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건은 확실히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희미하게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사이로, 살짝 눈을 감은 유건의 모습이 보였다.그의 머릿속에는 깊게 잠든 장소미의 모습이 맴돌고 있었다. ‘미안하지 않은 게 아니야...’유건은 바보가 아니었다. 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유건은 마음 깊이 새겨두고 있었다.소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미가 유건에게 품었던 기대와 바람을 유건도 모를 리 없었다.유건은 알았다. 소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며칠 전, 유건에겐 기회가 있었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시연을 포기하고, 소미를 선택할 기회가 말이다. 하지만 유건은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과거에 유건 때문에 아이를 잃었던 소미.한때 유건이 간절히 찾고 기다렸던 ‘나비 공주’ 소미.그런데도 유건은 소미를 놓아주었다.둘의 인연은, 결국 과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감정들은 서서히 놓아줘야 하고, 어떤 기억들은 그저 추억으로 남아야 하니까.유건에게도, 소미에게도 그랬다.결국, 유건은 소미한테 미안하게 되었다....시연은 발소리를 죽이며 조용히 다가갔다.그러다 문득 깨달았다.이곳 발코니가... 고씨 가문의 본가와 똑같이 꾸며져 있었다.나비난으로 가득한 정원이었다.시연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철렁 내려앉았고, 입가가 살짝 떨렸다.‘고유건... 이 사람, 정말 깊이도... 오래도 빠져 있었구나.’ 시연은 다시 유건을 바라보았다.그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는 쓸쓸함과 함께 알 수 없는 슬픔이 묻어 있었다.그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그것은 소미 때문이었다.유건은 소미를 떠올리며, 그 추억을 되새기며, 나비난이 가득한 이 발코니에서 잠시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시연은 순간적인 충동을 느꼈다.‘나... 그냥 가야 하는 거 아닐까?’하지만, 시연은 둘의 ‘과거’를 이미 알고 있었고,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었다.‘고유건이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나한테 충실하고, 우리 아기한테 잘해준다면...’시연은 유건이 과거를 정리할 시간을 주기로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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