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의 달달한 아내 사랑: Chapter 3671 - Chapter 3680

3682 Chapters

제3671화

유정이 상자에서 무게감 있는 물체를 꺼내려다 안에 든 걸 본 순간, 그대로 얼어붙었다.철장 안에는 거대한 거위 한 마리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멍청하고 어딘가 어수룩해 보이는 생김새였다.도무지 귀중한 물건이라 하기엔 너무나 황당한 광경이라 유정은 순간 할 말을 잃었고 고효석도 당황한 얼굴이었다.“서정후 할아버님이 정말 중요한 거라고 하셔서, 택배로는 안 된다고 조심히 직접 가져오라고 하셨어. 근데, 이 녀석 오는 내내 한 번도 안 울더라니까?”유정은 얼떨떨한 상태로 외할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냈다.[외할아버지, 효석이가 가져온 거위 받았어요. 근데 왜 저한테 이걸 주시는 거예요?]이에 곧 답장이 왔다.[무슨 소리냐, 그건 기러기야.]유정은 다시 케이지 안을 들여다봤다.‘얼굴도, 행동도 전혀 기러기처럼 보이지 않는 이 둔한 새가 대체 어떤 구석이 기러기로 볼 수 있단 말인가?’[그거 사기당하신 거 아니에요?]유정이 다시 메시지를 보내자, 서정후는 아예 음성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였다.[내가 왜 효석이한테 기러기를 보내게 했는지, 한번 맞춰봐라]유정은 키패드를 빠르게 눌렀다.[누가 줬는데 버리긴 아깝고, 혼자 키우긴 귀찮아서 저한테 떠넘기신 거죠?]이번엔 한동안 아무 응답이 없는 걸 보면 분명 화났을 것이다.효석은 케이지에 물을 조금 따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진짜 다행이네. 내가 운전해서 와서 그렇지, 택배로 보냈으면 얘 죽었을 수도 있어.”“이거 아니, 기러기, 안에서 며칠 갇혀 있었으면 진짜 큰일 났지.”기러기는 물을 몇 모금 마시더니, 날개를 파르르 떨며 기운을 차렸다. 그리고 곧, 목을 치켜세우고 울기 시작했다.“꽤애애애앵!”쉰 듯한 소리인데 이상하게 강한 울림이 있자, 식당 전체가 순간 얼어붙었다.그렇게 모든 시선이 자신과 효석에게 쏠리자 유정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급히 고개를 숙이고는 철장 밑으로 기러기를 밀어 넣으며 중얼거렸다.“또 울면 바로 주방으로 보낼 거야. 탕으로 끓여버릴 거
Read more

제3672화

“조백림 사장님, 갑자기 어디 가시는 거예요?”“몇 번이나 약속 잡고 겨우 자리 만든 건데, 술 한 병도 못 비우고요!”“사장님 진짜 급한 일 있으신 듯하네. 다음에 다시 모시자고요.”테이블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일어나 말렸지만, 백림은 아무 말 없이 룸을 빠져나왔다.호텔 정문 앞에 대기 중이던 차량이 남자를 맞이했고, 이윽고 운전기사가 물었다.“사장님, 어디로 모실까요?”백림은 짙게 그늘진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영효관으로 가죠.”한편 유정 쪽에서는, 소강희가 돌아오고, 세 사람은 식사를 시작한 참이었다.이때 고효석이 물었다.“너는 언제쯤 경성에 갈 예정이야?”유정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연말쯤에. 아마 외할아버지랑 같이 설 보낼 수도 있을 것 같아.”“삼촌, 이모랑도 같이 와. 특히 이모는 경성에서 보내는 명절을 많이 그리워하실 거야. 설 분위기는 경성이 최고니까.”유정도 그 말엔 공감했지만, 아버지는 항상 조부모님 곁에서 설을 보내왔기 때문에, 가족 모두를 데려오는 건 어렵다고 생각했다.“고향에선 이번 설 맞이해서 전통문화 거리도 새로 만들었대. 분위기 장난 아닐걸.너 오면 내가 직접 데리고 다녀줄게.”하지만 유정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효석아, 외할아버지의 오해로 이런 상황이 생긴 거 알지만, 나는 당분간 연애할 생각이 전혀 없어. 괜히 기대하게 했다면 미안해.”그 말에 효석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으나 이내 환한 미소로 응수했다.“괜찮아. 오늘은 그냥 옛 친구로 만난 거니까.”효석이 이렇게 담담하게 받아주자, 유정도 마음이 놓였다.막 말을 이어가려는 찰나 여자의 시선이 문 쪽을 향하며 굳었다.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익숙한 사람, 백림이었다.백림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고, 유정과 효석 사이를 지나쳐 오더니 아무 말 없이 유정 옆에 자리를 잡았다.백림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유정에게 부드럽게 물었다.“친구야?”효석도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유정을 바라보았다. 백림이 가까이 다가
Read more

제3673화

“꽤애앵!”유정의 발밑에서 정체불명의 괴성이 터지자, 조백림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그 시선이 유정 발밑의 철장을 향하자, 그는 웃음을 삼킬 수 없었다.“설마 철판 위에 올려서 거위탕 끓이려고?”유정은 할 말을 잃었고, 강희는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거위 아니고 기러기예요. 고효석 씨가 가져온 거래요.”“기러기를 데려왔다고?”백림의 눈빛이 살짝 차가워졌고, 말투엔 묘한 의미가 실렸다.“그게 어떤 의미지?”효석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얼굴이 붉어졌고, 유정은 철장을 슬쩍 발로 툭 차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냥, 반려동물 키워보고 싶어서. 외할아버지가 경성에서 얘 통해서 보내신 거야.”“반려동물? 그게 기러기야?”백림은 비웃는 듯한 미소로 유정을 바라봤다.“왜, 안 돼?”유정은 똑 부러지게 되물었다.“되지. 단, 소음만 안 난다면 말이야.”백림은 짙은 눈길로 유정을 바라보며, 평범한 말투에 묘한 여운을 실었다. 유정은 순간 그 시선을 피하고 싶을 만큼 불편해졌고, 속으로는 진심으로 그를 발로 차고 싶었다.그때 효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럼 제가 다시 경성으로 가져갈까?”“아니야.”유정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당분간 강성에 있겠다면서. 친구 만나러 온 거잖아. 내가 맡아서 잘 돌볼게.”여자는 더 이상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고, 백림은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유정이 자신에게 보여주는 냉담함과는 다른 웃음을, 효석에게는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그 모습이 표정이 서늘해질 만큼 낯설고 불쾌했다.효석은 어딘가 위축된 듯 식사를 대충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오후에 전우 집에 들러야 해서, 먼저 가볼게.”그 말에 유정은 자리에서 함께 일어났다.세 사람은 함께 식당 문 앞까지 나갔고, 효석이 차에 올라 떠난 후에야 유정과 백림은 안으로 되돌아왔다.강희는 분위기를 눈치채고, 핑계를 대며 자연스럽게 빠져나갔다. 유정이 계산하려고 카운터에 갔을 때, 직원이 말했다.“고객님 일행
Read more

제3674화

서정후는 으쓱하며 말했다.[어쨌든 이런 아이디어는 보통 사람은 못 떠올리지.]유정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그야 그렇죠. 할아버지는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요.”서정후가 물었다.[이런 핑계 저런 핑계 말고, 그냥 말해봐. 고효석 어때?]이에 유정은 단호하게 말했다.“그럼 솔직히 말할게요. 전 거절했어요.”그러자 서정후는 약간 불쾌한 기색으로 물었다.[너 그러는 거, 그 조백림 때문이지?]이에 유정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건 아니에요.”[그러면 왜?]유정은 담담하게 말했다.“이유 없어요. 그냥, 연애할 생각이 없어요.”그때 누군가 서정후를 불렀고, 그는 대답하며 전화를 마무리하려 했다.[장씨랑 바둑 두기로 했거든. 끊을게. 기러기 잘 키워라, 나중에 죽이지만 않으면 돼.][그리고 효석인 한 번 더 생각해봐라.]“생각 안...”유정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전화는 끊겼다.소파에 깊숙이 기대앉은 유정은 거실 테이블 위 철장 안의 기러기와 눈을 마주쳤다. 눈이 커질수록 점점 머리가 지끈거렸다.‘이걸 진짜 어떻게 키워야 하지?’잠시 고민하다, 유정은 휴대폰을 들어 지역 동물보호센터에 전화를 걸었다.“혹시 기러기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직원은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고, 사진을 확인한 뒤 안타까운 말투로 답했다.[현재 저희 보호소는 수용할 수 있는 동물이 꽉 차서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아요.]유정이 물었다.“그럼 방생은 가능할까요?”[네, 가능은 한데요. 사진상으로 보니 이 기러기는 인공 사육된 개체고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것 같아요.][야생으로 보내면 스스로 먹이도 못 찾을 가능성이 높아서, 조금 더 키우시는 걸 권할게요.]이에 유정은 맥없이 대답했다.“알겠어요.”직원은 덧붙였다.[기러기 사진은 저희 홈페이지에 올려둘게요. 입양을 원하시는 분이 계시면 바로 연락드릴게요.]그 말에 유정은 피식 웃었다.[감사드려요.]전화를 끊자, 철장 속 기러기가 다시 울어댔다.“꽤애애앵!”그 소리에 유정은 철장 쪽으로
Read more

제3675화

“네가 상관없다고 해도, 그건 네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야.”조백림이 입꼬리를 올리자, 유정은 눈살을 찌푸리며 남자를 바라봤다.“우리 이제 다 정리된 거 아니었어?”백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나도 며칠은 정말 고민했어. 이제 너를 놓아주는 게 맞는 건지. 그런데 오늘 네가 다른 남자랑 앉아서 맞선보는 걸 보고 깨달았어.”‘난 도저히 널 놓을 수 없더라. 네가 고효석을 바라볼 때, 질투가 나서 미칠 뻔했거든.”유정은 멍하니 백림을 바라보자, 남자는 더 가까이 다가섰다.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눈을 내려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기은미 일은, 내가 잘못했어. 나도 그런 감정은 처음이라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어. 물론 너도 책임이 있고.”“내가 무슨 책임이 있는데?”유정이 분노 섞인 목소리로 되물었다.“넌 늘 무심한 척했잖아.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그런데 내가 한 번 실수했다고 넌 날 완전히 내쳐버렸어.”“아무 여지도 안 남기고. 그건 나한테 너무 불공평해.”그 말에 유정은 비웃으며 말했다.“잘못한 남자들은 꼭 이런 식으로 자기합리화하더라?”백림은 미간을 좁히고, 조금 전과 달리 조용히 말했다.“아니, 변명하는 거 아니야. 내가 잘못한 건 맞아. 하지만 한 번의 실수로 사형선고 받긴 억울해. 항소할 거니까, 다시 재판해 줘.”유정은 단호히 말했다.“여긴 대법원이야. 판결 나면 항소 같은 거 없어.”백림은 짙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예전에 네가 나한테 진 빚, 그걸로 감형 안 될까?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보고, 다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만 줘.”유정은 고개를 돌려 단호히 말했다.“안 돼.”“그렇게 매정하게 굴지 마.”백림은 유정의 어깨에 이마를 살짝 기댔다.“정말, 내가 죽어야 내 말을 믿겠어?”유정은 그 말에 마음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를 악물고 남자를 밀쳐내고는 냉정하게 말했다.“지금 네가 옆에 오는 것조차 역겨워. 우리 사이엔 가능성이 제로야. 가! 나 조만간 이사 갈
Read more

제3676화

유정은 깜짝 놀랐는지 큰 숨을 들이켰다.“하지만, 내 이모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어. 여경은 아주 어릴 때 어머니를 잃었고.”주윤숙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이모부도 내 일 때문에 여경과 인연을 끊었어. 다시는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 그래도 여경은 아직도 가족이란 말에 집착하더라.”유정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조백림의 아버지 조변우를 빼앗아 간 여자가 주윤숙의 이모의 딸, 그러니까 그녀의 사촌이라니.게다가 조변우는 여자를 밝히거나, 아내를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더 이해되지 않았다.그렇다면, 그 세 사람 사이엔 과거에 대체 어떤 얽힘이 있었던 걸까?굉장히 많은 의문점들이 있었지만 유정은 끝내 묻지 않았다. 그 시절의 상처는 아직도 주윤숙에게 뼛속 깊이 남아 있을 것이었으니.그 이야기를 꺼내는 건, 피가 엉겨 붙은 상처를 억지로 찢는 일과 같이 보였다.그때 정선숙 아주머니가 조심스레 다과를 들고 왔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여경과 조시안에 관한 이야기를 접었다.그리고 유정은 은근히 조백림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 혹은 백림의 편을 들어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차를 마시며 매화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화제를 돌려 최근에 개막한 청주의 미술 전시회로까지 이어졌다.그때까지도, 주윤숙은 단 한 번도 백림의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말문을 터놓고 이야기했다. 차를 마시며 꽃을 보고, 떠오르는 이야기를 그대로 나누며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얼마 후, 정선숙 아주머니가 와서 살며시 말했다.“도련님이 전화하셨어요. 조금 이따 저녁 먹으러 오신다고 하네요.”백림이 온다는 소리에 유정은 고개를 떨구고 자리에서 일어날 채비를 했다. 주윤숙도 유정의 표정 변화를 눈치챘는지, 가볍게 핀잔을 주듯 말했다.“걔는 먹을 데가 없어서 집에 오는 거래요? 집 밥은 맨날 담백하다고 싫다더니.”정선숙 아주머니가 눈웃음을 지으며 낮게 말했다.“아마도, 자기 어머니 곁에 있고 싶어서 돌아오는 걸 거예요.”
Read more

제3677화

조백림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식사가 끝난 뒤, 주윤숙은 소파에 앉았고 조백림은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드렸다.“엄마, 다음에 유정이 또 오면 저한테 미리 한마디만 해주세요.”주윤숙의 목소리는 늘 그랬듯 부드러웠지만, 말투엔 분명한 불만이 서려 있었다.“너는 왜 온 거니? 네가 안 왔으면 유정이랑 나랑 저녁이라도 같이 먹었을 거 아냐?” “너만 오면 유정이는 꼭 가버려. 그러니까 앞으로 특별한 일 아니면 굳이 안 와도 돼.”너무나도 매몰차게 말하는 주윤숙에 백림은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조금 억울한 듯 백림이 말했다.“엄마, 너무 티나게 편애하시는 거 아니에요? 엄마가 먼저 저 같은 아들이 있었으니까 며느리도 생기는 거잖아요.”그러나 주윤숙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너희 둘이 파혼하면 나는 유정을 그냥 양딸로 삼을 거야.”그 말에 백림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유정이 엄마 딸이면 가끔밖에 못 오잖아요. 며느리면 매일이라도 올 수 있는데요?”그러나 주윤숙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내 딸이면 그래도 가끔이라도 보겠지. 며느리면, 언제 화가 나서 영영 안 볼 수도 있어.”왜인지 모르게 설득되는 말에 백림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엄마, 진짜 저한텐 이제 아무 관심도 없어진 거예요?”그러자 주윤숙은 깊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제 보니까 말이야, 네가 없으니까 유정이랑 내 사이가 훨씬 평온하고 좋아.”촌철살인에 백림은 또 한 번 말이 막혔고, 그는 더 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잘못했어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어요. 엄마가 예전부터 하신 말, 안정을 찾으라고 하신 그 말, 이제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이에 주윤숙은 고개를 돌려 아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말했다.“오늘 유정이랑 얘기 나누느라 정신 팔렸더니, 경전 필사를 못 했네?”이에 백림이 바로 대답했다.“지금 하러 갈게요.”그렇게 말하고 남자는 재빨리 몸을
Read more

제3678화

여경은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감싸고 울었다.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변해버렸는지, 왜 조변우는 그것조차 이해하지 못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이 오랜 세월 동안, 여경은 조변우가 주윤숙과 이혼하길 기다리며 살아왔다. 자신과 아들 시안에게 정식으로 이름을 붙여주길 바랐다.하지만 세월은 너무도 무심하게 흘렀고,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결국 그녀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여경은 햇볕 아래 설 수도 없는 여자였다.또한 조변우는 늘 여경을 주윤숙 앞에 세우지 않았다. 혹여 마주치더라도, 먼저 자리를 피해야 하는 건 항상 그녀였다.여경은 대체 뭐란 말인가? 조선시대의 첩보다도 못한 존재 아닌가?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 속에서, 여자로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다 없어져 버렸다. 그런데도 조변우는 아직도 여경에게 여전히 포용과 너그러움을 바라는 건가?여경의 마음은 점점 더 미움으로 가득 찼다.“지금 주윤숙이 가진 모든 건 원래 내가 가져야 했던 거예요. 내가 얼마나 참았는지 알기나 해요? 난 무려 20년을 넘게 꾹 참고 살아왔어요.”“그리고 이제는 정말 더 이상 못 참겠어요! 그러니 더 이상 날 몰아붙이지 마요. 나도 내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겠으니까!”여경은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조변우가 바로 다시 전화했지만, 여경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끊어버렸다.20년을 참고 또 참으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랬기에 이번만큼은, 단 한 번만큼은 이기적으로 굴고 싶었다.더는, 자신을 억지로 굽히며 조변우의 기분을 맞춰줄 필요는 없었다.조변우는 결국 전화를 포기하고 메시지를 보냈다.[너랑 시안이 한 일은 더 이상 따지지 않을거고, 예전처럼 대할 거야.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둬. 주윤숙에게 해를 끼치진 마.]여경은 그 메시지를 보고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울다가 웃는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고통스러워 보였다.반평생을 사랑해온 그 사람은 결국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었고, 그 여자가 바로 주윤숙이었다.
Read more

제3679화

노영인은 조백림의 태도가 확실히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예전처럼 다정하게 웃어주지도 않았고, 말투도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이에 영인은 서운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바닥에 있던 기러기인 초밥을 안아 들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월요일. 하루종일 바쁘게 일한 유정이 집에 돌아왔을 때는 시각은 밤 아홉 시가 넘어서였다.곧장 주방으로 들어가 칵테일 한 병을 꺼내 마셨고, 두어 모금 마셨을 무렵,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잔을 내려놓고 문을 열자,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는데, 몇 차례 마주친 적 있는 조지였다.남자는 흰색 캐릭터 티셔츠 차림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인사했다.“백림이네 집에서 술 한잔하고 있는데요, 혹시 같이하실래요?”유정은 정중히 거절했다.“방금 퇴근해서요. 좀 피곤하네요. 두 분이 마시세요.”이에 조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피곤할 땐 오히려 한잔이 더 좋아요. 내일 다시 돌아가거든요. 설 지나고 나서야 다시 올 텐데, 오늘은 작별 파티라 생각하고 와 주세요. 네?”유정은 더는 마땅한 거절 이유를 찾지 못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술 몇 병 챙겨 갈게요.”“기다릴게요!”조지는 특유의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었다. 남자를 돌려보낸 뒤 유정은 옷을 갈아입고, 작은 손가방에 술 몇 병을 넣고는 건너편 백림의 집 앞에 섰다.이 상황이 어딘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잠시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마음을 정리하고 노크하자, 문을 연 건 백림이었다.남자는 깊고 어두운 눈빛으로 유정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웃었다.“비밀번호 알려줄게. 다음엔 그냥 들어와.”“아니야. 다시 올 일 없을 테니까.”유정은 툭 던지듯 말하고 안으로 들어섰다.간결하고 세련된 인테리어, 백림의 성격답게 깔끔하면서도 감각적인 집이었다.조지는 반갑게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유정은 가져온 술을 거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담담히 말했다.“잠깐만 있다가 갈게요. 두 분이 편하게 노세
Read more

제3680화

조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는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걸 보니,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그는 자국 언어 억양이 섞인 서툰 말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학생 때 좋아하던 여자가 있었어요. 그 애도 절 좋아했죠. 우린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하게 됐는데, 졸업하면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어요.”“하지만 졸업 후 제가 찾아갔을 땐, 그 애는 이미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더군요. 우리의 약속은, 그 애한테만 잊혀진 거였어요.”“그 일을 오랫동안 잊지 못했어요. 그 애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현실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죠.”“그래서 아예 상처를 떨쳐내려고 한국으로 왔어요. 그 아이가 없는 곳에서 다시 살고 싶어서요.”“그런데 며칠 전, 그 애가 전화를 했어요. 저를 많이 그리워했다고, 생일 파티에 꼭 와 달라고 하더라고요.”“그래서 지인들에게 물어봤는데, 몇 달 전에 남자친구랑 헤어졌다는 거예요. 아마 다시 잘해보자고 부른 것 같아요.”조지는 간절한 눈빛으로 유정을 바라봤다.“만약 우리가 다시 만나서, 그 애가 저한테 아직 좋아한다고 하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남자의 푸른 눈은 마치 맑은 하늘처럼 투명했고, 유정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이건 정말 어려운 질문이었다. 자신의 감정조차 엉망진창인 마당에, 남의 사랑 문제까지 판단한다는 건 버거운 일이었다.조지는 다시 물었다.“유정 씨라면 다시 받아줄 건가요?”유정은 조금 생각하다가 물었다.“아직 그 사람을 좋아해요?”조지는 한참 말이 없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그 뒤로도 몇 명 만났지만 항상 그 애가 떠오르더라고요.”유정은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다시 돌아가요. 서로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거예요.”“어린 시절의 약속은 가볍고 미숙했을 수 있지만, 지금은 서로를 정말 아는 나이잖아요. 지금 선택한다면, 그건 진심일 거예요.”조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되뇌었다.“맞는 말이에요. 고마워요.”조지는 술잔을 들어 올렸다.“고민을 해결해
Read more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