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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hat ng Kabanata ng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Kabanata 1401 - Kabanata 1410

1725 Kabanata

제1401화

정은은 오늘 밀크티 색감의 실크 롱드레스를 입었다. 부드러운 소재과 몸매를 따라 흐르는 핏이, 정은의 몸이 만드는 곡선을 완벽하게 드러냈다.잘록한 허리, 곧게 뻗은 긴 다리, 단아하고 기품 있는 얼굴.아름답긴 정말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 눈에 띄었다.정은은 이렇게까지 주목받고 싶지 않았다. 하물며 여긴 강서원이 만든 자리였다.강서원은 처음부터 정은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정은이 분위기를 못 읽고 튀어 보이면, 더 미움만 사게 될 뿐이었다.그래서 정은은 드레스 위에 재킷을 걸쳤다. 따뜻했고, 원피스의 화려함을 적당히 가리며, 보기에도 나쁘지 않았다.재석은 정은의 그런 속사정을 알 리 없었다.“왜 재킷을 걸쳤어?”“따뜻하잖아요.”“안은 난방 빵빵한데? 그냥 드레스만 입어도 돼.”정은은 한숨을 삼키고 결국 솔직하게 말했다.“재석 씨, 나 오늘은 여기 손님으로 왔어요.”“그래서?”“손님이 제일 하면 안 되는 게 뭔지 알아요? 호스트보다 튀는 거.”재석이 잠깐 멍해졌다.“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은 당신 부모님이지, 우리 둘이 아니잖아요.”...둘은 늦게 온 건 아니었지만, 재석과 정은이 도착했을 때 소진헌과 이미숙은 먼저 와 있었다.“아빠, 엄마.”정은이 먼저 다가갔다.재석도 자연스럽게 함께 인사했다.“아버님, 어머님.”“오랜만이네, 조 교수. 요즘 살 좀 빠진 것 같지 않나?”소진헌이 웃으며 재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너무 무리하지 말고, 몸도 좀 챙겨.”“네, 감사합니다, 아버님.”그때 이미윤은 사람들 틈에서 이미숙 가족이 화기애애하게 웃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그 온화하고 완벽한 장면이, 눈을 찌르듯 아프게 들어왔다.‘왜?’남편은 이미숙 때문에 자신을 버렸고, 아들은 정은 때문에 먼 나라로 떠나버렸다.양부모는 잔인하게도 이미윤과의 모든 연을 끊었다.이제 이미윤은 부모도 남편도 자식도 없는 혼자가 됐다.그런데 그 모든 불행의 원흉인 이미숙과 정은이... 저렇게 환하게 웃으며 자신이 평생 갈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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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2화

아무도 조씨 가문과 척질 만큼 어리석게 행동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그런데도 꼭 누군가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까지 분위기에 휩쓸리게 했다.순식간에 현장은 수군거림으로 가득 찼다.“설마... 강 대표님 전 여자친구가 조 교수님 현 여자친구랑 같은 사람이야?”“강 대표님이 아직도 소정은 씨를 못 잊었다던데, 오늘 보니 확실히 이유가 있네.”“대단하다! 강씨 가문이든 조씨 가문이든, J시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인데... 소정은 씨, 진짜 대단하네. 한 사람과 헤어졌어도 또 누군가 만나는데, 그것도 점점 더 좋은 집안으로.”“...”물론, 그 속에서도 상황을 똑바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그렇게 말하면 여자 쪽이 되게 안 좋은 사람처럼 들리잖아. 소정은 씨는 이춘재 어르신의 외손녀야. 이씨 가문에서 애지중지 키운 분이라고.”“이씨 가문? 예전에 J시 재계 1위였던 그 집안?”“응. 30년 전만 해도 조씨 가문보다 훨씬 더 이름이 높았어. 다만 큰일이 있어서, 이춘재 어르신 부부가 해외로 나간 뒤로는 점점 조용해진 거지. 그래도 몇 대에 걸쳐 쌓은 재산이 어마어마해. J시 ‘이원’ 알지? 원래 그게 이씨 가문 별장이었어.”“아,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예전에 이춘재 어르신 회갑연 때, 잃어버린 친딸을 찾았다고 공식 발표했잖아? 그리고 친 외손녀도 같이 소개했는데, 그게 바로 소정은 씨였어!”“맞아, 나도 기억나네...”“...”이미윤은 사람들 틈에서, 점점 바뀌어 가는 여론을 들으며 표정이 한층 더 광기로 물들었다.그때 강서원이 정은의 손을 놓고 변리아를 향해 손짓했다.리아는 그걸 보자마자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고, 못 본 척하며 현우를 붙잡았다.“응가하고 싶어? 그래, 엄마가 데려가 줄게.”조지언이 끼어들었다.“내가 데리고 갈게요. 남자 화장실이 편하잖아요.”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당신네 집 화장실이 남녀 따로 있어요?”지언이 머쓱하게 웃었다.“아, 그건 아닌데요.”리아가 재빨리 말을 잘랐다.“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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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3화

사람과 사람이 어울린다는 건,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예전엔 서영숙이 정은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지금은 강서원이 정은을 좋아하지 않는다.정은은 문득 생각했다.‘나는 원래 시어머니 복이 없는 걸까?’‘이런 좋은 집안의 어른들한테는 왜 이렇게 미움만 살까?’그녀는 아무렇지 않다고, 상관없다고 스스로 수없이 말했지만, 정작 지금처럼 부모님 앞에서, 이렇게 은근히... 따돌려지다니, 아무리 다독여도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았다.‘그래, 나도 어쩔 수 없이 신경 쓰는구나.’“재석 씨, 나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요.”말을 마친 정은은 뒤돌아섰다.“정...”재석은 ‘같이 나갈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까지 차오른 말이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재석의 마음속에는 분노, 수치, 죄책감, 그리고 후회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이럴 줄 알았으면...!’‘이럴 줄 알았으면 초대장 따윈 절대 건네지 않았을 텐데... 왜...’재석의 시선이 강서원을 향했다.그 눈빛에는 어머니에 대한 낯섦과 실망이 깃들어 있었다.책망과 질문이 뒤섞였지만, 끝내는 허탈한 자조와 자기혐오로 가라앉았다.가슴속엔 뭔가가 잔뜩 차올라,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마치 이성의 끈을 끊고, 그대로 폭발할 듯한 감정이었다.강서원은 아들의 시선을 감히 마주하지 못했다.애써 그쪽을 보지 않으며, 입가에 붙인 단정한 미소로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평소처럼 사교에 집중했다.그러나 재석의 고통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시선을 거둔 순간, 이미숙과 눈이 마주쳤다.그 매서운 눈빛 앞에서, 재석이 느낀 당혹과 죄책감은 숨길 곳이 없었다.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몰려왔다.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강서원이 스스로는 치밀하다고 생각한 이 판과 은근히 감춘 악의는... 정작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손님들의 눈은 속이지 못했다.하물며 정은의 부모인 이미숙과 소진헌이 그 신호를 놓칠 리 없었다.어쩌면, 그게 강서원이 노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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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4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나요?”정은이 물었다.“사모님 본인의 결혼 기념일이잖아요. 남편, 아들들, 그리고 사모님이 초대한 손님들. 그중 대부분은 사모님을 진심으로 아끼고, 축하해 주러 온 사람들이에요.”“그런데 사모님은 그 손님들을 이용해 나를 함정에 빠뜨렸어요. 제 부모님 앞에서, 손님들의 입을 빌려 저를 모욕했죠.”“물러나게 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굳이 가장 불쾌하고 치졸한 수를 골라 쓰셨네요.”“정말... 대단하세요. 강서원 여사님, 제 기준을 또 한 번 갱신하셨어요.”“다행히...”말을 멈춘 정은을 향해 강서원이 미간을 좁혔다.“다행히 뭐가?”“다행히, 사모님의 세 아들은 사모님 같지는 않아요. 아드님들은 바르고, 훌륭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들이에요.”“너...”“저는 재석 씨가 초대장을 건넸다고 해서 원망하지 않아요.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큰 병을 앓고 아직 회복 중인 어머니가 이런 잔꾀를 부릴 거라고...”“재석 씨는 계속해서 사모님과 저 사이를 어떻게든 풀어 보려고 했어요.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저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 따라가 주기로 했죠. 혹시나...”“혹시나 저와 사모님 사이에 어떤 균형이 생겨서, 재석 씨가 더는 힘들어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고...”“그래서 저는 번번이 마음을 누그러뜨렸고, 재석 씨의 부탁을 들어줬어요. 하지만 사모님은 그럴 만한 가치가 없어요.”정은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한 모든 것, 그게 아무 가치도 없다고요.”강서원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터져 나왔다.“네가 뭘 안다고?! 나는 재석이를 위해서...”“하... 자기만 옳다는 착각이에요.”정은의 입꼬리가 비웃듯 휘어졌다.“병원 얘기를 꺼내셨으니, 저도 말할게요. 그날 이후 저는 헤어지기로 마음을 정했어요. 그런데 그걸 재석 씨가 알아챘죠. 말은 안 해도, 마음속에 그런 결심이 생기면, 함께 지내면 티가 나기 마련이잖아요.”“두 번째로 병원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재석 씨가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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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5화

정은의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다리가 휘청거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다.하지만 지금 여기서 쓰러질 순 없었다.“오빠, 제일 좋은 의사에게... 연락했어요?”정은은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는 걸 똑똑히 들었다.그때, 강서원조차 이쪽을 힐끔 돌아봤다.[호주 최고의 의료팀이 이미 모였어.]현빈의 대답이었다.정은은 몸이 또 한 번 흔들렸다. 입술을 깨물며 겨우 물었다.“정말...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 거예요?”그건 기도이자 절망이었다.[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 하지만...]현빈의 목소리에 억눌린 한숨이 묻어났다.정은의 눈물이 한순간에 터졌다.“오빠... 어떡해요? 나... 어떻게 해야 해...”모든 기운이 빠져나가, 목소리는 갈라지고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버렸다.그저 본능처럼 도움을 청했다.다행히 현빈은 침착했다.[정은아, 잘 들어. 아직 24시간 남았어. 내가 전용기를 공항에 대기시켜 놨어. 지금 바로 공항으로 가. J시에서 호주까지 15시간이니까, 순조롭게 오면 오미선 교수님...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어.]정은은 눈물을 훔칠 틈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지금 당장 갈게요.”[그리고...]현빈이 잠시 머뭇거렸다.“오빠,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교수님이... 무슨 말이라도 하셨어요?”정은의 눈물이 더 거세졌다.[진정해... 교수님이 의식이 희미해진 상태에서 네 이름을 부르다가, 다른 사람 이름도 불렀어.]“누구요?”[기봉 씨...]그 이름을 듣는 순간, 정은의 숨이 잠시 멎었다.현빈은 그게 자신이 아는 ‘조기봉’인지 확신이 없었지만, 말없이 굳어버린 정은의 표정을 보고, 확신했다.‘맞아... 조기봉 회장님...’정은의 떨리던 시선이, 서서히 단단해졌다.“알았어요. 준비할게요.”통화를 끊자마자, 정은은 성큼성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그 모습을 본 강서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따라붙더니, 몸으로 길을 막았다.“이번엔 절대 못 피해! 분명히 말해. 헤어질 거야, 말 거야?!”정은은 도저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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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6화

“정은아... 너, 너 나한테 왜 이러는 거니?”정은은 비웃음을 흘리며 재석을 한 번 보고, 다시 강서원을 바라봤다.그 눈빛엔 전에 없던 차가움과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그게 사모님이 원하던 그림 아닌가요? 아들 앞에서 제가 얼마나 독하고, 거칠고, 비이성적인 여자인지 똑똑히 보여주려고. 축하해요. 목표 달성하셨네요.”강서원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사모님이 한 말 중에 맞는 게 하나 있었어요. 자기가 아끼는 사람을 위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을 희생하는 건 당연하다고. 그래서 미안하지만, 저도 그렇게 하려고요.”강서원과 재석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사이 정은은 갑자기, 상황을 살피러 나온 조기봉의 손목을 움켜쥐었다.“정... 정은아?”예상치 못한 행동에 조기봉이 당황했다.“이게 무슨 일이야?”“잘 들으세요. 한 번만 말합니다. 제 지도교수님, 오미선 교수님은 24시간밖에 안 남았어요.”“회장님, 호주로 가서 교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뵐 건지, 말 건지, 지금 결정하세요. 드릴 시간은 30초입니다.”조기봉은 그대로 굳어졌다.“24시간밖에 안 남았다니? 마지막 모습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설명 좀 해!”“설명할 시간 없습니다. 안 믿으셔도 돼요. 남은 시간, 15초...”조기봉은 멀리서 자신을 지켜보는 아내를 한 번, 아무것도 모른 채 눈만 굴리는 막내아들을 한 번, 그리고 소란을 듣고 안에서 몰려나온 손님들을 한 번 훑어봤다.그 순간,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은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같이 가자.”정은은 곧장 현관 쪽으로 발을 옮겼고, 조기봉이 그 뒤를 바로 따랐다.강서원의 눈에는 여전히 연기의 잔향이 남아 있었지만, 남편이 정은과 단 몇 마디 나누고는 홀린 듯 따라나서는 모습에, 그 감정은 금세 의문과 당혹으로 바뀌었다.“여보?! 어디 가는 거예요?!”조기봉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오직 정은의 말만 맴돌았다.‘제 지도교수님, 오미선 교수님... 24시간밖에 안 남았어요.’‘24시간...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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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7화

헬기가 공항 활주로에 내릴 때는 현지 시각 오전 10시.원래 15시간이 걸릴 예정이었던 비행은, 기류와 운이 맞아 약 12시간 만에 도착했다.정은과 조기봉은 단 1분도 지체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심현빈이 준비해 둔 차량에 올라타,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그리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침대에서 온몸에 관을 꽂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오미선 교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오미선은 숨결은 가늘고, 생명은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정은은 이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정은아, 조 회장님.”현빈이 다가와 낮게 인사했다. 목소리엔 무거움이 묻어 있었다.“오빠, 의사는요? 왜 안 보여요?”현빈의 눈빛에 순간적인 안쓰러움이 스쳤다.그 역시 더는 손쓸 방법이 없었다. 남은 건 지켜보는 것뿐이라, 담당 의사도 자리를 비운 참이었다.정은의 몸이 비틀렸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그러나 현빈이 손을 뻗기 전에 그녀는 이를 악물고 스스로 버텼다.정은은 천천히 침대 앞으로 걸어갔다. 손을 잡으려 했지만, 오미선의 손등은 주삿바늘 자국으로 온통 멍투성이였다.그 손등은 여러 링거 라인이 연결돼 있어, 제대로 잡을 수도 없었다.결국 정은은 오미선의 새끼손가락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이어서 허리를 숙이고, 얼굴을 귀 가까이 가져가 마치 예전처럼 집으로 찾아와 인사드리던 날처럼, 웃으며 말했다.“교수님, 저 왔어요. 왜 이렇게 주무세요? 한 번만 눈 떠서 저 좀 봐주시면 안 돼요?”“며칠 전 통화할 땐 그렇게 건강하시다더니... 잘 먹고 잘 자고, 곧 섬으로 돌아갈 거라면서요. 또 거짓말하신 거예요?”“저 화 안 낼 거 아는 거죠? 그러니까 이렇게 한 번, 두 번씩 속이시는 거잖아요?”“근데 이번엔... 저... 정말 화났어요... 그러니까... 일어나서 딱 한 마디만 해주세요...”말끝이 떨리더니, 정은도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그때, 움직이지 않던 오미선의 새끼손가락이 살짝 떨렸다.정은은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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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8화

“몇 살인데... 아직도 예전처럼 우는 거예요?”“누가 울었다고 그래요. 안 울었어요.”“네, 네. 안 울었어요.”수십 년 전에도 주고받았던 대화가, 세월을 건너 다시 반복됐다.조기봉과 오미선은 여전히 예전의 그들이었지만, 또 같지 않았다.“기봉 씨... 방금 꿈꾼 것 같아요. 기봉 씨 꿈.”“내 꿈? 무슨 꿈이에요?”조기봉은 울음을 삼키며 최대한 담담하게 물었다.오미선의 시선이 서서히 멀어졌다. 기억 속 어딘가로 잠겨 들어가는 듯했다.“기봉 씨가 사람들이랑 내기하고 대회에 나간 거예요. 팀원들이 참 단합 잘 돼서, 결국 1등을 했죠.”“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기봉 씨는 저한테 한 번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어요. 우린 아무런 접점도 없었죠. 난 조교, 기봉 씨는 학생. 서로 보이긴 하지만 절대 겹치지 않는 평행선처럼.”“틀렸네요. 그 꿈, 현실과 완전 반대였어요.”“그럼... 현실은 내가 내기하고 대회에 나갔다가 도중에 팀원들한테 버려져서 혼자가 됐고, 그때 기봉 씨가 손 내밀어 줬죠. 우리 둘이 함께 난관을 뚫고 나가서, 결국 1등을 했어요.”“그리고... 우린 연애를 시작했죠. 몰래... 난 동료 몰래... 기봉 씨는 친구들 몰래...”“식당 앞에서 우연히 만난 척하면서 당당히 같이 밥 먹고... 스치듯 지나가면서, 마침 손이 부딪힌 김에 슬쩍 잡기도 하고...”“학교 은행나무길 옆, 아무도 모르는 구석에서... 내가 처음으로 기봉 씨한테 입 맞췄어요. 심장이 모터처럼 뛰는데, 기봉 씨는 날 풋내기라고 놀리면서도... 사실 기봉 씨에게도 내가 첫사랑이었잖아요.”오미선의 눈빛이 조기봉의 말에 스며든 추억 속으로 젖어 들었다.그동안 마음 깊숙이 숨겨놨던 장면들이 하나씩 피어올랐다.“아직도 기억하네요.”“잊을 수가 없어요. 평생 못 잊어요.”오미선이 힘겹게 손을 들어, 조기봉의 얼굴을 쓰다듬으려 했다.세월이 흘러 청년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 순간만큼은 옛날의 기봉이 그대로 보였다.“기봉 씨... 날 잊어요.”“와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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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9화

오미선 교수의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최대한 간소하게 치러졌다.하지만 추도식 날, 영정이 놓인 빈소 안팎은 꽃과 근조기로 가득 찼다.학교에서 보낸 것과 동료와 제자들이 보낸 것, 학부모들이 보낸 것도 있었다.빈소 바깥 복도 양쪽까지 빽빽하게 들어찼다.자식이 없었던 오미선 교수 대신, 정은이 직접 영정을 들고 상주로서 손님들을 맞았다.마치 친딸처럼 찾아온 모든 조문객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호주 병원에서 발급받은 진단서와 검사 기록은 한 장도 빠짐없이 국내로 가져왔다.그 안에는 오미선 교수가 PO-X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급성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명확히 기록돼 있었다.관련 부처의 심사 끝에, 오미선 교수는 ‘순직 열사’로 추서되어, 국립묘지에 안장됐다....묘비 앞에 선 정은은 허리를 숙여 붉은 동백꽃 한 다발을 내려놓았다.꽃송이는 영정 바로 아래에 놓였다.붉고 또렷하며, 활짝 피어 있었다.“교수님, 올해 동백이 유난히 예쁘게 피었어요. 교수님이 가장 좋아하셨잖아요.”“집 정원은 걱정 마세요. 제가 자주 가서 돌볼게요. 교수님이 아끼던 꽃들, 절대 소홀히 안 할 거예요.“아, 애영 아주머니가 며칠 전에 선물 바리바리 들고 오셨어요. 손주가 태어나서 이제 돌 지난 지 얼마 안 됐다네요. 교수님께 선물도 드리고...”‘하지만 웃으며 왔다가, 결국 눈물로 돌아간 애영 아주머니...’정은은 고개를 숙였다.“제가 마음대로, 교수님이 주신 비취 팔찌 한쪽을 드렸어요. 교수님도 그러셨을 거잖아요. 기쁠 때는 기억이 되고, 힘들 땐 도움이 되니까.”바람이 살짝 스쳤다.이른 봄의 기운이 바람에 묻어 있었다.정은은 묘 앞에 주저앉아 한참을 이야기했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셨다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교수님, 해가 지네요. 다음에 또 올게요.”묘비 속 사진을 바라보며 살짝 웃은 뒤, 정은은 몸을 돌렸다.석양의 빛이 영정 위에 내려앉아, 마치 사진 속 사람에게 황금빛 후광을 드리운 듯했다.바람이 스치고, 동백 향이 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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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0화

재석의 손이 허공에서 굳어버렸다.“이유요? 조 교수님처럼 영리한 분이라면, 이미 마음속에 답이 있을 텐데요. 다만 믿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저한테 다시 확인하려는 거겠죠.”“정은아...”재석을 바라보는 정은의 눈빛엔 여전히 온기가 있었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단호하고 냉정했다.“조 교수님은 조 교수님 나름의 책임과 도리가 있고, 저는 저만의 자존심과 지향이 있어요.”“이미 그 둘이 공존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면, 왜 서로 놓아주지 않는 거죠? 자유롭게...”재석이 고개를 저었다.“난 안 놔. 네가 약속했잖아.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고... 그런데 왜 인제 와서 물러서는 거야?”“미안해요. 노력했어요... 버텨보려고도 했어요. 하지만 노력만으로 바꿀 수 없는 것도 있어요.”정은은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서영숙에게 온 마음을 쏟았지만, 돌아온 건 차가운 거부와 모욕뿐이었다.강도겸을 위해 7년을 버텼던 자신에게, 조재석을 위해 또 다른 7년을 바칠 여유는 없었다.‘이게 강서원 여사가 말한 ‘사랑이 부족하다’는 걸까?’‘하지만 이제 상관없어.’‘7년 동안 배운 걸 왜 또다시 7년을 버려가며 반복해야 하지?’‘그러면 과거의 7년은 무슨 의미가 있겠어.’강도겸은 강도겸이고, 조재석은 조재석이다.누굴 사랑할지, 누가 사랑할 가치가 있는지... 정은은 더 이상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연회 날, 강서원 여사님하고 얘기 다 끝냈어요. 결국... 완전히 틀어졌죠. 강서원 여사님의 아들은 여사님께 그대로 돌려 드렸고, 대신 강서원 여사님이랑 결혼기념일을 보내려던 남편을 내가 데리고 갔죠.”“망설이긴 했어요. 근데 결국 강서원 여사님이 깨닫게 해줬죠. 사람은 다 자기만의 이기적인 마음이 있다는 걸.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강서원 여사님과 오미선 교수님 사이에서... 나는 교수님을 선택했어요.”정은은 일을 끝까지 몰아붙이지 않았다. 그저 조기봉에게 사실만 전했고, 호주로 함께 갈지 말지는 그의 선택이었다.강서원이 보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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