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석과 정은이 L시에 머문 지 사흘 차였다.그동안 소진헌은 마치 요리 대회를 준비하듯, 자신이 할 줄 아는 모든 음식을 만들어냈다.재석은 묵묵히 그 옆에서 주방 보조 역할을 했다.채소를 다듬고, 국물을 저으며...‘이제야 진짜 가족이 된 기분이야.’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평화로웠다.이미숙과 정은은 그 덕분에 오랜만에 ‘숟가락만 들면 되는 생활’을 했다.밥상 앞에서 모녀가 마주 앉아 웃는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사흘 뒤, 두 사람은 다시 J시로 돌아가야 했다.소진헌은 수업이 있어 배웅하지 못했고, 이미숙이 대신 운전해 KTX역까지 데려다줬다.플랫폼 앞에서, 이미숙이 정은을 꼭 끌어안았다.“정은아, 잘 생각해 봤어? 정말 조 교수야?”정은은 눈을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처음부터... 항상 그 사람이었어요.”이미숙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그래, 엄마는 네 선택 믿을게.”그녀는 손끝으로 딸의 머리카락을 한 번 쓸어내리고, 천천히 몸을 떼었다.정은이 탑승구를 지나 돌아서자, 이미숙의 입꼬리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눈가는 벌써 촉촉해졌다.‘엄마란 참, 결국 자식을 떠나보내는 사람이구나.’그녀는 늘 딸을 배웅했다.학교에 처음 가던 날, 첫 직장에 출근하던 날.그리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는 오늘까지.그게 어머니의 사랑이었다.말이 아닌, 오래된 ‘배웅’의 형태로 남는 사랑....J시로 돌아온 다음 날, 정은은 아침 일찍 총장실로부터 호출받았다.“정은아, 우리가 이번에 논의해 봤는데 말이야...”송영한 총장이 서류를 넘기며 말을 이었다.“이번 포럼은 무한 실험실 쪽에서 서비대를 대표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어. 네 생각은 어때?”그가 말하는 ‘포럼’은 바로 세계 생명과학 포럼이었다.과학기술 협회와 생명과학학회가 공동 주최하는 행사로, 국내 생명과학 분야에서 가장 규모 있고, 가장 권위 있는 학술 교류의 장이었다.지난 회차에는 25개국에서 300여 명의 석학이 참석했고, 그 가운데에는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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