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Chapter 1781 - Chapter 1790

1952 Chapters

제1781화

김한규가 땅을 바라보며 말했다.“없습니다. 그 사람은 아주 조심스러웠어요.”...결국 지언은 김한규를 정말로 끌고 가진 않았다.앞으로 김한규를 미끼로 삼아, 배후의 진짜 인물을 낚아야 했기 때문이다.재석이 말하자 지훈도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우린 드러나 있고, 상대는 보이지 않게 숨어 있지. 뒤에 또 뭐가 준비돼 있을지 모르겠어.”지언이 응답했다.“그래도 우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는 아니잖아. 미리 대비하면 덜 당하긴 하지.”지훈은 분위기가 가라앉는 걸 보고 양손을 털듯 힘주어 말했다.“야, 그렇게들 우울해할 거 없어. 제일 중요한 건 어머니가 건강하시다는 거잖아. 재발 아니라고. 내일이면 드디어 우리랑 같이 집 가서 설 지내실 수 있어.”그 짧은 몇십 분 동안 지훈의 감정은 롤러코스터보다 더 심하게 오르내렸다.‘아까는 심장이 진짜 터지는 줄... 이건 재판보다 더 스릴 있네.’정은도 맞장구쳤다.“맞아요. 이게 큰 소식이죠.”그때까지 침묵하던 조기봉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동안 네 엄마가 자꾸 악몽 꾸던 것도... 그놈이랑 관련 있는 건가?”재석이 답했다.“아마 그럴걸.”지훈이 인상을 찌푸렸다.“근데 왜? 보고서 조작도 그렇고 악몽 만드는 것도 그렇고... 둘 다 어머니한테 당장 생명 위협을 주는 건 아니잖아. 그 사람이 이렇게까지 공들여서 뭘 얻는 건데?”‘그냥 겁주고 싶어서?’그건 아니었다.말한 순간 모두 침묵에 잠겼다.정은이 입술을 눌러 물었다.“여러분...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상대가 하는 행동이 서로 충돌해요. 마치... 정말로 큰 해를 끼칠 마음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진짜로는 손대기 싫은 것처럼요.”그 말은 묘하게 가슴에 걸렸다.일관성 없는 행동.그리고... 마치 누군가를 해치려다, 막판에 마음이 흔들린 사람처럼.“싫어한다?”지언이 눈썹을 치켜올렸다.“그 말... 왜 떠올랐는데?”정은은 고개를 저었다.“글쎄요. 그냥... 직감?”상대가 한 모든 행동이 강서원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Read more

제1782화

“슬아야, 질문이 너무 많아.”그 뒤로 슬아가 어떻게 캐물어도, 한설은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밤이 깊어지자, 한설은 외투를 걸치고 슬아의 집을 나서려 했다.“선배, 이렇게 늦게 어디 가?”“볼 일이 있어.”말을 끝내고 한설이 그대로 밖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턱에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본다.“집에 얌전히 있어. 따라오지 말고.”막 발동하려던 슬아의 도둑 심보가 한순간에 싹둑 잘려 나갔다.한설은 근처 편의점을 향해 커피 두 잔을 사서, 높은 의자에 앉아 조용히 누군가를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와 한설 옆자리의 빈 의자에 앉았다.한설은 그에게 커피 한 잔을 밀어두며 말했다.“마셔.”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모자챙 아래 드러난 얼굴은 놀라울 만큼 잘생겨 있었다.시호가 곧장 물었다.“왜 멋대로 몽염주술을 풀었어?”“네가 먼저 약속을 어겼잖아. 그래서 난 제때 손을 뗀 거고.”시호는 비웃듯 미소를 흘렸다.“약속을 어겼다고?”한설의 표정은 단단히 굳어 있었다.“네 부탁으로 사람한테 손대기 전에 말했지. 우리 일은 함부로 목숨 건드리면 안 된다고. 너도 알겠다고 했고. 그런데 정작 대상이 암 환자였다는 걸 숨겼어. 그게 약속 위반이 아니면 뭐냐?”“그냥 악몽 꾸게 한 거잖아. 내가 죽이랬어?”“그래? 암 환자한테 악몽은 죽음과 매우 가깝지.”시호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내려앉는다.“수술했어. 암 이미 완치됐다고.”“내가 알기론, 지금 전 세계 어디에도 완치라는 단어를 쉽게 쓰는 암은 없어. 말장난하지 마.”“네가 먼저 은혜 갚겠다고 했지! 이제 와서 말 뒤집는 건 또 뭐야?”이를 악물고 있는 시호의 눈에 분노가 번진다.한설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은혜? 너는 너 자신을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는 거 아냐? 백설기 한 조각이었지. 그래, 제때 먹을 걸 준 덕에 살긴 했어. 인정해. 근데 그 백설기, 내 손에서 네가 ‘뺏어간’ 거였지?”시호의 동공이 순간 수축했다.“너.
Read more

제1783화

“한, 설!”시호는 이를 갈며 당장이라도 그를 찢어놓을 듯한 얼굴이었다....편의점을 나선 한설은 더 이상 슬아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아무 호텔 앱이나 켜서 근처의 5성급 호텔 하나를 골라 체크인했다.다음 날 아침, 슬아가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에 한설이 남긴 카톡 알림이 박혀 있었다.[일 들어와서 나갔어.]시간은 오늘 아침 7시 15분.슬아는 바로 영상통화를 눌렀지만,연결되지 않았다.점심쯤 돼서야 한설이 위치를 보냈다.지도가 뜨자, 표시된 곳은 이미 T국이었다.“진짜 빨리도 가네... 설날인데, 나랑 연휴 끝까지 보내고 가는 게 그렇게 힘들어...?”슬아는 길게 한숨을 내쉰다.하지만 이런 적이 이미 한두 번이 아니라, 슬아는 결국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그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누구야?”슬아가 문을 열었다.조지훈이 서 있었다. 그는 슬아 뒤쪽을 슬쩍 훑어본 뒤 말했다.“혹시... 함께 차 한잔할 수 있을까?”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들어와.”지훈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좌우를 살피며 천천히 둘러보았다.“너... 혼자야?”“응.”“너 선배는?”“갔어.”지훈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슬아는 갑자기 돌아서서 지훈을 똑바로 바라봤다.“너 왜 왔어? 무슨 일 있어?”“그게... 들어가서 말하지.”현관에 선 채로, 슬아는 비닐 신발 커버 두 개를 꺼내 지훈에게 내밀었다.“자.”지훈은 받지 않았다.“내가 예전에 신던 슬리퍼는? 그거 신을래. 그게 편하거든.”슬아는 담담하게 말했다.“버렸어.”지훈은 순간 입꼬리가 떨렸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신발장 문을 열어 새 슬리퍼 한 켤레를 꺼냈다.“그럼 새로 하나 더 꺼내면 되잖아?”슬아는 황당하다는 듯 눈을 반쯤 뜨며 말했다.“아니, 그건 내가 산 건데? 네가 신고 싶다고 네 맘대로 그냥 갖다 신는 거야?”‘게다가... 너 같은 건장한 남자가 내 핑크색 리나벨 슬리퍼를 신겠다고?’‘진짜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지
Read more

제1784화

슬아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했다.“‘은리’랑 ‘화리’ 있잖아. 설날엔 늘 이 둘이랑 같이 보냈어.”그 말을 듣자 지훈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렇지. 이 둘이면 너 외롭진 않겠다. 그럼 올해는...”“고마운데, 난 안 갈래.”설날은 원래 가족이 모이는 날이다.자신 같은 완전한 외부인이 남의 집에 끼어드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슬아도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지훈은 돌아갈 때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슬아도 그걸 눈치챘지만, 그것까지 신경 쓸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혼자 남아 두 반려와 함께 보내는 설날이라 해도, 슬아는 대충 넘길 생각이 없었다.며칠 전부터 슬아는 마트에 가서 설에 먹을 음식과 집안을 꾸밀 장식들을 미리 사두었다.슬아는 대문에 붙일 설맞이 장식 문양도 하나 골라 준비해 두었다.여러 개까지는 필요 없고, 하나만 있어도 충분했다.모양은 단정한 둥근 패턴인데, 위아래를 어느 쪽으로 두어도 상관없어서 슬아는 괜히 마음이 끌리는 방향으로 살짝 비틀어 붙였다.그게 더 ‘올해는 운이 좀 트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작은 설 장식 등은 여섯 줄을 사서 건전지를 넣고, 집 밖 처마의 여섯 군데에 하나씩 달아 두었다.밤이 되면 은은한 불빛이 번져 나와, 집이 조용히 살아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그리고 귀여운 작은 리본 두 개.이건 ‘은리’와 ‘화리’를 위한 것이다.하나는 ‘은리’ 몸에 묶어주고, 또 하나는 ‘화리’ 등에 예쁘게 얹어주었다.슬아 자신도 빨간 목도리와 빨간 비니를 썼다.그리고 ‘은리’, ‘화리’와 셋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찍고 나서는 즉시 사진 인화기로 출력해 앨범에 끼웠다.그 앨범 안에는 매년 슬아와 ‘은리’, ‘화리’가 함께 보낸 설날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은리’가 아직 새끼 뱀처럼 손가락만 했던 시절부터, 꼬맹이였던 ‘화리’가 합류하고, 둘이 조금씩 커가고, 그러는 동안 슬아의 얼굴도 해마다 조금씩 달라졌다.조금 더 성숙해지고, 선이 잡혀가고.앨범을 제자
Read more

제1785화

결국 더 버티기 어려웠던 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현우와 현민 사이로 슬쩍 끼어 앉았다.현우가 이상하다는 듯 바라봤다.“지훈 삼촌, 왜 여기로 왔어요?”현민은 바로 대답했다.“여기만 여자친구 없는 사람 자리잖아.”지훈은 말도 나오지 않았다.‘우리 조카들... 왜 이렇게 눈치가 빠르냐고...!’몸이 괜찮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인지... 강서원은 무언가 내려놓은 사람처럼 얼굴이 환해졌고 웃음도 많아졌다.오늘 강서원은 붉은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설 분위기와 잘 어울렸고, 깔끔하게 올린 머리에 화장기는 없었지만, 예전의 날카롭고 완벽한 분위기 대신 어디선가 여유롭고 편안한 집 안주인의 느낌이 났다.조기봉 역시 얼굴에 웃음이 떠 있었다.지난 1년 사이 조기봉은 새치가 늘고, 피부는 더 그을렸으며, 몸도 눈에 띄게 야위었다.자주 낚시하러 다니는 탓인지 팔엔 근육까지 잡혀 있었고, 성격도 한층 더 묵직하고 차분해졌다.지금의 조기봉과 강서원은 예전처럼 정답고 다정한 부부 사이는 아니었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챙기는 관계로 돌아와 있었다.부모가 이런 상태가 된 건, 조씨 집안 세 형제에게 더없이 반가운 변화였다.식사를 마치고 모두 거실에 모여 설 특집 방송을 보았다.정은과 리아는 과일을 내놓으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리아는 찬장에 등을 기대며 슬쩍 물었다.“조 교수님하고 정은 씨는... 결혼식 언제 할 생각이세요?”“네?”정은이 고개를 들었다.“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보세요?”“그게... 혹시 우리도 같은 날 할 수 있을까 해서요.”정은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리아 씨랑 아주버님이요?”“지언 씨가 어제 저한테 프로포즈했어요.”리아는 손을 들어 올렸다.무명지엔 큼직한 다이아 반지가 번쩍였다.“식사 자리에서도 물어보고 싶었는데, 정말 프로포즈 반지였네요. 축하드려요. 아주버님도 드디어 마음고생 끝났네. 어쩐지 오늘 계속 웃으시더라구요.”“그렇게 티 났어요?”리아는 정작 본인은 몰랐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변 선생님, 나가면 거울
Read more

제1786화

리아와 정은에게는 올해가 처음으로 조씨 집안 본가에서 보내는 설날이었다.강서원은 두 사람에게 세뱃돈을 건넸다.두 봉투는 크지도, 두껍지도 않았다.손에 쥐어도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강서원이 물었다.“안 열어봐?”리아와 정은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나서 그 자리에서 봉투를 뜯었다.안에는 각자 한 장씩의 체크카드가 들어 있었다.강서원이 설명했다.“비밀번호는 너희 각자 생일이야.”조씨 집안의 재력과 스타일을 가장 조용하게 증명하는 방식이었다.“감사합니다, 어머님.”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말했다.말투까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그 ‘어머님’이라는 한 단어에 강서원이 눈시울을 단번에 붉혔다.“고맙다... 고맙다...”그동안의 오해와 날카로운 감정들이... 그 짧은 인사에 스르륵 녹아 사라졌다.설날 특집 방송이 중반을 넘기고도 집안의 활기는 식지 않았다.지훈은 현우와 현민을 데리고 집안을 뛰어다니며 먹고 놀고 장난치고 정신없이 돌아다녔다.세 사람이 힘 빠져서 소파에 퍼지면, 지훈은 팔로 현우와 현민을 한 번에 끌어안았다.비록 지훈에게는 여자친구가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양옆으로 껴안고 사는 삶이 나쁘진 않았다.정확히 말하면, 꽤 행복했다.현우가 물었다.“삼촌, 우리 아빠 엄마는요?”“그러게...”지훈은 거실을 쓱 둘러봤다.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있었는데...“어디 갔지...?”...지언과 리아는 복도 끝 작은 베란다에서 각자 와인잔을 들고 서 있었다.짠-잔벽이 부딪히며 맑은소리가 울렸다.리아가 먼저 말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언 씨.”“사랑해. 리아 씨.”“보통은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대답하지 않나?”지언은 대답 대신 리아의 허리를 훅 끌어당겨 바로 키스했다.리아는 잠깐 놀랐지만 금세 웃으며 화답했다.시간이 한참 지난 후...지언이 천천히 입술을 떼었지만, 이마는 여전히 리아의 이마에 닿아 있었고, 코끝으로 코끝을 살짝 건드렸다.“새해 복보다... 지금 여기서 내가 더 하고 싶은 말은 이
Read more

제1787화

그날 밤, 재석과 정은, 리아와 지언, 그리고 쌍둥이까지 모두 본가에 묵게 되었다.“지훈이는?”지언이 물었다.“나? 나 집에 가.”‘안 자. 절대 안 자.’내일 아침 식탁에서 오늘 밤 겪은 일을 또 한 번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지훈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진짜 안 자고 가?”지언이 목소리를 높였다.하지만 지훈은 이미 현관을 나서 있었고, 뒷모습은 밤공기 속으로 사라졌다.이내 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설 전날 밤의 거리.불빛은 밝았지만, 사람 그림자는 드물었다.지훈은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대로 아파트로 돌아갈 생각이었다.그런데 운전대를 잡고 가다 보니, 어느새 차는 자연스럽게 정향로로 향하고 있었다.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골목 입구였다.시계는 새벽 1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안개처럼 내려앉은 밤공기 속, 노란 가로등 아래의 좁은 골목은 유난히 고요하고 차분해 보였다.지훈은 차창을 내렸다.차가운 바람이 한꺼번에 훅 밀려 들어왔다.지훈은 무의식적으로 담뱃갑을 찾았지만, 손에 잡힌 건 공기뿐이었다.아마도 아까 아이들하고 놀다 바닥에 흘린 모양이었다.주머니에는 덩그러니 라이터 하나만 남아 있었다.지훈은 라이터를 손안에서 굴리며 만지작거렸다.시선은 허공을 떠돌았고, 생각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시간이 한참 지난 후.지훈은 갑자기 라이터를 꽉 쥐었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그리고 차에서 내려,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민슬아는 조금 취해 있었다.‘괜히 분위기 탄다고 와인을 딴 게 아니었는데.’‘거기다 취기 오른 김에 너무 마셨고.’“‘은리’, 너까지 왜 이래? 뱀이 술을 마시면 어떡해.”테이블 위에 늘어져 있는 ‘은리’는 힘없이 뱀 혀를 내밀고 있었다.지금 이 순간 효과음이라도 있다면, 온몸이 분홍빛일 게 분명했다.‘화리’는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간식 통을 엎질러 버린 탓에지금은 배가 불러서 그대로 기절해 있었다.쾅쾅쾅!민슬아는 자기 뺨을 두어 번 톡톡 두드리며
Read more

제1788화

“너 왜 왔어?”지훈은 천천히 걸어 식탁 쪽으로 다가갔다.식탁 위에는 반쯤 남은 와인과 식어버린 음식들, 그리고 미동도 없이 늘어져 있는 뱀 하나와 거미 하나가 있었다.마치 깊이 잠든 것처럼 보였다.‘이 여자, 진짜 이 두 위험한 동물들과 설날을 제대로 보내고 있었네.’지훈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지나가다 들렀어. 그냥 한 번 보려고.”“설날에? 가족들이랑 설날 안 보내고, 여길 지나가다 들렀다고?”슬아는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왜? 그러면 안 돼?”“안 될 건 없지. 근데 말이 안 되잖아.”“존재하면 다 이유가 있는 거야.”“너는 변호사라서 말은 잘해. 내가 말로는 못 이기겠는데, 그래도 너 머리에 문제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지훈은 식탁을 한 번 더 훑어보며 말했다.“와인에 스테이크라. 너 설날 잘 보내고 있네?”“그럼! 혼자라도 설날은 제대로 보내야지.”말하다 보니 슬아는 갑자기 목이 말라졌다.몸을 지탱하며 상체를 일으켜, 테이블 위에 있는 물컵을 향해 손을 뻗었다.그런데 몇 번이나 손을 뻗어도, 컵이 잡히지 않았다.슬아의 시야에는 이미 잔상이 겹쳐 보이고 있었다.다음 순간, 남자가 컵을 들어 슬아 앞으로 가져왔다.슬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입을 벌렸다.“아...”지훈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너 왜 이렇게 게을러? 나한테 먹여 달라고 하네...”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지훈의 손은 아주 정직했다.빨대를 잡아 슬아의 입가로 가져다주었다.슬아는 꿀꺽꿀꺽 몇 모금을 마시고 나서야 숨을 돌렸다.“조 변호사... 의외로 친절하네...”“흥. 이제야 알아?”“너 진짜 안 겸손하다.”“겸손해서 재판 하나 더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겸손해서 큰돈을 더 버는 것도 아닌데, 왜 겸손해야 해?”슬아는 말문이 막혔다.그러다 갑자기, 슬아가 벌떡 일어섰다.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했다.그 순간, 지훈이 재빠르게 슬아를 붙잡았다.“야, 너 뭐 해?”슬아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안
Read more

제1789화

슬아는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나 안 그랬어!”“그런데 왜 봐?”슬아는 바로 등을 돌리며, 작게 중얼거렸다.“안 봤어.”하지만 그 말투는 누가 들어도 어딘가 찔리는 구석이 있었다.지훈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몸에 묻고 찢어지기까지 한 셔츠를 마저 벗어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슬아는 다시 한번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미안해...”고개를 들었을 때, 슬아는 또다시 어지럼증을 느꼈다.몸 전체에 힘이 풀린 슬아는 뒤쪽의 술장에 기대며 간신히 버텼지만,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그대로 아래로 미끄러지려 했다.그 순간, 상반신이 드러난 채였던 지훈이 슬아를 그대로 안아 올렸다.슬아의 눈에는 아직 취기가 남아 있었다.초점이 흐릿했고, 어딘가 멍한 표정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처럼 보이기까지 했다.지훈은 슬아를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욕실로 향했다.곧...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슬아는 몇 초간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상황을 인지하고 양손으로 자기 뺨을 감쌌다.“하아... 왜 이렇게 덥지?”지훈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잠시 후, 흰색 가운을 걸친 채 욕실에서 나왔다.흰 가운의 교차하는 깃 사이로 지훈의 가슴 근육은 반쯤 가려진 상태였고, 젖은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목선을 따라 흘러 가운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꿀꺽-슬아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지훈이 갑자기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예뻐?”슬아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어... 예, 예뻐.”슬아는 속으로 생각했다.‘분명 술에 취한 거야. 아니면 이런 말을 할 리가 없잖아.’지훈은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왜 그렇게 갑자기, 벼랑 끝처럼 이별을 통보한 거야?”“뭐?”슬아의 눈에 잠시 맑은 빛이 스쳤다.하지만 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왔다.눈앞에 가슴이 보일 정도로 거리가 좁혀졌고, 서로의 숨결이 섞이자 슬아는 다시 어질어질해졌다.“왜냐고. 응? 난 진짜 이유를 듣고 싶어.”“그건...”슬아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Read more

제1790화

다음 날, 이른 아침이었다.겨울치고는 드물게 햇살이 얼굴을 내밀었다.부드러운 빛이 유리창을 통과해 창가에 내려앉았다.마치 흩뿌려진 금박처럼 잘게 부서져 반짝이며, 따뜻하게 퍼졌다.슬아는 더위에 잠에서 깼다.팔을 조금 움직이며 몸을 돌리려고 하는데, 손끝에 닿은 건 따뜻한 체온의 가슴이었다.슬아는 번쩍 눈을 떴다.정신이 번쩍 들었다.옆에 누운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기억들이 역류하듯 한꺼번에 밀려들었다.‘어젯밤에... 조지훈이 왔고...’‘조지훈이 나를 부축했고... 나는... 조지훈 등 뒤에 토했고...’‘옷을 빨아주겠다고 하다가, 내가 셔츠를 찢어버렸고...’‘조지훈이 욕실에 들어갔다가, 가운 입고 나왔고... 그리고...’‘세상에!!!’어젯밤 슬아의 모든 기억이 떠올라 버렸다.그때, 남자의 팔이 자연스럽게 슬아의 허리를 감쌌다.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귀 옆에서 울렸다.“깼어?”“응. 그, 그런데... 손 좀 풀어줄 수 있어?”“왜?”“나...”슬아는 침을 한 번 삼켰다.“좀 더워.”“알겠어.”지훈은 순순히 팔을 거뒀다.슬아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지훈이 이불 한쪽을 훌쩍 들춰 올렸다.“아! 너 뭐 해?!”슬아는 반사적으로 두 팔로 가슴을 감쌌다.“덥다며. 열어두면 바람 좀 통하잖아.”그 말을 하며 지훈은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그 바람에 이불 사이의 틈은 더 벌어졌고, 남자의 상반신이 그대로 슬아의 시야에 들어왔다.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채로.슬아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왜? 부끄러워?”지훈이 가까이 다가왔다.숨결이 귀 옆에 멈췄다.웃는 것도, 아닌 것도 같은 목소리였다.친밀함과 장난기가 묘하게 섞여 있었다.슬아의 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슬아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고개를 돌려 지훈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어젯밤에...”“알아. 우리 잤어.”“나 술에 취해서...”지훈은 곧바로 말을 끊었다.“술김에 저질렀다는 말은 하지 마. 내
Read more
PREV
1
...
177178179180181
...
196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