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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3화

Author: 십일
나석천의 변호사 쪽에서 진행하던 맞소송 절차도 차질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점에, 청류재단이 뜻밖에 태도를 바꿨다.

변호사를 통해 전해온 말은...

청류재단이 나무엔터를 포기하고, 나석천에 대한 소송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거센 파도처럼 혼란스럽던 상황이 순식간에 잔잔해졌다.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소식을 들은 정은은 잠시 멍해졌다.

‘이게 뭐야? 일이 이렇게 되면, 결국... 화해?’

전화기 너머, 이미숙이 말을 이었다.

[나석천 편집장님은, 혹시 저쪽이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시더라고. 근데 내 생각엔, 청류재단 정도 되는 곳이면 굳이 이렇게 빙빙 돌릴 필요가 없거든.]

“소송을 접은 건 좋은 거죠. 편집장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신대요?”

[물어봤는데, 나와서 따로 하신대. 원래 텐스출판사에 남아 있던 건, 예전 인연 생각해서였는데... 이번 일로 그 인연도 다 깨졌대.]

잠시 숨을 고른 이미숙이, 자신의 계획을 덧붙였다.

[난 편집장님이랑 같이 할 생각이야.]

나석천은 자금과 강력한 작가 풀, 둘 다 절실했다.

그 두 가지 모두를 이미숙은 갖추고 있었다.

이미숙은 대신, 나석천이 일상 업무와 잡다한 일을 관리해 주길 원했고, 앞으로의 협력 관계를 더욱 단단히 할 생각이었다.

서로에게 필요한 걸 주고받는, 완벽한 한 팀이었다.

...

저녁때, 집으로 돌아온 정은은 재석에게 이 얘기를 꺼냈다.

“당신이 사모님한테 부탁했어요?”

재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벌써 한 달 넘게, 재석은 강서원과 연락을 끊은 상태였다.

중간에 강서원이 직접 전화하기는 체면이 서지 않았는지, 집사를 통해 ‘본가에 와서 밥 먹자’는 식으로 전해왔지만, 그마저도 재석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럼 진짜 이상하네...”

정은의 눈에 의문이 번졌다.

강서원의 태도가 얼마나 강경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손을 뗄 수 있단 말인가?

“일단 밥부터 먹자. 금방 식겠다.”

...

11월의 J시, 찬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첫눈은 아직 내리기 전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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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381화

    수민은 이틀 전 이미 미페프리스톤을 삼켰다.그리고 다음 단계로 미소프로스톨을 복용했다.처음엔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하지만 두 번째 약을 먹은 뒤, 자궁 수축이 몰려왔고, 곧 피가 멈추지 않고 흘렀다.의사의 말은 간단했다.“약물로 다 배출되지 않았습니다. 소파술이 필요해요.”그렇게 수술이 잡혔다.창백하다못해 투명해질 정도의 얼굴로, 수민은 동건을 올려다봤다.마치 서커스 무대 위의 광대라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이 아이는 이미 없는데... 넌 뭘 지킨다는 거야?”“아!!!!!”동건이 비명을 찢어내듯 질렀다. 휠체어에 앉은 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자기 몸을 내던졌다.바닥에 거칠게 쓰러지며, 동시에 수민의 다리를 붙잡았다.넓은 청백색 병원 환자복 아래로 드러난 건, 가느다랗고 흰 장딴지.그 위를 몇 줄의 붉은 선이 타고 흘렀다.피는 점점 더 번져, 눈이 시릴 만큼 선명하게 대비됐다.동건은 고개를 들어, 바닥에 엎드린 채로 수민을 올려다봤다.그 눈엔 사랑과 증오가 뒤섞여 있었고, 목소리는 낮게 갈라졌다.“왜?!!!”수민은 눈을 내려,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내가 원치 않는 일을, 아무도 강요할 수 없어. 너도 포함해서.”“나 때문에... 이 아이를 지우는 거야? 너도 이 아이의 엄마잖아! 조수민, 넌 정말 잔인하다.”“그래.”수민은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했다.“나는 그 아이의 엄마지만, 동시에 나 자신이기도 해.”수민이 피를 흘리기 시작한 순간, 정은은 이미 복도 끝 당직실로 달려가 의사를 불렀다.그러고 곧 병상 하나를 직접 밀고 돌아왔다.“빨리요! 제 친구가 피를 많이 흘려요!!!”의사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사이, 백지영이 뒤늦게 충격에서 깨어났고, 바로 울먹이며 딸을 껴안았다.수민은 힘이 빠진 몸을 어머니 품에 기대며,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동건의 손을 하나하나 떼어냈다.“이번 생에서, 난 너랑 최대한 멀리 떨어져 살 거야. 다시는... 마주치지 않길.”그건 수민이 동건을 향해 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38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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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3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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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378화

    고창명은 속으로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지만, 꾹 눌러 담았다.그저 시간을 쪼개 아내 곁에 머물며, 하루라도 빨리 아내가 웃음을 되찾길 바랐다.그에 비해, 그 불효자 고동건은...‘외국에서 고생 좀 하는 게 약이 되겠지.’고창명은 그렇게 생각했다....한편, 수민은 한 달 남짓의 휴식기를 마친 뒤, 다시 일터로 돌아왔다.그리고 복귀하자마자 두 건의 대형 계약을 성사시키며, 올해 초 회사 역사상 최연소 부대표 자리에 올랐다.승진 축하 연회에서, 수민은 그야말로 모든 시선과 박수를 한 몸에 받았다.그 순간, 수민의 머릿속엔 그 어떤 남자도 없었다. 오직 앞으로의 사업 확장 계획과, 시장을 장악할 야망뿐이었다.사랑보다 성공이 더 달콤했고, 누군가의 여자친구나 아내로 불리는 것보다, ‘부대표님’으로 불리는 게 더 좋았다.여자가 남성적인 사고를 갖게 되고, 그 사고를 뒷받침할 실력을 갖추면, 권력은 최고의 피부과 시술보다 강력한 효과를 낸다.그래서 그 시기의 수민은 언제나 눈빛이 살아있었고,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그러나, 이 모든 건 동건이 몰래 귀국해 수민을 다시 해외로 끌고 간 순간, 산산조각 났다.수민은 또다시 과거의 악몽으로 떨어졌다.하지만 이번에는 재석이 없었다.그녀는 자신을 구해내야 했다.정은은 수민이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묻지 않았다.묻지 않아도 알았다.지난번보다 더 위험하고, 더 힘들었을 거다.“얼마 됐어?”정은의 시선이 수민의 배로 향했다.“45일. 의사 말로는 약물로도 가능하대. 근데 깨끗하게 안 되면 수술해야 하고.”정은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정말 생각 다 한 거야? 진짜 안 가질 거야?”수민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응, 오기 전에 이미 결심했어. 너 기억나? 우리 대학 때, 내가 얼마나 재벌 로맨스 소설에 빠져 있었는지.”“기억나지. 밤새 보고, 수업 시간에도 보고, 밥도 안 먹고 봤잖아.”정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중에 여주가 임신하고 도망갔다가, 아이를 네댓 살까지 키운 후에 화려하게 귀국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377화

    정은은 순간 숨이 턱 막히듯 멈춰 섰다. 말이 끝난 것도 아닌데, 심장이 먼저 쿵 하고 내려앉았다.그리고, 수민이 덧붙였다.[고동건 아이야.]정은의 발걸음이 또 한 번 멈췄다.‘뭐라고?’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지울 거야. 지금 병원에 있어.]수민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차가운 결심이 서려 있었다.수민의 오랜 친구로서, 정은은 안다.지금 수민은 농담하는 것도, 허세 부리는 것도 아니었다.단단히 마음먹었을 때의 그 고집스러움이었다.몇 초간의 정적 끝에, 정은이 물었다.“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을까?”그제야 수민은 길게 숨을 내쉬더니,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옆에 있어 줄래? 나... 좀 무서워.]“갈게.”마침 그 병원은 옆 블록에 있었다.정은이 걸음을 재촉하자, 10분도 안 돼서 수민을 찾을 수 있었다.“정은아.”정은은 곧장 옆자리에 앉아, 수민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살 빠졌네. 수척해졌어. 눈 밑 다크서클까지.”수민이 피식 웃었다.“그 미친놈이랑 해외로 끌려가서 꼬박 두 달...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는데 안 수척하면 이상하지. 근데 괜찮아. 좀만 쉬면 나아질 거야. 다 괜찮아질 거야...”마지막 말에, 수민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스스로를 다독이듯 강조했다.정은은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막상 당사자의 입으로 듣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고동건... 감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작년, 감금 사건이 터지고 수민이 구출됐을 때, 양쪽 집안에도 모든 게 알려졌다.그제야 드러난 건... 모든 게 거짓이었다는 사실.동건과 수민은 집안을 속이기 위해, 황당하게도 ‘계약 연인’ 행세를 했고, 그러다 결국 관계가 깊어진 ‘계약 연인’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그런 행태는, 양쪽 부모 눈에는 말 그대로 패륜이었고, 집안의 수치였다.들리는 말로는, 백지영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혼절했다고 한다.백지영에겐 수민이 하나뿐인 고명딸이었다. 평소엔 까다롭게 굴고, 결혼 얘기를 꺼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376화

    “하지만, 결혼해서 같이 사는 건 얘기가 달라. 재석이는 이미 그 길을 가고 있어. 난 재석이의 미래 배우자가 재석이랑 똑같은 성향이길 원하지 않아.”“부부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 거야. 재석이가 밖에서 일하고 연구에 몰두하면, 너는 안에서 가정을 잘 돌봐야지.”“그런데 넌 그걸 할 수도, 할 마음도 없잖아. 정은이 넌 오미선이랑 똑같아. 둘 다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너무 이기적이야. 옛날에 조기봉이 겪었던 고생, 난 재석이 다시 겪게 하고 싶지 않아.”“너도 알고 있지? 너랑 재석이는 서로 안 맞아. 넌... 한 번 크게 사랑한 적 있잖아. 불나방처럼 달려들어서 6년을 태웠지. 남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고, 너무 많이 쏟았어. 그래서 그 사람과 헤어진 뒤, 넌 조심스러워졌고, 사소한 것에도 인색해졌어.”“다시는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아. 설령 내줘도, 이전처럼 모든 걸 걸진 않겠지. 같은 여자 입장에서, 나도 이해해. 한 번 데이면 거기서 배우게 되니까.”“하지만 재석이는 달라. 너 만나기 전엔 연애도 안 해봤어. 그리고 한 번 마음을 주면 끝까지 가는 성격이야.”“한 번 정하면, 모든 걸 거는 애야. 마치 네가 옛날에 강도겸에게 그랬던 것처럼, 재석이도 너를 위해서라면 다 버릴 수 있는 사람이야.”“그래서 말인데...”강서원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 표정엔 자조가 묻어 있었다.“사프란 사건이랑 나석천 일 이후로, 재석이가 자기 친엄마 번호를 차단했어. 마치 죽을 때까지 안 볼 사람처럼.”“너는 기분 좋지? 너 때문에, 재석이가 친엄마도 버렸으니까.”이 순간까지도, 정은은 여전히 차분하고 냉정했다.검은색과 흰색이 뚜렷이 갈린 눈동자가 강서원을 곧게 응시하고 있었다.강서원이 자신을 향해 날을 세울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정은이었지만, 그 화살이 재석을 향하자,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재석 씨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그래, 내 아들이니까 내가 잘 알지. 아무리 나를 차단했다고 해도, 진짜로 인연을 끊을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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