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661 - Chapter 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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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1화

문이 열렸다.시연은 문 앞에 서 있는 유건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이 사람...?’설마 했는데, 정말로 그가 왔다.그것도 혼자, 직접.“여보.”유건은 도시락부터 내밀지 않았다.오히려 조용히, 깊고 묵직한 눈빛으로 시연을 내려다봤다.그 눈빛은 마치 고양이가 물속에 비친 물고기를 응시하는 듯했다.“오늘... 눈이 많이 오네.”“네...?”시연은 잠시 당황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러게요. 오늘 눈... 많이 와요.”“잠시 후에 돌아갈 때, 운전 조심하고요.”“응, 고마워.”그런데도 유건은 여전히 도시락을 건네지 않았다.대신, 시연을 지나쳐 현관 안으로 들어왔다.신발장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물었다.“내 슬리퍼... 아직 있어?”“그게...”시연은 대답을 망설였다.사실,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그렇구나.”유건은 씁쓸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리고는 신발을 벗고 양말만 신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무거워. 내가 안까지 가져다줄게. 두고 바로 나갈게.”“네... 고마워요.”시연도 따라 들어갔다.유건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도시락을 하나하나 꺼내 정리하고 있었다.시연의 눈동자는 점점 복잡해졌고, 가슴 속 무언가가 요동치는 걸 느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한마디만 하면, 이 사람은 분명 도와줄 거야.’‘태권 오빠를 구할 수 있는 길...’‘그 길은... 바로 내 눈앞에 서 있는 이 남자잖아...’시연은 원래 남 일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성격이었다.하지만 태권은 달랐다.그는 진아의 오빠였다.‘진아의 오빠는... 곧 내 오빠나 마찬가지야.’‘친오빠까진 아니어도, 반은... 충분히 그런 셈이지.’‘사랑하면 그 사람의 가족도 소중해지는 거니까.’“다 됐다.”유건이 도시락을 다 정리하고 시연을 바라봤다.“그럼 나, 간다?”시연은 입술을 달싹였고, 가슴이 콩닥거렸다.‘말해... 지금 아니면 안 돼.’하지만 꺼낸 말은, 엉뚱하게도...“물... 마실래요?”“응...?”유건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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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2화

말하면서, 시연은 완자 하나를 집어 유건의 그릇에 넣으려 했다.“아...”그런데 유건이 입을 벌린 채, 시연을 바라봤다.의미는 분명했다.‘입에 직접 넣어줘.’시연은 손끝이 굳었다.‘내가 지금... 이 사람 입에... 먹여줘야 해?’물론, 지금은 부탁할 일이 있는 입장.유건의 기분을 맞춰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빨리.”유건은 아무렇지도 않게 재촉했다.“입 아프다? 줄 거면 빨리 줘.”“네...”시연은 이를 악물고, 완자를 유건의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음.”유건은 만족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 있었다.“맛있다.”‘그래... 당신이 맛있게 먹으면 됐어. 근데... 왜 이렇게 민망한 건데...’시연은 어색하게 마른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꺼내려 했다.‘이제 말해야지... 태권 오빠 일, 지금 말 안 하면...’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차마... 안 돼. 어떻게 이 타이밍에 그 얘기를 해...’어느덧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유건은 수저를 내려놓고 말했다.“배부르다.”‘가려는 건가...?’시연은 순간 당황했다.‘안 돼. 아직 말 못 했는데...’“국이라도 한 그릇 더 마셔요.”시연은 재빨리 유건의 그릇을 들어 왕성애가 끓여준 뜨끈한 국을 다시 퍼왔다.“이모님 국물 진짜 맛있잖아요.”“당연하지.”유건은 미소를 지었다.“성애 이모님이 여기로 온다고 하면 아침부터 준비하시더라. 네가 먹는 거라니까.”“이모님한테 감사해야겠네요.”둘은 그렇게 별 의미 없는 얘기를 이따금 주고받으며 국을 다 마셨다.유건은 마지막 휴지를 꺼내 입가를 닦았다.느긋하고 여유롭게.“이제... 슬슬 가야지.”‘안 돼.’시연은 순간적으로 불안이 밀려왔다.“과일 좀 먹을래요?”그리고 급히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딸기랑 체리, 망고도 있는데... 뭐 좋아해요? 아니면... 다 줄까요?”그렇게 말하며 냉장고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시연아.”유건이 시연의 손등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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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3화

‘하아...’시연이 잔뜩 풀이 죽은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걸 보니, 유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괜히 자기가 시연을 괴롭힌 사람처럼 느껴졌다.유건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또 ‘그렇군요’라고? 너는 정말...”시연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뭐야, 갑자기?’“임태권, 내가 빼줄 거야.”유건은 더 이상 돌려 말하지 않았다.담담한 어조에, 피곤함 반, 허용 반이 묻어 있었다.“근데 그 전에, 네가 하나만 알았으면 좋겠어.”“내가 이 일 하는 거, 다른 사람보다 쉬워 보일 수 있어도... 들어가는 에너지는 절대 적지 않다는 거.”“내가 힘 남아돌아서 이런 일 하는 게 아냐. 그냥, 너니까... 네 부탁이니까 하는 거야. 알겠어?”‘이제... 이 정도까지 말했는데도 못 알아듣는 거면, 그건 바보거나, 일부러 모른 척하거나 둘 중 하나야.’시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 눈빛에 진심이 담겼다.“알아요. 내가 너무 민폐인 거 알아요. 그래도...”말을 잇지 못한 채, 입술을 꾹 다문다.‘진아가... 그렇게 울면서 말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순 없었어.’‘태권 오빠가 정말 감옥 가게 되면, 진아는 얼마나 무너질까...’잠시 말이 끊기자, 유건이 시연을 내려다보며 웃듯 말했다.“그래, 민폐 맞아. 그러니까 꼭 기억해. 이번 일은 ‘너니까’ 하는 거야.”“네...”시연이 유건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녀의 눈동자 안에 유건이 또렷이 비쳤다. ‘이 사람... 정말 따뜻하네.’무언가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기억할게요. 이번 일에 대한 결과가 어떻든... 난 당신한테 큰 신세 진 거예요.”“그래, 그거면 됐어.”유건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제 밥이나 먹어. 자꾸 남 걱정만 하지 말고. 지금 네가 제일 신경 써야 하는 건너랑 네 배 속 애야.”“네...”...다음 날.시연은 병원에서 우주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그때,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이름은, ‘진아’였다.“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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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4화

“뭐?”지하는 믿기지 않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그게 어떻게 가능해?”“뭐가 어때서요?”진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지하를 흘겨보았다.그러고는 한껏 도도하게 말했다.“당신 아니어도 도와줄 사람은 많거든요? 세상에서 당신만 잘난 줄 알아요?”‘내 사람이 누군지는 굳이 말 안 해도 되겠지. 내 친구 시연이... 덕분이야.’“가지 마!”지하는 홧김에 진아의 손목을 움켜잡았다.“누구야? 도대체 누가 도와줬는데? 진성빈? 그 맨날 꾸미는 놈?”그 말에 진아는 눈을 더 치켜떴다.‘와, 이 사람 진짜... 자격지심도 수준급이다.’“왜 안 되는데요?”진아는 입술을 비죽이며 쏘아붙였다.“성빈이가 왜요? 얼굴 잘생겼죠, 공부 잘하죠, 집안도 좋아요. 당신보다 못한 거 하나도 없거든요?”“게다가 적어도 그 사람은 내가 부탁 안 해도 먼저 움직일 사람이잖아요.”진아는 지하의 손을 세게 뿌리치고 한 발 내디디며 돌아섰다.“흥, 진짜 유치하긴.”“야! 임진아!”지하는 어이없고 기막혀서 소리쳤지만, 이미 진아는 횡단보도 건너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대체 누가... 누가 임태권을 꺼냈다는 거야?’지하는 불쾌한 표정을 그대로 안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형 부호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말했다.“형, 그때 나한테 뭐라고 그랬어? 임태권 건은 내 말 듣겠다고 했잖아. 근데 왜 풀어줬어?”호준은 태연하게 말했다.[그랬지. 근데 유건이가 직접 말하더라고, 그 사람을 풀어달라고.]“유건이...?”지하는 말이 턱 막혔다.‘유건이가 왜? 임태권이랑 무슨 상관인데?’‘아...’지하의 머릿속에 딱 하나 떠오르는 그림.‘시연 씨, 그리고 임진아. 둘은 그냥 ‘친자매’나 다름없잖아.’지하는 이마를 ‘탁’ 쳤다.‘하... 방심했네! 유건이까지 낄 줄이야.’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아 진짜... 형, 다신 밥 안 가져다줄 거야. 형처럼 감도 없는 사람한테는 국물도 아까워!” ...그날 밤, BLUE.유건은 문 앞에서 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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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5화

시연은 귀가 간질거렸고,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는 듯했다. 진아, 그리고... 유건.‘둘 다 왔나 보다. 이제 날이 밝은 건가...?’시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몽롱한 눈으로 천천히 눈을 떴다.그리고 잠이 덜 깬 채,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진아야... 왔어? 왜 불 안 켰어? 불 좀 켜봐...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안 보여...”그 말에 진아와 유건은 동시에 멈칫했다.진아는 놀란 눈으로 유건을 올려다봤다.‘왜 이래? 여기... 불 켜져 있잖아?’밖은 밤새 내린 눈이 쌓여 새하얳으며, 환한 빛이 창밖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런데, 시연은... ‘어둡다’고 했다.유건의 얼굴도 굳었다.파랗고 하얗게 엇갈리는 표정.그는 침착하려 애쓰며 시연 앞에 조심스레 쪼그려 앉았다.그리고 손을 들어 시연의 눈앞에서 살짝 흔들어봤다.“여보?”‘이러지 마. 제발, 장난이면 지금 멈춰...’시연은 여전히 어두컴컴한 느낌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기운을 느낀 후,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그 움직이는 걸 붙잡았다. 이어서 서서히 시야가 밝아지며 자신이 잡고 있던 게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유건의 손?’조금 민망해져서 시연은 조용히 손을 뺐다.“왜 자꾸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요?”유건은 그제야 살짝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보이긴... 보이는 거지?’하지만 아직도 찜찜했다.그는 표정을 감추며 조심스레 물었다.“얼굴이 좀 안 좋아. 어디 불편한 데 있어?”“아니요.”시연은 고개를 흔들었다.“그냥...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에 좀 어질어질했어요.”그러고 나서 하품하며 중얼거렸다.“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가 봐요... 어제 밤새 뒤척였거든요. 우주는요?”“안에서 옷 갈아입고 있어.”유건은 조심스레 시연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간호사도 다녀갔고, 수술 전 주사도 맞혔어.”즉, 곧 수술실에서 데리러 온다는 의미였다.“그래요...”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바로 고개를 돌려 유건을 바라봤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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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6화

시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평소라면 뭐라도 반박했겠지만, 이번만큼은 조용했다.그리고, 조금 서러운 듯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잘못인 건 알아요... 근데, 마음대로 안 돼요. 너무 무서워서...”‘나도 알아... 괜히 이렇게 불안해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거.’‘근데... 멈출 수가 없어.’시연은 두 손을 무릎 위에 꼭 쥔 채,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우주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평생... 나 자신을 용서 못 할 거야.’그렇게 말하는 시연의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유건은 그걸 보자 가슴이 조여들었다.‘아... 안 되겠다. 더는 못 참겠어.’결국 그는 몸을 숙여 시연을 조용히 끌어안았다.“괜찮을 거야. 메인 집도의가 양 교수님 친구라며? 간담췌외과 최고라잖아.” “네...”의학적으로는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의 시연은 의사도, 논리도, 그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나는 이성보다 감정이 더 커.’유건은 시연을 꼭 안은 채 일부러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의사도 최고고, 우린 돈도 많아. 뭘 더 걱정해?”“그게...”시연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눈물 사이로 웃음을 터뜨렸다.‘이 사람, 진짜... 말은 왜 이렇게 웃기게 해...’“그래, 그 웃음이면 됐어. 너무 긴장하지 마.”조금 누그러진 공기 속에서, 두 사람은 그렇게 마주 앉아 있었다.그러다 수술실 문이 ‘철컥’ 열리며 간호사 한 명이 다급히 뛰쳐나왔다.“지 선생님!”유건과 시연을 향해 달려온 간호사의 얼굴은 급박함으로 물들어 있었다.‘안 돼!!’그 표정을 보는 순간, 시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왜요? 내 동생... 우주 무슨 일 생긴 거예요?”“네...”간호사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말했다.“대동맥 파열입니다!”그 말을 들은 시연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아니야, 아니야, 안 돼... 말도 안 돼...’그리고 눈앞이 번쩍, 귀가 먹먹해지며 다리에 힘이 풀렸다.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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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7화

수혈용 혈액을 준비하는 처치실.의사는 트레이를 들고 들어와 채혈 준비를 시작했다.유건은 이미 응급 혈액형 검사까지 마친 상태였다.그는 O형이며 우주에게 적합한 혈액형이었다.유건은 말없이 셔츠 소매를 걷었다.의사는 능숙하게 혈관을 고르고, 지혈대를 감고, 소독했다.“고 대표님, 지 선생님.”의사가 물었다.“얼마나 채혈할까요?”“보통 얼마나 하죠?”의사는 잠시 시연을 바라봤다.“지 선생님께 여쭤보는 게 빠르겠네요. 의료에 관한 건 제일 잘 아시니까요.”“여보?”유건이 조용히 시연을 부르자, 시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대답했다.“이론상 200ml부터 400ml까지예요. 보통은 200ml이고요.”‘400은... 체력이나 체중이 충분한 경우에만.’“그렇구나.”유건은 아무 고민도 없이 말했다.“그럼 400 하세요.”“네... 네?”의사는 잠시 당황했다.“보통은 체중이 많이 나가거나 건강 상태가 아주 좋을 때만 그렇게 하거든요.”시연도 마찬가지로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400은 많아요. 무리예요.”“많지 않아.”유건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내저었다.그러더니 시연의 볼을 슬쩍 집었다.‘요즘 살이 좀 오른 거 같네. 볼이 통통해서 잡기 딱 좋아.’“내가 말랐다고 생각해? 나 키도 크고 근육도 있어. 게다가 내 몸 상태, 너야말로 제일 잘 알지 않나?”‘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사람...’시연의 얼굴이 순간 확 붉어졌다.의사는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딴청을 부렸다.“지금... 그런 농담이 나와요?”시연이 작게 툭 하며 쏘아붙였다.“화내지 마.”유건은 시연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그리고 부드럽게 눌렀다.“나는 괜찮아. 조금이라도 더 우주한테 도움이 된다면, 더 뽑아도 돼. 선생님, 400으로 해주세요.”“네, 알겠습니다.”의사는 채혈을 시작했다. 굵은 바늘을 혈관에 넣자 짙은 피가 천천히 주머니 안으로 흐르기 시작했다.첫 번째 봉투가 순식간에 채워졌다.두 번째 백을 바로 연결.시연은 한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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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8화

“자책하지 마.”진아가 조용히 시연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고 대표님 말이 맞아. 사람 살리는 일에 무슨 옳고 그름이 있어?”‘네가 뭘 잘못한 게 아니야, 시연아.’“우주는 잘 버틸 거야. 누나도 있고, 매형도 있고... 무엇보다 우주에겐 네가 전부잖아.”“그랬으면 좋겠어.”시연은 고개를 숙이며 불안과 안도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한 시간이 흐른 뒤.철컥-다시 수술실 문이 열렸고, 아까 그 간호사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지 선생님, 고 대표님.”유건과 시연이 동시에 일어섰다.“어떻게 됐어요?”시연의 심장은 마치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듯 두근거렸다.“대동맥 봉합 마무리됐습니다.”이번엔 간호사의 말투도 이전보다 한결 부드럽고 여유로웠다.“지 선생님, 동생분 수술 무사히 마쳤고요. 지금은 출혈량 정리 후 복부 닫을 준비 중입니다.”“휴...”그 순간, 시연의 눈이 붉어졌다.‘살았다... 우리 우주가 살았다...’긴장으로 팽팽히 당겨져 있던 내면의 실타래가 뚝 하고 끊어지는 기분이었다.“바쁘신데 일부러 나와주셔서 감사해요.”“에이, 같은 병원 사람인데요... 뭐...”원래라면, 이렇게 수술 중간에 보호자에게 나와 직접 상황을 설명해 주는 건 의무가 아니었다.하지만 시연은 이 병원의 의사였고, 그래서 가능한 일이었다.이번만큼은...유건이 아니라 시연 덕분이었다.“그럼 저는 다시 들어가 볼게요.”간호사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돌아가려는데, 시연이 조심스럽게 붙잡았다.“잠깐만요... 저, 지동성 환자 쪽은 혹시... 어떤가요?”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지금은 대기 중이에요. 지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동생분 수술이 끝난 후에 수술실로 들어가실 거예요. 현재까지는 모든 수치가 안정적이고요.” “네, 고맙습니다. 고생 많으세요.”“천만에요.”간호사는 다시 수술실로 들어갔다.다시 한 시간이 흐른 뒤.이번엔 우주의 수술이 완전히 끝났다.주치의는 지동성 환자의 수술에 들어가 있었기에, 직접 설명하러 나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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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9화

“네.”시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작게 대답했다.그 모습에 유건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시연아, 너는... 마음은 누구보다 여리지만 겉으로는 늘 차가운 척하는구나.’ 유건을 대할 때도, 지동성을 대할 때도 그랬다.그런데, 유건은 그런 시연의 방식에 마냥 동의할 수만은 없었다.“여긴 의사도 있고, 간호사도 있어. 네가 있어도 도움 될 게 없어.”“집에 가서 푹 쉬어, 응? 내 말 좀 들어.”시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당신... 병원에 계속 있을 거죠?”“응.”유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실이었다.우주와 지동성이 동시에 수술에 들어간 오늘, 유건의 스케줄은 비어 있었다.“내가 잊고 있었네요.”시연은 낮게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우리 아버지 때문이든, 장소미 때문이든...’‘이 사람... 결국 이 병원에 붙어 있게 된 건 맞지.’‘그래, 장소미 때문이라도 고유건은 수술 결과를 확인하려고 남아 있을 거야.’“여보.”유건이 시선을 고정하며 이마에 주름을 그렸다.‘또 뭘 오해한 거야...’“그럼 나 먼저 갈게요.”시연은 피곤한 듯 고개를 돌렸다. 어젯밤부터 이어진 긴장과 불안, 그리고 오늘의 긴박함까지 몸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아버지 수술 끝나면 소식 알려줘요.”“내가 데려다줄게.”유건이 말했다.“괜찮아요.”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그 제안을 거절했지만, 혹시나 유건이 상처받을까 봐 작게 덧붙였다.“당신 피도 뺐잖아요. 괜히 왔다 갔다 하지 마요. 나 괜히 미안해지니까...”‘정말로...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가?’그런데도 유건의 얼굴은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살짝 굳어졌다.“더 걱정하게 하지 마. 기사도 있으니까 운전은 내가 안 할 거 아냐? 너 혼자 가면 난 더 신경이 쓰일 거야. 정 미안하다면, 내 마음을 편하게 해줘.” “그럼... 알겠어요.”시연은 결국 더는 거절하지 못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병원 밖, 눈은 조금 잦아들고 있었다.강울대병원에서 시연의 집까지는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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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0화

시연은 잠을 설쳤다. 한밤중이 되도록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았다.‘그분... 수술은 잘 끝났을까?’‘고유건이 한 말... 진심이었을까?’마음이 복잡해서, 이불 속에 누운 채 뒤척이고 또 뒤척였다.결국, 시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차라리... 나가자. 이대로 뒤척이느니,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게 나아.’그녀는 간단히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강울대병원으로 가는 길, 해는 아직 뜨지 않았지만, 하늘은 점점 푸르게 밝아지고 있었다.병원에 도착하자, 시연의 예상대로 지동성의 수술이 막 끝났다.수술실 앞, 의사가 보호자들에게 수술 결과를 설명하고 있었다.장미리와 고유건, 그리고 장소미가 있었다.소미는 담요를 덮은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수술은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환자분은 현재 중환자실로 이동되었고요. 다만 앞으로의 회복 상태, 거부 반응 여부 등 경과 관찰이 중요합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장미리와 소미가 서로의 손을 맞잡고 눈시울을 붉히며 인사했다.“별말씀을요. 중환자실에서 뵙겠습니다.”“네, 이따 뵙겠습니다.”의사는 직원 전용 통로로 이동했고, 세 사람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복도 끝, 시연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다행이다... 수술 성공했구나.’그제야 가슴을 졸이게 했던 무거운 감정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러면... 우리 우주의 수고도 헛되지 않았고, 내 결정도 후회하지 않아도 되겠지.’그때, 소미가 유건을 바라보며 촉촉한 눈으로 말했다.“유건 씨.”“정말 고마워요. 다 유건 씨 덕분이에요.”유건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나는 별로 한 게 없어. 진짜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시연이랑 우주이지.”그 말에 소미와 장미리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흥...”장미리는 작게 코웃음을 치며 입꼬리를 삐죽였다.“자식으로서 당연한 거 했을 뿐인데, 뭘 그렇게까지...”“엄마.”소미가 조용히 제지하듯 고개를 저었다.장미리는 더 말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에는 여전히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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