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911 - Chapter 920

1183 Chapters

제911화

마침 잘 됐다.은희도 시연에게 물어볼 게 있었기에, 약속을 받아들였다. 만나자마자 시연이가 먼저 입을 뗐다.“미안해요. 결국 도와주진 못했어요.”“괜찮아요.”은희는 애써 웃었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도움이 안 됐다는 건 실망스러웠지만, 어쩌면 조금 다행일 수도 있었다.‘지시연도 고유건한텐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걸지도 몰라.’‘적어도, 무조건 들어주는 건 아니라는 얘기니까.’그 틈을 타 시연은 조심스럽게 장소미 이야기를 꺼낼지 고민했다.‘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그런데 은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하나만 더 도와줄 수 있어요?”“또요?”시연은 조금 놀랐다.“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긴 해요?”“있어요.”은희는 절실한 얼굴이었다.“적어도 그쪽 지금 고 대표님을 만날 수는 있잖아요.”‘어라? 이 말투... 본인은 만날 수 없다는 건가?’“맞아요.”은희는 입꼬리를 힘겹게 올리며 웃었다.“요 며칠, 고 대표님이랑 전혀 연락이 안 닿았어요.”‘진짜? 그렇게까지 철벽이야?’시연도 놀랐다. 유건이 이렇게까지 단절할 줄은 몰랐다.“좀 도와줘요. 고 대표님이랑 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마주 앉게 해줘요. 내가 말할 수만 있다면, 다시 돌려놓을 수 있어요. 꼭... 부탁이에요.”그 부탁은 생각보다 무겁게 들렸다.하지만 시연은 짧게 고민한 후,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도와줄게요.”“정말이요?”은희는 두 손을 꼭 쥐었다.“고마워요, 진짜...”“잠깐...”시연은 손을 내저었다.“고맙긴 아직 일러요. 나도 그쪽한테 부탁할 게 있어요.”“네?”순식간에 은희 눈빛이 경계로 바뀌었다. 이내 입꼬리를 비꼬듯 올렸다.“장난해요? 내가 뭘 도와줄 수 있다고요?”“도와줄 수 있어요.”시연은 웃음을 거두고,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혹시, 장소미 알아요?”그 말에 은희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말끝이 잠시 꼬였다.“장소미? 왜 갑자기 그 사람에 관해 묻는 거예요?”‘역시.
Read more

제912화

[좋아요. 먼저 온 사람이 기다리기...]전화를 끊은 유건의 입가엔 웃음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시연이 먼저 약속을 잡다니, 이건 뭐랄까?’‘소위 말하는 '애틋한 재회'? 하, 괜히 설레네.’“속도 좀 내줘.”유건은 운전기사에게 단호하게 말했다.서둘러야 했다. 시연을 기다리게 둘 수 없으니까....한 시간 뒤, 차는 도심에 진입했다.유건은 시연이 말한 그 레스토랑으로 곧장 향했다.그리고 입구에서 안내데스크에 다가가 말했다.“지씨 성, 지시연 씨 이름으로 예약했어요.”“확인되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직원의 안내를 받아 프라이빗 룸 쪽으로 향했다.“안으로 모실게요.”“네.”유건은 입가에 딱 적당한 미소를 머금은 채 문을 밀고 들어갔다.“시...”“고 대표님.”자리에서 급히 일어나는 여성의 목소리.정은희였다.조심스레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띠었다.“와주셔서 감사합니다.”유건의 이마가 잔뜩 찌푸려졌다.“네가 왜 여기에 있어?”시선을 돌려 룸 안을 훑었지만, 시연은 없었다.“그게... 시연 씨는 안 와요. 오늘 약속은... 제가 잡은 거예요.”은희는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뭐?”유건은 낮게 웃었다. 비웃음에 가까운.“네가? 언제? 난 그런 약속 들은 적 없는데?”그리고 곧 유건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그는 뭔가를 직감한 듯,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고 대표님.”은희가 안절부절못하며 두 손을 꼭 쥐었다.“맞아요.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대로예요. 시연 씨가 대신 약속을 잡아준 거예요.”‘젠장...’유건은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탁자를 ‘탁’하고 쳤다.“감히...”“죄송합니다!”은희는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화를 푸세요, 제발요. 정말 어쩔 수 없었어요. 그 작품 때문에...”“시연이를 이용해?”유건의 목소리는 낮고 냉랭했다.“네가 뭔데, 시연이한테 그런 걸 부탁해?”‘어떤 자격으로?’그 물음이 그대로 유건의 눈빛에 실려 있었다.남자의 분노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 있었다.“누가
Read more

제913화

시연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왔네... 올 게 왔어.’애써 입꼬리를 올렸다.“정은희 씨가... 정말 간절하게 부탁했어요.”“그래?”유건의 목소리는 낮게 웃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얕지 않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진짜 몰라서 그래?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을?”시연의 미소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한참 침묵하다 고개를 숙였다.“잘못했어요.”순순히 인정했지만, 유건은 그 안에서 진심을 느낄 수 없었다.그녀는 늘 이렇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다.“너... 그냥,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아서 그러는 거지?”말끝이 떨렸다.‘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시연은 시선을 피했다.“미안해요. 근데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너 마음이 있긴 해? 사람 마음 가지고 노는 거, 재밌어?”“아뇨! 재밌없어요.”시연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내가 당신한테 도움이 된 적, 단 한 번이라도 있었어요? 그냥 귀찮고, 힘들기만 했잖아요. 그러니까... 싫으면 그만...”“입 닥쳐.”유건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한 걸음 다가온 유건이 시연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대로 침대 위로 밀었다.“그런 말 다시 하지마.”두 사람의 숨결이 부딪혔다.유건의 눈빛은 뜨거웠고, 동시에 절박했다.그 순간, 시연은 모든 말이 목구멍에 걸린 듯 더 이상 내뱉을 수 없었다.‘왜 이 사람만 보면... 이렇게 돼버리는 걸까.’유건의 손길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뺨을 감쌌고, 이내 이마를 맞댔다.“그만 도망가. 이번엔, 진심으로 네가 나한테 남아줬으면 좋겠어.”시연은 눈을 감았다.‘왜 자꾸 이런 말을 해... 왜 나를 믿지...’가슴이 저릿하게 아려왔다. 손끝 하나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감정이 몰려왔다.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을 말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시연은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이마엔 진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가슴은 마치 도망칠 틈을 잃은 새처럼 요동쳤다.“샤워는... 아직 안 했잖아요.”목소리가 떨렸다.“끝나고 할게.”유건
Read more

제914화

두 사람은 샤워를 마친 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다.서로의 체온이 물속에서 천천히 섞여드는 조용한 시간.“아, 맞다.”시연이 느긋하게 눈을 반쯤 감은 채 유건을 발끝으로 툭 찼다.“당신이 안 씻어도 되잖아요. 그러니까 침대 먼저 정리하고 와요. 난 깨끗한 데서 자야 해요.”유건이 씁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지시를 아주 자연스럽게 내리네.’“뭘 그렇게 쳐다봐요? 빨리 가라니까요.”시연이 눈을 치켜뜨며 재촉했다.“알겠어.”유건은 묵묵히 수건을 두르고 일어났다.문을 나서기 직전, 문득 뒤를 돌아봤다.“근데 말이야... 우리 중에 누가 보스고, 누가 애인이지?”“당연히 당신이 보스죠.”시연이 눈꼬리를 올리며 싱긋 웃었다.“보스가 애인을 달래고 챙겨주는 것도 일종의 로맨스잖아요? 얼른 다녀와요. 이따가 나를 안아줘야 해요. 다리에 힘 풀려서 못 움직일지도 모르니까요.”유건은 그 말에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이 여자는 진짜...’“기다려.”그는 그렇게 말하고 문을 나섰다.유건이 사라지자, 시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졌다. 남은 건 피곤함, 그리고 어딘지 모를 허탈함이었다.다음 날 아침.시연이 조용히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을 때, 핸드폰 알림이 떴다.[정은희][도와줘서 고마워요. 고 대표님이랑 잘 풀었어요. 다시 작품도 재개하기로 했고요.]시연은 메시지를 보고 헛웃음을 터뜨렸다.“왜 웃어?”마침 유건이 들어와 옆에 앉으며 시연의 핸드폰 화면을 힐끗 봤다.“재밌는 거라도 봤어?”“네, 꽤 웃겨요.”시연은 평소처럼 해맑게 웃었지만, 마음 한편은 차가웠다.‘이 남자, 진짜 이중적이야.’‘어젯밤엔 나한테 그렇게 따지고 화내더니, 결국 정은희랑 잘됐네.’‘이 사람의 여자들은 늘 문제없고, 난 늘 문제인가 보지.’그날 오후, 시연은 오랜만에 지동성이 물려준 주택을 찾아갔다.꽤 오래 비어 있었던 집.먼지도 쌓였고, 정리할 곳도 많았다.한편, 시연이 예전에 살던 집은
Read more

제915화

그 이름에 소미 몸이 살짝 떨렸다.시연은 그 모습을 똑똑히 봤지만 아무렇지 않은 얼굴.“그래요? 온다고요? 시간은 어떻게 나서요?”[오늘은 좀 일찍 끝났거든.]그쪽에서 유건의 목소리.[거의 다 왔어. 같이 가자.]“좋아요.”시연은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마주 앉은 소미는 이미 표정이 굳어 있었다.입안이 바짝 마른 소미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혹시... 고유건?”“응.”시연은 느긋하게 웃었다.“아까 내가 이름 불렀잖아, 못 들었어?”“들었어.”소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을 꼭 움켜쥐었다.‘긴장해서 그런가, 기대해서 그런가?’‘아니면... 아직도 지시연이랑 고유건이 이어져 있어서 화가 나는 건가?’“얼굴...”시연은 아무렇지 않게 소미를 쳐다보며 말했다.“손 봤네? 나쁘지 않네.”마지막으로 그녀가 봤던 소미 얼굴에는 흉터가 깊게 패여 있었다.지금은 거의 펴졌지만, 가까이서 보면 파운데이션으로 가려도 자국이 어렴풋이 보였다.목덜미, 옷깃 사이로 드러난 살결에도 흉터는 그대로.‘몸은... 여전하겠지.’예쁘장했던 장소미는 더 이상 없었다.비아냥거림에 소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눈빛이 싸늘하게 변해 시연을 노려본다.“쓸데없는 얘기 그만하지. 들었거든... 네가 날 캐고 다닌다고.”“맞아.”시연은 물 한 모금 넘기고 말했다.“누가 말했는데? 정은희? 입 진짜 가볍네...”“지시연.”소미는 더는 농담 따윈 관심 없었다. 이마를 찌푸리며 낮게 쏘아붙인다.“무슨 꿍꿍이야?”“글쎄...”시연은 어깨를 으쓱이며 애매하게 웃었다.“오랜만에 보잖아. 그래도 한때 자매처럼 지냈는데, 안부 좀 궁금할 수도 있지 않아?”“안부? 네가 그런 착한 사람이라고?”소미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숨결이 격해졌다.“다 알아. 또 노은범 때문이지? 그 일 때문이잖아.”시연의 웃음이 가시고, 시선이 고요하게 소미를 꿰뚫었다.“그럴 줄 알았어.”소미는 다급히 덧붙였다.“내가 몇 번을 말해! 노은범,
Read more

제916화

소미는 말하다가 목이 메었다.“시연이는... 고집이 세서 말도 안 들어요. 유건 씨가 좀 설득해 주면 안 돼요?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마침내 유건이 고개를 돌려 소미를 바라봤다.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지금... 나한테 말하는 거야?”소미가 잠시 멈칫했다. “네...”잠깐 뜸을 들이던 유건이 말했다.“부탁하려는 사람이 시연이면, 시연이 여기 있잖아. 굳이 나한테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소미는 입을 뗐다가 말문이 막혔다. 아무 말도 잇지 못하고, 심지어 시연조차 놀란 듯 유건을 흘끔 돌아봤다.‘둘이 끝난 거 맞는데, 진짜 장소미한테 관심이 하나도 없다고?’“왜 그렇게 봐?”유건이 시연의 시선을 알아채고,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나 보지 마. 너한테 한 말이면, 네가 알아서 판단해야지.”“네, 알겠어요.”시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소미를 바라봤다.“하고 싶은 말 다 했어? 우린 이제 가봐야 돼서.”사실상 나가라는 얘기였다.소미는 시연 얼굴을 한 번, 유건 얼굴을 또 한 번 보고는 이를 꽉 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마지막으로 돌아보며 말했다.“시연아. 다시 말하지만, 노은범 일... 나랑 아무 상관 없어. 그 죄 덮어씌울 생각, 절대 하지 마.”그리고 그대로 돌아서 나갔다.‘치.’시연의 입꼬리에 묽은 비웃음.믿지 않았다.‘증거는 없어. 하지만... 내가 본 것, 그리고 내 직감이 말해.’‘장소미, 네가 아니면 설명이 안 돼.’“됐지?”유건이 시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흐트러진 시연의 생각을 붙잡아줬다.“이제 가도 돼?”“네.”둘은 문을 나섰다. 걷다 말고, 시연이 조심스레 물었다.“그동안... 두 사람, 한 번도 연락 안 했어요? 본 적도 없어요?”“응, 없어.”담담한 말투,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아.”시연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그렇게까지 단칼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이잖아요. 정말 장소미가 어떻게 사는지, 전혀 신경 안 써요?”직접 보진 않았지만
Read more

제917화

시연이 대형 쇼핑백 몇 개를 들고 진아네 집으로 갔다.기환이 문 앞까지 짐을 들어줬다.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커튼은 닫힌 집 안은 어둑어둑했다.“어떻게 됐어?”짐을 내려놓고 진아 이마를 살짝 짚었다.통화할 때부터 시연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진아의 목소리에 기운이 없었고, 감기 기운처럼 느껴졌었다.“아... 열 좀 있네. 체온은 재봤어?”“응.”진아가 축 늘어진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38.2도.”시연은 다시 한번 진아 얼굴을 들여다봤다. 진아의 눈가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실연 충격에 몸까지 버텨내질 못한 거야...’이 일, 진아는 가족한테도 말 못 했다.지금 이 상황을 아는 사람은 오직 시연뿐.“약은 먹었어?”“아니.”진아가 고개를 저으며 콧소리를 흘렸다.“집에 상비약도 없어서...”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내가 챙겨왔지.”시연이 진아의 볼을 살짝 쓰다듬었다.“밥이랑 반찬이랑 이것저것 다 싸 왔어. 열 날 땐 입맛 없겠지만, 국에 말아서라도 좀 먹어야 약 먹지.”“응.”진아가 눈꺼풀을 축 늘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가 떨렸다.“역시... 너밖에 없어.”“그 말은 왜 해. 너도 나한테 잘하잖아.”사람 마음이란 게 다 주고받는 거다. 아무리 잔짜 친구라도, 마음이 오가지 않으면 오래 못 간다.시연이 테이블을 정리하고 국에 밥을 말아 건넸다.“진아야, 일단 이거 먹어.”“응...”반찬은 전부 마수경표였다.진아가 만든 거보다 훨씬 낫다.진한 국물 냄새에 식욕이 돋았는지, 진아는 생각보다 많이 먹었다.시연은 안도하며 말했다.“잘 먹네. 다행이다.”그때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아, 네. 접니다... 제가 아는 그 사람 정보는 고작 그 정도예요. 나머진 부탁드릴게요. 네, 선금은 이미 보냈습니다...”진아는 말없이 듣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다 짐작하고 있었다.시연이 전화를 끊자 물었다.“사설탐정 쓴 거야?”“응.”시연은
Read more

제918화

시연이 놀라서 얼른 문에서 손을 뗐다.“너... 괜찮아?”“괜찮아.”성빈이 이마를 찌푸리며 팔을 움켜쥐었다.“그냥... 들어가서 진아 좀 보게 해줘. 제발.”“안 돼...”“들어오게 해.”안에서 진아의 목소리가 들렸다.성빈의 눈빛이 순간 밝아지며 시연을 바라봤다.“들어가도 돼?”시연이 못마땅한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가, 막지는 않았다.“그래.”진아는 밥을 다 먹고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진아...”“앉아.”냉랭한 말투, 손짓으로 맞은편을 가리켰다.“응.”성빈은 순간 눈빛이 어두워졌다. 머쓱하게 맞은편에 앉아, 손가락을 꼭 모았다.“말해봐.”진아가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그게...”시연도 조용히 다가와 진아 옆에 앉았다.“진아보다 먼저, 그 여자랑 몇 번 만난 적 있었어. 우리 어머니가 소개해 줬고... 괜찮아 보여서 그냥... 한 번 만나보자, 그런 생각이었어.”‘뭐?’진아의 눈이 커졌다.“그럼, 내가 너한테 고백하기 전부터?”“응.”성빈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하...”진아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그래서 결론은 뭐야. 내가 들러리였단 소리네? 뒷북 친 여우짓이었단 거지?”“아니야.”성빈이 인상을 찌푸리며 급히 말했다.“너는 아무것도 몰랐잖아. 잘못은 전부 내 책임이야.”‘그딴 건... 당연한 소리 아닌가?’시연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끼어들었다.“너 진짜 웃긴다. 이미 만나던 사람이 있었으면, 진아한테 고백을 받았을 때는 왜 아무 말도 안 했어?”“나, 나...”성빈이 더듬거리며 입을 떼었다. 얼굴은 죄책감과 갈등으로 일그러져 있었다.“나도 알아. 진아가 날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그 상황에선... 받아들이면 안 되는 거였어. 근데... 진아가 속상해하는 걸, 도저히... 모른 척할 수가 없었어.”“진성빈!”진아가 벌떡 일어나며 성빈을 노려봤다.“지금... 내가 불쌍해서 그런 거야? 동정이라도 한 거냐고? 내가 뭐 그렇게 바닥을 기어? 내가 아무리 찌질한 사람이라고 해
Read more

제919화

시연이 돌아간 뒤, 진아는 결국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같은 지도교수의 선배라는 연구실 사람이 전화를 걸어왔다.그는 급하게 써야 한다며 보고서를 진아에게 부탁했다.진아는 흔쾌히 수락했다.하지만 그녀는 약을 먹은 터라 머리가 멍했고, 운전할 자신은 없었다.마침 실험실은 집에서 멀지 않았고, 걸어가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일을 마치고, 진아는 문을 잠그고 실험실을 나섰다.그리고 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진아가 이마를 짚었다.‘아, 젠장. 우산 안 챙겼는데...’잠시 비가 그치길 기다려봤지만, 비는 그칠 기미 없이 꾸준히 내렸다.몸도 개운치 않았지만, 진아는 차라리 빨리 집에 가서 씻고 눕는 게 낫겠다 싶었다.결국 빗속으로 뛰어들었다.‘금방 가서 샤워하면 되지 뭐.’빵!서둘러 골목을 지나던 중, 어디선가 들려오는 경적 소리.차 한 대가 진아 옆에 멈췄고, 창문이 스르르 내려갔다.부지하가 고개를 내밀었다. 찡그린 눈으로 진아를 훑으며 말했다.“우산은? 왜 안 챙겼어?”“부 대표님이시네요.”진아가 가볍게 웃었다.“그냥... 집이랑 가까워서요.”“가깝다고?”지하가 비웃듯 짧게 코웃음을 치더니, 차 문을 열고 내렸다.“좋아. 얼마나 가까운지 보자고. 네 말대로 두 발짝이면 되는지, 내가 직접 세볼게. 자, 하나... 가자.”진아이 할 말을 엃었다.‘그냥 가까운 거리를 비유적으로 말한 건데, 이 사람 왜 이렇게 말꼬리를 잡아?’“타.”지하가 냉소적으로 웃으며 진아의 손목을 잡았다.“괜찮아요...”진아가 고개를 저으려 했지만, 그 순간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고, 중심을 잃었다.여자의 몸이 휘청거렸다.“진아 씨?”지하가 깜짝 놀라 얼른 그녀를 부여잡았다.진아의 얼굴은 창백했다.‘이건 확실히 이상하다.’지하의 손바닥이 진아의 이마에 닿았는데, 아주 뜨거웠다.남자의 표정이 굳었다.“열 있잖아.”“괜찮아요... 감기 기운이 조금 있어서.”지하에게 기대 몸을 겨우 세운 진아가 말했다.“감기?”지하 특유의 날카
Read more

제920화

“그렇지.”지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밀며 말했다.“나 진성빈 번호 있는데...”“안 돼요!”진아가 갑자기 지하에게 달려들며 핸드폰을 낚아챘다.지하는 이해가 안 됐다.“뭐야, 지금?”지하가 진아 손에 들린 핸드폰을 가리켰다.“그거, 내 핸드폰이거든?”“하하... 하하하...”진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당장 돌려주진 않았다.“굳이 성빈한테 전화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이 정도는 별일도 아니고요.”‘별일도 아니라고?’지하가 조용히 눈을 가늘게 떴다.딱 봐도, 문제는 작지 않았다.한 번은 진아 혼자 술에 취해 쓰러졌고, 이번엔 폐렴으로 병원까지 왔다.그 모든 순간에 성빈은 없었다.‘그리고, 이 상황에서도 굳이 연락하지 말라고 하는 거 보니...’지하가 갑자기 말했다.“혹시 차인 거야?”“누가 차였다고 그래요?”진아가 본능적으로 튀어 오르듯 받아쳤다.“내가 진성빈을 찼거든요?”말이 튀어나온 순간, 공기까지 멎었다.둘이 마주 본 채, 정적 속에서 눈만 깜빡였다.지하가 입술을 꾹 누르더니,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오... 그래?”지하가 엄지를 들어 올렸다.“임 박사, 멋지신데?”진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대꾸했다.“그럼요. 나 정도면 찰 수 있어야죠.”지하는 멍한 얼굴로 몇 초간 정지.하지만 곧바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하... 하하하하하하...”“왜 웃어! 나가요! 나 진짜 부 대표님 필요 없어요!”“내 잘못.”지하가 즉시 웃음을 거두며 손을 들었다.“그만 웃을게. 얼른 누워. 눈 감고 쉬어. 나는 원래 이래. 사람 한 번 도와주면 끝까지 가는 스타일. 부처님 모시면 극락까지 모시는 거.”진아가 지하를 노려보며 외쳤다.“극락은 부 대표님은 혼자 가요!”“푸흣.”지하가 또 터질 뻔했지만, 간신히 참았다.“미안, 임 박사. 워낙 유식하신 분인데, 내가 조심해야죠.”쫓아도 안 나가고, 진아는 더 이상 기운이 없어 상대할 마음도 사라졌
Read more
PREV
1
...
9091929394
...
119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