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Chapter 1941 - Chapter 1950

1952 Chapters

제1941화

이미윤이 물었다.“누가 전화했니?”현빈은 부재중 알림을 한 번 내려다봤다.“선우요.”“어젯밤 모임에 선우도 있었어?”“네.”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이미윤은 문득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그러고 보니 선우도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됐지. 그 집안에서는 선우 혼사 때문에 꽤 마음을 쓰는 모양이던데, 정작 선우 본인은 하나도 안 급해 보여.”현빈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네. 선우는 몇 년 더 놀고 싶어 해요.”이미윤의 시선이 곧장 현빈에게 닿았다.“그럼 넌? 선우는 놀고 싶어서 그렇다 치고, 넌 왜 그러니?”현빈은 난처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엄마, 말씀하시다 보면 꼭 다시 제 얘기로 돌아오시네요.”이미윤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정면으로 말하면 넌 받질 않으니까, 나도 돌려서 말할 수밖에 없지.”현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저 다 먹었습니다.”현빈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때 이미윤이 불러 세웠다.“잠깐. 오늘 오후에 시간 있니?”현빈이 다시 이미윤을 바라봤다.“왜요?”이미윤은 옆에서 얌전히 밥을 먹고 있는 윤우를 한 번 내려다봤다.윤우는 조용했고, 시끄럽게 굴지 않았으며, 눈치도 빨랐다.경계심을 품은 채 곁에 두기로 했지만, 이미윤조차 윤우를 보며 마음 한구석이 약해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아무리 그래도 고작 열 살짜리 아이였다.이미윤이 입을 열었다.“오늘 오후에 윤우 데리고 새 옷 좀 사러 갈 생각이야. 너 시간 있으면 같이 가.”현빈은 바로 ‘전 시간 없습니다’라고 말하려 했다.그런데 그보다 한발 먼저 이미윤이 못을 박았다.“시간 없다는 말은 하지 마.”현빈은 입을 다물었다.‘차라리 묻지 말고 그냥 명령하시지.’...시내 중심가, 백화점.이미윤은 이렇게 누군가의 옷을 골라 주며 쇼핑하는 것이 오랜만이었다.그것도 아동복을 고르는 일은 거의 처음에 가까웠다.그런데 막상 해 보니 제법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미윤의 기분은 갈수록 들떴다.이미윤은 윤우의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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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2화

현빈은 막 설명을 꺼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미윤이 윤우를 한 번 보고, 아이 앞에서는 말하지 말라는 듯 눈짓을 보냈다.현빈은 그 뜻을 알아듣고 말을 돌렸다.“정은아, 설명하려면 좀 길어. 나중에 따로 말해줄게.”임시호와 조씨 집안, 그리고 정은 사이에는 그간 얽히고설킨 일들이 적지 않았다.시간을 따로 내서라도 윤우의 출신을 말해 두는 편이 맞았다. 그래야 정은과 재석도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대비할 수 있었다.그런데 윤우가 어떤 아이인지 설명하는 순간, 임시호의 죽음까지 숨길 수 없게 된다.현빈에게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식의 고결함은 없었다. 다만 정은이 지금 아이를 품고 있는 몸이라는 게 걸렸다.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엔 시기가 좋지 않았다.‘출산 끝나고 나서 말하자.’현빈은 속으로 그렇게 정리했다.강서원이 윤우를 한 번 보고는 물었다.“그래서 아이 옷 사러 나온 거야?”이미윤이 자연스럽게 받아쳤다.“그렇지. 너희도 그러려고 온 거 아니야?”정은은 작게 대답했다.“네.”그 뒤로는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정은과 이미윤 사이가 원수처럼 끝장난 관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정하게 지낼 수 있는 사이도 아니었다.예전에 이미윤이 이미숙에게 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정은에게는 그걸 엄마 대신 용서할 자격도 없었다.그래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남처럼 지내는 편이 오히려 가장 무난했다.강서원이 먼저 정리하듯 말했다.“그럼 우린 이쪽으로 갈게.”이미윤도 정은이 자신을 반기지 않는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이미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치 있게 물러섰다.“그래. 우린 저쪽으로 갈게.”그렇게 서로 체면은 갖춘 채 인사를 나누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려 했다.그런데 그 짧은 사이에 현빈은 어느새 카툰 캐릭터가 그려진 쇼핑백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현빈은 그걸 직접 정은에게 건넸다.정은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이게 뭐예요?”현빈이 짤막하게 답했다.“매장 직원이 그러는데, 이거 애착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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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3화

“끝났나요?”정은은 자신에게 등을 돌린 채 태아심박동 모니터링 결과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젊은 의사를 바라봤다.정은의 말에 젊은 의사가 몸을 돌렸다.“저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하찬영 교수님을 모셔 올게요.”정은은 눈을 깜빡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하찬영이 급히 들어왔다. 하찬영은 가장 먼저 결과지를 집어 들고 꼼꼼히 살폈다.30초쯤 지난 뒤.“보호자 왔어?”젊은 의사가 대답했다.“네, 밖에 있습니다.”“들어오라고 해.”“네.”재석이 들어왔을 때, 재석의 얼굴에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교수님, 무슨 일입니까?”말하면서 재석의 시선은 동시에 정은에게 향했다.정은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정은도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했다.하찬영이 말했다.“이런 경우야... 태아심박동 검사 결과가 조금 이상해서 한 번 더 봐야 합니다.”재석은 순식간에 긴장했다.“어느 쪽이 이상한 건데요? 큰 문제 생긴 건 아니죠?”“보호자님, 우선 너무 불안해하진 마세요. 태아심박수의 기준선 정상 범위는 분당 110에서 160회고, 10분 이상 유지되면 안정적이라고 봅니다.”“지금 검사 결과상 태아빈맥이 보여서 안전하게 한 번 더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그제야 재석은 숨을 돌렸다.“네, 저희가 협조하겠습니다.”그런데 다시 측정한 게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두 번, 세 번.네 번째에 이르러서야 태아심박동은 다시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하찬영도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쌍둥이를 임신한 정은은 고위험군 산모라 훨씬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은이 이곳에 산전 등록을 한 뒤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이 적잖이 전화를 걸어왔다. 대놓고든 에둘러서든 정은을 각별히 봐달라는 뜻이었다.하찬영은 이미 은퇴한 지 몇 년이 지난 상태였다. 비록 병원으로 다시 불려 와 일하고 있었지만, 웬만한 일로 하찬영이 직접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가끔 까다로운 케이스 몇 건 맡아 해결하고, 실력도 한 번 보여주고, 그렇게 지내는 생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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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4화

정은은 임신 후반기를 버텨내는 마음가짐을 나름대로 단단히 다잡으려 애썼다. 재석도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하며 정은을 극진히 돌봤고, 가족들 역시 정은이 불안하지 않도록 충분한 관심과 안정을 건네고 있었다. 그런데도 정은은... 자꾸만 마음이 아팠다.자기 몸인데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감각이 두려웠다.마치 정은이 더는 정은 자신이 아니라, 뱃속 아이들을 품고 길러내는 존재로 전락한 것 같았다.속옷을 몇 번이나 더 갈아입고 나서야 정은은 풀이 죽은 채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눈물도 뜻대로 멈추지 않고 자꾸 흘러내렸다.재석이 집안 정리를 다 끝내고 거실로 나왔을 때 정은이 보이지 않자, 재석은 다시 침실로 들어왔다. 재석의 눈앞에 정은의 무너진 모습이 들어왔다.정은은 침대 끝에 힘없이 앉아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울고 있었다.마치 금이라도 간 도자기처럼 위태로워 보였다.그 모습을 본 재석의 마음도 그대로 갈라지는 듯했다.재석은 발소리를 죽이며 조심조심 다가갔다.목소리에도 미세한 떨림이 배어났다.“여보, 왜 그래?”정은이 고개를 들자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정은이 처음 꺼낸 말은...“미안해...”그 말을 듣는 순간 재석의 가슴은 다시 한번 무너져 내렸다.정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그냥 너무 괴로워... 너무 괴로워...”재석은 손을 들어 손가락 끝으로 정은의 뺨에 흐른 눈물을 살며시 닦아냈다.“알아, 다 알아...”정은이 밤마다 몇 번씩 잠에서 깨어 화장실에 가던 날들, 재석 역시 편히 잠든 적이 없었다.오히려 재석이 더 초조했고, 더 무서웠고, 더 큰 압박과 걱정을 짊어지고 있었다.그런데도 정은이 매일 밝고 편안한 얼굴로 지내는 걸 볼 때마다 재석의 마음도 조금씩 놓이곤 했다.하지만 재석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정은에게도 약해지는 때가 있고, 감정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때가 있다는 걸.재석이 낮게 말했다.“여보,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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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5화

병원으로 가는 길에 재석은 신호를 두 번이나 어겼다.다행히 정은이 처음부터 재석에게 먼저 말해뒀다. 교통경찰 쪽에 우선 연락해서 상황을 알리라고.원래라면 30분은 걸리는 거리였는데, 재석은 그걸 억지로 20분까지 줄여버렸다.차에 타고 있는 동안 정은은 배가 아주 심하게 아픈 건 아니었다. 다만 묵직하게 아래로 당기고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생리통이 올 때와 비슷했다.정은은 그 와중에도 한 사람씩 차례로 이미숙, 소진헌, 강서원, 리아, 수민에게 전화를 걸 여유까지 있었다.정은이 말했다.“엄마, 아빠, 저 양수 터졌어요.”정은이 다시 말했다.“응, 수민아. 나 지금 애 낳으러 가는 길이야.”정은이 또 전화를 바꿔 들고 물었다.“형님, 저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형님이 현우랑 현민이 낳을 때 얼마나 아팠어요? 저는 왜 아직 막 엄청 아프진 않죠? 설마 가진통 같은 건 아니겠죠?”리아가 대답했다.“나는 양수는 안 터졌고, 먼저 이슬이 비쳤어. 그러다 결국 바로 수술 들어갔지.”“어? 그런 경우도 있어요?”“사람마다 다 달라. 너희 지금 거의 다 왔어? 나랑 지언 씨는 가는 중이야.”“...”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오히려 겁이 날 정도였다.정은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어머님, 저 아마 애 낳을 것 같아요. 지금 병원 가는 길이에요.”전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이어 핸드폰이 카펫 위로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고, 그 뒤에야 너무 흥분한 탓에 말까지 더듬는 강서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 나, 나... 지금 바로 갈게! 기다려! 아! 아니, 기다리지 마, 얼른 낳는 게 더 좋지. 아무튼... 나, 나 금방 도착해!”강서원은 통화를 마치자마자 침실에서 뛰쳐나와 조기봉의 방문을 두드렸다.“자지 말고 얼른 일어나! 정은이 애 낳는대...!!!”다음 순간 방문이 안에서 확 열렸다. 잠옷 차림의 조기봉이 튀어나왔다.“애 낳는다고?! 가자 가자, 당장 가야지!”“잠깐!!” 강서원이 조기봉을 붙잡았다. “그거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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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6화

“네.”재석은 물컵을 건넸다.“여보, 물 한 모금 마셔.”재석의 손은 떨리고 있었고, 목소리에도 불안이 묻어났다.막 한 차례 진통이 지나간 뒤였고, 정은도 실제로 목이 말랐다. 정은은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여 물을 마시려 했다. 그런데 막 입을 대려는 때, 익숙한 통증이 다시 밀려왔다. 앞서 느꼈던 어떤 통증보다도 훨씬 거셌다.“욱...”정은은 그대로 토하고 말았다.다행히 바로 옆에 세면대가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교수님! 교수님! 제 아내가 토했어요! 왜 갑자기 구토를 하는 거죠?! 많이 심각한 건가요?!” 재석은 거의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하찬영이 한 번 보고는 침착하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통증을 견디기 어려울 때 나타나는 생리적 반응입니다.”“정은아, 이제 물 한 모금 마시자...”정은은 재석이 건네는 휴지를 받아 들었다. 하지만 통증이 너무 심해서, 입가를 닦는 단순한 동작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여보, 나 아파... 너무 아파...”“알아, 나도 알아!”재석은 정은의 입가를 닦아주면서 다시 물컵을 가져다 댔다.“응, 물 한 모금만 마시자...”내진을 마친 뒤 하찬영은 몇 분 더 상태를 지켜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자궁문이 거의 다 열렸습니다. 분만실로 옮기죠.”지난번 검진 때 하찬영은 정은의 상태를 놓고 종합적으로 판단을 끝낸 상태였다.정은은 쌍둥이 자연분만 조건에 부합하는 산모였다.다만 실제로는 안전을 우선해, 대다수 산모와 보호자들이 제왕절개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정은과 재석도 충분히 상의한 끝에 이렇게 정했다.“우선 자연분만을 시도해 보고, 상황이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바로 제왕절개로 전환하자.”가장 좋지 않은 경우는 자연분만을 시도하다가 수술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고생은 고생대로 두 번 겪게 된다.그래도 정은은 한번 해보고 싶었다.하찬영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물론 그 모든 전제는 두 아이가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이상 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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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7화

분만실 문이 열리고, 하찬영이 밖으로 나왔다.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앞으로 몰려들었다.재석이 가장 먼저 물었다.“제 아내는요?”강서원이 다급하게 뒤를 이었다.“산모랑 애들은 다 괜찮아요?”조기봉도 바로 입을 열었다.“낳은 거지?”리아가 물었다.“자연분만했어요, 제왕절개수술 했어요?”지언은 한발 늦는 바람에 안쪽으로 끼어들지 못하고, 리아 뒤에 선 채 코끝만 괜히 한 번 만졌다.하찬영은 먼저 재석을 바라봤다.“축하드립니다. 아드님 한 분, 따님 한 분입니다.”그 뒤에야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며 말했다.“자연분만으로 잘 끝났고, 산모와 아이들 모두 무사합니다.”“조금 있다가 회복실 관찰 시간이 지나면 산모는 먼저 병실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쌍둥이 조산이라 위험 요소가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어서...”“아기들은 오늘 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경과를 봐야 합니다. 큰 이상이 없으면 내일 아침에는 나올 수 있습니다.”말이 끝나자마자, 안에서 간호사 두 명이 아기 침대가 달린 이동용 카트를 밀고 나왔다.두 아이는 각각 분홍색 포대기와 파란색 포대기에 싸여 있었다.한 아이는 눈을 꼭 감은 채 얌전히 있었고, 다른 아이는 작은 발을 바둥거리며 입도 오물오물 움직이고 있었다.하찬영이 간호사들에게 잠시 멈추라는 눈짓을 보냈다.“보호자들, 가까이 오셔서 보셔도 됩니다. 다만 너무 바짝 붙지는 마시고, 공기 통할 정도 거리는 유지해 주세요.”그제야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갔다.“어? 재석이는 어디 갔어? 얼른 와서 애들 봐야지.”이쪽을 봐도 없고 저쪽을 봐도 없었다.“아버지, 엄마, 저 대신 잠깐 봐주세요. 저는 먼저 들어가서 정은이 곁에 있을게요.”재석은 이미 방호복을 전부 갖춰 입고 소독까지 마친 상태였다. 얼굴도 단단히 가려져 있었으니, 다들 한참을 찾아도 못 알아본 게 당연했다.강서원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아? 어, 그래! 얼른 들어가. 내가 대신 보고 있을게.”강서원은 정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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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8화

의사는 잠깐 말을 멈췄다. 산모 보호자 쪽의 망설임과 의문을 눈치챈 듯, 먼저 설명을 덧붙였다.“원래 산후 관찰 시간은 두 시간으로 정해져 있고, 사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다만 하찬영 교수님께서 30분 정도 더 지켜보라고 하셨습니다.”“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그제야 재석은 알겠다고 답하고, 의사가 조금 전까지 앉아 있던 자리에 가서 앉았다.정은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아까는 너무 졸려서 자칫 잠들 뻔했다. 의사가 핸드폰이라도 보면서 버티라고 해서 그제야 꺼내 들었던 거였다.사진첩 안에는 두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체중계 위에 올려졌을 때 찍힌 사진이 들어 있었다.한 아이는 아주 얌전했고, 다른 아이는 작은 발을 번쩍 들고 있었다.정은은 그 사진을 몇 번이고 들여다봤다.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웠다.정은이 입을 열었다.“두 꼬맹이 봤어, 못 봤어?”재석은 잠깐 굳었다.정은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무슨 일 있었어? 나한테 숨기지 마!”“아니, 급한 일은 없고. 그냥...”“나 아직 애들 못 봤어.”정은은 말문이 막혔다.재석은 조금 민망한 듯 덧붙였다.“당신 보려고 방호복 갈아입는 데만 정신 팔려서 바로 들어왔거든. 애들 볼 틈이 없었어.”재석이 되물었다.“당신은 봤어?”정은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연하지.”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의사가 가장 먼저 정은 앞에 데려와 성별부터 확인시켜 줬다.그다음에는 몸무게를 재고, 기저귀를 채우고, 배냇저고리까지 입혔다.다 입힌 뒤에는 다시 정은 곁으로 데려왔다.하찬영은 정은에게 윗옷을 올리게 한 뒤, 아이들을 정은의 가슴 위에 엎드리게 했다.정은이 설명했다.“그거 캥거루 케어라고 하더라. 교수님 말로는 아기랑 엄마 사이에 친밀감이 생기는 데도 도움이 되고, 수유 관계 형성에도 좋대.”“또 시상하부에서 옥시토신이 나오게 해서 자궁수축을 돕고, 오로 배출도 빨라진다고 했어. 아무튼 아기한테도 좋고, 엄마한테도 좋대.”재석은 그 말을 듣고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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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9화

“오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정은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봉수진과 이춘재가 걱정할까 봐, 정은은 연락할 때 두 사람만은 일부러 피했었다. 그런데도 결국...봉수진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한 눈으로 정은을 바라봤다. 속상하고 화도 나고, 마음도 아픈 기색이 그대로 묻어났다.“이렇게 큰일을 우리한테 숨겨? 몸 회복하고 나면 그때는 내가 그냥 안 넘어가.”정은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이춘재도 한마디 보탰다.“네 엄마가 전화 안 했으면 우리는 아직도 모르고 있었겠다. 정은아, 너는 정말...”이춘재도 알고 있었다. 외손녀가 자신과 봉수진을 배려해서 그런 거라는 걸.하지만 분명 전부터 약속했었다. 출산할 때가 되면 꼭 가장 먼저 알려주기로.그런데 일이 이렇게 됐으니, 두 사람이 조금 서운하고 화가 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봉수진이 목이 메어 말을 이었다.“다행히 네가 무사해서 그렇지, 아니었으면 내가 정말...”이미숙과 소진헌은 다른 도시에 있어 바로 달려올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봉수진과 이춘재마저 자리에 없었다면, 정은 쪽 식구는 사실상 아무도 정은의 출산 현장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봉수진이 사돈댁을 못 믿는 것도 아니었고, 재석을 못 믿는 것도 아니었다.그저 사람 마음이라는 걸 믿지 못할 뿐이었다.정말 중요한 때에 자기 식구를 제일 걱정하고 돕는 건 결국 자기 식구뿐이니까.현빈은 제자리에 선 채, 이춘재와 봉수진 너머로 막 출산을 마친 정은을 가만히 바라봤다.정은은 안색이 조금 지쳐 보였고, 머리카락도 흐트러져 있었다. 그래도 눈빛만은 또렷하고 환했다.원래는 높이 불러 무서울 정도로 커 보이던 배도 이제는 푹 꺼져 넉넉한 병원복 안에 가려져 있었다.그 모습을 보면 정은이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도 살짝 올라간 입가에는 처음 엄마가 된 사람의 기쁨이 분명히 어려 있었다.고생은 했지만, 정은은 그마저 기꺼이 받아들인 듯했다.정은을 병실까지 데려가는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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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0화

“조심해!”현빈이 곧바로 앞으로 다가와 정은의 몸을 붙잡아 안정시켰다.다행히 큰일은 아니었다.“감사해요, 오빠.”현빈은 웃으며 숟가락을 건넸다.“천천히 먹어.”“네네.”정은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달걀프라이를 세 개나 먹어 치웠다.봉수진은 그 모습을 보다가 눈가가 금세 젖었다.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고, 얼마나 고생했으면 저렇게 허기진 채 먹을까 싶어서였다.그래도 많이 부쳐오길 잘했다.정은이 말했다.“배불러요.”봉수진이 물었다.“하나 더 있는데, 그것도 먹을래?”정은은 얼른 손을 내저었다.“정말 더는 못 먹겠어요, 외할머니...”“그래, 그럼 그만 먹자.”현빈이 컵을 건넸다.“물 좀 마실래?”“네네.”정은이 손을 뻗으려 하자, 현빈은 빨대를 직접 잡고 정은 입가에 가져다줬다.“감사해요, 오빠.”현빈은 입가를 살짝 올렸다. 자신이 뭔가라도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괜히 기뻤다.그때는 이미 새벽 다섯 시였다.밤새 이렇게 정신없이 지냈으니, 정은은 다들 몹시 지쳤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저 이제 괜찮아요. 아버님, 어머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그리고 오빠, 형님과 아주버님도 먼저 들어가서 쉬세요.”가장 먼저 지언과 리아가 인사를 하고 나섰다.나가기 전, 리아가 말했다.“이틀쯤 뒤에 다시 보러 올게.”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좋아요.”봉수진과 이춘재도 돌아가기로 했다.봉수진이 말했다.“정은아, 외할머니가 조금 있다가 아침밥 가져다줄게.”정은이 막 뭐라고 말하려던 때, 강서원이 웃으며 끼어들었다.“어머님, 좀 쉬세요. 아침에는 제가 가져올게요. 어머님 마음은 알겠는데, 저녁밥을 어머님이 가져오시는 걸로 할까요?”봉수진은 잠깐 생각하더니 그 제안이 괜찮다고 여겼다.이춘재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봉수진은 이제 나이가 적지 않았다. 지금이 새벽 다섯 시인데, 아침밥을 일곱 시나 여덟 시에 다시 가져오려면 집에 가서 제대로 잠도 잘 수 없을 것이다.이춘재는 아내가 그렇게 무리하다가 버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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