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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죽기 전엔 못 놔줘: Chapter 2121 - Chapter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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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1화

유주아는 강재민을 여러 번 마주친 뒤로, 그 흥미로운 사람을 기억하게 되었다.강재민은 그녀에게 아첨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는 드문 직원이었고 외모도 제법 준수했다.유주아는 사람을 시켜 그의 신상을 알아보기도 했다. 알고 보니, 강재민에게는 부유한 여자들의 관심이 몇 번이나 쏠린 적이 있었다.그 여자들 역시 각자 매력을 갖춘 인물들이었지만, 그는 그 모든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만약 그중 단 하나라도 받아들였더라면, 이렇게 고된 일을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그 무렵, 제우스 클럽에서 강재민은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그는 문가에 낯익은 실루엣이 서 있는 걸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인물은 다름 아닌 박민호였다.지금이야 그는 최민아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결심했지만, 여전히 그날 강재민이 자신의 일을 망쳐놓은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박민호는 원한을 반드시 갚는 성미였다.그는 안으로 들어서며 곁의 직원을 불러 강재민을 가리켰다.“저 직원 불러 와요.”지시를 받은 직원은 곧장 강재민에게 다가왔다.“재민아, 조심해. 저 싸가지 없는 인간 또 왔어. 이번엔 너한테 시비 걸려고 작정하고 온 것 같아.”그는 조용히 귀띔했다.강재민은 동료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잔을 든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박민호가 서 있었다.강재민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그러자 동료가 다시 속삭였다.“그냥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도망치는 건 어때?”“잘못한 게 없는데 왜 도망쳐.”강재민은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박민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박민호는 그가 정말로 다가오는 걸 보고 조금 의외라는 듯했지만, 눈빛에는 여전히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손님,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강재민은 그의 앞에 멈춰 서서 공손히 물었다.박민호는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잔을 흔들며 남은 술을 돌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손목에 힘을 주더니 잔 안의 술을 강재민의 얼굴에 들이부었다.강재민은 피할 틈도 없이 얼굴에 술을 뒤집어썼고, 박민호는 비웃듯 입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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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2화

박민호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수군거림을 듣고서야, 더는 강재민을 괴롭히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그는 강재민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지난번 일은 그냥 없던 걸로 하자. 앞으로 사람 상대할 땐 눈치 좀 챙기고, 이번 일은 제대로 교훈 삼아.”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피 묻은 깨진 술병을 바닥에 내던졌다.더 머물 수 없겠다고 판단한 박민호는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가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사람을 때려놓고 그냥 가려고요?”맑고 단단한 목소리가 그의 정면에서 울려 퍼졌다. 그제야 박민호는 자신 앞에 유주아가 서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주아...?”그러자 유주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박민호 씨, 절 유주아 씨라고 부르셔야죠. 우리 그렇게 친한 사이 아니잖아요.”예전엔 박민호가 자신에게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던 유주아였다.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박민호가 강재민을 폭행한 건 지난번 일을 망쳤기 때문이었다.박민호는 설마 유주아가 이 장면을 직접 보게 될 줄은, 그리고 강재민 편을 들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주아... 아니, 주아 씨. 이건 그냥 오해예요. 전부 다 오해라고요.”“오해라고요?”유주아가 되물었다.“그렇게 사람을 때릴 만큼의 오해가 세상에 어딨죠?”박민호는 진짜 이유를 도저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주아 씨, 이건 제 개인적인 문제니까 굳이 관여하실 필요는 없어요.”그 말을 들은 유주아는 한 걸음 더 나아가며 단호히 말했다.“당신 일은 나랑 상관없어요. 하지만 그 일이 제 친구한테 피해를 줬다면 얘기가 다르죠.”‘친구?’그 말을 들은 강재민은 유주아의 뒤에 서서 순간 얼어붙었다. 그러고는 믿기지 않는 듯,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유주아는 이어서 또렷이 말했다.“강재민 씨는 제 친구예요. 그리고 방금 당신은 제 눈앞에서 제 친구를 때렸죠. 제가 참견 안 할 이유가 있을까요?”박민호는 도무지 납득이 안 된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지금 이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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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3화

제우스 클럽 안.강재민은 유주아의 등 뒤에서, 한 손으로 이마 상처를 누른 채 멍하니 서 있었다.유주아는 뒤돌아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가요, 병원부터 가서 치료받아요.”하지만 강재민은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별거 아니에요.”유주아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머리가 터졌는데, 그게 어떻게 별거 아니에요?”그녀는 말하면서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그의 앞에 내밀었다.“자, 이거로 닦아요.”강재민은 그녀의 가늘고 하얀 손끝을 한참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린 듯 휴지를 받았다.“...감사합니다.”“천만에요.”유주아는 밝게 미소 지었다.이번 일을 계기로 그가 더는 자신을 밀어내지 않길 바랐지만, 강재민은 대충 피를 닦고는 이내 돌아섰다.“일하러 가야 해요.”그 한마디만 남기고 걸음을 옮기려 했다.유주아는 다급히 그를 불러세웠다.“이 상태로 일한다고요? 그냥 쉬어요.”강재민은 발걸음을 멈췄다.“안 돼요. 일해야 해요. 돈 벌어야 하니까요.”“돈이 그렇게 중요해요? 내가 줄게요.”유주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녀에게 있어 강재민이 힘들게 버는 돈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그 순간 강재민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고 짙은 눈썹 사이로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그의 눈빛에 유주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그녀는 급히 해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그냥... 진심으로 고마워서요.”“필요 없어요.”짧고 단호한 한마디였다. 그리고 그 뒤로 보인 것은 사라지는 강재민의 뒷모습뿐이었다.왜인지 유주아는 마음이 텅 빈 것 같았다.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이 후회되기 시작했다.‘이 사람은 자존심이 너무 강해. 누가 뭘 준다고 해도 쉽게 받을 사람이 아니었어...’“주아 씨, 강재민 그 녀석은 진짜 눈치도 없고 사람 마음도 몰라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여기 잘생긴 남자들 많잖아요.”클럽 매니저가 웃으며 다가와 말했다.유주아는 그 말에 싸늘한 눈빛을 보내며 단칼에 잘랐다.“필요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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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4화

[주아 씨, 그래도 이 일은 재민 씨한테 미리 말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혹시라도 변수 생기면 어쩌려고요.]박민정이 걱정 가득한 말투로 조언하자 유주아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네, 그럴게요.]그 뒤로 박민정은 휴대폰을 내려두고 욕실로 들어가 세면을 시작했다.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자, 눈에 들어온 건 유남준이 두 아이와 함께 노는 모습이었다.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는 풍경은 보기만 해도 다정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박민정의 가슴속엔 은은한 행복감이 번졌다.“엄마! 드디어 씻고 나오셨네요!”박윤우는 박민정을 보자마자 구세주라도 만난 듯,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그가 일어서는 걸 보고서야 박민정은 깨달았다. 아까 그 평화로워 보였던 장면은 사실 노는 게 아니었다. 유남준이 박윤우의 숙제를 감독하고 있었던 것이다.박윤우는 곧장 박민정을 껴안으며 외쳤다.“엄마, 나 너무 힘들었어요 엉엉엉...”박민정이 달래기도 전에, 유남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박윤우. 두 문제나 틀린 거 몰랐어?”박윤우는 깜짝 놀라 움찔했다.그때 옆에서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있던 박예찬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윤우야, 그런 쉬운 이차방정식을 틀리면 어떡해.”박윤우는 입을 삐죽이며 울먹였다.“다들 악마야. 엉엉엉...”울고는 싶지만 정작 눈물은 나오지 않는지, 목소리만 커졌다.그 모습을 본 박민정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말했다.“윤우야, 울지 마. 못 풀어도 괜찮아. 아직 네가 이해하기엔 조금 이른 개념일 수도 있어.”그 말을 들은 박윤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아빠, 들으셨죠? 엄마가 그러셨어요! 난 아직 그런 어려운 문제 풀 나이가 아니래요.”그리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형은 달라요. 형은 천재고, 난 그냥 천재 안 될래요.”박민정은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그녀는 박윤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천재가 아니어도 괜찮아. 건강하게 잘 크기만 하면 돼.”엄마가 되고 나서 박민정은 새삼 깨달았다.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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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5화

다음 날 아침, 박민정은 휴대폰 알림 소리에 잠에서 깼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화면을 켜보니, 친구들과 함께 있는 단톡방에 메시지가 와 있었다.보낸 사람은 유주아였다.[민정 언니, 그때 그냥 언니 말 들을 걸 그랬어요. 괜히 나섰다가 재민 씨한테 한 소리 들었어요. 오지랖 부리지 말래요.][지금 너무 속상해요. 고맙단 말은 못 들을 망정 왜 욕을 먹어야 하죠?][내가 진짜 잘못한 걸까요?]메시지가 올라온 시각은 아침 여섯 시를 조금 넘긴 때였다. 세상은 아직 조용했고 대부분은 꿈속에 있을 시간이었다.박민정은 반쯤 감긴 눈으로 메시지를 읽다,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여 답장을 보냈다.[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데요?]머릿속에 얼핏 떠오르는 게 있었지만, 섣불리 말하긴 어려웠다.잠시 뒤, 유주아의 답장이 도착했다.[딱히 뭐라고 한 건 아닌데, 앞으로는 남 일에 끼어들지 말라네요. 그리고 자기 양부모한테 돈 주는 것도 이제 그만두래요.]메시지를 읽은 박민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곰곰이 정리를 마친 뒤, 다시 타이핑을 시작했다.[주아 씨, 혹시 이런 건 아닐까요? 주아 씨 이번에 양부모님께 돈을 드렸잖아요. 그래서 당장은 조용할 수 있어요. 근데 앞으로도 그분들이 계속 재민 씨를 찾는다면요?][이번에 돈을 받았으니, 다음엔 더 큰돈을 요구할 수도 있잖아요. 그때 재민 씨가 줄 수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그제야 유주아는 뭔가 깨달은 듯했다.[그 생각은 못 해봤어요...]두 사람이 이런 대화를 주고받고 있을 무렵, 단톡방에 설인하도 등장했다.[주아 씨, 혹시 그 강재민이라는 사람 좋아해요?]그 메시지를 본 유주아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녀는 급히 손가락을 놀려 답장을 보냈다.[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그 사람이 좀 신기해서, 궁금했던 것뿐이에요.][그래요? 그럼 내가 갖고 있는 강재민 씨 정보는 안 궁금하겠네요?]설인하는 일부러 아쉬운 표정의 이모티콘까지 덧붙였다.유주아는 급히 물었다.[뭔데요? 무슨 정보예요?][싫다면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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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6화

“이 일, 주아 부모님은 아셔?”유남준이 다시 물었다.“당연히 모르죠.”박민정은 단호하게 답했다.유남준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이 일은 너무 깊이 관여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그는 유주아 부모가 결혼을 계속 재촉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아 출신의 사위를 쉽게 받아들일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응, 나도 알아요.”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주아와는 그냥 친구일 뿐, 더 깊이 얽히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유남준은 그녀를 품에 꼭 안은 채, 좀 더 자자며 놓아주지 않았다.“조금만 더 자. 아직 이른 시간이야...”“잠 다 깼어요.”박민정은 그의 팔을 조심스럽게 떼어내며 말했다.“일하러 가야 해요.”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지엔 그룹을 잘 이끄는 일뿐이었다.유남준은 그녀가 기분 상할까 걱정되어, 억지로 붙잡지 않고 조용히 팔을 풀어주었다.박민정은 재빨리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생각해보면 예전엔 유남준이 이렇게 이불 속에서 뒹굴며 늦잠 자는 스타일인 줄 몰랐다.아직 집을 나서기도 전, 가정부가 청첩장을 들고 들어왔다.“사모님, 밖에 어떤 남자분이 자신을 사모님의 ‘동생’이라고 하며 이걸 전해주셨어요.”가정부는 얼마 전 새로 온 터라 박민호를 잘 몰랐다.박민정은 청첩장을 받아들고 펼쳐보았는데 과연, 박민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마워요.”그녀는 짧게 인사하고 날짜를 확인했다.결혼식은 모레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박민호에게서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누나! 청첩장 받았지?”“응, 받았어.”“모레 누나랑 매형 꼭 와야 돼. 기다릴게.”박민호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박민정은 담담히 대답했다.“나는 갈게. 근데 남준 씨는 일정이 있어서 확답은 못 해.”“아, 누나만 와도 좋아. 매형은 바쁘면 안 와도 돼.”박민호는 서운한 마음을 애써 감췄다.전화를 끊자마자, 마침 유남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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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7화

금세 모레가 되었다.박민정과 유남준은 예정대로 박민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박민정은 소박한 예식일 거라 생각했지만,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수많은 재계 인사들과 재력가들이 모여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왜 이렇게 사람이 많죠? 혹시 다른 사람도 여기서 결혼해요?”박민정은 의아한 듯 말했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호텔 앞으로 향했다. 그러자 호텔 지배인이 직접 나와 반겼다.“박 대표님, 유 대표님! 정말 와주셨군요!”“무슨 말씀이세요?”박민정이 눈썹을 찌푸리며 묻자 지배인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아, 박민호 씨가 두 분이 결혼식에 참석하신다고 하셔서요. 그래서 직접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그러며 공손하게 손짓했다.“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혹시라도 불편한 점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그 말을 듣는 순간, 박민정은 상황의 전모를 단번에 알아차렸다.박민호가 그녀와 유남준을, 이 자리에서 인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었다.“왜 굳이 당신까지 같이 오라고 했나 했어요. 뻔뻔하기도 하지.”박민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유남준이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돌아갈까?”솔직히 박민정도 돌아가고 싶었다. 박민호에게 제대로 본때를 보여줄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하지만 그 순간, 익숙한 두 사람의 얼굴이 저 멀리서 눈에 들어왔다.“박민정?”목소리의 주인은 한서진이었고 그녀 옆에는 김말숙이 서 있었다.김말숙은 박민정을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예전 박민정이 자신을 여러 번 곤란하게 만든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쟤는 왜 왔대?”김말숙은 노골적으로 말했다. 한서진은 박민정과 유남준이 가까이 있는 탓에 대놓고 말하지 못하고, 돌려 말했다.“민호가 초대한 거겠죠. 어쨌든 박씨 집안 양녀고, 민호한텐 누나잖아요. 동생 결혼식에 안 오면 좀 이상하죠.”“그나마 양심은 있네.”김말숙은 콧방귀를 뀌었다.둘은 마치 박민정이 예전처럼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듯, 일부러 크게 말했다.박민정은 유남준 옆으로 바짝 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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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8화

박민호는 최민아를 데리고 곧장 박민정과 유남준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가는 길에 한서진과 김말숙 곁을 지나쳤지만, 그들을 부르거나 인사를 건네는 일은 없었다.김말숙은 그런 박민호의 태도에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해했지만, 그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외손자라는 이유로 끝내 뭐라 하지는 못했다.박민정은 무표정하게 고개만 끄덕이며 인사했다.“응.”박민호는 얼른 반응했다.“내가 안내할게. 같이 안으로 들어가자.”하지만 박민정은 가볍게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괜찮아. 너는 민아 씨랑 외할머니 모시고 들어가. 난 남준 씨랑 알아서 갈게.”그녀는 박민호의 속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자신과 유남준을 앞세워 호텔에 입장하며 사람들에게 과시하려는 속셈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박민호는 그 말에 잠시 당황한 듯 민망한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서야 김말숙과 한서진이 곁에 있다는 걸 눈치챘다.“아, 누나. 외할머니도 오셨네요. 다 같이 들어가요.”김말숙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 가자꾸나.”그리하여 일행은 함께 호텔 안으로 향했다.박민호는 잔걸음으로 박민정과 유남준 바로 옆에 붙어 있었고, 최민아는 김말숙과 한서진 곁을 지키고 있었다.“누나, 매형.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진심으로 기뻐요.”박민호는 들뜬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박민정은 차갑게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기뻐하긴 이르지. 분명 조촐하게 두세 테이블만 잡는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게 뭐야,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박민호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박민정과 유남준을 속일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결국 그는 순순히 털어놨다.“누나, 내가 누나한테 진 빚이 너무 많잖아. 내가 일해서 갚으려고 해도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래서 이렇게라도 해보려는 거야.”박민정은 그가 의외로 쉽게 인정하자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래도 인정은 하네.”“이제는 정말 달라졌어. 예전 그 내가 아니야.”박민호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박민정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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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9화

한때 박민정이 박씨 가문에서 천대받던 시절, 한씨 가문의 두 외삼촌은 그녀를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자신들의 딸들이 박민정을 괴롭힐 때에도 모른 척했으며, 오히려 묵인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그랬던 이들이, 이제 박민정이 정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어 막강한 재력과 권력을 손에 쥐게 되자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태세를 바꿔 비위를 맞추려 드는 모습은 실로 우스꽝스러웠다.당연히 박민정이 그런 이들의 체면을 곱게 세워줄 리 없었다.“외삼촌이요? 뭔가 착각하신 것 같은데요. 제 어머니는 형제자매가 없으세요.”단호한 그녀의 한마디에, 그동안 박민정의 외삼촌을 자처하던 한씨 가문의 두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그리고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고 있던 주변 사람들 역시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엉뚱하게 친척 행세를 한 거였네. 정 회장 댁에 아들이 하나 더 있다는 얘긴 못 들어봤는데.”“정씨 집안에 아들이 있긴 했지. 입양한 아들이라던데, 뭔 사고를 쳐서 젊은 나이에 감옥에 갔다잖아.”“하하, 저 한씨 형제들 참 뻔뻔하다. 상황 보니 들러붙으려고 했던 거구만.”사람들은 키득거리며, 이미 체면을 잃은 두 형제를 조롱했다. 그때, 분위기를 갈라놓듯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꼭 그런 건 아니야. 박민정이 입양된 거 몰라? 입양한 어머니가 한씨 가문 딸이잖아. 그러면 엄밀히 말해 저 두 분, 외삼촌 맞지.”“정말 그런 거야?”그 말이 퍼지자, 사람들 사이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몇몇은 고개를 맞대고 다시 수군대기 시작했다.“입양된 거라면 법적으로 외조카 맞네. 그런데 왜 외삼촌이라 안 부르는 거지?”“글쎄... 지금 잘 나가니까 옛 식구들은 다 끊어낸 건가 보지.”그들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박민정은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의 눈빛과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예전 같았으면 억울하고 속상해서 해명이라도 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진실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그저 흥미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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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0화

김말숙은 박민정을 자극하고 싶었다.사람들 앞에서 박민정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언성을 높이길 바랐다. 그러면 박민정이 어른에게 대드는 철없는 아이로 보이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러나 박민정은 오히려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생명과 관련된 일이었는걸요. 당연히 기억하고 있어야죠.”“게다가, 그땐 한서진 씨는 어렸다고 해도 어르신들과 두 분은 모두 성인이셨잖아요.옳고 그름은 분명히 가르쳐야 했던 나이 아닌가요?”“하지만 그때 어르신들께선 한서진 씨를 훈육하긴커녕, 오히려 ‘당해도 싸다’며 한겨울 눈밭에 저를 밤새 세워두셨어요. 그때 저는 열 살이었고요.”박민정이 말을 마친 순간, 그 눈빛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그 말에 주변 사람들도 숙연해졌고, 왜 그녀가 한씨 가문과의 연을 끊으려 하는지 단번에 이해했다.“열 살한테 그런 짓을 했다고? 사람이야 뭐야.”“한씨 집안이 박씨 집안 덕 봐서 살아난 건데... 배은망덕도 이런 배은망덕이 없네.”“박민정이 정씨 가문 딸이라는 걸 알고 들러붙는 거 보면 진짜 염치도 없구만.”조용히 수군거리던 사람들의 비난은 점점 뚜렷해졌고, 한씨 가문의 두 아들과 김말숙, 한서진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까맣게 질려갔다.그들 역시 뭔가 해명하고 싶었지만, 마침 결혼식이 시작되어 입을 열 수 없었다. 결국, 아무 말도 못 한 채 체면을 잃고 자리에 앉아야 했으며, 박민정을 외조카라 부르겠다는 말도 더는 감히 꺼내지 못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 한켠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던 응어리를 조금은 털어낸 듯했다.작은 잔을 들고 조용히 술을 한 모금 넘기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유남준은 말없이 그녀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위로의 말 한마디 없었지만, 그 손길에 담긴 따뜻한 마음은 고스란히 전해졌다.“네가 예전에 그런 일을 겪은 줄 몰랐어.”그의 조심스러운 말에 박민정은 담담하게 웃었다.“이젠 다 지난일이에요.”분명 오랫동안 그녀를 짓눌러온 기억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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