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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1화

모두가 멍한 얼굴로 그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진주가 영국의 지배를 받던 그 시절엔 영국의 공주가 온다는 말 한마디면 총독부터 시작해서 평민들까지 대로변으로 나와 무릎을 꿇으며 공주를 영접하려 애썼다.하지만 김예훈은 지금, 다름 아닌 무려 영국의 넷째 공주에게 무릎을 꿇으라는 명령을 내렸다.그의 목소리에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마치 여왕이 직접 행차해도 개의치 않을 것이라는 태도였다.김예훈의 이런 언행은 단순히 공주의 자존심을 짓밟은 걸 넘어 영국 왕실 체면 자체를 바닥으로 내리꽂아 버린 셈이었다.그 순간, 넷째 공주는 분노에 휩싸인 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그녀 역시 김예훈 이 개 같은 놈이 죽기 살기로 덤비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그렇다고 정말 여기서 무릎을 꿇기라도 한다면 김예훈의 손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약점만 넘겨주는 꼴이 될 게 뻔했다.김예훈의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장면이 세상에 퍼지기라도 한다면 그녀는 자국으로 돌아가서도 고개를 들고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네깟 놈이 감히 날 모욕해?”넷째 공주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차갑게 비웃음을 한 번 흘린 그녀는 김예훈의 앞에 놓여 있던 식탁을 발로 힘껏 걷어차 버렸다.“난 지금 당장이라도 군사를 일으켜서 네가 세운 이 부산 팰리스 따위는 철저히 짓밟아버릴 수 있어.”눈 깜짝할 사이에 컵과 접시가 바닥으로 산산조각이 나더니 정갈하게 잘 차려진 아침 식사가 엉망진창이 되었다.김예훈과 함께 온 김청미의 표정 역시 묘하게 변했다. 설마 넷째 공주가 정말로 식탁까지 걷어차며 강경하게 대응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얼굴이었다.허순재와 강준은 식탁에서 쏟아지는 커피를 뒤집어쓴 채 초라한 몰골로 가만히 서 있었다.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넷째 공주는 그제야 속이 후련하다는 듯 입꼬리를 씨익 올려 미소지었다.어젯밤부터 계속 당하기만 하다가 드디어 판을 뒤집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풀린 것 같았다.“짝!”김예훈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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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2화

“다른 일은 얘기 안 할게.”“어젯밤, 네가 네 기사를 보내서 사모님을 암살하려고 했던 일 하나만으로 나는 당장이라도 널 여기서 쳐 죽이고 싶어.”“장담컨대 네가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영국 왕실이 감히 나한테 까불 수 있을 것 같아?”“못 믿겠으면 한 번 해볼래?”김예훈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살벌했다.영국 왕실이라는 작자들이 다른 곳에서는 얼마나 고귀하고 대단한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김예훈의 앞에서는 일개 외국인에 불과했다.“장공주인 빅토리카의 체면을 봐서라도 내가 기회 하나 줄게.”“내 앞에서 무릎을 꿇든가, 싫으면 꺼지든가.”“선택은 네 몫이야.”“한국인 주제에, 잘도 건방을 떨어대는구나!.”금발의 신전 기사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날을 세웠다.조금 전, 자신의 동료들이 김예훈의 발에 나가떨어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지만 공주가 이런 수모를 겪는 걸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적어도 그들은 공주를 지키겠다고 왕실에 맹세한 신전 기사들이었다. 자신들의 공주가 타국에서 모욕을 당하는 것만큼은 절대 참을 수 없었다.“로스웰, 물러나!”공주는 로스웰이 손을 쓰기도 전에 급히 나서서 제지했다.그녀는 김예훈의 전투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데리고 온 신전 기사들 따위는 감히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공주는 싸늘한 얼굴로 한 발 나서서 말했다.“김예훈, 너 정말 나랑 끝장을 보겠다는 거야?”“내 체면도 좀 생각해주면 안 돼?”“여기서 네 체면이 어딨어.”김예훈은 무덤덤한 얼굴로 공주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인내심이 없어서 말이지. 성격도 좋은 편이 아니라. 딱 10초 줄게. 그 안에 선택 안 하면 내가 너 대신 선택 해주지.”“이 개자식이! 적당히 해야지!”참다못한 로스웰이 입을 열었다. 감히 공주를 위협하려는 김예훈의 태도에 분을 참을 수 없었다.그는 허리에 찬 검은 뽑아 들더니 매서운 기세로 김예훈을 향해 달려들었다.성광십자참.신전 기사단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필살기로서 일격으로 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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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3화

이것은 분명한 모독이었다.말로 형용할 수도 없을 정도의 굴욕이 온몸을 휘감았다.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로스웰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다.그는 필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애썼지만 싸늘한 김예훈의 시선 아래에서는 다리에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살기를 느낀 그의 근육이 사이렌을 울리며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 일어나서 김예훈에게 달려드는 순간, 로스웰은 죽게 된다.김예훈은 더 이상 로스웰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의 서늘한 시선을 다시 넷째 공주에게로 향했다.“공주, 보아하니 기사들이 너보다 상황 파악을 더 잘하는 것 같네...”“앞으로 너한테 주어진 시간은 단 3초...”“이 개자식아!”“적당히 하라고 했지!”신전 기사단이 일제히 소리치며 김예훈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들이 제대로 손을 뻗기도 전에 추문성이 경호원들을 이끌고 나타나 신전 기사단의 앞을 막아섰다.“앞으로 1초...”김예훈은 모든 소란을 철저히 무시한 채 혼잣말처럼 조용히 말했다.“1초 뒤에도 결정 못 하면 내가 직접 결정 해주지.”“이런 개자식, 망할 놈.”넷째 공주가 초조한 얼굴로 욕설을 내뱉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굴욕에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김예훈은 칼같이 공주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설득도, 협박도 통하지 않는 이 상황에 공주는 처음으로 무력감을 느꼈다.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에 당장이라도 김예훈의 뺨을 후려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손을 대는 순간, 그녀는 김예훈의 발길질에 힘없이 걷어차일 게 뻔했다.“그래, 대단하다. 김예훈.”“무릎 꿇으라고 했지?”“좋아, 그 뒷감당은 할 수 있겠지.”“내 남자만 풀어준다면야 얼마든지.”“꿇어줄게.”이를 꽉 깨문 공주는 그대로 힘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김예훈의 앞에 주저앉았다.“공주님!”눈 앞에 펼쳐진 믿기 힘든 광경에 신전 기사단은 단체로 패닉 상태에 빠져버렸다. 누군가는 절규에 빠져 울부짖었고, 누군가는 입고 있던 옷까지 찢으며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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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4화

김예훈은 가볍게 손을 닦더니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공주님, 거래는 이렇게 하는 게 아니지. 장사도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되고.”“인질을 풀어줄지 말지를 논하기 전에, 그 인간의 생사부터 논하는 게 먼저 아닌가?”“잊지 마, 도박 룰대로 네가 진 순간 이재승의 목숨은 내 거야. 내 소유의 개가 됐다고. 이젠 내가 물라면 물어야 하고, 짖으라면 짖어야 해.”“이재승을 살리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해. 네 손으로 김현민을 죽여.”“김현민이 죽으면 이재승이 살아. 이 조건은 아직도 유효해. 나도 철회할 생각도 없고.”넷째 공주는 숨을 깊게 한 번 들이쉬더니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네가 원하는 게 뭔지는 나도 알아. 진주랑 밀양 두 재벌가들과 우리 왕실을 떼어놓으려는 속셈이잖아.”“우리 왕실이 다시는 이 지역 일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길을 막으려는 거겠지.”“이재승을 빌미로 김현민을 죽이라고 부추긴 것도 참 못된 수긴 해.”“하지만 넌 날 너무 과대평가했어. 난 그냥 혼혈인 공주일 뿐이야.”“나 한 사람이 우리 왕실을 대표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나 한 사람이 진주·밀양 재벌들이랑 틀어진다고 해서 우리 왕실까지 등을 돌려야 한다는 건 아니야.”“우리 왕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주·밀양과 복잡하게 얽혀 있었어. 너 같은 놈이 정리하고 싶다고 정리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그리고 지금 내 수하들로는 김현민을 죽일 수 없어.”“설령 내가 정말 김현민을 죽인다고 치자.”“그래도 진주 세력 내부에서는 필요에 따라서 여전히 우리와 협업하려고 들 거야.”“그러니까 김예훈, 네 작전에는 아무 의미가 없어.”“내가 조건을 좀 바꿔볼까? 내가 너한테 줄 수 있는 건 많아. 그게 작위든, 돈이든, 시민권이든. 말만 해, 다 해줄 수 있어.”“너희 한국인들은 이런 거에 약하잖아?”“리카 제국 시민권 하나에도 너희는 조상도 팔아먹고 나라까지 팔아먹잖아. 그런 시민권보다 더 값진 게 우리 제국 시민권이야.”“내가 보기엔 이쪽이 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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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5화

“김예훈,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거야?”넷째 공주의 목소리서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아까도 말한 것 같은데, 다시 얘기해줘?”“첫째, 김현민을 죽여도 아무 의미 없어.”“둘째, 나한테는 김현민을 죽일만한 힘도 없어.”“차라리 나한테 다른 조건을 제시해 줘.”“가능한 선에서는 뭐든 들어줄 수 있으니까.”넷째 공주는 이를 꽉 깨문 채 뭔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아무리 불가능에 가까운 거라고 해도, 나는 다 받아들일 수 있어.”넷째 공주는 한쪽 어깨를 드러내며 애써 매혹적인 자세를 취했다. 어떻게든 자신의 진심과 성의를 보여주려는 듯한 몸짓이었다.“미안하지만 너한텐 자격이 없어.”김현민이 희미하게 웃었다“그리고 나도 중고차 모으는 취미는 없거든.”“이재승을 죽이는 데에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는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내가 정하는 거지.”“설령 너희 제국이랑 진주·밀양 사이를 이간질하지 못한다고 해도 내가 원하면, 내 기분이 내킨다면 너는 내 말대로 김현민을 죽여줘야 해.”“김현민 하나 못 죽이는 주제에 무슨 수로 내 앞에서 네 성의를 보여주겠다는 건데?”“김현민이 죽어야 난 네 진심을 믿어줄 수 있어...”김예훈 역시 김현민이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힘의 차이로 직접 손을 대지 못하는 게 아니라 김예훈에게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것이었다.하지만 만약 그 실행자가 영국의 넷째 공주라면 일은 달라졌다. 그렇다면 김현민의 죽음은 김예훈과 무관한 일이 되어버린다.무엇보다 넷째 공주가 정말 김현민을 해진다면 진주·밀양 내의 기회주의자들에게는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이다.영국에게 그들은 아무 때나 쓰고 버릴 수 있는 단순한 소모품에 불과했다.간단히 말하면 이 전략은 영국과 진주·밀양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게 분명했다.김예훈에게는 넷째 공주의 손으로 김현민을 죽이는 게 핵심이었다.하지만 넷째 공주에게는 이 모든 것이 그저 김예훈의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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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6화

“이제 그만 가 봐.”김예훈은 다시 보이차를 우려내더니 넷째 공주를 쳐다도 보지 않은 채 허공에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김예훈!”넷째 공주가 이를 악문 채 당장이라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애써 분노를 억눌렀다.그녀는 손에 들려있던 보이차를 김예훈의 얼굴에 뿌려버리고 싶다는 충동까지 들었지만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던 탓에 참아야만 했다.김예훈을 매섭게 노려보며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던 공주는 결국 입술을 꽉 깨물며 몸을 일으켰다.몇 분 후, 그녀는 롤스로이스 뒷좌석에 올라탔다. 어두운 표정에서는 싸늘한 살기가 느껴졌다.준수한 외모의 남자 비서가 공손하게 샴페인 한 잔을 건네주며 목소리를 낮춘 후 조심스레 물었다.“공주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넷째 공주는 어두운 얼굴로 낮게 말했다.“원탁의 기사들을 불러.”원탁의 기사라면 신전 기사단 내에서도 정예 중의 정예들만 모아놓은 곳이었다.신전 기사단이 특수부대라고 한다면 원탁의 기사들은 그 특수부대에서도 특출난 실력의 기사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아무리 지위가 높은 넷째 공주라고 해도 언제나 곁에 원탁의 기사를 둘 수는 없었다.그녀의 말에 비서의 표정도 순간적으로 굳어졌다.넷째 공주가 이번만큼은 진심으로 끝장을 볼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거의 같은 시각, 넷째 공주의 화려한 차량 행렬이 자취를 감추자 김예훈은 거실의 발코니로 나와 바다를 바라보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누군가가 곁으로 다가왔다.김청미였다.금방 다른 한복으로 갈아입고 온 그녀는 특유의 청아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가냘픈 몸매를 은은하게 보여주고 있었다.보통의 남자라면 그런 김청미의 모습에 넋을 놓아버렸을 것이다.하지만 김예훈은 그저 몇 초간 눈길만 주더니 이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겨 버렸다.김청미는 예상치 못한 그의 반응에 황당하다는 듯 눈을 굴리며 말했다.“그 넷째 공주 말이야. 나가면 바로 선배를 죽이려고 할까, 아니면 김현민을 죽이려고 할까? 아예 바로 이재승부터 구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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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7화

김청미는 김예훈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그렇다면 이쪽에서도 방어를 좀 더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만약에라도 넷째 공주가 그 인질을 구해간다면 그다음엔 분명 김현민이랑 손잡고 우릴 죽이려 할 거야.”“괜찮아. 그런 거라면 나도 이미 다 준비해 뒀어.”김예훈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애초에 넷째 공주가 움직일 수 있는 병력에는 한계가 있어. 어디까지나 그 나라에 있는 이민자들이 전부일 테니까.”“설령 신전 기사단이나 원탁의 기사단까지 끌고 온다고 해도 내가 보는 앞에서 이재승을 구해낼 수는 없을 거야.”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김청미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구조가 어렵다면, 다른 사람을 인질로 납치해서 선배랑 협상하려고 들 수도 있잖아요.”김예훈도 그 말에 딱히 반박하지 못했다.“네가 뭘 걱정하는지는 나도 알아. 하지만 진주 세력의 최정예들이 버티고 있는데, 그 누가 감히 너한테 손을 대려 하겠어?”“동하임이라면 진주 기관에서 지켜주고 있고...”“추하린은 진주·밀양 용전이 지켜줄 거고...”“강서연한테는 용문 진주 지부가 있고...”“허유주는 허씨 가문 사람이잖아.”“넷째 공주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사람들한테는 감히 손대지 못할 거야.”“그리고 다른 늙은 여우들도 마찬가지지. 그렇게 쉽게 납치당할 인물들이었으면 진작 누구 손에 죽고도 남았어. 여태껏 멀쩡할 리 없잖아?”김예훈의 표정은 한결같이 침착했다. 그는 이재승 일행과 맞붙기 전부터 이미 모든 상황을 계산해 둔 상태였다.지금 진주·밀양 두 도시에서 그의 힘과 권력은 아주 절대적이었다.넷째 공주가 그 단단한 권력에 도전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잠시 생각하던 김청미가 다시 말을 꺼냈다.“진주 쪽이 어렵다고 해도 성남시도 있고, 부산도 있잖아.”하지만 김예훈은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성남시에는 박인철이 있지.”“부산에도 박인철 세력이 다 뻗어있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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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98화

김예훈의 태연한 표정을 바라보며 김청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그녀가 이재승의 도발을 걱정하고 있을 때, 김예훈은 이미 그의 모든 행동에 덫을 놓아둔 상태였다. 마치 이재승 일행이 제 발로 함정에 걸려들길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말이다.김청미는 저도 모르게 넷째 공주에게 기대를 걸게 되었다.부디 그녀가 지금부터 오직 김현민을 죽이는 일에만 집중하길 진심으로 바랐다.그렇지 않으면 넷째 공주는 무슨 수를 써도 김예훈에게 농락당하다가 끝나고 말 것이다.“그나저나 넷째 공주도 생각보다 쉬운 상대가 아니야.”김예훈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더니 USB를 하나 꺼내더니 김천미에게 던져주었다.“이 USB 안에 담겨 있는 자료가 제일 자연스럽고도 합리적인 방식으로, 적절한 때에 라온 일보 기자 손에 들어가길 바랄게.”김천미는 살짝 당황한 듯 눈을 깜짝이며 물었다.“이건...”“별거 아니야. 그냥 넷째 공주나 내 앞에서 무릎 꿇고 있는 영상이지.”“당연히 편집은 끝냈어. 내가 찍힌 부분도 다 잘라냈고.”“그런데 그 콧대 높은 영국 왕실 사람들이 이걸 보게 된다면 어떨까? 왕실의 공주가 머나먼 극동까지 와서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그래도 그 공주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을지 궁금하네.”김천미를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이 한 수 앞을 내다볼 때, 김예훈은 수십 보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넷째 공주가 혹시라도 다른 생각을 품는다면 그 끝은 결코 아름답지 못할 것이다....김예훈이 넷째 공주의 뒷일을 준비하고 있던 그때, 태산 중턱에 있는 고급 별장의 거실 안은 살을 찌를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넷째 공주는 냉정한 표정으로 검은 편지 봉투를 걸었다. 그 안에는 주소와 함께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잠시 내용을 훑어보던 넷째 공주는 조용히 봉투를 비서에게 건네며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원탁의 기사단에게 이걸 넘겨줘.”“그리고 전해. 최대한 빨리 부산으로 가라고.”“생포 해오든, 죽여서 시체를 끌고 오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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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9화

그 순간, 용준석은 가늘게 실눈을 뜬 채 맞은편에 앉아 있는 정민아를 바라보며 낮게 말을 꺼냈다.“민아 씨, 이번에 제안했던 그 협업에 큰 문제는 없었어요.”“다만 수익 분배는 조금 손봐야 할 것 같네요. 뭐, 굳이 나눈다면 내가 7, 민아 씨가 3인 정도로...”“물론 나도 잘 알죠. 협업이라고 해도 말로만 해서는 의미가 없잖아요?”“그러니까 시간만 된다면 나랑 같이 무송으로 한 번 다녀올래요?”“우리 용씨 가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용씨 가문이 무송에서 어떤 의미인지 직접 한 번 확인해봐요.”“그럼 분명히 알게 될 거예요. 우리 가문이랑 손잡고 협업한다는 게 얼마나 큰 영광인지를 말이에요.”“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용씨 가문과 가까워지기만 해도 부산 견씨 가문에서 민아 씨의 위치는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결국, 부산 견씨 가문은 한국 10대 명문가 중에서도 가장 순위가 낮은 가문이잖아요. 우리 가문과는 비교도 안 되겠죠.”“물론 내가 얘기한 다른 제안을 고려해보겠다면 나도 한 발 물러나 볼 생각은 있어요.”“이 세상에서 제일 안정적인 협업은 계약이 아니라 혼인이잖아요. 혼인보다 더 강한 결속력을 가진 건 없어요.”“그리고 나 용준석이 정민아 씨한테 진심이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거든요...”“생각 잘 해보세요. 나도 이때까지 아내로 삼고 싶다고 생각한 여자는 민아 씨가 처음이니까요.”용준석의 말에 정민아의 곁에 있던 몇몇 여비서들과 직원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이게 바로 소문으로만 듣던 그 전설 속의 재벌 도련님의 모습이었다.용준석이 부산 견씨 가문과 손을 잡은 것도 사실은 정민아와의 인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부산에 잠시 들렀던 용준석은 우연히 마주친 정민아에게 첫눈에 반해버려 고전 로맨스 소설의 남자 주인공처럼 집요하고 우아한 구애를 시작했다.하지만 아쉽게도 정민아는 용준석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탓에 용준석은 비즈니스 협업이라는 것을 빌미로 결혼을 제안했다.게다가 견씨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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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0화

정민아는 손에 들고 있던 계약서를 천천히 덮은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용준석 씨.”“하지만 아직 협의도 안 끝난 상태에서는 뭘 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그 말에 용준석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굳이 비즈니스 쪽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죠. 단순히 개인적인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요?”“아, 그러고 보니 내가 말을 못 했네요. 이모님한테도 같이 무송으로 가자고 했었거든요, 그러더니 아주 기뻐하시면서 같이 가자고 하던데요...”“그때, 민아 씨도 함께 와줬으면 좋겠네요.”“설마 친어머니를 수천수만 리 떨어진 낯선 땅에 홀로 보낼 생각은 아니죠?”정민아의 반듯하던 이마에 희미하게 핏줄이 섰다.성의를 넘칠 정도로 보여주는 용준석을 어떤 식으로 더 받아쳐야 할지 그녀 역시 아주 난처한 상황이었다.다른 한편으로는 카지노 사건 이후로 김예훈과는 이미 보름 넘도록 연락을 하지 않고 있었다.게다가 임은숙은 계속해서 김예훈과 정말 헤어진 척 연기라도 하라며 그녀를 압박하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은 정민아에게 혼란으로만 다가왔다.미묘한 그녀의 표정에 용준석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됐어요, 민아 씨. 오늘은 더 부담스럽게 안 할게요.”“무송으로 갈지 말지는 민아 씨가 결정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그럼 먼저 가볼게요.”“물론 민아 씨가 내 제안을 거절한다고 해도 우리의 협업은 그대로 진행될 테니까 너무 부담 안 가져도 돼요.”말을 마친 용준석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렸다.길쭉하고 훤칠한 체형에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최상류 층에게서만 느껴지는 그 특유의 아우라가 현장에 있던 모든 여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그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정민아는 다시 손에 들려있던 계약서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얼굴은 다른 때보다 더 지쳐 있었다.부산 견씨 가문에서는 그녀에게 반드시 이 계약을 성사시켜야 한다며 무언의 압박을 계속 넣고 있었다. 어찌 됐든 용씨 가문과 손잡고 금광을 개발한다면 손 안 대고도 돈을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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