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갈등이 있는 사람들인데 서로 낯선 사람인 것처럼 연기를 했다.“외삼촌의 뜻은 박연준이 그때 당시 그 학교로 간 것이 강이한 때문이란 말인가요?”“십중팔구!”그 사진 속 두 사람의 친밀 정도에서 보아낼 수 있었다.그래서 그 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지가 더욱 의미심장해졌다.정국진은 이유영을 보며 말했다.“어찌 됐든 그 일에 대해 자세히 알아내기 전까지, 넌 일단 연준이랑 조금 거리를 유지해.”“네. 알겠어요.”이유영은 깊게 한숨을 들이켜고는 고개를 끄덕이었다.하지만 가슴속의 그런 답답함은 여전했다.원래 주변의 일들에 대해 조금 몽롱하게 느껴졌는데 지금 다시 돌이켜보니 박연준이 예전에 자신을 구해줄 때...지금 이유영은 그제야 박연준이 그때 매번 자신을 구해줬을 때, 설마 번마다 어떤 음모가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 박연준은 매번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 이유영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도와준 것 같았다.그리고 그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게 바로 외삼촌이 말한 것처럼, 강이한에게도 그랬듯이 이유영에게 접근한 것도... 사실 다 계획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유영아, 유영?”“네?”이유영은 너무 몰두하며 생각한 나머지 정국진이 여러 번 그녀의 이름을 불러서야 이유영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정국진이 말했다.“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내가 최대한 빨리 이 상황들을 다 정리해 놓을게.”“네.”이유영은 아주 울적한 소리로 대답했다.정국진은 조금 걱정이 되었다.전에 매번 이유영이 사진에 관해 물었을 때 정국진이 대답해 주지 않은 것도 그 이유였다. 사실 여자애들은 어찌 보면 민감한 부분들이 있다.그리고 이유영의 민감한 부분도 정국진이랑 같았다.예를 들어, 그렇게 믿었던 박연준한테서 이상함을 감지했을 때, 정국진은 거의 즉시 바로 박연준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그리고 바로 은밀히 조사에 착수했다... 심지어 이유영더러 박연준을 멀리하라고 했다.게다가 이유영도 민감한 사람
필경 엔데스 명우는 지금 소은지라는 이유영의 약점을 잡고 있었다. 소은지... 이유영이 지금 믿을 수 있는 많지 않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파리가 제일 혼란스러울 때, 그리고 이유영이 주변의 상황을 잘 알아보지 못했을 때, 소은지는 여전히 이유영 마음속의 믿음의 버팀목이었다.그런 소은지를 이유영이 어떻게 마음에 두지 않을 수 있을까?오후, 엔데스 명우는 예복을 보내왔다. 이유영의 패션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아주 밝고 현란한 하늘색 예복이었다.이유영은 종래로 이런 색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이 키고 작으니, 이런 화려한 색을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스스로 생각했다.하지만 결국 예복을 갈아입고 보니 이유영은 또 엔데스 명우의 독특한 안목에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예복의 디자인은 마침 아주 적절하게 옷 색깔에 대한 이유영의 불만을 없애주었다.집에 돌아온 정국진은 이유영을 보며 물었다.“너 이 옷차림은 뭐야?”“저녁 연회요!”“여섯째 도련님이랑?”“그렇죠!”여섯째 도련님 얘기가 나오자마자 이유영은 화가 치밀어올랐다. 지금 이 남자는 쇠뿔도 단김에 뺄 셈으로 이유영을 데리고 다니면서 얼굴을 익히기로 한 것이었다.엔데스 명우는 지금 온 천하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정씨 가문이랑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려는 셈이었다.정국진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이 연회에 대해 아주 탐탁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외삼촌,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할게요.”정국진이 자신을 걱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유영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정국진은 이유영의 머리를 문지르며 말했다.“너도 참!”그의 말투에는 어쩔 수 없다는 기운이 깃들어있었다.정국진도 당연히 이유영이 비즈니스에서 자신의 독특한 강인함과 매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적인 공간에서도 자신만의 총명함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그녀는 자신이 말한 것처럼 아주 이성적으로 모든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으며 지금의 그녀는 예전에 강이한 곁에 있던 남에게 의지하고
하지만 현재, 이유영과 강이한 두 사람의 관계성은 이미 정과는 무관했다!그저 강이한이 지금 이 파리의 정세에 대한 영향, 이 사람이 그중에서 어떤 존재인지와 상관이 있었다.지금 보니, 강이한 이라는 존재가 파리에 있어서 엄청 관건이 되는 것 같았다!관건이 되는 이상, 정씨 가문에 대해서는... 또 어떤 영향이 있을까!?이러고 보니, 이유영과 강이한 사이에는 이렇게 이익과 미지의 리스크가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해지게 되는 날도 있었다....연회에서 엔데스 명우는 자기 신변의 배천명 보고 이유영을 맞이하라고 했다. 갑작스럽게 불쑥 나타난 정식 약혼녀 이유영에 대해 배천명은 비록 태도가 공손했지만, 이유영도 그 사람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쌀쌀맞은 기운을 느꼈다.차에서 내리기 전, 이유영은 자신을 위해 문을 열어주는 배천명을 곁눈질하며 그에게 물었다.“당신 설신비라는 사람과 친한가요!?”“이 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그게 아니라면 전 그쪽이 저를 싫어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네요!”전에 조형욱이라는 전례가 있으니, 이유영은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이유영의 말을 듣자, 배천명은 몸이 굳어졌다.그리고 몸에서 내뿜던 쌀쌀한 기운은 이 순간 몇 푼 더 차가워졌다.배천명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이유영은 그의 턱을 잡고는 세게 그의 머리를 치켜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배천명은 이 작은 여인의 눈 밑에서 남다른 독기를 보았다.이유영이 입을 열고 말했다.“당신이 설신비랑 무슨 사이였든지 저는 상관 안 해요. 당신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소은지한테 무슨 짓을 했다는 것만 저에게 들키지 마세요. 아니면 전 반드시 단칼에 당신의 목을 그을 거예요!”이유영의 말투는 유달리 사나웠다.말을 마친 후 이유영은 눈 밑이 순간 차갑고 사납게 변한 배천명을 휙 뿌리쳤다.배천명이 고개를 숙인 그 순간, 그의 눈 밑에는 셀 수 없는 위험이 깃들어 있었다.이유영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냉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고하게 위에 있는 여왕처럼 온몸에
엔데스 명우는 이유영의 차가운 손을 잡으며 그녀를 자기의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이 행동은 마치 그녀를 자신의 품속에 감싸는 것만 같았다.그래서 이 동작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숨을 들이켜게 했다.엔데스 명우에 관한 스캔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공식적인 자리에 사람을 데리고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심지어 지금 도는 소문에 의하면 엔데스 명우는 로열 글로벌의 대표 이유영을 위해 자신의 주변 여자들을 깔끔히 정리했다는 말까지 있었다. 그야말로 왕이 미인을 위해 주변의 여인들을 다 정리한 셈이었다.지금 이유영을 바라보는 그 눈빛들은 어디 증오뿐이겠는가?완전 이유영을 엔데스 명우의 품속에서 끌어내지 못해 안달 난 독기 가득한 눈빛이었다.“봐요. 이렇게 내 곁에 있으니, 당신도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상대가 되었잖아요.”이유영은 여전히 웃는 표정을 지었지만, 말투는 유달리 사나웠다.“저 사람들은 날 잡아먹으려는 거예요.”‘이 남자는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정말 내가 모든 사람의 선망 상대가 되는 걸 바란다고 생각하나 봐?’무도회에서의 춤 타임은 그야말로 친밀하고 애매했다.아담하고 뽀얀 이유영과 엔데스 명우가 무도장 플로어의 한가운데서 춤을 추는 것이 정말 독특한 풍경이었다. 비록 이유영의 외적인 모습은 전혀 고귀하고 패기 넘치는 왕비랑 서로 연상시킬 수 없었지만, 그녀가 엔데스 명우한테 품속에 안긴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면서도 부럽게 만들었다.“저기 봐요. 저 여인들이 당신을 보는 눈빛이 더욱 뜨거워졌어요!”“나도 알아요.”이유영은 원래 화가 났지만 지금 엔데스 명우가 자기의 귀에 대고 이 말을 하는 것을 들으니 더욱 화가 났다.‘이 남자는 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나를 그런 눈빛으로 보는지 알기나 한가? 저건 절대로 내가 미워서 잡아먹으려는 눈빛이야.’연회 한 번에 기세가 등등했다.전에 한번 공항 기사가 나서, 전 파리 사람들은 다 엔데스 가문의 여섯째 도련님과 정씨 가문의 후계자 사이에 경사가 날
여자의 일관적인 사유에 따르면, 남자는 일단 한 여인이 자기의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여자에 대해 어떤 감정이 있든지 다 그 여자가 떠나게 가만히 있고만 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만약 진짜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고 이 아이의 출생에 대해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이 아이가 태어나게 두지 않을 것이었다.아무튼, 어떤 상항이든 엔데스 명우가 이 아이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다면 절대로 지금처럼 소은지가 파리를 떠나게 놔두지 않을 것이었다.“여섯째 도련님은 아직 모르고 계십니다!”“그럼, 당신이 영원히 그 사람한테 알려주지 말길 바라요. 필경 당신도 은지가 여섯째 도련님의 아이를 낳는 것을 바라지 않을 거잖아요...”말을 마친 후 이유영은 배천명에게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려 집으로 걸어갔다.하지만 배천명은 오만스러운 이유영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찡긋했다.‘근데 정말이지 이 아담한 여자한테는 보기 드문 굳센 기운이 있네. 만약 여섯째 도련님이 정말 이 여자랑 함께한다면 이 여자가 도련님에게 도움이 많이 될 수도 있겠네.’‘근데...’뭐가 떠올랐는지 배천명의 눈초리에는 짙은 매서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이유영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정국진을 뵈러 들어가기도 전에 루이스의 전화를 받았다. 루이스의 전화는 발신자 표신 제한으로 되어있어서 전화번호도 알 수 없었고 어디서 전화를 걸어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그저 루이스가 이유영에게 알렸다.“이미 안전한 곳에 도착했습니다!”“그래요. 알겠어요. 그녀는 잘 있어요?”그녀는 소은지를 가리켰다.아까 배천명의 말이 떠올라 이유영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조여들었다.소은지는 엄청나게 오기 만만한 사람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소은지가 사랑 때문에 누군가의 아기를 임신했다고 하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소은지가 엔데스 명우의 곁에서 당한 일들은 다시 한번 이유영의 마음을 세게 졸였다.“아뇨. 이분... 임신하셨습니다.”루이스는 조금 엄숙한 말투로 말했다.“...”이유영은 잠
한편 파리의 고요함은 점점 한 점씩 찢어졌다.여론에서 이유영이 엔데스 명우의 약혼자이며 남자 측에서 곧 고가의 예물로 결혼할 거라고 소문이 팔팔 들끓었을 때, 원래 조금씩 고요함을 잃고 있던 파리에는 또 갑자기 큰일이 한 개 일어났다.로열 글로벌에서 [이유영 대표의 로열 글로벌에서의 일체 직무를 해제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순식간에 파리를 떠들썩하게 했다.전에 사실 이유영이 정국진 외동딸의 위치를 넘어서 이미 정식으로 로열 글로벌의 미래 후계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엔데스의 여섯째 도련님과 혼인을 맺기 직전인 이 타이밍에 로열 글로벌의 모든 직무를 해제한다고?그럼, 그 말인즉 이유영은 더 이상 로열 글로벌의 후계자가 아니란 말인가?심지어 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 건, 이 소식이 발표된 지 불과 반날 만에 더욱 중대한 소식이 터져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이유영은 앞으로 더 이상 정씨 가문과 털끝만큼의 관계가 없으며 이미 정씨 집안에서 나갔다]는 소식이었다.이 소식은 그야말로 핵폭탄 같은 소식이었다.심지어 오전에 나온 소식보다 더 충격적이었다.이건...지금 이유영이 로열 글로벌의 후계자가 아니라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 정씨 가문에서 쫓겨났다는 말이었다.“그러니까 친 자식이 아닌 건 정말 남이라니까요.”“그러게, 말이에요. 전에 나대던 모습을 생각하니 이제 꼴이 좋네요. 지금은 아예 정씨 가문이랑 아무 사이가 아니니 별것도 아니네요?”“몰래 무슨 일을 범했는지도 몰라요!”“뭐겠어요?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이랑 이유영이 가당키나 해요? 아무래도 자기 친 자식이어야죠.”“하긴, 걔가 정씨 가문에 들어선 후부터 조카라는 자가 친딸의 모든 풍조를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서 지금은 엔데스 가문과도 관계를 맺으니...”지금 파리는 온통 미친 여론 때문에 들썩이고 있었다.지금 사람들은 다들 이유영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혀를 놀려대고 있었다. 다들 뱀은 뱀이지, 결국 용이 되진 못한다고 말하고 있었다.지금, 이유영도
성진남은 무의식적으로 배천명을 보며 그의 눈에는 그윽한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배천명도 엔데스 명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험한 기운을 느껴서 다시 입을 열 때 말투도 따라서 바짝 긴장해졌다.배천명이 입을 열었다.“정 회장님 쪽 사람들도 어느 정도 능력이 있었습니다!”그 말인즉 소은지의 행방을 놓친 게 분명하다는 말이었다.배천명의 말이 끝나자마자 재떨이는 바로 그를 향해 날아왔다.그는 피할 엄두도 없어서 그저 제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날아오는 재떨이는 쿵 하고 그의 이마에 맞았다. 그는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고 피고... 이마를 따라 주르르 흘러내렸다.사무실 안의 분위기는 몇 점 더 싸늘해졌다.하지만 배천명은 여전히 제자리에 선 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배천명, 너 참 죽일 놈이야!”“네! 제가 최대한 빨리 74번을 찾아내겠습니다!”74번이라는 수자에 대해 배천명은 강조하였다. 마치 엔데스 명우에게 소은지가 그의 곁에서 어떤 존재였던지, 또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 지를 일깨워 주는 것만 같았다.성진남의 한데 일그러진 미간은 배천명을 볼 때 다시금 더 엄숙해졌다.엔데스 명우가 입을 열었다.“됐어!”다시 입을 열 때 그의 싸늘하던 말투는 더욱 차가워졌다.“너 먼저 나가 있어.”배천명을 보고 한 말이었다.배천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무실을 나갔다.사무실에 엔데스 명우와 성진남만 남았을 때, 엔데스 명우는 탁탁 라이터를 켜서 담배에 불을 피우고는 매섭게 한 모금 들이켰다.한참 지나서야 엔데스 명우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지아 보고 알아보라고 해.”지아, 본명 도지아!성진남은 종래로 침착하고 듬직한 남자였다. 하지만 엔데스 명우의 이 말을 들었을 때 차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여태껏 지아한테는 아무렇게나 임무를 배정해 준 적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그녀가 나서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었다.‘지금 고작 여자 한 명을 찾는데 지아를 시킨다고?’“네.”성진남은 수만 가지 생각을 거친 후에 바로 고개를 끄
엔데스 명우는 전에 로열 글로벌에 갑자기 뜬금없이 후계자가 나타난 것도 아주 의외롭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정국진이 이런 대응도 엔데스 명우가 보기에는 이유영의 꾀가 적지 않게 들어갔다고 생각되었다.이유영의 머리에는 잔꾀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보기에는 무심해 보여도 도리어 상대방에게 주먹을 한 대 날릴 수 있었다.그러니 이번 일도 엔데스 명우가 보기에는 이유영이 또 무슨 방법을 써서 일을 뒤엎을 게 뻔했다.당연히... 이번 일로 이유영을 자신의 여자로 만들지는 못한다고 해도 이번 일을 계기로 이유영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엔데스 명우는 생각했다....파리는 지금 난리법석이었다.그리고 정씨 가문에서는 그럴듯하게 정말 이유영을 집에서 내쫓은 행세를 보였다. 이유영은 정말 공개적으로 백산 별장에서부터 반산월 쪽으로 이사를 갔다.현재 반산월에서 이유영은 한가하게 소파에 누워서 엔데스 명우가 자신이 따로 숨겨둔 약혼녀가 있다는 소식 또는 이유영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에서 외숙모가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여섯째 도련님은 아주 교활한 사람이야. 난 너희가 이렇게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그렇게 쉽게 관두지 않을까 봐서 걱정이야.”이번 일이 터진 후 외숙모는 당장 퀘벡에서 돌아오려고 했다.하지만 퀘벡 쪽에 일 때문에 도무지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다행히 파리에 정국진이 있어서 외숙모도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근데 지금 파리가 들썩일 정도로 일이 커진 이상 아무리 멀리 퀘벡에 있는 외숙모도 거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정씨 가문...요 몇 년이래, 아무리 정국진이 일을 크게 벌였다고 해도 이 정도로 난리가 난 적이 거의 없었다.지금 눈이 뜨인 셈이었다.“엔데스 명우가 그 당시에 그런 요구를 제기한 것도 원래 정씨 가문의 지원을 받으려고 그런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정씨 가문이라는 배경이 없어진 이상 그 사람도 더 이상 나한테 관심이 없을 거예요.”이유영을 투덜거리며 말했다.
“박연준, 네가 강이한과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고 또 이제는 강이한 어머니까지 지키려 한다는 사실을 난 여태 몰랐네.”그 말은 날 선 조롱처럼 들렸다.동시에, 과거 강이한과 박연준의 사이가 이유영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되새기게 했다.그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유영의 냉정한 말에 박연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다른 일 있어서 먼저 끊을게.”이유여은 박연준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사랑이란 그저 우스운 감정에 불과했다.차는 천천히 백산 별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지혁 씨.”“네.”“지혁 씨는 사랑해 본 적 있어요?”이유영은 지혁을 향해 불쑥 물었다.예전의 이유영은 사랑이란 존재를 믿어 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를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토록 반짝이던 사랑이란 단어 뒤편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었는지 이젠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의 말을 들은 지혁은 묵묵히 앞을 응시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핸들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이유영은 굳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쾅!”그 순간, 갑작스러운 충격음과 함께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이유영은 아픈 이마를 짚고 있었고 지혁은 차에서 내려 사고 처리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차 문이 열렸다.“아가씨.”지혁이 이유영 앞에 공손하게 나타났다.“무슨 일이에요?”“셋째 도련님 차입니다.”“...”그 말을 듣고 그녀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자꾸 나타나는 셋째 도련님의 존재에 우연한 사고인지 아니면 이미 계획된 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이유영은 미간을 짚으며 말했다.“어떻게 된 거예요?”“셋째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이유영은 이 전설 속의 셋째 도련님을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특히 엔데스 가문과 정씨 가문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밖에서 이유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이유영은 몰랐다. 그 아이가 결국 진영숙이 데려온 의사로 인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줄은.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아!”분노가 치밀수록 이유영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고 진영숙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녀는 이유영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세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놔, 놔 이 미친년아! 악!”“짝!”이유영의 손바닥이 진영숙의 뺨을 후려쳤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말릴 용기를 잃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유영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다시 한번 움찔하고 말았다.이유영의 행동에 소리 내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숨을 삼켰다. 진영숙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결국 이유영은 진영숙을 놓아주며 말했다.“주제 파악하라는 의미에서 그랬어요. 당신은 할머니라는 말을 입에 올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에요.”그렇다. 진영숙은 할머니가 될 자격이 없었기에 이유영도 그녀를 아무 감정 없이 내던질 수 있었다.진영숙의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 머릿속이 멍해진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얼어 있었다.그 사이 이유영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저년이 감히...”감히 뭐라고?예전엔 강이한 곁에서 순한 토끼처럼 보호받더니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이유영이 밖으로 나왔을 때,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를 감쌌다.그 순간, 가슴속의 억눌린 감정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지혁은 이유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용준을 밀쳐내고 앞으로 다가왔다.“아가씨.”“가요.”용준은 여전히 당당한 이유영의 모습을 보며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유영의 휴대폰이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박연준이었다.차에 오르자마자 전화를 받은 이유영의 모습은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여보세요.”“어디야?”“풍산.”“유영아...”전화 너머의 남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박연준은 지금 이유영이 강씨 집안을 어떤 태도로 맞서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강씨 집안에서 강이한이 곁에 없는 동안에는 진영숙의 말에 고스란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홍문동으로 이사한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진영숙이 찾아오면 이유영은 그녀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고 감히 그녀의 말에 거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도대체 언제부터일까?’아마 강이한과의 이혼을 결심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즈음부터 이유영은 진영숙의 말에 더 이상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그땐 고작 진영숙의 지시를 어기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감히 나한테 손을 대?”한참 뒤에야 겨우 말을 꺼낸 진영숙이 이유영을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이빨을 드러낸 짐승 같은 기세가 실려 있었다.이유영은 고작 이런 걸로 화를 내는 진영숙이 가소로웠다.이유영은 아직 다 마시지 않은 따뜻한 물이 담긴 잔을 들고 망설임도 없이 진영숙의 얼굴에 뿌렸다.“앗!”진영숙은 비명을 질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손을 댄다는 건 이런 거예요.”이유영은 바닥에 주저앉은 진영숙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퍽!”손에 들고 있던 잔이 손끝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산산조각 났다.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예전의 풍산 사람들이 기억하던 이유영은 언제나 조용하고 온순한 여인이었다. 누가 감히 지금 이유영의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분노로 찬 이유영은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진영숙 역시 이유영을 증오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예전에도 이유영에게 자주 화가 났지만 오늘처럼은 아니었다.진영숙은 분노가 목 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이유영은 격하게 숨을 들이마신 진영숙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였다.“다시 백산 별장에 가거나 우리 가족 근처에 얼씬거리면 그땐 당신 진짜 가만 안 둬.”그 마지막 한마디는 징벌처럼 무겁고 섬뜩할 만큼 냉정했다.월이는 이유영의 세상 전부이자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힘들게 월이를 낳으면서 강씨 가문은 이 아이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아
끊임없이 박연준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던 강이한의 모습을 이유영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두 사람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사이였다.늘 서로를 원수처럼 대했고 그 모습을 본 이유영도 두 사람 사이에 과거의 악연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악연이 한 여자 때문이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그 여자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 전까지는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은 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모든 게 이토록 명백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유영만은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그 7년 동안 강이한은 얼마나 다정했던가?그 친절함 속에 실은 다른 여인을 향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이유영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박연준은 강이한의 어머니를 보호하고 있었다.이건 과거의 이유영이라면 상상조차 못 했을 일이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다시 실감하고 있었다.“어쨌든 강이한 씨의 어머니잖아요.”조금 전 용준이 한 말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마치 우스운 농담을 듣는 듯했다.“형님이 돌아오신 후에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용준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공손함 속에는 이유영을 절대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있었다.이유영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진영숙이 월이를 데려가려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그녀의 분노는 가슴 깊이 타오르고 있었다.“지혁 씨.”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지혁을 불렀다.지혁은 그녀의 뒤에 있다가 곧장 앞으로 나섰다.“네, 아가씨.”“전 들어가야겠어요.”이유영이 내뱉은 짧은 문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용준은 지금까지 이유영의 이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 냉혹함에 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네!”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지혁은 곧장 앞으로 다가섰다. 분위기는 마치 폭발할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이유영은 어지럽게 엉킨 현장을 냉정히 바라보며 우아하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용준은 지혁을 막으려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이유영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녀는 임소미의 품에 파고들며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오래전 소은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강이한은 연애 상대론 괜찮지만 결혼은 다르다고.그때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강이한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소은지는 그녀를 말렸었다. 소은지는 그녀의 결혼을 말렸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결국 소은지의 말은 모두 옳았음이 증명됐다.끝났다고 믿었던 그 관계는 여전히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때, 등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앞으로는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가득 차올랐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뺨을 따라 끝없이 흘러내렸다.예전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이렇게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 혼자 견뎌야만 했다.임소미가 감싸안아 주자 이유영의 마음은 다시금 따뜻함으로 물들어갔다.그리고 이 감정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앞으로는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가 말한 '아무도'는 명백히 진영숙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에게서 다시 이런 고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임소미는 그 말을 반복하듯 속삭였다.오늘 밤, 임소미의 마음속에 일어난 파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진영숙이 막말을 퍼붓고 손까지 쓰는 모습을 보며 이유영이 강씨 가문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임소미는 문득 깨달았다.사모님의 우아한 모습은 진영숙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손부터 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살아야
이유영이 돌아오고 그녀는 진영숙과 임소미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명의 도우미가 진영숙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임소미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쳤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재빨리 붙잡고 말했다.“너 먼저 위로 올라가.”“무슨 일이 있었어?”이유영이 물었다.정씨 가문에 돌아온 지 오래된 만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우아하고 온화한 사람인 만큼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임소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유영, 넌 누가 너한테 눈을 기증해 줬는지 모르지? 강이한이 네게 빚을 졌다고 하지만 사실은...”“입 다물어!”진영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고 진영숙은 여전히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이유영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엔 전례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도 진영숙은 이유영을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한 번도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용성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증오가 더욱 깊어진 듯했다.“유영아, 너 먼저 위로 올라가.”“엄마.”“올라가!”임소미는 이유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격하게 소리쳤다.임소미가 이런 식으로 이유영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임소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유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말문이 막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진영숙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도우미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유영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이유영, 강이한은 너에게 빚진 게 없어. 강이한은 오히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너야말로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네 눈조차..
임소미는 혈압이 치솟았고 화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내 말이 틀렸나요?”“틀렸냐고? 제대로 된 일을 한 적은 있고? 당신만 제대로 된 선택을 했더라면 유영이와 강이한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임소미는 참았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격렬히 외쳤다.진영숙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임소미의 말이 맞았다. 진영숙은 두 사람 관계에서 많은 잘못을 했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강이한은 사라졌고 강서희도 여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건 오직 월이 뿐이었다.오늘 이곳에 와서 월이를 보게 된 순간, 월이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았다.“사람 불러!”임소미가 크게 외치자 집사들과 도우미들이 급히 달려왔다.“이 여자를 당장 내쫓아!”“당신이 감히 그럴 수 있을까?”“뭐라고?”임소미는 잠시 귀를 의심했다.‘이 여자는 지금 도대체 뭐 하려는 걸까?’조금 전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아이에게 조금의 정이라도 남아 있는 줄 알았다.하지만 모든 것은 착각에 불과했다.결국 그녀는 후회라는 감정을 모르는 인간이었다.진영숙이 오늘 여기 온 것도, 월이에게 다정하게 굴었던 것도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한 마지막 발악이었다.그녀의 말은 그저 그럴싸한 포장일 뿐 사실은 월이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리고 뻔뻔하게도 무례하기까지 했다.진영숙은 임소미의 눈을 응시했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따뜻함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매서운 날카로움뿐이었다.그녀는 침착하게 말했다.“우리 아들이 왜 서주를 떠났는지 내가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임소미, 당신들은 정말 단 한치의 양심 가책도 못 느꼈어?”왜 강이한이 서주를 떠났는지 시간대와 상황을 조합해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추측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특히 떠나기 전, 시윤이 건넨 말이 결정적이었다. 이유영이 용성시에서 수술을 받았던 그 시기에 강이한은 서주에
강이한은 그렇게 어둠 속에서 절망의 고통을 몸소 겪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수술을 받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한때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얼마나 무섭고 무력했는지를 그는 이제서야 조금씩 체감하고 있었다....파리에서 진영숙은 다시 백산 별장을 찾았다. 여전히 강이한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시윤은 강이한이 이정과 신시욱을 데리고 떠났다고 말했다.그 두 사람의 능력을 생각하면 강이한이 스스로 나타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진영숙은 어머니로서 절망에 가까운 마음으로 그를 수소문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그리고 알면 알수록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정말이지, 당신은...”백산 별정까지 찾아온 진영숙의 뻔뻔함에 임소미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응수했다.진영숙은 한때 유능한 여성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감히 저런 얼굴을 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녀에겐 익숙하지 않은 대우였다.“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저 좀 봐주세요.”그녀의 목소리에는 전에는 없던 고통이 서려 있었다.그렇다. 지금의 진영숙에겐 주변에 기댈 친척도 함께할 가족도 없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건 손녀인 월이 뿐이었다.오늘도 그녀는 월이를 위해 여러 장난감을 준비해 왔지만 임소미는 그 모든 행동이 불쾌하게만 느껴졌다.“당신도 어머니였잖아요. 제 마음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잖아요.”임소미는 차가운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봐준다고? 당신이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이유영이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 진영숙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심지어 뱃속의 아이조차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이토록 헌신적인 할머니 행세를 하니 임소미는 화가 났다.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극으로밖에 안 보였다.진영숙의 눈엔 고통이 어렸다.“저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어요.”임소미의 말에 그녀는 도무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무리 자존심 강한 진영숙이라 해도 진실을 알게 된 지금, 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