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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6 Bab

제1261화

그 말을 들은 여재훈의 표정은 더욱 격앙되었고 목소리에는 미묘한 떨림까지 섞였다.“당... 당신이 어떻게 이 향수를 만들 줄 압니까?”고은서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엄마한테 배웠어요. 이 향수는 생전에 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거예요.”고은서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재훈은 무언가에 강하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은 얼굴로 굳어버렸다.“아빠!”바로 그때, 여시은의 다급한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고은서가 고개를 들어보니 여시은이 정말로 달려오고 있었고 그녀의 뒤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따라붙어 있었다.그들은 하나같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계속 여시은을 말리고 있었다.“아가씨, 저희를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 대표님께서 외출 금지라고 하셨어요!”하지만 여시은은 그 말을 무시하고 곧장 여재훈에게 달려갔다.“아빠, 괜찮으세요? 왜 바닥에 주저앉아 계세요? 어머, 손은 왜 유리병에 베이셨어요?”“빨리! 의사 불러요!”여시은은 뒤쪽에 있던 사람들을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그러자 경호원들과 여재훈의 비서는 놀라서 급히 달려왔고 한쪽에서는 여재훈을 부축하고 한쪽에서는 출혈을 막았다.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의사를 찾으러 뛰어갔고 그렇게 복도는 곧 조용해졌다.“고은서, 왜 우리 아빠는 너만 만나면 다치는 거야? 너 일부러 그런 거지!”여시은은 안으로 따라 들어가지 않고 고은서에게 화가 난 얼굴로 소리쳤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고은서가 입을 열기도 전에 곽승재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여시은 씨, 아무 말이나 막 하지 마세요.”“어떻게 상관이 없나요?”여시은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채 되물었다.“겉으로는 그렇게 대범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절 얼마나 미워하는지 모른다고요! 저한텐 손도 못 대니까 아빠를 다치게 해서 제 마음을 아프게 하려는 거예요!”“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곽승재가 분노를 억누른 채 차갑게 말했다.“곽승재, 됐어. 신경 쓰지 마.”옆에서 지켜보던 고은서가 폭발 직전인 곽승재를 말렸다. 그녀는 여재훈을 고의로 다치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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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2화

고은서가 계속 말했다.“여재훈 쪽 사람들이 그 소년의 보호자를 찾았어. 경찰이 그들과 함께 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받았고.”“난 그냥 그때 잠깐 차를 멈췄을 뿐이야. 만약 이게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면... 딱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어. 누군가 날 따라다니고 있었다는 거. 그래서 그 타이밍에 나타난 거지.”고은서는 당시 상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드론은 고준석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들었고 그게 우연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웠다.“혹시 C 선생이 우리가 해찬시에서 가해자를 찾아낸 걸 알고 우리를 도발하거나 경고하려고 이런 일을 벌인 건 아닐까?”고은서의 말에 곽승재의 표정은 차갑게 굳었다. 사실 그도 그런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사람을 시켜서 더 깊게 조사해 볼게.”이후 고은서와 곽승재는 경찰서를 찾았다. 그 드론을 조종했던 소년은 겨우 열여섯이 되지 않은 미성년자였고 자신이 조종한 드론이 사고를 일으킨 걸 알고는 겁에 질려 있었다.그리고 그의 보호자는 고은서에게 연신 사과를 했다.하지만 고은서의 직감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들은 관련이 없다고. 아마도 정말 우연히 엮인 것일 뿐이었다.경찰서를 나서자마자 고은서의 휴대전화로 고준석의 전화가 걸려 왔고 그는 여재훈의 부상에 대해 물었다.그래서 고은서는 사실대로 대답했다.“어깨에 베인 상처가 있고요, 그 외에도 깨진 유리 조각에 맞아서 멍이 든 데가 있어요.”“은서야, 너 여 대표하고 많이 친하니? 왜 여 대표가 그렇게까지 너를 도와주는 거야?”고준석은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그가 보기엔 여재훈이 고은서를 꽤 아끼는 듯 보였다.고씨 가문 어른들이 고은서를 아끼는 것보다도 더.“네, 저희는 꽤 잘 통하는 편이에요. 원래는 그분 딸을 통해 알게 됐고 그래서 자주 왕래했었죠. 나중에 그 딸과 약간의 갈등이 생긴 후엔 연락을 거의 안 했고요. 오늘 만난 것도 정말 우연이에요.”“고은서, 예전에 네 회사에서 투자한 어떤 게임이 표절당해서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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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3화

곽승재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고준석이 이미 그날 오후에 한 번 물은 바 있었다.그러니 고은서는 굳이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네. 승재 오빠도 저희가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병원까지 찾아왔어요. 또 저랑 같이 경찰서도 다녀왔고요.”고준석은 별다른 농담도, 평가도 하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걔가 너한테 참 많이 힘이 되어줬구나. 다음에 꼭 승재 데리고 집에 한 번 들러. 외할아버지가 밥이라도 대접해야지. 고마움은 표현해야 하니까.”할아버지의 말에 고은서는 순순히 대답했다.“네. 그럴게요.”고은서가 고준석과 통화를 하는 동안, 곽승재는 바로 옆에 앉아 있었기에 대부분의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평소 같았으면 그 말을 들은 곽승재는 분명 기뻐서 바로 날짜를 잡자고 했을 테지만 오늘은 무슨 이유인지 말이 없었다.함께 집으로 올라가자 이미숙이 저녁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고은서는 곽승재에게 함께 식사하자고 권했지만 그는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방으로 들어갔다.그러자 이미숙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아니, 밥 먹을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쁜 건가요?”사실 고은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곽승재가 자신의 일로 일정을 미뤘을 수도 있으니 지금은 밀린 일을 처리하러 간 걸 거라고 생각했다.방으로 들어간 곽승재는 곧장 주민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의 표정은 싸늘했고 수화기 너머 상대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이틀 뒤, 고은서의 어머니 기일.며칠 전 만들었던 향수는 그녀가 늘 가방에 넣고 다니던 것이었다.하지만 병원에서 실수로 깨뜨린 탓에 고은서는 다시 한 병을 새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어머니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꽃도 구입했다.그날, 고은서는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기사는 차 안에서 기다렸고 경호원이 그녀를 따라 함께 들어갔다.고은서가 묘지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멀리서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여재훈.그는 어떤 수행원도 없이 혼자였다. 마치 고은서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묘지 입구에 조용히 서 있었다.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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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4화

곽승재의 눈빛에는 다급함이 서려 있었다.그는 심지어 여재훈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은서야, 잠깐만 기다려줘. 나중에 설명해 줄게!”말을 마친 곽승재는 여재훈을 반쯤 부축하다시피 하며 앞쪽으로 급히 데려갔다.그리고 고은서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바라보았다.여재훈을 떠올리면 마음속에 자꾸만 이상한 감정이 올라왔다.그의 표정에는 단지 긴장과 격앙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어딘가 슬픔도 묻어 있었다.조금 전, 여재훈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는데 말이다.정말 어머니와 아는 사이였던 걸까?곽승재가 이야기하는 일이 중요해 보이는 데다 금방 끝날 일도 아닐 것 같아 고은서는 그들을 기다리지 않고 혼자 어머니의 묘비 앞으로 향했다.그리고 막 도착했을 때, 고은서는 무언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묘비는 이미 말끔히 청소되어 있었고 어머니의 사진은 반짝일 만큼 닦여 있었다.심지어 묘비 앞에는 고은서가 들고 온 꽃과 같은 종류의 꽃다발이 놓여 있었는데 모두 어머니가 생전에 좋아하던 꽃들이었다.‘누가 다녀간 거지?’고준석은 아직 다리가 완쾌되지 않아 집에 있고 고은혜는 그런 그를 간병 중이라 둘 다 오지 못했다.그리고 이모와 이모부는 며칠 전 이웃 지방으로 여행을 떠난 상태였다.그렇다면 대체 누가 다녀간 걸까?‘좀 잇다가 관리소 가서 물어봐야겠다.’고은서는 자신이 가져온 꽃과 향수를 내려놓고 어머니의 묘 앞에서 조용히 절을 올렸다.그리고 오래도록 마음을 다해 인사를 드렸다.고은서가 이제 자리를 뜨려던 찰나, 곽승재와 여재훈이 함께 그녀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여재훈의 눈가는 약간 붉어져 있었는데 마치 심한 내적 갈등을 겪은 듯한 흔적이 엿보였다.아까보다는 한층 억누른 표정이었지만 여전히 감정이 가라앉지 않아 보였다.이내 곽승재가 고은서 옆으로 다가와 얼른 사과했다.“은서야, 미안해. 아까 회사 사이 협력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서 꼭 여 대표님이 직접 전화를 해야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었어.”고은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괜찮아. 일이 먼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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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5화

고은서의 물음에 곽승재는 헛기침하며 얼버무렸다.“미안, 내가 말이 좀 앞섰네.”그리고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여 대표님도 금방 내려오실 테니까 우리 차에서 기다리자.”그는 고은서에게 조심스레 차 문을 열어주었고 그녀는 말없이 곽승재를 바라봤다.곧이어 여재훈도 묘지에서 내려와 차에 올랐다.차에 탔을 때, 그의 표정은 아까보다 한결 차분해져 있었다.운전은 곽승재의 기사님이 맡았기에 그는 자발적으로 조수석에 앉았다.자연스럽게 고은서는 여재훈과 함께 뒷좌석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잠깐의 침묵 끝에 고은서가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제 어머니와 많이 친하셨나요? 어떻게 알게 되신 거죠?”대답하는 여재훈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슬픔이 배어 있었다.“그 이야기는... 좀 깁니다.”그때, 곽승재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은서야, 대표님은 좀 쉬셔야 할 것 같아. 이 근처에 조용하고 괜찮은 찻집이 있어. 거기 가서 천천히 얘기하자.”고은서가 바라본 여재훈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그 말대로 차에서 긴 대화를 나누기보단 편안한 곳에서 듣는 게 좋을 듯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 묻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곽승재가 말한 조용한 찻집에 도착했다.세 사람은 2층에 있는 비교적 한산한 룸으로 들어갔다.찻집 직원은 부르지 않았고 곽승재가 직접 정성스럽게 공부차를 우려내기 시작했다.조금씩 안정을 찾은 여재훈은 고은서가 먼저 묻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제가 고은서 씨 어머니를 알았던 건 사실입니다, 제게는 아주 중요한 사람의... 친구였거든요.”그 말을 듣자 고은서는 안도하면서도 어딘가 묘한 허전함을 느꼈다.여재훈은 목이 잠긴 듯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며칠 전 고은서 씨가 뿌린 향수 냄새를 맡고 이상할 정도로 익숙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걸 계기로 당신 어머니에 대해 조금씩 알아봤고 결국 오늘 이렇게 오게 된 거죠. 오래전 인연이기도 하고... 그래서 마지막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습니다.”고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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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6화

“하지만... 엄마는 과거 이야기를 거의 안 해주셨어요. 친구 얘기는 물론, 누구랑 가까웠는지도 전혀 몰라요.”고은서는 솔직하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여재훈은 더 상심한 듯했지만 애써 정신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그럴 수 있죠. 제가 너무 경솔했습니다. 소식을 듣고 너무 급히 당신을 찾았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고은서 씨는 당연히 아무것도 모를 수도 있었던 건데...”곽승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여재훈을 살폈다.“대표님, 혹시 며칠 전 다친 데가 다시 아픈 건 아니세요? 운전기사한테 미리 말씀드려서 모셔다드릴게요. 좀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여재훈은 고은서를 아련히 한 번 더 바라보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곽승재는 여재훈을 걱정스레 부축하며 아래층까지 배웅했다.두 사람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고은서는 마음속 어딘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뭔가 이상했다.여재훈은 처음에 그렇게 격앙된 반응을 보였는데 곽승재가 잠시 얘기한 뒤부터는 너무 갑자기 차분해졌다.정말로 회사 일이 급했으면 곽승재 역시 자리를 떴어야 맞다.하지만 그들은 자리를 지켰고 아무 급박한 일도 없었다.‘곽승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걸까? 그 말이 여재훈 씨를 저렇게 금세 진정시킬 만큼 중요한 얘기였을까?’그러나 고은서는 더 생각할 틈도 없이 박지연에게서 걸려 온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온승준 씨가 교통사고로 다쳤어. 은서야, 그 사람이 너한테 부탁 좀 하고 싶대.”박지연의 목소리는 다급했다.“온승준 씨? 많이 다쳤어?”고은서는 놀라 되물었다.“운전 중에 정신을 못 차렸는지 다리 난간을 들이받았대. 차 앞부분이 완전히 찌그러졌다고 하는데 상태가 꽤 심각한 것 같아.”“근데 온승준 씨가 왜 너한테 부탁한 거야? 그 분이 원한 거야?”고은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러자 박지연이 설명했다.“그 사람... 지금 의식이 거의 없대.의사가 말하길 생존하려는 의지가 너무 낮아서 스스로 깨어나려 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대. 그래서 널 찾아가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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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7화

고은서는 조수연에 대한 혐오감이 한층 더 깊어졌다.“결혼 생활에서 네가 겪은 반 이상의 고통도 다 어머니 때문이었잖아. 그런데 직접 고른 며느리인 유혜린 씨로 바꿨는데도 저래? 정말... 그런 엄마 만나서 산 온승준 씨가 불쌍하다!”고은서가 불만을 토로했고 박지연은 그에 비해 한결 담담했다.“어머니는 원래 강한 스타일이었어. 남편도, 아들도 다 잘나고 다들 자기 말 잘 듣는다고 자만했지. 아마 자기 인생에서 승자인 줄 알고 자존심도 강했을 거야. 근데 유혜린 씨한테 당한 건 확실히 속상하고 불만스러운 게 당연한 일이지. 근데 그게 결국 온승준 씨한테까지 피해를 준 건... 예상 밖이었어.”고은서는 온승준이 박지연에게 준 상처는 분명 미웠지만 그의 사고 소식엔 어딘가 동정심도 느껴졌다.두 사람의 대화는 어느새 중환자실 복도까지 이어졌고 온승준 부모님은 복도 밖 의자에 앉아 있었다.지난번 만났을 때보다 온범준은 훨씬 쇠약해 보였고 예전 교수님 때의 그 고고하고 당당한 기운은 온데간데없었다.조수연은 더욱 초췌했다.머리는 흐트러지고 안색은 창백했다.아마 의사들에게 애원해서 그런지 바지엔 얼룩도 있었고 도저히 교수 부인의 고상한 위엄은 찾아볼 수 없었다.박지연과 고은서를 발견한 온범준이 먼저 일어나 맞이했다.그는 허리를 굽히고 휘청거리며 다가왔고 목소리는 거칠고 죄책감으로 가득했다.“지연아,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지연아.”박지연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조수연이 마치 구세주라도 본 듯 눈에 희망이 맺혔다.“지연아, 제발 승준이 좀 살려줘. 다 내 잘못이었어. 나 이제 내가 잘못한 거 다 알았어.”조수연의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고 목소리는 점점 떨렸다.“승준이가 깨어나는 건 너만이 도와줄 수 있어. 만약 네가 승준이를 깨울 수만 있다면 남은 내 인생은 너를 위해 무엇이든 할게.”말하던 조수연이 박지연에게 무릎을 꿇으려 했으나 박지연이 재빨리 막았다.“그럴 필요 없어요. 전 오늘 온승준 씨를 보러 온 거예요. 하지만 제가 무슨 도움을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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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8화

이후 의사들이 들어와 온승준의 상태를 점검했고 고은서와 박지연은 함께 병실 밖으로 나왔다.온범준 부부는 안에서 상황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물론 아들의 반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이는 좋은 징조였다.조수연이 먼저 울면서 박지연에게 감사 인사를 했고 이후에는 하늘에 무릎을 꿇고 감사의 절을 올렸다.온범준 역시 박지연에게 감사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는 원래 굽었던 허리를 아들의 상태가 나아지면서 조금 펴고 늙은 얼굴에는 감사함과 깊은 죄책감이 뒤섞여 있었다.“지연아, 우리가 너한테 너무 미안해. 모두 내 잘못이야. 집안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가족 관계도 잘 처리하지 못했어.”고은서는 온범준의 말이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박지연에게 사죄하고 있었다.“이미 지나간 일은 말하지 않아도 돼요. 온승준 씨가 반응을 보인 건 저 혼자 때문은 아니에요. 그 사람 자체가 워낙 강인한 사람이니까요.”박지연이 차분하게 대답했다.그리고 박지연의 말에 온범준은 더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그가 왜 예전에 박지연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자기 아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단정했는지 후회가 됐다.‘내 시야가 너무 좁았어.’박지연은 정 많고 의리 있는 사람이었다.온씨 가문에서 그렇게 많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에도 지금 온승준을 위해 병원까지 찾아왔으니 말이다.“지연아, 미안하다.”결국 온범준은 이 한마디를 반복할 수 없었다.불쌍한 사람도 미워할 구석은 있는 법이다.온승준의 부모님이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었다.병원을 떠난 후에도 박지연의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그래서 고은서도 최근 있었던 일을 박지연에게 말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에 박지연은 육현석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박지연은 병원에 오기 전 육현석에게 미리 알렸지만 그는 출장 중이라 함께하지 못했다.그래서 지금 걱정돼서 전화한 것이었다.고은서는 박지연이 통화하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을 느꼈고 저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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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9화

송민아는 고은서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생각했다.“MQ에서 전에 출시한 맞춤 향수 시리즈가 꽤 잘 나갔잖아. 이번 새 향수로 예열해서 관심 끄는 건 당연한 거야.”송민아가 말했다.“근데 그 몇몇 백화점 입점 자리가 얼마나 귀한지 너는 모를 거야. 보통 명품 브랜드들도 다 입점 못 하는데 어떻게 하필 MQ한테 먼저 제안이 와?”고은서는 분명 누군가 뒤에서 도와주고 있다고 느꼈다.이 정도 큰 규모에 이런 체면이면 일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요즘 곽현수가 또 미쳐서 곽승재한테 시비를 걸고 있으니 곽승재도 최근 여러 사건 조사하느라 바빠서 MQ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그러니 곽승재는 아닐 거다.사실 고은서 마음속에 희미한 답이 하나 있었다.바로 여재훈.하지만 이상한 점도 많았다.그날 묘지에서 본 이후, 여재훈은 연락 한번 없었고 만나자고도 하지 않았다.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걸까?자신이 옛 친구 딸이라서?“아, 걱정 좀 그만해! 전에 약속했잖아. 오늘 밤 다 같이 맛있게 먹으러 가자고. 빨리 준비해. 우리 이제 출발한다!”송민아는 최근 회사가 잘 나가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그럴수록 고은서에 대한 존경도 점점 커지고 늘 걱정거리를 달고 사는 그녀의 기분을 좀 풀어주고 싶었다.고은서는 집 근처 고급 호텔에 연회장을 예약해 놓았다.다들 신경 곤두세우고 고생했으니 한 번 제대로 보상해 줘야 했다.그래서 고은서는 복잡한 생각을 잠시 접고 다 함께 연회장으로 출발했다.호텔 로비는 화려하고 웅장했고 샹들리에는 몇 층 높이로 걸려 있었다.연회장으로 가는 길에 고은서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는데 송민준이 두 명의 양복 차림 남자와 함께 3층 어느 룸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송민아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오빠의 일정은 모른다고 했다.고은서는 송민준도 아마 여기서 접대를 받으러 왔다고 생각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송민준이 자신 사무실에 와서 ‘설명’을 하고 불쾌하게 헤어진 이후로 둘 사이에 오가는 연락은 전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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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0화

혹시 모를 사고가 걱정되어 고은서는 벽을 짚고 멈춰 섰다.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려던 찰나, 두 명의 웨이터로 보이는 사람들이 다가왔다.고은서가 그들의 의도를 알아채기도 전에 한 명이 재빠르게 다가와 입을 틀어막았고 다른 한 명은 그녀를 붙잡아 뒤쪽 계단으로 끌고 갔다.당황한 고은서는 전에 붙잡혔던 기억이 떠올라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그래서 힘을 아끼기 위해 가만히 누워 약에 취한 척했다.역시 두 사람은 금세 경계심을 풀었다.그들이 계단으로 내려가려 할 때, 고은서는 힘을 모아 한 남자에게 발길질을 하고 다른 한 명에게 주먹을 휘둘렀다.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허리를 굽히거나 얼굴을 감싸며 고통스러워했다.그 틈을 타 고은서는 문을 열고 연회장 쪽으로 달려가면서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앞에 있는 문에서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아마도 그들의 동료인 듯했다.고은서는 생각할 겨를 없이 전력을 다해 계단 위쪽으로 뛰기 시작했다.뒤따르던 사람들은 고은서가 약에 취한 척 속였다는 것을 알아채고 분노하며 욕설을 퍼붓고 바로 뒤쫓아 왔다.머리는 어지럽고 시야도 흐릿했지만 고은서는 멈추지 않았다.자신의 혀를 깨물며 정신을 붙잡고 속력을 내어 계단을 힘껏 올라갔다.곧 3층에 도착했고 다행히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3층은 더 조용했고 복도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이내 뒤에서 쫓아오던 이들도 문을 열고 들어왔다.고은서는 더 이상 소리칠 힘도 없었고 점점 눈앞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그럼에도 최대한 의지를 모아 보이는 방으로 달려갔다.붙잡히려는 순간, 고은서는 그 방문을 열었고 안에서 송민준을 본 순간 살려달라고 외쳤다.그리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힘없이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의식을 잃은 동안, 고은서는 뒤에서 들려오는 쫓아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고 그들이 술 취한 척하며 데려가려는 변명을 하는 것도 들렸다.그 후 고은서의 의식은 흐릿해졌다.누군가 차가운 목소리로 심문했고 또 누군가는 허둥대며 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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