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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0 Bab

제1251화

그 말에 송민준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지만 고은서가 바라는 대답을 해주지는 않았다.대신 그는 조용히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은서야, 오늘 이렇게 만나줘서 고마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이에 쌓인 오해는 너무 깊은 것 같아. 내가 뭐라 해도 네 마음을 풀 수는 없겠지.”송민준이 나지막이 말을 이어갔다.“시간도 늦었으니 난 이만 가볼게.”이내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섰고 고은서는 뒤돌아있는 송민준에게 냉랭한 목소리로 충고했다.“송민준 씨, 당신이 민아 오빠니까 충고 하나 해줄게요. 악행을 거듭하다 보면 결국 자멸하게 되는 법이에요.”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당신들이 왜 그렇게 저와 고씨 가문을 증오하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본인이 저지른 일들이 모두 드러날 날이 올 거예요. 그때가 되면 꼭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되겠죠.”고은서의 말에 송민준의 발걸음이 순간 멈칫했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듯 옅은 미소를 짓고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송민준이 떠나가고 고은서는 조금 맥이 빠진 듯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역시 송민준은 미리 그녀의 의도를 눈치채고는 이미 경계하고 있었다.하지만 오히려 그 점에서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었다.송민준과 여시은 사이엔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그날 농장에서 여시은이 그녀를 물에 밀어 떨어뜨린 사건과 그 장면이 누군가에게 찍힌 영상.송민준은 분명 여시은을 도와 그런 걸 처리하려 한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다만, 송민아가 우연히 개입하면서 그 영상이 드러났고 일이 틀어졌던 것일지도 모른다.송민준은 매우 영리했다.자신의 어떤 행동도 고은서에게 의심을 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동안 침묵을 지켜왔다.그래서 고은서는 그와 여시은 사이의 정확한 관계를 확신할 수 없었다.이제는 그가 여시은을 몰래 돕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음에도 고은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송민준 씨는 그렇게 쉽게 누군가에게 조종당할 사람이 아닌데... 정말 어머니의 부탁 하나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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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2화

“민아야, 나랑 네 오빠 사이 일은 좀 복잡해. 예전처럼 평온하게 지내긴 힘들 것 같아.”고은서는 솔직하게 말했다.“정말 그렇게까지 복잡한 일이야?”그러자 송민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내가 지금 오빠 편 드는 건 아닌데 그때 그 납치 사건 말이야. 오빠가 거기 끼어 있었던 건 맞는 것 같아. 근데 널 다치게 하려던 건 아니고 아마 그냥 무슨 계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 서로 감정이 좀 생기게 하려는 그런...”“우리 오빠 진짜로 너 좋아해.”송민아는 망설이다 말을 이어갔다.“오빠 책상 위에 인형 하나 있거든. 내가 지난번에 사무실 가서 만져보려니까 바로 빼앗더라? 인형 더럽힌다고 뭐라 하기도 하고.”“그때는 진짜 이상했어. 오빠는 평소에 그런 유치한 거 절대 안 건드리거든. 그래서 내가 계속 캐물었지. 그러니까 그 인형, 네가 준 거라더라.”“오빠가 예전에 선도 몇 번 봤고 만나본 사람도 몇 명 있었지만 항상 그냥 해야 하니까하는 느낌이었어. 누구한테도 진심 같지 않았거든.”송민아는 말하며 천천히 고은서 앞에 다가왔다.“우리 오빠... 솔직히 나도 가끔 무슨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어. 근데 지난번 일은 진짜 나쁜 의도는 없었던 것 같아. 아니었으면 네가 이렇게 멀쩡하게 안 끝났겠지.”“고은서, 딱 한 번만 오빠 용서해 주면 안 돼?”그 말에 고은서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송민준 씨가 그 인형을 아직도 갖고 있었다고? 그것도 남한테 손도 못 대게 막을 정도로?’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든, 의도가 뭐든, 고은서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송민준이 자신을 정말로 좋아한다는 걸.고은서가 보기엔 송민준이 하는 모든 행동엔 의도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심지어 방금 자신을 찾아온 것조차도.송민아는 단순하고 마음이 곧은 아이였다.그녀의 머릿속엔 음모나 어둠 같은 건 들어설 틈이 없었고 거기다 송민준이 오빠이니 그를 다르게 보는 건 당연했다.어쩌면 그래서 고은서와 송민준이 둘 다 진실을 송민아에게 말하지 않기로 결정한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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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3화

“이번 일의 성패는 네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어.”“응?”“그러니까 넌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어. 그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만 조용히 지켜보면 돼.”고은서는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지금 네가 하는 말, 네가 직접 들어봐. 누가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겠어? 난 원래도 모르는 게 맞거든? 근데 대체 뭘 모른 척하라는 거야?”그러자 곽승재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그것도 맞네. 그럼... 오늘 내가 너한테 아예 전화 안 한 걸로 치자.”다음 날, 고은서와 외할아버지인 고준석은 경찰서로부터 출석 요청을 받았다.해찬시에서 벌어진 사건의 조사 결과를 통보받기 위해서였다.경찰은 수사를 통해 가해자의 신원을 확인했고 그 두 명은 인도에서 폭주를 벌이다 도주한 사실을 시인했다.경찰은 고은서와 고준석에게 원하는 처벌 방향을 물었고 법적으로 가능한 선에서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전했다.고준석은 생각보다 놀란 눈치였다.이렇게 시간이 지난 일인데 경찰이 끝까지 추적해 범인을 찾아냈다는 사실이 의외였다.고준석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혔다.“교통사고 도주에 따른 처벌은 당연히 받아야 하고 추후 다시는 위험한 곳에서 폭주 운전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해야 합니다. 만일 사고가 또 나면 모든 책임을 지도록 말이죠.”그의 요구는 상식적이고 정당한 것이었고 가해자들에게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기에 별다른 반발 없이 수용되었다.하지만 고은서는 그런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다.그녀는 그들이 단순한 폭주족이 아니라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의도적인 가해자’라고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따라서 단순한 과실이나 도주가 아니라 고의적 상해치사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렇지만 지금으로선 고은서의 의심을 뒷받침할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했다.경찰도 그 부분에 대해선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혔고 당장은 고준석의 요구를 기반으로 한 선에서 조치가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은 이상, 실질적 피해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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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4화

고은서는 외할아버지인 고준석과 함께 차에 올랐다.차에 앉자 고은서는 웃으며 말했다.“할아버지, 예전에 그러셨잖아요. 진짜로 누굴 놓아주면 굳이 전화나 메시지를 차단하지도 않고 일부러 피하지도 않는다고. 그냥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고요.”“생각해 보니까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지금 저랑 곽승재 사이가 딱 그런 것 같아요. 일부러 피하지도 않고 필요하면 일 얘기도 하고요.”고준석은 그 말에 다시 한번 놀랐다.예전에 외손녀가 곽승재를 차단했던 걸 보고 걱정이 돼서 그런 말을 하긴 했었다.그때까지만 해도 고준석은 고은서가 곽승재를 진심으로 놓지 못한 줄 알았다.그런데 지금 이렇게 담담하게 말하는 걸 보니 뭔가 복잡한 감정이 올라왔다.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고은서가 행복한 것이니 어떤 선택이든 지지하겠다고 다짐했다.“승재 오빠가 가끔 전화도 해요. 시간 나면 찾아와서 외할아버지랑 잠깐 얘기도 하고 가고요.외할아버지도 아시잖아요. 그 사람, 예전 일을 많이 미안해하고 있어요.”고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승재 그 친구도... 많이 달라졌더구나.”고은서는 웃으며 장난을 쳤다.“할아버지, 설마 아직도 저랑 승재 오빠 다시 이어주려고 하시는 거 아니죠?”고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럴 리가 있니? 내가 약속했잖아. 너의 연애, 너의 인생은 네가 선택하는 거라고. 다만 이렇게 너를 보니까 마음이 좀 뭉클하고 또 한편으론 좀 짠하기도 하구나. 우리 은서... 정말 많이 컸구나.”고은서는 조용히 외할아버지 어깨에 기대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성장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죠.’하지만 이 말은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말했다간 외할아버지가 마음 아파할까 봐.차가 도로를 쌩쌩 내달리는 중, 고은서는 외할아버지의 상태가 괜찮아 보이자 문득 고은혜와 유성준의 이야기를 꺼냈다.유성준은 조건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다만, 집안에 가족이 없고 일부 재벌가와 비교하면 사회적 배경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그래서 고은서는 단은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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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5화

이 질문엔 고은서도 선뜻 외할아버지께 대답할 수 없었다.며칠 동안 바쁘게 지내느라 고은혜에게 후속 이야기를 제대로 묻지 못한 것이다.원래는 단지 고준석에게 조금 일찍 알려두려는 의도였는데 어쩌다 말이 새서 단은숙이 고은혜의 연애를 반대할 수도 있다는 방향으로 흘러버린 것이었다.“지금 은혜한테 직접 물어볼게요.”고은서는 즉시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고준석 앞이라 직접 전화를 하긴 좀 애매했지만 마침 앞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보여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한 뒤 내려서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고은혜가 전화를 받았다.“언니, 무슨 일이야?”“너 목소리가 왜 그래? 힘이 하나도 없네?”고은서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성준 오빠랑 뭔가 안 풀렸어?”고은혜는 한참 머뭇거리다 겨우 진심을 털어놓았다.그녀는 아예 이틀째 회사를 나가지도 않았고 유성준이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깜짝 놀란 고은서가 되물었다.“너 그날은 용기 내서 직면하겠다고 하지 않았어? 근데 왜 아직도 피하고 있어?”고은혜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머리를 망가뜨리며 대답했다.“하려고 했어. 진짜로. 근데 막상 마주하려니까 겁이 나는 거야.”“대체 뭐가 무서운 건데?”고은서는 이해하지 못했다.“성준 오빠가 부족해서야? 아니면 네가 오빠를 안 좋아해서 그런 거야?”“아니, 그런 건 하나도 아니야.”고은혜는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나는 그냥... 유 대표님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어. 혹시라도 대표님이 나한테 좋아한다고 말하면 너무 갑작스러워서 어쩔 줄 모를 것 같아. 근데 또 그게 아니라면... 내가 착각한 거면 너무 민망하고 부끄럽고. 그래서 그냥...”결국 고은혜는 언니에게 SOS를 청했다.“언니, 나 어떡하지? 유 대표님이 벌써 몇 통이나 전화를 했어. 계속 안 받으면 정말 화내는 거 아닐까?”고은서는 그런 조은혜의 태도에 어이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야, 아직 얼굴도 안 마주쳤으면서 뭘 그렇게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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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6화

그때였다.현관 벨 소리에 고은혜와 고은서, 둘 다 입을 꾹 다물었다.고은혜는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고은서는 전화로 그녀를 좀 더 설득해 보려 했지만 그 순간 조은혜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유... 유 대표님?”유성준이었다.그는 고은혜가 전화를 받지 않고 회사에도 안 나가자 결국 직접 집까지 찾아온 것이었다.고은서는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이젠 은혜가 도망칠 데도 없겠네.’둘이서 대면해 확실하게 이야기하게 될 거란 생각에 괜히 설렘이 밀려들었다.“통화 중이었어? 바쁘면 나중에 들어가도 돼.”유성준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아, 괜찮아요. 지금 들어오세요.”말을 내뱉고 난 고은혜는 잠깐 후회하는 듯했지만 이미 말이 나온 이상 그를 쫓아낼 수도 없었다.한편, 고은서는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전화를 끊기 전 조은혜에게 몇 마디 더 하려던 참이었다.그리고 그 소식을 얼른 외할아버지께 전해드리러 차로 돌아가려 했다.하지만 고은서가 전화를 오래 한 탓일까?그녀가 몸을 돌렸을 때, 고준석이 차에서 내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이내 고준석이 고은서 쪽으로 걸어오는 순간, 그녀가 먼저 해맑게 웃으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외할아버지, 가만히 계세요! 제가 갈게요!”그러나 그 순간, 하늘 위에서 무언가가 날아오고 있었다.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드론 한 대가 직선으로 고준석 쪽을 향해 빠르게 돌진하고 있었다.고은서는 전화를 하며 걸어오던 터라 외할아버지와의 거리가 꽤 멀었고 지금 달려가도 막을 수 없는 거리였다.드론이 점점 더 낮게 하강하며 돌진해 오는 모습에 고은서는 너무 놀라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뜨렸다.입에서 나온 건 간절하고도 절박한 비명 한 마디.“할아버지!”드론이 외할아버지를 향해 부딪히려는 찰나, 한 남자가 갑자기 튀어나왔다.그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강하게 휘둘러 드론을 가격했고 드론은 방향을 잃고 땅으로 추락해 굉음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이내 드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고 그 남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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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7화

고은서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중년의 남자였다.그는 단순한 이너 셔츠 한 장만 입고 있었음에도 단정하고도 당당한 기세를 풍기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세월이 만들어낸 깊은 눈가의 주름엔 한 매력과 관록이 배어 있었고 전체적인 인상은 침착하고도 우아했다.고은서는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그 남자의 눈에 비친 그녀는 아마도 가여운 아이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그래서일까, 눈빛엔 분명 연민과 따뜻함이 비쳤다.그 남자는 다름 아닌 한동안 보이지 않던 여재훈이었다.고은서는 당황스러웠다.‘여재훈 씨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게다가 어쩌면 이렇게 정확한 타이밍에 외할아버지를 구하다니?’“여 대표님! 혼자서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다치신 건 없으세요?”그때, 앞쪽에서 비서로 보이는 두 남자가 헐레벌떡 달려왔다.그들 뒤편엔 조용한 찻집이 하나 있었기에 고은서는 이제야 깨달았다.여재훈은 아마 방금 거기서 응접을 마치고 나온 참이었을 것이다.“당장 이 드론을 조종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봐. 아직 근처에 있을 가능성이 높아.”여재훈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차갑고 단호했다.“예!”한 조수는 빠르게 명령을 받고 움직였고 다른 조수는 여재훈의 모습을 살펴보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대표님, 어깨에서 피가 나고 있습니다! 어깨 쪽이 찢어졌어요. 병원에 가셔야 합니다!”고은서도 그 말을 듣고 황급히 여재훈의 어깨를 살펴보았다.아마 아까 외할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드론 파편을 맞은 듯 옷이 살짝 찢어져 있었고 그 틈으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괜찮아. 지금은 저 조종자가 누구인지가 더 중요해. 그 목적부터 알아내야 해.”여재훈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강했다.그의 성격을 아는 조수는 더는 설득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수긍하고 현장을 정리하러 갔다.옆에서 지켜보던 고은서도 걱정이 되어 참지 못하고 말했다.“대표님, 지금은 병원이 먼저예요. 이 일은 저희가 처리할 수 있어요.”그녀의 따뜻한 말에 여재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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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8화

드론 사건의 진상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에 언제 어디서 또 다른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고은서는 누군가 따라다니는 편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느꼈다.차에 타기 전, 그녀는 슬며시 여재훈의 어깨 부상과 떨리는 듯한 팔을 힐끔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대표님, 괜찮으시다면 저희랑 같이 병원에 가서 상처 치료 좀 받으시죠?”여재훈이 다친 건 순전히 고준석을 구하려다 생긴 일이었고 아무리 그들과 사이에 복잡한 일이 있었다고 한들 고은서로선 그를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그 말에 여재훈의 눈빛엔 또다시 기쁜 감정이 떠올랐다.고은서가 단순히 예의상 한 말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거절하거나 조용히 자신의 차를 타는 것이 맞지만 그녀와 함께할 기회를 도저히 놓치고 싶지 않았다.“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여재훈이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고은서는 더 이상 말을 돌릴 수 없어 차에 오르라는 손짓을 건넸다.여재훈은 상처로 몸을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었고 차에 오를 때 고은서가 조심스럽게 그를 부축해 주었다.그 짧은 접촉에 여재훈은 묘한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꼈다.앞자리에 기사와 경호원이 앉았고 여재훈이 뒷좌석에 오른 뒤 고은서도 그 옆자리에 앉았다.이 차는 고준석이 사용하는 차량이라 노인을 위해 내부 공간이 넓게 개조되어 있어 세 명이 타도 전혀 답답하지 않았다.하지만 이렇게 가까이 여재훈과 마주 앉은 건 처음이었다.그의 옷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수 냄새 때문인지 고은서는 왠지 조금 안심되는 느낌을 받았다.“대표님, 아까 그곳에 어떻게 계셨던 거예요?”고은서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여재훈은 근처 찻집에서 친구들과 간단한 모임이 있었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그녀와 고준석을 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그리고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고준석 쪽에 이상한 낌새가 보여 그대로 달려갔다고 말이다.하지만 고은서는 모른다.사실 그가 일부러 찻집 밖으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고은서가 통화 중인 모습을 우연히 본 여재훈은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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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9화

여재훈이 다친 건, 오직 고준석을 구하려다 생긴 일이었다.그가 책임을 묻든 말든, 고은서는 직접 여재훈의 상태를 확인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마침 고은혜와 유성준도 병원에 도착했고 외할아버지 쪽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 고은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외할아버지를 배웅한 뒤, 고은서는 여재훈이 치료받고 있는 진료실로 향했다.진료실 안에는 의사와 여재훈, 그리고 그의 비서 한 명이 있었다.여재훈의 상처는 거의 치료가 끝난 상태였다.어깨는 베여서 붕대가 감겨 있었고 팔과 등에도 부딪힌 자국이 몇 군데 남아 있었다.그 모습을 본 고은서는 가슴 한구석이 미어졌다.여시은 일로 마음이 복잡했던 나날들 속에 그녀는 여재훈에게 냉담하게 대했다.그런데도 여재훈은 아무런 원망도 안 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고준석을 도와주었다.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고은서는 외할아버지가 어떤 상처를 입었을지 감히 상상도 못 한다.“고은서 씨, 어르신은 괜찮으신가요?”아직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여재훈의 다정한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이내 고은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큰일은 아니에요. 발을 살짝 삐었는데 아까 제 여동생이 와서 모시고 집에 갔어요. 외할아버지께서 대표님 상태도 꼭 확인하라고 하셨어요. 병원비와 치료비, 영양비 전부 저희가 책임질게요.”여재훈은 어깨 붕대를 감은 채, 비서가 건넨 외투를 입고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게까지 형식적으로 안 해도 됩니다.”비서는 남아 의사에게 주의 사항을 듣고 고은서와 여재훈은 진료실을 나왔다.약을 받아야 했기에 두 사람은 병원 복도의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오늘은 정말... 감사했습니다.”고은서는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그러자 여재훈은 아직도 놀란 기색이 남아 있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고은서 씨, 아까 어르신께서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하셨고 당신도 이미 여러 번 말했어요. 그리고 전 도울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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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0화

여재훈의 안색이 약간 창백해지고 눈동자에 긴장감이 서린 걸 본 고은서는 왠지 모르게 그가 불쌍해졌다.그래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네.”고은서의 태도가 누그러진 걸 본 여재훈은 마음속으로 몹시 기뻤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은서 씨, 여기서는 대화하기 불편하니 시간 괜찮으면 같이 가서 앉아 간단히 뭐라도 먹지 않을래요?”고은서는 여재훈에게 대한 원망이 조금 줄었지만 그래도 그와 함께 밥 먹을 기분은 아니었다.첫째, 빨리 곽승재에게 연락해 아까 일어난 일을 알려야 했다.둘째, 여재훈과 너무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다.여시은이 이미 자신을 미워하는데 여재훈이 고은서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는 걸 알면 더욱 앙심을 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지금 그녀는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더 이상 복잡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대표님, 죄송하지만 저는 아직 할 일이 있어서요. 드셔야 할 약을 다 받으면 얼른 집에 가서 푹 쉬세요.”“저...”“은서야!”여재훈이 말을 시작하려던 순간, 복도 저쪽에서 급하게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이내 고은서가 고개를 돌리자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곽승재를 보았다.곽승재는 그녀와 외할아버지 소식을 듣고 온 듯, 긴장과 초조함이 얼굴에 역력했다.고은서도 그를 찾고 있던 참이라 바로 일어섰다.“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그때, 아기를 안고 급하게 걸어오던 한 여자가 고은서 뒤에서 당황하며 달려왔다.여자의 걸음걸이는 너무 빠르고 급해 아기의 다리가 고은서의 팔에 부딪혀 그녀가 들고 있던 가방이 바닥에 떨어졌다.탁!가방에서 향수가 든 정교한 작은 유리병 하나가 굴러 나와 철제 의자에 부딪혀 깨졌다.그리고 향수가 쏟아지면서 상쾌한 꽃향기가 순간 공간에 퍼졌다.“은서야, 다친 데 없어?”곽승재가 재빨리 고은서 옆으로 달려와 걱정스레 물었다.“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그 여자는 자신이 실수한 걸 알고 얼른 사과하며 아기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바라보았다.고은서는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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