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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1화

“누굴 위해서든 이제 그 일로 마음 쓰지 마요. 수지도 이제 서른 가까운 나이잖아요. 자기가 뭘 하는지, 뭘 해야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다 아는 아이예요. 애가 십 대 후반부터는 사실 저희가 크게 신경 쓸 일도 없었잖아요.”이수인은 더 이상 딸의 연애 문제로 머리를 쓰고 싶지 않았다. 이런저런 추측을 늘어놓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다고 여겼다.자식들은 이미 어른이 되었고 각자 삶을 알아서 꾸려 갈 나이였다.“여보, 며칠 뒤에 관성 쪽으로 여행이나 갈까요? 거기 볼거리도 많다고 하더라고요.”남호진은 별다른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나도 한번 가 보고 싶었어.”겉으로는 딸 일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두 사람 마음속에는 묘하게 같은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관성에 가면 전유하의 집안 분위기나 배경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뛰어난 청년을 길러낸 가정이라면 분명 괜찮은 집안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사실 남호진 부부는 집안 배경이나 조건을 지나치게 따지는 편은 아니다. 자식의 배우자를 고를 때도 집안 배경보다는 인품과 능력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사람 됨됨이가 바르고 능력이 있다면 잠시 형편이 어려워도 결국 스스로 길을 찾아낸다고 믿었다.생각해 보면 많은 부유한 집안도 처음부터 부유했던 것은 아니었다. 선조들이 기반을 다진 후 후손들이 그 토대 위에서 태어났을 뿐이었다.그래서인지 남호진 부부는 자식들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았고 조건을 앞세우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식들이 스스로 정확한 선택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그들 남매의 눈에 차는 사람이라면 집안 형편이 크게 뒤처질 리도 없었다.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건 결국 서로가 공통 화제가 있느냐는 점이다.같은 세계에 속해 있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나눌 화제가 어디에 있겠는가.남수지는 부모가 관성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그날 두 사람은 차를 몰지 않았다.장임현의 차는 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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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2화

이번에 정말 마음이 통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한동안 알고 지낸 만큼 편하게 친구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두 가문이 계속 사업으로 연결된 사이였기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사실 장임현 개인적으로는 부드럽고 차분하면서 가정을 잘 돌보는 여성을 배우자로 맞고 싶었다.아내가 반드시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요구는 없지만 집안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일과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사람, 그런 사람과 따뜻한 식사 한 끼를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하지만 집안 어른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외아들이니 든든한 처가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물론 집안 분위기가 바르고 인품이 좋아야 한다는 조건도 따랐다. 그렇지 않으면 혹시라도 장씨 가문의 재산을 탐내는 상황이 생기면 안 되니까.남수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저희 부모님도 장임현 씨를 꽤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요. 두 분 다 건강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시잖아요. 임현 씨가 잘 들어 주고 맞장구도 쳐 주니까 그 점에서 특히 좋게 보시는 것 같더라고요.”장임현이 미소 지었다.“아버님과 어머님의 건강 관리 방식이 효과가 있을 거예요. 갈수록 더 젊어 보이시던데요. 특히 어머님은 수지 씨랑 같이 계시면 자매 같아 보여요. 모녀라고는 생각도 못 할 정도로요.”남수지가 피식 웃었다.“맞아요. 엄마가 저한테 늘 관리 좀 하라고 하시거든요. 계속 이러다가는 자기보다 더 늙어 보일 거라고요. 솔직히 좀 상처받았어요.”장임현이 말을 이었다.“그래도 관리 잘해야죠. 우리도 어른들한테 밀리면 안 되잖아요.”“저는 엄마를 못 따라가요. 엄마는 지금 아무 부담도 없잖아요. 저는 사업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고 생활 쪽으로도 신경 쓸 게 많아요. 임현 씨도 아시잖아요. 할아버지가 결혼 얘기 얼마나 자주 하시는지... 제가 시집 못 갈까 봐 걱정이 태산이세요. 그런데 제가 결혼을 안 하는 거지 못 하는 건 아니에요. 마음만 먹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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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3화

전유하 정도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 관성에서 버티지 못했다는 말은 아무래도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고 남수지는 생각했다.어쩌면 그 남자가 하는 말 중 진실이 얼마나 될지조차 의문스러웠다.“앞에 세워진 마이바흐, 전유하 씨 차 맞죠? 번호판이 기억나네요.”남수지가 담담하게 말하자 장임현도 고개를 끄덕였다.“네, 저도 기억나요.”사실 양성 업계에서 이름 좀 알려진 인사 중에는 전유하의 차 번호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그가 양선 회사를 이끌고 위기를 돌파해 대형 기업 반열에 올라섰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주목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양선 회사를 견제하는 경쟁자는 남수지뿐만이 아니었다. 다만 대부분은 뒤에서 조용히 압박하는 방식을 선택했을 뿐 남수지와 남씨 가문처럼 공개적으로 경쟁 구도를 드러내는 경우는 드물었다.전유하도 그런 남수지를 꽤 높이 평가했다. 최소한 정면 승부를 택하고 뒤에서 비겁한 수를 쓰지 않았으니까.“맞네요. 벌써 와 있었나 보네요.”“수지 씨가 별로 듣고 싶어 하지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한마디해야겠어요. 어머님께도 부탁받은 거라서요. 오늘 연회에서 전유하 씨를 보더라도 가능하면 조금 거리를 두시는 게 좋겠어요. 두 분은 오늘 가능하면 너무 가까이 마주치지 마세요. 괜히 현장에서 또 티격태격하면 나 회장님도 난처해지실 테니까요.”남수지가 어깨를 으쓱했다.“저야 참고 넘길 수 있죠. 그런데 저 혼자 거리 둔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잖아요. 그 사람도 같이 선 지켜 줘야 하는데... 장임현 씨는 모르실 거예요. 그 사람이 얼마나 뻔뻔한지. 제가 안 다가가도 분명 먼저 와서 건드릴걸요.”얼마 전 전유하가 식사 한번 하자고 했을 때도 남수지는 단칼에 거절했다.그래서인지 오늘 같은 자리에서 괜히 시비를 걸어 오지는 않을까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요 며칠은 혹시 전유하가 할아버지를 찾아가 괜한 말을 꺼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그녀가 전유하를 만졌다느니, 괜히 얽혔다느니 하는 식으로 말이다.장임현이 피식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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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4화

차가 나씨 저택 안으로 들어섰고 집사의 안내에 따라 지정된 자리에 조용히 멈춰 섰다.먼저 장임현이 차에서 내렸다.그리고 곧바로 차 옆에 서서 남수지가 내리기를 기다렸다.문이 열리자 그는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고 남수지는 그의 손을 가볍게 짚고 우아하게 차에서 내려섰다.제법 신사적인 모습이었다.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옆에 세워진 마이바흐가 전유하의 차였다. 그 역시 막 주차를 끝내고 내리던 참이었다.차에서 내리며 전유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보게 되었다.순간 시야가 거슬릴 만큼 눈에 밟혔다.남수지 곁에 서 있는 남자를 그는 알고 있었다. 장씨 가문의 도련님, 장임현이었다.그러고 보니 예전에 두 사람이 맞선을 봤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었다.함께 두어 번 식사까지 했지만 그 뒤로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고 들었다.전유하는 두 사람이 이미 끝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맞선도 흐지부지됐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다시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누군가 했더니 수지 씨네요.”말은 웃으며 했지만 그 어조가 남수지의 귀에는 매우 거슬렸다.남수지가 곧바로 받아쳤다.“저를 못 알아보신 겁니까? 방금 말씀하신 그 말투,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꽤 불쾌하게 들리네요.”“불쾌하다니요? 제가 무슨 문제 있는 말투라도 썼습니까?”그러고는 일부러 두 사람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전유하는 자연스럽게 장임현과 남수지 사이에 몸을 끼워 넣듯 다가서더니 장임현을 옆으로 밀어내고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두 사람이 너무 가까이 서 있지 못하도록 하는 듯한 태도였다.전유하는 남수지를 위아래로 천천히 훑어보더니 칭찬하기 시작했다.“오늘은 제법 차려입으셨네요. 평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전유하 씨!”남수지는 대놓고 전유하를 노려보았다.“전유하 씨, 오늘은 싸우고 싶지 않으니까 좀 꺼져 주세요.”‘제법 차려입으셨네요’라는 그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평소에는 거지처럼 입고 다녔다는 뜻처럼 들려 더 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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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5화

“전 대표님, 전 대표님.”장임현은 오늘 밤 남수지의 파트너로 함께 왔다.남수지가 전유하에게 밀리는 상황을 보던 그는 곧바로 전유하를 두 번 불렀다.전유하는 고개를 돌려 장임현을 바라봤다. 방금까지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그의 시선은 날카롭고 차가웠다. 마치 눈앞의 사람이 적수라도 되는 듯 그는 아무 말 없이 장임현을 노려봤다.두 사람은 또래였고 장임현 역시 업계에서 오랜 시간 부딪치며 살아남은 인물이었다.하지만 전유하의 그 눈빛 앞에서는 장임현조차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전유하는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그의 정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전유하에게서는 언제나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이 자연스럽게 풍겨 나왔다.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그는 순식간에 분위기를 장악했고 혼자 서 있으면서도 마치 수많은 수행원을 거느린 듯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장임현 씨인가요? 우리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이였나요?”전유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장임현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아까의 노골적인 냉기는 그나마 조금 부드러워졌다.장임현은 여유로운 태도로 답했다.“가깝다고 하긴 어렵죠. 그래도 전 대표님 곁에 계신 분은 오늘 제 파트너입니다. 오늘 함께 왔거든요. 제 파트너 곤란하게 하지는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도 이제 안으로 들어가서 나 회장님께 인사드려야 해서요.”그는 속으로는 씁쓸하게 생각했다. 방금 전유하가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꼭 연적을 보는 눈빛과 같았기 때문이다.‘설마... 수지 씨에게 마음이 있는 건가?’“파트너라고요? 장임현 씨, 여자 친구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오늘은 왜 그분 대신 남수지 씨랑 오셨어요? 설마 양다리?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시나 봐요?”그러더니 시선을 남수지 씨에게 옮기며 덧붙였다.“수지 씨, 사람 보는 눈이 생각보다 별로네요. 그런 남자를 좋다고 하다니. 괜히 나중에 마음 상하는 일 없으셨으면 좋겠어요.”남수지는 본능적으로 장임현을 바라봤다.그를 저녁 자리에 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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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6화

남수지는 생각할 것도 없이 그의 호의를 단호하게 거절했다.“사양할게요. 괜히 잡았다가 또 제가 전유하 씨를 만졌다고 하면 어떡해요? 저는 그런 책임 못 집니다.”‘하이힐이 뭐 어때서? 내가 신어보지 못한 것도 아니고.’남수지는 평소에도 출근할 때 늘 하이힐을 신었고 운전할 때만 운동화로 갈아 신을 뿐이었다.차 안에는 항상 운동화 한 켤레와 굽 낮은 신을 따로 챙겨 두고 다녔다.전유하가 피식 웃었다.“모처럼 신사답게 해보려 했는데 수지 씨가 기회를 안 주시네요. 그럼 천천히 오세요. 저는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남 회장님이랑 나 회장님께서 워낙 가까운 사이라 벌써 와 계실 것 같은데요.”실제로 남수지의 할아버지는 이미 나씨 가문 저택에 와 있었다. 나태성과는 오랜 친구로 서로를 깊이 신뢰하며 돈독하게 지내는 사이였다.전유하의 말은 압박처럼 들렸다. 먼저 들어가 그녀의 할아버지 앞에서 무슨 말을 할지 장담 못 하니까.남수지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한 얼굴을 유지한 채 남수지는 부드럽게 말했다.“우리 같이 들어가요.”말과 함께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장임현은 전유하를 한 번 스치듯 지나쳐 남수지의 손을 잡았다.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남수지는 슬며시 손을 빼더니 이번에는 그의 팔에 팔짱을 끼었다.두 사람은 그렇게 나란히 화려한 홀을 향해 걸어갔다.저택 안으로 들어서는 길목마다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인사를 건네면 웃으며 답이 돌아왔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두 사람에게 머물렀다.남수지와 장임현이 함께 나타난 것 자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두 가문이 혼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돌았으니까.다만 한동안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사람들 기억 속에서 흐려졌을 뿐이었다.그런데 오늘 밤은 달랐다. 남수지가 장임현의 팔을 다정하게 끼고 등장하자 연회 분위기가 은근히 달아올랐다.“결국 두 가문이 연을 맺는 건가?”속삭임이 조용히 번져 나갔다.어른들이 뜻을 굽히지 않으면 젊은 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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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7화

“안녕하세요.”남수지가 장임현과 함께 다가와 밝게 인사했다.나태성은 눈을 가늘게 접으며 흐뭇하게 응했다.남인국은 손녀가 장임현의 팔을 끼고 있는 모습을 힐끗 보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수지야, 장임현 씨랑 같이 왔구나. 보기 좋다. 젊은 사람들끼리 가서 일 봐. 우리 같은 늙은이들 옆에 붙어 있을 필요 없어.”남인국은 웃으며 두 사람을 자연스럽게 젊은 무리 쪽으로 보냈다.그때였다.“안녕하세요.”전유하의 낮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남수지의 어깨가 미세하게 굳었다.전유하가 무슨 말을 꺼낼지 몰라 남수지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다.이렇게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괜히 불편한 말을 던지기라도 하면 분위기가 단숨에 어색해질 게 뻔했다.남인국은 전유하를 보는 순간 눈빛이 잠깐 반짝였다.그러나 그 빛은 오래 가지 못했다.능력만 보자면 정말 탐이 나는 젊은 인재였다.카리스마도 있고, 판단도 빠르며, 배짱도 두둑했다.문제는 그 재능이 남씨 가문을 위해 쓰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오히려 자주 맞붙고 있는 경쟁상대였다.업계에 경쟁자는 많았다. 하지만 남씨 그룹을 상대로 이렇게 노골적으로, 당당하게 맞서는 곳은 양선 회사뿐이었다.게다가 그 양선 회사는 남씨 그룹의 연이은 압박과 견제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남인국은 언젠가 양선 회사가 남씨 그룹을 앞지르는 날이 오는 건 아닐지 내심 불안해하고 있었다.‘아니. 아니야. 그럴 리 없어.’남인국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자기 장손도, 장손녀도 결코 만만한 인물들이 아니었다.특히 남수지는 전유하와 수년간 맞붙어 왔고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누가 한 수 위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는 구도였다.그렇게 생각하자 남인국의 표정이 다시 부드러워졌다.“오셨어요? 이리 와서 앉으세요.”나태성은 두 가문 사이의 미묘한 기류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남씨 가문이든 전유하든, 그에게는 모두 손님이자 후배였다.오히려 전유하에게는 조금 더 살갑게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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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8화

“남수지 씨가 저를 ‘여보’라고 불렀으니 저도 자연스럽게 회장님을 할아버지라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남인국은 매우 놀라 눈치였다.‘수지가 그렇게 불렀다고?’설령 순간의 실수로 그렇게 불렀다 한들 전유하가 이렇게 능청스럽게 나올 일은 아니었다.보통은 화를 내거나 최소한 불쾌한 기색을 보였어야 맞지 않은가.“할아버지, 제가 드리는 말씀은 전부 사실입니다. 믿기 어려우시면 나중에 집에 가셔서 남수지 씨께 직접 물어보셔도 됩니다. 저는 회장님께 거짓말하지 않아요.”남인국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는 손녀에게 향했다.그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남수지는 직감했다.저 인간이 무슨 말을 했는지.남수지는 먼저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전유하 씨 말씀은 사실과 다릅니다. 지금 여기서 길게 말씀드리기보다 집에 돌아가서 제가 따로 설명해 드릴게요.”전유하는 몸을 바로 세우며 느긋하게 웃었다.“보세요. 남수지 씨가 긴장하셨습니다. 괜히 찔리는 게 있으신 모양이죠? 다만 이런 자리에서 길게 말씀드리는 건 적절하지 않아요.”그는 자연스럽게 술잔을 하나 집어 들었다.“두 어르신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남인국과 나태성의 앞에는 이미 몇 모금 마신 잔이 놓여 있었다.전유하는 잔을 들어 두 사람을 향해 공손히 기울였다.후배가 잔을 들어 올리자 나태성과 남인국도 자연스럽게 잔을 들었다.전유하는 단숨에 술을 비워냈다.“두 분 천천히 드세요.”두 어른은 한 모금만 입에 적셨다.잔을 내려놓자마자 나태성이 일부러 툭 던지듯 말했다.“전 대표님, 이건 좀 서운하네요. 제 친구는 할아버지라 부르면서 저는 아직도 회장님이라고 부르세요?”전유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호칭에는 다 사정이 있습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아시게 될 거예요.”묘하게 여운을 남기는 말이었다.나태성은 눈치를 챘는지 더 묻지 않고 껄껄 웃어넘겼다.전유하는 두 어른과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손님들이 몰려들자 자연스럽게 자리를 떴다.그가 등을 돌리는 순간 남수지도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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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9화

소 대표라고 불리는 이 여자는 소여진, 전유하보다 두 살 많은 33세였다.아직 미혼이었다.그녀는 일에 매달려 살아온 세월이 길었고 스스로가 이룬 것들이 많다 보니 사람을 보는 기준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소여진은 명문가 출신이 아닌 오로지 실력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이다.그만큼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컸다.“전 대표님, 언제 오셨어요?”소여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전유하에게 머물렀다. 그 눈빛에는 숨기지 못한 호감이 스며 있었다.두 차례 함께 일하며 가까이서 지켜본 그녀는 전유하의 일하는 모습에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그리고 그녀의 마음속의 존경은 어느새 사랑으로 변해갔다.“안에 오래 있었더니 답답해서요. 잠깐 바람 좀 쐬러 나왔어요.”소여진이 웃으며 말했다.“실내가 훨씬 시원하실 텐데요. 냉방도 잘 되어 있고요.”전유하는 옅게 웃을 뿐 굳이 말을 잇지는 않았다.잠시 망설이던 소여진이 한 걸음 더 다가섰다.“전 대표님, 괜찮으시다면 잠시 합석해도 될까요?”“오늘은 혼자 좀 있고 싶습니다.”실내에서 이미 사람들에게 충분히 둘러싸여 있었다. 겨우 빠져나와 숨을 돌리는 참이었던지라 이 시간만큼은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소여진의 마음을 그는 알고 있었고 이미 몇 번이나 분명히 선을 그어 두었다.그는 연상보다는 연하와 연애하고 싶었다.그러나 그녀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또렷했다.“말은 걸지 않겠습니다. 그냥 조용히 옆에만 있을게요. 전 대표님, 평소에 저희 얼마나 바쁜지 아시잖아요. 거래가 없으면 식사 한번 하기도 어려운 사이고요. 오늘 이렇게 마주친 것도 인연 아닐까요? 잠깐만이라도 기회를 주세요. 그저 곁에서 대표님을 보고만 있겠습니다.”소여진은 감정을 숨길 생각도 없었다.“전유하 씨, 저는 유하 씨를 좋아해요. 제 마음, 이미 알고 계시잖아요.”소여진은 망설임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었다. 일할 때도, 감정을 드러낼 때도 늘 직설적이었다.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하며 자기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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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30화

전유하는 다시 몸을 돌렸다. 얼굴에는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그런 이야기는 제가 수지 씨와 실제로 사귀게 되고 공식적으로 관계를 밝힌 뒤에나 꺼낼 수 있는 얘기입니다. 지금처럼 아무 사이도 아닌 상황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저와 수지 씨의 평판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만약 저희가 문제 삼는다면 소 대표님도 피할 수 없으실 겁니다.”소여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으며 되물었다.“그럼 제가 남수지 씨보다 몇 살 많아서예요? 아니면 그녀는 명문가 출신이고 저는 평범한 집안 출신이라서입니까?”전유하는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저는 사람의 배경으로 평가하지 않아요. 소 대표님은 충분히 뛰어난 분이고 저도 늘 그 점을 존중해 왔습니다. 오히려 많은 재벌가 출신보다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아무 기반도 없이 오직 자신의 힘으로 여기까지 올라오셨으니까요. 그 점은 진심으로 존경합니다.”실제로 소여진은 작은 산골 마을에서 출발해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현재 자산만 해도 수십억 단위를 넘겼고 작은 별장을 소유하고 고급 차량을 몰며 통장에는 상당한 금액이 들어 있었다.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소여진은 부모를 위해 고향에 별장을 마련해 주어 부모와 형제들 전부 함께 살게 해 주었다.그러나 친정에 해 준 건 딱 그만큼이었다.상황을 자기 삶을 끝없이 소모시키는 쪽으로 흘러가게 두지는 않았다.책임질 부분은 책임지되 그 이상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게다가 저와 수지 씨는 라이벌이에요. 이 양성에서 저희 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소 대표님께서도 괜한 말씀을 하지 마셨으면 좋겠네요.”소여진이 차분하게 말했다.“아마 본인은 모르실 거예요. 남수지 씨를 바라보는 유하 씨의 눈빛은 달라요. 맞아요. 두 분은 앙숙이죠. 하지만 그 안에는 서로를 인정하는 마음도 있잖아요.”전유하의 검고 밝은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당사자는 오히려 모를 수도 있고 옆에서 보는 사람이 더 잘 볼 수도 있겠죠. 소 대표님께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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