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Chapter 1681 - Chapter 1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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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1화

“네가 네오젠텍 대표야?”“맞아.”“각종 로봇 시스템 업그레이드 전문이지?”“정확히 말하자면 업그레이드라기보다, 기존 기능에 기반해서 고객이 원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추가하는 거야.”“그렇게 하면 신구 호환이 가능하지. 그러니까... 로봇의 본래 색깔을 유지한 채로 새로운 기능을 입히는 셈이지.” 정은은 간단히 ‘구름’에 대한 요구사항을 설명하고 물었다.“할 수 있어?”시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했다.“설명이 너무 간단하네. 세부적인 건 내가 좀 더 들여다봐야 할 것 같아. 오전 일정 끝나고, 점심 같이 먹을래?”정은은 살짝 미소 지었다.“그래.”...어제 갔던 그 식당.오늘도 여전히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하지만 시호가 미리 자리를 예약해 둔 덕분에, 정은 팀은 곧장 안으로 들어가 창가 쪽 최고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민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여기 예약이 돼요? 어제 직원한테 물어봤는데 안 된다고 하던데요?”시호가 어깨를 으쓱였다.“아마 민지 씨가 물어볼 때, 팁은 안 줬겠죠?”“팁이요? 여긴 국내인데요!”“그럼 표현을 바꿔볼까? 팁이 아니라, 커피값 정도로 해두죠.”“...”서준은 민지가 앉을 의자를 당겨주며 말했다.“앉아.”그리고 정은이 앉을 의자도 당겨주려는데, 누군가가 그보다 먼저 의자에 손을 뻗었다.시호가 봄 햇살처럼 부드럽게 웃었다.“앉아, 정은아.”‘정은아?’민지와 서준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엔 묘한 기류가 스쳤다.정은은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았다.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민지가 서준을 힐끗 바라봤다.‘어제까지만 해도 저 사람이랑 거리를 두겠다고 하지 않았어?’서준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끝까지 보고 나서 얘기하자.’민지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역시 줄 안 서는 게 최고지!’그때 시호가 메뉴판을 내밀며 말했다.“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시켜요. 오늘은 내가 살게요.”민지의 눈이 반짝였다.‘와! 공짜는 언제나 옳지!’...식사 내내 시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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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2화

“좋아.”정은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답했다. 상대가 무슨 의도로 다가오는지 모를 땐, 일단 부딪쳐서 알아내면 된다.‘끝까지 가보자. 어차피, 잘 숨긴 칼날은 언젠가 드러나게 돼 있지.’점심에 갔던 그 식당, 이번엔 같은 곳이지만, 자리 배치는 달랐다.조용한 룸.“여기에 이런 룸도 있는 줄은 몰랐네. 임 대표, 참... 인맥이 대단해.”시호는 자리에 앉으며 와인잔을 들어 정은 앞에 밀어줬다.“그 말, 칭찬으로 들어도 돼?”“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래.”“이게 인맥이 대단한 거라고?”시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너는 아직 나를 다 모른다는 뜻이네.”“그래?”정은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그 말은, 네가 두 얼굴을 하고 있다는 뜻이야? 아니면... 다른 이름이라도 있는 거야?”“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래.”시호는 두 손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정은이 전에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식이었다.이번엔 시호가 바로 메뉴를 골랐다. 점심때처럼 민지나 서준의 눈치 볼 필요도 없으니, 선택은 빠르고 단호했다.정은은 느꼈다.시호의 말투, 표정, 행동.모두가 의도된 강압이었다.‘겁을 주려는 건가? 아니면 나를 떠보는 건가?’‘아니, 이제는 아예 속셈을 감출 생각도 없군.’“이 정도면 되겠지?”물음표가 붙어야 할 말투였지만, 시호의 말엔 정은을 배려하는 단 하나의 질문도 없었다.다음 순간, 시호는 식당 직원을 향해 말했다.“이 정도면 돼요. 빨리 음식 가져와요.”“네, 알겠습니다.”정은은 그제야 본론을 꺼냈다.“구체적인 방안은?”“왜 그렇게 급해? 밥부터 먹고 얘기하자.”명령이었다.타협의 여지가 없는, 단단한 어조.정은은 웃었다.그리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좋아. 그럼 나중에, 시간이 맞을 때 다시 얘기해.”‘복종 테스트? 미안하지만, 사람 잘못 골랐어.’정은은 문을 열고 그대로 나갔다.순간, 시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부드럽던 미소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눈빛엔 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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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3화

재석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정은이한테 관심 있는 사람 많아요. 그 사람들 일일이 다 신경 쓰면 너무 피곤하지 않겠어요? 전 정은이 힘들어하는 게 제일 싫은데요.”시호는 잠시 말을 잃었다.“조 교수님, 참... 대단하시네요. 인기 많은 여자친구에 대해 그렇게 마음이 여유롭다니요.”“여유요?” 재석이 되물었다.“뭘 두고 하는 말입니까? 달려드는 벌이 많아서? 아니면, 떨어지는 꽃이 있어서?”시호의 눈썹 사이가 미세하게 떨렸다.재석은 그대로 말을 이어갔다.“벌이 많은 건 꿀이 달기 때문이죠. 그걸 탓할 수 있을까요? 꽃잎이 스스로 떨어져 물에 닿는다고 해서, 물이 잘못한 건 아니잖아요.”그는 미소를 지었지만, 그 안엔 분명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결국 탓할 게 있다면, 눈치 없이 달려드는 벌이 문제고, 스스로 진 꽃잎이 문제겠죠. 임 대표님이 생각해도 그렇지 않습니까?”시호는 재석의 논리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그때, 식당 직원이 POS기를 들고 급히 뛰어왔다.“손님, 죄송합니다! 주문하신 음식이 결제 안 되어 있어서요...”시호가 억지로 카드를 꺼내 들며 결제하는 사이, 재석은 정은의 허리를 가볍게 감싸 쥐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잠시 후, 그는 멈춰 서서 뒤돌아봤다.“임 대표님, 주문한 음식은 그래도 드시고 가세요. 음식 남기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니니까.”시호의 표정이 굳었다.정은은 참으려다 결국 웃음이 새어 나왔다.“당신, 참... 고약해요.”“나도 그럴 생각은 없었어. 근데, 먼저 덤빈 건 그쪽이니까.”...로비에 도착한 두 사람은 짐을 찾아 방으로 올라갔다.문이 닫히자, 정적이 흘렀다.재석은 아무 말 없이 정은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다가와 손끝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었다.다음 순간, 숨결이 겹쳤다.정은은 고개를 들었고, 시선이 맞닿자 시간이 멈춘 듯했다.두 사람은 문가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겨 침대 앞에 섰다.재석의 무게중심이 살짝 정은 쪽으로 기울자, 두 사람의 균형이 함께 흔들렸다.정은은 본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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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4화

갑작스럽게 나타난 재석은 주최 측의 눈에 띄자마자 초대 손님으로 좌석 전면에 앉게 됐다.만약 재석이 정중히 사양하지 않았다면, 아마 무대 위에까지 세워 ‘짧게 한 말씀이라도’ 하시라며 학술 강연으로 만들어버렸을지도 모른다.그런 상황에 재석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했다.‘나, 물리 전공인데... 생물학 포럼에서 강연이라니. 이 주최 측, 대체 제정신인가?’다행히 그 말을 입 밖에 내진 않았다. 말했으면, 주최 측 대표는 분명 온갖 찬사를 늘어놓았을 테니까....“어?! 조 교수님?! 여기 계셨네요? 언제 오셨어요?”민지가 전면 좌석에 앉은 재석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람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다.재석은 솔직히 대답했다.“어젯밤.”“혹시 이 리조트에 묵으세요?”옆에 있던 서준이 이마를 짚었다.“빨리 가자. 곧 강연 시작하잖아.”“조금만 기다려봐... 아직 궁금한 게 많단 말이야. 에이, 나 혼자 걸을 수 있어, 손 안 잡아도 돼...”복도 끝까지 걸어가서야 서준이 민지의 손을 놓고 한숨을 쉬었다.“너 진짜 몰라서 그래? 조 교수님이 정은 누나 때문에 온 거 안 봐도 뻔하잖아. 같은 리조트 아니면 어디에 묵겠어?”민지는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가, 뒤늦게 깨달은 듯 입을 뻐끔거렸다.“와, 나 끝났다. 나 요즘 머리 진짜 안 돌아가. 자기야, 나 혹시 벌써 임신 초기 ‘3년 멍함’ 온 거 아닐까?”서준이 뭐라 위로하려는 순간, 민지가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이것도 신기한 인생 경험 추가네, 헤헤.”서준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지만, 결국 자신도 웃고 말았다.민지는 그런 사람이었다.언제나 밝고, 언제나 긍정적.그녀는 늘 주변을 따뜻하게 밝히는 작은 태양 같았다....오전 강연은 안정적으로 진행됐다.메인 연사는 E국 출신의 저명한 미생물학자 세르게이 교수.영국식 억양의 유창한 영어에 적당한 유머까지 섞인 완벽한 강연이었다.정은은 집중해서 들었고, 서준 역시 한마디도 빼놓지 않으려는 듯 필기를 이어갔다.평소엔 졸음과 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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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5화

“자, 이번엔 저쪽 참석자분께 마이크를 드리겠습니다.”사회자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어떤 질문인가요?”시호가 일어섰다.“방금 서비대 팀에서 연구 중 컴퓨터 통계 기법을 사용하고, 또한 모델링 능력 개발을 시도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서로 다른 연구 접근법이지요. 제가 묻고 싶은 건...”그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또박또박 이어갔다.“생물정보학 연구에서 통계학, 혹은 BLAST 알고리즘 같은 컴퓨터 기술과 모델링 능력과 같은 과학적 사고 중, 무엇이 더 본질적이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회의장 안의 시선이 일제히 시호에게 쏠렸다.사회자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그럼 서비대 팀에서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시호의 시선이 정은에게 향했다.‘이 질문...’정은은 잠시 말을 잃었다.‘애매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이네.’분명 논리적인 문제였다.생물정보학에서 오래된 주제... 실제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논쟁이 이어져 온 부분이었다.그런데 시호는 그 미묘한 경계를 정확히 찔러왔다.게다가, 이런 공식 포럼의 자리에서.시비 걸려는 의도가 다분했다.시호의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었다.그건 함정이었다.게다가 이 자리에 있는 교수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이 질문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얼마나 대답하기 까다로운지.정은은 결국 답해야 했다.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대답할 수도 없었다.‘이건 이미 수많은 사람이 논의한 문제야.’‘식상한 답을 하면 안 돼.’‘그렇다고 너무 공격적으로 말해도 곤란하지.’‘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짧고 명확하게, 하지만 분명한 내 색깔로...’‘...’정은이는 속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그때, 단상 옆에 앉아 있던 서준이 민지와 눈을 마주쳤다.민지의 얼굴엔 긴장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눈빛은 불안하고,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역시... 임시호, 저 사람 진짜 이상해.’‘왜 하필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거야?’민지가 입 모양으로 속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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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6화

몇몇 업계 관계자들이 정은의 연구 방향에 대해 꼼꼼히 물어본 뒤, 하나둘씩 제안을 던졌다.“우리 팀으로 오는 거 어때요?”“졸업 후 박사후 과정 생각 있으면 교성대로 오세요.”“교성대는 약간 전문성이 떨어지죠. 경호대 쪽을 추천하고 싶네요.”“국민대도 나쁘지 않습니다. 저희 실험 장비는 최고 수준이거든요.”“...”짧은 순간, 주변 공기가 달라졌다.정은을 중심으로 인파가 몰렸고, 모두가 그녀의 말을 듣고 싶어 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시호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이런 그림은, 전혀 예상 밖인데.’그러다 그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비웃음인지, 자조인지 알 수 없는 미소였다.심지어 세르게이 교수까지 직접 다가왔다.정은의 팀 연락처를 받아 들고, 부드럽게 악수를 청했다.“소정은 박사님의 실용주의적 접근, 정말 흥미롭습니다. 저도 그런 관점을 좋아해요. 이렇게 에너지 넘치고 젊은 연구자를 만나서 기쁩니다.”민지는 그 말을 들은 뒤, 핸드폰 알림에 뜬 세르게이 교수 연락처 추가 완료를 보고, 한동안 멍해 있었다.“자기야... 나 지금 세르게이 교수님이랑 연락처 교환했어...? 세상에, 나 진짜 오늘 최고 잘생긴 오빠랑 친구 됐어... 으아악!”“뭐?” 서준의 표정이 굳었다.“다시 한번 말해봐. 뭐라고?”민지는 슬쩍 눈을 피했다.“그냥... 존경하는 오빠라고 한 거야! 오빠!!”서준은 고개를 젖히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이 여자는 진짜... 언제 봐도 에너지 폭발이야.’...대학 연구팀 발표 세션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하루 종일 이어진 포럼 일정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발표가 끝난 뒤, 정은이 강연장을 빠져나오자, 이미 재석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정은이 다가와 조용히 남자의 팔에 자기 팔을 끼웠다.그 타이밍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오던 시호가 그 장면을 정확히 봤다.잠깐 시선이 교차했다.시호의 눈빛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하지만 그 무표정이 오히려 더 싸늘했다.“아까 안에서 주최 측 담당자랑 무슨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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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7화

바닷가엔 저녁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황금빛 물결 위로 정은의 시선이 머문다.문득, 정은의 기억 속에 맥스 군도에서 불던 바람이 떠올랐다.“가자!”수영복 차림의 젊은 아버지가 두 살도 안 된 딸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어깨에 태웠다.아이는 까르르 웃었다.젊은 어머니가 조심스레 말했다.“천천히요... 넘어지면 안 돼요.”세 사람은 노을 속으로 천천히 걸어갔다.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고, 바닷바람이 살짝 불었다.C시의 바다는 맥스 군도와 달랐다.이곳엔 사람 냄새, 일상의 온기가 있었다.정은은 시선을 거두고 재석을 찾기 시작했다.하지만 해변은 넓고, 사람은 여기저기 많았다.이 넓은 해변을 몇 바퀴나 돌았지만 재석은 보이지 않았다.전화를 걸려는 순간,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소정은 씨 맞으시죠?”“네?”“조재석 씨가 전해 달라고 했어요. 보시면 알 거라고.”남자는 카드를 건네고 금세 사라졌다.정은이 카드를 펼쳤다.재석의 필체였다.[노을 아래길 잃은 소 한 마리그림자 따라 집으로 간다]정은은 잠시 멈춰 섰다.‘노을, 소, 집으로 간다...?’해가 지면 소도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간다.시골의 집들은 해와 바람의 방향을 생각해 남쪽을 향해 짓는다.해는 서쪽으로 지고, 돌아가는 길은 동남쯤이겠지. 그렇다면 소의 등은 북서쪽을 향할 테고...정은은 고개를 돌려, 그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정은이 걸음을 옮긴 지 오 분쯤 지났을 때, 이번엔 젊은 여자가 다가와 작은 카드를 내밀었다.[해는 지고, 끝이 어딘지도 모를 길아무리 걸어도, 집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정은은 카드를 천천히 읽었다.‘해는 지고... 끝이 없는 길... 집이 보이지 않는다...’주위를 둘러보던 정은의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멀리, ‘하늘 끝 전망대’라고 적힌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정은은 숨을 고르고, 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얼마 지나지 않아, 세 번째 카드가 전해졌다.[산이 해를 삼키고물결 위엔 저녁이 잠긴다]정은은 잠시 고개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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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8화

군더더기는 하나도 없었다.장황한 고백도 없었다.재석의 마음을 담은 딱 한 마디.“사랑합니다.”짧지만, 그 한마디가 세상의 모든 말을 대신했다.그 순간, 하늘 위의 드론들이 서서히 흩어지더니, 다시 모여들었다.빛의 점들이 하나로 모여 문장을 그렸다.[Marry Me, 정은 씨.]해변을 걷던 사람들도 모두 걸음을 멈췄다.목소리들이 파도처럼 번져왔다.“세상에, 저기 사람들 봐! 프로포즈야?”“드론 쇼야? 저거 최소 몇백 대는 돼야 저런 모양 나오지 않나?”“와... 진짜 스케일 미쳤다.”“누가 봐도 재벌 2세 아니야?”“너무 로맨틱하다... 또 누군가 남의 사랑에 울겠네.”“여자 이름이 정은 씨래! 이름도 예쁘다. 진짜 예쁜 사람일 듯!”“...”처음엔 흥분 섞인 목소리들이 뒤섞였고,이내 한 방향으로 모아졌다.“받아줘! 받아줘!”“받아줘! 받아줘!”누군가 시작한 외침이 곧 공터 전체를 메웠다.정은은 눈앞에서 무릎을 꿇은 재석을 바라봤다.가슴이 두근거렸다.‘이 사람... 정말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그 순간, 멀리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정은의 눈이 커졌다.소진헌, 이미숙, 이춘재, 봉수진, 조기봉, 조지언, 조지훈, 변리아, 현우, 현민...한 명, 두 명, 아니 거의 온 가족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아빠? 엄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까지...? 어떻게...”이미숙이 재석을 한번 보고는 미소 지었다.“누가 우리한테 깜짝 놀랄 선물이 있다고 해서 아무것도 묻지 말고 오라더라. 근데 이제 보니, 선물은 우리 게 아니라 너를 위한 거였네.”소진헌이 팔짱을 끼고 코웃음 쳤다.“아이디어 좋았네, 조 교수. 우리 전부 다 깜빡 속았잖아.”‘정말... 얄미워.’조지언이 제일 먼저 앞으로 나섰다.‘역시 내 동생 지킴이답네.’“먼저 말하지만요, 저 당한 거 아닙니다. 저 이거 다 알고 있었어요. 장소 섭외도 제가 했다고요.”변리아가 바로 끼어들었다.“장소는 지언 씨가 맞는데, 여기 꾸민 건 저랑 애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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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9화

‘우리 결혼합시다’라는 말이 재석의 귀에 닿는 순간, 마치 세상이 멈춘 듯했다.재석은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눈가가 붉게 젖었다.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반지를 쥔 손이 흔들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그때 그날의 내가 떠오른다...’불안에 쫓기듯, 두려움에 휩쓸리듯 했던 첫 번째 청혼.정은이 떠날까 봐, 헤어지자고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두려웠던 마음으로 꺼낸 말.결국 사랑이 아니라, ‘잡고 싶은 마음’이었다.그때의 자신은 진심이라 믿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너무도 어리석었다.‘그땐 사랑을 증명하려 했던 게 아니라, 정은이를 내 곁에 묶어 두려 했던 거였지.’지언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재석아, 뭐 해! 멍하니 있지 말고, 반지 끼워 줘야지!”재석은 흠칫하며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고개를 들었을 때, 눈에 맺힌 눈물이 반짝였다.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정은은 보았다.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정은은 알았다.재석은 지금 ‘진짜 마음’으로, 이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정은이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재석이 반지를 끼웠다. 차가운 금속이 손가락을 따라 미끄러지듯 들어갔다.“정은 씨...”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이 반지는 당신의 인생을 묶는 쇠사슬이 아니에요. 당신은 자유롭습니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한다고 믿는 일... 전부 다 하세요.”“다만... 꼭 한 가지는 약속해 주세요. 저를 사랑해 주세요. 끝까지, 영원히...”재석의 말끝이 바람에 흔들렸다. 명령도 아니었고, 약속을 강요하는 말은 더욱 아니었다.정은이 미소 지었다.“네, 그래요.”지훈이 제일 먼저 손뼉을 쳤다.“우리 막내, 드디어 장가간다!”지언이 옆에서 눈을 흘겼다.“말 바꾸는 속도 봐라. 제수씨 되자마자 막내래.”지훈이 씩 웃었다.“그래야 분위기 살지! 사랑은 원래 이렇게 끝나야지. 우리 막내, 진짜 고생 많았다.”이춘재와 봉수진도 박수를 보탰다.“참 보기 좋다.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되네.”이춘재가 고개를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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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0화

해변을 달리던 두리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췄다.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밤하늘 위, 수십 대의 드론이 줄지어 빛을 내며 글자를 만들고 있었다.“Marry Me, 정은 씨?”‘이게 뭐야...?’두리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누가 소정은 씨한테 프로포즈 하는 거지?’그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하늘을 향해 동영상을 짧게 찍고는 심현빈에게 보냈다.두리가 C시에 온 건 정은의 의뢰 때문이었다.정은이 추적해 달라고 부탁한 인물이 이 근처에 있었고, 조사 겸 들른 길에 정은을 직접 만날 수 있으면 더 좋겠다고 기대했다.하지만 이런 화면을 마주할 줄은 미처 몰랐다.“쳇, 그래도 꽤 낭만적인데.”두리가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그러고는 금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리조트를 막 나와 해변을 따라 걷던 민지와 서준도 하늘 위의 드론을 발견했다.“서준아! 저거 봐! 정은 언니야! 조 교수님이 프로포즈하는 거 맞지?!”민지가 남편 팔을 붙잡고 거의 뛰다시피 했다.서준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야, 내가 프로포즈할 땐 그렇게 안 들떴잖아?”“그땐 당신이 조 교수님처럼 로맨틱하지 않았거든! 드론은커녕 초에 불도 안 붙였잖아.”“와... 반격 들어오네?”“팩트 아니야?”서준이 머쓱하게 웃었다.“됐어, 알았다. 가자, 구경이나 하자.”“진짜? 가자 가자!”민지가 신나게 손을 잡아끌었다.두 사람은 사람들 무리를 따라 걸었다.조용하던 해변은 이미 웅성거림으로 가득했고, 드론 불빛이 공터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민지가 겨우 사람들 사이를 뚫고 안쪽까지 들어갔을 때, 정은의 손가락에는 이미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정은 언니!”민지가 외쳤다.“이런 큰일을 하면서 나한테 미리 말도 안 해요?!”재석이 깜짝 놀라 두 손을 내저었다.“저기, 분명 연락했어! 진짜!”그때 서준이 민지의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톡을 열자, 읽지 않은 메시지 알림이 줄줄이 쌓여 있었다.“봐, 연락이 왔잖아.”민지가 화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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