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691 - Chapter 700

732 Chapters

제691화

그 ‘납치’ 사건 이후, 정민환과 정기환은 의심이 생겼다.그래서 암시장 쪽을 수소문하며 조사를 벌이던 참이었다.하지만 암시장 쪽은 겉으로 드러난 조직이 아니었다. 이름도 없고, 정확한 정보도 없이 흩어져 있었다.추적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곳이었다.때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범죄일수록, 잡기가 더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CA국 쪽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오히려, 그쪽이 일부러 눈을 돌리게 하려는 위장일 수도 있었으니까.유건은 시연이 괜히 걱정할까 싶어, 조용히 말했다.“그 일은 신경 쓰지 마. 너는 그저 몸 편하게 쉬고 아기만 생각해.”유건의 진심 어린 배려를, 시연은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맞아요... 세상에서 나쁜 짓을 하면, 언젠가는 다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시연이 소미를 좋아하지 않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의 악재를 기뻐할 만큼 잔인한 사람도 아니었다.그녀는 늘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시연은 살짝 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말했다.“장소미 일...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해야죠.”사실, 유건이 예전에 말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장소미를 내버려두면, 난 사람으로서 자격이 없는 거야.’“여보?”유건은 잠시 시연을 바라보다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마음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단 한 마디였다.“고마워... 정말 고마워.”유건은 시연이 자신을 이해해 준 것에 감사했고, 또 자신을 믿어준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시연이 자신을 받아들여 준 것에 감사했다. “알았어요.”시연도 두 팔을 뻗어 유건을 꼭 안았다.‘부디... 내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를...’병실 근처.병실 문 앞에 다다랐을 때, 시연은 갑자기 멈춰 섰다.“여보?”유건은 놀란 듯 시연을 내려다보았다. ‘왜 멈춘 거지?’“나... 안 들어갈래요.”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말했다.“오해하지 마요. 화난 거 아니에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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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2화

[고 대표님.]“간병인 불러서 방 청소 좀 시키고, 간호사들 준비되면 들어오라고 해요.”[네, 고 대표님.]소미는 유건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유건 씨... 요즘 많이 바빠요?”최근 들어 유건이 병실에 오는 횟수가 줄어들었다.예전에는 매일 같이 오던 사람이, 요즘은 하루걸러 오거나, 심지어 이틀, 삼일도 뜸할 때가 있었다.유건은 잠시 말을 멈추고,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시연을 떠올렸다.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조금 바빴어. 너무 걱정하지 마. 소미 씨를 혼자 두진 않을 테니까. 치료 잘 받아.”그 외의 이야기는, 소미가 조금 더 안정을 찾을 때까지 하지 않는 게 나았다.지금 말해 봤자, 소미가 또 격하게 반응할 게 뻔했으니 말이다.그러면 유건도 힘들어질 것이고, 소미의 상처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 분명했다.곧이어 간호사들이 들어와 약물을 투여했다. 그 약물에는 진정 효과가 살짝 포함되어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장소미는 눈을 천천히 감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유건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간호사에게 당부했다.“잘 좀 부탁드립니다.”“네, 고 대표님. 안심하세요.”“네.”병실을 나서기 전, 유건은 한 번 더 잠들어 있는 장소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병실 문을 닫고 발걸음을 옮겼다....복도 끝 창가에 기대어 서 있는 시연이 보였다.“여보.”유건이 다가가자, 시연은 남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끝났어요? 이만 가요.”“응.”유건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시연의 손을 잡았다.“오래 기다렸지? 편한 데 가서 앉아있지 그랬어?”“괜찮아요.”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집에선 하루 종일 누워 있으니까, 이렇게 잠깐이라도 서 있고 움직이는 게 좋아요.”시연은 유건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하지만 소미와 관련된 일이니, 굳이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마음에도 없는 말로 위로하는 건 시연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차 안.운전대를 잡은 유건이 시연에게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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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3화

유건은 확실히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희미하게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사이로, 살짝 눈을 감은 유건의 모습이 보였다.그의 머릿속에는 깊게 잠든 장소미의 모습이 맴돌고 있었다. ‘미안하지 않은 게 아니야...’유건은 바보가 아니었다. 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유건은 마음 깊이 새겨두고 있었다.소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미가 유건에게 품었던 기대와 바람을 유건도 모를 리 없었다.유건은 알았다. 소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며칠 전, 유건에겐 기회가 있었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시연을 포기하고, 소미를 선택할 기회가 말이다. 하지만 유건은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과거에 유건 때문에 아이를 잃었던 소미.한때 유건이 간절히 찾고 기다렸던 ‘나비 공주’ 소미.그런데도 유건은 소미를 놓아주었다.둘의 인연은, 결국 과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감정들은 서서히 놓아줘야 하고, 어떤 기억들은 그저 추억으로 남아야 하니까.유건에게도, 소미에게도 그랬다.결국, 유건은 소미한테 미안하게 되었다....시연은 발소리를 죽이며 조용히 다가갔다.그러다 문득 깨달았다.이곳 발코니가... 고씨 가문의 본가와 똑같이 꾸며져 있었다.나비난으로 가득한 정원이었다.시연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철렁 내려앉았고, 입가가 살짝 떨렸다.‘고유건... 이 사람, 정말 깊이도... 오래도 빠져 있었구나.’ 시연은 다시 유건을 바라보았다.그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는 쓸쓸함과 함께 알 수 없는 슬픔이 묻어 있었다.그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그것은 소미 때문이었다.유건은 소미를 떠올리며, 그 추억을 되새기며, 나비난이 가득한 이 발코니에서 잠시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시연은 순간적인 충동을 느꼈다.‘나... 그냥 가야 하는 거 아닐까?’하지만, 시연은 둘의 ‘과거’를 이미 알고 있었고,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었다.‘고유건이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나한테 충실하고, 우리 아기한테 잘해준다면...’시연은 유건이 과거를 정리할 시간을 주기로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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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4화

이전까지는 시연과 유건이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환이 시연을 ‘형수님’이라고 부를 때에도 큰 감흥은 없었다.하지만, 오늘 기환이 ‘형수님’이라고 불렀을 때는 조금 달랐다.시연은 갑작스럽게 자신이 정말로 유건의 아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나... 이제 진짜 고유건의 아내가 된 걸까?’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각이 점점 마음속에 스며들었다.자연스럽게 시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지금 ‘형수님’이라는 호칭이, 수백 번의 ‘사모님’보다 더 달콤하게 들렸다.기환은 운전석에 앉아 백미러로 시연의 미소를 보았다.‘우리 형님, 정말 형수님하고 완전히 화해하셨나 보네.’기환은 시연을 요가 학원에 데려다주었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집까지 바래다주었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시연은 문 앞 복도가 어수선하다는 걸 느꼈다.알고 보니, 옆집에서 이삿짐을 나르고 있었다.“어?”시연이 궁금한 듯 바라보던 찰나, 마치 옆집 여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이사 가세요?”“아, 시연 씨.”옆집 주인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사 가게 됐어요.”시연은 순간 놀라서 물었다.“갑자기요?”이 아파트는 한 층에 두 세대만 있는 구조였고, 시연이 이사 오던 시기와 거의 비슷하게 맞춰 옆집도 이사 왔던 게 기억났다.‘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호기심이 생긴 시연은 살짝 물었다.“여기... 뭐 불편한 거라도 있었나요?”“그런 건 아니고요.”옆집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누가 우리 집을 높은 가격에 사겠다고 해서요. 가격이 아주 괜찮은데... 안 팔면 바보잖아요?”그녀는 바쁘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저 이제 좀 정신이 없어서... 시연 씨, 다음에 또 봬요.”“네, 이사 잘하세요.”시연은 속으로 의아해하면서도 인사하고 집으로 들어갔다....그날 저녁, 유건이 집에 오자 시연은 이 이야기를 전했다.“잘 살다가 갑자기 이사한대요.”유건은 시연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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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5화

그날 밤, 유건은 여전히 집에 머물지 못했다.“여보, 여보...”“몇 번을 불러도 똑같아요.”시연은 유건을 문밖으로 밀어내며 미소 지었다.“늦었어요. 이제 그만 가요. 잘 자고요.”그렇게 말하고는 문을 닫아버렸다.‘참나...’유건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피식 웃었다.‘이 고집쟁이... 기다려 봐. 언젠가는 네 곁에서 같이 잘 날이 올 테니까.’그는 미련 없이 돌아섰지만, 몸은 예상 밖의 방향으로 향했다.유건은 바로 옆집 문 앞으로 걸어갔다....다음 날 아침, 시연이 화장실에 가려고 막 일어난 참이었다.그때 초인종이 울렸고, 시연은 비몽사몽인 상태로 문을 열었다.“여기.”유건은 커다란 냄비를 두 손에 들고 서 있었다.그는 아무렇지 않게 집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냄비 받침 좀 깔아줘.”“아, 네.”시연은 얼떨결에 대답하며 주방으로 가서 냄비 받침을 깔았다.그런데 뭔가 이상했다.유건이 입고 있는 옷이... ‘뭐지? 저거... 잠옷 아니야?’시연은 고씨 가문의 본가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유건이 밤마다 입고 자던 그 잠옷이었다.‘그런데... 지금은 아침인데?’유건은 냄비를 내려놓고 시연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얼른 세수해. 아직 다 안 가져왔어.”그러고는 다시 밖으로 나가며 덧붙였다.“문 닫지 마. 금방 올 거니까.”‘응...?’시연은 순간 얼떨떨했다. ‘뭔가 이상한데...’하지만 별말 없이 유건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그리고, 유건이 향한 곳을 본 시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유건이 들어간 곳은 다름 아닌... 옆집이었다.‘설마...’잠이 확 달아난 시연은 한걸음에 따라 들어갔다.그새 유건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왕성애가 시연을 맞이했다.“이모님?”“사모님!”왕성애는 반갑게 시연의 손을 잡았지만, 동시에 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여긴 들어오지 마세요. 음식을 방금 만들었는데, 집이 작아서 아직 냄새가 가시지 않았어요. 사모님이 힘드실지도 몰라요.” “이모님...”시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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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6화

유건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마치 눈앞에서 불꽃놀이가 터지는 듯했다.“이거... 네가 시작한 거다?”유건은 시연을 번쩍 안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조심스럽게 시연을 침대에 내려놓았다.남자의 어두운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시연의 입술을 덮었다.시연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서 유건을 밀었다. 눈가에는 촉촉한 눈물이 맺혀 있었다.“안 돼... 이러면 안 돼요.”유건은 숨을 고르며 이성을 붙잡았다.“알아, 알아... 그냥, 키스만 할게. 안기만 할게.”그러나 그 이상의 것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그래도...”시연이 울상인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왜?”유건은 당황한 표정이었다.시연은 입술을 삐죽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나... 못생겨졌잖아요...”임신한 여자의 몸은 어쩔 수 없이 변화하기 마련이었다. 시연의 얼굴은 예전 그대로였지만, 체형의 변화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유건은 그 말에 이유를 깨닫고,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시연의 볼을 살며시 어루만지며 단호하게 말했다.“절대 아니야. 넌 언제나 예뻐.”“으...”...유건이 회사에 출근했을 때, 회의는 이미 한 시간이나 미뤄진 상태였다.하지만, 회의실에 모인 모든 사람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유건의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인다는 것을.대표실에 들어온 유건은 평소보다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머리도 꼿꼿이 세웠다.그러나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따로 있었다.유건의 목덜미에 선명하게 남은 자국들.회의실 안엔 묘한 침묵이 흘렀고, 몇몇 이사들은 목을 살짝 돌리며 웃음을 참았다.주지한도 그 광경을 보고는 헛기침하며 얼굴을 돌렸다.‘형수님... 진짜 대단하신데?’...그다음 날, 유건은 M국으로 출국했다. 장소미를 위한 화상 외과 전문의를 모셔 오기 위해서였다.그 사이, 시연은 진아와 함께 쇼핑을 가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주된 목적은 우주에게 필요한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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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7화

“네...?”시연은 잠시 멍해졌다가, 레오와 유건이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시연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 사람... 제 남편이에요.”“남편이었군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레오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가, 다시 자연스러워졌다.“그분... 시연 씨한테 잘해 주시나요?”시연은 천천히 과일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문득 레오의 물음에 지난번 만남이 떠올랐다.그날은 결코 유쾌한 만남이 아니었기 때문에 레오는 분명 오해가 있었을 것이다.시연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지난번 일은... 제 남편이 너무 성급했어요.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아니에요, 괜찮습니다.”레오는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했다.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아직 제 질문에 답하지 않으셨어요. 그분, 시연 씨한테 잘해 주시나요?”지난번에 유건이 레오에게 거의 주먹을 휘두를 뻔했던 게 떠올랐다. 누가 봐도 유건은 다루기 어려운 사람으로 보였을 터였다.그런데도 시연은 조금 의아했다.‘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닌데... 왜 이렇게 내 일에 관심이 많지?'시연은 레오를 두 번 정도 도와준 적이 있었지만, 그건 그저 지나가는 인연 같은 것이었다.친구라고 할 수도 없는, 그저 스쳐 지나간 사이였다. ‘혹시 원래 이런 사람인가?'시연은 레오의 호의에 감사하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네, 저한테 잘해줘요. 가끔 성격이 급할 때가 있긴 하지만요.”“그래요?”레오는 중얼거리듯 말했지만, 그의 표정은 그리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더 깊이 물어볼 수는 없었다.부부 사이의 일에 끼어드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까.“그럼...”레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설 준비를 했다.그러다 다시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제 연락처... 지우지 말고 꼭 가지고 계세요.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저한테 연락하세요.”시연은 그저 예의상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네, 알겠습니다.”그러나 레오는 시연의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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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8화

“헉! 컥컥!”진아는 물을 마시다가 갑작스레 기침하며 물을 뿜었다.“컥컥...”“야, 왜 그래?”시연은 얼른 진아의 등을 두드리며 물이 넘어가도록 도와주었다.“천천히 마셔. 괜찮아? 기도로 넘어간 거 아니야?”의대생들은 물을 잘못 삼키면 기도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아니야, 괜찮아...”진아는 손사래를 치며 얼굴이 빨개진 채 연신 기침했다.진아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부지하... 갑자기 그 이상한 사람 이름을 왜 꺼내서...’‘...’시연이 너무 피곤할까 봐, 두 사람은 오래 쇼핑하지 않았다.그리고 집에 돌아온 시각은 오후 3시가 조금 넘었고, 아직 한숨 자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옷을 갈아입으려던 중, 유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집에 도착했어?]시연이 나갈 때 유건에게 미리 연락했었기에, 유건은 시연이 올 때쯤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네, 이제 좀 쉬려고요. 근데 당신은요? 지금 이 시간에 전화해도 돼요?”‘여기는 오후지만, M국은 깊은 밤일 텐데...’유건은 시연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대답했다.[시차 때문에 잠이 안 와. 전문가도 만났으니, 내일 바로 돌아갈 거야.]유건은 이번에 그 전문가를 데려오기 위해 간 거였고, 겸사겸사 몇 가지 업무도 처리할 생각이었다.오래 머무를 계획은 없었다.“그래요?”시연은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고, 손을 뻗어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침대 맞은편에 설치된 TV는 유건이 사람을 불러 새로 설치한 것이었다.심지어 주방과 욕실에도 텔레비전이 들어와 있었다.유건이 이런 배려를 보인 이유는 단순했다. 요즘 시연이 할 수 있는 활동이 제한적이니, 조금이라도 즐길 거리를 늘려주기 위해서였다.채널을 이리저리 넘기던 시연은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다.“근데... 그렇게 오래 있으면... 나 보고 싶지 않아요?”[보고 싶지.]“어디가요?”전화기 너머에서 유건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시연은 점점 더 솔직해지고 있었다.유건은 그게 너무 좋아서 목소리를 한 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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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9화

“아, 네.”시연은 서둘러 서명했고, 배송 직원은 기다렸다는 듯 기다란 상자를 집 안으로 옮겼다. “제가 열어드릴까요?”“네, 부탁드릴게요.”워낙 큰 상자라 시연 혼자서 뜯기엔 벅차 보였다.배송 직원은 능숙하게 포장을 풀어냈다. 순식간에 상자가 열리며, 안에서 진공 포장된 무언가가 나왔다.겉으로 보기엔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별 다섯 개 리뷰 부탁드립니다.”“네, 수고하세요.”배송 직원이 떠나자, 시연은 진공 포장된 물건을 살펴보았다.겉 포장을 뜯자, ‘푸슉' 하는 소리와 함께 물건이 커지기 시작했다.그것은... 달 모양의 커다란 쿠션이었다.몽글몽글하고 탄력이 느껴지는 귀여운 쿠션이 갑자기 커지면서 시연의 얼굴을 덮칠 뻔했다. “어머!”왕성애가 그것을 보고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유건 도련님도 참, 이런 걸 왜 보냈을까요? 애처럼 말이에요.”‘애처럼...'시연은 달 쿠션을 품에 안았다. 폭신폭신하고 향기도 좋았다.그냥 장난처럼 했던 말인데, 유건은 그걸 잊지 않고 이렇게 챙겨줬다.시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시연은 달 쿠션을 품에 꼭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왠지 손에서 놓기 싫었다.그리고 침대에 올라가서도 쿠션을 품에 안고, 핸드폰을 손에 꼭 쥐었다.유건의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거의 밤 9시가 되었을 때, 드디어 시연의 핸드폰이 울렸다.“왜요?”벨 소리가 울리자마자 시연은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의 유건은 시연의 목소리만으로도 그녀의 기분이 좋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평소에는 ‘여보세요'라고 받지만, 정말 기분이 좋을 때면 시연은 꼭 ‘왜요'라며 전화를 받았다.유건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시연 어린이, 기분 좋아 보이네.]“네, 맞아요.”시연은 한 손으로 핸드폰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달' 쿠션을 꼭 껴안았다.[달은 받았어?]시연은 살짝 못마땅한 척 대답했다.“에이, 무슨 달이에요. 그냥 인형 쿠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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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0화

분명히 얘기가 다 끝난 일이었다. 시연과 우주는 오늘 지동성을 만나러 오고, 장미리 모녀는 자리를 피해주기로.그런데 지금, 장미리 모녀가 버젓이 병실에 있다.시연은 본능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뭔가 이상해...’지동성은 병상에 누워 있었고,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반면에 장미리는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눈치를 보고 있었고, 소미는 그런 아버지를 타이르고 있었다.“아빠, 화내지 마세요. 방금 수술하셨잖아요. 의사 선생님도 절대 흥분하면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그러게요.”장미리가 건성으로 맞장구를 쳤다.“흥!”지동성은 코웃음을 치며 장미리를 노려봤다.“흥분하면 안 된다고? 뭐가 두려운 거야? 내가 죽을까 봐? 아, 오히려 날 빨리 죽이고 싶으려나?”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아니라고? 그럼 말해 봐.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 다 어디로 갔냐고?”지동성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큰 수술을 하고 깨어났더니, 아내라는 사람이 내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집안 돈을 빼돌려? 그러고도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장미리,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요?”장미리는 목소리를 높이며 반발했고,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소리쳤다.“말은 똑바로 해요! 당신 집안은 내 집안이기도 해요. 내가 돈 좀 쓰는 게 뭐 어때서요?”“당, 당신...”지동성은 격분한 나머지 배를 움켜잡았다.“아빠!”소미는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어머니를 향해 소리쳤다.“엄마, 그만해요! 아빠, 제발 진정하세요. 이 일은 천천히 이야기해요.”“나가.”지동성은 장미리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듯 문 쪽을 가리켰다.“당장 나가. 이따가 시연이랑 우주가 올 거야.”“그래요, 그게 낫겠어요.”소미는 서둘러 어머니의 팔을 잡았다.“엄마, 이만 가요.”“흥!”장미리는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가라면 갈게요. 나라고 여기 있고 싶어서 있는 줄 알아요?”“당신...”“엄마!”장미리 모녀는 병실을 나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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