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죽기 전엔 못 놔줘: Bab 2131 - Bab 2140

2202 Bab

제2131화

박민호는 먼저 박민정과 유남준에게 술을 올리고 나서야, 한씨 가문 사람들에게 잔을 들고 다가갔다.이제는 김말숙조차도 감히 그에게 뭐라 하지 못했다.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지금 세상에서 진짜 중요한 건 ‘돈’과 ‘권력’이라는 걸.결혼식에 참석한 이들은 각자 저마다의 속셈을 품고 있었다. 그중에서 오직 최민아만이 긴장한 채, 정중하게 친척들과 하객들에게 술을 따랐다.너무 긴장한 나머지, 자리에 앉은 이들의 복잡한 속내 따위는 눈치채지도 못한 채였다.모든 일정이 끝난 뒤, 박민호와 최민아는 직접 박민정과 유남준을 배웅했다. 그때 박민정이 가볍게 말했다.“여기까지만 하면 돼. 시간 있으면 협력업체 사람들 챙기러 가봐.”‘협력업체?’최민아는 의아한 눈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박민호는 그들을 모두 ‘친한 친구’라고 소개했었기 때문이다.박민호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박민정 쪽으로 눈을 찡긋했다.‘누나, 말하지 마. 들키면 안 돼.’하지만 박민정은 그의 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입을 열었다.“미리 말해두는데, 나랑 내 남편 이름 팔아서 재벌들 상대로 장사하지 마. 그러다 무슨 일 생기면 어떤 결과가 올지 알지?”말투는 단호했고, 경고는 분명했다.박민호의 얼굴이 굳었지만 억지로 웃으며 받아넘겼다.“누나,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해. 걱정 마. 절대 누나랑 매형 이름 팔아서 장사하진 않을게.”물론 속은 편치 않았다.이번 결혼식 자체가 박민정과 유남준의 ‘이름값’을 앞세워 겨우 그들 틈에 끼어든 거였으니까.그는 유남준의 수완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이미 여러 번 봤었다.박민정과 유남준이 차에 올라 떠난 뒤, 최민아가 조심스레 물었다.“방금 그게 다 무슨 얘기예요?”박민호는 애써 웃으며 얼버무렸다.“민아 씨, 나 다 우리 가정을 위해서 그런 거예요. 오늘 이렇게 많은 부자들을 알게 됐잖아요. 앞으로는 돈 걱정 없을 거예요.”하지만 최민아의 표정이 굳었다.“나 예전부터 말했잖아요. 우리 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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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2화

정확히 말하자면, 빚을 진 사람은 박민정이 아니라 박민호였다.다만, 그는 좋은 아버지를 뒀다. 박민호의 양아버지는 예전 박민정에게 유난히 잘해줬고, 그 덕분에 박민정은 세상에 남겨진 그 사람의 유일한 아들을 차마 해할 수 없었다.“앞으로는 그 애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에요.”박민정은 담담하게 말했다.…눈이 녹고, 시간은 어느새 훌쩍 흘러 조하랑의 출산일이 다가왔다.튼실한 사내아이였다.그 소식을 들은 김훈은 감격한 나머지, 병실에서 기절할 뻔했다. 하필 병원 안에서 그 상황이 벌어진 덕분에, 의료진의 총력으로 가까스로 김훈은 회복될 수 있었다.그제야 김인우는 비로소 깨달았다.‘할아버지는 병을 가장한 게 아니라, 정말 예전 같지 않구나.’“할아버지, 푹 쉬셔야 해요.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김인우는 병상 앞에 앉아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김훈은 손을 휘저으며 말렸다.“난 괜찮다니까. 넌 이제 아빠가 됐잖아. 하랑이 곁에 있어야지. 애 엄마랑 아이만 병실에 남겨두고 네가 여기 있으면 쓰냐.”“하랑 씨가 괜찮다고 했어요. 민정이랑 친구들이 곁에 있어 준다고요. 걱정 마세요.”오늘의 김인우는 유난히 침착하고 성숙했다. 예전의 철없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김훈은 그 말을 듣고 잠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 멍청한 놈아. 하랑이가 지금 너한테 애를 낳아줬는데, 남편인 네가 곁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하랑 씨가 먼저, 할아버지 곁에 있으라고 했어요.”김인우의 설명에, 김훈도 더는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았다.“그럼, 여기 조금만 더 있다가 얼른 가. 예찬이가 여기 있으니까 난 걱정 말고.”옆에서 조용히 있던 박예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저씨, 얼른 가세요. 전 증조할아버지랑 있을게요.”김인우는 또박또박 말하는 예찬이를 보며 안심했다. 아직 어린 얼굴이었지만 믿음직스러웠다.“그럼 다녀올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그가 병실을 나서려는 순간, 김훈이 그를 불러 세웠다.“참, 아이 이름은 정했냐?”김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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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3화

조하랑은 박윤우를 일부러 놀렸다.“윤우야, 너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너희 엄마랑 나는 거의 친자매나 마찬가지잖아. 예전엔 다들 부모님이 정해준 사람과 중매로 결혼했단다. TV에서도 자주 봤잖아?”그녀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이번에 딸을 못 낳은 건 아쉽지만, 다음엔 꼭 예쁜 딸 낳을 거야. 그러면 우리 딸 너한테 시집보내면 되겠지? 넌 착하니까 분명 우리 딸한테도 잘해줄 거야. 그치?”박윤우는 박예찬보다 훨씬 속내가 잘 드러나는 편이라, 조하랑이 ‘정말 딸을 낳겠다’는 말에 순간 몸을 부르르 떨었다.“...하랑 이모. 저, 저 결혼 안 할지도 몰라요...”결혼 자체를 거부하고 싶을 만큼 겁을 먹은 듯한 눈빛이었다.그 모습을 본 박민정도 장난을 거들었다.“근데 너 전에 다혜 예쁘다고 했잖아? 다혜 같은 애랑 결혼하면 진짜 좋겠다고.”“어머, 어머. 좋아하는 애가 있었구나?”조하랑은 일부러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어쩐지 우리 딸은 싫다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구나~”박윤우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아, 아니에요! 그런 뜻 아니에요!”“그럼 이모가 딸 낳을 때까지 기다려. 생기면 괴롭히면 안 돼. 알았지?”“...네...”박윤우는 울며 겨자 먹기로 대답했다.인생을 포기한 듯한 표정까지 짓자 조하랑과 박민정도 더는 놀리지 않았다.한편, 그 옆에서 가만히 있던 김인우는 혼자 생각에 잠겼다.‘아들도 생겼겠다, 다음에 딸까지 생기면 더 바랄 게 없겠지.’아들과 딸을 다 갖게 된다면, 그보다 완벽한 게 또 있을까.유남준은 아들만 있고, 방성원은 딸만 있다. 그런데 자기는 둘 다? 이건 정말 운이 좋은 거다.그가 멍하니 생각에 잠긴 사이, 조하랑과 박민정은 화제를 바꿔 이야기를 이어갔다.“민정아, 다혜는 요즘 어때?”“잘 지내. 연서 씨가 워낙 잘 챙겨줘서. 이젠 살도 오르고 예전보다 훨씬 자주 웃어.”박민정은 처음 유다혜를 봤던 날을 떠올렸다.그땐 병원에 누워 있었고 두 눈엔 생기가 없었으며 작은 몸은 마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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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4화

“민정 씨.”홍주영이 먼저 인사를 건넸고,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아이를 데리고 다가갔다.아이들은 공손하게 인사했다.“민재 아저씨, 주영 아줌마.”“그래.”늘 무표정하던 홍주영도 오늘은 살짝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하민재 역시 웃으며 말했다.“얼마 안 본 사이에 너희 둘 다 훌쩍 자랐구나.”예전 해외에서 연지석과 함께 있을 때 하민재는 이 아이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었기에 제법 익숙했고 아이들도 그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섰다.“아저씨는 아기 언제 가질 거예요? 오늘 우리 엄마랑 병원 갔다가 하랑 이모가 낳은 아기 봤는데요, 너무 귀여웠어요!”박윤우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아기’라는 말이 나오자 하민재와 홍주영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하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듯 억지로 웃어 보였다.하민재는 헛기침을 두 번 하더니 말했다.“그런 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지. 조급해하면 안 되지.”“아, 네네.”박윤우는 무언가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아저씨, 주영 아줌마랑 파이팅 하세요. 아기 생기면 꼭 보여주세요!”“응, 약속할게.”짧은 대화가 오간 뒤, 하민재는 왠지 모를 압박감을 느꼈다.박민정은 두 사람에게 물었다.“여긴 무슨 일로 왔어요?”“근처에 볼일이 좀 있어서요.”박민정은 더 묻지 않고 간단한 인사만 나눈 후, 각자 갈 길을 갔다.⋯홍주영은 하민재와 함께 차에 올랐지만 방금 들은 박윤우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그녀와 하민재는 결혼한 이후 지금껏 단 한 번도 부부로서의 관계를 가진 적이 없었다.그것은 하민재의 문제가 아니라 계속해서 주저하게 되는 건 그녀 자신이었다.하민재는 차창 밖, 점점 멀어져 가는 윤우와 예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애들은 참 귀엽네.”그의 목소리엔 따뜻한 바람 같은 기대감이 스며 있었다.그 모습을 본 홍주영은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미안해요.”하민재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갑자기 왜 사과해요?”홍주영은 두 손을 꼭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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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5화

홍주영은 쉽게 믿기지 않았다.유남우는 원래 체질상 술을 거의 못 마셨고 그녀가 수년간 그를 모시는 동안 술에 취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그런데 지금, 전화 너머의 남자 말투로 볼 때 유남우는 꽤 심하게 취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옆자리에 앉아 있는 하민재를 바라보자 홍주영의 마음은 복잡해졌다.이젠 그녀는 결혼한 몸이었다. 마음도 다잡았고 유남우와의 인연도 정리했다.절대로 하민재를 배신할 수 없었다.“죄송하지만, 지금은 곤란하네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병원에 데려다주실 수 있을까요? 깨어나면 꼭 감사 인사 드릴게요.”홍주영은 조심스레, 그러나 정중하게 말했다. 그러자 상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지금 농담하시는 겁니까? 친구인 당신도 귀찮아하는 사람을 제가 왜 책임져야 하죠? 전 모르는 사람인데다 일도 해야 합니다.”그리고는 날카롭게 덧붙였다.“지금 안 오시면, 저도 더는 책임 못 집니다.”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홍주영의 얼굴엔 걱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본 하민재가 조심스레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래요?”“도련님이 술에 취하셨대요.”홍주영은 사실대로 답했고 하민재의 이마엔 주름이 잡혔다.“근데 왜 주영 씨한테 전화를 해요?”“도련님이 직접 건 게 아니라, 술집 직원이 건 것 같아요. 많이 취했다고 하더라고요.”그제야 하민재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그런 건 비서에게 맡기면 되잖아요.”“맞아요. 제가 지금 바로 연락해볼게요.”홍주영은 자신이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 생각을 미처 못 했다는 걸 깨달았다.하지만 한참을 시도하다 간신히 통화가 연결되었고 상대방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주영 씨, 저 벌써 사장님한테 해고당했고, 지금은 진주시에 있어요. 아마 직접 가셔야 할 거예요. 사장님 성격 아시잖아요. 지금껏 어떻게 모셨는지, 진짜 존경스럽더라고요.”홍주영은 믿기지 않아 다시 물었다.“그럼 지금 도련님 비서 연락처는요?”“비서요? 그런 거 없어요. 들은 바로는...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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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6화

홍주영과 하민재가 도착하자마자 직원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드디어 오셨네요! 이 술주정뱅이가 가게 술을 얼마나 깨부쉈는지 아세요? 데려가기 전에 배상부터 하세요.”홍주영은 직원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 유남우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옷은 흐트러졌고 얼굴은 수염이 듬성듬성 난 채 온몸에선 진한 술 냄새가 진동했다.그는 소파 위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고 주변은 깨진 술병 조각들로 어지러웠다.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던 홍주영이 직원에게 사과하려던 순간, 하민재가 냉정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가게 관리가 이렇게 허술합니까? 이 사람이 여기서 더 큰 사고라도 당했으면 당신들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겁니다.”“본인이 술을 마시다 저렇게 된 건데, 우리랑 무슨 상관이에요?”직원은 개의치 않는 듯 무심하게 대꾸했다.하민재는 그런 직원을 잠시 빤히 바라보다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멍청한 건 어쩔 수 없다지만 최소한 선하게는 살아야죠. 사례를 좀 찾아보세요. 당신과 상관이 있는지 금방 알게 될 겁니다.”하민재는 더 이상 직원과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듯, 홍주영을 향해 말했다.“우선 상태부터 확인하죠.”“네.”두 사람은 유남우에게 다가갔다. 그는 반쯤 누운 상태로 낮게 기침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도련...”홍주영은 익숙한 호칭을 입 밖에 내려다 하민재의 눈치를 보고 말을 급히 바꿨다. “유 대표님, 정신 좀 차리세요.”유남우는 머리가 터질 듯 아파 괴로워하며 뒤척이다 이내 다시 잠들었다. 홍주영이 불안한 눈으로 하민재를 올려다봤다.“이제 어떻게 하죠?”“어쩔 수 없죠.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가야겠어요.”하민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민재 씨까지 번거롭게 해서 미안해요.”홍주영의 말에 하민재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사이에 번거롭고 말고가 어딨어요. 신경 쓰지 말아요.”그의 말이 오히려 홍주영의 미안한 마음을 더욱 키웠다. 만약 자신이 하민재였다면, 자신이 짝사랑하는 사람을 이렇게까지 도와주고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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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7화

유남우의 목울대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는 애써 눈을 뜨고 홍주영을 바라보다 그녀의 모습이 흐릿하게 시야에 들어오자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홍주영이 그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라 가까이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어디 불편하세요? 물이라도 드릴까요? 곧 병원에 도착하니까 조금만 참아요.”그녀의 목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유남우의 손이 그녀의 뺨에 가볍게 닿았다.유남우의 목소리가 허공을 맴돌았다.“홍주영? 내가 꿈꾸는 건가...”홍주영은 얼굴이 달아올라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있었고 옆에 있던 하민재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지며 이내 유남우의 손을 거칠게 쳐냈다.“무슨 짓이에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유남우의 손이 힘없이 떨어지며 다시 눈이 감겼다. 홍주영은 미안한 마음에 하민재를 돌아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요...”하민재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애써 불편한 감정을 숨겼다.“유 대표가 멋대로 그런 거니까 주영 씨가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 병원에 데려다주고 바로 돌아가죠.”“네, 그렇게 해요.”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두 사람은 유남우를 입원시켰다.하민재가 수속을 마치러 간 사이, 홍주영은 병실에서 유남우를 잠시 바라보다가 나가려던 그때 침대 위의 유남우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가지 마...”몽롱한 유남우의 목소리에 홍주영은 당황해서 그의 손을 빼내려 애썼다.“정신 드세요?”남자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계속 중얼거렸다.“가지 마...”홍주영은 순간 얼어붙었다.그녀는 멍하니 한참을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의 손을 떼어냈다.“푹 쉬세요. 저는 이제 가볼게요.”유남우는 다시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힘이 빠져 눈도 뜰 수 없었고 손을 들어 올릴 힘조차 없었다.홍주영은 서둘러 병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닫는 순간 그녀의 마음은 혼란스럽고 복잡했다.조금 전 그가 부른 자신의 이름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입원 절차를 마친 하민재가 다가와 물었다.“별일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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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8화

유남우는 휴대폰을 열어 통화 기록을 확인했다. 취했을 때 직원이 홍주영에게 걸었던 통화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음속에서 복잡한 감정들이 서로 뒤엉켜 혼란스럽고 알 수 없는 충동마저 느껴졌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결국 그는 떨리는 손으로 홍주영에게 전화를 걸었다.같은 시각, 홍주영은 홀로 회사에 남아 있었다. 하민재는 그녀를 회사에 내려준 뒤 다른 일을 보러 떠난 상태였다. 휴대폰 화면에 나타난 유남우의 이름을 보고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마침내 전화를 받았다.“유 대표님, 무슨 일 있으세요?”그녀의 낯선 호칭에 유남우는 순간 멍해졌다.“오늘 나를 병원에 데려다준 게 너였어?”그가 조심스럽게 묻자 홍주영은 숨기지 않고 말했다.“저랑 민재 씨예요. 민재 씨가 없었더라면 혼자서 대표님을 옮기기 어려웠을 거예요.”그녀의 말에서 유남우는 그녀가 하민재와의 결혼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려 한다는 걸 느꼈다.“하민재 씨에게 고맙다고 전해줘.”“네, 대표님. 민재 씨도 그랬어요. 동료끼리 돕는 게 당연한 거라고요.”그녀의 말투는 정중했지만 분명한 거리감이 느껴졌다.‘또 하민재 얘기네.’유남우는 가슴이 답답해졌다.“주영아, 나 할 말이 있어.”“네?”홍주영은 이유도 모른 채 본능적으로 긴장했다. 유남우는 한참을 침묵하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요즘 깨달았어. 내 삶에 네가 없으면 안 된다는 걸 말이야. 내 곁으로 돌아와 줄 수 있어?”그의 말은 홍주영의 잔잔했던 마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그녀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조여왔다.“저... 이미 새로운 회사에서 잘 적응해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어요...”“그런 뜻이 아니야.”유남우가 급히 그녀의 말을 끊었다.“네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아.”그 한마디에 홍주영은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내 마음을 알고 있었던 거야? 알고도 그동안 모른 척했던 걸까?’자신의 짝사랑을 들켜버린 그녀는 숨이 막혀왔다.침묵이 길어지자 유남우가 다시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시 너랑 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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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9화

유남우는 오직 홍주영이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결혼했든 하지 않았든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마음만을 듣고 싶었다.홍주영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혼란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오랜 세월 홀로 품어왔던 감정이 이제는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지만 현실의 무게는 그 이상으로 무거웠다.그녀는 이미 결혼한 사람이었다. 부모님의 권유였지만 그녀 스스로도 기꺼이 동의했고 남편인 하민재는 더할 나위 없이 그녀를 아껴주고 있었다. 그런 남편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죄송해요, 유 대표님. 뭔가 잘못 이해하신 것 같아요. 저는 단지 직장 상사로서, 업무적인 책임감에서 대표님께 잘해드린 것뿐이에요. 다른 마음은 없었습니다.”잠시 숨을 고른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리고 저는 이미 결혼했어요. 지금의 남편은 저에게 정말 잘해주고 저희 둘은 서로 많이 사랑해요. 이혼 같은 건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서로 많이 사랑한다는 말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유남우의 귀에 박혔다. 그의 목소리가 흔들렸다.“주영아, 너 화가 나서 일부러 거짓말하는 거지?”“전 솔직하게 말씀드린 거예요. 게다가 대표님도 한 번 결혼하셨잖아요. 저희는 오랜 시간 함께 일했지만 전 정말 대표님께 그런 감정 없었어요.”홍주영은 유남우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과거에도 그랬다. 병을 핑계로 외국에 떠나기 전에도 박민정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다. 그가 뒤늦게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박민정이 유남준과 결혼한 후였다. 그는 늘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했고, 타인의 것을 가장 탐내는 사람이었다.“난 믿지 않아.”유남우도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홍주영의 마음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홍주영은 더 이상의 대화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말을 더 했다간 자신의 마음도 흔들릴 것만 같았다.“유 대표님,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으면 전화 끊겠습니다. 앞으로는 연락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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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40화

홍주영이 전화를 끊어버리자 유남우의 기분은 순식간에 바닥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그대로 서 있었다.회사 안.홍주영은 그가 이미 떠났을 거라 생각하고 퇴근 준비를 마친 뒤 밖으로 나섰다. 그때 하민재로부터 메시지가 왔다.[데리러 갈게요.]홍주영은 바로 답장을 보냈다.[괜찮아요. 나 혼자 갈 수 있어요.]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는 데 익숙했던 그녀는 하민재와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누군가의 보살핌에 익숙해지지 못했다.그러자 하민재는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단호히 답을 보내왔다.[거절해도 소용없어요. 이미 주영 씨 회사 앞이에요. 그러니 빨리 나와요.]홍주영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 하민재는 늘 이런 식이었다. 자신이 결정한 뒤 그녀를 설득했고 이제 그녀도 점점 그런 그에게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회사 문을 나서자 홍주영은 주위를 둘러보며 하민재의 차를 찾았다. 하지만 차를 발견하기도 전에 한 그림자가 그녀에게 다가왔다.“주영아.”유남우의 얼굴은 창백했고, 온몸은 수척하게 야위어 있었다. 술이 덜 깬 듯 그의 걸음걸이는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그를 보자 홍주영은 순간 당황하며 물었다.“아직까지 여기에 있었어요?”그가 전화한 뒤 벌써 꽤 시간이 흘렀다.“너랑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싶었어.”유남우가 힘겹게 말을 꺼냈지만 홍주영은 더 이상 그와 어떤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더는 할 얘기 없어요.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요.”유남우의 목이 어렵게 움직였다.“네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 난 믿을 수 없어. 좋아하지 않는다면 왜 날 병원까지 데려갔던 거야?”홍주영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유 대표님은 제 상사였어요. 다른 사람이었어도 아프면 병원으로 데려갔을 거예요.”그녀의 냉정한 말에 유남우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그녀의 팔을 단단히 움켜쥐었다.“거짓말하지 마!”한때 떠나간 박민정만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왜 자신 곁을 변함없이 지켜주던 홍주영마저 이제 자신을 떠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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