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악하는 사람들과 달리 이재승은 오히려 아무런 표정 없이 덤덤한 모습이었다. 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사람이 수백, 수천은 되었다. 그러니 동태원 한 명을 더 보탠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이재승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허리를 숙여 앉은 그가 동태원의 얼굴을 툭툭 치며 미소 지었다. “동태원 총독님도 별거 아니네요.”“조금 전까지 기세 좋게 총기까지 뽑아 절 죽이려고 하시더니, 공주님께서 나오시니 바로 무릎을 꿇네요?”“역시, 그분들 말씀이 맞네요. 진주의 명문가는 그저 영국 제국이 기른 개에 불과하다던 말.”“평소엔 제법 사람처럼 굴더니, 꿇어야 할 땐 개보다도 빠르네요. 총독님 같은 분을 상대하는 건 재미도 없네요.”“하지만 이렇게까지 비굴한 모습을 봐서 기회는 드릴게요. 제 신발을 깨끗하게 닦아주시면 용서해 드릴게요. 물론 저희와 협의할 기회도 드릴게요.”말하며 이재승은 구두를 동태원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얼굴은 웃음기로 가득했다. 그 모습에 동하임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날카롭게 목소리를 올렸다. “이재승, 적당히 해!”“괜찮아. 수장님을 위해 도와드릴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동태원이 동하임에게 눈빛을 보냈다. 충동적인 행동은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는 곧 자신이 정장을 벗어 이재승의 구두를 깨끗하게 닦았다. 곧 구두에 입김을 분 그가 한없이 낮은 자세로 이재승에게 물었다. “수장님, 만족하시나요?”이 순간에도 동태원은 여전히 고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은 눈을 씰룩였다. 높은 자리에 오른 인물이 이런 것까지 참을 수 있다는 건 그가 얼마나 많은 꿍꿍이를 숨기고 있을지, 감히 예측하기도 어려웠다. “만족해요. 아주 마음에 들어요.”“역시 황실의 노예에서 총독의 자리까지 오르신 분이네요.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죠.”이재승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동하임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하셨으니 따님은 봐드려야겠네요.”“하지만 저 여자는 제 약혼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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