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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5 Bab

제2891화

곧이어 이형돈의 시야에 열 명이 넘는 남녀가 나타났다.정중앙에는 영국 귀족 복장을 한 여성과 무관심한 표정에 편안한 옷차림의 청년이 있었다.여성은 정교한 얼굴에 혼혈 느낌이었고, 콧대가 높고 눈동자도 똘망똘망했다. 게다가 마스크를 착용해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겼다.이 사람은 발 영국 왕실 네 번째 상속자인 넷째 공주였다.그녀보다 반걸음 뒤에 선 사람은 키가 거의 180cm에 달하며 얼굴은 조각 같은 준수한 남자였다.잘생겼다고 할 수 없지만 알 수 없는 사악한 기운이 있어 그의 앞에서는 저절로 다리가 나른해지는 느낌이었다.그는 바로 영국 남작이자 신전기사단 부단장, 그리고 무신인 이재승이었다.그는 무심한 눈빛으로 현장을 훑어보다 가느다란 시가를 꺼내 불을 붙였다.이형돈은 냉큼 달려가 공손하게 말했다.“공주님, 도련님.”“형돈아, 요즘 너무 실망인데?”넷째 공주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이재승이 먼저 시가 연기를 이형돈의 얼굴에 뿜어냈다.이어 그는 이형돈의 얼굴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말했다.“내 사람을 데리고 진주·밀양에 온 지도 오란데 한 가지 일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어. 허씨 가문의 도박패도 따내지 못하고 김청미 그년도 아직 우리를 복종하지 않잖아. 듣자 하니 그 광대도 이리저리 날뛰었는데 아무런 이익도 가져다주지 못했다면서? 어떤 벌을 내려줄까?”이형돈은 표정이 확 변하더니 털썩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단장님, 모든 것이 제 무능함 때문이에요. 벌을 내려주세요.”순간 무릎을 꿇은 이형돈을 본 이재승은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재승 씨, 내가 듣기로는 형돈 씨가 진주·밀양에서 엄청 열심히 하고 있다고 들었어.”옆에서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넷째 공주가 이때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을 보니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형돈 씨도 오랫동안 재승 씨 곁을 지키며 항상 목숨을 멀고 싸웠어. 비록 최근에 형돈 씨가 불순한 의도로 출세를 노린다는 소문이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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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2화

이형돈은 입가를 움찔하더니 천천히 일어나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에는 제가 일 처리가 미흡했지만 반드시 신속하게 처리할게요. 이틀만 더 시간을 주시면 도련님께 새로운 진주를 돌려드릴게요.”이재승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랬으면 좋겠지만 잘 해내지 못해도 괜찮아. 어떤 일들은 원래 내가 직접 나서야 하는 거야.”말하는 사이 이재승은 담뱃재를 털면서 이형돈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손짓했다.이재승은 걸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그때 내가 진주 이씨 가문에 처음 왔을 때도 꽤 젊고 혈기 왕성했지. 비록 진주 이씨 가문은 항상 나를 좋게 보지 않았지만 나는 이 성씨를 위해서 싸우고 또 자랑스러워했어. 진주 이씨 가문을 진주·밀양에서 가장 최고로 만들고 싶었어. 내가 직접 진주 이씨 가문의 상업 규칙을 재구성해 진주 이씨 가문을 번창시켰고, 가문의 부와 권력, 에너지가 한때 진주 4대 가문의 으뜸이 되기도 했어. 심지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자리를 대체할 수도 있었어. 아쉽게도 진주 이씨 가문은 늘 나한테 불만이 많았어. 그들은 내가 이씨 가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영국 혈통이라는 점을 문제 삼았어. 그들은 내가 계속 강해져서 진주 이씨 가문의 주도자가 되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지. 그들이 보기에는 내가 아무리 강하고 아무리 대단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야. 내가 힘들게 쟁취한 것을 손에 쥐어야만 안심할 수 있었던 거지. 마침내 내가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김청미와 약혼하는 그 날 밤, 큰일이 벌어졌지... 누군가 술에 잔뜩 취한 나는 먼 친척 형수님의 침대에 버려졌고, 결국 간통죄로 잡히고 말았지...”이재승은 말하다 말고 피식 웃고 말았다.“얼마나 간단한 수법이야. 그날 밤 나는 진주·밀양 이씨 가문 사람들에게 사지가 부러질 정도로 맞고 유기견처럼 길거리에 버려졌어. 하룻밤 사이에 떠돌이 신세가 된 거지. 다음 날에는 진주 천옥에 던져지고 말았어. 그래도 운이 좋아서 내 인생의 귀인을 만나 오늘날 영국 남작,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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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3화

태산 꼭대기.진주 이씨 가문에서는 빅토리아 항구 꼭대기에 있는 별장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지금은 이곳이 화려한 불빛이 어우러져 황홀함이 가득했다.일찍이 진주 이씨 가문 큰 어르신이 된 이일매는 얼굴에 홍조가 돌고 있는 채로 상석에 앉아있었다.그녀는 흥분한 말투로 말했다.“하늘이시어. 우리 진주 이씨 가문을 도와주소서. 조금 전에 공항 쪽에서 소식이 전해졌는데 라온시에서 온 영국 왕실 공주와 신전기사단 부단장인 이 도련님이 우리 진주 이씨 가문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정말 하늘마저 돕네요. 영국 귀인의 보호를 받는다면 우리 이씨 가문은 반드시 4대 명문가 중 으뜸이 될 수 있을 거야.”이일매와 가장 가까운 김병욱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그는 김현민이 대단한 사람을 초대한 건 알지만 그 사람이 진주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몰랐다.하지만 이것은 그의 계획에 영향 주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이번에 진주 4대 가문이 안전을 책임지기로 하면서 진주 이씨 가문에서 가장 많은 힘을 쏟은 것. 또 예를 들어 그 대단한 사람을 이씨 가문에 모시려고 김병욱이 여러 준비를 한 것. 또는 이형돈과 그의 주변 사람들이 이미 김병욱을 통해 뇌물을 두둑이 챙겼다는 것. 그래서 지금 김병욱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그는 비록 이장우를 대신해 진주·밀양 이씨 가문의 세자가 되었지만 이씨 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 자격을 의심받기도 했다.이일매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절대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없었다.하지만 영국사람의 지지를 받기만 하면 그 자리가 확고해질 수 있었다.한자리에 모여있던 진주 이씨 가문 젊은 층은 하나같이 얼굴에 자부심과 뿌듯함이 가득했다.‘영국 왕실 공주와 신전기사단 부단장이 진주 이씨 가문을 방문하다니.’‘이보다 더 영광일 수가.’‘앞으로 진주 이씨 가문은 4대 가문 중의 으뜸으로 거듭나는 건가?’‘어쩌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과도 한판 겨룰 자격이 생길 수 있겠네.’진주 이씨 가문 사람들도 진주·밀양 상류사회에서의 지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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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4화

거의 모든 사람의 호흡이 멎는 느낌이었다.“이거, 이재승 아니야?”누가 먼저 소리쳤는지 알 수 없지만 6년 전 진주·밀양에서 화려했던 이재승을 알아본 모양이다.순간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이재승을 향하게 되었다.“이럴 수가.”“말도 안 돼.”각종 생각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모두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이재승은 사람들의 놀란 시선을 무시하고 한 걸음씩 이일매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지금 얼굴이 굳어버린 이일매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웃으며 말했다.“이준범도 가둬놓고. 이장우 그 쓰레기 같은 자식도 망가뜨렸다면서요. 역시 실력이 대단하세요.”그의 미소는 의미심장하기만 했다.이일매는 눈가를 찡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이재승? 넌 이제 우리 진주 이씨 가문 사람이 아니야. 이 시간에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버릇도 없는 놈. 당장 나가.”쨕.이재승은 무표정으로 이일매의 뺨을 때렸다.그 권세 높은 사람이 뺨을 맞아 7, 8미터나 날아가자 현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말았다.‘이럴 수가.’모든 진주 이씨 가문 사람들은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이재승이 지금 뭐 하는 짓이지?’“감히 지금 어르신의 뺨을 때렸어?”“뭐하는 놈이야. 너...”유일하게 정신을 차린 김병욱이 눈꺼풀을 떨면서 절대 있을 수 없는 가능성을 떠올렸다.쨕.이재승은 김병욱 뺨도 때려 바닥에 쓰러뜨렸다.그는 뻔뻔하게 원래 이일매 전용 자리였던 곳에 앉아 다리를 꼬고 담배를 불을 붙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이 사람들한테 알려줘.”이때 입구에서 이형돈이 무심한 표정으로 걸어 들어왔다.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현장을 훑은 뒤 차갑게 말했다.“여러분 앞에 있는 분은 영국 남작이자 신전기사단 부단장이신 이재승 도련님이세요. 지금부터 이 별장은 도련님께서 사용하셔야겠어요. 그리고 지금부터 이곳은 공주님께서 지낼 곳이니 다들 당장 꺼지세요. 그리고 도련님을 대신해서 한 가지 발표할 것이 있어요. 6년 전 일을 여기 있는 분들은 모두 생생하게 기억하실 거예요. 뒷일을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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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5화

밤 10시. 진주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사방이 먹구름으로 뒤덮였다.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칠 듯한 기세에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김예훈은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가든 별장으로 들어섰다. 김청미가 특별히 전화 와서 김승준이 그와 최대한 빨리 만나고 싶다고 전했기 때문이다.수장님이 뵙자고 하니 김예훈도 곧바로 돌아왔다.요 며칠 계속 가든 별장에서 머물고 있어서 김승준과 매일 만날 수 있었지만 별다른 일이 아니면 갑자기 김예훈에게 연락하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가든 별장 레스토랑에는 이미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다.오래 기다리고 있던 김승준은 젓가락을 들지 않고 사진 몇 장을 만지작거렸다. 김예훈이 들어오자 그는 사진을 건넸다.김예훈은 맞은편에 있는 박연서와 김청미에게 간단한 인사를 전하고는 사진을 확인했다.사진 속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혼혈 얼굴의 여자였고, 다른 한 명은 준수한 외모의 남자였다.이 두 사람은 사진을 통해서도 상위자만이 지닌 독특한 기운을 풍기는 것만 같았다.일반인들은 그들 앞에서 아마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도 없었을 것이다.김예훈은 사진을 한참 바라보고는 흥미롭게 물었다.“이 두 분은 누구세요?”김승준이 담담하게 말했다.“한 분은 영국의 공주이고 한 분은 영국 남작이자 신전기사단의 부단장인 이재승 씨요.”김예훈은 김청미를 힐끔 쳐다보며 이것이 바로 그녀의 약혼자와 그의 내연녀인지 묻는 것 같았다.김승준이 계속해서 말했다.“오늘 저녁 이 두 사람은 이미 진주 국제공항에 도착했어요. 진주 4대 가문과 다른 재벌가들이 연합해서 만 명이 넘는 인력을 동원하여 직접 공항에 맞이하러 갔다고 하네요.”김예훈은 의아하기만 했다. ‘세상일은 참 알고도 모를 일이네.’오늘 오후에 막 진가인한테서 이재승과 영국 공주에 대해 들었는데 말이다.그런데 이 두 사람이 이미 진주에 도착해있을 줄 몰랐다.“그래서요? 이재승 씨가 진주 이씨 가문에 갔대요? 이일매 어르신을 포함한 진주 이씨 가문 사람들은 전부 다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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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6화

단순히 진주 · 밀양 두 곳의 원한과 관련된 일이었다면 김예훈도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재승이 귀환한 본질을 콕 집어 얘기하는 김승준의 말에 김예훈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김예훈은 이제 막 감히 진주 · 밀양 두 곳에 손을 뻗은 일본인들을 해결한 참이었다. 그런데 이재승이라니. 게다가 이재승의 이력을 본다면 그는 서방 진영의 대표 인물이었다. 그 자신이 바로 서방 진영이 한국의 거점에 대항한 증거였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김예훈은 그를 조금 더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재승을 영국 제국으로 쫓아낼 수 있는지 전화 한 번 해볼게요.”김예훈이 덤덤하게 입을 열어 대답했다. 이 정도의 일은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었다. 전화 한 통이면 영국 제국의 프린세스인 빅토리카가 그를 봐서라도 부탁을 들어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부득이한 순간이 아니라면, 김예훈은 그 인맥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언제까지 빅토리카의 신세를 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재승을 한 번은 쫓아낼 수 있다고 해도 몇 년 후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그리고 이재승을 쫓아내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거예요.”현실적인 김승준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서방 진영은 줄곧 우리 한국의 재기를 경계했어요.”“그러니 이재승의 귀환은 본인의 의지일 뿐만 아니라 서방 진영이 우리 한국과 강변을 향한 도발이라고 할 수 있어요.”“그러니 이재승이 돌아온 이상 우리의 능력으로 이재승을 쫓아내지 않는 한, 다른 방식으로는 그들은 우리가 예전 같지 않다고 생각할 거예요.”김예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네요. 왕의 귀환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서방 진영이 우리의 실력을 테스트하겠다는 거군요.”“하지만 이승재 한 명을 제거하는 것쯤은 진주 · 밀양 안동 김씨에겐 간단한 일 아닌가요?”“설사 이승재가 신전기사단의 부단장이자 한 시대를 휩쓴 무신이었다고 해도, 만약 수장님께서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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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7화

“그리고 이재승 곁에는 넷째 공주가 있어요. 그 사실만으로도 이재승이 영국 황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증거겠죠.”“한때는 제국의 성을 따랐던 4대 명문가가 그들이 섬기던 주인과 맞서려고 하겠어요?”“4대 명문가에서 이미 협의를 달성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네 가문에서 힘을 모아 천문학적 금액이 수표를 준비 중이라고 해요. 그리고 엄청난 가치를 가진 자산, 주식도 함께 이재승에게 넘겨줄 거라고 하던데요.”“돈으로 이재승의 마음을 살 생각인 것 같아요.”“이재승이 돌아온 이유가 그 인간들을 죽이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바로 손을 쓰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그들에게 충분히 사태 파악을 할 시간을 줬잖아요. 그들도 그걸 알고 있겠죠.”“그러니 돈으로 6년 전의 케케묵은 사건을 덮으려고 결정한 거예요.”“보세요. 이재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이씨 가문의 별장을 점령하고 있을 뿐인데 4대 명문가에서는 이미 무릎을 꿇었잖아요.”“진주 · 밀양의 안동 김씨도 이미 내부 분열이 심각한 상황인데 제가 무슨 수로 손을 쓸 수 있겠어요?”김승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이번 일을 해결할 능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김청미와 이재승이 결혼을 앞둔 지금, 그는 명의상으로 여전히 이재승의 장인어른이었다. 장인어른이 직접 출병해 사위를 제거하는 일에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4대 명문가라...”김예훈이 옅은 냉소를 지었다. 4대 명문가의 진주 4대 도련님으로 불리는 이들은 늘 적지 않은 풍문을 일으켰다. 김예훈이 밀양과 진주 두 곳에서 해결했던 일에서도 그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비록 김현민의 명령을 따르기는 했지만 그들이 충성을 다하는 곳은 따로 있었다. 이재승에게 고개를 숙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김예훈은 그들의 민낯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약한 것들.’강력한 상대 앞에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대항이 아니라 고개를 숙여 자세를 낮추는 것이었다. “사실 4대 명문가가 이재승 앞에 무릎 꿇고 그의 수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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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8화

김승준을 쳐다본 김예훈이 대답했다. “저에게 이런 걸 알려주시는 이유가 뭐세요?”“이재승 그 골칫거리를 저더러 해결하라는 건가요?”김승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전 그저 미리 언질을 드리는 겁니다. 만일의 사태가 생긴다면, 김예훈 씨가 제 아내와 딸을 한국으로 돌려보내 줬으면 좋겠거든요.”김승준에게는 그만의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가 김예훈을 불러 이런 얘기를 한 것은 그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 한 편으로는, 만약을 대비해 그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과 청미는 무사할 거예요.”“진주와 밀양 두 성의 동씨 가문, 추씨 가문, 허씨 가문을 포함한 저와 관련된 모든 분에겐 절대 아무 일도 않을 거라 할 수도 있겠네요.”“이재승의 귀환이 단지 복수를 위한 것이라면 전 신경 쓰지 않아요.”“하지만 만약 이재승이 노리는 것이 진주 · 밀양이 한국에서 유명무실해지는 것이라면 무신이라는 타이틀은 여기까지가 될 거예요.”김예훈은 냉담한 태도로 대답했다. 감히 한국을 건드릴 생각이라면, 그게 누구든 죽을 각오쯤은 해야 할 것이다. 김예훈을 빤히 쳐다보던 김승준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리고 제가 예훈 씨를 불러서 하고 싶었던 얘기가 하나 더 있어요.”“아무 문제 없이 이재승을 처리하고 나면 김현민 그 자식이 더는 수장의 자리를 노릴 수 없을 거예요.”“그러니 예훈 씨가 청미와 결혼해 제 사위가 되는 건 어떻게 생각해요?”“앞으로 안동 김씨는 예훈 씨의 세상이 될 거예요.”김예훈이 눈가를 씰룩, 꿈틀거렸다. 그의 시선이 빙그레 미소 짓고 있는 박연서를 향했다. 그녀의 눈빛을 본 김예훈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눈빛을 마주한 김예훈은 순간 사위 사랑은 장모라던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30분 후, 김예훈은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곳에 더 있었다간 박연서가 그의 생일을 받아 당장이라도 사주팔자를 보고 결혼 날짜를 잡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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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9화

멍하니 있는 김예훈을 본 김청미가 운전대를 돌리며 나긋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농담?”김예훈이 멈칫하더니 시선을 옮겼다. “무슨 농담?”김청미의 예쁜 얼굴에 발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어두운 불빛에 티가 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마지막에 하신 말씀 있잖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처음엔 선배를 오빠처럼 여겼고, 그러다 선배를 원수로 생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저 친한 친구 같아...”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에 김청미가 나지막이 말을 보탰다. “그런 것뿐이라고...”“아, 나더러 데릴 사위가 되어달라던 말?”무의식적으로 대답한 김예훈이 힘없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사실 난 그냥 이런 상황이 어이가 없을 뿐이야. 왜 나를 보는 사람마다 데릴사위를 삼으려고 하는 거야?”“내가 정말 그렇게 반반하게 생겼어?”김청미가 풉, 소리 내 웃더니 입을 열었다. “선배 같은 사람이 남기방에 있으면 돈을 꽤 벌 수 있을 거야.”김예훈이 좌석에 기대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됐어. 너도 나 결혼한 거 알잖아. 장모님한테 들키면 아마...”김예훈이 순간 하던 말을 멈췄다. 지금 이 타이밍에 이런 사적인 얘기를 나누기엔 분위기가 너무 애매하게 흘러갔다. 숨을 들이켠김예훈이 화제를 돌렸다. “사실 이재승이 돌아온 건 나에게도 책임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아무래도 알게 모르게 김현민을 밟아온 건 나니까. 그래서 이번 일에는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아.”“그럼 난 이재승에게 혼자 잘 해보라고 전해줘야겠네.”화제를 돌리는 김예훈을 본 김청미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녀는 그 전의 얘기에 그다지 미련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눈빛엔 은은한 씁쓸함이 스쳤다. 김예훈에게 자신은 기껏해야 동생이나 친구에 불과할 것이라고 김청미는 생각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김청미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만약 선배가 이재승에게 손을 쓸 생각이라면 미리 뒷일을 생각해야 할 거야.”“이재승은 악랄하고 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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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0화

깊은숨을 들이킨 김청미는 해서는 안 될 생각은 잠시 뒤로 미루고 웃으며 대답했다. “개입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이젠 어떻게 할 생각이야?”“일단 상황을 지켜봐야지.”눈빛을 반짝이던 김예훈이 곧이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재승이 귀환했잖아. 모든 사람이 본인 앞에서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이는 걸 원한다고 하니,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뜻을 따르는지 지켜봐야지.”“우린 이재승이 움직이면 그때 기회를 엿보자고. 그때가 되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거야.”“물론, 요즘은 진주 재단에서도 보안을 강화해야 해. 난 이재승의 첫 먹잇감이 너일 것 같아.”이재승 같은 인간을 김예훈은 처음 상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최연소 무신에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인간은 일반적으로 콧대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부산의 견청룡, 방호철보다 몇 배는 더 상대하기 까다로운 인간이었다. 만약 기회만 있다면 김예훈은 영국 제국 신전기사단의 새로운 무신을 직접 만나고 싶기도 했다. 신전기사단의 단장마저도 김예훈에게 패배를 맛본 지금, 그가 또다시 팀을 이끌고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것은 본인에 대한 자신감이 넘친다는 얘기였다. 김청미가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알겠어. 선배 말대로 할게. 선배는 이제 어쩔 생각이야?”김예훈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가든 별장이 좋은 곳이긴 했는데, 지금은 잠시 거기로 돌아갈 수 없어. 일단 시즌 호텔로 가서 좀 쉬어야겠어.”김청미가 소리 없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운전대를 돌렸다. 그녀는 속도를 올려 시즌 호텔로 향했다. 하지만 시즌 호텔에 도착한 김예훈은 푹 쉬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음을 발견했다. 진주의 기관 1인자인 동태원과 그의 딸 동하임이 로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태원은 사복을 입고 생각에 잠긴 얼굴로 벽에 걸린 지도를 보고 있었다. 옅은 초조함이 묻어있는 지금의 그에겐 진주 기관의 1인자라는 위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와 달리 동태원의 곁에 서 있던 동하임은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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