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번호는 무엇인가. 소은지에게 그것은 소은지를 하늘에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 지옥으로 떨어뜨린 낙인 같은 표식이었다. 소은지는 스스로 맞서 떨쳐낼 힘이 없었다. 그래서 엔데스 명우의 곁에 머무는 동안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지옥 같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그런데 지금, 엔데스 명우가 예전에 소은지를 부르던 그 번호를 다시 귀로 듣는 순간, 엔데스 명우의 세상은 완전히 흐트러졌다. 겁 따위는 전혀 없어 보이는 소은지의 눈매를 마주하자, 엔데스 명우의 손에 들어갔던 힘은 조금씩 풀렸고 더 이상 억지로 밀어붙일 용기 또한 솟아나지 않았다.자유를 얻은 순간 소은지는 눈을 뜨고 조용히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 다만 그 고요한 침묵 자체가 엔데스 명우의 영혼을 후벼 파고 날카롭게 박혔다....끝내 엔데스 명우는 떠났다. 홧김에 문을 차고 나간 것인지, 아니면 지금 벌어진 모든 일을 끝내 맞서 감당할 수 없다고 인정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소은지를 다시 마주한 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엔데스 명우는 등을 돌리고 떠났다.돌아가는 차 안. 엔데스 명우는 차창 밖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때 소은지에게 덧씌웠던 그 번호가 두 사람의 앞길에 가로놓여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번호의 뒤에서는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서 숨이 막힐 정도였고 무력감을 느낄 정도였다.“도련님.”“말해.”“소식이 왔습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엔데스 명우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이겼다는 결말은 엔데스 명우에게 전혀 뜻밖이 아니었다. 엔데스 명우가 손을 댄 일은 단 한 번도 실패로 끝나지 않았으니까. 파리에서 벌어졌던 권력 다툼은 예외에 가까운 변수였고, 지금 맞붙은 상대는 오직 소은지라는 사람뿐이었다. 엔데스 명우가 그런 상대에게 져 줄 리가 없었다. 다만 승전보에도 엔데스 명우의 가슴은 조금도 설레지 않았다. 애초부터 당사자를 아는 사이도 아니었기에 이번 일은 엔데스 명우에게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다.“소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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