔다!남자는 그녀에게 위협적인 눈빛을 주었다. 그녀는 결국 그들의 쓰던 안방으로 돌아갈수 밖에 없었다.익숙한 모든 것을 본 유영의 마음은 평화롭지 못했다.“정말 안 씻을거야?” 그녀가 방문앞에서 움직이지 않자 남자의 호흡이 그녀의 목에 닿았다. 놀란 유영은 온몸에 긴장감이 들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눈에는 온통 증오로 가득찼다.저번 생에 강이한은 나를 이곳에서 불태워 죽였다. 그런데 이번 샘에서도 그녀를 못살게 군다니! 그들의 전전생에 그녀는 대체 이 남자에게 무슨 빚을 졌길래.이번생에 이런 수난을 당하는걸까.유영이 열 받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르는 그때 핸드폰이 ‘지잉-’하고 울려 그들의 분위기를 깨뜨렸다.번호를 보니 소은지가 걸어온것이다.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은지야!”“저녁에 순정동으로 돌아갔다며?”“응.” 지금 홍문동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소은지가 걱정할까봐 무서웠다.소은지한테는 강이한이 그닥 좋은 남자가 아니였다!“그럼됬어, 나 먼저 잘게.”“응.” 전화가 끊겼다.거센 팔힘이 그녀를 품으로 안겨지게 했다. 그 순간...... 유영은 본능적으로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남자에게 꽉 잡혀버렸다.“유영아, 정말 말 안들을거야?””강이한......” 그 순간, 유영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온 몸에서는 매서운 기운이 풍겼다.그녀는 그가 자신을 건드리는게 싫었다.그리고 강이한은, 그걸 눈치챘다!두 사람의 호흡이 무거워졌다. “보고싶었어!”“넌 나한테 이러면 안돼.” 유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지금 남자에게 한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그의 손에 대체 뭐가 들었길래! 박연준과 외삼촌이 연속으로 어려움에 처했는지 모르겠다.그녀는 할수없이 이 남자에게 잠시 굴복해야 했다.하지만 굴복한다고 해도 선은 지켜야 한다.그들사이에는 전생과 현생이 있는데 어떻게 예전으로 돌아갈수 있을까!?“내가 너 건드리는게 겁나?”, “왜, 응?” 그녀 몸의 떨림은, 강이한도 느낄수 있었다.그를
“세시요!”“그래요, 데리러 갈게요.” 박연준이 돌아온다고 하니왠지 모르게 유영은 마음이 편했다.강이한은 미친것 같다.강이한의 주변 사람들도, 미친 놈이다!......그날 밤!강이한은 대체 뭘 하러 간건지 밤새도록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유영은 좋았다!이튿날 아침.하인이 유영앞에 나타나 준비해둔 옷과 가방을 건냈다. “사모님, 이건......””이 아가씨!” 하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해 유여은 넌지시 주의를 줬다.그녀는 사모님이란 호칭이 싫다.이 호칭은 그녀가 이곳에서 겪었던 수단들만 떠올리게 할뿐이다.강이한 곁에서, 그녀는 적지않게 당했다.“네, 이 아가씨. 이건 도련님께서 준비하신 옷과 가방입니다.”“놔두세요!” 유영은 딱히 관심이 없었다.하인은 물건을 내려놓고 나갔다.유영은 힐끗 보더니 핸드폰을 들어 조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빨리 걸렸다. “이 사장님.”“홍문동으로 옷이랑 가방좀 가져다줘.”“홍, 홍문동으로요?”“응!”전화 반대편에서 잠시 침묵하더니 빠르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전화가 끊겼다.유영은 욕실에 들어가 씻었다. 그녀는 강이한이 준비한 것들을 입지 않았다.어젯밤 박연준의 전화를 받은 뒤강이한의 수법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그녀는 계단을 내려갔다.강이한이 식탁앞에 앉아있었다. 그녀가 옷을 갈아입지 않고 내려온것을 본 강이한은 아주 잠깐 눈썹을 지푸렸다. 하지만 잠깐이었다.대충 왜 그랬는지 알것 같았다.유영은 그의 맞은켠에 앉아 죽을 한입 떴다.강이한이 물었다. “박연준이 전화했어?”이유영은 잠시 멈칫했다!그리고 그를 바라봤다. 눈빛은 예리했다.그녀의 이런 눈빛을 본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어젯밤 전화를 받았나봐? 아침에는, 받았어?”“무슨 뜻이야?”유영은 아침잠이 많았다.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얘기들은 그녀의 급한 성질을 더 돋구웠다.강이한이 뭐라 말하려고 하는 순간, 유영이 방금 내려놓은 핸드폰이 식탁위에서
강이한은 이미 화가 날 대로 난 이유영을 보고도 태연하게 그릇 안의 핸드폰을 슬쩍 쳐다보았다.“이리 와.” 세 글자, 날카롭고도 위엄 있다.이유영은 자리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순종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분명했다.강이한이 호통쳤다. “다 나가!”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특별사면이라도 받은 것처럼 뿔뿔히 자리를 떴다.이유영과 강이한 둘만이 남았다. 강이한이 일어서더니 길쭉한 다리로 성큼성큼 그녀에게로 다가왔다.이유영은 의식적으로 도망치고 싶었으나, 오기로 자리에 계속 눌러앉아 있었다.남자의 강한 기세가 덮쳐와 그녀의 온몸을 감쌌다. 그녀가 정신도 차리기 전에 남자는 병아리 낚아채듯이 그녀를 좌석으로부터 끌어올렸다. “이유영, 내가 그 동안 너한테 너무 오냐오냐했지?”강이한이 어금니를 깨물고 말했다.그는 아예 그녀를 안고 소파에 몸을 내던졌다. 이유영이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강이한이 바로 옴짝달싹 못하게 꽉 눌렀다.“어디서 겁대가리 없이, 감히 외간 남자 때문에 나한테 대들어, 어?”강이한이 그녀의 목을 점점 더 세게 졸랐다.이 때, 이유영이 안간힘을 써서 눈을 뜨자 강이한의 표독스러운 눈과 마주쳤다.그의 눈에 비친 독기를 보니 그들 사이는 마치 전생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때, 이유영은 의지할 곳 하나 없었고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강이한이였다. 그런데 강이한이 자신을 이처럼 대했을 때, 그때 느꼈던 절망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재간 있으면 날 죽여!”“죽여?”“……”“내가 왜?”“……”“난 너를 지켜주는 놈들만 하나하나 없애버릴 거야!” 강이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독기가 차있다.이런 독기를 이유영은 본 적이 있다.전생에서 그가 한지음을 위해 이유영의 각막을 뺏어가려고 할 때이다.“그래?” 이유영이 냉소하며 도발했다.박연준과 정국진도 다들 보통 인물은 아니지만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그들이 알고 나면 강이한 쪽도 머리가 좀 아플 것이다.강자 간의 대결이라!그런 상황은 강이한도 원치 않을
그러나 지금의 이유영은 달라졌다.안된다.그걸로는 부족하다.잘 정리하고 문을 나섰다. 홍문동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던 조민정이 이유영을 보자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괜찮아요? 전화했었는데 폰이 꺼져있더라고요.”“괜찮아요.”핸드폰을 강이한의 죽 그릇에 던졌으니 전원이 당연히 꺼졌을 것이다.하지만 조민정이 이렇게 걱정해 주니 이유영은 가슴이 뭉클해났다.조민정이 그를 바라보며 쇼핑백을 건넸다.“옷이랑 가방 챙겨왔어요.”“고마워요.”“뭘요.”이유영 목에 난 멍 자국을 본 조민정은 입술을 파르르 떨다가 결국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어차피 자신은 이유영의 부하직원일 뿐이다. 상사의 사생활에 대해 묻는 것은 좀 그렇다.하지만 그녀와 강이한의 관계를 생각하니 또 갈등이 생겼다.이유영은 말없이 옷을 갈아입고 벗어놓은 옷을 차창 밖으로 버렸다. “......”그렇다.이 모습은 분명히 강이한과 눈곱만큼도 얽히기 싫다는 뜻이다.......이유영은 회사에 도착한 후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누가 다가오기만 하면 화를 내서 임직원들까지도 그녀가 기분이 언짢다는 것을 알았다.지현우가 문서를 들고 들어와서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 있습니까?”들어오면서 울상을 하고 나가는 직원을 본 모양이다.“별일 없어요.”말은 그렇게 했으나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지현우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 외삼촌께서 친히 보낸 사람이기에 아무리 기분이 안 좋아도 지현우에게는 화를 낼 수 없다.하지만 강이한을 생각하면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사생활로 직장에 영향 주는 것은 별로 안 좋습니다. 특히... 여성이라면.”이 말을 들은 순간, 펜을 들고 있던 이유영의 손이 멈칫했다.지현우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도 적의가 어렸다.지현우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말했다.“여성이라고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 분위기가 그렇습니다.”“흥.”워낙 불편하던 심기가 더 불편해졌다.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모든
불과 이틀 시간이다.소탈하고 대범하던 이유영이 강이한에게 이렇게 짓눌리게 되다니. 하지만 그녀도 보통내기는 아니다.달갑게 받아들이고 넘어갈 리가 없다.게다가 이유영과 강이한은 어디 보통 사이인가. 원래는 이혼 후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서로 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강이한의 기세를 보니 이유영을 놔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았다.그리고 또 하나……강이한의 수단을 보니 대단한 가문과 정략결혼을 시켜 강씨 가문을 키우려는 것도 진영숙의 일방적인 생각이다.강이한은 그런 것 따위 필요없었다.……점심시간이 되었다.강이한으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이유영을 골치 아프게 했다.“지금 바로 내려와.”이유영이 대답이 없자 강이한이 다시 말했다.“내려오라면 내려와!”이유영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 이유영은 이를 악물고 강이한을 참고 있다.그런데 이 갑작스러운 행동은 뭐지?그녀는 순간 당황해났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머리를 굴려보았다. 다시 합치는 건……아니야, 이건 아니야!“난 식사 생각 없어. 좀 이따 회의가 있어서 이만.” 이유영의 말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회의 약속이 잡혀 있었다.상대방이 뭐라 하기도 전에 이유영은 전화를 끊어버렸다.지현우의 말을 새기고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회의실로 들어갔다.“시작하시죠.” 이유영이 입을 열었다.의심할 여지 없이 오늘 회의 주제는 어제 있었던 일에 관해서이다.이유영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강이한이 자료를 회사 내부로부터 전해 받았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유영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지현우에게 말했다.“재무실장 좀 오라고 하세요.”“네.”지현우는 영문을 몰랐다.원래대로라면 오늘 회의는 재무실에서 참석할 필요가 없었다.필경 전 대표가 남겨놓은 것들이고 자료만 봤을 땐 재무와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그래도 이유영의 지시대로 재무실에 전화해서 회의 참석 요청을 전했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재무실장이 올라왔다.“대표님.”그의 얼굴에서 불안함이 보였
박연준은 백산 별장에서 무슨 정신으로 나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문기원은 그를 보자마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선생님.”“유영이가 이 사건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 넌 알고 있었어?”박연준은 문기원을 바라보며 낮게 물었다.문기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굳어버렸다.사실 이유영이 파리로 돌아온 순간부터 그녀는 이미 그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었다. 하지만 강이한도, 박연준도 그 사실을 끝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그리고 오늘 정국진과의 대화는 박연준에게 더욱 큰 충격을 안겼다.“네...”문기원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주변 사람들은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 박연준과 강이한만이 끝까지 그 무서운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다.“가자.”박연준은 그 주제에 대해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무심하게 차 쪽으로 걸어갔다.문기원이 뒤따르며 말했다.“신시욱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신시욱?”박연준은 걸음을 멈추며 문기원을 바라보았다.신시욱은 강이한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강이한이 용성시를 떠난 이후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박연준조차도 몰랐다.‘연락이 왔다고? 왜?’아마도 이유영과 엔데스 신우 관련 기사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기사들이 떠오르자 박연준은 다시금 머리가 지끈거렸다.“무슨 말 했어?”그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실려 있었다.“어떻게든 사모님과 이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박연준 역시 이혼할 생각은 없었다. 그 생각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이유영은 이미 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는 정국진의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연준은 이 혼인을 유지하고 싶었다.혼인만 유지된다면 엔데스 가문도 그녀를 더 깊은 수렁으로 끌어들이지는 못할 것이라 믿었다.“강이한은 지금 어디 있대?”“말하지 않았습니다.”“진영숙 씨에 대해서는 언급했어?”진영숙의 현재 태도는 박연준에게 그야말로 골칫거리였다.그녀는 강이한의 어머니이자 현재 이유영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존재였다. 그것만으로도 박연준의
박연준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가 냉정한 남자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마치 냉혈한처럼 누구도 그의 마음을 쉽게 녹일 수 없었다.하지만 지금 그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박연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롭고 차가웠다.“유영이에게서 떨어져요. 도장은 제가 찾아드릴게요.”그 말이 떨어지자 등받이에 우아하게 기댄 남자가 장난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엔 동시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이 정도면 사랑인지 죄책감인지 헷갈리네요.”‘사랑? 죄책감?’그런 감정은 이제 박연준 자신도 구분할 수 없었다.하지만 지금 한 가지는 분명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유영이 엔데스 가문에 휘말리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박연준은 더블루 리버스를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엔데스 신우의 말은 옳았다.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엔데스 가문이 아니라 이유영이었다.이유영이 자신과 이혼하지 않는다면 엔데스 가문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녀에게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다.그런데 이런 중대한 시점에 정국진이 그녀의 이혼을 허락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한편, 이유영은 풍산으로 향했고 박연준은 백산 별장으로 향했다.정국진은 박연준의 방문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결국 서재에서 마주 앉았다.박연준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왜 그런 겁니까?”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이혼에 관해 물었다.이유영이라면 모를 수도 있지만 정국진은 분명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정국진은 잠시 말없이 박연준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깊고도 날카로웠으며 마치 그의 속마음을 모두 꿰뚫어 보는 듯했다.긴 침묵 끝에 정국진이 입을 열었다.“너와 강이한이 저지른 일들은 유영이 마음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거야.”그 말에는 무거운 진실이 담겨 있었다.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고 지난 10년 동안 이어져 온 감정은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모두 놀랄 일이었다.하지만 이유영은 그 일의 당사자였고
이유영은 그 말을 끝으로 뒤에 있는 커다란 지바겐에 올라탔다.그녀가 차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용준도 조용히 자신의 차에 탑승했다. 그리고 곧바로 박연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연준은 지금 더블루 리버스에 있었다.두 사람의 눈빛은 모두 얼음처럼 차가웠고 그들 사이에는 날 선 긴장감이 감돌았다.전화를 확인한 박연준은 맞은편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남자를 흘끗 바라보고는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돌아갔어?”“네.”“알았어.”짧게 대답을 남긴 박연준은 전화를 바로 끊었다.맞은편에 앉아 있던 엔데스 신우는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의 모든 동작은 절제되어 있었고 우아함이 묻어났다.“지난 몇 년 동안 엔데스 가문 사람들은 이곳에 온 적 없었나 봐요?”박연준의 목소리는 깊고 무거웠다.만약 엔데스 가문 사람들이 더블루 리버스에 자주 드나들었다면 박연준은 이미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챘을 것이다.“바보가 사는 곳에 그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관심이나 두겠어요?”신우는 비꼬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바보라... 흥!”‘세상에 이렇게 만만치 않은 바보도 있나?’“유영 씨가 법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죠?”엔데스 신우의 장난스러운 말투에도 불구하고 그 말 한마디에 박연준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유영이를 이미 알고 있었다면 파리에서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라는 것도 아실 텐데요?”“전 그런 적 없어요. 유영 씨가 스스로 박연준 씨를 떠나려고 한 거죠.”“셋째 도련님!”박연준의 목소리엔 분명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지금 여섯째와 다섯째 동생이 모두 정씨 가문을 주시하고 있어요. 유영 씨가 이혼하고 나면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정씨 가문이 그렇게 중요한 존재였던가?’박연준의 가슴이 더욱 답답해졌다.“전 그쪽 가문 누구든지, 그런 생각하는 거 용납 못 해요.”“처음부터 이렇게 지켜주지 그랬어요. 그랬다면 지금 이 지경까진 안 왔을 텐데.”“...”‘처음부터? 도대체 언제부터?’사실 엔데스 신우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한지음의 존재는 이온유에게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다.“알겠어요.”강이한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걸 느낀 이온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바닥 먼저 치울게요.”“장 아주머니한테 부탁하면 돼. 넌 숙제하러 가.”“네.”아이는 정말이지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때때로 너무 착한 온유의 모습은 오히려 어른들을 당황하게 하곤 했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고 무엇보다 외면할 수도 없었다....한편 파리에서.이유영은 오후 3시 정각에 법원에 도착했지만 박연준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용준이었다.용준을 보자 이유영의 가슴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형수님.”“지금 이게 무슨 짓이에요?”이유영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은 분명 박연준이었다.“돌아가세요. 형님은 오지 않으실 겁니다.”이유영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복잡하고 무거운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오지 않는다고? 결국 이렇게 뻔뻔한 방법을 택하겠다는 건가?’그렇게 생각한 이유영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었고 눈빛에는 차가운 기운이 깃들었다.“저는 기다릴 거예요.”이유영은 용준에게서 시선을 돌렸고 물러날 기색은 전혀 없었다.“형님은 지금 엔데스 셋째 도련님을 만나고 계십니다.”“...”그 말을 듣자 이유영은 잠시 멍해졌다.용준은 심각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형수님, 형님을 너무 몰아붙이지 마세요.”‘몰아붙이다니? 지금 사람들이 내가 박연준을 몰아세운다고 생각하는 거야?’용준의 목소리에는 분명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마치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파리에서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처럼.풍산 그룹은 과거에 이유영에게 위협적인 존재였지만 지금 박연준은 서주에 있었기에 풍산 그룹은 더 이상 큰 위협이 아니었다.그러나 여긴 파리였다.풍산 그룹은 엔데스 가문, 나아가 정씨 가문 전체에게도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었다.“형수님을 위해 드리는 말씀입니
지나간 일들에 대해 강이한은 이제야 모두 깨닫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이유영이 박연준과 이혼하려는 결정을 듣고 더더욱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박연준이 동의했어?”강이한의 목소리는 이미 긴장한 듯 떨리고 있었다.“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지금은 뭐?’지금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이유영과 엔데스 셋째 도련님 사이의 관계였다.강이한 역시 알고 있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가 두 사람의 관계라는 것을.강이한은 말했다. “박연준에게 셋째 도련님과 유영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해 보라고 해.”강이한은 이유영이 셋째 도련님에게 마음이 생겼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이유영은 엔데스 가문의 사람과 얽히는 것을 누구보다 더 꺼려했으므로 이번 일도 예전의 엔데스 명우 사건처럼 협박에 의한 상황일 것이라 믿었다.그렇게 생각한 강이한은 미간을 찌푸렸다.“알겠습니다.”신시욱은 고개를 끄덕였다.강이한은 옆에 놓인 물잔을 들기 위해 손을 뻗었다.“쾅!”아무리 주변을 예민하게 감지해도 손이 닿는 순간 컵은 바닥에 떨어지며 귀가 찢기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그 소리에 강이한의 가슴도 유리컵처럼 산산조각이 나는 듯했다.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는 건 바로 이런 거였다.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아무리 날카로운 감각이라 해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선생님.”“아빠.”신시욱과 이온유의 긴장된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강이한은 어둠 속에서 생생한 무력감을 느꼈다.차가운 작은 손이 그의 손을 잡았다.“다친 곳은 없는지 볼게요.”이온유는 긴장한 얼굴로 강이한의 손을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아이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강이한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에는 깊은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아빠, 필요한 게 있으면 제가 가져다드릴게요.”이온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말에 강이한의 목소리도 한없이 부드러워졌다.“그래.”신시욱은 묵묵히 강이한과 이온유를 바라보았다.우천시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 그들은 이온유에게
시력을 잃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주변을 더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심지어 사람들의 감정까지도 느껴졌다.이유영이 아무것도 볼 수 없었을 때, 그의 모든 미세한 변화를 다 알아차렸던 것을 떠올리며 문득 궁금해졌다.‘그때 유영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이유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도 그의 모든 감정을 다 느끼고 있었다.그 사실을 떠올리자 강이한의 가슴이 먹먹해졌다.“말해 봐. 무슨 일이야.”결국, 강이한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신시욱의 심각한 분위기를 감지한 강이한은 이유영에게 안 좋은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직감했다.신시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사모님께서 오늘 오후, 박연준 씨와 이혼하십니다.”“...”“게다가 태도가 매우 강경하십니다.”강이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쾅’ 하고 울리는 듯했고 이마의 핏줄이 꿈틀거리며 고통이 밀려왔다.“엔데스 가문의 그 도장은 아직 소식 없어?”“아직 없습니다.”‘그런데도 지금 이혼하려 한다고?’‘엔데스 가문의 상속자가 되려면 정씨 가문의 지지가 얼마나 절실한지 알고는 있는 걸까?’이혼을 강행한다면 정씨 가문은 엔데스 가문과 정면으로 맞서게 될 것이다.‘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정말 아무것도 상관없다는 건가?’“그리고...”신시욱의 목소리엔 걱정이 깊게 실려 있었다.“그리고 뭐?”강이한은 이미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마음이 무거웠다.‘이유영,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어젯밤, 사모님께서 엔데스 셋째 도련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박연준 씨는 굉장히 초조해 보였고요. 그리고 오늘 아침, 사모님이 먼저 이혼을 제안하셨고 태도는 단호했습니다. 그래서...”신시욱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이거였다.어젯밤, 이유영은 엔데스 셋째 도련님과 함께 있었고 그다음 날 아침 박연준에게 이혼을 강하게 밀어붙였다.그렇다면 이 일에 엔데스 셋째 도련님과 상관있지 않을까?셋째 도련님의 이름이 언급되자 강이한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그 바보 같은 놈...
이유영이 백산 별장에 돌아왔을 때, 정국진은 이미 나가고 임소미만이 집에 남아 있었다.이른 아침만 해도 괜찮았던 그녀의 표정은 지금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엄마, 무슨 일 있어요?”임소미의 얼굴을 보고 이유영은 다급히 다가갔다.임소미는 딸의 눈앞에서 감정을 억누르려 했지만 이내 힘이 빠진 듯 주저앉았다.숨을 몇 번이나 고르며 마음속의 울분을 꾹꾹 눌러 담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무슨 일인데요, 엄마?”임소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유영은 곁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유영이 소파에 앉자마자 임소미는 이유영을 끌어안았고 묵직한 기운이 그녀의 몸에서 전해졌다.‘늘 이성적이던 엄마가 이토록 감정을 드러낼 정도라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이유영은 임소미의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잠시 후, 임소미가 숨을 길게 내쉬며 입을 열었다.“진영숙의 변호사가 왔어.”“...”그 말에 이유영의 머릿속이 하얘졌다.‘변호사라니?’“무슨 일로?”질문은 했지만 그녀의 마음속엔 이미 답이 있었다.진영숙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어젯밤, 이유영은 진영숙이 다음엔 어떤 방식으로 들이닥칠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강이한이 줬던 상처를 견디기 위해 여태 했던 노력을 생각하면 화가 나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강이한이 저질렀던 짓들로 하여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진영숙은 그런 그녀를 통해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을 것이다.진영숙뿐만 아니라 이유영도 강이한이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어제 진영숙이 남긴 말들이 머릿속에서 다시 떠오르려는 찰나 임소미가 먼저 말을 꺼냈다.“그 여자가... 월이를 데려가려고 해.”역시 예상대로였다.진영숙이 정씨 가문에 변호사를 보낸 이유는 그녀에겐 지금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강이한조차 사라진 상황에서 진영숙은 결국 남아있는 유일한 핏줄에 기대고 싶었던 것이다.아무리 이유영을 미워해도 월이만큼은 그녀의
이유영의 말은 박연준의 가슴을 깊게 파고들었다.이유영이 이혼을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국진이었다.그렇다. 아버지로서 이유영이 이런 삶을 사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수 없었을 것이다.그래서 그는 이유영이 이혼하고 가장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한 것이다.하지만 정씨 가문의 딸이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겠는가?박연준은 알고 있었다. 이유영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딸과 함께 가장 조용하고 가장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을.그러나 그것은 정씨 가문과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박연준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가슴속의 억눌린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겨우 입을 열었다.“강이한이 떠나기 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용성시에서 돌아온 후, 아니, 우천시에서 돌아온 그날 이후로 이유영은 단 한 번도 강이한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서주에서 큰일이 있었을 때조차 강이한은 그녀의 마음속에서 이미 낯선 사람이 되어 있었다.박연준 역시 그녀 앞에서 강이한을 거의 입에 올리지 않았다.그들의 사랑이 철저히 부서져 가는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본 사람이기에 이유영이 강이한을 얼마나 깊이 미워하게 되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그것이 박연준이 바라왔던 결말이었다.하지만 정작 그 끝을 마주하니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다.특히 요즘의 이유영은 마치 타락해 버린 사람처럼 때때로 낯설만큼 달라졌다.“...”이유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박연준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강이한이 서주를 떠나기 전 가장 두려워했던 건, 정씨 가문과 엔데스 가문의 악연이 너한테까지 얽히는 거였어. 그래서…”“그래서, 너더러 나랑 결혼하라고 한 거지?”이유영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날카롭고 차가운 말에 박연준은 잠시 말을 잃었다.“그렇다고 그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어? 겉으론 싸우는 척하면서 두 사람 사이가 이렇게까지 가까운 줄 난 몰랐네.”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친분을 넘어섰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우연히 본 사진 속에서 두 사람은 어딘가
이유영이 조용히 차 문을 열고 내리려고 하자 순간 손목에 닿는 남자의 힘이 느껴졌다.더는 박연준과 어떤 말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이쯤 되었으면 둘 사이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유영아.”박연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차가운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박연준의 가슴엔 미세한 통증이 밀려왔다.‘그래, 이 모든 건 나 때문이야.’그가 한지음을 강이한 곁에 보내지만 않았더라면 연서의 대역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를 것이고 이유영과 강이한은 지금쯤 행복했을 것이다.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유영과 강이한의 인생 전반 부분을 철저히 망쳐 놓은 건 바로 박윤준이었다.그래서 이유여도 이렇게 변해버린 것이다.박연준의 가슴에 거센 통증이 밀려왔다.“지금 우리 사이에 더 말할 게 있다고 생각해?”“걱정되지도 않아? 엔데스 가문 쪽에서...”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연준은 입을 다물었다.자기 모습이 너무 비겁해 보였기 때문이다. 한 여자를 붙잡기 위해 이런 말까지 하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졌다.엔데스 가문과 정씨 가문의 관계는 언제나 예민한 화두였다. 특히 최근 이유영과 강이한이 이혼한 후로는 더욱 그랬다.엔데스의 여섯째 도련님, 이제는 셋째 도련님까지 나서서 정씨 가문을 노리고 있었다.엔데스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금, 파리에서 정씨 가문이 차지하는 위치는 어마어마했다.흩어진 엔데스 가문의 사람들은 다시 권력을 갈망했고 그들에게 정씨 가문은 꼭 붙잡아야 할 대상이었다.그리고 그 중심에 선 사람이 바로 이유영이었다.모두가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이유영에게 접근하고 있었다.“박연준, 너도 알고 있지? 너 참 비참해 보여.”그녀는 박연준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그는 누구와 함께 있든 결국 불행하기만 했다. 그게 연서든 이유영이든.“네가 강이한을 그렇게 미워하는 이유는 예전에 연서도 강이한을 사랑했기 때문이지?”박연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