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는 수민과 정은 두 사람과 1미터 남짓 거리를 두고 멈췄다.남자의 턱에는 거칠게 자란 수염이 덮여 있었고, 머리카락은 한참이나 손질하지 않은 듯 흐트러져 있었다.이마 위 앞머리가 눈까지 내려왔지만, 그 아래 숨겨진 음울하고 서늘한 눈빛까지는 가릴 수 없었다.정은은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다.‘이 사람이 정말 그때 그, 세상에 두려운 것 없던 고동건 맞아?’지금은 동건이 앉아 있고, 수민이 서 있는 모양새였지만, 그 무게감과 압박감은 오히려 동건이 서 있는 듯한 위압감이 느껴졌다.“조수민, 지금 뭐 하는 거야?!!”동건의 목소리는 이빨 사이로 한 글자씩 짜내듯 나왔다.수민은 잠시 숨을 고르고, 정면을 바라보며 맞받았다.“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정말 모르는 거야?”“너, 내 아이 지우려고 했지.”그건 물음이 아니라 단정이었다.“네가 감히?”수민이 코웃음을 쳤다.“왜 못해? 내 몸이고, 내 자궁이야. 내가 원하면 낳고, 원치 않으면 지우는 거지. 넌... 나를 납치하고, 협박하고, 짓밟은, 강・간・범일 뿐이야.”그 세 글자는 마치 날 선 칼날처럼, 동건의 심장을 그대로 꿰뚫었다. 피가 철철 흐르듯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그의 입가엔 여전히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처음부터 너만 순순히, 조용히 있었으면... 이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우린 여전히 남들이 부러워하는 환상의 커플이고, 양쪽 부모가 인정하는 천생연분이었을 텐데.”“하? 네 말이 얼마나 우스운지 몰라? ‘순순히’라는 게 뭐야? 다른 남자와 말 한마디도 하지 말고, 눈길조차 주지 말라는 거?”“일도 하지 말고, 친구도 만나지 말고, 하루 종일 집에 갇혀서 네 부름만 기다리는 거? 그게 순종이야?”수민의 목소리가 단단하게 울렸다.“고동건, 이건 사랑도 아니고, 단순한 집착도 아니야. 이 정도면 넌 병이야. 진짜 병!”“조수민!!!”“정신과 한번 가봐.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충고야.”“내가 병이라면, 그건 너를 너무 사랑해서야. 잊을 수 없어서!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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