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671 - Chapter 680

732 Chapters

제671화

우주의 회복은 예상보다 빨랐다.수술 당일 밤, 우주는 의식을 찾았다.다음 날 아침, 시연이 병문안을 왔을 때, 우주는 유리 벽 너머로 누나를 향해 작은 손을 흔들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누나.”시연은 해맑게 웃으며 엄지를 번쩍 들어 보였다.“우리 우주, 진짜 대단해!”간을 기증한 것도 대단하지만, 그 어린 몸으로 수술을 버텨낸 건... 그 이상이었다.우주는 부끄러웠는지 살짝 얼굴을 붉혔다.점심이 지나고, 24시간 관찰이 끝난 의사는 우주가 간담췌외과 VIP 병실로 이동하는 걸 허락했다.이제야 비로소, 누나와 동생은 마주 앉을 수 있었다.시연은 우주의 손을 꼭 쥐고 따뜻한 손으로 볼을 살짝 쓸었다.“우주야, 편하게 회복해. 필요한 거 있으면 다 말하고. 이틀 동안은 누나가 병원에서 쭉 같이 있어 줄게.”“정말?”우주의 눈이 반짝였다.“진짜 너무 좋다!”하지만 이내 작게 물었다.“누나... 안 힘들어? 배 속에 아기도 있는데...”‘아이고, 날 걱정해 주는 거야?’시연은 웃음을 터뜨렸다.“우주는 동생이 아니라 우리 집 어른 같다, 어른.”“걱정하지 마. 누나는 아무것도 안 해. 옆에만 있어 줄 거야. 말동무만 해주면 되는 거니까, 괜찮지?”“응, 좋아!”그렇게 다정한 둘만의 병실 생활이 시작됐다.시연은 낮에는 병원에 머물렀고, 우주가 잠든 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며칠 동안 평온한 하루하루가 반복됐다.그날 밤도 우주는 늦게서야 잠에 들었고, 시연은 집에 돌아와 씻고 누운 채 핸드폰을 슬쩍 넘기다가 눈을 감았다. ‘이제 자야지...’띠링-초인종 소리에 시연은 눈을 번쩍 떴다.‘이 시간에 누구지...?’그녀는 급히 거실로 나가 문을 열었다.그리고 문틈 사이로 차가운 겨울 공기와 함께 짙은 술 냄새가 밀려 들어왔다.유건이 문틀에 기댄 채 입꼬리를 올렸다.“여보.”‘술... 마신 거야?’시연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오늘 회식 있었어요?”‘위 안 좋다면서... 술은 또 왜...’“술 마셨으면 그냥 집에 들
Read more

제672화

‘잘생긴 남자가 아니라, 술에 취한 잘생긴 남자가 제일 무섭다니까...’시연은 어이없게 유건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래서, 뭘 해주면 되는데요?”어차피 지금 이 상태로는 말이 안 통할 것 같았다.유건은 금세 기분이 풀린 듯 작게 웃더니, 시연을 불렀다.“여보...”부르자마자 몸을 기울였다.“아!”시연이 놀라 외쳤지만, 유건은 어느새 여자 어깨에 턱을 걸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까칠한 수염이 간지럽게 스쳤고, 체온이 뺨을 타고 전해졌다.“움직이지 마.”유건의 저음이 귓가를 스쳤다.“떨어지기 싫어. 그냥... 이렇게 안겨있고 싶어. 날 밀어내지 말고, 나 좀 안아줘. 보내지 말아줘, 응?” 시연은 얼이 빠졌다.‘이 상황에서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긴 할까...?’그런데 유건이 갑자기 몸을 떼더니 복부를 움켜쥐고, 고개를 푹 숙였다.“아파요?”시연은 바로 반응했다.유건은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응... 좀 누워야 할 것 같아.”“그럼 얼른 누워요. 거실 소파에... 담요 가져다줄게요.”시연은 고개를 돌려 옷방 쪽으로 향했다.그 사이, 유건은 거실 소파를 한 번 훑어보더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저기에 어떻게 누워... 저건 앉는 용이지.’유건은 천천히 발걸음을 돌려 시연의 침실로 향했다.그리고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음... 좋다. 이 향기, 시연이다.’유건은 눈을 감고 베개를 품에 안았다.그때, 담요를 들고나온 시연은 방 안의 광경을 보고 순간 멈췄다.“당신...?”시연은 눈을 크게 떴다.유건이 침대 위에 편하게 누워 있는 걸 보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저기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시연은 다급하게 다가가 유건의 팔을 흔들었다.“일어나 봐요. 여긴 아니죠!”하지만 유건은 정말로 잠든 것처럼 보였다. 몇 번을 불러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이걸 어쩌지?’‘설마, 일부러 자는 척하는 건가?’시연은 인상을 찌푸렸다.‘고
Read more

제673화

“아니, 당신...!”유건의 등을 바라보며 시연은 얼굴이 벌게졌다.“내가 노크했잖아요! 그럼 들어오지 말라고 했어야죠!”“왜? 뭐가 문제인데?”유건은 여유롭기 그지없는 어조였다.“내가 널 보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왜 이제 와서 새삼?”‘하... 이 인간은... 정말 답도 없다.’시연은 말문이 막혔다.‘예전이랑 지금이 같냐고! 진짜, 이 얘기해봤자 입만 아프지...’시연이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 얼굴을 들지 못하자, 유건은 장난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왜 이렇게 부끄러워해? 어젯밤에 내 옷을 벗긴 사람은 누구더라? 설마, 내가 스스로 벗은 거라고 생각해?” ‘아... 맞다. 나 옷 갖다주러 왔었지...’시연은 그제야 제 손에 들린 셔츠를 내려다봤다.“옷 가져왔어요. 입을 거면 얼른 입어요.”“줘야 입지.”유건은 미소를 지으며 시연에게 다가왔다.시연의 귀 옆에 바짝 다가가 장난스럽게 숨결을 불어 넣으며 속삭였다.“너한테 보여주는 건 괜찮은데, 밖엔 이렇게 못 나가지.”‘이 사람 진짜 왜 이러는데...’시연은 얼굴이 후끈 달아올라 몸을 홱 돌리며 외쳤다.“빨리 입고 나와요!”“알았어.”유건이 옷을 입고 나오자 시연은 이미 아침상을 차려 두었다.“앉아요, 먹게.” 유건이 자리에 앉아 상 위를 훑었다.하얀 죽, 삶은 달걀, 우유, 샌드위치, 군만두... 한식과 양식이 조화를 이룬 꽤 푸짐한 한 상이었다.유건은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커피는?”그에게 아침의 시작은 진한 블랙커피 한 잔이었다.“없어요.”시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고, 눈빛엔 흔들림이 없었다.“난 커피 마실래. 죽은 못 먹겠어.” “안 돼요.”시연은 단칼에 잘랐다.“생각 좀 해봐요. 당신, 요즘 몇번이나 토하고, 몇번이나 위통이 있었는지 알아요?” ‘이렇게 말하면... 아무 말도 못 하겠지.’유건은 입을 다물었다.‘맞지, 요즘 내 위가 예전 같진 않지.’“블랙커피는 위에 자극이 심해요. 당분간은 무조건 금지예요.”시연은 삶은
Read more

제674화

시연은 어리둥절했다. 무슨 말인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한참을 생각해 봤지만, 여전히 감이 오지 않았다.“넌 말이야...”유건은 한숨을 내쉬었다. 화를 내고 싶었지만, 상대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상황.하지만 그냥 넘어가기도 싫었다.“정말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야?”서로의 시선이 마주쳤다.유건의 눈빛은 너무 강렬해서, 시연의 가슴이 철렁했다.‘나, 사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아.’‘그렇게 되면, 지금의 이 평온한 거리도 무너질 것 같아서.’“여보...”“말하지 마요.”시연은 급히 말을 막았고, 얼굴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줘요. 부탁이에요.”그 순간, 유건이 갑자기 시연의 턱을 잡았다. 미소를 머금은 눈엔 어딘가 억눌린 감정이 얽혀 있었다.“말하지 말라고는 하지만, 넌 다 알고 있잖아.” 유건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날 피하지도 않고, 내가 하는 건 다 받아주면서 정작 네 입으로는 아무 말도 안 해. 이런 게 바로 ‘나쁜 여자’ 아니야?”‘나쁜 여자?’시연은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뭐야, 설마 억울해?”유건은 손끝으로 시연의 턱선을 따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 손길은 따뜻하면서도, 약간 거칠었다.“내가 널 좋아해서 쫓아다니고, 너한테 잘해주는 건 내 선택이야. 근데, 나도 말이야...”“이제는 네 입에서 뭔가를 듣고 싶어. 지금 이 순간, 네가 날 인정할 수 있겠어? 내가... 네 남자라는 거.”시연은 그대로 굳었고, 가슴이 세차게 울렸다.‘안 돼... 이런 얘긴 안 되는 거야.’그녀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우리... 분명 말했잖아요.”“뭘?”유건의 목소리는 한층 낮아졌다.그는 손을 내려놓으며 한 발짝 물러섰다.“넌 더 이상 순진한 여고생도 아니잖아. 그냥 똑바로 말해봐. 내가 너한테 아무 대가 없이 다 해주길 바란 거야?”유건은 피식 웃으며, 말끝을 날카롭게 세웠다.“친구 사이에도 주는
Read more

제675화

방 안은 조용했고, 당연히 유건은 없었다.‘그런데 내가 고유건이랑... 키스하는 꿈을 꿨다고?’‘말도 안 돼... 이게 무슨 미친 꿈이야.’결혼했을 때도, 시연은 이런 민망한 꿈을 꿔본 적 없었다.‘진짜, 내가 왜 이런 꿈을...’그날 오후, 짐 정리하러 들른 진아에게 시연은 그 꿈 이야기를 털어놨다.“푸흣.”진아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야, 시연아. 너 이제 슬슬 마음이 흔들리는 거 아니야?”“무슨 소리야.”시연은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절대 아니거든?”“입으론 그렇게 말해도, 네 꿈은 그렇게 말 안 하잖아?”진아는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시연을 바라봤다.“에이, 그만해. 진짜 아니야.”시연은 손사래를 치며 웃었지만, 귓불이 빨개졌다.“됐고.”진아는 짐을 챙기며 말했다.“마음 생겼으면 솔직하게 인정해. 뭐 어때? 두 사람 부부였잖아. 그게 그렇게 부끄러울 일이야?”“우리가 어떤 사이였는지 알잖아.”시연은 목소리를 낮췄다.진아는 웃음을 걷고, 진지하게 말했다.“알지. 그런데 시연아, 네가 진짜 아직 고유건을 좋아한다면... 장소미 때문에 포기하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아?”그 말에 시연의 표정이 굳었다.‘진짜...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걸까?’유건에게 호감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게, 누군가와 경쟁하면서까지 쟁취하고 싶은 감정인가?진아는 캐리어를 닫으며 한숨을 쉬었다.“안 좋아한다고? 그럼 도전만 교수님 연결해 준 건 뭐야? 꿈에서 키스한 건 또 뭐고?”“그, 그건...!”시연은 당황해서 진아의 입을 막았다.“입조심해, 정말!”진아는 크게 웃으며 시연의 손을 털었다.“나쁜 말 한 것도 아니잖아. 난 네 편이야.”“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미련이 남는 건 이해하겠어. 하지만 진짜 좋아하면서 장소미 때문에 포기하는 거면... 너만 손해라는 거야.” ‘진짜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아이 아빠니까 마음이 흔들리는 걸까?’“야, 이제 끝났어?”시연은 불편한 마음을 감추
Read more

제676화

도전만 교수의 집은 1층 주택으로, 작은 마당이 딸려 있었다.마당엔 온갖 약초와 꽃들이 가득했다. 하나하나가 약재로 쓰일 수 있는 것들이었다.시연이 초인종을 누르자, 가사도우미가 문을 열어주었다.“도전만 교수님 제자분이시죠? 안으로 드세요.”“감사합니다.”오늘은 도전만의 휴일.잠깐 낮잠을 자고 막 일어났는지, 도전만은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교수님, 잘 지내셨어요?”“잘 지내고 있지.”도전만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손짓했다.“시연이 왔구먼... 저 사람은 네 남편인가?”시연과 유건의 결혼은 이미 G시 사람들 사이에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시연이 따로 떠벌리고 다닌 건 아니었지만, 고 대표의 아내라는 건 그 자체로 뉴스거리였다.“네, 맞습니다.”유건이 단정히 대답했다.“이리 와서 앉게.”도전만은 앞쪽 의자를 가리켰다.유건은 시연을 힐끗 본 뒤, 예의 바르게 자리에 앉았다.“팔 좀 내밀어 봐요. 맥 좀 짚어보게.”시연이 옆에서 말했다.“교수님께 맥 맡겨 봐요.”“네, 잘 부탁드립니다.”유건이 팔을 내밀자, 도전만은 손끝을 얹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심지어 눈까지 감고 진지하게 진맥을 이어갔다.잠시 후, 눈을 뜬 도전만이 말했다.“혀 좀 내밀어 봐.”“네.”유건은 고분고분 교수의 말에 따랐고, 이어지는 질문들에도 성실히 답했다.생활 습관, 식습관, 수면 패턴, 스트레스 정도까지...“음, 알겠네.”도전만이 손을 거두며 말했다.그 말에 시연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물었다.“교수님, 많이 나쁜가요?”“젊은 사람치고는 건강한 편이야.”도전만은 유건을 손가락으로 톡톡 가리키며 말했다.“위가 좀 안 좋긴 한데, 다 본인이 만든 병이야. 술도 너무 자주 마시고, 또 회사 일도 많지?”‘회사 때문만은 아닌데...’유건은 잠시 말을 멈췄지만, 이내 시연을 힐끗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스트레스는 시연이가 원인인데.’하지만 그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마음을 좀 내려놔.”도전만의 말에 유
Read more

제677화

유건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시연은 오히려 더 민망해졌다.‘이 사람... 나 같은 사람한테 약까지 받아야 해...?’유건 같은 사람이 약 다려줄 사람이 없을 리 없었다.돈만 조금 쓰면 약 달여주겠다는 사람이 유건의 대표실 앞에 줄을 설 판이었으니 말이다. 시연은 머쓱하게 말했다.“내가 괜한 짓 한 것 같아요...”유건은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며, 일부러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그 말은 좀 너무한데? 해준다고 해놓고 바로 손절이야?”‘또 뭘 잘못 말했나...?’시연은 멍해졌고, 유건은 시연의 마음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유건은 슬쩍 눈을 들며 입꼬리를 올렸다. 장난기가 서린 그 표정.“기환이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번거롭잖아. 그냥 내가 직접 올게.”“당신이요...?”시연은 놀라움에 입을 떡 벌렸다.‘하루 세 번 약 먹겠다고 우리 집에 온다는 거야? 그게 더 번거로운 거 아닌가...?’유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한약은 막 달인 게 제일 좋다고 들었는데, 맞지?” “네, 이론적으로는 그래요.”시연도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차로 이동하는 시간도 적지 않잖아요. 굳이 매번 오지 말아요. 당신, 너무 귀찮을 것 같아요.”“난 상관없어.”유건은 단호하게 웃으며 말했다.“병 고치는 데 귀찮음 따지는 사람이 어딨어? 나, 의외로 내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편이야. 일찍 죽고 싶지 않거든.”‘참나...’시연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입 좀 곱게 놀리면 안 돼요? 일찍 죽긴 뭘 일찍 죽어요. 그냥 위염이잖아요, 잘 쉬면 낫는 병이에요.”유건은 키득거리며 시연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그럼 네가 나를 잘 돌봐 줘.” ...약 달이기로 한 이상, 시연은 직접 약탕기도 새로 샀다.시장에 가서 흙으로 된 전통 약탕기를 하나 고르고, 그날 저녁엔 물에 담가 뒀다.‘사실 약초로 삶아 놓는 게 제일 좋은데, 지금은 그럴 여건이 없으니까... 이 정도면 괜찮겠지.’그다음 날 아침.시연은 평소보다 일찍 알람을 맞춰 일어
Read more

제678화

사실 유건은 정말 한약이 먹기 싫었다.‘약, 아주 오래도 먹어야 할 것 같네.’ 하지만, 입으로는 아주 얌전히 대답했다.“응, 좋아. 너무 좋아.”...이틀 뒤, 우주는 퇴원 날을 맞이했다.공여자라 하더라도, 수술 후 각종 지표가 안정되면 보통 일주일 안팎으로 퇴원이 가능하다.우주의 회복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고, 딱 일주일째 되는 날 퇴원 수속을 마쳤다.우주는 앞으로 반년 정도는 조심스럽게 회복 관리를 해야 했지만, 최예민이 함께 있으니 큰 걱정은 없었다.그날, 유건은 시연네 집에서 아침 약을 먹고,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우주를 별산장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유건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시연아, 나 오늘 오후에 L시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시연은 즉각 약 생각부터 했다.“그럼 약은 어떻게 해요?”‘한약은 시작한 이상 절대 끊으면 안 돼. 모든 게 허사가 될 거라고.’ 유건은 시연의 반응이 새삼 신기한 듯 어깨를 으쓱였다.“어쩔 수 없지 뭐. 일이니까.”시연은 눈썹을 찌푸렸다.“안 돼요. 그렇게 그냥 넘기면 안 돼요.”그리고 곧장 물었다.“오후 몇 시에 출발해요?”“3시쯤?”“그럼 언제 돌아와요?”“이르면 내일 밤, 늦으면 모레.”‘하루 정도는 괜찮지만 이틀은 안 돼.’시연은 이미 마음속으로 셈이 끝난 상태였다.“그럼 출발 전에 우리 집에 한 번 들를 수 있어요?”곧장 설명을 덧붙였다.“내가 아는 한약방에 ‘주나’라는 선배가 있어요. 거긴 한약을 조제해주는 서비스도 하거든요.” “물론 직접 달이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 없죠. 내가 미리 부탁해서 몇 포 준비해 놓을게요. 가져가요.유건은 그 말을 조용히 듣고 있다가, 입꼬리를 스르르 올렸다.“이렇게까지 챙겨주면, 감동해서 증상이 다 나을 것 같은데?”‘아차, 너무 티 났나?’시연은 마음을 걸린 것 같다는 생각에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냥 건강 챙기자는 건데... 왜 또 이런 분위기가 되냐고...’유건은 빙그레 웃
Read more

제679화

시연은 이전에도 몇 번, 어지럽고 눈앞이 흔들리는 느낌을 겪은 적이 있었다.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고, 마치 누가 불을 꺼버린 밤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잠깐만...’시연은 순간 떠올렸다. 이게 처음이 아니라는 걸.마지막으로 그랬던 건, 바로 우주 수술 당일이었다.그날, 시연은 눈을 떴을 때 까만 어둠만을 맞이했다.그때 시연은 진아에게 물었다.왜 불을 켜지 않았느냐고.하지만 그때는 증상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나타났고, 온 신경이 우주의 수술에 쏠려 있던 터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가 보다 했던 거다.‘그게 아니었어.’‘내 상태가 더 심각해지고 있던 거야.’시연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신발장에 손을 짚었다.그리고 조용히, 기다렸다.1분쯤 지났을까...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다시 시야에 빛이 들어왔다.이내 앞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지만, 기쁨은 없었다.‘아냐, 뭔가 이상해. 너무 이상해.’시연은 어렴풋이 느꼈다. ‘고유건,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 ‘아마... 오선화 교수님과 관련된 일인 것 같아...’시연은 입술을 깨물며 잠시 고민했고, 이내 바로 산부인과로 향했다.오늘은 오선화 교수가 외래 진료를 보는 날이었다.시연은 접수하고, 조용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자기 번호가 불리고 진료실에 들어서자, 오선화 교수는 놀란 얼굴로 시연을 바라봤다.“오늘은 검진 예정일이 아닌데? 어디 불편해?”“네.”시연은 눈을 피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잠깐이지만 시력을 잃는 증상이 있었어요.”“시력을... 잃었다고?”오선화 교수는 말문이 막힌 듯 한동안 침묵했다.시연은 조용히 이어 말했다.“처음은 8일 전쯤이었고, 그때는 수십 초 정도였어요. 그런데 오늘은... 1분이 넘었어요. 2분까진 안 됐고요.”오선화 교수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입을 떼려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멈칫했다.시연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역시 뭔가 있었어...
Read more

제680화

“아이에게 큰 문제는 없어. 문제는 너야, 시연아... 벌써부터 일시적 실명 증상이 나타났다면, 계속 임신을 유지하는 건... 너도 의사니까, 무슨 의미인지 알지?”“네, 이해해요.”시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합병증이라는 건 사람마다 다르고,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그녀는 의사로서 그 무게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아니야...”진료실을 나서자, 시연의 얼굴은 종이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그리고 가슴 끝에서 올라온 한기가 순식간에 온몸을 휘감았다.그녀는 고개를 숙였다가, 천천히 손을 들어 배 위에 얹었다.‘이 아이를 처음 가졌을 땐... 사실 나도 많이 망설였어.’‘몇 달 동안... 이 아이는 나를 정말 많이 힘들게 했고.’하지만 어느덧 아이는 제법 자란 태아가 되었다.배 속에서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고, 움직이며 장난치는 것도 매일매일 생생하게 느껴졌다. ‘피로 이어진 존재라는 건... 정말 묘한 거야.’시연은 어느새, 이 아이를 받아들일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쉽진 않았지만, 그녀가 그려온 미래엔 우주도, 그리고 이 아이도 함께였는데...‘근데 왜,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야...?’‘어떻게 해야 하지...?’‘아이를... 포기해야 할까?’‘안 돼! 벌써 이 정도로 자란 아이인데... 형태도 다 갖춰졌고...’‘이젠, 그냥 한 생명이야!’‘그동안 그렇게 힘들게 버텨왔는데, 이제 와서 이 아이를 포기해야 한다고?’‘그렇지만... 계속 품고 간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실명...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이 생길 수도 있어.’시연은 눈을 꼭 감았다.‘아이를 낳는 일은, 정말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거구나.’그 순간, 시연의 머릿속에 유건이 떠올랐다.그리고 그녀는 그제야 모든 게 연결되었다.‘그래서 갑자기 내 업무를 중단시켰던 거구나.’유건은 시연이 편히 태교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우려 했다.시연을 아끼는 마음이든, 아이를 아끼는 마음이든... 그건 모두 그
Read more
PREV
1
...
6667686970
...
74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