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Chapter 1621 - Chapter 1630

1663 Chapters

제1621화

화물선이 항구에 접근하자 방시원은 사정과 쌍월과 함께 배에서 내렸다. 사정은 길을 가다가 방시원에게 물었다. “방 백부, 이번에는 혼자 오신 건가요? 큰 오라버니와 둘째 오라버니께서는 안 오셨어요?” 그러자 방시원이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오지 않았지만, 너의 안 선생님께서는 오셨단다. 도착한 지 보름정도 되었고, 지금 복경 객잔에 묵고 있단다. 이번에 네 아버지의 명령으로 오게 된 것인데 첫째는 광주부의 도적과 해적들의 상황을 조사하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네가 광주부에 도착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란다. 그리고 너의 안 선생님을 데리고 바람을 쐬고 싶기도 했단다. 설 연휴로 인해서 서원에서도 방학 중이니, 한 두 달 더 휴가를 내는 것도 문제없을 것 같다.” “안 선생님께서 오셨습니까? 그것 참 잘 됐네요. 빨리 저를 데리고 안 선생님을 만나러 갑시다.” 사정의 계몽 선생님이 바로 안여옥이었다. 사정은 이전에 서원에서 공부를 했었는데 타고난 자질은 뛰어나지만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해서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매산에 보내진 적이 많았지만 몇 번이나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서원에서 일곱 살까지 공부한 후에 다시 매산으로 간 것이었다. 사정은 서원에서 학자든 무슬을 연마하는 사람이든 모두 스승을 존경하고 예의를 중시해야 한다고 배웠다. 성년식 때 안 선생님도 그녀에게 선물을 주었지만 그땐 사람이 많아서 말을 많이 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에서라도 뵐 수 있게 되어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복경 객잔은 비교적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고, 고급 객잔은 아니었다. 투숙객들도 상인들이라 대부분 장기적으로 투숙하고 있었다. 광주부의 관리들은 방 장군이 광주부에 와서 복경 객잔 같은 곳에 머물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었다. 안여옥은 객잔의 작은 마당에서 책을 한 권 읽고 있었다. 산들바람이 봄날의 기운을 가져왔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어 몸과 기분이 아주 상쾌했다.작은 마당에는 키가 큰 목화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는데 마침 꽃이 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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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2화

분명히 세 사람이 함께 간식을 먹었지만 사정은 왠지 방 백부 부부만 먹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광주의 만두 속은 비계가 많았는데, 안여옥이 비계를 좋아하지 않기에, 방시원은 세심하게 골라낸 후 그녀에게 건넸다. 다만 그녀는 위가 작아 만두를 통째로 먹으면 다른 것을 먹을 수 없어서, 그녀가 한 입 먹은 후에 다시 가져간 후 새우 만두를 집어서 건네 주었다. 그리고 연잎에 싸인 찹쌀닭도 한 임 나누어주며 말했다. “당신은 위가 좋지 않으니 찹쌀은 조금만 먹는 게 낫겠소. 토란떡도 조금만 드시오.” 사정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턱을 괴고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사정의 부모도 금슬이 꽤 좋은 편이었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음식에 대해 특별히 까다롭지 않으신 데다, 만약 세 식구가 식사를 한다면 빨리 먹는 편이라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은 먼저 집어가기 때문에 아버지가 음식을 집어줄 기회조차 없었다. 하지만 황궁 연회나 다른 연회석에서는 어머니는 단정한 모습으로 바뀌어 한 입 먹고 일곱여덟 번은 씹고서야 삼켰다. 사여묵은 그때에만 송석석에게 반찬을 집어줄 기회가 있었다. 방시원은 고개를 들어 사정이 그들 부부가 식사하는 것을 보기만 하며 먹지 않는 것을 보고 물었다. “왜 안 먹느냐?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이냐?” 사정이 입을 삐죽거리더니 애교 섞인 말투로 답했다. “아무도 나에게 반찬을 집어주지 않아서요.” 그러자 안여옥은 웃으며 그녀에게 죽순을 집어주었다. “자, 얼른 먹거라.” 하지만 사정은 여전히 먹지 않고 물을 뿐이었다. “안 선생님, 애초에 어떻게 방 백부에게 시집간 거예요?” 사정은 그들의 일을 들어보았지만, 구체적이진 않았다.안 선생님이 비록 어머니가 되었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젊었다. 그리고 방 백부도 위풍당당하고 멋있었지만 나이가 드니 안 선생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였다. 안여옥은 애틋한 눈빛으로 방시원을 한 번 바라보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정에게 말했다. “이야기가 듣고 싶으면 얼른 먹어. 다 먹은 후에 알려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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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3화

안여옥은 원래 우연히 들은 일이었지만, 첫눈에 반하기까지 해서 방시원의 품행이 더욱 고귀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이제 시집갈 나이가 되었기에, 가끔씩 미래의 부군이 어떤 사람일지 머릿속으로 그려보군 했다. 머릿속으로 그리는 건 그저 상상이지만, 그녀가 그리던 이상형이 눈앞에 나타난 순간 그녀는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방시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처음에 반대했다. 나이 차이 외에도 방시원이 이미 결혼을 한 번 했었기에 안여옥이 시집을 가서 본처가 될 수 있지만 첫 아내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안여옥은 태부의 손녀로 진성에서 청혼을 하는 가문이 얼마인지 모르는데 왜 굳이 결혼을 했던 방시원에게 시집을 가려고 하는지 그녀의 할아버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공을 세워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앞길은 아무도 모르는 일인데. 하지만 그녀가 하도 고집을 부려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녀가 평생 처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고집한 순간이었다. 할아버지는 사람을 불러 중매를 서게 했는데 뜻밖에도 방시원이 허락하지 않아 안여옥의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그들은 방시원이 사리를 구분할 줄 모른다고 생각해서 한 편으로는 안 씨 가문이 주동적으로 찾아갔는데 거절을 당해 창피했다. 안여옥의 유모는 순간 화가 난듯 그녀에게 말했다. “아가씨의 가문과 인품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방 씨 가문은 정말 사리를 구분할 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안여옥이 되물었다. “그렇죠. 누구든지 기쁘게 승낙하겠지요. 그럼 유모는 그 사람들이 왜 나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가문, 용모, 재학 때문일까요? 아니면 태부인 할아버지 때문일까요?” 유모는 세족 간의 결혼은 가문, 용모, 재학 모두가 고려 범위 내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마음에 드는 건 그저 태부 친손녀의 신분일 뿐이었다. 할아버지가 비록 은퇴했지만, 문관이 그의 칭찬을 받았다 하면 승진은 시간문제였다.태부부와 혼인을 맺으면 이점이 많으니, 마음속에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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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4화

그는 그녀에게 앞으로 어떻게 잘해주겠다는 약속을 하지는 않고, 그저 부부로서 한마음이 되어 함께 살아가자고만 했다.신혼 첫날밤, 장막이 드리워지는 순간 어찌된 일인지 긴장이라도 한 듯 몸이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출가 전에 유모가 신혼 첫날밤에는 어떻게 남편과 정을 나눠야 하는지 일러주었을 때,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면서도 끝까지 빠짐없이 귀 기울였기에, 자신도 어느 정도는 잘 이해했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막상 그 순간이 닥치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몸 전체가 바들바들 떨렸다.다행히도 그는 매우 다정했다.유모는 그녀에게 신혼 첫날밤이 여인에게는 꼭 좋은 기억만은 아닐 수 있다고 말해주며,며칠만 참고 견디면 곧 괜찮아질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하지만 그녀는 유모의 말이 꼭 맞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육체의 친밀함과 영혼의 교감...... 그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사정언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혼인 후의 생활은 그녀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달콤했다.처음에는 그가 무척 근엄하고 융통성 없이 딱딱하고 재미없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사려 깊었고 그녀의 감정을 세심하게 살폈으며, 쉴 때마다 그녀를 데리고 근처로 나들이를 다니기까지 했다.그는 진성 주둔군의 장군이라 함부로 진성을 벗어날 수 없었기에, 두 사람이 함께 갈 수 있는 곳은 언제나 진성 인근으로 한정되었다.그러다 보니 해를 거듭할수록, 진성 구석구석 좋든 나쁘든 발길 닿을 만한 곳들은 빠짐없이 다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시어머니와 형님 또한 그녀에게 잘해주었다. 그녀가 서원으로 돌아가 다시 강단에 서겠다고 하자, 그들은 가능한 한 집안일로 그녀를 귀찮게 하지 않으려 했다.게다가 그녀가 하는 일이 머리를 많이 쓰는 일이라 늘 피곤하다는 걸 아는 시어머니는 매일 정성껏 탕을 끓여 그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그렇게 혼인한 지 반년 남짓,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빛이 많이 화사해졌다고 칭찬했다.그 말에 조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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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5화

이 일은 그들의 혼인 생활에 찾아온 첫 번째 시련이었다.달콤했던 나날 위에 쓴 약물이 들이부어진 셈이었다.이런 중대한 일은 방시원이 돌아와서 결정을 내려야만 했기에, 그는 소식을 듣자마자 급히 돌아왔다. 그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어머니께 인사할 틈도 없이 곧장 그녀가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온몸에 찬 기운을 잔뜩 안고 돌아온 그의 어깨 위엔 눈이 수북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밖에서 몸에 쌓인 눈을 털고 사람을 시켜 화로에 손을 녹인 후에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그의 목은 메어 있었다.“아픈 걸 어째서 내게 말하지 않은 것이오?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시오. 어디가 불편하거든 반드시 곧장 내게 말해야 하오.”그가 돌아오자, 그녀는 마치 주춧돌이 생긴 듯 마음이 한결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방시원의 눈에 비친 그녀의 야윈 얼굴은 차마 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이렇게 고생하게 해서 미안하오. 모두 내 탓이오. 그동안 그대 곁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소.”그녀는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어 힘차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며칠 내내 쌓였던 불안과 괴로움이 조금씩 흩어지는 듯 했다.“제가 괜히 폐를 끼쳤어요. 그렇게 바쁘신데도 일부러 오시게 만들다니요...…”그는 그녀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군에서는 아무리 바빠도 대신할 이가 있소. 하지만 그대 곁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지 않소…? 무슨 일인지는 이미 다 들었소. 단신의와 다시 상의해보고 우리가 함께 결정하지. 괜찮소?”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뜻대로 하겠어요.”두 사람은 그렇게 한동안 꼭 안고 있다가 아쉬운 듯이 천천히 떨어졌다.수척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방시원의 눈빛에는 여전히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그래서그는 곧장 단신의를 찾으러 가지 않고, 한동안 그녀 곁에 머무르며 말없이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참을 머문 뒤에야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약왕당으로 향했다.하지만 단신의는 그저 이전에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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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6화

“그 시절, 그이가 곁에 없었다면… 나는 분명히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안여옥이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정언아, 네가 언젠가 혼인을 하게 되거든 널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단다. 그래야 그 사람이 너와 인생의 바람과 비, 서릿발 같은 고비도 함께 건너갈 수 있어.”사정언이 말했다.“저는 사랑을 믿어요. 제 아버지와 어머니도 서로 사랑하셨어요.”그녀의 집엔 항상 따듯함과 사랑이 가득했기에 그녀는 사랑, 혈연, 그리고 우정을 믿었다.안여옥이 다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정말 많이 아꼈단다.”사정언은 이야기의 뒷부분이 궁금해 다급히 물었다.“그럼...… 아이는 무사히 태어난 거예요? 그 시절을 어떻게 버텨내신 거예요?”그 시절의 안여옥은 매일 침을 맞고 약을 먹었으며 보양탕을 마셨다. 그러고도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이 도는 듯 토했고, 머리가 어지러웠다.일어설 힘조차 없어서 심지어는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버거웠다.태아는 그녀의 양분을 빨아들이고 있었지만 정작 그녀는 아무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있는 것이었다.나중에는 토하는 게 견디기 어려워져 아예 안태약도 끊어버렸다. 노부인은 차라리 아이가 자연히 흘러내리게 두었다가 정 안 되면 낙태약을 먹자고 제안했다. 그 편이 그녀의 몸에도 덜 부담이 될 것이란 판단이었다.이 결정은 물론 모두 단신의의 판단 아래 이루어졌다.그리하여 그녀는 안태약을 끊고 매일 보양탕과 미음만 조금씩 먹었다. 작은 숟갈로 떠먹는 죽조차 자주 토해내긴 했지만, 토한 뒤에도 다시 먹기 위해 노력했다.본래는 약을 끊으면 아이가 자연스레 없어질 줄 알았다. 실제로 약을 끊은 이튿날 다시 피가 새기도 했었는데, 약을 끊은 지 닷새째 되던 날, 피가 멎었다.아직 형체도 갖추지 못한 작은 생명이 세상에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그렇게 강하게 보여주었다.태아의 강인함, 그리고 남편과 시어머니의 지지와 사랑은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다.그녀는 조금씩 덜 토하게 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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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7화

출산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아이는 다섯 시진 동안이나 어미를 괴롭힌 끝에야 세상에 나왔다. 심지어 태어난 뒤에도 울지 않아 산파가 발바닥을 몇 차례 두드리고 나서야 울음을 터뜨렸다.그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비로소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할 수 있었다.방시원은 너무 심하게 긴장하고 걱정한 탓 때문인지, 긴장이 풀리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그대로 실신해버렸다.그 모습을 본 사정언이 웃으며 말했다.“어? 그 이야기 들었어요! 염 백부께서 말해줬는데, 방 큰오라버니가 태어날 때 방 백부께서 산실에서 실신하셔서 한동안 사람들한테 웃음거리가 되었다고요!” 안여옥 또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맞아. 그 일로 정말 오랫동안 놀림을 받았지. 그때 태어난 아이가 바로 네 방 큰오라버니란다.”그녀는 이어서 아이가 태어난 뒤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이는 조산아였기에 체질이 몹시 약했다. 갓난아기 시절엔 툭하면 병치레를 했고, 약을 먹는 횟수가 젖을 빠는 횟수 다음으로 많을 정도였다.다행히도 세 살 무렵이 되자 몸이 안정되었고, 그때부터는 무예를 익히며 기초 체력을 다지기 시작했다.둘째 아이는 사정언처럼, 말 그대로 인연처럼 찾아온 아이였다. 장남을 낳은 뒤 방시원은 단신의에게 피임약을 청해 직접 복용했는데, 그 약은 5년간 자식을 막아주며 만약 완전히 후사를 끊고자 한다면 5년 뒤에 한 알을 더 복용하면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그런데 다섯 해가 되기도 전에 또다시 임신을 한 것이었다.안여옥이 다시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방시원은 놀라 기절할 뻔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녀의 몸 상태가 좋아서 첫 아이 때와는 전혀 달랐다. 입덧도 없었으며 먹고 마시고 걷는 것까지 모두 무난했다. 그 덕분에 집안 살림과 서원에서의 강의 모두 한 치 흐트러짐 없이 해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이번 아이는 아가씨일 것 같다고 얘기했다. 딸이라서 이렇게 얌전하고, 어미를 괴롭히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다.방시원도 이제는 처음의 불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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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8화

내 이름은 사란이다.합의 이혼을 하기 전까지의 내 인생은 그저 하나의 웃음거리에 불과했다.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게 나서지 말고 눈에 띄지 말며, 쓸데없는 일에 참견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또한 늘 자기 명예를 소중히 여겨야 하며 괜한 말썽을 일으켜선 안 된다고 늘 가르치셨다.세상 사람들은 모두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관대하고 겸손하며 인품 고결한 분들이라 칭송했기에, 나 역시 그게 진심인 줄로 알고 알고 있었다.아버지는 당당한 회왕 전하이며 어머니는 소씨 가문 출신이었기에, 지위로 보나 가문으로 보나 누구 하나 얕볼 수 없는데도 그들은 언제나 다른 이들과 부딪히는 법이 없었고, 다소 손해를 봐도 그저 웃으며 넘기셨으니 말이다.하지만 내가 자라나 세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알게 되자, 사람들의 그 칭찬은 사실 조롱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들 눈에 비친 내 부모님은 그저 겁 많고 줏대 없는 물렁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다.더 무서운 건, 나 또한 그런 교육을 받으며 자라나 스스로 그걸 유순함이라 믿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가 착하고 선한 사람이라 여겼지만 실은 그저 나약했을 뿐이었다.이런 착각은 내가 량소에게 시집간 후에도 계속되었다.나는 그때까지도 부모님은 단지 착한 사람일 뿐이라 믿었기에, 그저 체면을 중시해 남과 대립하지 않으려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당당한 영안군주인 내가 시댁에서 모욕을 당했다는 것은 우리 집안의 나약함이 이미 남들에게 철저히 꿰뚫렸다는 뜻이었다.량소, 그는 잘생기고 매력적인 탐화랑이었는데, 나는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그가 말을 타고 가두 행진을 할 때, 나는 향낭을 던졌었다. 그저 군중에 섞여 장난삼아 던졌을 뿐이었는데 그것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혼사가 정해졌을 때는 마냥 기뻤다. 하루하루 시집갈 날을 손꼽으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부모님이 바깥일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나는 그 무렵 사촌언니가 어떤 일을 겪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그리고 뒤늦게서야 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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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9화

그들에게 정말 일이 벌어졌다.나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그렇게나 겁이 많고 나약했던 아버지가 반역에 가담했을 줄이야.결국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참수당했고, 어머니는 감옥에 갇혔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나에게까지는 번지지 않았다. 그들은 일찌감치 나와 관계를 끊어두었으며 그 사실은 온 진성 사람들이 알고 있던 것이기 때문이다.예전에 나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두 번 다시 상관하지 않겠다고 맹세 했었다.하지만 핏줄이라는 건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게 아니었다. 감정으로는 그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지만, 가슴은 여전히 아팠으며 먹고 자는 것조차 편치 않았다.나는 사촌언니에게 부탁해 때에 맞춰 옷과 음식을 안으로 넣어보내게 해달라고 했다.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통곡하며 제발 자기를 이곳에서 꺼내달라고 애원했다.나는 여전히 눈물이 많은 성격을 고치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졌다. “그때 제가 량씨 집안의 진흙탕에 빠져 살려달라고 애원했을 때, 오히려 제게 진흙탕 속에서도 숨은 쉴 수 있다며 얌전히 있으라 하셨죠. 이제 그 말을 그대로 돌려드릴게요. 어머니도 지금 갇혀 있긴 해도, 숨 쉬고 살아 있으니 그걸로 되시지 않았나요?”그 말을 끝으로 나는 돌아섰다. 어머니는 계속 울부짖으며 미안하다고 애원하셨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신임황제가 즉위하면서 천하에 대사면령이 내려졌다.유배형을 받고 10년 동안 떠나 있었던 량소는 그 덕에 예정일보다 반 년 일찍 진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영안 군주인 내게는 이혼 후에도 여전히 혼담이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혼인할 마음이 없었다. 그저 공방과 여학만을 오가며 바쁘고 자유로운 나날을 보냈다.여러 번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내 혼사를 걱정하였고, 그 중에서도 가장 열정적인 사람은 승상 부인이었다.재작년 과거시험에서 장원으로 급제한 운영양은 올해 서른둘로, 부모를 모두 여의어 오랫동안 상을 치르느라 혼사도 과거시험도 여러 차례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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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0화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다가온 이는 다름 아닌 운영양이었다.그는 재빨리 내 앞에 서서 량소와 나 사이를 가로막았다. 나는 등을 돌리고 있었기에 그의 표정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분명하고 단호한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물러서시오.”량소는 그 말에 깜짝 놀란 듯, 무의식적으로 두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는 운 한림을 훑어보며 말했다.“너는 누구냐? 나는 내 부인을 찾으러 온 것이다. 네가 참견할 일은 아니다.”나는 부인이라는 두 글자를 듣는 순간, 역겨움이 치밀어 올라 당장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 수많은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와 화가 난 나는 차갑게 말했다.“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누구의 부인도 아니니 이상한 소리로 내 이름에 먹칠하지 마십시오.”량소가 다급히 덧붙였다.“란아, 내가 잘못했단 걸 안다. 네가 어떻게 나를 꾸짖든 괜찮아. 하지만 우리......”“둘은 부부 사이가 아니오.”운 한림은 내 뜻을 정확히 알아차리고는 그의 말을 끊고 멀리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이리 오너라, 승은백부의 이 자를 데려가라.”그러자 즉시 두 사람이 앞으로 나와 량소의 양쪽 팔을 붙들고 끌어냈다.량소는 안간힘을 써가며 운 한림에게 소리쳤다.“넌 대체 누구냐! 나는 내 부인을 찾으러 온 것인데 왜 네가 나서는 것이냐!”운 한림은 냉정하게 대답했다.“내가 누구인지는 네 알 바 아니다. 끌고 가라.”그 말이 떨어지자 수하들이 땀수건으로 량소의 입을 틀어막았으며, 그를 질질 끌고 골목을 나가 마차에 집어넣었다.운 한림은 곧바로 몸을 돌려 두 걸음 물러선 뒤, 나를 향해 공손히 예를 올렸다.“군주께 실례를 범하였습니다. 제가 혹여나 모욕을 드렸다면 용서 바랍니다.”나도 몸을 숙여 답례한 뒤 물었다.“운 한림께서는...… 우연히 지나시다 보신 겁니까?”“예. 지나던 길이었습니다.”그는 거짓이 섞이지 않은 단정한 눈빛으로 말했다.나는 이미 량소로 인해 심기가 안좋은 상태였기에 더 묻지 않고 간단하게 답했다.“감사합니다.”그는 내게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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