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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1541 - Chapter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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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1화

그러나 시연이 방금 거절한 그 순간, 조이가 어린이집 정문에서 깡충 뛰어나왔다.엄마 아빠가 동시에 서 있는 걸 본 조이는 그야말로 환하게 얼굴이 빛났다.아빠한테 품에 안기고, 엄마한테도 껑충 뛰어올라 뽀뽀하고...그 시간만큼은 조이가 세상에서 가장 부자인 아이였다.“아빠, 엄마.”조이는 두 손으로 아빠와 엄마 손을 각각 잡았다.“같이 왔어요? 얼른 가요, 얼른 차 타요!”유건이 시연을 바라봤다.“타. 데려다줄게.”조이는 이미 말귀를 꽤 잘 알아듣는 나이가 됐고, 귀가 번쩍 트인 아이였다.“엄마, 어디 가요?”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조이랑 아빠랑 같이 안 가요?”“조이야...”시연은 딸 앞에서 늘 마음이 약해졌다.“엄마 오늘 할 일이 있어서 너랑 아빠랑 같이 못 가.”“아...”조이는 시무룩하게 입을 내밀었다.그래도 손은 꽉 잡은 채 놓지 않았다.“엄마, 어디 가는데요? 아빠 차 타요. 아빠가 데려다준대요.”유건도 거들었다.“가자. 안 그러면 조이가 계속 신경 쓰잖아.”딸의 작은 소원을 끝까지 뿌리칠 수 있을 리 없었다.“그럼, 부탁 좀 할게요.”시연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유건은 입꼬리를 가볍게 올렸다.“부탁은 무슨. 됐어.” ...조이는 뒷좌석 카시트에 앉고, 시연도 뒤에서 함께 앉았다.유건은 백미러로 잠깐 두 사람을 보고 가슴 한쪽이 먹먹해졌다.‘이 순간이... 그냥 평범한 일상이면 좋을 텐데.’차가 출발하자, 유건이 물었다.“어디로 가?”“강울대병원이요.”시연은 속으로 생각했다.‘나도 강울대병원 직원이었으니까... 유건 씨도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겠지.’“그래.”유건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강울대병원 가서 양석현 교수님 볼 거야? 복직하려는 거야?”‘역시... 의심은 안 하네.’시연은 부드럽게 웃었다.“아니요, 아직 복직 생각은 없어요. 그동안 교수님도 못 뵈었고... 선배님들도 보고 싶어서요.”“그렇구나.”유건은 더 묻지 않았다.하지만 마음속에는 작은 의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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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2화

조이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가 어디서 용기가 다시 솟았는지... 고개를 들고 물었다.“아빠... 아빠랑 엄마... 다시 화해할 순 없어요?”조이는 예전처럼 아빠와 엄마가 같이 있는 모습을 여전히 갈망하고 있었다.“하...”유건은 아주 작은 숨을 내쉬었다.딸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막막했다.가능하기만 하다면, 그때로 가장 돌아가고 싶은 건 유건이었다. “조이야... 우리는 엄마 마음을 존중해야 해. 엄마는 이제... 새로운 사람이 있어. 조이처럼 엄마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 조이도 엄마 행복하길 바라지?”“새로운... 사람이요?”조이는 ‘새로운 사람’이라는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그저 커다란 눈을 깜빡이기만 했다.유건은 그제야 자기가 딸의 이해 범위를 넘긴 걸 깨달았다.그래서 말을 바꿨다.“조이, 은범 아저씨 알지? 엄마랑 같이 있었던 은범 아저씨.”‘설마 못 봤을 리는 없겠지.’‘결혼 준비하고 있을 텐데... 조이랑 정붙이는 건 필수잖아.’“은범 아저씨요?”조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조이요, 은범 아저씨 좋아해요.”“그래...?”유건의 가슴이 순간 꽉 조였다.그야말로 마음이 찢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럼, 조이는 은범 아저씨가 더 좋아? 아니면 아빠가 더 좋아?”조이는 곧바로 답했다.“당연히 아빠요!”유건의 입꼬리가 기어이 귀밑까지 올라갔다.‘역시... 내 딸.’‘내 편은 딱 하나 있네.’하지만 유건은 아까의 화제를 놓지 않았다.“엄마는 앞으로 은범 아저씨랑 함께 지낼 거야. 은범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니까 엄마 잘 챙겨줄 거야.”조이는 이야기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근데요... 은범 아저씨... 요즘 안 보여요.”“응?”유건은 잠깐 멍해졌다.‘뭐지?’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조이 말은... 은범 아저씨가 요즘 바빠서 같이 못 놀아준다는 거야?”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진짜로요.”“음... 바쁜가 보다.”유건이 혼잣말처럼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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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3화

유건의 머릿속은 여전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지하한테는... 뭐. 남도 아닌데, 헛말 좀 해도 되겠지.’“저번에 내가 말했던 거... 진아 씨 아프다고 했던 거, 너 그 뒤로 진아 씨한테 물어봤냐?”[그거?]지하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물어봤지. 근데 내 걱정은 필요 없대.]유건의 미간이 바로 좁혀졌다.“너... 어떻게 물어본 건데?”[뭐가?]지하는 이해 못 하겠다는 듯 반문했다.[전화해서 물어봤지. 임진아가 그러더라? 앞으로는 전화하지 말래. 내 관심 필요 없대.]“음.”유건은 가차 없었다.“하긴, 넌 진아 씨 걱정할 자격도 없지.”[야, 고유건! 너 지금 누구 편이야? 열받게 하려고 전화한 거야?]“아니.”유건은 눈두덩이를 눌렀다.정말 이럴 시간이 없었다.“내 말은... 너 그냥 사람 붙여서 확인해 봐.”[뭘?]그 말에 지하의 마음이 순간 얼어붙었다.본능적으로 느꼈다.무언가 잘못됐다는 걸.유건은 절대 근거 없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왜? 너 뭔가 아는 거야?]“아니야.”유건은 고개를 저었다.“나도 요즘 시연이랑 자주 못 보고, 물어보기도 좀... 애매한 상황이야. 근데... 시연이랑 진아 씨, 둘 다 요즘 좀 이상해. 말로 설명은 안 되는데... 뭔가 있어.”[이상해?]지하는 유건만큼 예민하지 않아 한발 늦게 깨달았다.[뭐가 이상한데?]“모르겠어.”유건은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알았으면 지금 너한테 전화 안 했지. 너 그냥... 네 마음대로 해. 네가 신경 안 쓴다고 하면... 내가 사람 시킬 거야.”[잠깐.]지하는 곧장 말을 막았다.[됐어. 내가 알아볼게.]유건이 직접 움직이면 일이 번거로워진다는 걸, 지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재명과 기환 같은 사람을 가진 그와 달리, 유건은 시연과 노은범의 결혼을 방해할 여지가 있었다.그건 문제가 커진다.[시연 씨 쪽 일이라면... 어차피 네가 나서는 것도 어렵잖아. 내가 바로 연락해 볼게.]“그래. 고맙다.”전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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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4화

“대표님...”재명은 지하가 쓰러질까 봐 이미 팔을 들고 있었다.넘어지기만 하면 바로 붙잡을 준비.“괜찮아.”오래 지나서야 지하는 새까맣게 가라앉은 얼굴로 천천히 눈을 떴다.재명은 그 순간 알아챘다.지하의 눈빛에서 생기가 통째로 빠져나갔다.“너... 너 방금...”지하는 숨을 가다듬으려고 애썼지만, 목울대가 요동치며 그 세 글자를 차마 내뱉지 못했다.입술을 떨며 간신히 말했다.“강울대병원이야?”“네. 이미 입원하신 지 5일 됐습니다.”“그래.”지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들어 서랍을 열어 차 키를 꺼냈다.“회의 다 취소하고, 나 없는 동안 들어오는 건... 알아서 처리해.”“알겠습니다, 대표님.”지하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 몸을 돌렸다.“대표님.”재명이 조심스럽게 붙잡았다.“운전기사 부르시죠. 직접 운전하시면... 위험합니다.”지하 본인도 지금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 잘 알고 있었다. 머릿속이 엉망이고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상황이었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네, 대표님.”...강울대병원 앞.병원 건물 아래까지 와 놓고도 지하는 꽤 오랫동안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오는 내내 머릿속은 계속 뒤엉켜 있었다.어떻게 마음을 다스려도 진정이라는 건 불가능했다.수십 번 되뇌었다.‘침착해라. 냉정해져라.’‘어떻게 침착해? 어떻게 냉정해?’‘진아가... 아프다고? 그것도 그런 병으로?’이제 지하가 생각해 보니 모든 게 설명이 됐다.‘진아가 먹어도 먹어도 살이 안 붙던 것, 약 먹어도 낫지 않던 속...’‘병원에서 토했던 것도, 임신 때문이 아니라... 그것 때문이었겠지.’‘그리고... 갑자기 이혼을 말했던 그날까지...’숨이 턱 막혔다.지하는 눈을 감았다.‘나는... 미친X이다.’‘아내가 이런 병을 앓고 있는데, 남편이라는 인간이 그걸 전혀 몰랐어.’‘진아는...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내가 오설아 문제로 흔들리는 와중에도...’‘진아는... 혼자 그걸 견디고 있었던 건가?’‘기다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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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5화

시선이 맞닿는 순간, 진아의 머릿속이 잠깐 새하얘졌다.아마 요 며칠 사이,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이 하나둘씩 주변에 퍼져나가서인지, 이제는 지하를 마주해도 예전처럼 놀라 도망치고 싶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녀는 놀라긴 했지만, 어느 정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지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때 부부였던 사이다. 진아는 지하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걸 느꼈다.‘부지하가 어떻게 알았지?’진아는 궁금증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물었다.“다 알고 온 거야?”사실은 모르쇠로 넘겨버리고 싶기도 했지만... 오늘따라 패딩 지퍼까지 열려 있어서, 안에 입은 환자복이 너무 눈에 띄었다.게다가 지하가 여기까지 찾아온 이상, 진아가 발뺌한다고 해서 통할 상황도 아니었다.지하는 단단히 다문 입술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없이 두 걸음 정도 다가와, 진아와의 거리를 좁히더니 인상을 찌푸린 채 그녀를 세심하게 훑어보았다.“후후.”진아는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와 손을 들어 자기 얼굴을 살짝 만졌다.“왜 그렇게 봐? 겉으로는 안 보여. 종양은 머릿속에 있으니까. 밖에서 보면 나, 멀쩡한 사람이랑 똑같아.”적어도 아직은 그랬다.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은 맑고 투명했다.시연이 곁에서 잘 챙겨준 덕분에 볼살도 조금 올라와 있었다. 그래서 겉모습만 보면 진아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다.지하는 진아를 보며 한동안 말을 잃었다. 목에 무엇인가 걸린 듯 움직이지 못 했다.그 순간, 지하는 문득 떠올랐다.그날 성빈이 자신에게 퍼부었던 말들...지하와 진아가 부부였던 시절, 지하는 진아에게 무심했다. 너무 무심했다.당시에는 성빈의 말이 그저 도를 넘은 참견처럼 들렸고, 그래서 더 화가 났었다.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성빈은 이미 알고 있었다.그리고 성빈이 지적한 말들은... 모두 사실이었다.지하는 스스로 진아를 잘 돌보고 있다고 믿었지만, 진아가 그의 곁에서 점점 야위어갔던 것도 사실이었다.진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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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6화

진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때 당신, 오설아 일 때문에 엄청 바빴잖아. 내 일로까지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어.”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지하의 심장은 단단히 움켜쥔 듯 조여들었다.아픔이 손끝까지 전해져 저릿하게 떨릴 정도였다.진아는 웃고 있었지만, 그 안엔 명백한 책임의 화살이 있었다.지하를 향한 비난이었다.“진아...”지하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그 시기에 자신이 설아를 챙긴 건 사실이었다.하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설아 좀 도왔다는 이유로... 당신이... 아픈 것도 말 안 한 거야?”“응, 맞아.”진아는 망설임 하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진아야...?”지하는 눈을 크게 뜨며 말이 튀어나왔다.“당신, 너무 자기 마음대로였던 거 아니야? 그때 나한테 말했으면... 우리, 이혼 안 했어!”지하는 이제야 모든 걸 이해했다.진아가 아이를 포기하려고 했던 건, 무심함이나 냉정함 때문이 아니었다.진아는 병들어 있었고, 임신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알아.”진아의 미소가 사라졌다.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고, 목소리도 낮고 평온했다.“내가 아픈 상태에서... 계속 당신이랑 얽히고 싶지 않아서 숨긴 거야.”지하는 숨이 턱 막혀왔다.눈동자 안이 서서히 금이 갔다.“당신이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나는 당신이랑 이혼을 절대 못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진아는 지하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이어갔다.이 장면을 그녀는 수없이 상상했었다.언젠가 지하가 모든 것을 알게 될 날을.그때 지하는 뭐라고 할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하지만 그날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너무 급작스럽게 찾아왔다.그래서 진아는 모두 숨김없이 말하기로 했다.“당신이랑 결혼한 그 동안, 솔직히 말하면... 난 별로 행복하지 않았어. 물론, 당신은 나한테도 잘해줬고, 우리 집에도 잘해줬지.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진아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씁쓸하게 웃었다.“거울만 보면 생각났어. 당신의 ‘잘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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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7화

지하는 진아를 병실까지 데려다주고, 조심스럽게 부축하여 침대에 눕게 했다.“뭐 더 필요한 거 없어? 물 마실래? 밤에도 치료 있어?”한꺼번에 쏟아붓는 질문에, 진아는 어느 것부터 대답해야 할지조차 몰랐다.지하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진아는 생각했다.지하의 그 오래된 버릇이 또 시작된 거라고.“부지하 씨.”진아는 그의 손목을 살짝 잡아끌었다.“그만해. 난 아무것도 필요 없어. 치료는 낮에 다 끝났고, 밤엔 별일 없어. 그냥 쉬면 돼.”말 속에 담긴 건, 돌아가라는 뜻이었다.지하가 그걸 못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모르는 척한 건지 알 수 없었다.“당신 주치의는 누구야?”진료 정보라도 직접 듣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진아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삼켰다.“그만 좀 해. 내 주치의는 내가 지도받던 교수님의 지인이고, 이 분야에서 제일 잘 하는 분이야. 나도 의사고, 시연이도 계속 같이 있어. 나 지금 최대로, 제일 잘 돌봄 받고 있어.”진아의 말은 곧, 지하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었다.지하는 떫은 표정으로 이마에 깊게 주름을 잡았다.가슴 한가운데에 덩어리가 걸린 듯, 답답했고, 어딘가 아프기까지 했다.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와버린 상태.지금에서야 후회한다고 한들 아무 소용이 없었다.진아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은데, 그 ‘무언가’조차 이제는 불필요했다.진아는 지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그럼에도 지하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진아의 얼굴이 눈앞에 있는데, 그 얼굴이 지금은 이렇게 웃고 있지만...내일은? 모레는?언제까지 이렇게 멀쩡할 수 있을까?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진아...”겨우 입을 열었을 때, 지하의 목소리는 이미 잠겨 있었다.“내가... 뭐 좀 해주면 안 돼? 뭐든... 내가 좀 돕게끔 해주면 안 돼?”그 절실함을 진아도 알았다.지하가 진심이라는 걸, 너무 잘 알았다.하지만 진아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당신이 해줄 건 아무것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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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8화

그 말을 듣는 순간, 지하의 마음이 서늘하게 멈춰 섰다.지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천천히 돌아서서 문을 닫고 나갔다.문이 잠기듯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진아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낮게 중얼거렸다.“이렇게 와도... 당신이 나한테 얼마나 진심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 습관일 뿐이겠지.”‘부지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늘 과거에 붙잡혀서, 결국 남도 자신도 다치게 하는 성격.’...다음 날, 시연이 병실에 오자마자 진아는 전부 얘기했다.시연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부지하가 왔다고? 양심도 없네?’‘진아가 병을 숨긴 건 잘못일 수 있어도, 아내를 그렇게까지 몰아붙여서...’‘차라리 혼자 버티는 게 더 낫다고 느끼게 한 건 부지하였잖아.’‘이 결혼에서, 진아가 얼마나 마음이 부서졌는지 그대로 보이는데.’“나, 부지하한테 앞으로 오지 말라고 했어.”“잘했어. 부 대표, 진짜 좋은 일을 하려는 거면, 네 말부터 좀 들어야 해.” 모레면 진아는 퇴원이었다.이번 치료 과정이 끝나서, 집에서 회복한 뒤 다시 검사받으러 와야 했다.퇴원 당일, 태권은 오지 않았다.이미 성빈과 얘기가 되어 있었다. 성빈이 오면 태권은 오지 않는 걸로.성빈은 출근도 포기하고 아침부터 병원으로 왔다.그런데 예상 밖으로, 성빈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은... 지하였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시연은 짐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그래서 대충 대답했다.“들어와.”시연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그러다 들려온 진아의 목소리에 손이 멈췄다.“부지하!! 왜 왔어?”“응.”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당신 퇴원하는 거 알고... 데리러 왔어.”그날 병실에서 나간 뒤, 지하는 결국 주치의를 찾아가 진아의 병에 대해 상세히 들었다.알면 알수록 마음은 더 불편해졌고, 더 놓을 수 없게 되었다.그래서 퇴원 날짜를 알아내자마자, 새벽부터 병원으로 온 거였다.시연은 갑자기 몸을 돌렸다.표정엔 짜증이 그대로 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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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9화

성빈의 날 선 말에도, 지하는 반박하지 않았다.‘맞아, 나 개X끼 맞아.’‘근데 진성빈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지하는 차갑게 성빈을 바라보며, 숨도 섞이지 않은 냉담한 말투로 내뱉었다.“그럼 진 대표는? 진 대표는 무슨 낯짝으로 진아 앞에 서 있는 건데?”성빈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움찔했다.표정도 굳어졌다.‘그래. 나도 진아한테 상처 준 인간이지.’‘웃기네.’지하는 입꼬리를 비틀며 소리 없는 냉소를 흘렸다.“당신이 뭔데? 나를 막아? 설마... 너 지금 진아 남자친구라도 된 거야?”“부지하!”지하의 말이 너무 노골적이라, 진아가 급하게 막으려고 했지만...“내가 묻잖아. 맞아?”지하는 집요하게 물었다.대답을 얻기 전까지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였다.성빈은 눈살을 찌푸리며,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나랑 진아 사이에는...”“아니구나.”지하는 말을 끝까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비웃음을 터뜨렸다.만약 ‘맞다’였으면, 성빈은 길게 말할 이유도 없다.“남자친구도 아니면서 뭘 막아? 나랑 똑같이 얼굴 두껍게 굴면서.”“부지하!”진아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서, 성빈을 옆으로 끌어당겼다.그리고 지하를 정면으로 마주 봤다.“그만 좀 해! 성빈은 내 친구야. 내가 오라고 해서 온 거라고!”진아는 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나 당신한테 다 얘기했지? 우리 끝났다고. 그러니까 나가, 지금 당장!”“진아...”지하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진아의 말이 닿지 않는 사람처럼.“나가라고!”진아는 결국 지하의 가슴팍을 밀어버렸다.하지만 지하가 움직일 리 없었다.그 미동도 없는 모습에 진아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왜 이래? 왜 자꾸 나 힘들게 해?”‘힘들게...?’지하는 고개를 숙여 진아를 내려다봤다.“당신한테 잘해주는 것도, 힘들게 하는 거야?”“잘해?”진아는 눈물로 얼굴이 젖은 채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아니. 당신은 나한테 잘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나, 태어나서 많은 사람한테 잘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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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0화

진아의 부모님에게도... 이제는 알릴 때가 왔다.태권 역시 이 동안 적지 않은 부담을 안고 있었다.“시연아.”채숙희는 시연의 손을 꼭 잡았다.“정말 고맙다. 그 동안 우리 진아 때문에 너도 힘들었지? 고생 많았다.”“아니에요, 어머니. 제가 뭘요.”시연은 황급히 손을 저었다.“조이도 사실 어머니한테 괜히 번거로움 드린 것 같아서 죄송해요.”가족끼리 무슨 남의 집처럼 구나 싶었다.채숙희는 위층을 가리키며 말했다.“진아 위에 있지?”“네.”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진아 요즘 잘 피로해져서요. 조금만 움직여도 쉬어야 해요.”“아이고...”채숙희의 목소리가 떨렸다.“우리 얼른 올라가 보자.”“네, 어머니.”진아 부모님과 태권이 계단을 오르자, 시연도 당연히 따라갔다.혹시라도 채숙희가 충격을 받아 쓰러지기라도 할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하지만 시연이 걱정한 것과 달리,채숙희는 놀라울 만큼 강했다.아마 이것이 딸을 지키는 ‘엄마의 힘’이었다.모두가 채숙희가 무너질 거라 생각했지만, 정작 병든 딸 앞에서는 누구보다 단단했다.“딸...”채숙희는 진아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얼굴을 어루만졌다.진아는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고 싶어, 억지로 웃어 보였다.“엄마, 그렇게 만지니까 간지러워... 오시면서 연락이라도 하지 그랬어요.”채숙희는 그제야 입가에 미약한 미소를 띠었다.“시연이는 이제 남도 아니잖아. 연락은 무슨... 우리가 그냥 안 오면, 너 또 얼마나 숨길지 뻔해서.”그 말이 끝나자,“엄마...”진아는 갑자기 목이 메었다.“안 무서워도 돼.”채숙희는 딸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아프면 치료하면 돼. 요즘 세상에 병 고치는 법 얼마나 많은데. 뭐가 그렇게 무서워.”“엄마...”진아는 엄마를 보고, 아빠를 보고, 콧속이 더 뜨거워졌다.“죄송해요... 아빠, 엄마... 제가... 말씀드릴 용기가 없었어요.”“울지 마, 우리 진아.”채숙희는 손바닥으로 딸의 눈가를 살살 닦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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