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죽기 전엔 못 놔줘: Bab 1931 - Bab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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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1화

“누나 말 들어. 박민호가 또 가격을 올리면 절대 따라가지 마. 내가 보기에 걔, 애초에 그만한 돈도 없어.”최현아는 눈매를 곧추세운 채 심홍석을 바라보며 단언했다.그녀는 누구보다 박민호라는 인물을 잘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도 실속은 없고, 입만 살아서 늘 허풍을 떠는 타입. 어릴 적부터 뭘 하든 누나 박민정이나 박씨 가문의 이름 덕에 겨우겨우 버텨온 인생이었다. 박민호가 스스로 뭔가를 이뤄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만약 박민호가 낙찰은 받았는데 돈을 못 내게 되면, 결국 누나 박민정이 나서서 수습하게 될 거라는 걸.그리고 그게 바로 그녀가 기대한 시나리오였다. 박민정이 또 한 번 동생 뒤치다꺼리를 해주면서 결국 둘 다 한 방 먹게 되는 그림.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말없이 자리에 앉아 있던 박민정이 천천히 일어서더니, 입찰하려던 박민호 앞으로 다가가 가로막았다. 그리고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지금 뭐 하려고 하는 거야?”민호는 잠시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다.“누나... 여기 왜 왔어?”“너 막으려고.”박민정의 대답은 간결했지만 단호했다.사실 그녀도 처음에는 박민호 일에 굳이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는 순간, 상황이 바뀌었다.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이 자신이 박민호의 누나라는 걸 알고 있었고, 만약 그가 경솔하게 고가 낙찰을 받아놓고 대금을 내지 못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자신에게로 향하게 될 터였다.그리고 자신이 그걸 외면한다면, 상류층 사이에 ‘박민정이 동생 일도 책임 못 진다'는 소문이 도는 건 시간문제였다. 지금까지 쌓아온 인맥과 이미지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었다.박민정에게 오늘 이 경매는 단순한 자선 행사가 아니었다. 진주시 상류층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한 중요한 자리였고, 이런 자리에서 자신이 동생 뒷수습이나 해주는 누나로 낙인찍히는 건 최악이었다.하지만 박민호는 누나의 그런 속내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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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2화

최현아의 외삼촌 부부는 평소에도 그다지 너그러운 성격은 아니었다. 만약 그들이 자기 아들이 자선 경매에서 무려 80억 원짜리 물건을 덜컥 낙찰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분명 어이가 없어 화를 내고 말 것이었다.최현아는 주먹을 꼭 쥐며, 다짐하듯 말했다.“그냥 됐어... 남은 금액은 내가 줄게.”심홍석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그럼 고맙지, 누나.”최현아는 괜스레 코끝이 시큰해졌다. 빌려달라고 한 금액은 30억 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심홍석이 그 돈을 정말로 갚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건 단 하나.잠시 후 심홍석이 유주아와 무난히 인사만 나눠도 성공이라 생각하고 있었다.아니, 가능하다면 두 사람이 잘 이어져서 오늘 자신이 이렇게 큰돈을 쓰는 것이 적어도 헛되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렇게 첫 번째 경매품은 무려 8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에 낙찰됐다.그 여파로, 이후 출품된 경매품들은 몇억 원을 훌쩍 넘기고도 오히려 저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이번 경매는 본래 유주아의 부모가 상류층 자제들의 능력을 은근히 엿보고자 준비한 자리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상 이상의 수익까지 거두게 된 셈이었다.출품된 물품들의 낙찰가 중 일부만 자선 기부로 돌린다고 해도, 그 일부가 10%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익은 실로 어마어마했다.그리고 그 10%조차도 일반인들 눈엔 기가 막힌 액수였다.박민정은 자신에게 여유가 없다는 걸 강조라도 하듯,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어도 손을 들지 않았다.그녀 옆에 앉아 있던 박민호는 처음엔 박민정이 그냥 체면치레로 하는 말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그녀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한 듯했다.“누나, 앞으로는 제발 좀 너 자신 챙기고 살아. 네가 지엔 그룹 대표라는 사람이, 몇십억도 못 쥐고 있다니 말이 돼?”박민정은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났다.‘이 녀석은 아직도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지...’수십억 원이라는 돈이, 무슨 마트에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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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3화

“이런 말 드리는 게 다소 무례하다는 건 알지만... 저 개인적인 가정사 때문에, 제가 유주아 씨를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심홍석은 깊은 눈빛으로 유주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사실 유주아는 상류층 사이에서도 손에 꼽히는 미인인 데다, 말투나 몸짓에서도 명문가 출신 특유의 우아함이 묻어났다.만약 자신이 결혼한 몸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이런 여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혹시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마음에 안 드세요?”유주아는 의아한 듯 물었다. 오늘 경매장에서 그가 박민호와 함께 자신의 목걸이를 두고 경쟁한 걸 생각하면,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심홍석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고, 대신 낙찰받은 목걸이를 꺼내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제 사과의 의미로 받아주세요.”무려 80억 원이나 되는 고가의 목걸이를 아무 조건 없이 돌려준다니, 참으로 대범한 행동이었다.하지만 유주아는 그런 대범함에 휘둘릴 사람이 아니었다.“전 그런 선물 받을 이유가 없어요. 그리고 우리, 친구도 아니잖아요? 차라리 본인이 좋아하는 분께 선물하세요.”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거절했다.말을 마친 유주아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덧붙였다.“사실 저도 방금 말씀드리려 했어요. 전 연애할 마음도, 맞선으로 사람을 만날 생각도 없어요. 정략결혼이라는 게 가족들에겐 도움이 되겠지만, 정작 당사자 둘에겐 너무 불공평하잖아요.”유주아의 솔직한 말에, 심홍석은 놀라움 섞인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더는 목걸이를 억지로 권하지 않았다.그는 어찌 된 일인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그럼... 우리 친구로 지내는 건 어때요? 앞으로 사업적으로 마주할 일도 있을 텐데, 서로 도울 수도 있고요.”“좋아요. 그게 오히려 편할지도 모르겠네요.”유주아는 별다른 경계 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심홍석은 그녀의 환한 미소를 보며 이유 모를 감정을 느꼈다.그저 형식적인 자리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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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4화

심홍석은 한쪽에 서서 두 사람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하지만 연락처를 주고받는 장면을 보는 그의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불편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신사적인 태도로 둘을 바라볼 뿐이었다.박민호는 연락처를 받은 뒤 휴대폰을 내려놓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심홍석을 바라봤다.“이 분, 혹시 심 대표님 아니세요?”심홍석은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저를 아세요?”“어떻게 몰라요. 지난번 비즈니스 모임에서 사모님과 함께 계신 모습도 뵀는데요. 오늘은 사모님은 안 오셨나 봐요?”그 말에 심홍석의 얼굴이 잠시 굳더니 미묘하게 일그러졌다.그는 원래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만 기억하는 편이라서 박민호처럼 딱히 신경 쓸 필요 없는 인물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당연히 박민호에 대해 아는 정보도 거의 없었다.바로 옆에 서 있던 유주아는 놀란 듯한 표정으로 심홍석을 바라봤다.“홍석 씨, 결혼하신 거예요?”심홍석은 원래 유주아와 어느 정도 가까워진 후, 자신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 다음에야 결혼 사실을 털어놓을 생각이었다.하지만 박민호가 예상치 못하게 그 사실을 드러내 버리자, 더는 숨길 수 없게 되었다.결국 그는 조용히 인정했다.“네,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와는 갈등이 좀 있어서요. 오래 갈 사이는 아닌 것 같아요.”그리고는 유주아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그래서 아까도 말씀드린 거예요.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박민호는 속으로 헛웃음이 났다. 자신도 꽤나 얄밉게 굴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남자는 그보다 훨씬 더 뻔뻔해 보였다.“심 대표님, 제가 마지막으로 뵌 게 두 달 전쯤인데, 그땐 두 분 사이가 무척 좋아 보이시던데요? 가는 내내 웃으시고, 대화도 많이 나누시고요. 언제 그렇게 갈등이 생기셨어요?”심홍석은 깊게 숨을 들이쉰 뒤,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보여주기 위한 연기였을 뿐입니다.”“아, 그러셨군요. 꽤 피곤하셨겠어요.”박민호는 가시 돋힌 말투로 받아쳤다.두 사람 사이엔 팽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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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5화

심홍욱은 유주아가 박민호 편을 그렇게 들어줄 줄은 상상도 못 했다.지금껏 공들여 유주아 앞에서 쌓아온 이미지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심홍욱은 더는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그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유주아 씨, 그런 말씀까지야... 그냥 물어본 거예요. 행사도 끝났고, 저도 일이 좀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그 한마디를 남긴 채, 그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밖으로 나서자, 최현아가 급히 따라 나왔다.“홍욱아! 어떻게 됐어?”“망했지 뭐... 박민호가 다 망쳐놨어.”심홍욱은 한숨과 함께 씁쓸하게 대답했다.최현아가 눈이 휘둥그레서 물었다.“이젠 누나도 더 애쓸 필요 없어. 유주아가 내가 유부남이란 걸 알아버렸어. 지금쯤 나를 사기 결혼하려던 놈쯤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이제 가능성은 없어.”그 말을 내뱉고는 조용히 차에 올라탔다.최현아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서 있다가, 분노에 치를 떨며 발을 굴렀다.“진짜, 그 죽일 놈의 박민호...!”한편, 차 안에서, 심홍욱의 휴대폰이 진동했다.화면을 보니, 아내에게서 온 메시지였다.[홍욱 씨, 오늘 언제 들어와요?]말풍선 끝엔, 눈망울이 동그랗고 간절한 고양이 이모티콘 하나가 따라붙어 있었다.그 순간, 아내의 다정하고 포근한 얼굴이 떠올랐다.심홍욱은 손에 쥐고 있던 경매 낙찰 목걸이를 무심코 꼭 쥐었다.그는 잠시 눈을 감고 망설인 끝에, 그는 답장을 보냈다.[곧 들어갈게.]문자를 보내고 나서도, 이상하게 가슴 한구석이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무거워졌다.오늘에서야 그는 처음으로, 자신 안에 숨어 있던 어두운 마음을 똑바로 마주한 것이었다.그는 분명 아내를 사랑했다. 평범한 집안의 딸이었지만, 그 많은 반대를 뚫고 결국 자신이 선택해 함께한 여자였다.결혼 후 첫 3년은 정말 행복했다. 아이가 없어도, 둘이 함께하는 삶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느새 8년이 지났다. 그 시절의 설렘은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그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한다고 믿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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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6화

심홍석은 아내와 결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결혼 초반 몇 년 동안은 선물도 종종 주곤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이제 우리 사이에 그런 건 필요 없어.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당신이 알아서 사. 내가 결제해 줄게.”그는 그렇게 말하며, 선물 대신 실용적인 방식을 택했다.그러나 오늘, 그는 오랜만에 아내에게 목걸이를 선물했다.“여보, 이거 받아.”아내는 놀란 듯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여보, 고마워요. 너무 기뻐요. 이 선물 정말 마음에 들어요.”심홍석은 순간 몸을 굳혔다. 아내의 포옹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잠시 후, 그는 아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당신, 나 할 말 있어.”“무슨 일이에요?”“나, 이혼하고 싶어.”아내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공기는 한순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정신을 차린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목걸이를 그에게 돌려주었다.“난 이런 선물 안 받아도 상관없어요. 홍석 씨, 그런 농담 하지 마요...”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결혼 후, 둘은 큰 다툼 한 번 없었고, 이혼이라는 말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심홍석은 그녀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나는 아이를 갖고 싶어... 그리고 나랑 집안이 비슷한, 내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 당신, 이해해 줄 수 있어?”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목이 메어와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는 결혼 전, 부모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너희 둘은 배경이 너무 달라. 나중에 그 사람이 너를 외면하면 어쩌려고?”하지만 그녀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그럴 일 없어요. 홍석 씨는 날 평생 아껴줄 사람이에요.”실제로 심홍석은 결혼 후 아내에게 잘해줬고, 그녀가 불안하지 않도록 대부분의 재산을 그녀 명의로 넘겨줬다. 그녀는 비록 관리는 잘 못했지만, 심홍석의 배려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그와의 결혼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그러면서 언제부턴가, 그들 사이의 차이를 잊고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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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7화

박민호와 유주아가 나란히 걸어왔다.유주아는 박민정을 보자마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민정 언니!”박민호도 덩달아 입꼬리를 올렸다.“누나.”박민정의 표정에는 어색한 기색이 스쳤다. 그다지 반가울 리 없는 인물이 하나 섞여 있었으니까.“응.”그녀는 가볍게 인사만 건네고 바로 물었다.“둘이 언제부터 아는 사이야?”“방금 막요.”유주아가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민호 씨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요. 아까 완전 겉만 번지르르한 사기꾼한테 제대로 당할 뻔했거든요.”“... 사기꾼?”박민정은 잠시 어리둥절했다.‘민호가 사람을 도와줬다고?’유주아는 조금 전 심홍욱과 있었던 일을 들려줬다.“그 사람이요, 아직 이혼도 안 한 주제에 자기 아내랑은 감정 없다느니 뭐니... 핑계 대면서 저랑 맞선 보겠다고 하더라니까요.”결혼은커녕 연애할 자격조차 없는 남자가,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는 얘기였다.박민정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듣고 보니, 박민호가 정말 드물게 제 몫을 한 셈이었다.이번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렇다고 박민호에 대한 신뢰까지 생긴 건 아니었다.박민정은 말해주고 싶었다. 자기 동생이라고 해도, 박민호는 그 사기꾼 못지않게 위험한 사람이라고. 아니, 오히려 속내가 다 들여다보일 만큼 뻔뻔한 쓰레기라고.과거 박민호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던 시절, 단지 돈 몇 푼에 박민정을 팔아넘기려 했던 인간이다.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고?그녀는 만약 유주아가 그와 결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다음은 정말 상상도 하기 싫었다.“누나, 예전에 누나가 주아 도와준 적 있다면서? 그 얘기 왜 나한텐 말 안 했어? 역시 우리 누나라니까.”박민호가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박민정의 표정이 더 굳었다.이제 막 알게 됐을 뿐인데, 벌써 ‘주아’라고 부르기 시작하다니...그녀는 두 사람 사이가 얼마나 빠르게 가까워졌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그래. 주아 씨도 도와주고... 이번엔 잘했네.”말은 그렇게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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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8화

박민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유주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주아 씨, 혹시 전통극에 관심 있으세요? 친구가 표를 두 장 줬는데, 내일 시간 되시면 함께 보러 가실래요?]박민호는 유주아에 대해 미리 조사해둔 게 있었다. 다른 여자들과는 다르게, 유주아는 전통극이나 공연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유주아는 메시지를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며칠 전 박민정 덕분에 무사히 넘어갔던 일과 박민호가 오늘 자기편을 들어주며 나섰던 것이 떠올랐다.그녀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좋아요. 내일 봐요.]답장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는 심홍욱이었다.“유주아 씨.”“심홍욱 씨? 무슨 일이시죠?”예상치 못한 전화였다.“제가... 사과드리려고요.”그는 한참 말을 고르다 조심스럽게 말했다.“오늘 유주아 씨가 해주신 말, 생각 많이 해봤습니다. 제가 너무 경솔했더라고요. 그래서... 아내에게 다 털어놓고 솔직하게 얘기했습니다.”유주아는 멍해졌다.“혹시 아내 분이랑...”그 뒷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하지만 심홍욱은 오히려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네.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앞으로는 정말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살아보고 싶어서요.”유주아는 그 말을 듣고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마음속 깊은 죄책감이 밀려왔다.“심홍욱 씨, 저는 그 말씀을 드릴 때... 두 분을 갈라놓으려고 한 게 아니에요. 단지 동시에 두 사람을 기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알고 있어요. 그래도 덕분에 제가 똑바로 생각할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그의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웠다.‘고맙다니…’유주아는 순간, 자신이 남의 가정을 무너뜨린 사람처럼 느껴졌다.심홍욱의 아내는 지금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괴로울까...그녀는 말을 잇지 못한 채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늦은 시간에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요. 또 연락할게요.”그는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유주아는 한참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자신이 한 말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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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9화

“제가 계산하겠다고 했잖아요?”유주아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박민호를 바라봤다.“우리가 처음으로 같이 밥 먹는데, 어떻게 여자가 계산하게 둘 수 있어요?”박민호는 부드럽게 웃으며 신사적인 태도로 말했다.“하지만...”유주아가 더 말하려던 찰나, 박민호가 말을 잘랐다.“다음에요. 다음엔 주아 씨가 저한테 사 주세요. 괜찮죠?”박민호는 유주아 같은 스타일의 여자는 절대 남의 호의를 그냥 받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역시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아요. 다음엔 꼭 제가 살게요.”“그래요.”박민호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녀의 이 약속은, 다시 만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명분이 되어줬다.하지만 유주아는 그런 계산 따윈 전혀 없었다. 처음부터 박민호에게 특별한 경계심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그렇게 두 사람은 두 사람은 함께 전통극을 보러 갔다.박민호는 사실 그런 공연에 아무런 흥미도 없었지만, 그걸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그녀 옆에 앉아 있었다.공연이 끝났을 때는 이미 밤 열 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유주아는 어느새 박민호가 편하게 느껴졌고, 어젯밤 심홍석이 했던 말까지 그에게 털어놓았다.남자의 마음은 남자가 안다고, 박민호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주아 씨, 그 사람 말에 속아 넘어가지 마요.”“응? 왜요?”“그건 그냥 주아 씨 죄책감을 자극하려는 거예요. 이혼 이유를 주아 씨 탓으로 돌리려는 거죠. 속이 너무 뻔해요.”박민호는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심홍석은 분명 유주아에게 마음이 있고, 머지않아 분명히 다시 접근하려 할 거라고.그 생각이 들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를 덮쳤다.지금 자신의 상황은 빚에 허덕이는 처지고, 심홍석은 회사도 잘 운영하고 있고, 집안 배경도 탄탄했다. 그런 그와 자신이 상대가 되지 않을 게 뻔했다.그는 마음속 깊이 위기감을 느꼈다.“민호 씨 말 듣고 보니까 정말 그러네요... 저 어젯밤 그 얘기 생각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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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0화

유주아는 술을 잘 마시지 못했다.평소에도 거의 입에 대지 않던 터라, 몇 잔만 마셔도 금세 얼굴이 붉어지고 눈빛이 흐려졌다.오늘도 몇 잔을 마시고 나니, 이미 취기가 올라와 있었다.그녀는 부모님이 끊임없이 재촉하던 결혼 이야기가 떠올랐고, 얼마 전에는 심홍원과의 억지 맞선 때문에 봉변을 당할 뻔한 일까지 생각나 씁쓸함이 가슴을 채웠다.“민호 씨, 아세요? 요즘 세상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왜 엄마 아빠는 자꾸 결혼하라고만 하는 걸까요...”유주아는 목이 멘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박민호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레 손을 잡았다.“부모님 마음이야 다 비슷하죠.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저 슬픈 거 아니에요. 그냥 이해가 안 돼서요. 저 혼자도 괜찮은데 굳이 결혼을 왜 해야 하죠? 아이가 갖고 싶다면 요즘은 시험관도 있잖아요.”유주아는 코끝을 훌쩍이며 말을 이었다.“엄마 아빠는 아직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뉴스도 안 보나 봐요. 돈이나 재산 때문에 다치거나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민호의 손을 빼냈다.“민호 씨, 우리 좋은 친구잖아요. 그렇죠? 혹시 저한테 마음 있는 건 아니죠? 저 진짜 결혼 같은 건 생각 없어요.”유주아는 갑자기 진지한 눈빛으로 박민호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물었다.박민호의 얼굴엔 순간 당황하는 기색이 있었지만, 술에 취한 유주아는 눈치채지 못했다.“왜 대답 안 해요? 말 좀 해봐요. 혹시 진짜 나한테 마음 있는 거면, 진심으로 말해두지만, 그만두는 게 좋아요. 전 정말, 누구 인생을 낭비하게 만들고 싶지 않거든요.”하지만 유주아는 너무 순진했다.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이 선한 의도로 다가오는 건 아니니까...박민호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주아 씨, 술에 취하신 것 같네요. 전 당연히 주아 씨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어요.”그 말을 들은 유주아는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나 안 취했어요~ 지금 완전 멀쩡하거든요! 우리 계속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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