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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1화

“아이 낳고 나면 푹 쉬어야 해. 반년쯤은 충분히 쉬었다가 회사에 나가. 너무 서둘러 복귀하지 말고. 여자는 출산하면 몸이 크게 상해서 아기 낳고 제대로 회복하지 않으면 그 후유증이 평생 갈 수도 있어.”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저 아직 낳지도 않았어요. 저도 다 알아요.”이경혜는 예전에 언니의 산후조리를 직접 돌본 적이 있어 이런 일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소정남이 아들을 안고 그 뒤로 심효진이 따라 내려왔다.오늘 소정남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심효진은 산후조리 동안 잘 먹고 잘 쉬고 있었다.아기는 소정남이 돌보거나 시어머니와 도우미가 맡아 주었기에 그녀가 직접 신경 쓸 일은 거의 없었다.그저 몸조리만 하면 충분했다.사람들이 아기를 보려고 하나둘 모여들었다.하예정은 배가 많이 불러 굳이 그 틈에 끼지 않았다.이경혜도 그녀의 손을 잡아 곁에 세워 두며 사람들이 북적이다가 배를 건드릴까 봐 조심하고 있었다.잠시 뒤 심효진 부부가 다가왔다.“예정아.”심효진이 웃으며 친구를 불렀다.하예정은 미리 준비해 둔 봉투를 꺼내 아기 품에 조심스럽게 올려 두었다.아기는 새 옷을 입고 있었는데 외할머니가 사 준 것이었다.이곳 풍습에 따르면 아기가 한 달을 맞는 날에 입는 새 옷은 외할머니가 마련해주신다.“잠들었네.”하예정은 아기의 얼굴을 살며시 만져 보았다.말랑말랑했다.태어났을 때보다 몸무게도 꽤 늘어 아주 잘 자라고 있었다.“응, 배부르면 자고 자다 깨면 응가하고 그러고 나면 또 먹고 또 자. 키우기 참 편해.”심효진의 눈에 아들은 유난히 순한 아이였는데 좀처럼 보채지도 않았다.사실은 아이를 거의 직접 돌볼 일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배고플 때만 그녀를 찾았고 때로는 분유를 먹이기도 해서 굳이 그녀가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하예정이 친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오랜 친구인 만큼 그 눈빛만으로도 무슨 뜻인지 심효진은 바로 알아챘다.심효진은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물었다.“예정아, 나 요즘 좀 살찐 것 같지?”“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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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2화

“저야 원래 예쁘잖아요.”하예정이 장난스럽게 자기 얼굴을 한 번 만졌다.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그들은 다시 홀로 돌아왔다.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이윤미가 청첩장 두 장을 꺼냈다.하나는 이경혜에게, 다른 하나는 하예정에게 건넸다.“이모, 예정 씨. 방 비서님이랑 이미 혼인신고도 마쳤고 결혼식 날짜도 정했어요. 결혼식은 보름 뒤예요.”이윤미는 이경혜를 바라보며 기대가 담긴 눈빛으로 말했다.“이모, 그날 가족분들하고 와서 축하해 주세요.”이경혜는 청첩장을 받아 펼쳐 보다가 다시 덮은 뒤 아무 말 없이 남편에게 건넸다.성문철은 들여다보지 않고 그대로 들고만 있었다.이경혜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먼저 이윤미의 몸 상태를 물었다.상처는 거의 다 나았고 강성 쪽의 번거로운 일들도 모두 정리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방윤림이 이윤미를 얼마나 아끼는지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는 방윤림에게 몇 마디 당부를 건넨 뒤에야 이윤미에게 말했다.“보름 뒤면 예정이도 아직 출산 전일 거예요. 나랑 우리 남편은 갈 수 있는데 소현이랑 다른 애들은 장담 못 해요. 다들 너무 바빠서 시간이 안 날 수도 있어요.”이윤미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이해합니다. 이모랑 큰이모부만 오셔도 저는 정말 기뻐요.”이번에 이윤미는 한성근을 위해 선물을 가득 챙겨 왔다.한성근은 이윤미가 죄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속의 벽을 완전히 거두지는 못했다.그녀가 이은화의 친딸이라는 점이 늘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지금은 괜찮아 보여도 훗날 어떻게 달라질지는 알 수 없지 않은가.이윤미가 가주 자리와 이씨 가문의 모든 것을 실제로 하예진에게 넘긴 뒤에야 한성근의 시선도 조금 부드러워졌다.그렇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이윤미를 달갑게 여기지는 않았다.그래서 이날도 한성근은 피곤하다는 핑계로 방에 들어가 쉬며 이윤미를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이윤미는 이경혜 부부가 한성근과 함께 자신의 결혼식에 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몇 번이고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끝내 하지 못했다.한성근이 자신을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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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3화

“제가 아이를 낳을 때쯤이면 아마 신혼여행 중일 것 같아요. 그때는 제가 아기에게 준비한 첫인사 선물과 봉투를 예진 씨에게 맡겨 보내 드릴게요. 그리고 아기 만월 잔치 때 꼭 저도 불러 주세요. 기운 좀 나누고 싶어요.”이윤미는 솔직하게 덧붙였다.“저는 아이를 조금 빨리 갖고 싶거든요.”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네, 그럴게요.”이경혜는 이윤미 부부에게 집에서 식사하고 가라고 권했다.식사를 마친 뒤 두 사람은 곧바로 강성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은 성씨 가문에 밤 여덟 시가 조금 넘을 때까지 머물렀다가 남편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서원 리조트는 시내에서 멀고 하예정도 임신 말기에 접어들어 언제라도 출산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들 부부는 이미 리조트를 떠나 도시 중심으로 거처를 옮겨 둔 상태였다.지금은 병원과 가장 가까운 발렌시아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었다.그곳으로 다시 이사해 온 뒤로는 전씨 할머니를 제외하면 부부 둘뿐이었다.하예정은 늘 발렌시아 아파트의 작은 집이야말로 자신과 전태윤의 집이라고 느꼈다.전씨 할머니는 이미 소씨 가문에서 돌아와 계셨다.전태윤 부부가 집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고 품에는 커다란 거위 모양 쿠션을 안고 있었다.전태윤이 키우던 강아지와 고양이는 데려오지 않았다.하예정이 임신한 뒤로 혹시 모를 위험을 피하려고 정기 검진과 예방 접종을 꼬박 받더라도 반려동물을 그녀 곁에 두지 않기로 했다.만에 하나라는 상황조차 만들고 싶지 않았다.전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가 조심 또 조심하며 움직이고 있었다.평소에는 고양이를 안고 TV를 보던 할머니였지만 지금은 고양이를 곁에 둘 수 없어 거위 모양 쿠션을 끌어안고 계셨다.“할머니.”“할머니.”두 사람은 앞뒤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전씨 할머니가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은 것을 보자 하예정이 곧바로 다가갔다.“할머니, 아직 안 주무셨어요?”할머니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는 하예정을 따뜻하게 바라보았다.“너희가 아직 안 돌아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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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4화

“그건 그 사람들의 선택이고 그 사람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이에요. 제 공은 아니에요.”전씨 할머니는 웃었다. 어쨌든 그녀의 눈에는 하예정이 복덩이였다.전태윤은 두 사람 앞에 따뜻한 물을 한 잔씩 따라 놓았다.“여보, 차에서 목마르다 했잖아. 먼저 물부터 마셔.”하예정은 컵을 받아 들었다.전씨 할머니는 전태윤을 바라보며 말했다.“앞으로 너랑 예정이랑 밖에 나갈 때 보온병 꼭 챙겨 가. 예정이가 목마르면 바로바로 마실 수 있게.”“우리가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요.”“멀리 안 가도 준비는 해야 해. 이건 태윤이가 생각이 모자란 거야.”전씨 할머니는 손주며느리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늘 손자만 나무랐다.전태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네...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아내가 필요하다고 한 걸 그때 바로 챙기지 못하면 집에 돌아와서 전씨 할머니에게 한 소리 듣는 건 늘 그의 몫이었다.“어서 가서 예정이 씻을 물부터 받아 놔. 나랑 예정이랑 좀 이야기하고 있을게. 물 다 받아지면 불러 줘.”할머니가 전태윤에게 일렀다.하예정이 말했다.“할머니, 저 혼자도 물 받을 수 있어요.”하지만 남편이 집에 있으면 전태윤은 늘 먼저 욕조에 물을 받아 두고 갈아입을 옷까지 챙겨 놓았다.그녀가 허락하기만 한다면 씻는 것까지 도와주려 할 만큼 세심했다.전태윤은 그녀를 돌보는 데서 조금도 허술함이 없었다.전태윤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바꿔 놓은 사람이 바로 하예정이라고 뒤에서 감탄하곤 했다.사람들은 전태윤에게 그런 다정하고 살뜰한 모습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그가 남긴 인상이라곤 늘 차갑고 어딘가 쉽게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태윤을 시켜야지. 남편을 두고 뭐 하겠어? 아내를 챙기고 필요할 땐 든든하게 받쳐 주는 게 남편이지.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남편을 찾고 의지해야 해. 안 그러면 남편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하예정이 웃음을 터뜨렸다.“할머니, 태윤 씨는 할머니 친손자예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태윤 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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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5화

“할머니, 제가 없는 동안 또 예정한테 제 흉을 보신 거죠?”할머니가 태연하게 말했다.“네가 충분히 잘하면 누가 네 흉을 보겠어? 내가 네 얘기를 했을까 봐 걱정된다는 건 아직도 네가 잘 못하고 있다는 뜻이야. 더 노력해야지. 예정이도 곧 출산인데 아빠 될 준비는 됐어? 정남한테 좀 배워 봐. 정남이는 아이 돌보는 걸 참 잘하더라. 아기가 한 달 사이에 여섯, 일곱 근이나 늘었대. 그 정도면 아주 잘 큰 거지.”심효진의 아들은 연약한 아이들에 비하면 제법 통통했지만 그렇다고 과하게 살찐 편도 아니었다.“효진이도 산후조리를 정말 잘 받았어. 얼굴빛만 봐도 알 수 있더라고. 오히려 정남은 눈에 띄게 야위었던데 아이를 돌보는 게 그만큼 힘든 거야.”갓 태어난 아기는 배부르면 자고 자다 깨면 또 먹는다.모유 수유를 하면 한 시간도 안 되어 다시 배고파 울기도 하고 분유를 먹이면 그나마 조금 낫다.어쨌든 자주 먹여야 한다는 건 마찬가지다.신생아에게는 낮과 밤의 구분도 없이 배가 고프면 바로 먹어야 했기에 아이를 돌보는 어른이 힘들 수밖에 없다.전태윤이 말했다.“할머니, 예정이가 출산하면 저는 맡고 있던 일들을 전부 이진이랑 호영에게 넘길 생각이에요. 두 사람 다 이미 결혼했고 신혼여행도 다녀왔으니까 괜찮아요. 아직 특별한 소식은 없어서 당분간은 일을 챙길 수 있겠지만 아기가 태어나면 저도 정남처럼 예정이 곁에서 아이를 돌볼 거예요.”이런 말은 몇 년 전의 전태윤에게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그때의 그는 철저한 일 중독자였다.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고 누가 그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차지하게 되면 가차 없이 욕을 내뱉기까지 했다.그런데 몇 해가 지난 지금 그는 아내 곁을 지키며 산후조리를 함께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이렇게까지 달라질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터였다.심효진이 산후조리를 하는 동안 소정남은 정말로 아내 곁을 지켰다.아내를 돌보고 아이를 보는 것은 물론 산후조리 음식도 함께 나눠 먹었다.그가 같이 먹어 주지 않았다면 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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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6화

“괜찮아요.”전태윤이 웃으며 말했다.“아내 챙겨 줄 기회도 안 주네.”하예정이 답했다.“정말 괜찮아요. 그렇게까지 챙겨 줄 필요 없어요. 나가서 할머니랑 이야기나 나눠요.”“응.”그녀가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는 것을 보고서야 전태윤은 밖으로 나왔다.전씨 할머니는 그를 보자 무언가 말하려는데 전태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할머니, 예정이는 제가 도와줄 필요 없대요.”할머니는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태윤은 곁으로 다가가 할머니 옆에 앉으며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거위 인형을 받아 들고 웃었다.“이건 왜 안고 계세요?”“고양이를 쓰다듬을 수가 없으니까 이거라도 안고 있는 거지.”“제 별장에 계셔도 되잖아요. 거기엔 고양이들이 다 있어요. 예정이는 여기가 좋대요. 결혼하고 나서 우리가 처음 같이 살았던 집이라 집 같은 느낌이 난다고 하더라고요.”그래서 이곳에는 고양이를 들이지 않았다.할머니가 말했다.“나는 그 별장은 안 가. 거긴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잖아. 이 아파트에 있으면 매일 내려가서 한 바퀴 돌고 단지에 있는 할머니들이랑 수다도 떨 수 있거든. 이런저런 이야기 듣는 재미도 있고.”매일 내려와서 모여 이야기하는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 대부분은 자식 대신 손주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다 같이 모이면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데 결국엔 온통 잡담이었다.어느 집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소문은 그들 가운데 누군가 한 명만 알아도 순식간에 아파트 전체로 퍼졌다.전씨 할머니는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지만 자기 자식이나 손주들에 관한 일만큼은 절대 밖에서 말하지 않았다.누구도 할머니 입에서 가족의 이야기를 캐낼 수 없었다.“예정이는 언제라도 아이를 낳을 수 있잖아. 너희랑 같이 살면서도 나는 늘 마음이 놓이지 않아.”전태윤이 소파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그러게요. 저는 할머니보다 더 조마조마해요. 예정이가 밤에 몸만 한 번 뒤척여도 혹시 진통이 오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아기 낳을 때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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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7화

전씨 할머니는 마침내 흡족한 듯 손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듬직하구나. 책임질 줄도 알고. 할머니는 네 선택을 지지해.”전태윤이 웃으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랑 할머니께서 키워 주셨잖아요. 제가 책임감이 없었다면 할아버지께서 한밤중에라도 찾아와 저를 혼내셨을걸요.”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전씨 할머니는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네 할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네가 이렇게 행복해진 걸 보셨다면 정말 기뻐하셨을 텐데. 이제 곧 증조할아버지가 되실 텐데 말이야. 그런데 네가 결혼하는 모습도 보지 못하고 가셨지. 네 할아버지가 막 떠나셨을 때는 꿈에 종종 나타나셨는데 요즘은 통 보이지가 않아. 태윤아, 혹시 네 꿈에는 할아버지가 오신 적 있니? 저쪽에서는 잘 지내고 계시는지...”전태윤은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한 번도 꿈에서 뵌 적 없어요. 그래서 가끔은 제가 철이 없어서 그러신 건 아닌지, 아니면 아직 제가 부족해서 실망하신 건 아닌지 생각하기도 해요. 잘했다면 꿈에라도 나타나서 한마디 칭찬해 주실 법도 한데... 제가 잘못한 게 있다면 차라리 꿈에 오셔서 혼내 주시고 길도 좀 잡아 주셨으면 좋겠어요.”전태윤은 전씨 할아버지를 자주 떠올렸다.전씨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가장 힘들어한 사람은 전씨 할머니였지만 전태윤 역시 많이 속상했다.가족들 앞에서는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혼자 있을 때면 술에 취해 할아버지를 부르며 울곤 했다.때로는 소정남이나 노동명을 붙잡고 이제 할아버지가 없다고 울기도 했다.전씨 할아버지는 그의 인생에서 첫 스승이었다.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 터라 두 사람의 사이는 각별했다.할아버지는 손자가 아홉이나 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장손의 무게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고 늘 말하셨다.전씨 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던 손자는 전태윤이었다.“그 영감은 내가 아직 살아 있으니까 네 곁에서 내가 잘 이끌어 줄 거라고 믿은 거겠지. 그래서 아무 걱정 없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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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8화

방과 후에는 일찌감치 소씨 가문에서 돌아온 전씨 할머니가 우빈을 돌보고 있었다.마침 할머니는 아래층에서 단지 할머니들과 함께 춤추고 계셨다.우빈은 식탁에 앉으며 물었다.“이모부, 증조할머니는 어디 계세요?”“아래에서 춤추고 계셔.”아침부터 할머니들이 모여 춤을 추고 있었지만 젊은 사람들 사정을 헤아려 음악을 크게 틀지 않았다.남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편이었다.다른 곳처럼 크게 틀어 주변을 시끄럽게 만드는 일도 없었다.만약 이른 아침부터 요란하게 소음을 냈다면 전태윤은 전씨 할머니에게도 분명 한마디 했을 것이다.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남에게 피해가 되는 일은 자신부터 하지 않으려 하시는 분이다.요즘 젊은 사람들 사는 게 얼마나 힘드냐는 것이다.그래서 춤 모임은 보통 아침 일곱 시에 시작해 일곱 시 반에 끝난다.딱 30만 춤을 춘다.저녁에도 일곱 시에 시작해 여덟 시 전에 마친다.음악 소리도 아주 작았고 맨 앞에서 동작을 이끄는 사람을 보며 따라 추는 정도였기에 굳이 소리를 크게 틀 필요가 없었다.“이모는요?”“이모는 아직 주무시고 계셔. 깨우지 말고 푹 자게 두자. 밤에 잠을 잘못 자거든.”하예정은 잠들기는 쉬워도 자주 깨는 편이라 밤이면 뒤척이는 일이 많았다.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네.”아침 식사를 마친 뒤 전태윤이 우빈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러 나섰다.집을 나서는 길에 막 춤을 추고 돌아오시는 전씨 할머니와 마주쳤다.“증조할머니.”우빈이가 앳된 목소리로 불렀다.전씨 할머니는 웃으며 아이를 꼭 안아 주고는 다정하게 일렀다.“유치원에서는 말 잘 들어야 해.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내일은 주말이지? 증조할머니랑 공원에 놀러 가자.”“네.”우빈은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우빈은 증조할머니와 함께 나가는 것을 특히 좋아했다.전씨 할머니는 아이와 노는 법을 잘 아는 분이셨다.전태윤 부부는 이것저것 제한하는 편이었지만 전씨 할머니는 달랐다.나이에 맞지 않는 것만 아니라면 우빈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건 대부분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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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9화

하예정은 전씨 가문의 큰며느리가 된 뒤로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의 시선에 놓였다.다만 하예정과 관련된 소식을 보도하려면 반드시 전태윤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그의 허락 없이 함부로 기사 냈다가는 곧바로 화를 입기 십상이었다.이제 관성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전태윤을 건드리는 건 괜찮지만 전씨 가문의 큰며느리 하예정을 건드리면 절대 안 된다는 사실을.여운별은 굳은 얼굴로 자리를 떴다.그 이후로도 그녀는 며칠에 한 번씩 유치원 앞을 찾았지만 하예정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우빈을 데려다주는 사람은 전태윤이거나 전씨 가문의 다른 형제들이었고 때로는 우빈의 친아버지 주형인이 나타나기도 했다.여운별은 하예정이 곧 아이를 낳을 것이라 짐작했다.혹은 이미 출산했지만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해가 지고 밤이 오고 다시 아침이 밝는 일이 소리 없이 반복되었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하예정의 출산 예정일이 다가왔다.아직 진통도 없고 양수가 터지지도 않았으며 출혈도 없었지만 하예정은 병원에 입원해 출산을 기다리고 있었다.이틀만 지나면 곧 소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겼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의사는 유도분만을 권했다.하예정이 이미 임신 40주를 넘겼는데도 아직 아무런 진통이 없었기 때문이다.더 기다리기보다는 약을 이용하여 출산을 시작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었다.하예정이 조심스레 물었다.“지금 검사 결과는 다 정상인데 이틀 정도만 더 기다리면 안 될까요?”의사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이틀 정도는 더 지켜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변화가 없으면 그때는 유도분만을 해야 해요.”하예정은 배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이 아이는 정말 느긋하네요. 하나도 급해 보이지 않는다니까요.”심효진의 아들이 서둘러 세상에 나오려 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그 아이가 하루라도 빨리 이 세상을 보고 싶어 했던 것과 달리 하예정의 뱃속 아이는 좀처럼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전태윤이 걱정스레 물었다.“지금 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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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30화

사람들은 흔히 출산이 최고 단계의 고통을 겪는 일이라고 말한다.“아프긴 아프지만 낳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이경혜는 그저 그렇게밖에 위로하지 못했다.“아니면 제왕절개를 하는 게 어때?”전태윤은 아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죄어 왔다.하예정이 아프다고 할 때마다 그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으며 차라리 자신이 대신 그 고통을 겪고 싶을 정도였다.“그건 안 할 거예요. 의사 선생님이 상태가 다 정상이라 자연분만이 가능하다고 하셨어요.”하예정은 제왕절개를 원하지 않았다.회복이 더디고 몸에도 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수술하면 일주일 입원도 해야 한다.이미 예정일 전에 입원해 대기하고 있는 터라 하루라도 빨리 퇴원하고 싶었다.자연분만이면 심효진처럼 이삼일 만에 집에 갈 수도 있다.어른들도 자연분만이 더 낫다고 했기에 하예정은 일단은 자연분만해 볼 생각이었다.정말로 힘들면 그때 가서 제왕절개를 해도 늦지 않다.아니, 아니다. 반드시 자연분만할 것이다.제왕절개까지 갈 일은 없느니라!이경혜가 말했다.“일단 자연분만으로 해 보자. 자연분만이 아기에게도 산모에게도 더 좋아. 첫 아이는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어. 나도 기현이를 낳을 때 사흘 밤낮을 진통하다가 겨우 낳았거든.”하예정도 걱정이 앞섰다.“설마 저도 사흘 밤낮이나 아파야 하는 건 아니겠죠?”“그렇지는 않아. 사람마다 달라. 어떤 사람은 낮에 진통이 시작되어서 밤에 바로 낳기도 해. 몇 시간 만에 끝나는 경우도 있고.”이경혜는 그렇게 하예정을 달랬다.하예정은 하예진이 우빈이를 낳을 때 하루 밤낮을 진통하다가 출산했던 장면이 떠올랐다.순간 그녀는 속으로 조용히 빌었다. 아기가 자신을 너무 힘들게 하지 않기를, 며칠씩 고통을 겪지 않기를.다행히도 하루까지는 가지 않았다.저녁 여섯 시를 조금 넘겨 하예정은 일곱 근짜리 아들을 낳았고 모자 모두 무사했다.전태윤은 분만 내내 곁을 지켰다.그는 소정남처럼 기절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만실에서 나왔을 때 그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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