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의 모든 챕터: 챕터 1051 - 챕터 1060

1089 챕터

제1051화

휴대폰을 보고 있던 박한빈이 고개를 들자 마침 성유리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가 반응할 틈도 없이 그녀는 벌써 박한빈의 품으로 뛰어오더니 그대로 꽉 안겨버렸다.이건 박한빈에게도 너무 갑작스러운 행동이었다.순식간에 달려온 성유리와 부딪히는 바람에 그는 본능적으로 몇 발짝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도 손은 반사적으로 올라가 성유리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었지만 사실 박한빈은 아직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며칠 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었던 것도 그렇고 본인 멋대로 일을 벌여놓고 나중에야 보고하듯 행동한 것도 그랬다.이번에 성유리를 찾아온 건, 사실 따지고 들기 위해서였다.굳이 오늘이 아니더라도 모레 성유리가 금성으로 돌아왔을 때 제대로 따질 수도 있었다.하지만 아침에 영상통화를 끊고 나서부터 점점 더 열이 받기 시작했고 도대체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싶어서 바로 티켓을 끊었다.오는 길 내내 박한빈은 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려 성유리한테서 온 메시지를 쭉 봤을 때도 그는 답장할 마음이 없었다. 성유리가 말한 숙소 위치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화를 했을 뿐이다.박한빈은 이미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성유리를 만나기만 하면 꼭 혼 좀 내주겠다고.그런데 성유리가 자신을 안는 순간, 품에 안긴 그녀의 온기가 전해지는 순간, 박한빈의 화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그녀를 안고 있으니 함께 맞닿은 체온이 전해졌고 어느새 찌푸려졌던 박한빈의 미간도 조금씩 풀어졌다.성유리는 오랫동안 박한빈에게 꼭 안겨 있다가 뭔가 떠오른 듯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봤다.“어떻게 갑자기 왔어요?”입가에 웃음이 가득했고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성유리는 여전히 박한빈을 안고 있었다.잠시 성유리와 눈을 맞추던 박한빈은 그제야 자신이 아직 화가 나 있었던 걸 떠올렸고 이내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왜? 난 오면 안 되는 거야?”“당연히 그런 건 아니죠!”성유리는 얼른 대답했다.“사실 저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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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2화

“뭐라고요?”성유리는 박한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지금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약간의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박한빈은 그런 성유리와 눈을 맞춘 채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아니면 됐어.”성유리는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고 대신 조심스럽게 박한빈의 손을 잡았다.박한빈은 다른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고 있었는데 그 위에 걸쳐놓은 겉옷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어 금방이라도 바닥에 떨어질 것 같았다.원래는 한 손으로 옷을 다시 올리려 했지만 성유리가 자기 손을 꼭 잡고 있는 걸 보자 그냥 포기해 버렸다.곧 두 사람은 숙소에 도착했다.숙소의 주인을 본 순간, 박한빈은 성유리가 왜 이렇게 자기 눈치를 보고 있었는지를 단번에 이해했다.아라는 박한빈을 보자 꽤 반가워했지만 놀란 듯 먼저 인사를 건네려 했다.“박...”하지만 결국 망설이다가 곧 말을 바꿨다.“박 대표님.”박한빈도 아라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혹시 더블 침대 있는 방 있어요?”성유리는 그를 대신해 체크인을 도우려 아라에게 물었다.“이 사람도 여기서 잘 거예요.”“네. 그럼 짐은 제가 옮겨드릴까요? 지금 방은 3층밖에 없어요.”“괜찮아요, 짐은 제가 좀 이따 옮길게요.”성유리는 아라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박한빈이 숙소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리고 무대 쪽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그들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보지 못했다.그렇지만 박한빈은 그 누군가를 똑똑히 봤다. 그러자 그 사람은 순간 시선을 피하며 허둥지둥 기타를 만지작거렸다.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박한빈의 눈빛이 살짝 날카로워졌다.그때, 성유리가 방 키를 들고 돌아왔다.“가요. 저희 3층으로 올라가야 돼요.”“응.”박한빈은 짧게 대답했다.원래 성유리는 그를 바로 데리고 올라가려 했지만 몇 걸음 걷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뒤돌아섰다.그러더니 테이블 뒤쪽에 등을 보이고 있던 하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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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3화

박한빈의 말에 성유리는 웃음을 터뜨렸다.그리고는 그의 결혼반지를 조심스럽게 빼며 말했다.“이틀만 이거 끼고 다녀요. 다시 금성 돌아가면 그때 다시 결혼반지 끼면 되니까.”박한빈은 성유리의 제안을 반대하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고개만 끄덕거렸다.성유리도 그의 손가락에 새 반지를 끼워주고 자신도 똑같은 반지를 꼈다.그리고 두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박한빈은 그녀의 길고 흰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고개를 들어 성유리를 바라봤다.이내 성유리도 웃는 얼굴로 자신을 마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박한빈이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성유리는 먼저 그의 목을 끌어안더니 입술에 입을 맞췄다.그는 거절하지도, 평소처럼 먼저 다가가지도 않고 인내심 있게 성유리의 혀끝이 자신의 입술을 스치고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오는 걸 기다렸다.박한빈의 입안에는 막 양치한 듯한 상쾌한 향이 났고 성유리의 입에서도 똑같은 향이 느껴졌다.민트 같기도 하고 달콤한 딸기 향 같기도 했다.박한빈은 성유리를 번쩍 안아 올렸다.이내 방에 있던 라탄 의자에 앉고 성유리를 자기 무릎 위로 앉히자 박한빈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지금 이 각도... 정말 좋은데?’성유리는 온몸을 그에게 기대고 있었는데 아까 길거리에서 박한빈에게 다가와 안겼던 그때처럼 포근했다.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며 박한빈의 어깨에 닿자 그에게 간지러운 느낌을 남겼다.그리고 성유리의 입술은 다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턱선, 그리고 목젖까지 하나하나.박한빈은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눈빛이 점점 더 그윽해졌다.호흡이 가빠져 가슴은 거칠게 오르내리고 있었지만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그러다 성유리가 더 아래로 내려가려는 순간, 박한빈 결국 성유리를 다시 끌어올렸다.“안 해줘도 돼.”박한빈의 말에 성유리는 순간 멈칫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저한테 자주 해주잖아요.”“그거랑 이건 달라.”‘뭐가 다른 건데요?’성유리는 이렇게 묻고 싶었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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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4화

다음 날, 성유리는 약속대로 하유림과 다른 친구들과 함께 외출했다.1층에서 모이던 중, 그녀는 임태경과 딱 마주쳤다.성유리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어딘가 서운함 같은 게 섞여 있는 것 같았다.성유리가 그 눈빛의 의도를 파악하기도 전에 임태경은 성유리를 지나쳐 가버렸다.그녀가 먼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는데도 그는 아무 반응도 없이 그대로 무시하고 지나갔다.성유리는 조금 의아했지만 곧 하유림의 목소리가 성유리의 정신을 들게 만들었다.“어? 언니 혼자예요?”하유림은 그렇게 말하면서 성유리의 뒤쪽을 힐끔 살피자 나다빈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혼자라니요? 그럼 누구랑 같이 있어야 되는데요?”“남편이요!”무심결에 말을 내뱉은 하유림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나다빈에게 말했다.“아, 언니한테 말을 안 했네요. 유리 언니 남편분이 어제저녁에 오셨어요. 진짜 잘생겼더라고요! 근데... 풍기는 포스가 어마어마해서 좀 무서웠어요.”하유림은 코를 만지작대며 말했는데 박한빈의 분위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 듯했다.그러자 나다빈은 눈을 굴리며 물었다.“유리 씨 딱 보면 모르겠어요? 저 얼굴로 못생긴 남편 두면 그게 더 이상하죠!”“음... 그렇게 말하니까 그 말도 맞는 것 같네요.”하유림은 뭔가 깨달은 듯 놀란 얼굴로 나다빈을 쳐다봤지만 그녀는 말을 더 이어가지 않고 성유리를 보며 물었다.“유리 씨 남편도 저희 업계 사람이에요?”“아니요. 그냥 회사 다녀요.”성유리는 나다빈이 뭘 궁금해하는지 알기에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그냥 지나가다가 들른 거예요. 저 보러 온 거라 신경 안 써도 돼요. 저희 박물관 가기로 했죠? 얼른 가요.”“맞다! 저희 오전 티켓 샀잖아요. 빨리 가야겠어요.”하유림이 말을 하더니 성유리와 다른 친구들의 손을 잡고 앞장섰다.이 근처 박물관은 성유리가 예전에 다녀왔던 큰 박물관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이 지역의 명사들과 관련된 소소한 전시들이 많아서 의외로 흥미로웠다.성유리는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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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5화

나다빈은 금세 웃으며 말했다.“그리고 전 남자는 외모가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하유림은 뭔가 더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나다빈이 입고 있는 명품 브랜드 옷을 본 순간, 그 말을 꿀꺽 삼켰다.그러곤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바라보며 물었다.“유리 언니, 남편도 오셨는데 여기서 며칠 더 있다 가는 거예요?”“아니요. 딸이 집에 있어서 가봐야 돼요.”성유리는 휴대폰 화면을 보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저 먼저 들어가려고요. 오후 3시에 출발 맞죠?”“네? 맞아요.”하유림은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옆에 있던 나다빈이 그녀의 팔을 살짝 끌어당겼다.결국 둘은 성유리가 바삐 떠나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왜 그러세요?”하유림이 의아해하며 물었다.“남편 보러 간다는데 유림 씨가 왜 말려요?”“진짜요?”하유림은 그 생각까진 못 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계속 정신없어 보이긴 했어요. 자꾸 휴대폰만 보고...”나다빈은 코웃음을 쳤다.“딱 봐도 남편한테 꽉 잡혀 사는 스타일이잖아요.”“좀 그런 것 같긴 하네요. 근데 유리 언니 남편은 진짜 잘생겼더라고요. 영화배우보다 더 멋지던데?”“그 말을 들으니까 이해가 되네요.”“어? 뭐가요?”하유림은 나다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깜빡였다.그러자 나다빈은 한숨을 쉬며 하유림을 쳐다봤다.“유림 씨는 성유리 씨 작품이 드라마랑 영화로 바뀌어서 얼마나 벌었는지 알아요?”하유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무튼 적진 않을 거예요. 봐요, 몸에 명품 하나 없고 남편도 그냥 회사원이라면서요? 요즘 회사에 그렇게 자유롭게 휴가 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그래서 말인데 출장 왔다는 건 말 그대로 핑계 같아요. 사실은...”나다빈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하유림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외쳤다.“다빈 언니 말은... 유리 언니 남편이 아무것도 안 하고 노는 백수라는 거예요?”...성유리가 숙소로 돌아왔을 때, 박한빈은 테라스에서 통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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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6화

“그 프로젝트를 막은 사람이 누군지 알아?”박한빈이 다시 성유리에게 물었지만 그녀가 그걸 알 리가 없었다.그의 회사 일에 대해선 한 번도 깊게 물어본 적이 없었으니까.그래서 박한빈의 질문이 좀 뜬금없다고 느껴졌는데 막상 그의 눈을 마주치자 뭔가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방해준 씨?”무심코 내뱉은 성유리의 말에 박한빈은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진짜 그 사람이에요? 왜요? 한빈 씨랑 사이도 나쁘지 않았잖아요. 지난번엔 방해준 씨 아내도 엔젤 월드에 왔었어요.”“내가 언제 방해준 씨랑 사이좋다는 말을 했어?”박한빈은 성유리에게 되물었다.“그저 이익 때문에 두세 번 밥 같이 먹은 게 전부야.”“그리고... 너 강지연 씨랑 방해준 씨 사이 관계 다 잊었어?”그 말을 듣자 성유리는 바로 감을 잡았다.“한빈 씨 말은... 강지연 씨가 당신에 대해 안 좋은 말이라도 해서 방해준 씨가 일부러 프로젝트를 막은 거라고요?”“뭐... 그럴 수도 있지.”박한빈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말하고 밥을 먹으려 젓가락을 다시 들었지만 성유리는 말이 없었다.그러자 박한빈이 그녀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말했다.“됐어.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그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거니까. 애초에 그렇게 중요한 프로젝트도 아니었어.”성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전 그냥... 이번 일이 있기까지 추형석 씨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해서요.”그 말에 박한빈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성유리를 바라보았다.성유리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사실 지난번 카드 사건부터 좀 이상했거든요.”“그 돈, 추형석 씨가 한빈 씨한테 요구한 거 맞죠? 근데 그렇게 받아놓고선 손도 안 댄 상태였고 강지연 씨가 갑자기 저한테 돌려준다면서 그걸 바로 건네줬어요.”“두 사람 사이에 어떤 거래가 있었는진 몰라도...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그리고 제 생각이 맞다면 강지연 씨랑 방해준 씨도 추형석 씨를 통해서 알게 된 사이일걸요? 그 말인즉슨, 추형석 씨랑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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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7화

성유리의 말이 끝나자 박한빈은 더 환하게 웃었다.그러더니 그녀의 볼을 손가락으로 살짝 집으며 말했다.“응.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너 정말 똑똑하다고.”이 말을 듣고 나서야 성유리는 그가 진짜 칭찬하는 거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민망해진 성유리는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리며 말했다.“그럭저럭 대충 하는 추측이죠. 뭐... 옆에서 자꾸 보다 보니까요. 다 한빈 씨 덕이죠.”“그럼 네 생각엔 내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네?”“아니면 너는 왜 추형석 씨가 이런 짓을 했다고 생각해?”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성유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혹시 성유정 때문은...?”“내 생각엔 그건 아닌 것 같아.”박한빈은 여전히 성유리의 뺨에 손을 얹은 채,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성유정이 죽어갈 때도 눈 하나 깜빡 안 했던 사람이 이제 와서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그럼 한빈 씨 생각은 뭔데요?”“나도 잘 모르겠어. 지금은 네가 나보다 똑똑하니까 너한테 묻는 거잖아.”“박한빈 씨 지금 저 놀리는 거죠?”“아니야. 나 정말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 그렇게 안 보여?”박한빈의 표정은 확실히 진지했다.그윽한 눈빛으로 성유리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만 빼고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손까지 감안하면 말이다.성유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말하려면 진지하게 하시지... 손은 왜 자꾸 그래요?”“내가 뭘? 그리고 내가 내 아내 좀 만지겠다는데 그게 뭐가 어때서?”성유리는 원래 진지하게 생각을 정리하려던 참이었는데 마지막 한마디를 듣고 머릿속이 갑자기 하얘졌다.이 순간, 그녀는 차마 박한빈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응? 여보, 왜 갑자기 말이 없어?”박한빈은 장난스럽게 계속 물었다.“몰라요! 전 추형석 씨랑 그렇게 친하지도 않거든요!”성유리는 괜히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그의 손을 급하게 떼어냈다.박한빈은 더 이상 장난치지 않고 웃으면서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그렇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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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8화

점심을 먹고 나서 박한빈은 성유리에게 같이 낮잠을 자자고 했다.성유리는 원래 잠깐만 자려고 했었다. 오후에 하유림이랑 그들끼리 고찰에 가기로 했으니까.하지만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거의 지고 있었다.박한빈은 여전히 그녀 옆에서 자고 있었고 성유리의 허리를 감싼 채로 누워 있었다.눈을 감고 있는 그는 어느 때보다 더 편안해 보였다.성유리는 박한빈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하유림과의 약속을 떠올렸다.그러고는 바로 돌아서서 핸드폰을 찾았다. 약속한 시간과 이미 4시간이나 지나 있다는 걸 확인하자 놀란 성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렇지만 금세 하유림이 보낸 메시지를 발견했다.나다반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쇼핑몰에 가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성유리는 하유림에게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때 박한빈이 뒤에서 손을 뻗어 핸드폰을 빼앗아 갔다.그리고 성유리를 다시 품에 안으며 눈을 감았다.그제야 성유리는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돌려 박한빈을 쳐다보았다.“제 알람은 당신이 껐죠?”“응.”박한빈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그리고 네 대신 전화도 내가 받았어. 네 친구들은 널 기다리지도 않고 먼저 간다던데?”“왜 절 안 깨웠어요?”“너무 깊게 잠들어 있어서 깨우기 미안했어.”성유리는 박한빈의 말을 믿지 않았고 일부러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어쨌든 그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늘 자기 자신과 함께이기를 바랐다.게다가 하유림에게 전화를 받았다는 것도 박한빈이 일부러 먼저 전화를 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렇지 않다면 하유림이 왜 그런 메시지를 보냈겠는가?성유리는 점점 더 그 가능성이 크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화가 난 성유리는 박한빈의 팔을 잡고는 살짝 깨물었다.박한빈이 전혀 아파하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물고 싶었다.그동안 그는 아주 익숙한 듯 성유리의 ‘공격’을 받아들였기 때문에.박한빈의 팔은 매우 단단해 성유리가 물어도 자국조차 남지 않았다.그러나 박한빈은 아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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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9화

성유리는 사실 방금 전까지 박한빈을 놀리려고 했었다.하지만 창가에 다가가 주황빛 노을을 보고 나자 그 생각이 바로 사라졌다.자신이 말을 마친 뒤에도 박한빈이 한참 동안 아무 반응이 없자 성유리는 이상해서 고개를 돌렸다.그러자 박한빈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리고 그는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어 성유리는 순간적으로 뭔가를 깨닫고 머뭇거릴 것도 없이 급히 몸을 돌렸다.하지만 박한빈은 성유리보다 반응이 훨씬 빨랐고 손을 뻗어 성유리를 자기 쪽으로 끌더니 다시 침대로 되돌려 놓았다.“왜 도망가? 늑대라도 쫓아오나?”박한빈의 목소리는 무심한 듯했지만 성유리는 너무 잘 알았다.이렇게 무심한 척하는 박한빈이 가장 위험하다는걸.성유리는 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만 박한빈이 갑자기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응. 노을 꽤 괜찮네. 여기 위치가 최고인 것 같아. 너는 어때?”“별로인 것 같은데요. 전 아직...”성유리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박한빈은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결국 그날 석양 구경도, 저녁도 거의 못 먹을 뻔했다.그런 박한빈에게 복수하기 위해 성유리는 저녁 메뉴를 매우 매운 음식을 골랐다.박한빈은 붉은 기름으로 가득 찬 음식을 한 번 쳐다봤지만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다만, 성유리에게 깨끗한 그릇과 수저를 건네주었다.성유리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음식을 한 젓가락 집어 박한빈의 입술 가까이에 대며 말했다.“드세요.”박한빈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성유리를 바라봤고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이를 악물고 있었다.그 모습이 오히려 박한빈을 즐겁게 만든 듯, 성유리의 눈에는 그가 점점 더 환하게 웃는 것이 보였다.그리고 박한빈은 정말 입을 벌려서 그녀가 건넨 음식을 먹었다.그는 이미 자신의 표정을 잘 다스리는 법을 터득했지만 성유리는 박한빈이 입술을 꽉 깨물더니 얼굴을 찌푸리는 걸 알아차렸다.이내 박한빈의 눈가가 붉어지는 것 같았다.그 모습을 본 성유리는 금세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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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0화

박한빈은 처음에는 필요 없다며 거절했지만 성유리는 결국 두 개의 다른 메뉴를 새로 주문했다.다행히 원래 시켜놓은 음식들은 낭비하지 않았다. 주문할 무렵, 마침 하유림과 나다빈이 그들이 있는 식당에 도착했기 때문에.하유림은 성유리를 보고는 기뻐했지만 박한빈을 보고 나서는 미소가 살짝 사라지더니 그에게만 가볍게 인사했다.“안녕하세요.”박한빈도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나다빈은 박한빈을 유심히 살펴보다 그의 팔에 있는 손목시계에 시선을 멈췄다.다른 물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박한빈의 옷은 나다빈이 자주 보던 브랜드와는 다른 것이었다.아마 박한빈에게서 풍기는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그가 입고 있는 옷도 아주 고급스러워 보였다.그리고 그 손목시계, 진짜라면 최소 100억은 할 것이다. A급 복제품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라면 결코 싸지 않다.나다빈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성유리 씨한테 빌붙어 사는 주제에 저렇게 비싼 시계를 차고 다녀?’박한빈은 나다빈의 반응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지만 대신 하유림은 나다빈에게 몰래 엄지손가락을 세웠다.나다빈은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아 물 한 잔을 부탁하더니 채소를 씻어 먹기 시작했다.며칠째 이런 방식으로 식사를 해왔으니 특별히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자기 입맛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그때, 성유리가 주문한 음식이 다시 등장했고 직원이 말하길 그 음식들은 성유리가 특별히 남편을 위해 주문한 것이라고 했다.그러자 나다빈은 성유리를 애증의 눈빛으로 바라봤고 하유림은 남편을 잘 챙기는 성유리의 모습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유리 언니, 남편한테 정말 잘해주시네요.”“그래요?”성유리는 조금 전 있었던 일에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여전히 빨간 박한빈의 눈가를 발견하곤 물을 따라줬다.그 모습에 나다빈은 거의 기절할 뻔했다.하지만 이건 그들 부부 간의 일이라 나다빈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조용히 성유리에게 물었다.“내일은 바로 금성으로 가는 거죠?”성유리가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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