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심하겠습니다!”이유영의 인정을 받은 후, 루이스는 다시 마음속의 경종을 울리고는 더욱 신중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이유영은 재차 당부했다.“절대로 은지를 파리로 돌아오게 해서는 안 돼요!”“네.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뒤 이유영의 세상도 그제야 조용해졌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은... 한참이나 파도가 일렁이며 잠잠해지지 않았다.파리에 난리가 났다! 여기서... 더 혼란스러워지면 안 되었다.이유영의 세상도 마찬가지로 더는 난리가 나면 안 되었다!...사실 이유영은 현황에 안주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이 함부로 자신을 짓밟게 가만히 있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나염을 보자 이유영은 박연준이 어젯밤에 다시 자신을 이용한 것이 떠올라, 이제 더 이상 표면상의 체면도 유지하기 귀찮았다.“말해요. 무슨 일인데요!’“형님께서 아가씨더러 서주로 가시라고 했어요.”이유영은 눈살을 치켜들며 그윽하고 짙은 눈빛으로 나염을 바라보았다.‘이런 뻔뻔스러운 자식들!’“하 참, 이유는?”이유영의 말투는 별로 좋지 않았다.‘이런, 박연준...’이유영을 바라보는 나염의 눈빛에는 좀처럼 껄렁거리는 느낌이 없었으며 그저 깊고 엄숙했다. 이유영은 그런 나염을 바라보며 비꼬는 느낌이 더욱 진해졌다.나염이 입을 열고 말했다.“당신 지금 여기에 남아있어봤자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의 핍박만 받을 거예요. 당신은 그 사람한테 게임이 안 돼요!”“...”“정씨 가문은 엔데스 가문의 이익과 엮이는 걸 피하는 게 상책이에요!”나염의 말이 맞았다!정씨 가문은 마땅히 피해야했다...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다년간 엔데스 가문과 맞서 싸우지 않았을 것이었다.이유영은 깊게 한숨을 들이켜고는 입을 열었다.“이 일 때문이라면 그쪽이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아주 냉정하게 거절했으며 그녀의 말속에는 온통 박연준에 대한 거리감이 느껴졌다.지금은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박연준이든 강이한이든 이유영은 다 멀리해
‘박연준은 전에 나한테 엔데스 명우가 정씨 가문과 관계를 엮는 건 이로써 자기가 엔데스 가문을 전반적으로 장악하려고 한다고 말했으면서 박연준 본인은 신변의 나염 보고 나를 형수님이라고 부르라니!?’ 솔직히 말하면 박연준이나 엔데스 명우나, 이들은 다 이유영에게 있어서 도긴개긴이었다.“형수님 지금 가실 건 까요?”변화무쌍한 이유영의 안색을 보며 나염의 말투는 엄숙하면서도 강인했다.“나 지금 연준 씨하고 통화 가능해요?”“당연히 가능하죠!”나염은 핸드폰을 꺼내 박연준에게 전화를 걸고는 이유영에게 핸드폰을 건넸다.핸드폰 화면에는 전화번호가 반짝거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 반대편에서 전화를 받더니 박연준의 부드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유영아.”“연준 씨, 제가 지금 어떤 말로 당신을 형용하면 좋을까요?”박연준은 외삼촌을 서주로 유인시켜 원래 혼란하던 국면을 더욱 난장판으로 만들었다.게다가 이로써 강이한을 견제하는 목적에 달하였다.심지어 지금은 이유영더러 서주에 오라고까지 했다. 왜일까? 그건 이유영이 엔데스 명우랑 손을 잡아 파리에서의 엔데스 명우의 세력을 키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어떤 좋은 점이든 박연준은 빠짐없이 다 챙겼다!“유영아, 먼저 서주로 와요. 그럼 내가 여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게요.”전화 반대편의 남자는 상황이 이런데도 여전히 극도로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아니나 다를까!박연준은 이렇게 사이가 틀어져도 내색하지 않았다. 아마 이 세상에는 박연준만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 남자는 모든 좋은 점들을 다 챙기려고 했다.근데 그것도 이유영이 도대체 들어줄지 안 들어줄지를 봐야 했다.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외삼촌이 이 사람들과 어떤 대립 면에 섰는지 이유영도 다 알아챘다.이렇게 된 이상, 다들 서로 숨길 필요가 없게 되었다.‘그럼... 대놓게 철저하게 까놓고 숨기지 말자.’“엔데스 명우는 비록 날 이용하는 거지만 이 싸움에서 내게 적지 않은 이득을 줬어요.”“그 사람이 당신에게
“그럼 당신은 누구랑 묶이고 싶은데요?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이유영의 얼굴색은 다시 어두워졌다.지금 소파에 앉아 있는 그녀의 아담한 몸에는 온통 싸늘한 기운이 흘렀다.“당신도 내가 바로 전에 연준 씨랑 사이가 틀어진 것을 봤잖아요. 여기서 내게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제발 내 인내심을 그만 긁어요!”이유영은 또박또박 엄청 매섭게 말을 남겼다.“...”나염은 자기 반대편에 있는 이 체구가 아담한 여인을 보면서, 이 사람이 예전에 강씨 가문에서 모욕을 당하던 그 새댁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만약 엔데스 명우가 정말 소은지를 찾아내서 돌아온다면 난 당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자신 있는데!”“...”이 말을 들은 나염은 순간 몸이 더욱 굳어져 버렸다.‘내가 소은지로 이유영을 협박했는데 지금 도리어 온갖 정성을 다해 소은지의 행방까지 보호해야 해!?’아니면 소은지가 어떤 방식으로든, 파리로 돌아오기만 하면 이유영은 무조건 다 죄를 나염의 머리에 씌울 게 분명했다.나염이 입을 열어 말을 하기도 전에 이유영은 마저 얘기를 이어 나갔다.“박연준이 서주에 갔지만 파리에 있는 동안, 그의 관건은 풍산이었죠?”“형수님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데요?”형수라는 호칭에 대해 이유영은 불만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에 걸고넘어질 여유가 없어서 그냥 내버려두었다.이유영은 자신의 이쁜 네일을 어루만지며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입을 열었다.“풍산은 파리를 위해 반쪽짜리 서류를 보관해 두었죠. 그리고 나머지 반쪽은 엔데스 가문의 손에 들어있고요. 그럼, 엔데스 가문은 파리의 반쪽 주인으로서 그동안 줄곧 박연준 손에서 그 반쪽짜리 서류를 갖고 싶어 하겠죠?”말이 끝나자,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나염의 표정은 순간 변했다.나염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유영은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 나갔다.“제 추측이 맞다면 엔데스 가문이 그동안 풍산이랑 줄곧 사이가 안 좋았던 건 박연준이 그 반쪽짜리 서류를 엔데스 가문에게 넘기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럴 뿐만 아니라 반대로 엔데스
나염은 이유영의 표정을 바라보며 도무지 그녀의 생각을 종잡을 수 없었다.이유영은 나염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눈시울을 올려 나염을 바라보며 웃음기 가득 찬 눈빛으로 그에게 되물었다.“생각해 봐요. 만약 엔데스 가문에서 전기봉이라는 자에 대해 알아냈다면 당신들은 지금쯤 기필코 그 반쪽짜리 서류를 빼돌리느라고 온갖 심혈을 다 퍼부어야겠죠?”“...”“엔데스 가문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은 엄청나게 많잖아요. 만약 사람마다 다 전기봉을 지켜본다면 당신들은 아마 서류를 빼돌릴 방법조차 없겠죠?’나염은 그저 냉기가 발밑부터 시작해 온몸에 퍼지는 것만 같았다!아까 나염이 갖고 있던 협박과 강인함은 지금, 이 순간 여우 같은 이유영의 미소에 와르르 무너졌다.‘이 여자 너무 무서운 사람이네.’만약 진짜 이유영을 서주로 데려가면 이 여자 때문에 더욱더 통제력을 잃게 될 게 분명했다.“나염, 우리 둘이 내기할까요?”“무슨 내기요?”“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이 과연 소은지에게 더 관심을 가질지 아니면 그 반쪽 서류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질지?’“형수님 다른 일 없으시면 저 먼저 가볼게요!”이 말인 즉 내기를 안 하겠다는 거였다.이유영은 태연하게 말했다.“이유영 아가씨라니까요.”“네! 이유영 아가씨.”이유영은 웃었다.뒤돌아서 가는 나염의 뒷모습을 보며 이유영 입가의 웃음기는... 점점 사라졌다!‘감히 날 협박해? 이 사람들 도대체 어디서 난 자신감이야. 도대체 왜 언제 어디서든 날 협박하려 하는 거지?’...이유영은 아주 손쉽게 박연준이 다시 자기를 이용하려는 것을 풀어헤쳤다. 그리고 강이한과 정국진 역시 그녀를 서주의 혼란 속으로 끌어들일 수 없었다.그래서 서주 쪽의 혼란한 국면은 잠시 이유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서주 쪽은 조용해졌지만, 눈앞의 엔데스 가문은 여전히 그녀를 골치 아프게 했다.이유영이 박연준을 물리칠 수 있으면 당연히 엔데스 명우와도 빙글빙글 굴레를 돌며 대치를 할 수 있었다.그녀는 박연준의 체
비록 이유영은 아이에게 별 적의는 없었지만 이렇게 큰 아이가 자기의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게 좀 불편했다. 그리고 이건 좀 도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안민은 이유영을 탕비실로 잡아당기고는 바로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안절부절못한 눈빛으로 이유영을 보며 물었다.“이 대표님, 대표님께 확실히 자식이 없으신 거 맞습니까?”‘아니!’이유영의 안색은 순간 어두워졌다.안민은 어두워진 이유영의 얼굴을 보며 온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대표님을 찾으신대고 했습니다.”“저를 찾는다고요?”“네. 그리고 또...”“또 뭐라고 했어요?”“또 대표님이 자기의 엄마라고 했습니다!”“...”이유영의 안색은 빨개졌다가 다시 파래지고 다시 보라색으로 변했으며 변화무쌍했다.‘그래서 아까 회사에 들어왔을 때 분위기가 이상했던 거구나!? 하루아침 만에, 사람들은 다 나를 자기 딸을 버린 나쁜 년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이유영은 자신이 어떻게 사무실로 돌아왔는지 모른다.방금까지 자고 있던 아이는 지금 일어나서 소파에 앉아 있었으며 커다란 두 눈으로 경계하고 대비하고 심지어 적대적으로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아이 눈 밑에 드러난 적대 의식을 버리면 이 아이는 정말로 이쁘장하게 생긴 건 확실했다.“아가야, 넌 누구예요?”이유영의 말투는 이미 최대한으로 부드러웠다.아이의 키로 봐서 이 아이는 대략 열 살쯤 되어 보였다.아이의 옷차림은 아주 정교했으며 손에는 바비 인형을 안고 있었다. 이유영이 자신에게 묻는 걸 들은 아이는 억울한 듯 고개를 숙였다.이유영은 깊게 한숨을 들이켜고는 다시 물었다.“이름이 뭐예요?”‘왜 이러는 거지? 왜 억울한 표정을 짓는 거지?’요즘 이유영에게 일어난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제 겨우겨우 서주와 엔데스 명우에 관한 일을 처리했는데 지금 갑자기 아이 한 명이 나타나서 이유영의 딸이라고 하다니? 누구라도 이런 일을 당하면 다 마음이 안 좋을 것이었다.특히 이유영...필경 지금 이유영의 신변은
이유영은 손에 들고 확인했다.‘이온유, 이름은... 맞고!’접혀 있는 가족관계증명서를 펴서 본 1초 만에 다시 탁하고 접었다.여기서 이유영의 분노 정도를 충분히 보아낼 수 있었다.왜냐하면 가족관계증명서의 모친 항목 뒤에 바로 이유영의 이름이 있었다. 심지어 생년월일, 주민등록 번호까지 세세히 적혀있었다...정말이지 상대방의 계산은 이유영에게 발을 뺄 구멍조차 주지 않았다.“안민 씨!”“네, 대표님.”“먼저 나가 있어요.”“대표님, 진정 좀...”이 순간, 이유영 몸의 기운을 느낀 안민은 정말 이유영이 저 아이를 창밖으로 내다 버릴까 봐 걱정되었다.이유영은 안민을 세게 째려보았다.안민은 바로 타협했다.“저 바로 나가보겠습니다!”아유, 안민은 지금 자기 앞가림도 힘들었다.안민이 나가자, 사무실에는 이유영과 이온유 두 사람만 남았다. 열 살짜리 되어 보이는 아이는 세상 물정 다 알게 생겼으며 눈빛도 엄청 날카로웠다.“그만 훌쩍대고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난 네가 울기만 할 줄 아이라는 게 믿어 않져!”이건 사실이었다!‘여기까지 찾아온 아이이니만큼 만만하진 않겠지?’어린아이는 역시 또 훌쩍거리기 시작하면서 한 쌍의 촉촉해진 큰 눈시울로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이유영은 손에 든 가족관계증명서를 흔들며 물었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심지어 증명서 위의 날짜는 다 5년 전으로 되어있었다!?‘이 아이 배후의 사람 속셈이 얼마나 깊길래 이렇게 5년 전부터 나에 대한 계산이 시작된 거지!?’이온유는 이유영을 한번 보고는 입을 열었다.“진 아줌마께서 내가 다 컸으니 이제 당신을 찾아와도 된다고 했어요!”“진 아주머니가 누구예요?”“그분 일주일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에 이 서류들을 제가 줬어요.”이유영은 깊게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돌아가셨으니, 증인도 없는 거야?’‘아이고 이런 도대체 누구의 아인데!?’‘왜 날 찾아온 거지?’이유영은 열심히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비록 그녀는 전생에서 생을 건너
“엄마.”아이는 자기의 작은 손으로 이유영의 손을 꼭 잡았다.이유영은 아이를 보면서 순간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머릿속은 이미 뒤죽박죽 섞여서 난리가 났다.그녀는 얼떨결에 무슨 정신으로, 사무실로 돌아왔는지도 모른다.안민은 이유영이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다가와서 물었다.“대표님, 어떻게 되셨습니까?”안민의 언어는 온통 걱정들로 가득했다!이 일주일 내내 이유영은 도저히 갑자기 나타난 아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줄곧 안민이 아이를 돌봐주었다.지금 드디어 검사 결과도 나왔다.“안민 씨.”“네.”“피가 안 섞였는데 혈족관계 검사에서 수치가 높게 나올 수 있을까요?”이유영은 낮은 소리로 물었다.“의학적으로는 절대 불가능하죠!”이유영은 순간 절망했다.‘이게 다 무슨 일이야 정말.’사무실의 문을 닫은 후, 이유영은 아이를 자기의 앞에 놓고서는 아이의 생김새에서 뭐라도 얻어내려고 열심히 노력했다.하지만 아무래도 이유영의 눈이 안 좋은 이유 때문인지 아이의 생김새를 주변의 사람들과 결합할 수 없었다.이유영의 머릿속에는 심지어 무수한 가능성이 떠올랐다.‘설마 망나니 아버지가 또 밖에서...? 아니지, 아니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언제인데. 그럼 이 아이는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내내 이유영은 단 한 번도 이온유를 만나주지 않았다.지금, 이 순간, 그녀는 어린아이의 자그마한 손을 잡고는 물었다.“온유야?”“네.”“진 아주머니께서 또 뭐라 했었어요?”이유영은 아이와의 교류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게 분명했다.하지만 이온유는 입을 열고 대답했다.“진 아줌마께서 엄마말을 꼭 잘 들으라고 했어요. 그래야 엄마가 날 좋아할 거라고.”이유영은 머리가 깨지는 것만 같았다.“난 네 엄마가 아니야.”말이 끝나자, 아이의 눈에는 억울한 눈물이 글썽했다.이유영은 이마를 짚으며 어이가 없었다.‘얘 지금 뭐 하자는 거야!?’“울지 말고, 난 아니야. 됐고 아가야 일단 울지
한지음!지난 생이든 아니면 이번 생이든 다 이유영의 세상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은 사람, 그리고 이유영의 인생을 철저하게 깨부순 존재였다.그렇게 안 좋은 기억들, 불쾌한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치솟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지음이 이유영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면서 언니라 부르던 장면에서 멈췄다...!이유영은 동공이 움츠러들면서 최익준을 바라보았다.“죽었다고요?”“네!”“어떻게요?”이유영은 자기도 자기 목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갑자기 이렇게 죽었다고!?’‘헉...!’“드라바강 부근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랍니다.”“...”안색이 안 좋던 이유영의 얼굴은 순간 더욱 어두워졌다.한지음이란 존재는 이유영에게 있어서 정말 극악무도한 원수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갑자기 이런 소식을 들으니, 이유영도 마음속 흔들림을 금치 못했다.눈길을 돌려서 소파에서 곤히 잠든 아이를 본 순간, 이유영의 머릿속에는 번뜩 무언가가 떠올랐으며 마음속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언제의 일이에요?”“보름 좀 넘었답니다!”‘보름?’‘한지음이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이 언제였더라? 20일 전? 그러니까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이 아이를 돌보던 진 아주머니가 돌아간 시간이랑 비슷하잖아?’‘이건 도대체 우연일지 아니면...!?’아이를 바라보는 이유영의 눈빛은 몇 푼 더 그윽해졌다!“최익준 씨.”“네!”“전에 한지음이 지냈던 병원으로 가서 한지음의 유전자 좀 받아오세요.”이유영은 심오한 말투로 말했다.이유영은 자신의 신변에 또다시 한번 천번지복의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다.이건 이유영 이때의 느낌이었다.많은 귀찮은 일의 끝은 어쩌면 끝이 아니라 반대로... 새로운 시작이었다.하지만 이유영은 진작에 이런 것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막장다운 일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저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최익준은 이유영이 무엇을 하려는지 대충 알아채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위험할 거라는 그의 말을 듣고 이유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엔데스 신우를 바라보았다.“신우 씨가 정씨 가문을 이용하려고만 하지 않았어도...”이유영의 말끝이 흐려졌다.차는 이미 백산 별장에 도착해 있었고 이유영은 조용히 차 문을 열고 내렸다.하지만 곧장 들어가지 않고 등진 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그 순간 지우고 싶던 기억들이 밀려왔다.강이한과 함께했던 너무나 찬란하고 아팠던 순간들 말이다.한지음 이후로 그녀가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지워지지 않는 추억들이었다.숨을 크게 들이쉬며 가슴속의 무거움을 억눌렀다. 이 밤하늘 속 별빛조차 오늘은 감당하기 힘들었다.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워져 있었다.“제가 얼마나 위험한지 이미 알고 있다면 저한테서 멀리 떨어져 계세요.”“...”그는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유영은 이미 저 멀리 별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작은 체구에 하이힐을 신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인형 같았지만 그녀의 등에는 증오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엔데스 신우는 그녀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이내 눈빛이 변했다.복잡했던 감정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건 날카롭고 위험한 기운이었다.“민성아.”“네, 도련님.”“예전 강씨 집안에 있을 때 교양 있고 품위 있었다는 사실, 확실해?”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다.지금의 이유영은 '교양'이나 '품위'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자료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조사 결과대로라면 그녀의 내면에는 아마 맹수가 숨어 있는 거라고 신우는 생각했다.겉모습은 순진해 보였지만 박연준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조사 결과를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후회돼.”“뭐가요?”운전석의 윤민성이 놀라서 물었다.그가 생각한 셋째 도련님의 사전에는 '후회'라는 단어가 없었다.그렇기에 후회된다는 그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곧 엔데스 신우는 짧게 덧붙였다.“로한에게 서둘러 진행하라고 해. 난
이유영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빼내려 했다.“놔줘요.”그러자 엔데스 신우가 조용히 말했다.“늦었어요. 제가 바래다줄게요.”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오늘 그의 차에 타면 어디로 향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이유영은 급히 대답했다.“혼자 갈 수 있어요.”예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 시절에도 그녀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지금은 더욱 그럴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남자는 손에 힘을 더 주며 이유영을 자연스럽게 차에 태웠다.“제가 말했잖아요...”“늦었어요. 여자 혼자 집에 가게 하는 건 신사의 예의가 아니죠.”“엔데스 가문에 신사가 있다고 생각하세요?”이유영은 날카롭게 받아쳤다.엔데스 가문에 대한 반감은 소은지 때문이었을 것이다.지금 눈앞의 엔데스 신우까지 더해져 이유영의 마음속 엔데스 가문 남자들은 모두 막무가내로 보였다.특히 그녀가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다섯째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엔데스 예준의 강렬한 기운은 단번에 각인되었다.“제 차가 싫다면 택시를 불러드릴게요. 그럼 좀 안심이 되겠어요?”남자는 그녀의 마음을 꿰뚫는 듯 말했다.“...”그런 굴욕적인 제안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혼자 갈 수 있어요.”시력은 되찾은 그녀는 지금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어디든 갈 수 있었다.결국 그녀는 남자의 차에 올랐다.차가 출발하자 남자는 조용히 서류를 꺼내 펼쳤다.좁은 공간에 정적이 흘렀고 백산 별장이 가까워질 즈음, 이유영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같았던 엔데스 신우가 옆자리에서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박연준 씨랑 아직 이혼 안 했어요?”“...”엔데스 신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꼭 그 사람과 이혼해야 할까요?”“아직 마음이 있는 모양이네요.”그 말투엔 어딘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스며 있었다.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순 없었지만 아직 마음이 있냐는 그의 말을 들은 이유영은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공기가 얼어붙었다.“쾅!”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박연준이 탁자를 세게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박연준의 억눌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가서 유영이를 백산 별장으로 데려가.”이유영은 미친 게 분명했다.‘감히 엔데스 셋째 도련님 같은 인물과 술집에 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건가?’정국진이라면 이유영이 엔데스 신우와 가까워지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특히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엔 더욱 반대가 심할 것이다. 박연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고 남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문기원이 급히 박연준을 따라나섰다.“네!”위험한 박연준의 모습에 용준은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대답했다.강이한이 각막을 이유영에게 이식해 주려고 할 때 왜 박연준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되는 듯했다.지금 이유영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그녀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과거의 그녀는 마치 강이한의 손바닥 위에서 반짝이는 천사 같았다. 하지만 혼란을 겪은 이후 그녀는 변했다.거만하고 방탕하게 아무하고도 거리낌 없이 어울렸다.지금 박연준이 생각했을 때, 이유영은 더 이상 고상하고 단정한 명문가의 며느리가 아니라 그저 자유롭게 떠도는 바람 같은 여자였다.최근 그녀는 서재욱과 엔데스 신우와 모호하기 짝이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서주에서.박연준이 차에 타기 전, 문기원이 그를 붙들었다.“선생님, 선생님!”“비켜.”“오늘 정말 중요한 회의입니다.”문기원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은 서주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시기였기에 이유영을 생각하면 문기원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정말 만만치 않은 여자였다.박연준 곁에 있는 문기원조차 그녀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박연준이 돌아서기를 기다렸다.박연준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눈을 감은 순간, 그의 눈빛 속 날카로움은 잠시 가려졌지만 몸 전체에서 풍겨 나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은 고민에 휩싸일 때마다 이런 방식을 택했다.하지만 결국 이런 방식은 오히려 고민에 잠긴 마음을 더욱 괴롭힐 뿐이었다.한번 마음에 깊이 새겨진 근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었다.“죄송합니다만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그녀의 몸은 항상 술을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예전에 건강이 좋지 않기도 했고 어렵게 다시 찾은 시력인 만큼 그녀는 술과 더욱 멀리하게 되었다.하지만 오늘 진영숙이 백산 별장에서 벌인 일을 생각하니 이유영의 마음속에서는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 감정을 억눌렀다. 그녀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회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인 건지 알 수 없었다.남자는 그 말을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깜빡했네요.”남자의 목소리는 유난히 부드러웠다.“괜찮아요.”“...”“이제 가도 될까요?”“술을 마시지 않아도 즐길 수 있잖아요.”“...”하지만 이유영은 이런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특히 많이 노출된 옷을 입은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하지만 남자는 그녀에게 반항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그녀를 향락의 세계로 이끌었다....한편 박연준은 서주에서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용준의 전화를 받은 그의 가슴이 쿵쾅거렸다.“그쪽은 괜찮아?”진영숙에 관해 묻는 것이었다.이유영이 인정사정없을 거라는 걸 박연준도 알고 있었다.과거 강이한 곁에 있을 때의 이유영을 떠올렸다. 그때의 그녀는 적어도 강이한에게 만큼은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었다.그래서 진영숙이 아무리 이유영을 괴롭혀도 그녀는 어떻게든 참고 견뎠다.지금은 성격이 점점 더 나빠졌다고 해야 할까? 아예 참는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용준은 진영숙의 현재 상황을 박연준에게 설명했고 이미 좋지 않았던 박연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회의 끝나고 바로 갈게. 일단 진정시켜.”박연준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 과연 내가 진정시킬 수 있을까?’“네!”“유영이는
“박연준, 네가 강이한과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고 또 이제는 강이한 어머니까지 지키려 한다는 사실을 난 여태 몰랐네.”그 말은 날 선 조롱처럼 들렸다.동시에, 과거 강이한과 박연준의 사이가 이유영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되새기게 했다.그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유영의 냉정한 말에 박연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다른 일 있어서 먼저 끊을게.”이유여은 박연준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사랑이란 그저 우스운 감정에 불과했다.차는 천천히 백산 별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지혁 씨.”“네.”“지혁 씨는 사랑해 본 적 있어요?”이유영은 지혁을 향해 불쑥 물었다.예전의 이유영은 사랑이란 존재를 믿어 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를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토록 반짝이던 사랑이란 단어 뒤편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었는지 이젠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의 말을 들은 지혁은 묵묵히 앞을 응시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핸들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이유영은 굳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쾅!”그 순간, 갑작스러운 충격음과 함께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이유영은 아픈 이마를 짚고 있었고 지혁은 차에서 내려 사고 처리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차 문이 열렸다.“아가씨.”지혁이 이유영 앞에 공손하게 나타났다.“무슨 일이에요?”“셋째 도련님 차입니다.”“...”그 말을 듣고 그녀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자꾸 나타나는 셋째 도련님의 존재에 우연한 사고인지 아니면 이미 계획된 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이유영은 미간을 짚으며 말했다.“어떻게 된 거예요?”“셋째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이유영은 이 전설 속의 셋째 도련님을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특히 엔데스 가문과 정씨 가문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밖에서 이유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이유영은 몰랐다. 그 아이가 결국 진영숙이 데려온 의사로 인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줄은.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아!”분노가 치밀수록 이유영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고 진영숙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녀는 이유영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세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놔, 놔 이 미친년아! 악!”“짝!”이유영의 손바닥이 진영숙의 뺨을 후려쳤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말릴 용기를 잃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유영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다시 한번 움찔하고 말았다.이유영의 행동에 소리 내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숨을 삼켰다. 진영숙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결국 이유영은 진영숙을 놓아주며 말했다.“주제 파악하라는 의미에서 그랬어요. 당신은 할머니라는 말을 입에 올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에요.”그렇다. 진영숙은 할머니가 될 자격이 없었기에 이유영도 그녀를 아무 감정 없이 내던질 수 있었다.진영숙의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 머릿속이 멍해진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얼어 있었다.그 사이 이유영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저년이 감히...”감히 뭐라고?예전엔 강이한 곁에서 순한 토끼처럼 보호받더니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이유영이 밖으로 나왔을 때,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를 감쌌다.그 순간, 가슴속의 억눌린 감정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지혁은 이유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용준을 밀쳐내고 앞으로 다가왔다.“아가씨.”“가요.”용준은 여전히 당당한 이유영의 모습을 보며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유영의 휴대폰이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박연준이었다.차에 오르자마자 전화를 받은 이유영의 모습은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여보세요.”“어디야?”“풍산.”“유영아...”전화 너머의 남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박연준은 지금 이유영이 강씨 집안을 어떤 태도로 맞서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강씨 집안에서 강이한이 곁에 없는 동안에는 진영숙의 말에 고스란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홍문동으로 이사한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진영숙이 찾아오면 이유영은 그녀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고 감히 그녀의 말에 거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도대체 언제부터일까?’아마 강이한과의 이혼을 결심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즈음부터 이유영은 진영숙의 말에 더 이상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그땐 고작 진영숙의 지시를 어기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감히 나한테 손을 대?”한참 뒤에야 겨우 말을 꺼낸 진영숙이 이유영을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이빨을 드러낸 짐승 같은 기세가 실려 있었다.이유영은 고작 이런 걸로 화를 내는 진영숙이 가소로웠다.이유영은 아직 다 마시지 않은 따뜻한 물이 담긴 잔을 들고 망설임도 없이 진영숙의 얼굴에 뿌렸다.“앗!”진영숙은 비명을 질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손을 댄다는 건 이런 거예요.”이유영은 바닥에 주저앉은 진영숙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퍽!”손에 들고 있던 잔이 손끝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산산조각 났다.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예전의 풍산 사람들이 기억하던 이유영은 언제나 조용하고 온순한 여인이었다. 누가 감히 지금 이유영의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분노로 찬 이유영은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진영숙 역시 이유영을 증오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예전에도 이유영에게 자주 화가 났지만 오늘처럼은 아니었다.진영숙은 분노가 목 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이유영은 격하게 숨을 들이마신 진영숙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였다.“다시 백산 별장에 가거나 우리 가족 근처에 얼씬거리면 그땐 당신 진짜 가만 안 둬.”그 마지막 한마디는 징벌처럼 무겁고 섬뜩할 만큼 냉정했다.월이는 이유영의 세상 전부이자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힘들게 월이를 낳으면서 강씨 가문은 이 아이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아
끊임없이 박연준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던 강이한의 모습을 이유영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두 사람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사이였다.늘 서로를 원수처럼 대했고 그 모습을 본 이유영도 두 사람 사이에 과거의 악연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악연이 한 여자 때문이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그 여자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 전까지는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은 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모든 게 이토록 명백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유영만은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그 7년 동안 강이한은 얼마나 다정했던가?그 친절함 속에 실은 다른 여인을 향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이유영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박연준은 강이한의 어머니를 보호하고 있었다.이건 과거의 이유영이라면 상상조차 못 했을 일이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다시 실감하고 있었다.“어쨌든 강이한 씨의 어머니잖아요.”조금 전 용준이 한 말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마치 우스운 농담을 듣는 듯했다.“형님이 돌아오신 후에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용준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공손함 속에는 이유영을 절대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있었다.이유영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진영숙이 월이를 데려가려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그녀의 분노는 가슴 깊이 타오르고 있었다.“지혁 씨.”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지혁을 불렀다.지혁은 그녀의 뒤에 있다가 곧장 앞으로 나섰다.“네, 아가씨.”“전 들어가야겠어요.”이유영이 내뱉은 짧은 문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용준은 지금까지 이유영의 이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 냉혹함에 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네!”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지혁은 곧장 앞으로 다가섰다. 분위기는 마치 폭발할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이유영은 어지럽게 엉킨 현장을 냉정히 바라보며 우아하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용준은 지혁을 막으려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