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애의 마음속에서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왜 어머니 같은 존재인데!?”‘왜? 그게 진짜 아이의 마음속 생각일까?’“유영아, 아직 아이잖아.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건...”“당신 지금 얘기를 하는 거 맞아? 지금 날 비난하는 거잖아!”강이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유영은 바로 그의 말을 끊어먹었다.그랬다. 이건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비난이었다.이곳에 들어오고부터, 강이한은 먼저 이유영이 그 애의 마음속에서 어떤 존재인지, 그다음은 보육원 얘기였다.‘이것들이 다 비난이 아니고 뭐야?’“당신은 무슨 자격으로 날 비난해?”이유영은 자리에서 슉 일어나 바로 몸을 돌려 나갔다.강이한은 제자리에 앉은 채 온몸은 얼음처럼 굳어버렸다!그랬다. 이유영의 말이 맞았다....!강이한은... 그녀를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문 앞까지 걸어간 이유영은 발걸음을 세우더니 고개를 돌려 말했다.“강이한, 다시 한번 경고하는데 우리 이혼했어!”“...”“그래서 내 인생에서 내가 뭘 하든 무슨 잘못된 선택을 하든, 그건 다 내 일이야. 당신이랑 상관이 없어!”예를 들어 아이의 일에서도 그렇다.‘내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내 행동이 한 아이에게 너무나도 잔혹하다고? 강이한... 당신이 그렇게 말할 자격이나 돼? 고작 당신과 한지음의 관계 때문에?’이유영이 다시 발걸음을 떼서 나간 지 두 발짝 안 되었을 때, 뒤에서 강이한의 인내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한지음이 당신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알기나 해?”“...”‘한지음이 날 위해서?’ 이유영이 아니꼬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강이한은 계속 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한지음이 죽었잖아. 당신은 그렇게 걔 아이를 대해서는 안 돼.”강이한의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이유영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녀는 강이한의 품에 들어갔다. 강이한은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이유영의 눈가를 살랑살랑 어루만졌다.아주 부드러우면서 가슴을 아프게 하는 그런 세기였다.전생에 이유영은
이유영은 자기가 어떻게 도원산에서 빠져나왔는지도 몰랐다. 이시욱이 차를 몰고 그녀를 바래다주었다.차 안에서 이유영은 강제적으로 이온유가 자기를 안고 있던 장면을 머릿속에서 떨쳐내고는 루이스와 소은지에게 연락을 시도하였다.하지만 전화는 끝내 통하지 않았다.결국 이유영은 전화를 엔데스 명우에게 걸었다. 생각 밖에도 엔데스 명우는 순조롭게 연락이 닿았다...현재 두 사람 모두 파리에 있다.전에 그렇게 골치 아픈 매달림은 결국 이유영의 한 수에 물리쳐졌다. 그 후로 두 사람이 연락 안 한 지 거의 3, 4개월이 되었다.하지만 다시 연락하는 건 결국 여전히 소은지 때문이었다.“여보세요.”“저예요.”“오호?”전화 반대편에서는 그윽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유영이 자기를 연락할 거라는 것을 미리 짐작한 것이 분명했다!“당신이 은지를 찾아냈어요?”“나랑 당신의 약속은 단지 우리 둘 사이에 결혼이 정해졌을 때잖아요. 지금은 결혼도 취소되었으니 나도 당연히 그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잖아요.”무슨 약속? 그건 이유영이 엔데스 명우와 결혼을 해주면 그는 자기 주변의 모든 여자를 다 풀어주겠다고 한 약속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소은지도 포함되어 있었다.이유영은 이런 방법으로 소은지를 구해냈던 것이었다.“만나서 얘기하죠!”전화로는 도저히 제대로 얘기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하지만 전화 반대편에서는 엔데스 명우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이렇게 늦은 밤에 남자를 만나러 나오는 것에 강 도련님이 동의해요?”‘강 도련님?’강이한 얘기를 안 하면 모를까, 이 남자 얘기가 나오자마자 이유영은 어디서부터 화를 내야 할지 몰랐다.이혼을 한 후로, 두 사람은 원래 두 개의 평행 직선처럼 서로 아무런 접점이 없어야 했다.하지만 강이한 이 남자, 전에는 한지음 때문에 이유영을 놔두지 않았고 지금은 또 한지음의 딸 때문에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아무리 성질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당하면 짜증을 내는 것도 정상이었다.이유영은 이 일에 있어서
전에도 엔데스 명우가 소은지를 아주 막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엔데스 명우가 소은지에게 손을 댈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지금 이게 뭐야?’이 순간 이유영은 도무지 무슨 말로 설명을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아니야. 네가 오바하는 거야. 이건 때린 게 아니야!”“그럼 이건...”순간 이유영은 무언가가 떠올랐다.소은지의 눈에 드리운 굳건함과 교만함을 보며, 이 순간 이유영은 정말 무슨 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아이는?”이유영은 소은지의 평평한 아랫배를 보며 물었다.시간을 계산해 보면 만약 지금 아이를 뱄다면 어느 정도 배가 나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소은지의 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이 말에 소은지는 고개를 떨구었다.그녀는 유달리 평온한 말투로, 심지어 아무런 감정도 없이 말을 내뱉었다.“지웠어!”이유영은 침묵했다.이건 이미 예상한 결과였다.이유영은 계속해서 물었다.“그럼, 그 사람 아이를 지운 것 때문에 너한테 무슨 짓을 하진 않았지?”“그놈이 원했던 일이라 걔가 제일 좋아할걸!”이유영은 다시 침묵했다.그리고 그녀는 가슴이 조금 막혔다.소은지는 아주 평온해 보였다. 특히 이유영 앞이라, 이유영은 소은지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은지야, 내가 알아서 안배...”“유영아.”이유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은지는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소은지는 고개를 들어 이유영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앙상한 작은 손으로 살랑살랑 이유영의 정교하게 파마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은 그토록 차가웠다.소은지는 그저 입을 열고 말했다.“나랑 그 사람 사이의 원한은 내가 잘 정리하지 못하면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가 될 거야. 그 누구도 날 도와줄 수 없어.”이 말에 이유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소은지의 말뜻을 잘 알아들었다.그리고 소은지의 말도 다 사실이었다!전에 이유영이 루이스더러 소은지를 데리고 도망치라고 안배했건만 결국 그들은 이유영이 모르는 사이에 엔데
이유영은 자기가 어떻게 별장에서 걸어 나왔는지도 모른다. 소은지는... 지금 엔데스 명우가 그녀의 인신 자유를 제한하지 않았다고 했다.그저 자기가 나오기 싫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렇긴 하지. 그 남자 곁에서 그렇게 불명예스러운 명분이 씌워졌는데, 심지어 그토록 도도하고 교만하던 은지가 밖으로 나오긴 싫을 수도 있지.’반산월로 돌아온 이유영은 온밤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침이 되었을 때, 이유영은 임소미의 전화를 받고 머리가 조금 띵해졌다!전화에서 임소미는 바락바락 화를 내며 말했다.“강이한 어디 정신 나간 거 아냐? 그놈이 무슨 자격이 있다고 널 그렇게 대해?”임소미는 화가 단단히 났다!강이한이 이온유를 입양하고도 이유영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안 임소미는 화가나 미칠 것만 같았다.“됐어, 외숙모!”자기를 위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외숙모의 말소리를 들으며 이유영은 마음속이 따뜻해 나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임소미는 정말 화가 많이 났다.“예전에 그 여자가 살아있을 때도 네 인생을 엉망으로 휘저어놓더니 지금 죽어서는 그 딸이 계속해 나가네!”‘이건 젠장 누가 감당할 수 있나!?’임소미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도대체 강이한은 왜 이렇게까지 이유영에게 집착하는 것인가?’“모든 것은 다 그 사람의 선택이에요!”이유영은 깊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전혀 아무렇지 않다는 말투로 말했다.하지만 전화 반대편의 임소미는 이 말을 듣고 갑자기 멈칫했다.그러고는 그저 말했다.“네 말이 맞아. 그건 다 사람의 선택이지!”시작이었던 아니면 지금이었든, 그 사람의 선택은 시종일관 한지음이었다.이유영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 임소미는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어찌 됐든 임소미는 그저 이유영이 무사하게 있으면 되었다!임소미가 전화를 끊고 나서 이유영은 저린 미간을 살짝 주물럭 했다.비록 외숙모 앞에서는 쿨한 척 편하게 얘기했지만 그건 그저 외숙모가 자기를 걱정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사실... 이유영도 마음이 엄청 복잡했다.강이한
아침을 먹고 난 뒤, 이유영은 최익준이 운전한 차를 타고 외출했다.길에서 한 국제 유치원을 지날 때, 이유영은 입을 열고 말했다.“잠시만요!”최익준은 차 속도를 늦추고 차를 길옆에 댔다. 이유영은 웅장한 유치원의 외관을 유심히 눈여겨 보였다. 그동안 이유영은 알게 모르게 자꾸 유치원을 유의하게 되었다.비록 이유영의 아이가 학교에 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항상 그랬다. 어머니가 되기 전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어머니가 된 후에는 모든 것들은 다 아이를 위주로 생각하게 되었다.이유영도 이미 차근차근 유치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그녀도 다른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자기의 아이에게 제일 값진 것을 주고 싶었다.“이 유치원은 파리에서 아주 유명한 유치원이며 파리 중심초등학교 산하의 겁입니다.”“공립인가요?”“안의 시설들은 다 사립 유치원의 표준대로 되어있습니다. 게다가 교사 자원도 일반적인 사립학교보다 좋다고 합니다.”‘그렇다면 이곳이 진짜 파리에서 제일 좋은 공립 유치원이란 말이네.’이 시간대는 마침 아이들이 등원하는 시간이었다.이유영은 아이들이 신나게 차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머릿속에는 이미 자기의 꼬맹이가 차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이 유치원의 입학 조건을 좀 알아봐 주세요.”“걱정하지 마십시오. 만약 작은 아가씨께서 여기로 돌아와서 학교에 다니면 무조건 이곳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최익준은 웃으며 대답했다.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리 급한 건 아니었다. 필경 아이가 아직 많이 어리니까...이유영은 오히려 아이가 좋은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 했다. 왜냐하면 일단 학교에 들어가는 이상 미래의 오랜 시간은 다 학교에서 학업을 위주로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코너를 돌아 들어가면 바로 이 유치원과 연결된 초등학교였다.아니나 다를까, 역시 파리에서 제일 좋은 학교다웠다...아이들이 고급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며 이유영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역시, 세상에는 부자들이..
이유영이 사무실로 돌아오자, 안민은 서류를 한 아름 안고 들어왔다. 산더미같이 쌓인 서류들을 보니 이유영은 그제야 갑자기 월초라는 것이 떠올랐다!매달 월초가 되면 처리해야 할 서류가 태산이었다.“안민 씨.”“네, 대표님!”“3일 후의 비행기표를 예약해 주세요. 퀘벡으로 가는 거, 비밀스럽게!”이유영은 안민에게 일을 맡겼다.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강이한이 이온유를 데리고 학교 문 앞에 나타난 장면이 떠올랐다. 이 개같은 자식이 당분간은 파리를 떠날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이뿐이 아니라 그는 이온유를 이곳에서 학교를 다릴 수 있게 하였다.그럼, 이유영은 당연히... 자기의 아이를 파리로 데려오지 않을 생각이었다.아이가 없을 때도 강이한은 영문도 모르게 자꾸 이유영에게 집착하는데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강이한이 더욱 난리를 피울 게 뻔했다.“네!”안민은 고개를 끄덕이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유영이 마음 아팠다.왜냐하면 이 3일 동안 이유영은 무조건 회사에서 밤낮으로 야근해야 할 게 분명했다.이유영은 머리를 박고 열심히 일을 했다. 오전에 소군리가 왔지만, 이유영은 너무 바쁜 나머지 대접할 시간도 없었다!소군리는 아주 유명한 정형외과 의사 한 분이 지금 파리에 와 계시는데 이유영이 시간을 내서 한번 만났으면 한다고 했다!이유영은 여전히 같은 대답이었다.“옷을 입고 있으니 다른 사람이 볼까 두렵지도 않아요.”아주 대수롭지 않은 태도였다.그리고 정말 그 흉터들은 수술로 지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래도 이 말은 너무 거친 거 아닌가?’“당신이란 여자 정말 약도 없네!”소군리는 지금 도무지 이유영에게 뭐라 얘기해야 할지 몰랐다.“됐고 지금 제가 한창 바쁜 거 안 보여요?”퀘벡으로 가려는 계획 때문에 이유영은 지금 손에 쌓인 일들은 다 처리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기에 소군리를 대접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소군리는 사리 구분 못하는 이유영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이후에 정 회장님께서 또 나더러 당신에게 의사 선생님을
사실 열 살짜리 아이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유영이 보기엔, 이 순수함은... 깨끗하지 않았다.왜냐하면 10살짜리 한지음은 마음속에 아마 이유영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차서 어떻게 하면 이유영에게 복수를 할까 계산 중이었을 것이었다.쿵 소리와 함께 도시락통은 카펫 위에 떨어져 둔탁한 소리를 냈다.그리고 도시락통의 뚜껑이 떨어지면서 열려 안에 든 음식들이 데구루루 굴러 나왔다. 음식에서는 모락모락 김도 나고 있었다.순간 사무실 내 분위기는 쥐 죽은 듯 조용해지더니 뒤이어 싸늘해졌다!이온유는 바닥에 떨어진 도시락통을 보고는 또다시 이유영을 보더니 순간 눈에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그리고 뒤돌아 강이한에게 달려갔다.강이한은 아이를 와락 품속에 안았다.이유영은 강이한의 싸늘한 얼굴색에 두피가 저렸다.이유영의 실수였다...그녀는 서류를 꺼내던 중 실수로! 자기를 싸늘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 강이한을 보니 이유영은 미안하다는 말이 목구멍에 막힌 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싸늘한 침묵으로 변했다.‘뭐라고 설명해?’강이한과 이유영 사이의 오해가 적지 않았다.강이한은 냉랭하게 이유영을 한눈 보고는 아이를 데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발걸음 소리는 마치 이유영에게 실망을 말하는 것만 같았다.“쳇!”이유영은 콧방귀를 뀌었다.얼굴에는 더할 나위 없이 짜증으로 가득했다.안민이 들어올 때 지저분한 바닥을 보면서 말했다.“대표님!”‘아니, 이건... 아까 꼬맹이 품속에 도시락통을 안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다 바닥에 떨어진 거지!?’“앞으로 이런 상관없는 사람들은 들여보내지 마세요.”이유영은 차갑게 말했다.여기서 강이한과 이온유를 만난 것에 대해 엄청나게 불쾌해하는 게 분명했다.안민은 잠시 멈칫하더니 입을 열고 대답했다.“하지만 회장님께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강 도련님 오시면 막지 말라고 했습니다!”“외삼촌이요?”“네.”“그래도 그건 이온유가 없을 때 얘기죠.”이유영은 버럭 화를
그 후로 3일간, 이유영은 거의 일에만 매진했다. 그리고 기적같이, 전에 매일 아침 시간 맞춰서 전화해 반 시간 넘게 강이한의 욕설을 퍼붓던 임소미는 3일 동안 기적처럼 잠잠했다.이에 이유영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필경 자기도 너무 바빴으니까...이 3일 동안, 강이한과 한지음의 딸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아서 이유영은 업무 외에 다른 것들은 그나마 조용했다.내일이면 퀘벡으로 떠난다.퇴근한 후, 이유영은 먼저 최익준더러 로열 글로벌 산하의 백화점으로 가달라고 했다.백화점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유아용품 구역으로 갔다.“아가씨, 안경을 쓰십시오.”최익준은 이유영에게 그녀의 특제안경을 건네주었다.“네!”백화점 안의 불빛은 너무 눈부셨다.이유영은 이런 곳에서 오랫동안 있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평소에 그녀는 이런 곳에 별로 오지 않았지만, 내일에 퀘벡으로 가니까 아이에게 물건 좀 사주고 싶어서 들른 것이었다.유명한 아동복 가게를 지날 때, 이유영의 눈빛은 순간 가게에 휘말려 들었다. 정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유영은 이쁜 공주 치마를 입어보며 강이한에게 보여주고 있는 이온유를 보았다.강이한의 눈빛에는 부드러움이 넘쳐날 것만 같았다.최익준도 이유영의 눈길 따라 고개를 돌리고는 바로 숨을 한 모금 들이마셨다.‘참 정말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최익준 씨.”“네.”“한 남자가 여자를 엄청나게 사랑해야 그 여자가 낳은 아이에게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거죠?”“이론적으로 따지면 맞습니다!”이건 아주 골치 아픈 질문이었다. 필경 최익준도 자식이 있는 아버지가 아니라서 좋은 아버지라는 것이 어떤 걸 말하는지 몰랐다.이유영은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그렇긴 하지. 한 여자를 극치에 이르도록 사랑해야만 좋은 아버지가 되는 거지.’이유영은... 처음부터 너무 자신을 높이 봤다.‘서주! 만약 박연준은 강이한 때문에 나를 접근한 거라면 그럼 강이한은... 서주 때문에 나를 접근한 거겠지?’일이 이미 다 끝난
공기가 얼어붙었다.“쾅!”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박연준이 탁자를 세게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박연준의 억눌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가서 유영이를 백산 별장으로 데려가.”이유영은 미친 게 분명했다.‘감히 엔데스 셋째 도련님 같은 인물과 술집에 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건가?’정국진이라면 이유영이 엔데스 신우와 가까워지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특히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엔 더욱 반대가 심할 것이다. 박연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고 남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문기원이 급히 박연준을 따라나섰다.“네!”위험한 박연준의 모습에 용준은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대답했다.강이한이 각막을 이유영에게 이식해 주려고 할 때 왜 박연준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되는 듯했다.지금 이유영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그녀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과거의 그녀는 마치 강이한의 손바닥 위에서 반짝이는 천사 같았다. 하지만 혼란을 겪은 이후 그녀는 변했다.거만하고 방탕하게 아무하고도 거리낌 없이 어울렸다.지금 박연준이 생각했을 때, 이유영은 더 이상 고상하고 단정한 명문가의 며느리가 아니라 그저 자유롭게 떠도는 바람 같은 여자였다.최근 그녀는 서재욱과 엔데스 신우와 모호하기 짝이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서주에서.박연준이 차에 타기 전, 문기원이 그를 붙들었다.“선생님, 선생님!”“비켜.”“오늘 정말 중요한 회의입니다.”문기원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은 서주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시기였기에 이유영을 생각하면 문기원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정말 만만치 않은 여자였다.박연준 곁에 있는 문기원조차 그녀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박연준이 돌아서기를 기다렸다.박연준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눈을 감은 순간, 그의 눈빛 속 날카로움은 잠시 가려졌지만 몸 전체에서 풍겨 나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은 고민에 휩싸일 때마다 이런 방식을 택했다.하지만 결국 이런 방식은 오히려 고민에 잠긴 마음을 더욱 괴롭힐 뿐이었다.한번 마음에 깊이 새겨진 근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었다.“죄송합니다만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그녀의 몸은 항상 술을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예전에 건강이 좋지 않기도 했고 어렵게 다시 찾은 시력인 만큼 그녀는 술과 더욱 멀리하게 되었다.하지만 오늘 진영숙이 백산 별장에서 벌인 일을 생각하니 이유영의 마음속에서는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 감정을 억눌렀다. 그녀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회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인 건지 알 수 없었다.남자는 그 말을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깜빡했네요.”남자의 목소리는 유난히 부드러웠다.“괜찮아요.”“...”“이제 가도 될까요?”“술을 마시지 않아도 즐길 수 있잖아요.”“...”하지만 이유영은 이런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특히 많이 노출된 옷을 입은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하지만 남자는 그녀에게 반항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그녀를 향락의 세계로 이끌었다....한편 박연준은 서주에서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용준의 전화를 받은 그의 가슴이 쿵쾅거렸다.“그쪽은 괜찮아?”진영숙에 관해 묻는 것이었다.이유영이 인정사정없을 거라는 걸 박연준도 알고 있었다.과거 강이한 곁에 있을 때의 이유영을 떠올렸다. 그때의 그녀는 적어도 강이한에게 만큼은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었다.그래서 진영숙이 아무리 이유영을 괴롭혀도 그녀는 어떻게든 참고 견뎠다.지금은 성격이 점점 더 나빠졌다고 해야 할까? 아예 참는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용준은 진영숙의 현재 상황을 박연준에게 설명했고 이미 좋지 않았던 박연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회의 끝나고 바로 갈게. 일단 진정시켜.”박연준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 과연 내가 진정시킬 수 있을까?’“네!”“유영이는
“박연준, 네가 강이한과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고 또 이제는 강이한 어머니까지 지키려 한다는 사실을 난 여태 몰랐네.”그 말은 날 선 조롱처럼 들렸다.동시에, 과거 강이한과 박연준의 사이가 이유영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되새기게 했다.그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유영의 냉정한 말에 박연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다른 일 있어서 먼저 끊을게.”이유여은 박연준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사랑이란 그저 우스운 감정에 불과했다.차는 천천히 백산 별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지혁 씨.”“네.”“지혁 씨는 사랑해 본 적 있어요?”이유영은 지혁을 향해 불쑥 물었다.예전의 이유영은 사랑이란 존재를 믿어 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를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토록 반짝이던 사랑이란 단어 뒤편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었는지 이젠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의 말을 들은 지혁은 묵묵히 앞을 응시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핸들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이유영은 굳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쾅!”그 순간, 갑작스러운 충격음과 함께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이유영은 아픈 이마를 짚고 있었고 지혁은 차에서 내려 사고 처리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차 문이 열렸다.“아가씨.”지혁이 이유영 앞에 공손하게 나타났다.“무슨 일이에요?”“셋째 도련님 차입니다.”“...”그 말을 듣고 그녀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자꾸 나타나는 셋째 도련님의 존재에 우연한 사고인지 아니면 이미 계획된 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이유영은 미간을 짚으며 말했다.“어떻게 된 거예요?”“셋째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이유영은 이 전설 속의 셋째 도련님을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특히 엔데스 가문과 정씨 가문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밖에서 이유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이유영은 몰랐다. 그 아이가 결국 진영숙이 데려온 의사로 인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줄은.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아!”분노가 치밀수록 이유영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고 진영숙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녀는 이유영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세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놔, 놔 이 미친년아! 악!”“짝!”이유영의 손바닥이 진영숙의 뺨을 후려쳤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말릴 용기를 잃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유영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다시 한번 움찔하고 말았다.이유영의 행동에 소리 내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숨을 삼켰다. 진영숙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결국 이유영은 진영숙을 놓아주며 말했다.“주제 파악하라는 의미에서 그랬어요. 당신은 할머니라는 말을 입에 올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에요.”그렇다. 진영숙은 할머니가 될 자격이 없었기에 이유영도 그녀를 아무 감정 없이 내던질 수 있었다.진영숙의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 머릿속이 멍해진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얼어 있었다.그 사이 이유영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저년이 감히...”감히 뭐라고?예전엔 강이한 곁에서 순한 토끼처럼 보호받더니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이유영이 밖으로 나왔을 때,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를 감쌌다.그 순간, 가슴속의 억눌린 감정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지혁은 이유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용준을 밀쳐내고 앞으로 다가왔다.“아가씨.”“가요.”용준은 여전히 당당한 이유영의 모습을 보며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유영의 휴대폰이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박연준이었다.차에 오르자마자 전화를 받은 이유영의 모습은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여보세요.”“어디야?”“풍산.”“유영아...”전화 너머의 남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박연준은 지금 이유영이 강씨 집안을 어떤 태도로 맞서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강씨 집안에서 강이한이 곁에 없는 동안에는 진영숙의 말에 고스란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홍문동으로 이사한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진영숙이 찾아오면 이유영은 그녀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고 감히 그녀의 말에 거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도대체 언제부터일까?’아마 강이한과의 이혼을 결심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즈음부터 이유영은 진영숙의 말에 더 이상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그땐 고작 진영숙의 지시를 어기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감히 나한테 손을 대?”한참 뒤에야 겨우 말을 꺼낸 진영숙이 이유영을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이빨을 드러낸 짐승 같은 기세가 실려 있었다.이유영은 고작 이런 걸로 화를 내는 진영숙이 가소로웠다.이유영은 아직 다 마시지 않은 따뜻한 물이 담긴 잔을 들고 망설임도 없이 진영숙의 얼굴에 뿌렸다.“앗!”진영숙은 비명을 질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손을 댄다는 건 이런 거예요.”이유영은 바닥에 주저앉은 진영숙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퍽!”손에 들고 있던 잔이 손끝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산산조각 났다.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예전의 풍산 사람들이 기억하던 이유영은 언제나 조용하고 온순한 여인이었다. 누가 감히 지금 이유영의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분노로 찬 이유영은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진영숙 역시 이유영을 증오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예전에도 이유영에게 자주 화가 났지만 오늘처럼은 아니었다.진영숙은 분노가 목 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이유영은 격하게 숨을 들이마신 진영숙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였다.“다시 백산 별장에 가거나 우리 가족 근처에 얼씬거리면 그땐 당신 진짜 가만 안 둬.”그 마지막 한마디는 징벌처럼 무겁고 섬뜩할 만큼 냉정했다.월이는 이유영의 세상 전부이자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힘들게 월이를 낳으면서 강씨 가문은 이 아이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아
끊임없이 박연준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던 강이한의 모습을 이유영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두 사람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사이였다.늘 서로를 원수처럼 대했고 그 모습을 본 이유영도 두 사람 사이에 과거의 악연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악연이 한 여자 때문이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그 여자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 전까지는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은 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모든 게 이토록 명백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유영만은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그 7년 동안 강이한은 얼마나 다정했던가?그 친절함 속에 실은 다른 여인을 향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이유영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박연준은 강이한의 어머니를 보호하고 있었다.이건 과거의 이유영이라면 상상조차 못 했을 일이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다시 실감하고 있었다.“어쨌든 강이한 씨의 어머니잖아요.”조금 전 용준이 한 말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마치 우스운 농담을 듣는 듯했다.“형님이 돌아오신 후에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용준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공손함 속에는 이유영을 절대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있었다.이유영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진영숙이 월이를 데려가려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그녀의 분노는 가슴 깊이 타오르고 있었다.“지혁 씨.”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지혁을 불렀다.지혁은 그녀의 뒤에 있다가 곧장 앞으로 나섰다.“네, 아가씨.”“전 들어가야겠어요.”이유영이 내뱉은 짧은 문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용준은 지금까지 이유영의 이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 냉혹함에 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네!”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지혁은 곧장 앞으로 다가섰다. 분위기는 마치 폭발할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이유영은 어지럽게 엉킨 현장을 냉정히 바라보며 우아하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용준은 지혁을 막으려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이유영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녀는 임소미의 품에 파고들며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오래전 소은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강이한은 연애 상대론 괜찮지만 결혼은 다르다고.그때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강이한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소은지는 그녀를 말렸었다. 소은지는 그녀의 결혼을 말렸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결국 소은지의 말은 모두 옳았음이 증명됐다.끝났다고 믿었던 그 관계는 여전히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때, 등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앞으로는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가득 차올랐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뺨을 따라 끝없이 흘러내렸다.예전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이렇게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 혼자 견뎌야만 했다.임소미가 감싸안아 주자 이유영의 마음은 다시금 따뜻함으로 물들어갔다.그리고 이 감정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앞으로는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가 말한 '아무도'는 명백히 진영숙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에게서 다시 이런 고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임소미는 그 말을 반복하듯 속삭였다.오늘 밤, 임소미의 마음속에 일어난 파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진영숙이 막말을 퍼붓고 손까지 쓰는 모습을 보며 이유영이 강씨 가문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임소미는 문득 깨달았다.사모님의 우아한 모습은 진영숙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손부터 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살아야
이유영이 돌아오고 그녀는 진영숙과 임소미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명의 도우미가 진영숙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임소미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쳤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재빨리 붙잡고 말했다.“너 먼저 위로 올라가.”“무슨 일이 있었어?”이유영이 물었다.정씨 가문에 돌아온 지 오래된 만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우아하고 온화한 사람인 만큼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임소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유영, 넌 누가 너한테 눈을 기증해 줬는지 모르지? 강이한이 네게 빚을 졌다고 하지만 사실은...”“입 다물어!”진영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고 진영숙은 여전히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이유영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엔 전례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도 진영숙은 이유영을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한 번도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용성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증오가 더욱 깊어진 듯했다.“유영아, 너 먼저 위로 올라가.”“엄마.”“올라가!”임소미는 이유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격하게 소리쳤다.임소미가 이런 식으로 이유영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임소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유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말문이 막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진영숙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도우미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유영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이유영, 강이한은 너에게 빚진 게 없어. 강이한은 오히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너야말로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네 눈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