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의 모든 챕터: 챕터 1371 - 챕터 1380

1409 챕터

제1371화

장소는 민지가 정했고, 비용 계산은 진일이 했다.재석도 함께였다.“진일 선배, 오늘은 지하철 안 타요?”민지가 물었다.“혼자면 지하철 타도 괜찮은데, 오늘은 재민이도 같이 있고, 근처에서 밥 먹고 학교 가는 친구들 몇 명이랑도 연락했거든.”“그래서 종합적으로 따져 보니까, 택시 타고 가는 게 더 이득이더라.”이런 설명을 듣고, 민지는 좀 놀랐다.‘한 마디로, 대박!’재석은 주차장으로 차를 가지러 갔고, 정은은 길가에서 재석을 기다렸다.차에 타서 시동을 걸려는 순간, 재석의 핸드폰이 울렸다.낯선 번호였다.별생각 없이 전화 받았다.“여보세요?”저쪽에서 아무 말이 없었다.그는 끊으려던 순간, 갑자기 들려온 차가운 웃음소리에 재석의 손이 멈췄다.[역시, 네가 내 번호를 차단했구나. 조재석, 나는 네 친엄마야. 원수도 아니고!” 강서원의 목소리였다.[이제 전화 한 통 하려고 해도 남의 핸드폰 빌려야 하는 내 입장이 뭐가 되니? 내가 얼마나 치욕스러운지 알기나 해?]재석은 아무 말 없이 그 말을 다 듣고 나서야 무겁게 입을 열었다.“어머니, 정은이 안 좋아하면... 앞으로는 안 보이게 할게요.”[그게 무슨 뜻이야?]강서원의 심장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말 그대로예요. 그럼 운전 중이니까 이만...”그 말을 끝으로, 재석은 자기 어머니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조씨 가문의 본가.강서원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다봤다.“재석이가... 내 전화를 그냥 끊어?”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조기봉이 냉소를 흘렸다.“끊으면 안 돼? 진짜 재석이가 성질 없는 줄 아나, 아니면 당신이 ‘엄마’라는 타이틀 하나로 평생 잡아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강서원은 이를 악물었다. 눈빛 속에는 분노와 억울함이 이글거렸다.하지만 남편의 냉정하고 가차 없는 말에는 이상하게도 반박하지 않았다.“내가 재석이어도 당신이 한 짓 보면 다시는 대화 안 걸 거다. 당신이랑은 이런 식으로 얘기해서 풀릴 일이 없어. 차라리 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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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2화

그제야 강서원은 자신이 방금 무심코, 아니, 욱하는 마음에 잘못된 말을 뱉었다는 걸 깨달았다.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자기가 한 짓은 되고, 내가 말하는 건 안 된다는 거야?’조기봉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그런 말, 두 번 다시 내 앞에서 하지 마.”“허... 이제 얼굴까지 굳어지네요? 뭐야, 당신 마음속 그 사람 이렇게 얘기하니까 속상한 거예요?”결혼 수십 년 만에, 강서원이 처음 입에 올리는 이름이었다.하지만 조기봉이 신경 쓰면 쓸수록, 강서원은 더 억울하고 화가 치밀었다.“오미선 그 늙은이가 대체 당신한테 무슨 약이라도 먹였어요? 나랑 결혼하고, 이 세월 나랑 같이 사는 게 그렇게도 참기 힘들고 그렇게도 답답했어요?”“그렇게 정이 깊으면, 애초에 나랑 결혼하지 말고, 오미선이나 평생 지켜주지 그랬어요! 그것도 못할 거면서, 지금 와서 뭐 하는 척이에요?”“강서원!!!”조기봉의 관자놀이가 불끈거렸고,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경련했다.그리고 결혼 이후 처음으로, 이름 석 자를 다 불렀다.하지만 강서원은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결과가 어찌 되든, 조기봉의 감정이 더 상할지 말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지금 이 순간, 자신은 반드시 이겨야 했다.“아픈 데 찔렸다고 벌써 못 버티겠어요? 재석이가 소정은 데려왔을 때, 당신 첫인상부터 그렇게 좋았던 거... 소정은 보면서 다른 사람 생각난 거 아니에요?”“당신도 정말 대단해요. 젊었을 때 못 이룬 오미선과의 인연을, 우리 아들 대로 넘겨서 그 제자랑 이어주면 그 한심한 미련이 채워질 거 같아요?”“그렇게도 아까우면, 당장 오미선이랑 다시 잘해봐요! 난 소정은이 싫어요. 다 가지려고 하면서도 인정은 안 하고, 괜히 고고한 척하는 그 꼴이 딱 오미선이랑 똑같아요!”조기봉의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하지만 마지막 남은 이성이 그를 붙잡았다.그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폭발 직전의 감정을 억눌렀다.“당신이란 사람 정말... 말이 안 통해. 억지 부리고, 꼬투리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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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3화

나석천의 변호사 쪽에서 진행하던 맞소송 절차도 차질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그런데 그 시점에, 청류재단이 뜻밖에 태도를 바꿨다.변호사를 통해 전해온 말은...청류재단이 나무엔터를 포기하고, 나석천에 대한 소송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거센 파도처럼 혼란스럽던 상황이 순식간에 잔잔해졌다.너무 갑작스러운 변화였다.소식을 들은 정은은 잠시 멍해졌다.‘이게 뭐야? 일이 이렇게 되면, 결국... 화해?’전화기 너머, 이미숙이 말을 이었다.[나석천 편집장님은, 혹시 저쪽이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시더라고. 근데 내 생각엔, 청류재단 정도 되는 곳이면 굳이 이렇게 빙빙 돌릴 필요가 없거든.]“소송을 접은 건 좋은 거죠. 편집장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신대요?”[물어봤는데, 나와서 따로 하신대. 원래 텐스출판사에 남아 있던 건, 예전 인연 생각해서였는데... 이번 일로 그 인연도 다 깨졌대.]잠시 숨을 고른 이미숙이, 자신의 계획을 덧붙였다.[난 편집장님이랑 같이 할 생각이야.]나석천은 자금과 강력한 작가 풀, 둘 다 절실했다.그 두 가지 모두를 이미숙은 갖추고 있었다.이미숙은 대신, 나석천이 일상 업무와 잡다한 일을 관리해 주길 원했고, 앞으로의 협력 관계를 더욱 단단히 할 생각이었다.서로에게 필요한 걸 주고받는, 완벽한 한 팀이었다....저녁때, 집으로 돌아온 정은은 재석에게 이 얘기를 꺼냈다.“당신이 사모님한테 부탁했어요?”재석은 고개를 저었다.“아니.”벌써 한 달 넘게, 재석은 강서원과 연락을 끊은 상태였다.중간에 강서원이 직접 전화하기는 체면이 서지 않았는지, 집사를 통해 ‘본가에 와서 밥 먹자’는 식으로 전해왔지만, 그마저도 재석은 단호히 거절했다.“그럼 진짜 이상하네...”정은의 눈에 의문이 번졌다.강서원의 태도가 얼마나 강경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손을 뗄 수 있단 말인가?“일단 밥부터 먹자. 금방 식겠다.”...11월의 J시, 찬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첫눈은 아직 내리기 전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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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4화

조씨 가문이 투자해서 운영 중인 사립 병원.재석이 도착했을 때, 조기봉은 복도 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평소 거의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아버지?”“왔냐.”조기봉은 담배꽁초를 바닥에 비벼 끄고, 쓰레기통에 던졌다.“어머니는요?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조기봉이 서류봉투 하나를 내밀었다.“이게 검사 결과다. 직접 봐.”재석은 봉투를 받아 열었다.“흉선종?”“그래, 확진이야.”검사지를 쥔 재석의 손이 떨렸다.“이 날짜... 지난달이잖아요. 왜 이제야 말씀하셨어요?”잠시 침묵하던 조기봉이 낮게 말했다.“나도 오늘 오전에야 알았다.”만약 병원에서 ‘정기 검진 예약’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조기봉은 병원장인 친구와 차를 마실 일도 없었을 것이다.그 자리에서 병원장이 꺼낸 첫마디는...“사모님 마음 잘 다독여 드리세요. 긍정적으로 생각합시다. 아직 조직검사 결과 안 나왔으니까, 꼭 악성이라고 단정 지을 필요 없어요.”그 순간, 조기봉은 무슨 말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다.“네 어머니가...”여기서 그는 이를 악물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정말 고집이 하늘을 찌른다! 이렇게 큰일을 집에 알리지도 않고, 혼자 병원 와서 수술받다니! 병원장이 말해주지 않았으면, 난 지금도 모르고 있었을 거다.”그날 부부 싸움 이후, 강서원은 지금까지 그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건강검진, 진단, 추가 입원 검사, 그리고 흉선종 확진과 절제 수술까지.그 모든 걸 철저히 숨겼다.조기봉도 아내가 고집이 센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냥 한 번의 오기 때문에 위중한 병에 걸려서 수술했다는 사실조차 말하지 않은 것이다.‘나하고 재석이한테는 화가 나서 그렇다 쳐도...’‘큰아들이랑 둘째한테까지 숨겼다고?’조기봉의 감정은 분노와 안타까움, 원망과 걱정이 뒤섞여 복잡하게 뒤틀렸다....재석은 병실 문 위의 작은 유리창 너머를 들여다봤다.강서원은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고, 침대 옆 스탠드에는 몇 개의 수액 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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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5화

정은이 과일 바구니를 들고, 품에는 꽃다발을 안은 채 병원에 도착했을 때, 병실 안에는 조기봉과 재석이 보이지 않았다.대신, 로펌에서 막 달려온 조지훈과 출장에서 갓 돌아와 먼지를 잔뜩 묻힌 조지언만 있었다.“어? 왜 병실 앞에서 안 들어가고 서 있어요?”간호사는 꽃을 안고 과일바구니를 든 정은을 보고는, 분명 면회를 온 것이 확실한데도 문 앞에서 멈춰 선 걸 이상하게 여겼다.간호사는 말하면서 병실 문을 열었고, 정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뒤를 따라 들어갔다.“어, 정은이 왔네?”지훈이 다가와 정은의 손에서 꽃과 과일을 받아 옆 테이블에 내려놓았다.“아버지랑 재석이 형은 의사 보러 갔어. 곧 올 거니까, 일단 앉아요.”정은은 앉지 않고 병상으로 다가가 조심스레 인사했다.“사모님.”“응.”강서원의 대답은 담백했고, 표정 역시 담담했다.간호사가 다가와 체온계를 꺼내 들었다.“정상이시네요.”간호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병실 문을 닫고 나갔다.넓은 병실에 대화 소리는 사라졌고, 잠깐의 정적이 내려앉았다.‘이 분위기... 참 묘하네.’지훈이 눈을 굴리더니,“어머니, 정은이 형수님이 과일도 사 왔는데, 제가 하나 깎아드릴까요?”“먹기 싫다.”“그럼... 물이라도 좀 드세요? 따뜻한 거예요.”“목 안 말라.”지훈의 말문이 막혔다.잠시 후, 강서원이 불쑥 말을 바꿨다.“배 하나 깎아 와라. 근데 이 방에 과일칼이 없으니까, 1층 간호사실 가서 빌려와.”“네!”지훈은 기다렸다는 듯 후다닥 나갔다.이번에는 강서원의 시선이 지언에게 향했다.“너희 아버지랑 재석이는 의사 만나러 간 지 꽤 됐는데, 왜 아직도 안 오냐? 가서 좀 봐라.”지언의 시선이 잠깐 정은에게 머물렀다.“금방 올 거예요. 전 그냥 여기 있을게요.”“필요 없어. 마침 너희 아버지 핸드폰도 두고 갔으니까, 그거 갖다드려.”지언이 시선을 침대 옆 협탁으로 돌리니, 정말로 조기봉의 핸드폰이 놓여 있었다.“알았어요.”지언이 핸드폰을 집어 들고 병실을 나섰다.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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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6화

“하지만, 결혼해서 같이 사는 건 얘기가 달라. 재석이는 이미 그 길을 가고 있어. 난 재석이의 미래 배우자가 재석이랑 똑같은 성향이길 원하지 않아.”“부부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 거야. 재석이가 밖에서 일하고 연구에 몰두하면, 너는 안에서 가정을 잘 돌봐야지.”“그런데 넌 그걸 할 수도, 할 마음도 없잖아. 정은이 넌 오미선이랑 똑같아. 둘 다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너무 이기적이야. 옛날에 조기봉이 겪었던 고생, 난 재석이 다시 겪게 하고 싶지 않아.”“너도 알고 있지? 너랑 재석이는 서로 안 맞아. 넌... 한 번 크게 사랑한 적 있잖아. 불나방처럼 달려들어서 6년을 태웠지. 남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고, 너무 많이 쏟았어. 그래서 그 사람과 헤어진 뒤, 넌 조심스러워졌고, 사소한 것에도 인색해졌어.”“다시는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아. 설령 내줘도, 이전처럼 모든 걸 걸진 않겠지. 같은 여자 입장에서, 나도 이해해. 한 번 데이면 거기서 배우게 되니까.”“하지만 재석이는 달라. 너 만나기 전엔 연애도 안 해봤어. 그리고 한 번 마음을 주면 끝까지 가는 성격이야.”“한 번 정하면, 모든 걸 거는 애야. 마치 네가 옛날에 강도겸에게 그랬던 것처럼, 재석이도 너를 위해서라면 다 버릴 수 있는 사람이야.”“그래서 말인데...”강서원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 표정엔 자조가 묻어 있었다.“사프란 사건이랑 나석천 일 이후로, 재석이가 자기 친엄마 번호를 차단했어. 마치 죽을 때까지 안 볼 사람처럼.”“너는 기분 좋지? 너 때문에, 재석이가 친엄마도 버렸으니까.”이 순간까지도, 정은은 여전히 차분하고 냉정했다.검은색과 흰색이 뚜렷이 갈린 눈동자가 강서원을 곧게 응시하고 있었다.강서원이 자신을 향해 날을 세울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정은이었지만, 그 화살이 재석을 향하자,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재석 씨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그래, 내 아들이니까 내가 잘 알지. 아무리 나를 차단했다고 해도, 진짜로 인연을 끊을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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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7화

정은은 순간 숨이 턱 막히듯 멈춰 섰다. 말이 끝난 것도 아닌데, 심장이 먼저 쿵 하고 내려앉았다.그리고, 수민이 덧붙였다.[고동건 아이야.]정은의 발걸음이 또 한 번 멈췄다.‘뭐라고?’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지울 거야. 지금 병원에 있어.]수민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차가운 결심이 서려 있었다.수민의 오랜 친구로서, 정은은 안다.지금 수민은 농담하는 것도, 허세 부리는 것도 아니었다.단단히 마음먹었을 때의 그 고집스러움이었다.몇 초간의 정적 끝에, 정은이 물었다.“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을까?”그제야 수민은 길게 숨을 내쉬더니,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옆에 있어 줄래? 나... 좀 무서워.]“갈게.”마침 그 병원은 옆 블록에 있었다.정은이 걸음을 재촉하자, 10분도 안 돼서 수민을 찾을 수 있었다.“정은아.”정은은 곧장 옆자리에 앉아, 수민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살 빠졌네. 수척해졌어. 눈 밑 다크서클까지.”수민이 피식 웃었다.“그 미친놈이랑 해외로 끌려가서 꼬박 두 달...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는데 안 수척하면 이상하지. 근데 괜찮아. 좀만 쉬면 나아질 거야. 다 괜찮아질 거야...”마지막 말에, 수민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스스로를 다독이듯 강조했다.정은은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막상 당사자의 입으로 듣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고동건... 감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작년, 감금 사건이 터지고 수민이 구출됐을 때, 양쪽 집안에도 모든 게 알려졌다.그제야 드러난 건... 모든 게 거짓이었다는 사실.동건과 수민은 집안을 속이기 위해, 황당하게도 ‘계약 연인’ 행세를 했고, 그러다 결국 관계가 깊어진 ‘계약 연인’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그런 행태는, 양쪽 부모 눈에는 말 그대로 패륜이었고, 집안의 수치였다.들리는 말로는, 백지영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혼절했다고 한다.백지영에겐 수민이 하나뿐인 고명딸이었다. 평소엔 까다롭게 굴고, 결혼 얘기를 꺼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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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8화

고창명은 속으로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지만, 꾹 눌러 담았다.그저 시간을 쪼개 아내 곁에 머물며, 하루라도 빨리 아내가 웃음을 되찾길 바랐다.그에 비해, 그 불효자 고동건은...‘외국에서 고생 좀 하는 게 약이 되겠지.’고창명은 그렇게 생각했다....한편, 수민은 한 달 남짓의 휴식기를 마친 뒤, 다시 일터로 돌아왔다.그리고 복귀하자마자 두 건의 대형 계약을 성사시키며, 올해 초 회사 역사상 최연소 부대표 자리에 올랐다.승진 축하 연회에서, 수민은 그야말로 모든 시선과 박수를 한 몸에 받았다.그 순간, 수민의 머릿속엔 그 어떤 남자도 없었다. 오직 앞으로의 사업 확장 계획과, 시장을 장악할 야망뿐이었다.사랑보다 성공이 더 달콤했고, 누군가의 여자친구나 아내로 불리는 것보다, ‘부대표님’으로 불리는 게 더 좋았다.여자가 남성적인 사고를 갖게 되고, 그 사고를 뒷받침할 실력을 갖추면, 권력은 최고의 피부과 시술보다 강력한 효과를 낸다.그래서 그 시기의 수민은 언제나 눈빛이 살아있었고,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그러나, 이 모든 건 동건이 몰래 귀국해 수민을 다시 해외로 끌고 간 순간, 산산조각 났다.수민은 또다시 과거의 악몽으로 떨어졌다.하지만 이번에는 재석이 없었다.그녀는 자신을 구해내야 했다.정은은 수민이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묻지 않았다.묻지 않아도 알았다.지난번보다 더 위험하고, 더 힘들었을 거다.“얼마 됐어?”정은의 시선이 수민의 배로 향했다.“45일. 의사 말로는 약물로도 가능하대. 근데 깨끗하게 안 되면 수술해야 하고.”정은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정말 생각 다 한 거야? 진짜 안 가질 거야?”수민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응, 오기 전에 이미 결심했어. 너 기억나? 우리 대학 때, 내가 얼마나 재벌 로맨스 소설에 빠져 있었는지.”“기억나지. 밤새 보고, 수업 시간에도 보고, 밥도 안 먹고 봤잖아.”정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중에 여주가 임신하고 도망갔다가, 아이를 네댓 살까지 키운 후에 화려하게 귀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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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9화

휠체어는 수민과 정은 두 사람과 1미터 남짓 거리를 두고 멈췄다.남자의 턱에는 거칠게 자란 수염이 덮여 있었고, 머리카락은 한참이나 손질하지 않은 듯 흐트러져 있었다.이마 위 앞머리가 눈까지 내려왔지만, 그 아래 숨겨진 음울하고 서늘한 눈빛까지는 가릴 수 없었다.정은은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다.‘이 사람이 정말 그때 그, 세상에 두려운 것 없던 고동건 맞아?’지금은 동건이 앉아 있고, 수민이 서 있는 모양새였지만, 그 무게감과 압박감은 오히려 동건이 서 있는 듯한 위압감이 느껴졌다.“조수민, 지금 뭐 하는 거야?!!”동건의 목소리는 이빨 사이로 한 글자씩 짜내듯 나왔다.수민은 잠시 숨을 고르고, 정면을 바라보며 맞받았다.“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정말 모르는 거야?”“너, 내 아이 지우려고 했지.”그건 물음이 아니라 단정이었다.“네가 감히?”수민이 코웃음을 쳤다.“왜 못해? 내 몸이고, 내 자궁이야. 내가 원하면 낳고, 원치 않으면 지우는 거지. 넌... 나를 납치하고, 협박하고, 짓밟은, 강・간・범일 뿐이야.”그 세 글자는 마치 날 선 칼날처럼, 동건의 심장을 그대로 꿰뚫었다. 피가 철철 흐르듯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그의 입가엔 여전히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처음부터 너만 순순히, 조용히 있었으면... 이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우린 여전히 남들이 부러워하는 환상의 커플이고, 양쪽 부모가 인정하는 천생연분이었을 텐데.”“하? 네 말이 얼마나 우스운지 몰라? ‘순순히’라는 게 뭐야? 다른 남자와 말 한마디도 하지 말고, 눈길조차 주지 말라는 거?”“일도 하지 말고, 친구도 만나지 말고, 하루 종일 집에 갇혀서 네 부름만 기다리는 거? 그게 순종이야?”수민의 목소리가 단단하게 울렸다.“고동건, 이건 사랑도 아니고, 단순한 집착도 아니야. 이 정도면 넌 병이야. 진짜 병!”“조수민!!!”“정신과 한번 가봐.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충고야.”“내가 병이라면, 그건 너를 너무 사랑해서야. 잊을 수 없어서!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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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0화

‘허... 웃기네.’“왜 날 이렇게 몰아붙이는 건데?”동건이 손을 들어 수민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고개를 들어 자신의 시선과 마주하게 했다.“누가 누굴 몰아붙이는 건데? 다리까지 부러졌으면 좀 조용히 살 줄 알았는데... 그럴 줄 알았으면...”“어쩔 건데? 날 죽이기라도 하게?”수민의 목소리는 비웃음에 젖어 있었다.동건의 입꼬리가 천천히 말려 올라갔다. 그 표정엔 섬뜩한 광기가 배어 있었다.“넌 알잖아. 네가 한마디만 하면, 내가 직접 칼을 네 가슴에 꽂을 수도 있다는 거.”“미친놈!!!”“그래, 난 미쳤어.”동건의 손이 턱에서 힘을 빼더니, 쓰다듬는 동작으로 바뀌었다. 손끝이 수민의 뺨을 따라 미끄러지고, 콧날을 지나, 끝내 입술 위에 닿았다.부드럽게, 그러나 의도적으로 문질렀다.유린하듯, 도발하듯.“난 이미 완전히 미쳐버렸어.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내 말만 잘 들었으면... 이렇게는 안 됐을 텐데.”‘말 잘 들어라... 또 그 말이야...’수민의 인내심이 한순간에 끊어졌다.“나는 사람이야. 네가 가둬 키우는 애완동물이 아니라고! 넌 잠깐은 날 붙잡을 수 있어도, 평생은 못 잡아. 네가 한 번 잡으면 난 한 번 도망칠 거고, 네가 한 번 묶으면 난 한 번 더 풀고 도망칠 거야.”“뱃속에 있는 애로 날 묶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 그 애, 내가 직접 없앨 거야. 이번 생도, 다음 생도, 너랑은 단 1초도 엮이고 싶지 않거든. 왜냐면... 난 네가 역겨우니까!!!”파앗!수민의 뺨에 날아든 동건의 손바닥이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입술이 찢어지고, 피가 천천히 턱선을 타고 흘렀다.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피식 웃더니 곧 크게 웃어버렸다.“하하하... 고동건, 잘 들어. 난 평생 너 같은 미친놈을 사랑하지 않을 거고, 미친놈한테 애를 낳아줄 일도 없어. 절대, 절대 없어.”“조... 수... 민!!!”동건의 얼굴엔 찢어질 듯한 고통과 분노가 동시에 떠올랐다.두 눈이 붉게 충혈되고, 입술이 떨렸다.팔뚝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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