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공기 속,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순간, 임유진은 마치 시간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도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문득, 처음 그를 마주했던 그날 밤이 떠올랐다.그때도 그랬다. 그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이 없었고, 깊고도 매혹적인 눈동자 속엔 단 한 줌의 온기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직 얼음처럼 차가운 공허함만이 그 안에 고요히 자리하고 있었다.“혁아... 미안해.”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밤공기를 가르며 퍼졌다.그의 시선은 땅바닥에 떨어졌고, 잠시의 정적 끝에 조용히 물었다.“미안해? 나한테 뭘 그렇게 미안한데?”“오늘... 그렇게 무릎 꿇고 부탁한 거, 정말 미안해. 네가 어머니를 얼마나 증오하는지 잘 알면서도, 그걸 알면서도, 내가... 계속 용서해 달라고 부탁했으니까.”임유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그 어떤 날보다 혼란스러웠던 오늘, 임유진은 처음으로 이토록 모순된 감정 앞에 무력감을 느꼈다.스승님 부부는 그녀에게 은인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들을 돕지 않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동시에, 그 누구보다 상처 입히고 싶지 않은 사람은 바로... 눈앞에 서 있는 이 남자, 강지혁이었다.세상이 뭐라 해도, 그녀의 마음속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언제나 강지혁이었다.임유진은 조심스럽게 다가섰다.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이제 둘 사이엔 고작 한 발짝의 거리만이 남아 있었다.“혁아, 제발... 날 용서해 줘.”그 말에 강지혁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그 깊고 차가운 눈동자가 그녀의 눈을 정확히 응시했다.그 안에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슬픔, 분노, 실망,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 기대.“나한테... 용서를 바란다고?”임유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지혁이 돌연 물었다.“그럼, 넌 날 얼마나 사랑하는데?”그 질문에 임유진은 순간 숨을 삼켰다.대답을 하기도 전에 한 장면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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