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은 설을 보내고 나서 비로소 J시로 돌아왔다.“정은아...”게이트를 막 나서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멀지 않은 곳에서 재석이 웃는 눈으로 서 있었다.정은도 웃으며 다가갔고, 재석은 자연스럽게 그녀 손에서 여행용 가방을 받아들었다.오랜 시간 쌓인 호흡 덕분에, 둘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움직임은 매끄럽게 이어졌다. 한쪽 손으론 가방을 끌고, 다른 손으론 정은의 손을 꼭 잡았다.“먼저 밥 먹고, 집에 가자.”정은이 웃음 섞인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벌써 다 계획했어요?”“당연하지.”...J시에 돌아온 이튿날, 정은은 집에만 있기에 지루해 실험실로 향했다.민지와 서준은 아직 민지의 고향에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이번에 종친회 격인 사당 제사에, 민지는 유일하게 들어갈 수 있는 여자였고, 서준은 유일하게 들어간 외부인이었다.‘역시, 권력이라는 건 대단한 거구나.’‘말하지 않아도, 변명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대신 나서주고 변호해 주는 힘.’민지가 속으로 생각하며 정은에게 전화했다.[언니, 나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요? 숙모들이랑 이모들, 사촌 동생들이 날 보는 눈빛이... 질투랑 부러움이랑, 분노랑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어요.][우리 엄마가 그렇게 신나서 웃는 거 처음 봤어요. 예전에 우리 집 재개발 보상금 들어왔을 때보다 더 좋아했죠. 숙모들이랑 얘기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걸음걸이도 당당해지고요.][그리고... 사실 하나 더 있는데... 서준이 나 몰래 우리 아빠한테 가서, 우리 쪽 결혼 풍습이랑 준비해야 할 거, 예물은 어느 정도 하는지 이런 걸 물어봤더라니까요? 언니, 서준이가 나한테도 물어본 적은 있는데... 이건 완전 월권 아니에요?][근데 내가 또 화를 못 내요. 왜냐하면... 내가 몰래 엿들은 거거든요. 아... 진짜 고민돼요. 만약 서준이가 진짜 청혼하면 어떡하죠?][아니, 청혼을 안 해도 문제예요. 아빠가 그렇게 시원하게 대답하는 거 보고, 자기 마음대로 ‘우리 결혼은 확정’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어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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