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연하는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계산대로 갔으나 이미 계산이 끝났다는 말을 들었다.영수증을 확인하니 결제한 사람은 진구였다.연하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지만, 돌아와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유진과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빗방울은 이미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진구는 식당에서 우산을 챙겨 차를 가지러 갔고, 돌아와서는 자기 외투를 벗어 슬윤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그리고 유진에게 인사를 건넸다.슬윤은 진구의 넉넉한 외투에 파묻히고는 얼굴 가득 수줍고 행복한 기색을 띠며 남자의 품에 기대었다.회색빛으로 가라앉은 날씨라 물안개가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그 흐릿한 비안개 사이로 연하는 진구의 시선이 스쳐 지나가는 듯한 착각을 받았다.그 순간, 작년 여름이 떠올랐다.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뒤, 연하는 진구와 함께 자기 아파트에서 사흘 동안 꼼짝하지 하지 않고 지냈다. 결국 배달 음식이 질려 비를 무릅쓰고 밖으로 나갔던 그날, 비바람은 거세고, 그들의 우산은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진구는 외투를 벗어 연하의 머리에 씌워주었고, 남자의 티셔츠는 금세 흠뻑 젖었다.그러나 연하도 외투를 거둬내고 진구와 함께 비를 맞았다.얼굴에 내리꽂히는 빗줄기는 시원하고 통쾌했다.언제부턴가 두 사람은 서로 껴안은 채, 처마 밑에서 입을 맞추고 있었다.폭우 쏟아지는 골목, 경적도, 가게에서 흘러나오던 록 음악도 모두 빗소리에 묻혀버린 순간.세상은 오직 빗소리뿐이었고 연하는 축축한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그리고 진구는 연하의 허리를 세차게 끌어안았다.연하가 눈을 뜨자, 진구의 흑발 끝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창백한 피부는 옥처럼 차가웠다. 눈빛은 촉촉히 젖어 있었고 시선은 오직 연하만을 향해 있었다.연하의 시선이 닿자 진구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키스는 더욱 깊어졌다.“연하야, 나도 이제 갈게. 집에 도착하면 연락해!”가랑비 속에서도 유진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는데 그 웃음이 잿빛 빗속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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