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Chapter 1751 - Chapter 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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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1화

밤, 안방.리아가 두 아이를 간신히 재우고 방으로 돌아오자, 지언이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아 한 곳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지언의 미간은 깊게 주름졌고, 완전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리아가 이불을 들추고 옆으로 누우며 말했다.“당신 무슨 생각해? 표정 완전 심각한데.”“뭔가 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서.”“뭐가 안 맞아?”“수민이 전화 말이야.”그때 리아도 옆에 있었으니, 통화 내용은 분명히 함께 다 들었다. 뭔가 특별한 부분은 없던 것 같았다.하지만 지언이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어디가 이상한데? 당신은?”“수민이 조이스랑 M국으로 돌아간다고 했잖아. 근데 전에 작은어머니한테 들은 바로는, 수민은 아예 그쪽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고, 집도 이미 다 정리 맡겼다고 했거든.”리아가 잠시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당신 말은... 수민 씨가 일부러 틀리게 말해서 우리한테 신호를 보냈다는 거야?”“내 생각엔 수민이랑 조이스... 지금 루메라에서 아직 못 빠져나온 것 같아. 무슨 이유가 있어서 우리한테 사실대로 말 못 한 거고.”리아가 낮게 말했다.“협박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네.”지언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리아는 손을 들어 그를 진정시키듯 말했다.“당신 잠깐만, 흥분하지 말고. 내가 문균한테 전화해서 알아볼게. 문균이 그쪽에 있고, 스티븐 가문 안에 정보망도 있으니까, 우리보다 훨씬 빠르게 소식 알 수 있을 거야.”“응.”...10분 후.리아가 발코니에서 들어왔다.지언이 일어서며 묻는다.“뭐래?”“상황... 별로 안 좋아. 우리, 루메라로 가야 할 것 같아.”지언이 멍하니 굳었다.리아가 다가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당신 뭐야? 충격받았어? 눈도 안 깜빡이네?”지언이 갑자기 그녀의 손을 단단히 잡았다.“당신... 고마워.”리아는 손을 슬쩍 빼내며, 그 틈에 그의 턱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갑자기 왜 이렇게 공손해? 나 어색하게?”“이건 우리 집안일이잖아. 당신은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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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2화

수민은 자다가 더워서 깼다.남자의 가슴은 뜨거운 화로처럼 달아올라 있었고, 그 열기를 밤새 빈틈없이 붙여왔다.한밤중에 한 번 깼을 때, 수민은 조심스레 동건의 팔을 치워보려 했다...그렇게 잠든 줄 알았던 남자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뭐야? 잠 깨고 싶어? 좋아. 그럼 우리 딴 거 하자.”깜짝 놀란 수민은 바로 눈을 감아버리고 얌전히 다시 잠들었다.‘미친... 진짜 사람 놀래게 하네.’“깼냐?”낮게 깔린 목소리가 귀 옆에서 건너왔다.수민이 일어나려 하자, 동건이 한 손으로 눌러 막았다.그리고는 목덜미 근처로 얼굴을 파고들어, 고양이처럼 살짝 비비적거렸다.“조금만 더 자자. 응?”수민은 이를 악물었다.“나 화장실 좀.”“오케이. 그럼 나도 같이.”“뭐...?”“네가 날 데리고 가든가, 내가 널 데리고 가든가. 둘 중 하나 골라.”‘이 큰 덩치가 왜 이렇게 질척대냐?’‘완전 들러붙는 껌딱지잖아.’그렇게 괜히 붙잡히고, 끌려다니고, 어르고 달래고, 정신 차려 보니 벌써 30분이 지나 있었다.차라리 그냥 누워서 더 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너... 해도 너무 한다? 끝이 없네?”결국 수민이 폭발해 버렸다.동건은 순간 멍해지더니, 순순히 손을 거두며 말했다.“있지. 끝.”...씻고 방을 나오자, 수민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지만 이미 아침 식사가 차려지고, 의자가 빼져 있고, 누군가 공손하게 식탁으로 자리까지 안내했다.너무 ‘완벽한’ 대우라 오히려 기분이 묘했다.식사를 마치고, 수민은 포크를 내려놓고 동건을 노려보았다.“고동건. 우리 얘기 좀 하자.”“그래. 무슨 얘기 할래?”“나 얼마 동안 가둘 생각이야?”“가둬?”그 단어에 동건이 낮게 웃었다.서늘하게, 비웃듯이.“너는 내가 널 가둬두고, 자유를 안 준다고 생각해?”“내가 핸드폰도 못 쓰는데, 너는 어때 보여?”동건이 잠시 침묵했다.그리고 손짓하자 경호원이 금세 핸드폰을 가져왔다.수민은 의심스러워 바로 받지 않았다.동건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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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3화

루메라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해 질 무렵이었다.붉고 주황빛으로 번지는 노을이 하늘 끝을 물들였고, 잔광이 도시의 유리창들을 뜨겁게 태웠다.문균이 직접 두 사람을 마중 나왔다.리아를 보자마자 그는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다가와 그대로 리아를 뜨겁게 안아주었다.리아도 가볍게 그를 안아주고는 곧 떨어졌다.“6개월 만이지? 더 예뻐졌네.”문균이 능청스럽게 웃었다.리아는 이미 수없이 들은 그의 이런 농담에 익숙했다.다만 지언이 무표정으로 눈썹을 아주 살짝 올린 건...리아만 슬쩍 눈치챘다.“너도 나쁘지 않아. 좀 더 잘생겨졌고... 그리고... 살도 좀 오른 것 같고. 확실히 스티븐 가문의 돈은 사람 살찌우지.”리아가 툭 내뱉었다.“살? 오, 제발... 그건 칭찬으로 안 들리는데.”문균이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그냥 농담으로 듣던가.”리아가 어깨를 으쓱였다.문균의 시선이 지언에게 향했다.“소개 안 해줄 거야?”리아가 지언의 팔을 자연스럽게 끼며 말했다.“내 남자친구.”그리고 턱을 끄덕이며 문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여긴 스티븐 가문의 장남. 우리나라 이름은 문균.”“안녕하세요.”지언이 공손하게 손을 내밀었고, 문균도 악수를 받아들였다.손은 스친 듯 짧게 맞닿고 바로 떨어졌다.“일단 차에 타. 가면서 얘기하자.”“그래.”...차 안에서 리아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자세히 정리해 들려주었다.문균은 조용히 듣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청운 카지노 대표, 나랑 두 해 정도 알고 지냈어. 친하고... 그 사람에 대해 내가 아는 바로는, 여자를 일부러 곤란하게 할 성격은 아니야. 뭔가... 오해가 있는 거 아닐까?”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오해라 해도, 내 친구가 분명 SOS를 보냈고, 청운 카지노에 잡혀 있는 건 사실이야.”그때까지 묵묵히 듣기만 하던 지언이 몸을 바로 세우며 말했다.“청운 카지노 대표 이름이 뭐예요?”“그게...”문균이 망설였다. 친구 사이에서 누굴 내줄 수도, 감출 수도 없었다.지언이 가볍게 웃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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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4화

그러나 수민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갈 힘도 없었다.눈앞이 완전히 까매지며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동건은 기절한 수민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그는 턱을 가볍게 까딱해 경호원에게 신호를 줬다.“준비됐어?”“모두 완료됐습니다.”“그래.”...루메라에 도착한 리아와 지언은 바로 동건에게 들이닥쳐 사람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둘은 먼저 사람을 배치해 정보를 모으는 동시에 현재 스티븐 가문의 실질적 결정권자 문균의 아버지, ‘도박왕’ 스티븐과의 거래를 성사시켰다.거래 내용은 이랬다.리아와 지언은 스티븐 가문의 경호 인력 지원을 받는다.이와 동시에 둘은 스티븐 가문의 사설 보안 기업에 200만 달러를 지급한다.적다고 할 수는 없고, 많다고 하기엔 또 애매한 액수.어쨌든 리아와 지언도 단번에 마련할 순 없었다.그래서 작전은 오늘 밤으로 잡혔다.그러나 리아가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을 이끌고 ‘청운 카지노’의 모든 보안 라인을 뚫고, 드디어 동건의 거주 구역에 닿았을 때, 그 안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그때, 주선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가녀린 듯하지만, 밤빛 아래에서는 마치 잘 벼려진 단도처럼 날카로웠다.리아의 눈이 가늘게 뜨인다.“너희 보스 어딨어?”주선은 조용히 웃었다.“나가셨어요.”리아가 다시 말하기도 전에 주선이 먼저 이어갔다.“그리고... 당신들이 구하려던 분도 함께 데려가셨고요.”리아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이번 작전 정보가 새어 나갔다는 뜻이었다.주선이 손짓하며 말했다.“철수하시죠. 우리 보스께서 ‘절대 다치게 하지 말라’고 하신 덕분에 여기까지 무사히 들어오신 거니까요. 그 명령만 아니었으면... 벌써 여기 분위기 많이 달랐을 거예요.”그때, 뒤쪽에서 지언이 급히 달려왔다.상황을 파악하고 이미 얼굴이 굳어 있었다.“동건이 수민 데리고 도망쳤어!”지언은 단숨에 총을 꺼내 주선에게 겨눴다.“말해! 어디로 갔어!”주선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보스의 행선지는 저희에게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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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5화

이곳은 분명히... J시였다.‘고동건... 설마 나를 데리고 귀국한 거야?’수민은 믿기지 않는 듯 뒤돌아 동건을 바라봤다.눈이 휘둥그레진 표정이었다.“왜 그렇게 놀라?”동건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네가 그 두 번의 구조 요청 전화를 남긴 이유가, 네 가족한테 널 데리러 오라고 신호 보낸 거잖아. 이제 그럴 필요 없어. 네 가족 안 불러도... 내가 데려왔으니까.”“고동건... 대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 거야?”그 말을 듣자 동건의 시선이 잠시 멈칫했다.그는 마치 손을 뻗어 수민의 뺨을 쓰다듬고 싶어 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손끝은 조심스럽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데에 그쳤다.“수민아, 나는... 그냥 네가 원하는 걸 이뤄주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면... 믿을래?”수민이 피식 웃었다.“내가 원하는 거? 좋아. 그럼 말해볼게. 난 평생 너랑 멀리 떨어져 살고 싶어. 다시는 너랑 엮이기 싫어. 그것도 들어줄래?”순간, 동건의 눈빛이 어둡게 흔들렸다.하지만 그는 고개를 숙이며 그 감정을 감춰버렸다.그리고 다시 얼굴을 들었을 때, 입가엔 익숙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수민을 바라보는 눈에는 미련과 독점욕 같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그건 좀 어렵다.”“집에 갈래.”이번엔 동건이 멈추지 않고 답했다.“그래.”“뭐...?”“그래. 너 집에 데려다줄게.”‘이 인간... 진짜 미쳤나?’...수민이 집 앞에 섰을 때, 아직도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안 들어가?”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수민은 화들짝 고개를 돌렸다.“너, 진짜 뭐하려고 그래?! 뒤에 뭐 숨겨둔 거 있어? 한번에 다 말해! 날 가지고 노는 게 그렇게 재밌어?!”거칠게 쏟아지는 말에 동건은 잠시 놀란 듯하더니, 대뜸 웃음을 터뜨렸다.그 웃음 뒤에 감춰진 씁쓸함은 그 자신만 알 뿐이었다.“아무것도 없어. 너 갖고 노는 것도 아니고. 수민아, 너 이제 집에 가도 돼.”수민은 그를 마치 괴물이라도 보듯 응시했다.그러자 동건은 익숙한, 약간 위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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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6화

슬아는 그 말을 듣고도 그다지 놀란 기색이 없었다.오히려 담담한 얼굴로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믿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돌아오신 거예요?”어떻게 돌아왔냐고?고동건은 52세에 죽었다.수민의 기일.그날도 늘 그랬듯, 조씨 집안 사람들이 떠난 후에야 혼자 묘원을 찾았다.그때의 동건은 병에 찌들어 온몸이 망가졌다. 숨 쉬는 것조차 고통이었다.살아 있는 건 더 이상 삶이 아니라 형벌이었다.동건이 버틴 이유는 단 하나.죄를 갚기 위해.죽는 건 너무 쉬웠다.사는 것, 그게 고통이었다.언제부터였는지 하늘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동건은 젖은 무릎을 바닥에 대고 수민의 묘비에 얼굴을 기댔다.마치 차갑고 단단한 묘비가 여전히 그리운 수민의 체온이라도 되는 듯.빗물이 몸을 때리고, 서늘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침처럼 광대뼈를 찌를 때쯤...동건의 눈이 감겼다....동건은 다시 눈을 뜨자 사방은 어둠이었다.아늑한 향기.부드러운 매트리스.그리고 그의 품에 안긴 채 등을 돌려 자는... 수민.동건은 단번에 알았다.꿈...꿈이라고...그것도 너무 황홀해서 평생 몇 번이나 꿀까 싶은 그런 달콤한 꿈.수민이 자신을 증오한 뒤로 그녀는 동건의 꿈에도 나타나지 않았다.그래서 더더욱... 동건은 당연히 꿈이라고 믿었다.동건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끌어안았다.비록 환영이라도 좋았다.단 몇 초라도...“뭐 하는 거야?”냉랭하고 경계하는 목소리.그리고 곧바로 가슴팍에 꽂힌 팔꿈치.“으...”살이 파고드는 현실적인 통증에 동건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들이켰다.“멀리 떨어져.”말을 마친 수민은 벌떡 몸을 떼고 침대 끝으로 몸을 옮겼다.동건은 그를 붙잡지 않았다.붙잡을 겨를도 없었다.동건은 그저 멍하게 눈을 크게 뜨고 굳어 있었다.‘꿈에서 통증이 느껴져?’‘꿈이 이렇게... 진짜 같은가?’그리고 곧...‘아니야.’‘이건 꿈이 아니야.’‘나는... 돌아왔다.’20년 전으로.그날 이후, 동건은 조이스를 이용해 수민을 루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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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7화

동건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슬아를 바라보는 눈에 잠깐 연민 같은 빛이 스쳤다.하지만 그 감정은 금세 사라졌다.“정반대입니다. 저는... 은혜를 갚으러 온 겁니다.”“은혜요?”“조지훈과 함께하지 마세요. 억지로 결혼을 밀어붙이지도 마시고, 그리고... 조지훈을 그쪽이 가려던 그곳에 데려가지도 마세요.”슬아의 표정이 단번에 굳었다.동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곧 떠나려는 듯 등을 돌렸다.“잠깐만요. 저랑... 조지훈의 미래를 알고 계신 거죠? 앞뒤가 어떻게 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 왜... 함께하면 안 된다는 건가요?”동건은 문가에서 멈춰 섰다.“제가 아는 건 하나뿐입니다. 제가 돌아오기 전의 그 시간대에서... 20년 뒤의 두 분 모습은... 아주 좋지 않았어요.”“그런데 지금은 제가 여기 있고, 민슬아 씨 앞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그 미래는 이미 예전 그 미래가 아닙니다.”슬아가 낮게 숨을 들이켰다.“결국... 저랑 조지훈 결말이 안 좋았다는 말씀이죠?”“네.”더 묻지 못했다.슬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조용히 내쉬었다.“이런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은혜라는 건 도대체 무슨 은혜죠? 저는... 당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이라면서요. 그게 어떻게 은혜예요?”“민슬아 씨는 저를 죽이기도 하지만... 몇 번이나 저를 살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민슬아 씨가 그랬죠. ‘기회 하나는 남겨둬야 한다.’”“그때 저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설명도 안 해주셨고. 그런데 지금은 압니다.”지금 이 순간, 20년 전으로 돌아온 동건 앞에서 슬아에게 건네는 이 말들이... 바로 그 ‘기회’였다.슬아의 눈빛이 깊어졌다.“그럼, 우리 둘... 20년 뒤엔 친한 사이였나 보네요?”동건의 움직임이 아주 작게 멈췄다.“손님 대접하는 제 방식... 제가 어느 쪽에 앉는지... 어떤 잔을 쓰는지까지 알고 계시잖아요. 그건... 그냥 아는 사이로는 어렵죠.”결정적으로 지사로 32의 위치.이 집은 슬아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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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8화

지훈은 방금 쏟아내려던 말을 도중에 삼켰다.슬아가 적어놓은 세 글자.[고동건]그 글씨가 지훈의 눈을 단단히 붙잡았다.슬아가 고개를 들었을 때, 지훈은 이미 그 종이를 홱 낚아채고 있었다.“너 이 이름을 왜 써놨어? 고동건 알아?”슬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지훈의 미간이 급하게 찌그러졌다.“민슬아, 장난해? 지금 우리 가족 뒤까지 캐고 다닌 거야? 이런 식으로 남의 개인정보 뒤지는 거... 범죄야. 진짜 고소당할 수 있다고.”슬아는 지훈의 격앙된 얼굴을 보며 잠깐 멍해졌다.전에는 그저 ‘날 선 타입’, ‘말 거칠고 예민한 사람’ 정도로만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슬아는 그 예민함의 이면에서 지훈의 경계와 두려움을 보았다.그리고 떠올랐다.조금 전 고동건이 했던 말.20년 뒤 자신과 지훈의 모습은... 아주 좋지 않았다는 말. 지훈은 슬아의 묘한 시선을 느끼고 목을 꿀꺽 삼켰다.“왜 그렇게 봐? 나 지금 진지해. 장난치는 거 아니고...”“응, 나도 그렇게 안 봤어.”“뭐...?”“조 변이 진짜로 고소할 사람이라는 거, 나 잘 알고 있다고.”지훈은 말문이 막혔다.‘얘... 오늘 왜 이래? 보통은 저렇게 정색한 얼굴로 받아치지 않는데?’“어쨌든, 이런 건 아니야. 다음부터 함부로 캐지 마.”지훈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싸우기 싫다는 듯한 태도였다.하지만 슬아는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았다.오히려 눈을 마주하고 단단하게 물었다.“근데 조 변은 왜 그렇게 확신해? 내가 조 변이랑 너희 집안을 조사했다고? 조 변은 ‘명예훼손’이 뭔지 몰라?”지훈의 눈썹이 다시 강하게 찌푸려졌다.‘얘 오늘 진짜 이상해. 평소 같으면 저렇게 정색하고 따지는 타입 아니잖아.’“너... 왜 그래?”“조 변. 내 질문에 답해.”그 순간 지훈의 눈빛이 바뀌었다.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부드러움이 싹 사라졌다.표정이 냉정하게 고요해졌다.“첫째, 넌 독충·독사를 이용해서 나를 협박했고, 연애하고 결혼하자고 위협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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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9화

“민슬아, 진짜 생각 제대로 한 거 맞아?”지훈의 표정은 냉랭했고, 말투 역시 차가웠다.슬아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그 순간, 화단 사이에서 ‘은리’가 머리를 쏙 내밀었다.주인의 분위기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작고 빠른 녀석이었다.그리고 사육 케이지 안에서 자던 ‘화리’도 덜컥 깨어나며 불안하게 몸을 뒤척였다.슬아는 고개를 들고 갑작스레 웃음을 흘렸다.그녀는 은리의 머리끝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고, 케이지 앞에 가서 화리에게 간식을 건넸다.둘을 달래고서야 슬아는 다시 몸을 돌려 지훈을 마주했다.“미안해. 전에 조 변 강제로 끌어들인 거... 지금 정식으로 사과할게.”“뭐?”지훈이 순식간에 어리둥절해졌다.“결혼 얘기도, 솔직히 내가 제정신 아니었어. 그래도 조 변이 알아서 멈춰줘서 다행이었지. 그러니까... 여기까지만 할게. 방해해서 미안.”슬아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집요함을 거둔 슬아는 마치 새벽 공기 같은 차분함을 품고 있었다.외려 그 담백한 투명함이 달빛을 닮아 은은하게 빛났다.그리고 그 순간, 지훈 역시 느꼈다.뭔가... 달라졌다.지훈은 슬아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그 영혼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보려는 시선으로.“마지막으로 묻는다. 정말... 잘 생각한 거 맞지?”슬아는 떠올렸다.고동건이 했던 말.조지훈이랑 엮이지 말라고.조지훈을 강요해서 억지로 결혼하지 말라고.그리고... 조지훈이 가면 안 되는 곳으로 데려가지 말라고.슬아는 지훈과 눈을 맞추고 담담히 말했다.“응. 다 생각 끝났어.”지훈은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입꼬리만 움직이고 마음은 전혀 웃지 않는, 차가운 웃음.“마음대로 해. 내가 그 결혼... 하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았어?”그 말만 남기고, 지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걸어 나갔다.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한 번도 슬아를 보지 않았다.슬아는 아주 미약하게 웃었다.‘그래...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런 거지.’‘사랑이 아니면... 붙잡을 이유도 없어.’‘지금쯤 조지훈은 속이 시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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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0화

[걱정 마. 나도 선은 지켜.]한설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거절 못 해? 그냥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안 돼?”[쉽게 거절할 수 있는 주문이었으면 애초에 받지도 않았어.]“에이... 선배가 거절 못 하는 사람도 있어? 누군데?”[예전에 은혜를 입었어. 그거 갚는 셈이고, 조건도... 뭐, 무리한 건 아니고.]한설은 한 박자 쉬고 아주 가볍게 덧붙였다.‘그냥... 악몽 꾸게 하는 정도야. 죽진 않아.’...지훈은 문을 쾅 닫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증빙 서류는 소파 위에 내던지고, 얼음물 두 컵을 벌컥벌컥 들이켰다.바로 그때, 지언이 서재에서 나오며 킥 웃었다.“야, 뭔 화가 그렇게 났냐? 한겨울에 냉수 드링킹은 또 뭐고.”“형 언제 왔어? 수민이는? 찾았어? 데려왔어?”“찾긴 했지. 근데 내가 데려온 건 아니야.”“뭐...?”“작은아버지한테 전화 왔어. 수민이가 제 발로 집으로 돌아왔다고.”지훈은 얼어붙었다.“수민이... 혼자서 돌아왔다고? 고동건 그 미친놈이 아무 짓도 안 했다고?”“오히려 반대라더라. 고동건이 직접 데려다줬대.”지훈의 머리가 멍해졌다.“아니 잠깐... 그걸 좀 정리해 보자. 수민이 집에 왔다, 고동건이 데려다줬다. 이 말 맞지?”“응.”“아니... 고동건이 미쳤어? 그렇게 공들여서 수민이를 루메라로 데려갔는데, 애초 계획대로 잡아두는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데려다줘?”지언은 고개를 저었다.표정이 복잡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지금으로선 왜 그런 건지 모르겠다.”“수민이는 뭐래?”“수민이도 이유는 몰라. 다만 며칠 동안 고동건 행동이나 습관이 좀 이상했다고 하더라. 눈빛도 예전과는... 많이 다르고.”지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일단 결과만 보면 다행이긴 하지. 수민이가 무사히 돌아왔고,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도 한숨 놓으셨을 테고.”“그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다.”잠시 정적.그리고 지언의 시선이 지훈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근데... 넌 왜 화났냐? 누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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