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다면,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나 함께 걸어가면 되는 거고, 그렇지 않거나 도중에 헤어진다고 해도, 혼자 걸어갈 준비와 능력은 있어야지.”“네.”정은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럴게요.”“여자란 말이지, 참 신기한 존재야.”이미숙이 뜬금없이 말문을 열었다.“기댈 어깨가 있으면 잠깐 기대면 되는 거고, 없으면 안 기대면 그만이야.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기대고 안 기댄다는 게 무슨 말이야?” 안방에서 나온 소진헌이 웃으며 묻자, 이미숙은 바로 말렸다. “여자들끼리 얘기하는데, 남자는 말 좀 아껴요.”“네네.”소진헌은 손을 들며 순순히 항복 표시를 하고, 입에 ‘지퍼 잠그는’ 제스처까지 해 보였다.그 모습에 정은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여보, 점심 뭐 먹고 싶어? 나 장 좀 보러 갈 건데.”소진헌이 물었고, 이미숙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능성어찜이랑, 동그랑땡 좀 해줘요.”“오케이! 바로 실행!”이미숙은 샌드위치를 한 입 먹고 나서, 슬며시 정은을 바라보며 웃었다.“엄마도 입맛이 없거나, 요구가 없는 사람은 아니야.” ‘다만, 누구에게 말하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지.’이미숙에게 있어 정은은 딸이지만, 진짜 ‘무조건 내 편’이자, ‘내 말 들어야 할 사람’은 사실 소진헌이었다.그건 관계의 무게이자, 오래도록 쌓인 신뢰의 차이였다....한편, 재석은 이미 실험실에 들어가 있었다.들어서자마자 바로 책상에 앉아 일에 몰두했다.전진욱이 잠시 연구실을 비운 터라, 그의 몫까지 일감이 쏟아진 상태였다.‘하... 일이 두 배네. 진욱이가 없으니까 진짜 티 난다.’재석은 실험뿐만 아니라 모든 결괏값 정리, 데이터 저장까지 책임져야 했다.이전엔 그 역할을 이수아가 맡았었다.이수아가 그만둔 뒤엔 손태민이 잠시 맡았지만, 손태민은 서비대학교 강의까지 맡고 있어서 매일 실험실 자리를 지키긴 어려웠다.잡일도 은근히 많으니 말이다.재석도 진욱이 두 달 쉰다고 했을 때부터 예감했지만, 막상 닥치니까 생각보다 빠듯했다. ‘
Baca selengkapn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